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유형(流刑)의 아버지, 구원(救援)의 딸을 말하다 | 한승원의 소설, 한강의 소설

“작가는 시시포스 천형(天刑)을 받은 운명… 내 딸 한강의 글에는 ‘구원과 평화’ 담겨 있어”

글 : 신승민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소설 쓰기는 공부에 달려 있어… 장흥 내려와 동서고전(東西古典) 읽으며 구도자적(求道者的) 역사소설 다수 집필해”
⊙ “섬에서 나고 자란 내게 바다는 순환하는 넋이자 우주의 기원… 바다에 가면 우리 삶의 진리 발견할 수 있어”
⊙ “대표작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소설로 쓴 화엄경(華嚴經)’”… 박해받는 사람들과 삶을 함께한 주인공 ‘순녀’ 긍정적으로 그려
⊙ “우리 딸과 아들은 다 승어부(勝於父)해… 섬세한 상상력으로 소설 쓰는 딸과 동화작가로 성공한 큰아들 대견”
⊙ “양쪽 눈 다 떠야 진리가 보여… 내 딸이 미국 신문에 ‘평화’ 얘기한 걸 두고 다투는 보수·진보 생각들 다 미욱할 따름”
⊙ “우리 강이가 표방하는 것은 ‘평화’ 아니고는 대안이 없다는 뜻… 그것을 트럼프 대통령 뽑은 미국 독자들에게 얘기했을 뿐”
⊙ “‘싸우지 말자는 데 무슨 논의가 더 필요한가’… 진리 설파로 쟁론(諍論) 타파한 반전주의자 원효대사의 ‘화쟁’ 사상 배워야”
⊙ “소설은 재미있는 만큼 의미 있어야… 소설가는 자기 존재의미 규명과 세상에 대한 발언 모두 오직 작품으로만 얘기해야”
⊙ “우리 몸은 바다처럼 우주적 존재… 인간이 꽃 한 송이 만나는 것은 그 속의 우주적인 섭리와 율동을 읽어내는 것”
⊙ “시시포스가 바윗덩어리를 굴리는 천형(天刑)을 운명으로 받아낸 사람이 작가… 계속 끝 모르게 작품 써나가야 하는 존재”
⊙ “새벽에 깨 어둠을 보고 짖는 개처럼 작가도 소설로 시대를 향해 짖어… 내 속의 어두운 세상까지도 성찰하면서 짖는 것”

한승원
1939년 전남 장흥 출생 /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입학 / 1966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 당선,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목선〉 당선 / 대표작 《목선》 《앞산도 첩첩하고》 《기찻굴》 《해변의 길손》 《해산 가는 길》 《사랑》 《아제아제 바라아제》 《추사》 《초의》 《다산》 《사람의 맨발》 등 상재 / 한국소설문학상(1980), 대한민국문학상(1982), 한국문학작가상(1983), 현대문학상(1988), 이상문학상(1988), 서라벌문학상(1994), 한국해양문학상(1997),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2002) 등 수상 / 소설가 한규호, 한강, 만화가 한강인씨 아버지
자신의 자택 앞 정원에서 한승원 소설가가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한 작가에게 바다는 우리 삶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우주의 기원’이었다고 한다. 사진=신승민
  아버지는 유형(流刑)을 운명처럼 삼았고 딸은 구원(救援)을 노래했다. 아버지의 글은 바윗돌을 굴리는 필업(筆業)에 분투했고, 딸의 글은 세상의 비참에서 한 줄기 희망을 응시했다. 그들의 공통 감각은 세계 인식과 자기 성찰이다. 장르의 변주와 형식의 변신으로 깨달음을 찾았던 그들의 구도자적 작품은 베스트셀러 소설이 돼 한국문단을 놀라게 했다. 아버지는 순수문학의 거목으로 자라났고 딸은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유명한 소설가 한승원(78)과 《채식주의자》로 영국 맨부커상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47)의 이야기다.
 
