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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玉器 연구로 韓민족 숨결 찾는 구본진 변호사

中 요하의 韓민족 문명은 황하·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앞서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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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족 뿌리인 요하문명은 황하문명보다 앞선 세계의 새로운 문명”
⊙ 곰이 홍산문화(BC 4500년경)에서 가장 숭배되는 동물… 단군신화의 곰 토템
⊙ “상상 속 동물인 용은 곰, 봉황은 한국 고유종인 긴꼬리닭이 모델”
⊙ 가수 조영남의 代作 사건을 무죄로 이끌어

具本鎭
1965년생. 서울대 법대 졸업, 同대학원 박사(지적재산권법 전공), 서울대 공대 최고산업전략과정 수료 / 사법연수원 20기, 육군 법무관,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역임 / 저서 《필적은 안다》 《어린아이 한국인》《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한민족과 홍산문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장과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을 지낸 구본진(具本鎭·55) 변호사는 조직폭력·마약·살인 사건 같은 강력범죄를 주로 담당한 검사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20대부터 돌도끼, 돌칼, 토기 같은 고대 유물을 한두 점 수집하더니 대구지검 검사 때는 독립운동가 친필 수집에 흥미를 느꼈다. 전국 각지에서 항일운동가 400여 명의 글 600여 점과 친일파 150여 명의 글 400여 점 등을 수집・분석한 일도 있다.
 
  그러다 신채호·박은식·정인보 등이 심혈을 기울였던 한국 고대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15년 검찰을 떠난 뒤로는, 아예 본격적으로 한(韓)민족 최초의 나라 고조선(역사학계는 고조선 건국을 기원전 2333년으로 본다) 이전(기원전 4500년경~기원전 3000년경)의 한민족 흔적을 찾아다니고 있다. ‘대단하다’는 단어로 뭉뚱그리기에는 벅찬, 그 안에 어마어마한 뭔가가 있을 것 같은 사람이다.
 
  최근 구 변호사는 조수를 이용해 그림을 완성・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른바 대작(代作) 논란을 일으켰던 가수 조영남 사건의 변론을 맡았다. 조씨에 대한 비난여론이 높았지만 끝내 무죄 판결을 끌어냈다.
 
  구본진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미술법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영남씨가 대한민국의 수많은 변호사 중에서 그를 택한 이유일지 모른다. 검사 특유의 날카로운 분석과 예리한 증거수집 능력, 미술품 감정가로서의 안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까닭이리라.
 
  그는 ‘한국요하문명연구소 소장’이라는 직함도 있다. 요하(遼河), 즉 랴오허강은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의 남부 평원을 관류하는 강을 말한다. 길이가 1400km로 허베이(河北)성, 랴오닝(遼寧)성, 지린(吉林)성,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를 두루 아우르며 흘러간다. 바로 한민족의 뿌리가 산재된 공간이다.
 
  학계에서는 고조선이 일종의 도시국가에서 출발한 것으로 추정한다. 출발은 미약했으나 점차 인접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하면서 만주와 중국 내륙 일부, 한반도 북부를 아우르는 큰 나라로 성장했으리라 보고 있다. 따라서 요하 주변은 중국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고조선과 고조선 이전의 한국인이 살던 한민족의 공간이다.
 
  기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지난 7월 23일,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구 변호사를 만났다. 그에게 요하문명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들었다.
 
 
  “玉器는 祭器로 추정”
 
홍산옥기 중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얼굴상. 왕과 같은 특별한 사람, 조상 또는 신을 형상화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구본진 변호사는 요하(랴오허)문명에 완전 꽂혀 있다. 그는 “(요하문명이) 화하족(華夏族)이 창조한 중원의 황하문명보다 더 오래되었고,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문명보다 편년이 더 올라가는 문명”이라고 주장한다. ‘국뽕’ 같은 주장이지만 근거가 구체적이고 말투가 진지하다. “또 요하문명은 요하 일대의 신석기문화를 넘어선 세계의 새로운 문명”이라는 주장을 편다. 거대한 요하문명 중에서 옥기(玉器)에 홀딱 반했다고 고백한다.
 
  이 옥기를 알기 위해서는 ‘홍산문화(紅山文化)’를 이해해야 한다. 중국 네이멍구 츠펑시(赤峰市)의 ‘홍산(중국어로 훙산)’을 중심으로 한 요서(遼西) 지역에서 생성된 신석기시대 위주의 문화집합체를 홍산문화라 부른다. 이 명칭은 중국의 역사학자이자 고고학자인 인다(尹達)가 처음 붙였다.
 
