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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이모작 성공 스토리

軍 소장에서 비즈니스 코칭 전문가로 변신한 78세 현역 박창규 예비역 장군

그의 롤모델은 올해 100세가 된 철학자 김형석 선생

글 : 이근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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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경험한 군 리더십을 기업과 사회에 연결시키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
⊙ 한국군 최초 육군 소장과 공군 소장을 지내. 53세 예편 후 코칭에 발을 디뎌 한국인 최초 국제공인마스터 코치에 올라
⊙ 후학을 양성하면서 리더십 강사와 비즈니스 코치로 왕성하게 활동
⊙ 6000여 한국 코치들의 롤모델이면서 성공적인 인생 이모작의 표본으로 떠올라

朴昌奎
1941년 출생. 육군사관학교, 연세대 경영대학원, 숭실대 정보과학대학원 졸업 / 육군 방공포병여단장, 육군방공포병사령관, 공군방공포병사령관. 現 국민대 경영대학원 리더십 코칭 겸임교수. 한국인 최초 국제공인마스터코치(MCC) / 저서 《온자신감》 《임파워링 하라》외 다수
사진=이근미
  100세 시대를 맞아 인생이모작은 필수가 되었다. 50대 혹은 60대 초반에 은퇴를 한 뒤 남은 반평생 동안 할 일을 미리미리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1941년생인 박창규(朴昌奎) 코치는 매일 바쁘게 달리는 ‘78세 현역’이다. 1994년 2월 공군 소장으로 예편한 그는 은퇴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학교수, 국제인증 코치, 리더십 강사, 작가로 누구보다 바쁘게 달리고 있다.
 
  현재 국민대학교 경영대학원 리더십 코칭 겸임교수로 5년째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개인적으로 1년 과정인 코칭 MBA 과정과 영성코칭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정기적인 일 외에 특강과 코칭, 집필 활동으로 바쁘다. 그간 《온자신감》 《임파워링하라》를 냈으며 《코칭핵심역량》 《강팀장을 성장시킨 열 번의 코칭(가제)》을 곧 출간할 예정이다. 박창규 코치는 친구들로부터 “아직도 일하냐”는 질문을 늘 받는다고 한다.
 
  “젊은 시절부터 개인사업을 하던 두세 명을 제외하고 친구 가운데 제가 유일하게 활동을 하고 있어요. 아직도 일한다고 하면 다들 일할 수 있어서 좋겠다, 할 일이 있어 부럽다고 합니다.”
 
  박 코치는 53세에 공군 소장으로 예편하고 2년간 일 없이 지낸 경험이 있어 누구보다 그 심정을 잘 안다고 말했다. 1994년 2월, 29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왔을 때 갈 곳이 없었다고 한다.
 
  “전 정권까지 예비역 장군들은 공공기관이나 기업체에 다 취업을 했어요. 하지만 문민정부가 시작되면서 예비역 장성들은 아예 갈 곳이 없었어요. 현역 때는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했어요. 당시만 해도 휴대폰이 없어 쉬는 날조차 부대에서 멀리 가지 못하고 대기해야 하는 5분대기조로 살았죠. 힘들었지만 ‘전역한 뒤 국가에서 살길을 마련해 주니 현역 때 열심히 하라’는 말로 위안을 삼았어요. 그때는 그럴 줄 알았는데 예편하고 나니 전혀 딴판이었어요.”
 
  군 장성 출신을 기피하던 시절이라 마땅히 할 것도 갈 곳도 없었던 그는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에 심취해 정보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숭실대 정보과학대학원에 입학한 건 잘한 일이었으나 학과 선택이 문제였어요. 50대 중반의 군 출신으로서는 IT 분야가 힘들었고 나중에 활용도 못했어요. 생소한 학문을 하려니 젊은 친구들에게 밥 사 주면서 물어보고 부탁하느라 바빴죠. 당시 아들도 대학원생이었는데 아내가 두 대학원생 학비 대느라 금반지와 금목걸이까지 팔았어요.”
 
 
  질문을 통해 자신의 자원을 찾다
 
  심란해하는 그에게 필리핀 선교사였던 처남이 좀 쉬었다 가라며 바기오로 초청했다.
 
