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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인터뷰

싱가포르 난양工大 조남준 교수의 제언

“메르스 때의 실패, 코로나19 만연한 지금도 재현”

글 :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chosh76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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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똑같은 건 이제 의미가 없어요. ‘원 오브 뎀(one of them·그들 중 하나)이 될래, 유니크(unique·독특함) 함을 가질래?’ 한국 사회가 깊이 생각해볼 話頭라고 생각합니다.”

⊙ “韓, 톱 클래스 대학 육성에 인색… 좋은 게 좋은 거란 인식 팽배”
⊙ “연구 분야 획일적인 韓 학계… 뭐 하나 뜨면 그쪽으로 쏠려”
⊙ ‘테뉴어 시스템’ 강화해야 대학 경쟁력 올라간다
⊙ 싱가포르 대학이 경쟁력 유지하는 비결은?
⊙ 연구비 액수보다 사회와 경제발전에 어떻게 기여할지부터 생각해야
⊙ 인공세포막 이용한 ‘LNP 기술’과 꽃가루 이용한 ‘바이오 플라스틱’

조남준
1972년생. 미국 UC버클리대학 토목공학과 졸업. 스탠퍼드대학 재료공학 석사, 화학공학 박사, 의대 박사 후 과정(post doc) / 現 싱가포르 난양공대(NTU) 재료공학과 교수, 루카에이아이셀(LUCA Alcell) 기술총괄 대표이사
사진=조준우
  조남준(49) 싱가포르 난양공대(NTU) 교수가 갖고 있는 이력은 다소 독특하다. 우선 미국 서부 명문대를 졸업한 게 눈에 띈다. 이력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학사·석사·박사 과정 전공이 모두 다름을 알 수 있다. 통상 학사 전공을 가지고 석·박사 과정을 밟는 게 보통이란 점에서 이 역시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해외 학계가 주목한 연구 실적
 
  미국 명문대에서 다양한 학문을 수학(修學)한 조남준 교수는 학계(學界)가 주목할 만한 여러 성과를 내왔다. 조남준 교수팀은 지난해 꽃가루를 활용해 해양 기름 유출과 같은 수질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친환경 스펀지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꽃가루 입자는 ‘유기체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린다. 그만큼 단단하고 안정성이 뛰어나다. 꽃가루는 번식을 위해 암술에 가서 식물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역할을 하는데, 번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생식세포를 갖고 있는 만큼 혹독한 환경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조 교수팀은 이러한 성질을 우연한 기회에 발견했다. 신약(新藥) 개발을 위한 약물전달시스템(Drug Delivery System·DDS) 연구 과정 중 하나로 꽃가루를 6시간 동안 알칼리성 용액에 담가놓는 절차가 있다. 이때 조남준 교수팀 대학원생 중 한명이 실수로 꽃가루를 꺼내지 않고 금요일에 퇴근했는데, 월요일에 와보니 흐물흐물한 젤(gel)처럼 변해 있었다고 한다. 이때 조남준 교수는 ‘꽃가루를 다양한 용도로 바꿀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조 교수는 “다이아몬드같이 단단한 꽃가루 입자가 부드러운 젤 형태의 입자로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발견하고 흥분했다”며 “꽃가루의 이런 특성을 이용해 다양한 친환경 재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꽃가루는 바깥쪽 벽(외막)의 주성분(스포로폴레닌)이 매우 단단해 이를 잘 활용하면 다른 물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조남준 교수팀은 꽃가루를 활용한 친환경 스펀지가 가솔린이나 모터오일 같은 오염 물질을 선택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를 지난 3월 재료 분야의 국제 학술지(《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게재했다.
 
  2010년, 조남준 교수가 스탠퍼드대학 의대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고 있을 때, 그는 C형 간염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신약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 기술은 종전 간염 치료법보다 획기적으로 독성(毒性)을 낮출 수 있고 생산성까지 높인다는 점에서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조남준 교수팀은 시험관 실험을 통해 C형 간염 바이러스의 복제 사이클에 꼭 필요한 단백질을 찾아냈다. 이 단백질을 합성한 화합물이 바이러스 복제를 저해하는 걸 확인했다. 최종적으론 이 단백질 화합물을 값싸고 간단하게 제조·생산하는 기술까지 개발했다.
 