  한승원은 고향인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내년에 출간될 신작 장편소설을 집필 중이었다. 그의 집필실 ‘해산토굴(海山土窟)’이 있는 율산마을은 앞에 바다가 펼쳐졌고 뒤에 산자락이 드넓어 경치가 좋다. 해산토굴 아래 득량만 해안(海岸)에는 한승원 문학 산책길도 조성돼 있다.
 
  그는 자신의 문학관 건립을 거절했다. 대신 소강당 한 채를 마련해 문학교실로 뒀다. 학생들을 비롯해 단체 관람객이 1년에 1000명 넘게 다녀간다. 문학교실이 있는 언덕 위 자리한 통나무 가옥이 바로 집필실 해산토굴이다. 기자가 그를 찾아갔을 때는 매달린 감이 바람에 닳고 낙엽이 젖는 가을 중턱이었다. 한승원은 정자에 홀로 앉아 가을바다를 담고 있었다.
 
  80년대 초 중학교 교직(敎職)을 그만둔 한승원은 서울로 가서 본격적인 전업 작가생활을 시작한다. 신문연재를 하지 않고 순수문학에만 몰입했어도 화제작이 잘 팔렸다. 그 덕에 빚지지 않고 자식 여럿을 공부시켰다. 동생들 시집·장가도 보냈다. 90년대 후반에 다시 서울살이를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장흥 깊숙한 여다지 바다에 터를 잡고 역사소설을 써 내려갔다.
 
  가을 해풍이 잔잔해질 즈음, 점심을 마치고 온 한승원 소설가는 소강당에서 직접 콩잎차를 내려줬다. 그의 음성은 차분했고 다소 가라앉았으나 문학에 대한 철학과 가치관을 말할 때는 준열했다. 그를 따라 작가의 길을 걷는 자식들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당부는 따뜻했다. 우리 시대에 대한 통찰은 냉철했다.
 
 
  “고향 내려오면서 사서삼경과 동양고전 탐독… 역사소설 주로 썼다”
 
전남 장흥 율산마을에 위치한 한승원 소설가의 집필실 ‘해산토굴’의 모습. ‘해산’이란 바다 깊숙한 곳에 암초처럼 융기된 산을 뜻하고, ‘토굴’이란 스님들의 수행거처를 겸손하게 부르는 말이다. 사진=신승민
  ― 건강은 괜찮으신가요. 지금도 새벽에 기상해서 규칙적으로 생활한다고 들었습니다.
 
  “건강 좋아요. 요즘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한 시간쯤 창작하고 여섯 시 반부터 바닷가 산책하고 삽니다.”
 
  ― 작년에 등단 50주년을 맞았습니다. 기념행사도 열렸는데 소회가 어떤지요.
 
  “한 원로작가의 행사를 후배들이 열어줘서 감사하긴 한데, 나 스스로를 역사 속에 묻지는 않을 겁니다. 50주년 기념행사로 내가 역사 속에 묻히는 게 아니라, 작가로서의 나를 좀 더 확실하게 정리하고 바로잡게 되는 것이죠.”
 
  ― 20년간 도시에서 살다가 단번에 고향으로 내려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장흥에 내려온 것은, 내가 과거 광주 생활을 접고 서울로 올라간 것과 마찬가지로 내 인생에 어떤 ‘구획을 긋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어요. 내가 빠르고 번잡한 서울에서 17년간 살았어요. 그전에 광주에서 10년 살았고, 장흥으로 내려온 지는 22년째 됩니다. 그동안 못 했던 공부를 더 많이 하기 위해 내려왔습니다.”
 
  ― 어떤 공부를 말하는지요.
 
  “우리 동양과 서양의 고전(古典)을 더 읽어내자는 것이죠. 소설은 공부에 달려 있어요. 현실 삶에서 소설 소재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헌자료를 통해 공부하는 것도 중요해요. 나는 장흥에 와서 사서삼경과 동양고전을 읽으며 역사인물 소설을 많이 썼습니다. 초의, 원효, 다산, 추사, 석가모니까지. 구도자적(求道者的)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주로 썼죠. 내가 선택한 역사적 인물들은 자기 삶의 절대고독을 이겨내려고 분투하듯이 산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의 구도자적인 삶에서 나를 읽어내는 것도 공부입니다.”
 