  “좁은 의미의 홍산문화는 네이멍구와 랴오닝성 접경 지역인 츠펑(赤峰), 차오양(朝陽), 링위안(陵源), 카쭤(喀左), 젠핑(建平) 등을 중심으로 분포된, 기원전 4500년에서 기원전 3000년 전 문화집합체입니다.
 
  홍산문화의 근거지는 1906년 일본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가 처음 발견했지만, 1980년대 들어 랴오닝성의 동산취(東山嘴), 우하량(牛河梁) 등지에서 본격적인 발굴이 이뤄지면서 주목받게 되었어요. 현재까지 확인된 유적지가 1200곳이 넘어요.”
 
  “발굴 성과와 추이 등을 감안하면 홍산문화의 시기, 분포, 범위, 유물 등이 지금 알려진 것보다 훨씬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구 변호사는 홍산문화의 옥기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기자에게 옥기 몇 점을 직접 보여주었다. 놀라웠다. 수천 년 전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손끝이 떨려왔다. 고대 국가에서 옥기는 최고로 귀한 물건이었으리라. 생산력의 수단이나 무기와 관련 깊은 석기(石器)와는 질적으로 다른 “제기(祭器) 또는 예기(禮器)로 쓰였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옥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말하는 ‘아름다운 돌’의 총칭이죠. 옥기를 만들기 위해선 옥재의 ‘선별→ 설계 → 개료(원석에서 불순물 제거) → 누공(원석을 조형화) → 연마’의 공정이 필요합니다. 홍산의 옥기들은 이러한 일련의 공정을 하나하나 거친 것으로 보입니다.”
 
 
  남성상, 여성상, 반인반수상, 봉황, 용, 곰 형상
 
반인반수상. 크고 정교한 반인반수상에는 사격자무늬가 새겨 있는 경우가 많다.
  홍산의 옥기들은 무덤의 부장품으로 발견되고 있다. 즉 부장품(副葬品) 유물 중 옥기 이외의 유물은 없다. 다시 말해 옥기만을 부장했다. 왜 그랬을까.
 
  “옥은 장식으로서 예술적 가치 이외에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었습니다. 영생을 기원하는 종교적인 의미도 있다고 보입니다. 변하지 않는 성질을 지닌 옥을 통해 영생불멸의 생각을 갖지 않았을까요?”
 
  “옥기의 출현은 원시 씨족사회에서 문명이 싹트는 국가로의 이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현상”이라는 게 구 변호사의 생각이다. 옥만이 무덤 속에 묻힐 수 있다는 의미는 옥이 신(神)과 통하는 ‘유일한’ 도구였으리라.
 
  홍산문화에 쓰인 옥들은 종류가 다양한데 대체로 연한 재질이 많다고 한다. 반면 재질과 색상이 고급스럽다. 그는 “많은 재료(옥)가 랴오닝성 슈옌(岫岩)에서 수입됐다는 것이 주류의 학설”이라고 설명한다.
 
  옥 색깔은 녹색 계통이 많다. 흰색, 노란색, 파란색, 주홍색, 붉은색, 갈색, 검은색도 있다. 옥은 시간이 꽤 흘러도 색이 안 바래는데 홍산옥기 중에는 변색된 경우가 많다. “5000년 가까이 땅속에 묻혀 있던 탓에 크고 작은 색상의 변화가 일어난” 까닭이다.
 
  “주로 강한 옥이 색상의 변화가 적고 무른 옥은 변화가 많습니다. 두 개의 쌍으로 된 옥기가 같은 장소에서 발견된 경우도 색상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오랜 시간에 따른 미묘한 색의 변화가 그 어떤 예술품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움과 신비감을 느끼게 하죠.”
 
  옥기의 형태는 더 놀랍다. 남성상, 여성상, 사람 얼굴의 신상과 반인반수상, 동물신, 봉황, 용, 곰 등 다양하다. 그런데 옥기가 크든 작든 균형이 잡혀 있고 디자인이나 제작기법이 뛰어나다. 전문적인 장인(匠人)의 손길을 거쳤음이 틀림없다.
 