  당시 조남준 교수는 “독성 등의 부작용을 크게 줄이면서 간단한 공정으로 싸게 대량생산할 수 있는 신약 플랫폼이다. 미국 특허만 이미 세 건 받았다”고 했다.
 
 
  대학 교육 提高 위한 노력
 
2015년 4월 8일 숙명여대 산학협력단(단장 이의용)이 삼성서울병원, 싱가포르 난양공대와 신약 개발을 위한 국제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맨 왼쪽이 조남준 난양공대 교수다. 사진=뉴시스
  조남준 교수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연구 실적 외에 난양공대에서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 수립에 참여해왔다. 조 교수는 대학 경쟁력을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이다. 학문적 결실은 실험실에 종일 틀어박혀 있으면 어느 정도 일굴 수 있다지만, 대학 경쟁력 제고(提高)는 쉽지 않은 과제다.
 
  대학 입시와 교육정책 등을 둘러싸고 대학과 정부, 학부모가 첨예한 이해관계로 얽혀 하루가 멀다 하고 갈등을 벌이는 게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이런 복잡다단함 속에서 조남준 교수는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연구와 병행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조남준 교수가 한국에 체류하고 있던 지난 7월 22일, 기자는 경기도 안양시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조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서 세계 대학이 처한 현실과 국내 대학이 나아갈 방향, 경쟁력 제고 방안 등에 관한 의견을 청취했다. 현재 이뤄지는 연구 분야에 대한 설명도 들어봤다.
 
  ― 미국 명문대에 있다가 싱가포르 난양공대에 부임한 계기는 뭡니까.
 
  “싱가포르 국가과학연구재단(Singapore National Research Foundation)이 NRF Fellow(싱가포르 국가 과학자)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제 제안서가 채택됐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과 맞닿아 있는 주제였어요. 〈Combating Infectious Diseases: Engineering Strategies for Molecular biology〉라는 것인데, 한마디로 정리하면 ‘분자생물학을 통한 새로운 공학적인 방법으로 감염병을 퇴치해야 한다’는 논지(論旨)였습니다. 이 테마로 한화(韓貨) 약 5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이를 기초로 현재까지 난양공대에서 150억원을 받아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 미국과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액수인 듯합니다만.
 
  “그 당시 저는 사실상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처지였어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 정도의 액수를 받은 건 엄청난 거죠. 미국의 연구비 지원은 최고 1밀리언 달러(one millions dollar·한화 약 12억원) 정도입니다. 한국은 최고 3억원 정도에 불과하고요. 난양공대가 그런 식으로 파격적인 지원을 해주니까 전 세계의 유능한 인재가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경 난양공대는 세계 대학 순위 200위권에 머물렀지만, 지금은 10위권에 랭크되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으로 거듭났습니다.”
 
 
  ‘테뉴어 트랙’ 강화했더니 대학 경쟁력도 상승
 
싱가포르 난양공대 전경. 사진=난양공대 홈페이지
  ― 2011년 난양공대에 부임했을 때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처음 갔을 때 한국 교수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지금은 젊은 교수들이 많아졌어요. 그렇게 된 이유는 테뉴어 트랙(tenure track·종신 교수로 보장받기 위한 심사 과정)을 강화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부임했을 때에만 해도 테뉴어 트랙 통과 비율(rate)이 공식적으로 54% 정도였지만, 지금은 20% 선입니다. 테뉴어 트랙을 강화하니까 경쟁력이 없는 교수들은 자연히 밀려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수한 교수진만 살아남으니 자연히 대학 경쟁력은 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종의 선순환이 이뤄진 겁니다.”
 
