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소 400승에 400패는 해봐야 진정한 지도자”
⊙ “현장 感은 즉흥적인 게 아니라 인내에서 나온다”
⊙ “타이론 우즈가 歸化한다 해도 전성기 최고타자는 이승엽”
⊙ “전성기 최고 투수는 최동원보다 선동열”
⊙ “현장 感은 즉흥적인 게 아니라 인내에서 나온다”
⊙ “타이론 우즈가 歸化한다 해도 전성기 최고타자는 이승엽”
⊙ “전성기 최고 투수는 최동원보다 선동열”
이길 줄 아는 감독.
현역 감독(쌍방울·OB·두산·한화) 시절, 승보다 패(980승 45무 1032패, 승률 0.487)가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는 법’을 아는 감독이 김인식(金寅植·70)이다. 패배를 거부하며 끝까지 밀어붙인다고 할까. 그의 별명은 치열한 박빙 상황에서 표정변화가 없다고 하여 ‘석상(石像)’ ‘돌부처’라 불린다.
사람들은 그러나, 그의 야구를 휴먼볼(Human ball·선수의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야구)이라 칭한다. 승리 지상주의가 아니라 인화(人和), 믿음의 야구를 지향한다는 의미다.
김인식 감독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금메달을, 2006년과 2009년 WBC 1, 2회에서 4강과 준우승을 이끌었다. 작년 급작스레 꾸려진 야구 대표팀을 이끌고 세계야구 12강(强)이 겨룬 ‘프리미어 12’에서 우승했다.
아무도, 누구도 우승을 기대 안 했다. 예선 첫 경기에서 한국은 일본에 0-5로 졌다. 그러나 준결승에서 일본과 다시 만나 4-3 역전승을 거뒀다. 그것도 9회에. 최고 명승부를 연출하고 결승전에서 미국을 8-0으로 대파했다.
요즘 그는 국민적 인기를 구가 중이다. 류현진(LA 다저스) 선수와 라면 광고를 같이 찍더니 최근엔 단독으로 맥주 광고에 출연했다. 한창 ‘물오른’ 감독을 2월 초 서울 강남구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감독은 KBO 규칙위원장과 기술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별명이 ‘볼(이) 빨간 감독’이라던데요.
이런 질문을 하고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하하하. 그래요? 원체 제 피부가 약해요. 또 햇볕에 그을려 뻘게요. 그래서 열을 안 받아도 뻘건 편이었어요, 양쪽 볼이 다. 모르지, 열 받으면 더 뻘게졌는지….”
―화가 나면 어떻게 표현하나요?
“직설적으로 감정을 드러낼 때도 있지만 삭일 때가 더 많아요.”
―감독이란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요?
작년 정규레이스 우승팀인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 감독은 ‘외로운 자리’라고 했다. “감독이 되면서 주위 친구가 떨어져 나갔다. 혼자 숙소에서 술 마시는 날이 많다”는 것이다.
“이해가 가요. 류 감독이 우승팀 수장인데도 외롭단 말이에요. 제가 해태 수석코치(1986~1989년)로 있을 때는 하는 일 하나 없이 계속 팀이 연승했어요. 사실 가르친 게 없어요. 근데 쌍방울 감독(1990~1992년)을 하면서 매일 져요.
그땐 7회 이후에 비가 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젖은 유니폼으로 불 꺼진 숙소에 돌아와 털썩 소파에 주저앉아요. 숙소에 들어가는 시간이 밤 11시쯤 될까요? 저도 모르게 시합 생각에 빠져드는 겁니다. ‘왜 졌지? 왜 이리 안 풀리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제 씻고 자야지’ 하는데 시계를 보면 새벽 4시야. 잠깐이라고 생각했는데…. 류 감독처럼 이기는 감독도 외롭고 혼자 술 먹는데, 지는 감독은 오죽하겠어요?”
―그땐 술 많이 드셨어요?
“몸 다치기 전에는 술 좀 하는 편이었어요. 술 담배 끊은 지 11년 됐어요.”
그는 한화 감독 시절인 2004년 12월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한때 폭탄주 20잔은 거뜬히 마시는 두주불사(斗酒不辭), 하루 담배 3갑을 피웠던 그였다.
“담배는 그날로 끊었는데 술은 가끔 먹고 싶더라고. 요즘도 술자리엔 많이 가요. 위스키 온더록스로 1잔 정도는 해요.”
