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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00만 靑春의 유튜버’로 돌아온 가수 권인하

“환갑에 아이돌 된 ‘천둥호랑이’… 대학축제서도 ‘포효’하겠다!”

글 : 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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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니’ ‘180도’ ‘가을안부’ 등 인기곡 리메이크 동영상으로 화제
⊙ ‘호랑이 창법’ ‘천둥 같은 高音’으로 주목… 구독자만 17만 명
⊙ “‘가수가 못 부를 曲 없다’ 생각하니 권인하類 노래 되더라”
⊙ “3월 콘서트 예매 10~20대가 절반 이상, 가수로서 큰 축복”

權仁夏
1959년 충북 청주 출생. 배재고·경희대 졸업 / 1984년 가수 이광조의 ‘사랑을 잃어버린 나’ 작곡으로 작곡가 데뷔. 1986년 록밴드 ‘우리’의 보컬 활동으로 가수 데뷔. 대표곡 ‘비 오는 날의 수채화’ ‘계절이 음악처럼 흐를 때’ ‘사랑이 사랑을’ ‘사랑 그리고 우린’ 등 / 드라마 〈창 밖에는 태양이 빛났다〉(MBC) 〈사랑비〉(KBS) 등 출연 / 신촌인터내셔널 대표이사, 창원대 실용음악과 겸임교수 등 역임
사진=조현호
  ‘비 오는 날의 수채화’로 유명한 로커 권인하(權仁夏·60)가 ‘유튜버’로 돌아왔다. 구독자만 17만 명에, 올리는 동영상마다 조회수가 100만 회를 넘는다. 윤종신의 ‘좋니’, 닐로의 ‘지나오다’, 먼데이키즈의 ‘가을안부’, 엠씨더맥스의 ‘넘쳐흘러’ 등 후배 가수들의 인기곡을 리메이크해 ‘권인하 버전’으로 소화한 동영상들이 주목을 받았다. 원곡의 리듬을 자유자재로 타고 넘는 특유의 창법부터, 클라이맥스 단계에서 진성(眞聲)으로 끌어올린 강렬한 고음 등이 20~30대 청년 팬들의 시선을 끌었다. 네티즌들은 ‘네 노래 내 노래’ 창법이라는 등 애정 어린 농담을 던지며 감탄했다.
 
  시작은 걸그룹 ‘소녀시대’ 출신의 가수 태연의 곡 ‘만약에’를 부르면서였다. 2015년 EBS 음악 프로그램 〈SPACE 공감〉에서 미니 콘서트를 연 권인하는 당시 ‘만약에’를 앙코르 곡으로 불렀지만 본방송에는 나가지 못했다. 제작진이 그 클립 영상을 유튜브에 게재하면서부터 조회수가 수백만 회를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이 일었다. 그 뒤로 그는 기존 음악 프로는 물론, MBC 〈복면가왕〉, KBS 〈불후의 명곡〉 등 경연(競演) 프로에도 나가 기염을 토했다. 과거 후배 가수 박효신과 듀엣으로 부른 ‘그것만이 내 세상’ 영상까지 재조명되면서, 대중은 권인하라는 이름을 ‘천둥호랑이’ ‘국민 부장님’으로 되새겼다.
 
  지난 2월 1일,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녹음실에서 권인하를 만났다. 가수 노라조의 ‘형’이라는 노래를 한창 연습 중이었다. “더 울어라, 젊은 인생아, 져도 괜찮아, 넘어지면 어~때! 살다 보면, 살아가다 보면 웃고 떠들며 이날을 넌 추억할 테니….”
 
 
  “청년들이 들어본 적 없는 소리로 노래해 인기”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가수 권인하는 윤종신의 ‘좋니’, 닐로의 ‘지나오다’, 엠씨더맥스의 ‘넘쳐흘러’ 등 후배들의 인기곡을 리메이크한 동영상을 올려 젊은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 방금 부른 노래도 팬들이 유튜브에서 신청한 곡인가요.
 
  “예, 많이 신청하더라고요. 이쯤이면 ‘한번 불러줘야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아들놈도 ‘이 정도 신청이면 해줘야 해’ 하고…. 보시다시피 우리 작업실이 화려하지 않아요. 잘나가는 애들은 돈 많이 들여서 폼 나게도 하던데, 그래도 그런대로 괜찮죠?”
 