  ― 장흥에 오고부터 역사소설에 집중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역사적 인물들이 어떻게 그 시대에서 민중의 삶을 올바르게 이끌어가려고 노력했는지 밝히고 싶었어요. 역사는 과거를 뒤돌아보고 현재의 처지에서 앞을 내다보는 삶이잖아요. 작가는 역사인물 소설로 독자들에게 질문을 하는 거죠. 우리는 왜 이 시대에 이 사람의 삶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가. 나는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선인(先人)들이 나름대로 우주질서, 우주섭리를 읽어낸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우주적 질서를 바탕으로 그 시대의 의미를 읽어내고 삶의 철학을 가르친 사람들이죠. 작가와 시인은 바로 그런 역사적 인물들의 우주철학을 읽어내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야 합니다.”
 
 
  의병(義兵)과 동학(東學)의 성지(聖地) ‘장흥’
 
  ― 전남 장흥은 한 작가를 비롯해 고(故) 이청준 소설가, 이승우 작가 등 문인들을 많이 배출한 문향(文鄕)이라고 합니다. 특별한 역사적 내력이 있나요.
 
  “이 고장이 임진왜란 때는 의병이, 동학혁명 때는 동학군이 많이 일어난 곳이에요. 인근의 강진, 보성, 해남과도 달랐어요. 왕조시대 장흥 성내에는 부사(府使)가 살았고, 당시 정보기관이었던 역(驛)에는 찰방(察訪)이 있었고, 회진면 쪽에는 만호(萬戶)가 바다를 다스렸죠. 장흥 안에는 세 사람의 권력자가 있었던 거예요. 호랑이가 세 마리나 있는 꼴이니 백성들에 대한 관가의 수탈이 심했죠. 조선조 후기에는 삼정(三政)의 문란까지 덮치니 장흥 사람들이 정부 관아에 저항을 많이 한 거죠. 그러다 보니 동학이 성했어요.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 기총소사에 퇴각한 동학군들이 장흥으로 집결해 성을 함락하고 마지막 결전을 벌였죠. 일제 때는 헌병대가 머무르면서 장흥을 탄압했습니다. 6·25전쟁 당시 빨치산 세력이 활개 치면서 저항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깨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할까. 외세의 침탈과 조정의 폭압, 우익세력과 좌익세력의 갈등 등이 어지럽게 상충하다 보니까 그런 혼란한 분위기 속에서 여러 작가가 나오지 않았나 그렇게도 추정해 봅니다.”
 
 
  남해(南海)의 ‘해산토굴’과 우주의 자궁(子宮)
 
한승원 소설가의 집필실 ‘해산토굴’ 앞에 조성된 정원의 모습. 글귀가 적힌 바윗돌과 소형화된 보림사 삼층석탑의 분위기가 운치를 더한다. 사진=신승민
  ― 해산토굴(海山土窟)이라고 집필실 명칭을 정한 이유가 있나요.
 
  “해산은 깊은 바닷속에 약 1km 정도로 융기한 암초 같은 산이에요. 동해의 독도 인근에는 그런 해산이 많아요. 비가시적인 산으로 제 호(號)입니다. 토굴은 저의 집을 겸손하게 부르는 말이고 스님들의 수행공간을 뜻하기도 하죠. 이 위의 집필실은 통나무로 만들었어요. 앞마당에 감나무를 심었고 정원에 보림사 삼층석탑을 3m 높이로 축소해 세웠어요. 그곳은 제가 나중에 무덤 삼아 들어갈 곳이기도 합니다. (웃음)”
 
  ― ‘바다의 작가’라는 수식어로 유명합니다. 바다는 한 작가에게 문학적 영감의 원천인가요.
 