인화와 소통의 리더십
김인식 감독 하면 인화, 믿음, 소통이란 말이 으레 따라다닌다. 한번 믿으면 끝까지 밀어붙이고 기량이 뛰어나도 팀 인화를 해치면 기용하지 않는다. 사람이 좋다고 맺고 끊는 것조차 흐리멍덩하지 않다. OB 감독 시절인 1998년 9월 29일 선수단 버스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큰 부상을 당한 선수는 없었지만 대부분 투수가 다쳤다고 한다. 그런데 2군 코치 중에 김 감독에게 안부전화를 건 이가 한 명밖에 없었다. 시즌이 끝나자 2군 코치들과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그때 부산에서 롯데와 시합을 끝내고 광주로 넘어가는데 비가 무지하게 내렸어요. 예감이 좋지 않았어요. 뒤따르던 버스가 보이지 않아 비를 맞으며 걸어가 보니, 버스가 낭떠러지에 걸려 있는 게 아닙니까. 선수들을 구조해 병원으로 이송하는데 막 전화가 걸려왔어요. 안부를 묻는 전화였어요. 그런데 2군 코치 중에 1명 빼고 아무도 전화를 걸지 않았어요.”
―섭섭했겠네요.
“아, 섭섭했지. 다른 구단 사람들도 걱정이 돼 어떻게 됐느냐고 전화하는데….”
당시 신문기사를 찾아보니 김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전화를 안 해서 괘씸한 게 아니라 동지에 대한 최소한의 정도 보이지 않는 사람과는 같은 배를 탈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를 아는 기자들은 김 감독에 대한 호의적인 기사를 많이 쓴다. 어느 야구기자는 “무리하게 띄워주는 기사가 많다”고도 했다.
―기자들이 감독님을 ‘띄워주는’ 기사를 많이 쓴다고 하대요.
그는 “허허, 그래요?”하고 반문했다.
―반면에 ‘기자들 질문을 잘라먹지 않고 잘 경청한다’는 평가가 많아요.
그래도 그는 “허허, 그래요?”라고 약간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류현진 선수와 라면 광고를 찍었는데 얼마 받았나요?
“출연료는 (류)현진이가 엄청나고….”
―배 차이?
“아니죠. 더 많이 차이가 나죠. 현진이는 연간(年間)계약이고 나는 단발. 3개월 계약이에요.”
―메이저리그 속설에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말이 있더군요. 다 그런 것은 아닌가 봐요.
“그래요? 허허. 그거야 뭐….”
―선수들이 술자리를 가지면 누가 주도했는지, 누가 참석했는지 귀신같이 알아낸다고 하대요.
“누가 그런 말을 해요? 참, 나….”
현장 感의 실체
‘김인식 리더십은 부작용이 적고 효과는 지속적’이란 말이 따라다닌다. 김응룡식(式) 공포의 카리스마나 ‘아끼고 아껴서 칭찬 한마디를 하는’ 김성근식 리더십과 판이하다. 그의 수평 리더십은 가는 곳마다 팀워크를 단단하게 하고 실패한 선수를 일으켜 세운다는 평가다.
―김인식 리더십에는 부작용이 적다는 말, 어떻게 생각하세요?
“과찬의 말…”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믿음의 야구란, 거꾸로 불신의 야구와 동전 양면처럼 닿아 있다. 기용되지 않는 선수 입장에선 감독의 불신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김인식의 야구는 ‘선수 기용 스펙트럼이 좁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 뛰는 선수 입장에선 그렇게 볼 수 있죠. 1군 선수가 28~30명 정도인데 베스트 멤버는 10명이죠. 보통 한 경기에 기용되는 선수는 대략 17~18명입니다. 선수 입장에선 자신이 (경기에) 나가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감독 입장에선 그렇지 않죠.
믿음의 야구… 그게 뭔지 저도 모르겠어요. 몇 개월 계속 내보내면 괜찮을 것 같아 기용하다 보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어요. 계속 삼진을 먹거나 결정적일 때 못 칠 수 있지만,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시기가 온다고 봅니다. 투수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때까지 믿음을 보여주면 선수들도 ‘나를 이렇게 믿어주는구나’고 생각하게 되죠. 그렇게 해서 성공한 선수들이 있어요.”
지난 프리미어 12에서 한 박자 빠른 투수 운용이 화제가 됐다. 선발 투수가 조금이라도 흔들릴 경우 가차없이 불펜 투수들을 빠르게 투입했다. 김인식 야구의 전매특허인 ‘발 빠른 투수교체’는 이번에도 확인됐다.
“프리미어 12 우승은 전혀 예상 못 했어요. 예선통과를 우선 1차 목표로 잡았을 뿐이에요. 투수교체는 데이터, 현장 감(感), 더그아웃에서 불펜코치와 감독의 판단에 따라 이뤄집니다. 누가 말을 안 해도 그땐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시합 1시간 전에 전력분석팀과 데이터를 가지고 의견을 나누고 시합에 들어가지만, 현장에서의 컨디션, 평상시 선수에게 느꼈던 장단점, 이런 게 섞여서 ‘이 시점에서 붙여도 되겠다’는 감을 갖게 됩니다. 그다음은 보이지 않는 치열한 승부라고 봐야죠.”
어느 상황에서 누구를 기용할지는 감독 몫이다. 감독 판단은 야구 데이터를 뛰어넘는다. 때로 데이터보다 직감(直感)이 위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그 직감이란 운(運)이 아니라 경험에 기반 한다.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는 단기전에선 곧잘 ‘감’이 변수가 되곤 한다.