  크기는 대개 20cm 이하다. 30cm를 넘는 경우는 드물다. 현대에서도 20cm 넘는 옥기는 대작(大作)으로 간주한다. 그만큼 옥이 비싸기 때문이다. 구 변호사는 “중요한 옥기일수록 더 크거나 품질이 좋은 옥을 사용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떤 크기든 홍산 옥기에는 품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요하문명은 여성 우위의 사회
 
홍산옥기의 여성상.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당시 여성이 큰 권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홍산 옥기 중에는 ‘얼굴상’이 가장 많다. 눈, 코, 입의 모양이나 크기가 서로 다르다. 웃는 모습도 있고 굳은 표정, 모자 쓴 형상도 있다.
 
  어떤 얼굴상은 눈이 크고 둥글다. 또 코는 긴 사다리꼴, 입은 크게 벌리고 있다. 옥에 새겨진 선들이 모두 굵고 깨끗하다. 구 변호사는 “새겨진 얼굴은 왕과 같이 특별한 사람, 조상 또는 신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람의 몸 전체를 표현한 전신상도 옥기에서 발견된다. 손을 모으고 경건하게 서 있는 사람 형태의 길고 얇은 조각이다. 눈을 감고 있고 어깨가 좁으며 가슴 한가운데가 솟아올라 있다. 그는 “신뿐만 아니라 조상과 같은 사람도 숭배의 대상이었다. 일부 전신상은 조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홍산 옥기는 당시 여성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커다랗고 늘어진 유방, 불룩 나온 배가 특징이다. ‘다산(多産)’과 ‘풍요’의 상징처럼 보인다. 구 변호사는 “발견된 여성상 중 일부는 지금까지 확인된 홍산 옥기 중에서 가장 무겁고(5866g) 크기도 최상급(높이 26.1cm, 너비 18.8cm)인데다가 위풍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며 “그 존재만으로 당시 여성들의 위상이나 역할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고 강조한다.
 
  “홍산 옥기에 등장하는 여성상을 봤을 때 당시 사회가 여성 우위였을 가능성이 높아요. 위풍당당한 여성상을 조각했다는 사실은 여성이 큰 권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홍산 옥기에서 여성상의 키나 체격이 남성상보다 더 크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겁니다.
 
  심지어 남성상과 여성상을 한 쌍으로 조각하면서 여성상의 머리에만 사격자무늬를 그려 넣었어요. 한 쌍의 봉황 조각상도 암컷처럼 보이는 조각상에 사격자무늬가 있어요. 따라서 여성상에만 사격자무늬를 새긴 것은 여성이 중요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사격자무늬는 한반도에서 발견된 빗살무늬토기 무늬와 비슷한 모양이다. 악보에서 쓰는 올림표(#)와 닮았다. 구 변호사는 “홍산 옥기에서 발견되는 거의 유일한 무늬”인 사격자무늬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를 거쳐 고조선, 부여, 신라, 가야, 고구려, 백제, 통일신라까지 전승되었다”고 한다.
 
  “고대에서 무늬는 부족 또는 종족의 표시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어요. 사격자무늬는 ‘곰’ 또는 ‘곰족(族)’ ‘곰 토템’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설가 최인호 선생이 《왕도의 비밀》에서 찾으려고 했던 ‘#’ 무늬는 홍산문화를 비롯한 요하문명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이라 확신합니다.”
 
 
  곰 형상의 옥기가 많아
 
이 조각은 용이 아니라 알파벳 C자 형태의 곰 형상으로 추정한다.
  홍산 옥기를 살펴보면 신으로 보이는 사람 얼굴의 신상, 반인반수상, 동물신 조각도 있다.
 
  신상은 사람의 몸에 사람의 얼굴과 큰 눈, 높은 뿔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얼굴에 뿔을 가진 신이 그리스 신화에도 나오는데, “사람 얼굴을 한 신상은 그 시대 사람들이 신인일체의 사상을 가졌거나, 최소한 사람을 중시하는 사상이 있었음을 알려준다”는 것이 구 변호사의 해석이다.
 
  특별히 크고 아름다운 모습의 반인반수상, 동물신 조각은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마치 외계인 형상처럼 보인다고 할까. 특히 사격자무늬가 발견된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구 변호사는 “홍산의 옥기를 보다 보면 곰 조각이 많은데, 곰 조각들은 크고 두꺼우며 품질이 좋은 옥을 사용한 경우가 많다”는 점에 주목한다. 곰이 홍산문화에서 가장 숭배되던 동물임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동물신 옥기가 대체로 곰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북반구에서 나타나는 곰 신화의 기본 모티브 중 하나는 인간과 곰의 결합이다.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도 곰이 등장한다. 쑥 한 줌과 마늘 20알을 먹고 21일을 버틴 곰이 웅녀(熊女)가 되어 환웅과 결혼해 낳은 아들이 바로 단군왕검이다. 그가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고 했다.
 