  “나는 섬에서 나서 바다에서 자랐어요. 바다는 순환하는 넋이에요. 바닷물이 증발해 구름으로 비를 뿌리면 다시 그 비가 지표수, 지하수가 돼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죠. 바다는 인류 미래의 블랙박스예요. 수없이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고, 물고기들이 우리 인류를 먹여 살리고 있잖아요. 생산의 기원, 우주의 기원이에요. 그래서 우주의 자궁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여성의 자궁이 한 생명을 탄생시키듯 바다도 닮아 있어요. 사실 생산성이라는 의미에서 우주의 모든 존재는 일종의 자궁 역할을 합니다. 도시에는 먹거리를 조달하는 시장이 있고, 사막에 늪이 있으면 동물이 모이잖아요. 학교는 학생들을 가르쳐서 새 인물을 만들죠. 《월간조선》이라는 잡지의 기능도 우주의 자궁 역할을 하는 거예요. 수없이 많은 필자가 투고를 하고, 기자들이 기사를 써서 대화의 광장이 만들어지고 생산성이 창출되잖아요. 그래서 우주의 모든 존재는 바다의 기능을 갖고 있어요. 노자(老子)가 말하기를 ‘곡신(谷神)은 현빈(玄牝)이고 현빈의 문은 천지근(天地根)이다’라고 합니다. 여근(女根)을 상징하는 곡신과 ‘그윽한 암컷’인 현빈의 문은 천지근, 즉 우주적인 뿌리라는 거죠. 저는 그 곡신을 바다라고 봅니다.”
 
  한승원 소설가는 인터뷰 도중 직접 백지에 수기(手記)로 노자의 명구(名句)를 적어 설명했다. 그에게 있어 바다는 신화적 시공(時空)이자 깨달음의 바다, 화엄(華嚴)의 바다다. 한승원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라벌예술대학에 진학하기 전 3년간 남해에서 고기를 잡고 김 양식을 도맡았다. 그는 힘들었던 당시를 회고하며 “그곳은 서정적(抒情的) 바다가 아니라 산문적(散文的) 바다였다”고 말했다. 막연한 신비성을 넘어선 어부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한승원은 바다의 은밀한 신화성을 잊지 않는다. 그는 “바다에 가면 우리 삶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며 “신화학자들이 말하기를 ‘신화는 진리 그 자체는 아니지만 진리를 낳는 자궁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라고 말했다. 그의 눈길은 어느덧 창가 너머 먼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소설로 쓴 화엄경… ‘환상적 리얼리즘’이 내 문학세계”
 
  ― 한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하면 역시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꼽을 수 있습니다. 어떤 내용의 소설인가요.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소설로 쓴 화엄경(華嚴經)이에요. 화엄경의 요체가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인데, 보리(菩提)라고 하는 것은 불(佛)이야. 깨달음이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 중생과 삶을 함께한다. 이런 뜻이지. 말하자면 대승(大乘)이야. 위로 깨달음만 구하면 그 사람은 소승(小乘)이야. 자기보다 못 사는 사람, 박해받는 사람들과 삶을 함께하면서 그들을 구제하는 것이 깨달음 구하기와 합쳐져야 화엄경이 되는 거지. 이거는 노자가 얘기한 화광동진(和光同塵)과 상통하는 말이야. 자기 빛을 부드럽게 해서 못 사는 사람들과 삶을 함께한다는 말이야. 소설 속 ‘진성’이라는 여자는 상구보리만 하는 사람이고 ‘순녀’라고 하는 여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을 같이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순녀를 더 긍정적으로 그린 거지.”
 
