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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의 품격

“이기 바로 의린기라”의 개성파 배우 이재용

“깡패 악역 전문? 난 눈물 많은 남자”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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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 35년차 … 선악 경계 넘어 야수와 같은 권력 속성을 드러내는 연기로 주목
⊙ 유년 시절 6개 도시에서 성장 … 사투리, 표준어 모두 능통해
⊙ 인간은 복잡한 번뇌의 존재 … 인물의 후경(後景) 따라 연기방법도 달라져야
⊙ 부산 남포동 구둣방 골목에서 삼시 세끼 라면 먹고, 피똥 싸던 무명시절 그리워
  배우 이재용(李在庸·55)을 만났다. 영화 〈친구〉(2001)에서 20세기파 보스 차상곤이 이재용이다. 극중 수표를 흔들며 “니, 의리가 뭔지 아나? 이기 바로 의린기라”고 했던 악한 이미지를 지울 수 없다. 낮고 굵은 목소리, 삭발(원래 대머리인데 요즘은 아예 머리를 빡빡 밀었다.)한 181cm의 비쩍 마른 그는 드라마 〈피아노〉(2001)에서 ‘독사’로, 드라마 〈야인시대〉(2002)에서 일경(日警) 미와 경부로 악명을 날렸다.
 
  그러다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 (2003~2004)에서 고시에 연거푸 낙방, 택시기사 아내(서승현)에게 얹혀사는 카페 요리사 ‘이 선생’으로 변신했다. 막걸리에 취한 아내의 사연(분뇨수거 일을 하던 장인이 하루 일을 마칠 때면 항상 막걸리로 손을 씻던)을 짐짓 모른 척 아내를 업고 골목을 걷던 모습이 떠오른다. 깡다구 있는 외모와 달리, 속으로 들어갈수록 엉뚱하고 유머스러울 것 같은, 왠지 ‘츤데레’ 같은 내면연기가 인상적이다.
 
  선악 경계를 넘어 야수와 같은 권력의 속성을 드러내는 역에서도 연기솜씨를 발휘했다. 〈제5공화국〉(2005)의 이학봉, 〈주몽〉(2006)의 부득불, 〈이산〉 (2007~2008)에서 노론 벽파의 수장 장태우, 〈순수의 시대〉(2015)에서 야심가 정도전, 〈징비록〉(2015)에서 동인의 영수 이산해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겨운 교과서적 스토리와 연기에서 탈피한 배우로 관객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지난 8월 2일 경기도 일산에서 만난 그는 첫마디가 이랬다.
 
  “내 정치적 성향은 좌판데 ….”
 
  — 우파적으로 쓰겠다.
 
  “사극에서 우파 쪽만 해 놔서 ….”
 
  — 정도전, 이학봉, 부득불처럼?
 
  “정치는 쪽수 싸움이다. 아무리 좋은 이념도 기득권 세력이 개기면 어렵다. 정도전이 비분강개하던 시절도 그랬을 거다. 난 삼봉(정도전)을 국가 설계자로 읽었다. 국민 입장에서 기획하고 설계하는 ….”
 
  〈주몽〉에서 동부여의 대사자 부득불은 3대에 걸쳐 왕을 보필해도 자기 식솔의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청빈한 인물이다. 극중 부득불은 끊임없이 되묻는다. ‘이 전쟁이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이냐’고. 주몽을 반대한 이유가 그거다. 북벌야망의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 백성은 개죽음을 당한다. 요즘 정치 지도자도 죄다 그럴듯한 명분으로 국민을 우롱한다. 바둑판에 비유하면, 국민은 한 수 한 수에 절망하고 부딪치며 쫓겨 다니는데 그들은 대마놀이에 자빠졌다. 그릇된 정치행위를 정당화하며 역사까지 들먹인다.”
 
  — 이학봉은 어떤 인물이던가.
 
  “이학봉이란 인물을 실제로 만나 보고 싶었다. 그런데 작가가 만나지 말라고 했다. 30분만 같이 얘기하면 다 넘어간다고. 대학 후배 아버지가 군인이셨는데 한때 이학봉과 같이 근무했다더라. 그 후배도 비슷한 얘기였다. 중도 지향적이고 온건주의자라고.”
 