  “그곳에서 한 달간 지냈는데 아침에 골프치고 나면 할 일이 없어요. 집 뒤에 있는 소나무 숲에 가서 책을 읽거나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곤 했지요. ‘멍 때리는 시간’은 아주 중요해요. 멍 때리다가 ‘70세까지 일해야 하는데 앞으로 15년 동안 뭐 하지?’ 나 자신에게 질문을 되풀이했어요. 친구가 복덕방을 같이 하자며 놀면서 전화나 받으면 된다고도 했고, 배나무골 오리집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조카가 식당에 나와 좀 배우다가 한 군데를 맡아서 하라는 권유도 했어요. 해병대 나온 친구가 아파트 관리소장 자리를 찾아보자던 말도 생각났어요. 하지만 과연 내가 할 만한 것들인가? 이 질문을 해 보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겁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계속 던지며 생각에 잠겼다.
 
  “뭘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걸 작심이라고 합니다. 진짜 되고 싶은 마음이 속에서 몽올몽올 올라오는 것은 기심입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작심은 오래 못가요. 마음 밑바닥, 본질로부터 일어나는 기심이 중요해요. 진짜 원하는 걸 해야 고난을 이겨내고 지속할 힘이 생깁니다.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았고,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다가 인생을 마칠 것인가?’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앞으로 살아갈 날을 연결시킬 포인트는 어떤 걸까’ 이 질문을 계속했어요.”
 
  박 코치는 질문을 잘하면 길이 생긴다며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doing)’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being)’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묻고 점검하라고 권했다. 군대생활을 29년간 했고, 예편 후 대학원에 다니느라 바빴던 그는 필리핀에 머무는 동안 살면서 처음으로 한가한 시간을 가진 셈이다. 답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진 리소스(resource, 자원)가 떠올랐다고 한다.
 
  “그때까지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여단장, 육군 방공포병사령관, 공군 방공포병사령사령관, 월남 중대급 전투지휘관까지 주로 지휘관 생활을 했어요. 지휘관 생활은 리더십과 연결이 돼요. 사관학교 졸업하고 군 근무를 하면서 초등군사반, 고등군사반, 육군대학, 국방대학원까지 반드시 배우는 게 리더십이었어요. 리더십을 수천 시간 배우고 수천 시간 실습하면서 때로 실패도 하고 처벌도 받고 그랬어요. ‘그래, 맞아. 리더십이야’ 그걸로 귀결이 됐어요 ‘지금까지 쌓은 나의 특장점은 리더십이다, 죽을 때까지 리더십 전문가로 살아야겠다, 내가 경험한 군 리더십을 기업과 사회에 연결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그런 결심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죠.”
 
 
  육군에서 공군으로 轉軍
 
  육군사관학교 21기인 그는 중학교 때 이미 사관학교행을 결심했다.
 
  “6·25는 열 살밖에 안 되는 제게 많은 시련을 주었어요. 인민군을 피해 시골 골짜기로 피란을 갔지만 피할 수가 없었어요. 굴 파고 숨어 지내기도 했어요. 아무리 깊은 산골로 도망을 가도 거기까지 인민군이 들어왔어요. 피란을 가면서 죽은 사람을 많이 봤는데 정말 무서웠지요. 그때 막연하게 ‘내가 장군이 되어 전쟁을 막아야지. 전쟁이 나더라도 ‘전쟁 끝!’ 하고 외치면 전쟁이 끝날 거야’ 그런 생각을 했어요. 6·25 피란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초등학교 3, 4학년 때 꿀빵 장사, 아이스케키 장사를 했을 정도로 집안이 어려웠는데 중학교 때 선생님이 ‘사관학교 가면 학비가 공짜일 뿐만 아니라 돈도 주고 장군도 될 수 있다’고 하시는 거예요. 육군사관학교에 가서 장군이 되려면 무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유도를 시작해 3단을 땄어요. 사관학교에서 사범 역할을 하면서 동기들에게 유도를 가르쳤을 정도로 열심이었어요.”
 
  박 코치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면서 육군 방공포병사령관과 공군 방공포병사령관을 지낸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초기에는 육군에서 미사일부대를 운영했는데 1991년 7월 부대 전체가 공군으로 넘어가면서 전군(轉軍)하게 된 겁니다. 육군 방공포병사령관 재직 시 공군으로 전군을 명 받았어요. 그렇게 큰 규모의 부대가 전군하게 된 경우는 최초인 셈이죠. 그래서 육군 별 두 개, 공군 별 두 개를 합쳐 별이 네 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웃음).”
 
  애초에 육군에서 미사일부대로 배치 받은 것도 그가 원치 않던 일이었다고 한다.
 
  “육사를 졸업하고 전방에서 소위로 근무하고 있는데 갑자기 미국에 가서 미사일을 공부하라는 겁니다. 장군이 되려면 야전에 있어야 하니 안 간다고 했죠. 육군에서 미사일부대를 운영하기 위해 영어 잘하는 사람을 선발했다며 가야 된다고 해서 떠나게 된 겁니다.”
 