그런데 감은 즉흥적인 게 아니라 인내에서 나온다.
김인식 감독은 “나는 선수가 실수해도 그냥 놔둔다. 선수가 실수했을 때 바로 교체하면 선수를 불안하게 한다. 감독이 또 바꾸지 않을까 생각하다 보면 발전이 없다. 실수하더라도 다른 것을 익혀 실수를 만회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니까 선수들이 좋아지더라”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상황이 오면 기다려야 합니다. 판단이 너무 빠르면 그르치기 쉬워요. 때론 참고 또 참아야 해요. 결정적 기회가 올 때까지 그냥 밀고 나가고 승부처다 싶으면 모두 넣습니다.”
야구기자인 임진국씨는 김 감독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예전엔 감독들이 머리를 식히려 가끔 고스톱을 쳤다. 김 감독의 만만디 기질은 노름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는 먹을 패가 깔렸어도 일단 돌린다. 판을 주시하다가 상대가 ‘고!’ 하고 외치면 막판 뒤집기에 들어간다. 한마디로 참았다가 크게 먹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임 기자는 “야구판에 타짜 수준의 감독들이 꽤 있는데 김 감독도 타짜 계열 감독으로, 높은 승률을 자랑하는 고수 중의 고수”라고 했다. 김인식 감독은 배짱 좋은 승부사라는 얘기다.
승부 뒤에 경험하는 끔찍한 감정
―종교를 믿나요?
“기독교입니다.”
―결정적인 상황일 때 신(神)에 의지하나요?
“그런 것까지는 아니고, 하여간 이 분야에 깊숙한 것은 그래도… 우리가 좀 아는 게 아닌가 하는… (웃음) 때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게 ‘단기전 승부사’란 말이 나오는 이유인가요?
“가끔 경기가 끝나고 나면 뭐랄까, 끔찍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어떻게 내가 이런 작전을 썼지?’ 뭐 이런 건가요?
“아뇨. 이런 작전을 펴는 순간엔 못 느끼지만 끝나고 나면, 남들이 다 아니라는 걸 고집해서 밀어붙였는데, 거기서 만일 안 됐을 경우 모든 비난을 다 받아야 되니까 섬뜩할 때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국가대표 전임 감독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현재 KBO 규약에 따르면, 국가대표(이하 국대) 사령탑은 전년도 프로야구 우승 감독, 준우승 감독 순으로 맡도록 돼 있다. 그러나 국내 리그에 매달리다 보면 국제대회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있어 리그 우승팀 감독이 ‘국대 감독’을 고사하는 상황이다. 5년 연속 페넌트레이스 우승팀인 삼성의 류중일 감독이 그런 예다. 그래서 ‘국대 전임 감독제’가 비중 있게 논의되고 있다. 김인식 감독의 말이다.
“이해합니다. 현역 감독들은 치열한 순위싸움을 해야 하니까 국제대회 준비에 굉장히 부담을 갖고 있다고 해요. 저도 전임 감독제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야 미리 대비를 해서 선수 선발이라든가 모든 것을 체크해서 만반의 준비를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당장 내년 3월에 국가 간 야구 토너먼트 대회인 월드클래식베이스볼(WBC)이 열린다. 미국의 메이저리그 선수와 각국 프로야구 선수들이 모두 참여하는 국제대회다. 국대 감독은 ‘독이 든 성배(聖杯)’일지 모른다. 태극마크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이다.
―내년 WBC에도 국가대표 감독 하시겠죠?
“내가 할 얘기는 못 되고….”
기자는 이 대목에서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국가대표 감독으로 선수를 다시 꾸린다면 선발로 누가 좋을까요. 전성기 시절, 이승엽과 ‘타이론 우즈’ 중 누굴 택하실래요?
미국 마이너리그 출신인 타이론 우즈는 OB 베어스(現 두산 베어스) 감독 시절, 김인식이 데려온 용병타자다. 1998년 입단 첫해 42개 홈런을 터뜨려 당시 한국 프로야구 단일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장종훈 41개, 1992년)을 깨뜨려버렸다. 우즈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국내 리그에서 활약하며 KBO 리그 가장 성공한 외국인 선수로 평가받는다.
“(크게 웃으며) 물론 이승엽이죠. 물론 우즈가 미국인이지만 정말 무시 못 하는 선수죠. 그래도 결국 뽑는 선수는 이승엽이겠죠.”
―전성기 우즈가 귀화(歸化)한대도요?
“그래도 전성기 이승엽이 (최고) 아닌가요?”
우즈가 한국에서 성공한 비결을 두고 김인식 감독의 인내심을 꼽는 이들이 많다. 뚝심 있게 될 때까지 다그치거나 퇴출 압박을 하지 않았던 그다.
“우즈가 그해(1998년) 6월 초까지 못 쳤어요. 타율도 형편없었고… 유독 삼진이 많았어요. 우즈의 성공요인은 변화구에 적응을 하면서예요. 국내 최고 용병을 꼽자면 우즈와 펠릭스 호세(롯데 자이언츠, 1999·2001·2006~2007년)가 막상막하일 겁니다.”