  ― ‘강소국’이라 불리는 싱가포르만의 저력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는데, 그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사회적인 시스템이 다릅니다. 일단 정부 관료들이 엄청난 엘리트입니다. 우리처럼 엘리트가 특정 기업 같은 곳에서 성장하지 않고 정부에 들어가 실력을 발휘하는 독특한 구조입니다. 공무원 월급 체계도 달라, 나이가 적어도 우수한 관료라는 판단이 들면 정부에서 집중 육성합니다. 자유시장 경제와 사회주의 경제를 혼합한 체제이다 보니 그런 게 가능한 것이죠. 인구 분포를 보면, 싱가포르 현지인 50%, 외국인이 50% 정도입니다. 외국 인재를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다는 얘깁니다. 그들을 정부 차원에서 집중 육성하기도 하고요. 대우도 잘해주는 동시에 성과를 내면 그 성과도 잘 빼먹는, 그런 나라가 싱가포르입니다.”
 
  ― 대학도 그런 식으로 관리를 하나요.
 
  “예컨대 대학 총장이 외국인이면, 부총장은 싱가포르 현지인이 맡습니다. 반대로 총장이 현지인이면 부총장은 외국인이 맡는 식입니다. 서로 견제를 하면서 각자의 노하우를 배우라는 취지에서 그렇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정치인, 특히 총리도 5~10년씩 차근차근 키워서 선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죠. 연령층도 매우 낮은 편입니다. 즉 젊은이들을 정부나 대학에서 키워주는 그런 구조예요. 땅도 보잘것없고 심지어 물도 수입하는 나라가 싱가포르 아닙니까. 그런 싱가포르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이 바로 거기에 있죠.”
 
세계적인 명문대로 발돋움한 중국 칭화대 전경. 사진=칭화대 홈페이지
  ― 그런 반면 지금 중국 대학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지 않습니까.
 
  “모든 나라가 그렇겠지만 싱가포르 역시 중국 대학이 치고 올라오는 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자국(自國) 내 39개 대학, 8개 대학, 89개 대학을 순차적으로 선정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육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비 지원도 어마어마하게 늘렸고요. 중국 대학들은 미국에 있는 우수한 교수뿐 아니라 전 세계의 유능한 인재들을 흡수하고 있습니다. 칭화대(淸華大)와 베이징대(北京大)가 세계 유수 대학으로 발돋움한 것도 중국 정부의 전략적인 지원 덕분입니다.”
 
  ― 중국 대학들이 언젠가는 난양공대를 능가할 수도 있다는 얘기네요.
 
  “우리가 39개 중국 대학을 평가(evaluation)했더니 이 대학들이 2030년쯤에는 난양공대 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더군요. 아시아에서 우리가 1~2위를 하고 있는데, 중국 대학이 훗날 치고 올라오면 난양공대는 아시아에선 ‘2류’가 되는 셈입니다. 글로벌 순위로는 현재 11위에서 50위권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고요. 이것이 우리 대학뿐 아니라 싱가포르 정부가 걱정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 그간 쌓아온 연구 실적이란 게 있는데 순위가 쉽게 바뀔까요.
 
  “한번 순위 변동이 생기면 대학도 걷잡을 수 없어집니다. 대학이 갖고 있는 고유 브랜드와 역사에 치명적인 손상이 가해지는 거거든요. 싱가포르 정부도 ‘비록 우리가 작은 나라지만 두 개 대학 정도는 집중 육성해 글로벌 톱5로 만들고 이를 유지시켜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습니다.”
 
 
  연구비 액수보다 중요한 것
 
중국 베이징대 학생들이 “세계 일류대학을 만들자”는 플래카드가 걸린 백주년 기념관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조선DB
  ― 우리나라 대학 사정은 어떻습니까.
 
  “첫 번째 문제는 한국 대학 테뉴어 시스템에 있습니다. 젊은 교수들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연구와 수업에 몰두하며 성과를 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걸로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 대학의 테뉴어 시스템은 유명무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테뉴어 심사를 하는 교수들과 테뉴어 심사를 받는 교수들이 서로 다 아는 처지인데 심사를 깐깐하게 하기는 무척 어렵다는 토로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 특유의 연고주의(緣故主義)가 대학 성장을 방해하는 셈입니다.”
 
  ― 두 번째 문제는 뭡니까.
 
  “톱 클래스 대학을 육성하는 데 인색한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게 좋은 것이다’ 이런 인식이 대학 성장을 막는 데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선도하는 대학이 출현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는 거 같아요. 연구비도 잘하는 대학과 교수에 집중 지원하는 게 아니라 ‘나눠 먹기’ 식으로 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 않습니까. 뭐 한국 내부에서야 상관 없지만… 그런 방식으로 세계 대학과 경쟁하기는 무척 어렵겠지요.”
 