  미국에서 6개월간 미사일 공부를 하고 돌아온 그는 미사일부대에 근무하다가 1972년 월남에 파병되어 백마부대에서 1년간 근무했다. 다시 귀환하여 방공포병사령부에서 근무하다 1987년 준장으로 임관했고 소장 진급 후 공군으로 옮겨갔다가 정년보다 몇 년 빨리 예편했다.
 
  “지금도 그 직책은 직위진급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더 이상 진급이 안 돼요. 사령관 직책을 마치면 바로 전역을 해야 해요. 그때는 그런 사정을 몰랐으니 안타깝고 허망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일찍 사회로 진출을 하여 준비하게 됐으니 다행인 거죠.”
 
 
  리더십 공부를 시작하다
 
코칭을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한 사회공헌 프로젝트에서 “사람이 먼저다. 충분히 공감하자”고 열강하는 박창규 코치.
  필리핀에서 돌아온 그는 바로 리더십 교육기관을 찾았다.
 
  “노숙자에서 보험설계사로 변신해 27세에 억만장자가 된 미국의 폴 마이어가 만든 SMI(Success Motivation Institute)라는 프로그램이 한국에 개설되어 있었어요. SMI 프로그램이 도움은 됐지만 리더십 본질보다 스킬 쪽이 좀 강해서 별로 끌리지 않았어요. 그때 후배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일명 7habits) 워크숍을 들어 보라고 권했어요. 한국리더십센터의 7habits 워크숍에 바로 등록을 했지요. 그 강의를 들으니 ‘리더십 본질에 맞고, 품격이 높고, 군 리더십을 사회와 기업 리더십과 연결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정을 마치고 강사 과정에 등록해 리더십 강사 훈련을 받았지요.”
 
  그는 별 두 개라는 견장을 내려놓고 리더십 강사로 서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원래 미국 프로그램이니 본토에 가서 교육을 받자는 생각에 1996년 초 미국으로 갔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가 설립한 프랭클린 코비사의 코비 리더십센터에서 운영하는 강의를 직접 듣기 위해서였다.
 
  “비용이 만만찮았지만 제대로 교육받아 시작하고 싶었어요. 그곳에서 3일간 교육을 받은 후에도 필요할 때마다 미국 유타주에 있는 프랭클린 코비사로 가서 보충교육을 받았습니다.”
 
  공부를 계속하면서 1996년부터 리더십 강의를 시작했다. 그간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열심히 준비한 덕택에 강의 요청이 점점 늘어났다.
 
  “삼성경제연구소 세리CEO에서 낸 전국 집계를 보면 제가 7위 이내 명강사에 오른 적도 있어요. 저도 열심히 했지만 7habits 프로그램의 품질이 좋아 인기가 높았던 덕이죠. 필리핀에서 앞으로 15년을 어떻게 살까 걱정했는데 15년 동안 리더십 강의를 계속했어요.”
 
  강의를 하면서도 새로운 리더십 프로그램이 나올 때마다 등록해 공부했다. 그러던 중 2000년에 프랭크린 코비사로부터 코칭 프로그램 개설 소식이 날아들었다. 당시 한국에는 코칭이 알려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현재 ‘인코칭’을 운영하고 있는 홍의숙 대표와 함께 미국으로 향했다.
 
  “교육을 받고 실망이 컸어요. 상담내용을 살짝 변용한 듯한 느낌이었어요. 홍의숙 대표와 둘이 얘기한 끝에 한국에 도입하기에는 수준이 낮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런데 이듬해 홍콩에서 온 유리타라는 분이 조선호텔에서 코칭 교육을 무료로 해 준다는 거예요. 미국에 비싼 경비를 들여서 다녀왔는데 무료라고 하여 놀랐죠. 그때 20여 명이 강의를 들었는데 내용이 좋았어요.”
 
  코칭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접한 그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열심히 교육을 받았다. 미국 코칭의 양대산맥인 CCUI와 CTI의 프로그램을 5년 동안 단계를 높여 가면서 빠짐없이 섭렵해 나갔다.
 
  “미국에 가기도 하고 미국의 전문 코치들이 와서 코칭 트레이닝을 시켜 주기도 했는데 끊임없이 배우면서 실습하고 가르치기를 반복했어요. 코칭에 어느 정도 숙달된 2003년부터 코칭 강의를 하면서 코치로 나섰죠.”
 