  — 〈이산〉의 장태우는 정조에 맞서 흔들리는 노론을 규합하던 인물이다.
 
  “장태우는 노론 영수이면서 군왕과 토론을 한다. 조선사회의 건강함은 논쟁을 통해 나왔다. 신하가 왕에게 면담을 신청하더라. 한마디로 대통령과 ‘다이 다이 뜨자(1대 일로 맞선다)’는 거다. 정치는 한쪽 방향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서로의 가치를 지향하는 게 필요하다. 나도 어릴 때 유시민 작가처럼 수틀리면 확 쌔리는(때리는) 시절이 있었는데 나이 들면서 세상을 두부 자르듯 나눌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하하하.”
 
 
  “같은 배우 끼로 보면 ‘쟤는 7번 스킬을 이 대목에서 쓰는구나’”
 
드라마 〈아름다운 나의 신부〉에서 조폭 보스인 송학수 역을 맡은 이재용.
  — 배우는 극중 인물이 아무리 미워도 진짜 악인처럼 보여야 한다. 그게 배우의 운명이다.
 
  “그렇다. 아무리 악역이라도 내가 맡은 배역을 변호할 수 있어야 한다. 극중 인물과 현실의 배우 사이에 간극이 생기면 안 된다. 머릿속에선 선악을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겠지만 현실은 불가능하니까.”
 
  — 그럼 어떻게 연기하나.
 
  “이 인물의 인간적 변명부터 사회적 변명까지를 죄다 유추하고 데이터로 백업을 해 놔야 한다. 선량한 사람도 갑자기 끼어드는 얌체 운전자를 만나면 입에서 십원짜리가 12개 날아가질 않나. 그게 인간이다. 한쪽 면만 보고 악인의 탈을 씌우면 그에 상응하는, 반대방향의 가치들도 전혀 보지 못하니까.”
 
  — 경험상, 세상에 100% 악인은 없더라.
 
  “굳이 선악을 나누자면 6 대 4, 7 대 3이 아닐까. 그게 인생이다.”
 
  — 연기방법론으로 들어가 보자. 어떻게 연기하나.
 
  “연기는 인간행위의 재연(再演)이자 삶의 재구성이다. 특별한 인물의 후경(後景·그는 후경을 ‘라이프 스토리’라고 칭했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연기방법론이 다르다. 호랑이가 사슴을 바라보듯 생태계 포식관계로 악인을 재단해선 곤란하다. 인간은 번뇌에 가득 찬 복잡한 존재니까.
 
  예전에 깡패연기를 하면 자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야 했다. 그러면 피곤한 인상이 배어 나와 나쁜 기운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대놓고 나쁜 짓만 하는 악한은 관객이 ‘나쁜 새끼’라고 말하며 그 배우를 잊어버린다. 촛불이 일렁이듯 눈빛이, 그 짧은 순간에, 흔들리는 걸 보여줘야 한다. 마냥 고함치고 살벌하게 하는 연기야 누구나 할 수 있다.”
 
  — 그게 진짜 연기겠다.
 
  “그게 인간에 대한 이해고 현실에 대한 해석이다. 배우는 왜 저 인간이 저럴까, 왜 분노할까 같은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 부패한 권력이 만든 불합리, 폭력성에 대해서도 분노해야 한다.”
 
  — 인간에 대한 관점은 뭔가. 성선, 성악, 백지설 중에 뭘 지지하나.
 
  “성악, 성선설은 아닌 것 같다. 인간은 환경이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유전적 환경도 중요하다. 부모 손길이 만든 성품이 DNA에 스며 있다. 그런데 배우는 지나치게 도덕률에 사로잡혀서도 연기를 못한다. 연기하는 입장에선 ‘모든 인간을 용서하라’가 맞을지 모른다. 배우가 강간하는 연기를 종교적 잣대로 재단해선 곤란하지 않겠는가.”
 