―국내 최고타자로 꼽히는 이대호와 박병호 둘 중 한 명을 고른다면?
박병호는 홈런과 장타력 부문 KBO 리그를 석권한 뒤 올해 미국 MLB(미네소타 트윈스)에 진출했고, 이대호 역시 타율·홈런·타점 등 KBO 리그 타격 7관왕에 오른 강타자다. 이대호는 KBO와 일본 리그를 평정하고 올해 MLB에 도전,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을 맺었다.
“이대호인데….”
그의 선택은 뜻밖에도 박병호보다 이대호였다.
―장종훈과 심정수는?
‘연습생 신화’인 장종훈은 1992년에 41개의 홈런을 때려내 한국야구에 최초로 40홈런 시대를 연 한화 이글스의 레전드로 꼽힌다. 힘이 좋아 ‘헤라클레스’란 별명을 지닌 심정수는 전성기 시절 이승엽과 홈런 레이스를 벌일 만큼 장타력이 뛰어난 거포였다.
“심정수.”
―선발투수 중에서 전성기 선동열과 최동원 중 한 명만 택한다면?
“선동열.”
―메이저리그 투수 류현진과 박찬호는?
“박찬호.”
―송진우와 구대성은?
이글스에서 1989년부터 2009년까지 뛴 송진우는 21시즌 동안 KBO 기록 역대 최다 선발 등판(377차례), 최다 승리투수(210승), 최다 투구이닝(3003.0), 최다 탈삼진(2048개) 등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국과 일본·미국·호주 등 4개국에서 투수로 활약한 구대성은 KBO 리그 역대 최소경기 200세이브, 역대 최연소 200세이브를 기록한 베테랑이다.
“송진우.”
―장명부와 박철순은?
재일교포 출신 투수 ‘너구리’ 장명부(삼미 슈퍼스타즈)는 KBO 리그의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인 30승(16패 6세이브)을 거뒀다. ‘불사조’ 박철순은 기적 같은 22연승으로 프로야구 원년(1982년)에 24승(4패 7세이브)을 기록하며 그해 시즌 MVP가 됐다.
“전성기를 따지니까 장명부가 좀 더 나은 게 아닌가…?”
―국대 감독으로 우승, 준우승, 금메달도 땄습니다. 앞으로 뭘 더 하고 싶으세요.
“지금 하고 있는 일 잘 해야지.”
그는 KBO 규칙위원장과 기술위원장을 맡고 있다.
―현장 감독의 꿈, 여전한 거죠?
“뭐, 좀, 누가 불러주면… 제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勝보다 敗가 더 많은 감독
김인식 감독은 통산 980승 1032패 45무로, 김응룡 감독(1567승 1300패68무)과 김성근 감독(1302승 1112패 57무)에 이어 3번째로 승이 많은 감독이다. 두산 감독으로 우승 두 차례(1995, 2001년), 한화 감독으로 준우승 한 차례(2006년)를 기록했다.
통산 성적에서 승보다 패가 많다. 그 속에는 신생팀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을 맡아 악전고투하던 시절이 눅눅히 배어 있다. 당시 쌍방울 선수들은 1군 경험이 별로 없는 선수들과 ‘어중이떠중이 반쪽 선수들이 다수였다’고 한다. 쌍방울은 결국 프로야구 최초로 미아구단이 돼 한국야구사(史)에서 사라졌다. 그의 말이다.
“야구감독으로 능력을 발휘하려면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쓴맛을 두루 겪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소 400승, 400패를 겪어봐야 해요. 계속 승리하는 팀만 맡아도 곤란해요. 승리의 맛은 알아도 패배의 고통은 모르잖아요.
제가 해태 수석코치(86~89년) 시절, 해태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에서 4번 연속 우승을 했어요. 그 시절에는 뭐 한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늘 이기는 거야. 그런데 쌍방울 감독(90~92년)을 하며 패배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뭘 해도 늘 지는 거야. 굉장히 힘들었어요. 경험이 없거나 다른 팀에서 방출된 선수들만 꾸려서 경기를 해야 했어요.
선수 멤버가 좋을 때, 또는 선수 멤버가 약할 때를 모두 경험하며 얻은 게 많았어요. 선수 멤버가 좋으면 시행착오나 잘못이 조금 있더라도 묻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수 멤버가 좀 나쁘다 싶으면 조금만 실수해도 크게 (실수가) 불어납니다. 최소 400승에 400패는 해봐야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쌍방울 시절, 기억나는 선수가 있나요?
“투수 김원형, 포수 박경완 같은 신인이 기억나요. 김기태 감독(현 KIA 타이거즈)도 쌍방울 때 신인으로 들어왔어요. (김기태 감독이) 처음엔 잘 적응을 못 했어요. 루키를 4번 타자에 기용한다고 말들이 많았어요. 턱걸이 2할로 근근이 버티다 잠실구장에서 홈런을 치면서 어느 순간 홈런타자로 변했습니다.”