 
  비즈니스 코칭 전문가가 되다
 
  박창규 코치에게 리더십과 코칭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리더십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무조건 따르라고 외치는 것도 있지만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조화와 화목을 강조하는 리더십도 있어요. 리더십은 리더가 미치는 영향이 커요. 리더는 팔로워가 필요하고 그들을 이끌어 가거나 영향을 미치죠. 코칭은 팔로워가 없어요. 고객 즉 의뢰인이 셀프 리더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파트너 역할을 할 뿐입니다. 이때 주인공은 리더가 아니라 고객이에요.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도록 코치가 돕는 거죠. 리더십은 비교적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지만, 코칭은 일대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룹 코칭의 경우도 소규모로 진행됩니다.”
 
  코칭은 비즈니스 코칭(기업 역량개발), 커리어 코칭(진로 상담), 라이프 코칭(개인의 삶)으로 나뉜다. 박창규 코치는 기업 임원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코칭을 주로 진행했다.
 
  “리더십 강의를 하다 보면 ‘저 사람은 코칭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사실 리더십과 코칭은 유기적인 관계예요. 임원들 가운데 일대일 코칭을 받고 리더십이 향상된 경우가 많거든요.”
 
  비즈니스 코칭을 통해 리더들이 갖게 되는 역량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라고 한다.
 
  “먼저 밖으로 표출되는 행동과 감정을 다루고 그것과 관련된 두 자아, 밖의 자아와 내면의 자아가 어떻게 소통하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자신과의 소통이 잘되면 그 영향이 상사와의 소통, 부하와의 소통, 환경과의 소통으로 점점 확대되는 거죠. 코칭에서 말하는 소통은 일반적인 커뮤니케이션과 달라요. 대화를 통해 감정을 풀고 시원해지는 것에서 더 나아가 코칭은 지금보다 더 성장 발전할 수 있게 합니다. ‘지금 어떤 느낌이냐, 그 문제에 매달려 있었던 이유가 뭐냐, 누가 너를 그렇게 묶어 놨나,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가’ 코치가 단계적으로 그 사람에게 맞는 빛깔을 넣어 공감하며 앞으로 가는 겁니다.”
 
  박 코치는 2003년 한국코치협회 창단에 기여한 발기인 20명 중 한 명이다. 체계를 갖추며 성장하는 가운데 한국코치협회는 KAC, KPC, KSC 3단계 전문코치 6000여 명을 배출했다. 국제코치연맹(ICF)에서도 ACC, PCC, MCC 등 3단계 인증코치 자격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ICF의 PCC 인증을 받은 한국인 코치는 110명이며 MCC 코치는 단 4명이다. 박창규 코치는 2014년 한국인 최초로 국제공인 마스터 코치(MCC) 자격을 획득했다. MCC는 코칭시간 2500시간을 채우고 영어로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정이다.
 
  1998년부터 조선대, KAIST, 숙명여대, 서강대 평생교육원에서 리더십을 강의한 박 코치는 5년 전부터 국민대 경영대학원에서 리더십 코칭을 가르치고 있다.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1년 과정의 코칭 MBA는 7년 전에 개설하여 매년 전문코치 12명을 배출하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영성코치과정은 3년 전부터 시작했다.
 
  국민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블루밍경영연구소 김상임 대표(PCC)는 많은 코치가 박창규 코치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고 전했다.
 
  “53세에 인생항로를 바꾸고 끊임없이 공부하여 최고에 오른 박 코치님은 우리들의 롤모델입니다. 후학 양성만 하는 게 아니라 후배 코치들에게 길을 만들어 주기 위해 애쓰는 분이죠. 앞으로는 국제코치연맹 MCC 시험을 한국어로 응하고 영어로 번역해서 제출하면 돼요. 박 코치님이 그렇게 되도록 길을 여는 데 기여하셨어요. 저도 곧 MCC 자격시험을 봐야 하는데 감사한 일이죠. 대한민국 리더들과 코치들을 고무시키는 영향력 있는 분입니다.”
 
 
  질문은 소통능력과 창의력을 키운다
 
리더십 강의와 기업임원 코칭을 오랜 기간 해온 박창규 코치는 질문을 안고 살라고 권한다.
  박창규 코치는 코치를 ‘질문을 안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닭이 달걀을 품어 병아리가 깨어 나오게 하듯 질문을 안고 살면 반드시 ‘알아차림’이 일어난다고 했다. 삶이 힘든 사람들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코칭도 각각 다르게 해야 합니다. 감정 문제로 힘들어할 때는 감정 문제를, 삶의 철학이 없는 사람은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먼저 해야 합니다. 정서적 문제로 힘들어하는 여성에게 라이프 코칭을 할 때 그저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 분노, 슬픔, 외로움, 자기 비난 문제가 해소되는 걸 자주 봅니다. 중립적으로 써 놓은 질문은 생명력이 없어요. 그 사람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질문이 중요해요.”
 