  ― 올해로 환갑(還甲)인데 유튜브에 매주 2~3개씩 리메이크 곡을 녹음해서 올리는 게 힘들지 않나요.
 
  “그래서 운동을 많이 해요. 주로 자전거 타고 턱걸이 하고요, 헬스장 가서 근지구력 운동 좀 하고…. 요즘 젊은 친구들 노래는 (키가) 너무 높고 고음(부분)이 많아서, 체력적으로 바탕이 안 되면 소화를 끝까지 못 하죠. 글쎄, 제 동갑들이 어느새 사회에서 정년퇴직하는 때가 됐더라고요. KBS만 해도 제가 DJ 할 때 만난 PD들이 다 은퇴 단계에 왔죠.”
 
  ― 유튜브에 올리는 동영상마다 조회수가 기본 100만 회를 넘습니다. 댓글을 보면 청년층이 많은 것 같은데, 요즘 이들이 왜 ‘권인하 음악’을 찾는다고 보나요.
 
  “젊은이들이 저한테 환호하는 이유는 먼저, 그들이 잘 ‘들어보지 못한 소리’로 노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세대에게 익숙한 소리는 (목청을) 조금 틔워서 내는 소리라 조금 얇은 편입니다. 반면에 저는 성대를 크게 열고 때리죠. 열고 때리는 소리는 숨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옥타브가) 더 뛰어요. 둘째는 중음(中音)대에서 소리의 강약 배분을 잘 하니까 섬세한 표현이 가능해요. 가사가 갖고 있는 느낌을 좀 더 잘 전달해 줄 수 있는 거죠. 사실 이수(엠씨더맥스), 효신(박효신)이 등 정말 노래 잘하는 젊은 친구들이 요새 얼마나 많나요. 근데 제 소리는 그들보다 투박하지만 고음에서는 더 거칠고 파워풀하니까 (젊은 청중이) ‘어, 뭐야. 저 할아버지 왜 저래?’ 하면서 약간 생소하지만 매력을 느끼는 거죠.”
 
 
  “후배 노래 부른다는 부끄러움? 진작 버렸다”
 
권인하는 “2014년에 노래를 다시 시작하면서부터 ‘뭐든 하자’고 마음먹었다”면서 “그전까지는 ‘내 노래가 첫 번째고 후배들 것까지는 부르기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의 벽을 허물고 나니까 좋은 곡들이 많이 보였다. 이제부터는 ‘내가 부를 수 있느냐’가 문제지, 부를 수 있다면 누구의 노래든 상관없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조현호
  ― 젊은 후배 가수들의 노래를 ‘리메이크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뭡니까.
 
  “2015년 〈복면가왕〉에 출연하면서부터 생각을 바꿨어요. ‘가수 인생에서 꼭 내 노래만 불러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나, 좋은 곡들이 세상에 널려 있는데 그걸 골라서 내 스타일로 부르면 ‘권인하류(類)’가 되는 거지.’ (〈복면가왕〉) 무대에 나가려면 어차피 내 존재를 숨기고 다른 가수들 노래를 불러야 하니까 ‘그래, 이것도 재밌겠다’ 생각했죠. 그때 부른 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태연의 ‘만약에’입니다. 원래 건모(김건모)의 ‘미안해요’도 3라운드에 부르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상대 가수에게) 지는 바람에 못 불렀죠. 연습한 게 아까워서 나중에 〈열린음악회〉에서 불렀는데 그 영상도 조회수가 많이 나왔어요.”
 
  ― 까마득한 선배가 후배들 인기곡을 부른다는 게 조금 부끄러워서 주저하지는 않았나요.
 