나중 김기태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김인식 감독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고. 김인식 감독의 인내심이 그를 살려냈다는 것이다.
―김응룡식 야구와 곧잘 비교가 되던데요?
“아마야구 시절, 한일은행과 크라운맥주 등에서 같이 야구를 했어요. 그분이 선배지요.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고 할까요? (김응룡 감독이) 후배들에게 엄한 면은 좀 있었지만 실제는 안 그런데 남들 보기에 그렇게 보이는 거지….”
―김응룡 감독보다 ‘더 용기 있고 더 망설이지 않는’ 감독이라는 평이 있어요.
야구 전문가들은 ‘김응룡의 단호함과 용기가 김인식에게서 더 철저히 업그레이드됐다’고 평한다. 몇몇 야구기자는 “김인식이 순진한 듯 보이지만 누구보다 영리하고 치밀하며 냉혹하다”고 말한다.
김 감독이 쌍방울 시절, 현장을 취재한 임건순 기자는 “김 감독은 경험 전무한 선수, 타 팀에서 방출된 쓸모없다 진단받은 선수를 모아 이기는 야구, 이기기 위해 전력을 쏟는 야구를 했다. 이것은 신생팀과는 뭔가 맞지 않아 보였다”고 했다. 임 기자는 “선수들은 이기면서 성장한다. 강해서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면서 강해진다. 투수들을 항상 쏟아부으면서 매번 전력투구하는 야구를 김인식이 보여주었다”고 회고했다.
김인식 감독은 패배를 끊기 위해 죽기 살기로 덤벼야 했고, 1승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눈물과 땀으로 경험하게 됐다.
―김응룡의 ‘한화’를 어떻게 봅니까. 실패작인가요?
명장 반열에 오른 김응룡 감독도 한화 감독(2012~2014년)을 맡은 후 최악의 승률을 기록하고 말았다.
“순위로만 따지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아무리 좋은 감독도 시즌 100게임 이상을 소화해야 하는 페넌트레이스에서는 전력 좋은 팀을 못 이깁니다. 단기전이나 중요 경기에서 감독 역할이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어요. 1년에 100게임 이상 하는 경기에서 감독이 조금 실수를 해도 팀 전력이 강하면 감독 실수를 선수들이 희석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약팀이 강팀을 못 이기게 돼 있어요. 단기전은 승부를 예측할 수 없고 약팀이 강팀을 뒤집는 이변도 가능할 수 있지만 많은 시합을 치르면 역시 전력이 강한 팀이 승을 더 많이 가져갈 수밖에 없어요.”
김응룡 VS. 김인식
김인식 감독도 5년간(2005~2009년) 한화 감독을 맡았다. 2005년 한화는 시즌 4위를 차지했고 2006년 3위(한국시리즈 준우승), 3위, 5위, 8위(창단 이후 최하위)를 했다. 그가 감독직에서 물러나면서 한화의 암흑기가 시작됐다. 이후 한화는 여러 차례 감독이 바뀌었으나 꼴찌 언저리를 맴돌았다. “당시 투수 류현진 말고는 멀쩡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화 암흑기의 이유는 뭡니까.
“아마 스카우트 실패도 있을 겁니다. 팀이 단단해지려면 노장, 중간, 신인이 골고루 있어야 하는데 한화는 그렇지 못했어요. 밑(신인)에서 위로 못 올라와 중간층과 노장층이 같이 늙어가는 식이었죠. 송진우와 정민철이 은퇴하고 이범호, 김태균이 해외로 이적하는 시기와도 맞물려 있어요.”
그는 “FA 제도가 있을 때인데도 선수를 못 데려와 선수층이 얇아진 것도 (암흑기의) 원인”이라고 했다.
“구단의 재정사정이 나빴어요. 타 팀 선수를 데려오자고 했는데 (프런트에서) 돈이 없다고 해요. 정확히 표현하자면, 돈 없다는 말은 못 하고 핑계를 대요. 마침 두산 홍성흔이 FA시장에 나왔는데 제가 영입을 주장하니 ‘어깨가 어떻고…’ 그러는 겁니다. 속으로 말했죠. ‘당신이 나보다 야구를 많이 알아?’라고요. 그땐 그룹 회장이 마른 수건도 짜라고 할 때였어요.”
당시 두산 홍성흔은 27억원의 FA 계약을 맺고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김성근 감독이 한화를 맡은 뒤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어요.
“저는 올해 우승팀으로 두산과 NC와 함께 한화가 경합을 벌일 것으로 보여요. 4강요? 롯데나 삼성, KIA, KT가 한데 뭉쳐서 한 자리 싸움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또 10개단 중에 분위기가 좋은 팀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NC, 두산의 전력이 제일 좋으니까 팀 분위기도 좋겠죠. 삼성도 계속 잘해 왔고 요즘의 한화 역시 으샤으샤 하는 분위기니까 좋을 것 같고.