  — 음 … 그렇겠다. (배우는) 보통사람보다 내공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결국 연기는 인간학이다. 무대에서든 어디서든 만나는 모든 이가 연기표현을 위한 재료들이다. 결국 세상엔 삶의 얘기들도 가득하다. 인간의 얘기를, 인간인 내가 표현하기에, 인간학일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연기)방법론은 그저 스킬일 뿐이다. 배우가 어떤 스킬을 선호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같은 업자(배우) 끼로 보면 ‘쟤는 7번 스킬을 이 대목에서 쓰는구나’ 하고, ‘저 선배는 여기서 3번 스킬을 쓰네’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 ‘이재용이 이 상황에서 3·9번 스킬을 쓰네’라고 하겠지.
 
  “(웃으며) 맞다. 중요한 건 스킬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다. 연기는 인간학이니까.”
 
 
  이재용의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후경(後景)들
 
드라마 〈비밀의 숲〉의 한 장면. 김남진 역으로 분(扮)했다.
  이재용은 1963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지만 유년은 경남 마산에서 보냈고 초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그러다 다시 마산에 내려가 마산중앙고를 졸업하고 대학은 부산대 철학과(82학번)를 나왔다. 그는 “유년시절 6개 도시를 떠돌았다. 그래서 사투리, 표준말 모두에 능하다”고 했다.
 
  대학에선 철학 공부 대신 대학 연극 서클에서 배우 연습만 했다.
 
  — 이사를 많이 다닌 걸 보니 아버지가 군인이셨나.
 
  “아니다. 아버지는 요리를 하셨는데 바람처럼 떠돌기를 좋아하셨다. 친가는 경남 마산, 외가는 경북 의성이다. 아버지가 떠나면 어머니는 머리에 괴리 궤짝을 이고, 젖먹이 동생을 들쳐 업고서 내 손을 끌고 아버지를 쫓아 추격전을 벌였다.”
 
  — 어머니가 가정을 지키려 무던히 애쓰셨나 보다.
 
  “나도 한량 끼는 아버지를 타고났다. 먹고 노는 걸 좋아하니까. 그런데 꼬장꼬장하고 원칙적인 건 어머니를 닮았다. 어머니는 매사에 엄하셨다. 어른들이 집에 오시면 나는 무조건 무릎을 꿇고, 함부로 (어른들) 앞에서 사부작대지 않게 하셨다. 그리고 굉장히 자비로운 분이셨다. 정신적으로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게 많다.
 
드라마 〈주몽〉의 부득불로 출연한 이재용.
  어릴 때 우리집에 걸인이 찾아오면, 어머니는 물을 데워 목욕을 시켜서 보냈다. 거지가 남자 어른이라도 …. 더운 여름에도 식은 밥을 안 차렸다. 언젠가 ‘아버지 찾아 3만리’ 할 때다. 한밤중 어머니 손을 잡고 몇 km를 걷는데 철길에 한 여자가 젖먹이를 안고 하염없이 울고 있더라. 그 여자도 알고 보니 남편 찾아 3만리 중이었다. (웃음) 어머니가 이고 있던 궤짝을 내려놓고서 당신 옷을 입혀 주고 여비까지 손에 쥐여주었다. 그런 장면들이 내 평생을 지배했다.”
 
  — 잘은 몰라도 그런 자비심이 지금의 이재용에게 복으로 돌아갔나 보다.
 
  “그럴 거다.”
 
  — 연극배우가 되겠다고 하니 부모님 반응은 뭐였나.
 
  “아버지가 제일 가슴 아파하셨다. 어릴 때 총기가 있었고, 상이란 상은 다 받았다. 아버지는 판검사가 되길 바랐다. 아버지 왈 ‘판검사 돼 봐라. 와이로(뇌물)가 얼매나 들어오는데’ 하셨다. 판검사는 아버지 당신의 꿈이셨다. 그러나 항상 세상의 그늘에 사셨으니 자식이 쨍하고 볕 들길 바랐는데, 듣도 보도 못한 철학과에 진학하질 않나, 굶어죽을 연극한다니까 엄청 실망을 많이 하셨다.”
 
  — 어머니는?
 
  “어머니는 집안에 예술가 한 명쯤은 괜찮다고 허락하셨다. 대학시절, 마산에서 부산까지 통학할 때, 술 담배를 하지 말라고 하셨음에도 내 바지주머니에 담배랑 용돈 5000원을 몰래 넣어주셨던 기억이 난다.”
 