  ― 국내 대학 교수들은 연구비 부족이 대학 경쟁력 하락과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연구비가 많으면 좋은 성과를 낼 수는 있죠. 그리고 OECD 국가에 비해 연구비가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선택과 집중인 동시에 지속가능한 투자죠. 또한 연구비 액수보다는 연구비를 바라보는 교수들의 시각입니다.”
 
  ― 무슨 말씀인가요.
 
  “제가 싱가포르에서 연구비 지원을 받을 때 ‘이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돈’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어요. 연구비 신청서를 작성할 때에도 ‘내가 하는 연구가 어떻게 사회에 이익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등을 자세히 적어야 했습니다. 저는 연구비를 지원받는 외국인 입장이라서 그런지 처음엔 그런 말들이 너무 생소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말을 하도 듣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연구를 하자’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액수보다는 어떤 성과를 내고,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 우리나라는 연구비를 지원받으면 그에 따른 간섭도 꽤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외국은 어떻습니까.
 
  “만약 우리가 연구에 필요한 학생 한 명을 고용한다고 하면, 그건 대학 자율에 따라 이뤄지지 정부의 간섭은 받지 않습니다. 학생에게 주는 급여도 대학에서 결정합니다. 그만큼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거죠. 그렇다 보니 투명성(transparency)이 높습니다. 대학 스스로 우수한 전문 인력을 자율적으로 선발하니 연구진은 연구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겁니다. 교수가 행정적인 부문에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요.”
 
 
  연구 분야 획일화된 국내 대학
 
  ― 우리 대학의 주된 문제점은 뭡니까.
 
  “연구 분야가 다소 획일화돼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으니까 갑자기 리피드나노파티클(LNP·Lipid Nano Particle) 연구가 마치 트렌드처럼 돼버렸어요. mRNA(메신저 리보핵산) 기술을 활용해 코로나19 치료제나 백신 개발을 위해선 ‘약물전달시스템(DDS)’이나 ‘약물전달체 플랫폼’이 반드시 확보돼야 하거든요. 그래서 최근 들어 코로나19 관련 RNA 백신과 치료제의 약물전달체인 LNP 기술이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재밌는 건 LNP라고 불리는 약물전달체의 첫 연구가 1965년부터 시작됐지만, 지난 20년간 국내에서는 LNP 기술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 왜죠?
 
  “대중적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동안 에너지가 뜨면 배터리로 우르르 몰려가고, 탄소가 뜨니까 다 탄소 연구에 몰려가는 실정이었어요. 연구비도 거기에 편중되는 경우가 많았고요. 그러다 코로나19가 이슈가 되니 갑자기 수많은 교수들이 LNP 전문가라고 나오더라고요.(웃음) 이 사람들 논문을 읽어보니까 이 분야를 연구한 분들이 아니더라고요. 이 사람들이 연구한 건 그냥 ‘나노파티클’이지 ‘리피드나노파티클’은 아니었습니다.”
 

  ―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기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물며 주식(株式)를 한다 하더라도 포트폴리오라는 게 존재하잖아요. 이런 중요한 연구에 그마저도 없습니다. 뭐 하나 뜬다 싶으면 막무가내로 올인(all-in)하는 거죠.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교수들을 마구잡이로 뽑아 일종의 마피아를 구축하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들끼리 연구비도 두둑이 받을 수 있으니 엄청 든든하겠죠. 문제는 뭐냐? 특정 분야에 구멍이 생기는 겁니다.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폐해(弊害)라고 할 수 있죠. 이런 식으로 가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받습니다.”
 
  ― 코로나19 덕분에 여러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군요.
 