다만, 박병호나 김현수 같은 KBO 스타가 MLB로 빠져나갔으니 흥행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는 측면도 있어요.”
―‘재활 공장장’이란 별명은 어떻게 해서 나왔나요?
“놀고 있던 최동원을 코치로 데려왔고 (남들이 외면한) 조성민도 투수로 데려왔어요. KIA에서 방출당한 타자 김인철도 한화에서 재기해 꽃을 피웠어요. 한화 오기 전에 김인철이가 홈런을 하나 쳤어요. 2005년 한화 와서 홈런 10개 치고 많이 도움이 됐어요. 한화 전력이 약하니까 (재활해서) 데려다 쓴 것이지요.”
그 외에도 지연규·조원우 등을 받아들여 약체평가 받던 한화를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두산 감독 시절에도 조계현·심재학 같은 중고참을 영입해 믿음의 야구를 꽃피웠다.
―배짱이 뭔가요? 단기전 승부는 일종의 도박이 아닌가요?
김인식 감독은 2001년 두산 감독 시절, 10승 투수 하나 없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꺾었다. 2000년 한국시리즈는 더 놀랍다. 18승 투수를 3명이나 거느리고 정규시즌 91승을 거둔 현대 유니콘스를 상대로 3연패 후 3연승을 거뒀다. 마지막 경기에서 패하고 말았으나 한국야구사에 최고의 기적을 연출할 뻔했다.
“글쎄요, 특별히 배짱이 좋은 건 아닙니다.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라는데, 일단 야구가 너무 어려워요. 너무 어려워….”
김 감독은 “어렵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자신의 야구를 ‘미완성(未完成)’으로 표현했다. 할수록 어렵고 여전히 배울 게 많다는 것이다. 실패와 패배로 쌓아올린 김인식의 야구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당장, 통산 성적 980승에서 1000승을 이루고 싶다.
―명장의 조건은 뭔가요?
“순간적으로 결정하거나 판단해야 할 때 보는 눈이 날카로워야 하고, 열정과 냉정함을 갖춘 가슴도 필요합니다. 또 포근한 가슴도 가져야 명장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도 그렇게(명장이) 되고 싶은데, 쉽지 않더라고요. 하하.”⊙
현역 감독(쌍방울·OB·두산·한화) 시절, 승보다 패(980승 45무 1032패, 승률 0.487)가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는 법’을 아는 감독이 김인식(金寅植·70)이다. 패배를 거부하며 끝까지 밀어붙인다고 할까. 그의 별명은 치열한 박빙 상황에서 표정변화가 없다고 하여 ‘석상(石像)’ ‘돌부처’라 불린다.
사람들은 그러나, 그의 야구를 휴먼볼(Human ball·선수의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야구)이라 칭한다. 승리 지상주의가 아니라 인화(人和), 믿음의 야구를 지향한다는 의미다.
김인식 감독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금메달을, 2006년과 2009년 WBC 1, 2회에서 4강과 준우승을 이끌었다. 작년 급작스레 꾸려진 야구 대표팀을 이끌고 세계야구 12강(强)이 겨룬 ‘프리미어 12’에서 우승했다.
아무도, 누구도 우승을 기대 안 했다. 예선 첫 경기에서 한국은 일본에 0-5로 졌다. 그러나 준결승에서 일본과 다시 만나 4-3 역전승을 거뒀다. 그것도 9회에. 최고 명승부를 연출하고 결승전에서 미국을 8-0으로 대파했다.
요즘 그는 국민적 인기를 구가 중이다. 류현진(LA 다저스) 선수와 라면 광고를 같이 찍더니 최근엔 단독으로 맥주 광고에 출연했다. 한창 ‘물오른’ 감독을 2월 초 서울 강남구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감독은 KBO 규칙위원장과 기술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별명이 ‘볼(이) 빨간 감독’이라던데요.
이런 질문을 하고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하하하. 그래요? 원체 제 피부가 약해요. 또 햇볕에 그을려 뻘게요. 그래서 열을 안 받아도 뻘건 편이었어요, 양쪽 볼이 다. 모르지, 열 받으면 더 뻘게졌는지….”
―화가 나면 어떻게 표현하나요?
“직설적으로 감정을 드러낼 때도 있지만 삭일 때가 더 많아요.”
―감독이란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요?
작년 정규레이스 우승팀인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 감독은 ‘외로운 자리’라고 했다. “감독이 되면서 주위 친구가 떨어져 나갔다. 혼자 숙소에서 술 마시는 날이 많다”는 것이다.
“이해가 가요. 류 감독이 우승팀 수장인데도 외롭단 말이에요. 제가 해태 수석코치(1986~1989년)로 있을 때는 하는 일 하나 없이 계속 팀이 연승했어요. 사실 가르친 게 없어요. 근데 쌍방울 감독(1990~1992년)을 하면서 매일 져요.