  ― 본인의 문학세계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생명력이에요. 나는 작품을 쓸 때 생명력이 발산되는, 일종의 ‘신명’이 나지 않으면 줄거리가 만들어져도 집필을 못 하고 끙끙 앓습니다. 신명이라는 건 작품의 향기로 발산될 수 있는 그윽한 신화적 의미를 말해요. 제 작품이 ‘신화적 리얼리즘’ 계열에 속하기 때문이에요. 나와 이호철, 선우휘 소설가 등이 활동했던 60~70년대, 그리고 80년대까지도 리얼리즘, 즉 사실주의에 입각한 고발소설이 주류였어요. 평론가들이 리얼리즘 소설에 신화가 가미되면 ‘리얼리즘 소설의 죽음’이라고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나도 물론 리얼리즘 서사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어요. 그렇지만 나는 그 리얼리즘에 신화적 감수성을 더 보태서 창작했습니다. 지금 30~40대 신세대 작가들에게서는 리얼리즘 소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우리 딸이 쓴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 역시 리얼리즘 소설이 아니에요. 특히 《소년이 온다》가 5·18을 소재로 했지만 그 소재를 다룬 대부분의 다른 작품은 전부 고발소설이에요. 그렇지만 《소년이 온다》는 고발소설이 아니라는 차별성이 있는 것이죠.”
 
  한승원 소설가의 집안은 문인(文人) 가족이다. 딸 한강 작가부터 사위인 문학평론가 홍용희씨와 소설가와 동화작가로 활동 중인 아들 한규호씨, 둘째 아들 한강인씨 또한 만화작가로 일한다. 특히 한규호씨는 다섯 살 전후의 유아를 상대로 한 ‘한글 교육 동화’로 유명하다. 스테디셀러 《받침 없는 동화》 《받침 있는 동화》 작가이자 동명(同名)의 출판사 대표로 있는 한씨는 작품성과 상업성 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뒀다.
 
  아버지 한승원은 소설가이자 동화작가로 성공한 큰아들에 대해서 “아이들이 한글 받침이 있으면 글을 늦게 배우잖아. 그래서 아는 사람들이 우리 아들 동화책을 자식들에게 읽혔더니만 글을 빨리 배웠다”며 “지금 그게 소문이 나서 모든 어린이집, 도서관에 가면 잘 진열돼 있더라. 우리 한글이 사라지지 않는 한 명품동화로 팔리게 될 것”이라고 뿌듯해했다.
 
  한승원은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게 가장 무서운 문학적 후배는 자식들”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아버지의 문학적 명맥을 이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자식들 모두 승어부(勝於父)했다… (한)강이 소설은 내가 생각지 못한 평화의 세계 천착”
 
자신의 집필실 안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는 한승원 소설가. 그는 작가로 활동 중인 아들 한규호씨와 딸 한강씨 모두 ‘승어부(勝於父)’, 즉 아버지인 자신의 경지를 뛰어넘었다고 뿌듯해했다. 사진=신승민
  ― 문인의 길을 걷는 자식들에 대한 애착이 클 듯합니다.
 
  “모든 아들과 딸은 아버지를 극복하고 승어부(勝於父-아버지보다 낫다, 아버지보다 잘한다는 뜻)하게 돼 있어요. 그런데 지금 자기 이름을 갖고 사는 부모들은 인류의 평균치를 약간 넘은 거예요. 대개의 사람은 평균치를 넘지도 못해. 그러니까 ‘사람들이 잘 살아낸다’는 건 평균치를 약간 웃도는 사람들이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산다는 것이죠. 근데 이 세상에서 그 평균치를 뛰어넘기도 힘든데, 이미 평균치를 뛰어넘은 부모를 또 뛰어넘으려면 자식들은 얼마만큼 힘이 들겠어요. 그런데도 우리 딸과 아들은 이 아버지를 뛰어넘었어요. 모든 자식 가운데 승어부한 자식이 가장 훌륭한 효자 아니겠어요.”
 