  “그런 건 진작 버렸죠. 2014년에 강인원 형 말 듣고 신곡 ‘못난 이 사랑’ 내고, 노래를 다시 시작하면서부터 ‘뭐든 하자’고 마음먹었어요. 그전까지는 ‘내 노래가 첫 번째고, 우리 시대 노래까지는 어떻게 불러볼 수 있겠다’는 마인드였어요. ‘어휴, 요즘 애들 것까지 어떻게 불러?’ 하며 딱 마음을 닫아놓고 살았죠. 그 벽을 허물고 나니까 부를 만한 좋은 곡이 널렸더라고요. 고르기만 하면 되더라고요. ‘톰 존스(Tom Jones), 레이 찰스(Ray Charles)처럼 내가 좋아한 팝가수들도 다 리메이크의 대가 아니었나? 내가 부를 수 있느냐가 문제지, 부를 수 있다면 누구의 노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젊은 친구들은 좋은 옛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부르니까, (반대로) 나는 요즘 노래를 부르면 되겠다’ 했죠. 어렵지만 새롭더라고요. ‘야, 이거 공부가 되는구나’ 하고 느꼈죠.”
 
  ― 자신만의 리메이크 원칙이 있습니까.
 
  “모 경연 프로를 보면 원곡의 코드 자체를, 그러니까 ‘뼈대’를 비틀어서 심하게 편곡하는 경우가 있어요. 원래 음악 형태가 동그랗게 매끄러웠다면, 이걸 바로크 형식으로 삐죽삐죽하게 바꿔놓으니까 되레 원곡만 못하죠. 클래식에는 원곡을 함부로 바꾸는 작업이 별로 없다고 해요. 지휘자의 느낌에 따라서 뉘앙스나 강약의 밸런스는 바꿀 수 있지만 멜로디 자체는 뒤집지 않죠. 제 리메이크는 그런 부작용을 줄이고 노래에 ‘여백’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청중은 노래가 남겨놓은 여백에 젖어서, 낭만을 느끼면서 가수와 호흡하고 자신만의 어떤 장면을 떠올리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제 리메이크가) 원곡을 흉내내는 ‘커버 버전’은 아닙니다. 같은 멜로디라도 표현을 다르게 할 수 있어요. 몇 군데 박자라든지 음이라든지, 내 ‘스케일’대로 바꿔서 부르는 게 진정한 리메이크죠.”
 
 
  “‘좋니’ 리메이크 뜨니까 (윤)종신이도 고마워하더라”
 

  ― 태연의 ‘만약에’ 리메이크 영상이 흥행하면서, 박효신씨와 함께 부른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 영상도 재조명됐습니다. 거기서 ‘천둥호랑이’라는 별명이 처음 등장했죠.
 
  “그렇습니다. ‘그것만이 내 세상’ 영상 찍을 때가 2000년대 초반인 것 같아요. SBS에서 녹화했는데, 어느 날 보니까 유튜브에 영상이 뜨더라고요. 젊은 친구들이 그 영상을 따다가 소셜미디어에 막 공유하는 거예요. ‘MR(반주) 제거 소름 돋는 라이브’ 이런 커뮤니티들이 있는데 거기서 이 노래가 붐을 일으켰죠. 그때 효신이는 ‘소몰이 창법’을 구사한 반면, 저는 록의 느낌으로 확 갖다 쏟아부었죠. 그 후로 (다른 가수들과 비교하는) 편집 영상들이 유튜브에 떠돌면서, 젊은이들이 제가 상대적으로 더 센 소리를 가졌다고 인정해주기 시작했죠.”
 
  ― 그 뒤로 유튜브에 ‘권인하’ 채널을 개설하고 기존 공연 영상을 조금씩 올리다가, 지금은 매주 리메이크 영상까지 제작하게 됐습니다. 유튜브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유가 있습니까.
 
  “제가 유튜브에 올라간 영상을 통해 다시 주목받았기 때문이죠. 이참에 저도 채널 하나 만들어서 기존 무대 영상을 모아놓기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랬는데, 제 프로듀서 역할을 하는 우리 아들이 언젠가 ‘니즈(Needs)’ 얘기를 하더라고요. ‘아빠, 내가 회사에서 배운 건 딱 하나야. 니즈. 고객의 요구가 뭔지, 아빠에게 환호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 어떤 노래를 원하는지 딱 캐치해야 해’ 하더군요. 그때부터 아들 얘기 들으면서 젊은 친구들 노래를 연습하기 시작했죠.”
 