그땐 7회 이후에 비가 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젖은 유니폼으로 불 꺼진 숙소에 돌아와 털썩 소파에 주저앉아요. 숙소에 들어가는 시간이 밤 11시쯤 될까요? 저도 모르게 시합 생각에 빠져드는 겁니다. ‘왜 졌지? 왜 이리 안 풀리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제 씻고 자야지’ 하는데 시계를 보면 새벽 4시야. 잠깐이라고 생각했는데…. 류 감독처럼 이기는 감독도 외롭고 혼자 술 먹는데, 지는 감독은 오죽하겠어요?”
―그땐 술 많이 드셨어요?
“몸 다치기 전에는 술 좀 하는 편이었어요. 술 담배 끊은 지 11년 됐어요.”
그는 한화 감독 시절인 2004년 12월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한때 폭탄주 20잔은 거뜬히 마시는 두주불사(斗酒不辭), 하루 담배 3갑을 피웠던 그였다.
“담배는 그날로 끊었는데 술은 가끔 먹고 싶더라고. 요즘도 술자리엔 많이 가요. 위스키 온더록스로 1잔 정도는 해요.”
인화와 소통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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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길 줄 아는 감독, 김인식 감독. |
“그때 부산에서 롯데와 시합을 끝내고 광주로 넘어가는데 비가 무지하게 내렸어요. 예감이 좋지 않았어요. 뒤따르던 버스가 보이지 않아 비를 맞으며 걸어가 보니, 버스가 낭떠러지에 걸려 있는 게 아닙니까. 선수들을 구조해 병원으로 이송하는데 막 전화가 걸려왔어요. 안부를 묻는 전화였어요. 그런데 2군 코치 중에 1명 빼고 아무도 전화를 걸지 않았어요.”
―섭섭했겠네요.
“아, 섭섭했지. 다른 구단 사람들도 걱정이 돼 어떻게 됐느냐고 전화하는데….”
당시 신문기사를 찾아보니 김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전화를 안 해서 괘씸한 게 아니라 동지에 대한 최소한의 정도 보이지 않는 사람과는 같은 배를 탈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를 아는 기자들은 김 감독에 대한 호의적인 기사를 많이 쓴다. 어느 야구기자는 “무리하게 띄워주는 기사가 많다”고도 했다.
―기자들이 감독님을 ‘띄워주는’ 기사를 많이 쓴다고 하대요.
그는 “허허, 그래요?”하고 반문했다.
―반면에 ‘기자들 질문을 잘라먹지 않고 잘 경청한다’는 평가가 많아요.
그래도 그는 “허허, 그래요?”라고 약간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류현진 선수와 라면 광고를 찍었는데 얼마 받았나요?
“출연료는 (류)현진이가 엄청나고….”
―배 차이?
“아니죠. 더 많이 차이가 나죠. 현진이는 연간(年間)계약이고 나는 단발. 3개월 계약이에요.”
―메이저리그 속설에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말이 있더군요. 다 그런 것은 아닌가 봐요.
“그래요? 허허. 그거야 뭐….”
―선수들이 술자리를 가지면 누가 주도했는지, 누가 참석했는지 귀신같이 알아낸다고 하대요.
“누가 그런 말을 해요? 참, 나….”
현장 感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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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3월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대회에서 준우승한 후 청와대에 초청받았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인식 감독이 건배를 하고 있다. |
―김인식 리더십에는 부작용이 적다는 말, 어떻게 생각하세요?
“과찬의 말…”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믿음의 야구란, 거꾸로 불신의 야구와 동전 양면처럼 닿아 있다. 기용되지 않는 선수 입장에선 감독의 불신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김인식의 야구는 ‘선수 기용 스펙트럼이 좁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 뛰는 선수 입장에선 그렇게 볼 수 있죠. 1군 선수가 28~30명 정도인데 베스트 멤버는 10명이죠. 보통 한 경기에 기용되는 선수는 대략 17~18명입니다. 선수 입장에선 자신이 (경기에) 나가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감독 입장에선 그렇지 않죠.
믿음의 야구… 그게 뭔지 저도 모르겠어요. 몇 개월 계속 내보내면 괜찮을 것 같아 기용하다 보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어요. 계속 삼진을 먹거나 결정적일 때 못 칠 수 있지만,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시기가 온다고 봅니다. 투수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때까지 믿음을 보여주면 선수들도 ‘나를 이렇게 믿어주는구나’고 생각하게 되죠. 그렇게 해서 성공한 선수들이 있어요.”
지난 프리미어 12에서 한 박자 빠른 투수 운용이 화제가 됐다. 선발 투수가 조금이라도 흔들릴 경우 가차없이 불펜 투수들을 빠르게 투입했다. 김인식 야구의 전매특허인 ‘발 빠른 투수교체’는 이번에도 확인됐다.