 
  “연극은 마약 같아서 사람의 피를 마르게 하지만 재미가 있다”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 〈제5공화국〉 한 장면. 이학봉 역으로 출연했다.
  이재용은 배우 경력이 35년째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연기경력을 쌓았다. 부산대 연극동아리 ‘극예술연구회’에서 활동하며 연기수업을 했다.
 
  “그땐 연기 트레이닝이란 게 없었다. 이호재, 전무송의 공연을 보러 입장료만 들고 상경했다. 앞자리에 앉아 몇 번이고 공연을 보면서 ‘저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구나’ 하고 배웠다. 연극은 마약 같아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사람의 피를 마르게 하지만 재미가 있다.”
 
  — 어떤 재미?
 
  “연극은 삶의 압축이다. 연애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연애 과정에서 온갖 졸렬함을 다 겪지만 드라마에선 모든 게 함축돼 있다. 지우고 생략하고 사랑의 엑기스만 뽑아서 그 최대치를 한정된 시간 내에 표현하니까 보통사람이 못 느끼는, 마치 가상현실에 빠지는 듯한 매력이 연극에 있다.”
 
  — 아무리 배고파도?
 
  “대학 3학년 때 이렇게 연극하다간 굶어죽을 것 같아 일본으로 유학을 가려 했다. 하숙집 형님이 양장점을 했는데 거기 놀러갔다가 패션잡지를 보니 신세계더라. 일본 가서 패션도 배우고 상업사진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유학을 준비하는데 신원보증이 필요했다. 보증을 서기로 한 친구 매형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몇 년 기다리다가 뜻을 접고 말았다. 그 무렵 부산대 출신 선후배가 주축이 돼 ‘극단 여명’이 창단됐다. 나는 부산 남포동 구둣방 골목에서 낭인생활을 하며 연기에 빠져들었다. 삼시 세끼 라면 먹고 피똥 싸면서 ….”
 
  — 극단 창단 작품은 뭔가.
 
  “〈미시시피의 결혼〉이라고 스위스 작가의 작품인데 이 사람이 좌파 계열이었다. 그런데 창단공연에 온 관객이 4000명이나 됐다. 지금 생각해도 꿈의 숫자다. 대박이 났다. 당시(1987년) 민주화 열기가 있었고 그런 욕구를 담았다.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선배하고 우리랑 사회문제를 건드리는 내용을 무대에 올렸다.”
 
  — 송강호, 김윤석도 부산에서 연극을 했었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빛을 못 보고 서울로 올라와 극단 연우무대에서 연극을 했다. 당시 연우무대는 좋은 체제, 깨어 있는 사람이 많아서 배우 사관학교로 유명했다. 거기 출신 중에 명배우들이 많이 나왔으니까. 연극이 예술지상주의에 빠지지 않고 대중의 현실적 삶과 호흡하는 명제를 기치로 세웠다.”
 
영화 〈순수의 시대〉에서 이재용은 조선건국을 계획하는 정도전 역을 맡았다.
  — 부산에서 연극을 할 때 꿈은 뭐였는가. 성공해 서울 무대에 진출하는 거였나.
 
  “그런 건 없었다. 부산에서 성공하고 싶었다. 그런데 부산사람들이 서울에서 내려온 극단은 높게 평가하고 부산 연극단은 저평가했다. 그들도 별것 없는데 말이다. 당시 나는 자꾸 진화하고픈 욕구가 있었다. 고전의 반복, 뻔한 연출, 이런 게 싫었다. 혁신적이고 재미난 연극으로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연극팀을 구성해 평생 연극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부산 출신 배우들이 많다. 가수나 개그맨도 많다. 지리적 특징과 관련이 있나.
 