  “더 재밌는 얘기를 하나 드릴게요. 미국 감염병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때 미국은 코로나19가 엄청 심각했습니다. 하루 확진자가 몇만 명씩 나올 때였으니까요. 저랑 친한 감염병 전문가 중에서도 확진자가 있었어요. 심지어 ‘메디컬 시스템이 다 붕괴됐다’는 말까지 돌았잖아요. 그런데 그 틈에 미국이 백신을 무기화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우리나라를 보면 백신을 무기화한 나라들과 경쟁을 하려고 합니다. 백신을 똑같이 카피(copy)하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이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를 뛰어넘는 것을 개발하고 경쟁해야지, 똑같은 형식의 백신을 만든다? 이건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침체되는 일본 대학
 
조남준 교수가 기술총괄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루카에이아이셀의 사업 포트폴리오. 사진=루카에이아이셀 홈페이지
  ― 그건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도 똑같았어요. 그때 제가 한국에 왔는데, 한국 연구진이 메르스와 관련해 ‘뭘 어떻게 연구하겠다’며 엄청난 이야기를 쏟아놓더라고요. 근데 메르스가 종식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연구가 딱 멈췄어요. 그때 그들이 말한 것처럼만 연구에 투자했더라면, 지금처럼 ‘치료제가 없다’ ‘백신 부족이다’ 이런 얘기는 안 나왔을 겁니다. 단순히 ‘감염병 센터를 만든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긴 안목으로 기초연구에 엄청난 투자를 해야 성과를 낼 수 있는 거니까요. 메르스 때 겪은 실패가 코로나19가 만연한 지금 이 시점에 재현(再現)되고 있는 셈입니다.”
 
  ― 듣다 보니 우리나라에 그다지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만.
 
  “다행인 건 젊은 교수들의 연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가지가 개혁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앞서 말씀드린 테뉴어 시스템의 획기적인 개혁입니다. 이게 선행되지 않으면 모든 대학, 아니 국가 기간교육이 망가질지 모릅니다. 거기에 더해 특정 대학 5~6곳을 지정해서 전 세계 톱 클래스 대학으로 육성하는 데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일본을 보면 그 답이 보입니다. 일본 대학은 지금 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거든요.”
 
  ― 안 좋은 방향이라니요.
 
  “일본의 과학 기술이 세계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건 과거의 일본이지, 지금의 일본은 그 환경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 분야를 보면, 과거 30~40년 전에 했던 것들이에요. 일본도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희망이 없다고 봅니다. 게다가 일본인들은 다소 폐쇄적이라 연구를 공유하지 않고 혼자만 독식(獨食)하려고 합니다. 일본 대학도 경쟁력이 조금씩 뒤처지고 있고, 무엇보다 소니(SONY) 같은 글로벌 기업이 지금 맥을 못 추고 있잖아요.”
 
 
  꽃가루 활용한 ‘바이오 플라스틱’
 
조남준 교수팀이 개발한 인공세포막(Lipid Bilayer)의 특징. 사진=루카에이아이셀 홈페이지
  ― 이야기의 주제를 조금 바꿔볼까 합니다. 지금 연구하는 분야 중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플라스틱의 역습(plastic pandemic)과 식량 부족(food security)입니다. 이 두 가지 모두 우리 일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미세먼지의 경우, 각종 지표가 매일매일 발표되고 있어 사람들이 그에 경각심을 갖는 데 큰 무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플라스틱 오염이나 식량 부족은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 발표되는 논문 등을 보면 아주 심각한 상황입니다.”
 
  ― 어느 정도로 심각합니까.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1950~2015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83억t의 플라스틱이 사용됐고, 63억t 이상이 쓰레기로 폐기됐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플라스틱은 재활용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사실과 거리가 멉니다. 재활용률은 사실 한 자릿수에 불과해요. 고래 사체(死體) 안에서 6kg의 플라스틱 비닐봉지, 생수병 등이 나오기도 했잖아요. 사실 이런 건 이제 뉴스거리도 아닙니다. 만약 현재 추세대로라면 2040년에는 약 13억t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전 세계를 덮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도 건강을 위협하고 있고요.”
 