  ― 예전에 한 작가는 딸 한강씨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면서 “현대적 감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전통적인 것과 멀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강이 소설을 읽어보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 세계를 천착하고 있어요. 새로운 세계를 그려내죠. 표현 방법이나 문학적 감수성 면에서 내가 생각할 수 없는 섬세한 상상력을 갖고 있어요. 신화적이고 환상적이면서도 현실을 벗어나지 않는 아름다운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겠죠. 인간의 폭력을 다루면서도 그것을 단순히 고발하는 차원이 아니에요. 폭력으로 야기된 슬픈 인간의 구제(救濟), 일종의 구원(救援)을 담고 있다고 할까. 그 아이가 결국 추구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가장 평화로운 세계예요. 나는 그걸 구원의 세계로 느끼고 있어요.”
 
  인터뷰 방향이 한강 작가 이야기로 접어들자 한승원 소설가는 다소 예민해졌다. 근래 한강 작가가 쓴 칼럼을 두고 좌우 진영에서 갑론을박한 일 때문이었다. 그의 속내를 솔직담백하게 담아낸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정중히 질문해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작심 발언에 이어 원효대사(元曉大師)의 사상을 거론했다. 한승원이 천명한 대의(大義)는 원효의 화쟁(和爭/和諍)이었다.
 
 
  “이념에 얽매이면 한쪽 눈 가리고 세상 보게 돼… ‘이것이 진리냐 아니냐’만 따져라”
 
한승원 소설가가 문학강의를 하는 소강당 ‘달 긷는 집’의 기념 서재 모습. 한 작가는 딸 한강씨가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 내용에 대해 “우리 강이가 표방하는 것은 ‘평화’ 아니고는 대안이 없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사진=신승민
  ― 얼마 전에 한강 작가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의 내용이 세간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이념에 얽매이면 (진리가) 안 보이는 거예요. 보수 쪽 사람은 진보가 적으로 보이고, 진보 쪽 사람은 보수가 적으로 보이는 거죠. 이념에 고착되면 한쪽 눈을 가리고 세상을 보는 거나 똑같아요. 양쪽 눈을 다 떠야만 진리가 보이는 거죠. 이 말은 내가 꼭 하고 싶은데, 예전에 원효대사가 《판비량론(判比量論)》이라는 책을 냈어요. 그분이 그냥 스님이 아니에요. 학자이자 논리학자였어요. 다산 정약용 말고는 제일 저술을 많이 한 스님이에요. 그분이 《판비량론》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이것을 부처님이 말했느냐 말하지 않았느냐 따지지 마라.’ 그럼 무엇을 따져야 하느냐. ‘이것이 진리냐 아니냐를 따져라.’ 이렇게 얘기한 거예요. 강이가 미국 어느 신문에다가 평화 이야기를 했는데 보수 쪽에서는 이렇게 판단하고, 진보 쪽에서는 저렇게 판단했어요. 그래서 잠시 논란이 됐었는데, 나는 참 그게 다 미욱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 이념의 잣대로 판단하지 말고, 글의 본질(本質)과 본의(本意)에 집중하라는 말인가요.
 
  “그가 기고문에서 하려고 한 말이 ‘진리냐 아니냐’ 그것을 판가름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이념에 편향될 때 시각장애자가 됩니다. 도대체 ‘우리 강이가 무엇을 표방하기에’ 그런 글을 썼을까. 그렇게 판단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 아이가 얘기하는 것은 평화 아니고는 대안이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트럼프 대통령을 뽑은 미국 독자들에게 얘기한 거예요. 그런데 왜 그렇게 왜곡되게 논란을 일삼는지 모르겠어요.”
 
  ― 한강 작가가 쓴 칼럼이나 작품 모두 ‘평화의 진리’를 얘기했다는 뜻이군요.
 