  “그렇다. 부산만큼 바다, 산, 강, 평야가 한꺼번에 있는 도시가 드물다. 그렇다 보니 사고가 개방적이고 다양한 자극에 노출된다. 대도시의 풍모도 갖추고 있고 역사적으로 축적된 히스토리도 많다. 그 안에서 보이지 않게 영향받는 게 많나 보다. 드라마 〈막돼 먹은 영애씨〉의 제자 김현숙이 이런 얘기를 했다. 그녀는 내가 연기학원에서 연기 지도를 한 적이 있다. ‘선생님. 서울 것들은 내가 바다 보고 싶어 운다고 하면 그걸 이해 못해요’라고. 바다 향수라는 게 거의 본능처럼 각인돼 있다. 진짜 웃기는 게 서울에서 아무리 편하게 지내도, 부산에 내려가 짠내 나는 바람 맡으면 등줄기에서 뭔가가 싹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다. 집에 내려가 이틀 있으면 2kg은 찌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그의 집은 아직도 부산이다. 부산 서구 서대신동에 살다가 얼마 전 결혼 20년 만에 해운대 쪽으로 이사를 갔다. 그가 머무르는 경기도 일산 집은 그냥 잠만 자는 오피스텔이다.
 
  — 연기를 안 했으면 뭘 했을 것 같나.
 
  “글쎄, 성향으로 보면 종교인이나 의사? 아니면 다른 장르의 예술(그림)을 하고 있을 수도 ….”
 
  — 부산대 82학번 철학과 동기들은 지금 뭘 하나.
 
  “10여 명이 모여 장학회를 꾸리고 있다. 저마다 각 방면에서 중구난방으로 살지만 의식이 각별하다. 《국제신문》 논설위원 하는 친구도 있고, 고신대 의대로 진학해 의사를 하는 이도 있다. 농협 직원, 견과류 파는 상인, 목사도 나왔다. 매일 단체 카톡방을 통해 소통하며 지낸다.”
 
 
  ‘이기 바로 의린기라’에서 이재용식(式) 의리는?
 
연기경력 35년차를 맞은 이재용. 동료 배우 사이에서 맏형 역할을 하고 있다. 탤런트 장근석(왼쪽)과 함께.
  — ‘내 인생의 작품’은 뭔가.
 
  “영화 〈친구〉(2001)가 연기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곽경택 감독을 만난 것도 운명이다. 곽 감독 연출부에 있던 후배가 나를 추천해 그의 데뷔작 〈억수탕〉(1997)에 처음 출연했다. 그 인연으로 다음 작품 〈닥터 K〉(1997)와 〈친구〉와 인연을 맺었다. 곽 감독이 나를 ‘생뚱맞은 배우’로 소개받았다.
 
  나는 당시 부산 서대신동에 살고 있었고 곽 감독은 동대신동에 살 때다. 집이 1km 거리다. 선술집에서 만나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며 온갖 얘기를 다 했다. 좋아하는 만화 얘기까지 했다. 곽 감독이 ‘형은 참 재밌는 사람 같다’고 하더라.
 
  한번은 곽 감독의 동생이 총선에 나간다고 해서 처가 식구들을 동원해 도운 기억도 난다. 우리 둘이 싸우던 시절도 있었고 세월이 지나면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 요즘도 만나면 편하다. 속에 있는 것 없는 것 다 얘기할 수 있으니 ….”
 
  — 참, 유명한 대사, ‘이기 바로 의린기라’에서 이재용식(式) 의리는 뭔가.
 
  “믿음이다. 예를 다해 믿음을 지키는 게 의리다. 난 아직 40년 지기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도 경어를 쓴다. 장난 칠 때는 십원짜리 욕을 하지만 평소엔 ‘그러시게’ ‘어떠신가’ 하고 말한다. 처음 나를 대하는 이들은 깐깐하게 보지만, 3번 같이 술을 마시면 안다. 속을 다 까발려서 보여준다. 뭔가를 포장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 한창때 주먹을 좀 썼나.
 
  “사람 패는 걸, 상상을 잘 안했다. 밑에 애들을 대신 시키지 …. (웃음) 어머니가 내 사주를 가끔 보셨는데 ‘오른손 주먹을 쓰지 마라’는 게 공통적으로 나왔다. 주먹 쓰면 사단이 나고 사람이 상하는 일이 생긴다고 했다.”
 
  — 애청곡은?
 
  “손시향의 ‘이별의 종착역’. 그런데 김현식 버전으로 부른다.”
 
  — 감명 깊게 읽은 책?
 
  “《희랍인 조르바》. 성과 속에 대한 딜레마로 가득 찬 적이 있었다. 인간적 해답을 그 책 속에서 찾았다. 그 무렵 조르바의 기행을 흉내 낸 적이 있다.”
 