  홍산 옥기 발굴 중 알파벳 ‘C’자 형태의 몸체에 몸통이 두껍고 귀가 있으며 동물의 머리를 가진 옥기가 여럿 출토됐는데, 학자들이 ‘돼지용(돼지머리를 한 용)’ ‘곰용’ ‘이리용’ 등으로 명명했다. 그러나 구 변호사는 “용이 아니라 곰”이라 주장한다.
 
  “후대 용 조각에서 나타난 용은 주둥이가 길고 휘날리는 머리채가 있으며 귀가 없지만, 홍산 옥기에서 나타난 ‘C형 용’은 둥근 귀가 있고 입 부근에 주름이 있으며 둥근 형태의 몸을 가지고 있어요. 또 발끝 부분을 안쪽으로 오므리고 있어서 곰과 닮았습니다. 곰이 웅크리고 있으면 둥글게 보이는 것이죠.”
 
  곰의 형태는 ‘C형 곰’ 외에도 ‘Y형 곰’(곰이 서 있는 모습)도 발견된다. 또 곰 얼굴이 조각된 원통형 옥기도 있다.
 
 
  봉황은 한국의 고유종인 ‘긴꼬리닭’ 모델로 만들어
 
한 쌍의 봉황 옥기(위쪽). 아래 사진은 한국 고유종인 긴꼬리닭. 홍산 옥기의 봉황 모습과 유사하다.
  용은 상상의 동물이다. 실제 동물과 상상 속 동물들의 능력과 장점을 취합하여 만든 동물이 용이다. “용은 영험한 동물로서 영수(靈獸) 중에서도 특히 귀하게” 여겨져 용이 모습을 드러내면 세상이 크게 변할 전조라고 옛 조상들은 믿었다.
 
  봉황 역시 상상의 동물이다. 동아시아 신화에서 발견된 다른 모든 새를 다스리는 새가 봉황이다. 봉황은 신화 속의 새로서 ‘지혜’와 ‘고귀함’을 상징한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 용과 봉황은 요하문명에서 처음 탄생했다. “용과 봉황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홍산문화의 시기이며 그중에서도 옥기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특히 “용은 곰을 기초로 만들었고, 봉황은 한국의 고유종인 긴꼬리닭을 모델로 만들었다”고 구 변호사는 주장한다. 그의 말이다.
 
  “긴꼬리닭은 상고시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고유 특산품입니다. 긴꼬리닭은 머리 위로 돌출한 벼슬, 나누어진 꼬리, 부리 밑의 고기수염, 열 개의 주 날개(主翼) 등이 특징입니다. 한국 토종닭 복원에 일생을 바친 이희훈이 복원한 긴꼬리닭의 형상과 닮았어요.”
 
  경북 경주에는 박혁거세의 왕비 알영의 출생과 관련한 우물(알영정)이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알영정 가에 계룡이 나타나 왼쪽 갈비에서 계집아이 하나를 낳았다”고 한다. 구 변호사의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계룡(鷄龍)’은 닭과 용이 합해진 모습을 말하니 봉황으로 보아야 합니다. 고대 한민족의 계승에 노력했던 신라 시조의 탄생신화에 봉황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고대 한국의 토종인 긴꼬리닭을 보고 봉황을 만들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고대 한민족과 홍산문화의 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구 변호사는 자신의 이 같은 주장을 담은 책 《한민족과 홍산문화》를 최근 펴냈다. 이 책의 부제는 ‘홍산문화 옥기에서 찾은 한민족의 기원’이다. 이 흥미진진한 책의 결론을 압축해 소개하면 이렇다.
 
  〈… 동아시아에서 용과 봉황의 최초 출현 시기는 요하문명이다. 옥기 C형 용과 C형 곰을 비교해 보면 곰의 형상을 기초로 해서 용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략) 홍산문화에서 한민족의 토템 대상인 곰을 모델로 해서 용이 만들어졌고, 한국의 고유종인 긴꼬리닭을 모델로 해서 봉황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홍산문화와 고대 한민족이 관련이 있다는 중요한 증거이다. …〉
 
  구 변호사는 “고고자료에 대한 이해는 역사적 맥락에서만 가능하다”며 “앞으로 고고학, 역사학뿐 아니라 고생물학, 기후학 등 다각도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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