  “원효대사는 반전주의자(反戰主義者)였어요. 김춘추(金春秋), 김유신(金庾信)이 벌인 삼국통일 전쟁을 앞장서서 반대하고 그에 대항해 ‘불국토(佛國土) 통일’을 염원한 사람이에요. 부처님의 말씀을 통한 화엄의 통일을 말하는 거죠. 그분이 화쟁 사상을 얘기했어요. 싸움을 멈추고 화합하게 하는 것이죠. 화쟁은 단순히 양비론, 양시론이 아니에요. 이것을 부처님이 말했느냐 말하지 않았느냐를 두고 다투는 것은 쟁론이잖아. 그것이 진리냐 아니냐를 가지고 따지면 그 쟁론이 사라진다는 것이지. 강이가 말했듯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진리는 평화인 거예요. ‘싸우지 말자는 데 무슨 논의가 더 필요하냐’ 그거예요. 진리를 가지고 얘기하면 모든 쟁론이 사라지게 됩니다.”
 
  ― 진리(眞理)와 정의(正義)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정의라고 하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북한에서는 김정은의 말을 정의라고 말하잖아요.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말을 정의라고 말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신문은 진보 편을 들고 다른 어떤 신문에서는 보수 편을 들잖아. 그 사람들의 말이 ‘그쪽’에서만 정의인 거죠. 정의는 적을 만들지만 진리는 적을 만들지 않아요. 원효의 화쟁을 배워야 합니다.”
 
 
  “그 아이가 얘기하는 것은 ‘평화’ 아니고는 대안 없다는 뜻… ‘진리’ 가지고 얘기하면 모든 쟁론 사라져”
 
한승원 소설가의 집필실 안 서재에 쌓여 있는 책들. 그는 단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줄을 치고 메모한 뒤 페이지마커를 꼼꼼하게 붙여 정독한다고 했다. 사진=신승민
  한 차례 소나기가 내린 듯 예민한 문답들이 지나가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창밖 하늘에 조각구름이 흘러갔다. 서녘 바다가 오후의 온도를 품고 있었다. 한승원 소설가는 차를 우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기자와 작가의 논의는 다시 ‘문학’으로 돌아갔다. 그는 어떤 새 작품으로 등단 반세기의 첫 출발을 장식하게 될까.
 
  ― 소설의 원칙을 4가지로 규정했습니다. ‘재미있어야 한다’ ‘쉬워야 한다’ ‘아름다워야 한다’ ‘슬퍼야 한다’인데 무슨 뜻인가요.
 
  “일단 소설은 재밌어야 해요. 재밌는 만큼 의미도 있어야 하고. 소설가는 행동이나 연설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 작품을 통해 말하는 거예요. 작품을 보여주는 거지. 그래서 소설가는 다른 짓 하지 말고 소설을 써야 돼요. 자기 존재 의미를 소설로써 밝히고 세상에 대한 발언도 소설을 통해 하는 거지.”
 
  ― 소설은 물론 시와 산문 작품도 여럿 남긴 것으로 압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우리 몸은 바다처럼 우주적인 존재예요. 우주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꽃 한 송이를 만나는 것은, 그 꽃이 가지고 있는 우주적인 섭리와 율동을 읽어내는 거예요. 그래서 작가는 꽃 한 송이를 만나 하늘의 뜻과 땅의 질서를 읽어내 독자들에게 설파하는 것이죠. 시 쓰기, 에세이 쓰기, 소설 쓰기 모두 신의 뜻을 누설하면서 독자들에게 늘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 이번 노벨문학상은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수상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좋은 번역가를 만나야 가능성이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어요. 외국에서 무슨 상을 받았다고 해야 겨우 그 책을 찾아서 읽는 정도니까 아쉬워요. 우리나라에서도 종이책이 좀 활발하게 나와줘야 해요. 독자들도 책을 많이 사서 읽어주면 한국소설이 더 발전할 거예요. 문체부 측에서도 지원을 해야 합니다. 옛날 문예진흥원처럼 출판사와 잡지사를 도와줘야 해요. 물론 도종환 장관이 잘할 것으로 봅니다.”
 