  — 입시학원 연기 선생을 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배우 장혁 류승수 김정태, 개그맨 김숙 김현숙 김태현 등이 내게 연기를 배웠다. 어떤 선생이었냐고? 호랑이 선생으론 표현이 부족하다. 악마 선생?”
 
  — 주량은?
 
  “컨디션 좋을 때와 나쁠 때가 다른데, 소맥(소주+맥주)을 말면 1박2일은 먹고, 소주만 먹을 땐 두 병 반 먹으면 집에 가서 드러눕고 싶다. 막걸리는 먹다 보면 정신줄 놓고 ….”
 
 
  이재용이 멜로 역을 맡게 된다면 …
 
영화 〈도마뱀〉에서 이재용은 ‘서정 스님’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다시 연기 얘기로 돌아가 보자. 영화 〈도마뱀〉(2006)의 이재용이 기자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 흥행은 그저 그랬지만 그는 주인공 아리(강혜정)의 삼촌인 서정 스님으로, 부모 잃은 어린 조카가 여인이 되기까지 애틋한 시선으로 감싸 안는다. 어쩌면 그의 내면과 가장 가까운 인물인지 모른다. 그는 “조연이기 때문에 감정이 너무 드러나지 않도록 자제하고 한 그루 소나무처럼 서 있으려 했는데도 아리와 조강(조승우)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어쩌면 내 현실적인 모습은 〈달려라 울엄마〉의 ‘이 선생’, 〈도마뱀〉의 ‘스님’ 속에 다 들어가 있는지 모른다. 사실 〈도마뱀〉 찍다가 불가에 귀의하라는 정식 제의도 받았다. 할 걸 그랬나?
 
  사실, 살아가는 과정이 모두 배우고 얻고, 그러면서 ‘내’가 되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어쩌면 ‘나’라는 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나는 지금도 자유롭게 산다. 힙합하는 이도 만나고 DJ 하는 동생들과도 어울린다. 금기하는 영역을 스스로 안 가지려 노력한다.”
 
  — 35년차 배우도 연기가 어렵나.
 
  “연기는 복잡한 신경생리학적 과정을 거친다. 주어진 대본을 해석하고, 대본 속 상황을 상상하고 재구성해서 거기에 자기의 감각과 사고를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컨트롤한다. 여기에는 배우 나름의 인문학적, 사회학적 해석이 필요한데 그게 없으면 정확한 게 안 나온다. 대본을 받아들고 짧은 시간에 연기를 생산하는 과정이 고통스럽다.
 
  배우 허준호가 드라마 〈로비스트〉 (2007)를 끝내고 한국을 뜨기 전 분장실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형, 매일 일수 찍듯 연기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쪽 대본 받아 쥐고 즉석에서 카피하듯 연기해서 돈 버는 걸 힘들어했다. 배우는 끊임없이 매너리즘과 싸워야 하고 자기변신을 고뇌해야 한다.”
 
  — 배우가 무대 위에서 느끼는 기쁨은?
 
  “내가 연소되는 느낌이다. 현실 속 ‘나’란 소재를 태워 없애면서 저쪽 배역의 인물로 건너간다. 마치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느낌이랄까.”
 
  — 배우가 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하나.
 
  “역지사지의 마음이 필요하다. 남의 처지를 공감할 수 있는 흡수력 있는 사람이 연기를 잘한다.”
 
  — 배우 이재용은 깡패 연기도 그렇지만 우는 연기를 잘할 것 같다.
 
  “맞다. 나 눈물이 많다. 어릴 때부터 감수성이 예민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내가 ‘하드’한 줄 아는데 마누라는 나를 천덕꾸러기라고 놀린다. 신문 기사 읽다가 울고, TV 다큐 보다가 울고 …. 그러면 마누라는 ‘저 봐라. 또 저런다’ 하고 혀를 찬다.”
 
  3시간 이상 그와 대화를 나누니 배우 이재용의 내면이 느껴졌다. 깡패나 악한 같은 겉모습과 달리 그의 내면은 한없이 부드럽고 섬세해 보였다. 그가 멜로영화의 주인공이 된다면 … 대박이 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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