  ― 이번에 결실을 맺은 꽃가루 연구를 통해 플라스틱 대체재를 만들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꽃가루를 이용해 플라스틱 소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제 연구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즉 바이오 플라스틱(bioplastic)이라고 할 수 있죠. 저희 연구진은 다이아몬드처럼 아주 치밀하고 딱딱한 꽃가루를 플라스틱 소재와 비슷한 물질로 대체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결과를 내놨습니다. 꽃가루에서 유해할 수 있는 단백질을 제거하고 그 내막(內膜) 안의 유전물질도 함께 없애 속이 빈 꽃가루 알갱이를 만들어 플라스틱과 유사한 물질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활용 가능한 꽃가루는 해바라기, 옥수수, 동백, 아카시아 등 매우 다양합니다. 석유화학 물질에 비해 친환경인 것은 물론 재료비도 저렴하죠.”
 
  ― 친환경적인 건 알겠는데 경제성은 어떤지 의문입니다.
 
  “경제성도 당연히 높죠. 일단 소스(source)가 무궁무진하잖아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알레르기의 주범인 식물의 꽃가루를 사용하니까요. 더구나 가격 면에서도 기존 플라스틱 소재보다 5~10배 이상 저렴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을 대량 생산한다면 꽃가루를 이용한 대체 플라스틱의 유용성은 상상을 초월하지 않겠습니까?”
 
  ― 앞서 말한 LNP를 이용한 차세대 약물전달시스템을 개발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LNP 기술은 mRNA 백신을 우리 몸에 주사해 항체 생성을 유도하기까지 다양한 신체 환경에도 안정적으로 물질이 유지될 수 있도록 보호하는 약물전달시스템 기술입니다. 핵심은 인공세포막(lipid bilayer)이죠. 약물이나 영양소를 인공세포막으로 감싸 체내에서 안정적으로 전달·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입니다. 인공세포막을 약병(藥甁)이나 주사기에 도포하면 약물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 이 기술의 장점은 뭡니까.
 
  “계란 및 콩에서 추출된 지질(lipid)을 사용해 인공세포막을 제조하는 것이라 인체에 무해하고 생체 적합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 코로나19 백신과 어떻게 접목할 수 있습니까.
 
  “화이자나 모더나가 개발한 mRNA 백신 기술의 핵심이 약물전달시스템인데, 저희가 개발한 인공세포막을 이용한 LNP 기술을 이용하면 약물 전달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우리는 이 기술을 특허 출원함과 동시에 국내외 제약사와 공동 연구를 통해 mRNA 백신 개발을 우선적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 곤충 연구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것도 꽃가루와 마찬가지로 지속가능성의 범주에 드는 연구 분야입니다. 연구 전 단계인 기획을 2년 동안 끝내고 곧 실증에 들어갈 것입니다. 환경오염의 주범 중 하나가 가축이란 거 알고 계십니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1배나 더 지구온난화에 악영향을 줍니다. 따라서 반추동물 대신 곤충을 식용(食用)으로 활용하면 훌륭한 단백질 대체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곤충에서 얻을 수 있는 엄청난 부가가치가 결과적으로 인류를, 지구를 구할지도 모릅니다.”
 
  ― 저로선 잘 와닿지 않습니다.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에요. 지금도 활발히 연구가 이뤄지는 분야니까요. 저는 이걸 ‘크로스디멘션 기술’이라고 부릅니다. 기존의 기술들을 융합하고, 버려지는 혹은 잉여 생산물에서 신소재를 만들어 획기적인 부가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이 크로스디멘션 기술이라고 저 나름대로 정의(定義)하고 있습니다. 우리 생태계를 원점에서 다시 살펴보고 연구 방법 역시 새롭게 설계할 필요가 있어요. 거기서 의외의 결과가 도출될 수 있으니까요.”
 
 
  ‘one of them’이 되느냐, ‘unique’ 함을 갖느냐?
 

  조남준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토목공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아키텍트(architect·건축가)란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 학생들은 미국 대학, 그것도 미국 동부 명문이라 불리는 아이비리그(IVY League) 대학에만 관심이 많아요. 거길 졸업하면 무슨 가치가 있나요? 저는 학생들에게 자신만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건축가가 돼라’는 뜻에서 아키텍트란 말을 강조합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스토리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누구나 다 똑같은 건 이제 의미가 없어요. ‘원 오브 뎀(one of them·그들 중 하나)이 될래, 유니크(unique·독특함) 함을 가질래?’ 한국 사회가 깊이 생각해볼 화두(話頭)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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