 
  내 속의 어두운 세상을 보고 짖는 ‘늙은 시시포스의 민낯’
 
소강당 ‘달 긷는 집’에서 책을 읽다 상념에 젖은 한승원 소설가의 모습. 그는 “시시포스가 바윗덩어리를 굴리는 천형(天刑)을 운명으로 받아낸 사람이 작가”라며 “계속 끝 모르게 작품을 써나가야 하는 존재”라고 했다. 사진=신승민
  ― 문학에 전념할 때부터 알베르 카뮈의 실존주의 철학을 깊게 공부했다고 들었습니다.
 
  “대학에서 스승 김동리 선생을 만나기 전에 문학 하는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요. 당시 실존주의 철학이 유행했는데 그중 카뮈와 사르트르에 천착했죠. 그때 저는 카뮈가 논한 시시포스 신화에 대한 해석에 관심이 깊었어요. 거기서 체득한 깨달음이 제 인생을 지배했습니다. 그 신화를 보면 시시포스가 바윗덩어리를 힘겹게 굴려 산정(山頂)에 올려놓으면 다시 또 떨어지고 그것을 또 굴리고 올라가는 행위를 반복하죠. 시시포스의 그 유형(流刑)을 작가인 나도 받았다고 생각해요. 작품 한 편 쓰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끝 모르게 계속해서 써나가죠. 시시포스가 바윗덩어리를 굴리는 천형(天刑)을 운명으로 받아낸 사람이 바로 작가예요.”
 
  ― 내년에 새로 출간하는 장편소설 가제도 ‘늙은 시시포스의 민낯’으로 지었다고 하던데.
 
  “내가 작가로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쓰다가 죽더라도’ 죽을 때까지 쓴다는 거죠. 그게 나와의 영원한 약속이에요. ‘늙은 시시포스의 민낯’이라는 말도 바로 그거예요. 언젠가 새벽 4시 정도에 일어나서 서재로 올라갔어요. 한 시간 정도 글을 쓰고 산책을 하는데 어둑한 새벽에 개가 막 짖는 거야. 개가 혼자 깨서 짖는데 무엇을 보고 짖는가. 그건 아직 걷히지 않은 밤의 세상을 보고 짖는 거잖아. 그러고 보면 나라는 사람도 저 개하고 똑같이 짖는 것이지.”
 
  ― 작가가 짖는다, 혹은 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그러면 나는 무엇을 보고 짖느냐. 내 속의 어두운 세상을 보고 짖는 거야. 소설가는 소설로 이야기하니까 그게 짖는 거잖아. 내 속에 들어 있는 어둠이니까 작가의 글은 결국 나에 대한 성찰일 수도 있는 것이지. 그것은 역시 구도자적 소설인 ‘늙은 시시포스의 민낯’에 어떤 운명적인 동기가 될 수도 있어요. 이 깨달음을 내년에 나오는 신간 ‘작가의 말’에 쓰려고 했는데 내 오늘 천기누설(天機漏洩)을 하네. (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서재 겸 집필실 ‘해산토굴’로 올라갔다. 겉으로 봤을 때는 조그만 양옥(洋屋)인 줄 알았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서까래와 벽난로가 운치를 더한 통나무집이었다. 천장이 높고 바닥이 긴 거실을 지나 창작실로 들어서자 책으로 뒤덮인 방이 나왔다. 빛바랜 책장 사이로 페이지마커(책갈피 스티커)들이 물결을 이뤘다. 한승원 소설가는 단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줄을 치고 메모한 뒤 페이지마커를 꼼꼼하게 붙여 정독한다고 했다.
 
  나오는 길에 그의 책장 한 편에 꽂힌 《월간조선》 2012년 9월호를 발견했다. 그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제목은 ‘대한민국 대표 문학상 수상작가를 찾아서’였다. 인연이 신기했다. 그는 5년 만에 다시 우리와 만났던 것이다.
 
  한승원 소설가는 문단의 원로였어도 젊은 기자에게 배웅을 잊지 않았다. 기자가 떠나자 다시 정자에 걸터앉은 그는 홀로 바다를 바라봤다. 못다 한 말들이 노을에 잠기고 있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201712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정기구독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