  ― 리메이크 곡이 뜰 때, 원곡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노래 ‘지나오다’의 가수) 닐로는 (리메이크 영상에) ‘선배님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라고 댓글 달고, (노래 ‘좋니’의 가수) 종신(윤종신)이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인하 형님, 고맙습니다’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페이스북에서 종신이에게 ‘야, 종신아. 너한테 얘기 안 하고 불러봤는데 괜찮니?’ 하니까 연신 고맙다고 전화까지 왔어요. 오랜만에 통화하면서 ‘언제 한번 소주 한 잔 하자’ 하니까, ‘형이 나 소주 사준 지가 벌써 20년 됐어’ 그러더군요.”
 
 
  “고음 잘 내는 秘法은 없다… 오로지 연습뿐”
 
2000년대 초반 후배 가수 박효신과 듀엣으로 부른 ‘그것만이 내 세상’부터 ‘좋니’(윤종신)와 ‘지나오다’(닐로) 등 ‘권인하式 리메이크’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수백만 조회수를 달성하는 등 화제가 됐다. 사진=유튜브 캡처
  ― ‘노래를 듣다 팬티를 갈아입었다’ ‘권인하가 부르면 벤의 노래 180도가 1800도로 들린다’는 등, 고음에 놀란 젊은 팬들이 유머러스한 댓글을 달기도 합니다. 비결이 뭡니까.
 
  “어떤 친구는 제게 ‘고혈압 올 수 있다. (녹음 때) 한 번에 크게 소리 내지 말라’는 걱정까지 해요. 많이들 놀라죠. ‘저 나이에 어떻게 목을 관리하는지…’ 하며. 사실 노래 부른다는 게 연구 안 하고는 안 돼요. 지금의 체력으로 극점(極點)에 도달하는 소리를 뽑아내려면 계속 소리를 내보고 (한계점을) 체크해야 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호흡이에요. 우리가 (소리를 낼 때) 숨을 눌러준다고 하죠? 숨을 먹을 수 있는 양이 컵 한 개 정도라면, 여기에 뚜껑을 하나 놓고 딱 눌렀을 때 어떤 형태로든 구멍을 뚫어놓으면 거기로 숨이 올라올 거 아닙니까. 중음과 저음을 낼 때는 큰 구멍으로 숨을 내보내고, 고음일 때는 구멍을 조여서 숨이 세게 나오게 하는 거죠.”
 
  ― 말로만 들어서는 따라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운동부터 해야죠. 몸의 근육이 같이 힘을 줘서 (숨을) 눌러줘야 하거든요. 그 말은 결국 ‘누군가를 가르쳐서 노래를 잘 부르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다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지금 기자에게 호흡법을 가르쳐 줬지만, 할 수 있겠어요? 사람마다 몸 안에서 소리를 내는 방법과 호흡법이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성대도 그렇고. 각자 자율로 근육을 움직여서 소리를 내는데 그걸 어떻게 가르칩니까. 예를 들어 선생(보컬트레이너)은 ‘너는 고음이 잘 나오니까 중음대에서 목을 조이지 말고, 열고 내는 소리를 해봐’라고 방향 제시만 할 수 있을 뿐이죠.”
 
  ―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는 왕도(王道)는 없다는 말이네요.
 
  “그러니까 오로지 ‘연습’만이 살길이에요.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한 곡을 지정해서 완벽하게 ‘카피’를 하는 거예요.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음계의 반음이나 한 음이 더 높은 곡을 골라서 그 노래의 호흡·박자, 소리의 크기까지 똑같이 흉내를 내보는 거죠. 한계가 느껴지는 대목을 소화해낼 때까지…. 물론 그 답을 찾아내는 방법은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습니다.”
 
 
  “날 가수로 키워준 故 김현식, 생각날 때마다 노래 불렀다”
 
  ― 자신도 노래할 때 그렇게 노력합니까.
 
  “골프에 이런 말이 있어요. ‘하루 연습을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 안 하면 캐디가 알고, 사흘 안 하면 갤러리가 안다’고. 요즘 노래는 가사가 무척 많고 (멜로디도) 시작부터 끝까지가 다 달라요. 특히 가사를 외는 게 관건이에요. 노라조의 노래 ‘형’ 같은 경우 가사가 그렇게 많지 않아 다행이긴 한데…. 하루에 기본 서너 시간씩 부르고, 길게는 한 곡 녹음하는 데 8일까지 걸려봤어요. 엠씨더맥스의 노래 ‘넘쳐흘러’ 부를 때였죠. 그 덕분에 젊은 친구들은 가사를 자연스럽게 얘기로 푼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우리 시대에는 읊으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가사였는데, 요즘은 그냥 1인칭으로 상대에게 툭툭 던져주더군요.”
 