  감정이나 삶에 대한 인식이 정리되었다면 ‘나는 누구인가, 지금 내 안에서 어떤 자아가 활동하고 있는가, 나를 진짜 사랑하는가, 정말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 인생이 끝날 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꾸준히 하라고 권했다.
 
  “철학자와 수행자와 종교인은 ‘Who am I,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평생 품고 삽니다. 이 질문을 하면서 나의 정체성과 내 안에 축적된 리소스를 찾아야 합니다. 이러한 질문을 품으면 대답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겠죠. ‘내 인생이 끝나는 순간 내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를 음미하는 가운데 자기를 존중하고 사랑하면 삶의 의미와 가치, 목적과 비전이 떠오르게 됩니다.”
 
  78세 현역인 그에게 사람들은 은퇴 이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자주 묻는다.
 
  “40대인 제 아들들에게 ‘현직에 있을 때 잘하라. 최선을 다하며 즐기고 잘했든 못했든 성과를 내고 즐겨라. 그러면 내적 자원, 리소스가 쌓인다’는 얘기를 늘 합니다. 직장생활이 힘들다는 분에게 ‘그런 상황에서도 그 사람들에게 배워라. 지금 열심히 성과 내면서 인간관계를 잘해라. 그게 나중에 돈이 되고 기쁨이 된다’고 말합니다. 거기에 ‘자기만의 뭔가’를 하나 만들어야 합니다. ‘자기만의 그 무엇’이 나중에 빛나게 됩니다. 회사에서 하라는 것만 해서는 밖에 나가서 적응하기 힘들어요. 뭔가 자기만의 공부가 필요하다는 거죠.”
 
 
  “당신만의 고유한 것이 있나?”
 
  기업체의 임원 코칭을 가도 ‘끝나고 뭘 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질문이 쏟아진다.
 
  “회사에서는 현재 업무를 잘하라고 코칭 교육을 받게 하는데 은퇴 후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묻는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에게 ‘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는 당신만의 고유한 것이 있냐’고 물으면 대부분 ‘모르겠다’고 해요. 그분들에게 ‘지금부터 찾아보십시오. 지금부터 공부하십시오’라고 말하죠. 회사 일을 열심히 하면서 미리미리 은퇴 후를 대비해야 합니다. 꼭 직업과 관련된 것뿐 아니라 건강관리, 마음관리, 관계관리 등 삶과 관련된 준비도 매우 중요합니다.”
 
  은퇴자들 가운데 강의와 코칭 분야로 진출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 코칭에 관심들이 많다.
 
  “라이프 코칭이나 커리어 코칭을 하는 코치들도 어떻게 하면 비즈니스 코칭을 할 수 있는지 물어요. 시장에 비해 일하려는 분들이 많은 편이에요. 코칭을 배운 다음 재교육을 받으면서 연마를 많이 해야 합니다. 되풀이 말하지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찾고, 자신만의 특장점을 살려야 해요.”
 
  코칭을 경제적 목적이 아닌 자신의 성장과 가족의 소통을 위해 배우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박 코치는 창의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은 엄마에게도 코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하부르타 교육 가운데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어요. ‘네 생각은 뭐야? 왜 그렇게 생각해?’ 어릴 때부터 이 질문을 받은 자녀들은 저절로 창의력이 생깁니다. 세계 인구의 0.2%인 유대인이 노벨상의 25%를 차지한 비결이죠. 코칭 리더십은 하부르타 질문에서 한 발짝 더 나갑니다. ‘네 생각은 뭐야, 왜 그렇게 생각해?’ 다음에 ‘어떻게 할 건데,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로 이어 가면 됩니다.”
 
  네 가지 질문은 기업과 군대에서도 통용된다고 한다.
 
  “상사가 ‘네 생각은 뭔데? 왜 그렇게 생각해?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하는데. 이런 면은 어떻게 생각해?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내가 어떻게 도와줄까?’ 이렇게 질문하면 팀원은 많은 아이디어를 내놓을 겁니다. 팀원이 말할 때마다 ‘아 그렇구나, 그거 좋은 생각이다’라며 계속 추임새를 넣어 주면 더욱 신이 나겠죠.”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박창규 코치는 올해 100세가 되신 철학자 김형석 선생이 롤모델이라며 웃었다. 스케줄을 소화하며 당면과제를 해결하기도 바쁜 78세 현역에게 계획을 묻는 건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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