  ― 조회수가 많이 나와서 수익도 꽤 늘었을 것 같습니다.
 
  “수익은 별로 없어요. (한 동영상에) 광고가 붙으려면 길이가 12분 정도 돼야 해요. 중간광고를 넣는 것도 그래요. 노래를 부르는데 중간에 자를 수 있나요. 가능한 건 (영상 송출 시) 배너로 뜨는 광고를 넣는 것뿐인데… 어휴, 그거 해서 ‘떼부자’ 되는 것도 아니에요. 유튜브 채널은 제 노래를 젊은이들에게 알리고, 그들이 편하게 와서 짜증 안 나고 음악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삼으려 해요.”
 
  ― 고(故) 김현식의 노래를 부른 적이 많았습니다. 서로 친분이 깊었습니까.
 
  “리메이크할 때마다 현식이 형 노래는 꼭 넣으려고 했어요. 생각날 때마다 무대에서도 많이 불렀고요. 젊은 친구들이 부르면 그 맛이 안 나요. ‘그때 그 느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저니까요. 처음 현식이 형 봤을 때가 1984년도였는데, 서울스튜디오에서 ‘사랑했어요’를 녹음할 때예요. 제 고향 친구하고 서로 잘 아는 사이였죠. 그뒤로 계속 친하게 지냈어요. 1985~86년, 그때는 방배동 카페골목의 ‘시나브로’라는 카페에서 거의 매일 만나서 밥도 먹고 술도 마셨죠. 녹음실 오갈 때마다 제가 차에 태워서 다니고…. 인원이 형이 ‘비 오는 날의 수채화’를 저랑 듀엣으로 불러달라고 했을 때도, 현식이 형이 ‘재밌겠다’면서 절 많이 도와줬어요. 그때 형은 몸이 굉장히 안 좋을 때였어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이 형이 날 한번 키워주려고 오케이 한 거구나’ 하고 깨닫게 됐죠. 제가 가수로 살아갈 수 있는 날들을 만들어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영원한 숙제’ 音樂, 청년들과 풀어나갈 것”
 
  ― “2000년대 초부터 십수 년간 음악과 떨어져 있었습니다. 근 4년간 ‘유튜브’ 열풍을 타고 다시 마이크를 손에 쥔 기분이 어떻습니까.
 
  “그동안 개인 사업을 좀 했어요. 골프채 수입도 해보고, 인터넷 방송국에 스튜디오도 차리고, 미사리에 클럽도 열었어요. 물론 성공한 건 하나도 없었죠. 돈에 악착같았어야 했는데 음악만 하다 보니까 인정(人情)에 약했어요. 실수도 사건도 많았죠. 노래를 다시 부르니까 즐겁더라고요. ‘내가 젊을 때 얼마나 교만했던가’ 반성도 하게 됐죠. 뭐든지 전력투구해야 반응이 오더라고요. ‘그래, 세상이 이런 거구나. 이걸 오십 넘어서 깨닫다니….’ 인생, 많이 배웠습니다.”
 
  ― 3월에 콘서트를 연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습니까.
 
  “‘포효2’라는 제목으로 3월 22~24일 서울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콘서트를 엽니다. 너무 놀라운 게, 콘서트 티켓 예매 현황을 봤더니 10대가 5%, 20대가 56%, 30대가 25%였어요. 제가 환갑인데 콘서트 관객 중 30대 이하가 86%인 거예요. 이 얼마나 축복입니까. 게다가 그중에 한 장씩 사는 사람이 절반이 넘어요. 정말 ‘음악을 들으러’ 오는 거죠. 새 삶을 사는 것 같은 기쁨입니다. 그래서 올해 제 꿈은 ‘대학축제’ 무대에 서는 겁니다. 젊은이들이 모인 데 가서 노래를 불러보는 겁니다…. 이제 저한테 음악은 부(富)와 인기를 얻는 도구가 아닌 ‘영원한 숙제’입니다. 그 숙제를 함께 풀어나갈 젊은 친구들이 제 곁에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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