“프리미어 12 우승은 전혀 예상 못 했어요. 예선통과를 우선 1차 목표로 잡았을 뿐이에요. 투수교체는 데이터, 현장 감(感), 더그아웃에서 불펜코치와 감독의 판단에 따라 이뤄집니다. 누가 말을 안 해도 그땐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시합 1시간 전에 전력분석팀과 데이터를 가지고 의견을 나누고 시합에 들어가지만, 현장에서의 컨디션, 평상시 선수에게 느꼈던 장단점, 이런 게 섞여서 ‘이 시점에서 붙여도 되겠다’는 감을 갖게 됩니다. 그다음은 보이지 않는 치열한 승부라고 봐야죠.”
어느 상황에서 누구를 기용할지는 감독 몫이다. 감독 판단은 야구 데이터를 뛰어넘는다. 때로 데이터보다 직감(直感)이 위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그 직감이란 운(運)이 아니라 경험에 기반 한다.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는 단기전에선 곧잘 ‘감’이 변수가 되곤 한다.
그런데 감은 즉흥적인 게 아니라 인내에서 나온다.
김인식 감독은 “나는 선수가 실수해도 그냥 놔둔다. 선수가 실수했을 때 바로 교체하면 선수를 불안하게 한다. 감독이 또 바꾸지 않을까 생각하다 보면 발전이 없다. 실수하더라도 다른 것을 익혀 실수를 만회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니까 선수들이 좋아지더라”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상황이 오면 기다려야 합니다. 판단이 너무 빠르면 그르치기 쉬워요. 때론 참고 또 참아야 해요. 결정적 기회가 올 때까지 그냥 밀고 나가고 승부처다 싶으면 모두 넣습니다.”
야구기자인 임진국씨는 김 감독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예전엔 감독들이 머리를 식히려 가끔 고스톱을 쳤다. 김 감독의 만만디 기질은 노름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는 먹을 패가 깔렸어도 일단 돌린다. 판을 주시하다가 상대가 ‘고!’ 하고 외치면 막판 뒤집기에 들어간다. 한마디로 참았다가 크게 먹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임 기자는 “야구판에 타짜 수준의 감독들이 꽤 있는데 김 감독도 타짜 계열 감독으로, 높은 승률을 자랑하는 고수 중의 고수”라고 했다. 김인식 감독은 배짱 좋은 승부사라는 얘기다.
승부 뒤에 경험하는 끔찍한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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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B 베어스 김인식 감독은 1995년 한국시리즈에서 롯데와 3승3패(7전4선승제)까지 가는 접전 끝에 7차전 4-2로 우승했다. 김 감독은 “일생에 가장 기억나는 경기 중 하나”라고 말했다. |
“기독교입니다.”
―결정적인 상황일 때 신(神)에 의지하나요?
“그런 것까지는 아니고, 하여간 이 분야에 깊숙한 것은 그래도… 우리가 좀 아는 게 아닌가 하는… (웃음) 때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게 ‘단기전 승부사’란 말이 나오는 이유인가요?
“가끔 경기가 끝나고 나면 뭐랄까, 끔찍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어떻게 내가 이런 작전을 썼지?’ 뭐 이런 건가요?
“아뇨. 이런 작전을 펴는 순간엔 못 느끼지만 끝나고 나면, 남들이 다 아니라는 걸 고집해서 밀어붙였는데, 거기서 만일 안 됐을 경우 모든 비난을 다 받아야 되니까 섬뜩할 때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국가대표 전임 감독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현재 KBO 규약에 따르면, 국가대표(이하 국대) 사령탑은 전년도 프로야구 우승 감독, 준우승 감독 순으로 맡도록 돼 있다. 그러나 국내 리그에 매달리다 보면 국제대회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있어 리그 우승팀 감독이 ‘국대 감독’을 고사하는 상황이다. 5년 연속 페넌트레이스 우승팀인 삼성의 류중일 감독이 그런 예다. 그래서 ‘국대 전임 감독제’가 비중 있게 논의되고 있다. 김인식 감독의 말이다.
“이해합니다. 현역 감독들은 치열한 순위싸움을 해야 하니까 국제대회 준비에 굉장히 부담을 갖고 있다고 해요. 저도 전임 감독제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야 미리 대비를 해서 선수 선발이라든가 모든 것을 체크해서 만반의 준비를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당장 내년 3월에 국가 간 야구 토너먼트 대회인 월드클래식베이스볼(WBC)이 열린다. 미국의 메이저리그 선수와 각국 프로야구 선수들이 모두 참여하는 국제대회다. 국대 감독은 ‘독이 든 성배(聖杯)’일지 모른다. 태극마크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이다.
―내년 WBC에도 국가대표 감독 하시겠죠?
“내가 할 얘기는 못 되고….”
기자는 이 대목에서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국가대표 감독으로 선수를 다시 꾸린다면 선발로 누가 좋을까요. 전성기 시절, 이승엽과 ‘타이론 우즈’ 중 누굴 택하실래요?
미국 마이너리그 출신인 타이론 우즈는 OB 베어스(現 두산 베어스) 감독 시절, 김인식이 데려온 용병타자다. 1998년 입단 첫해 42개 홈런을 터뜨려 당시 한국 프로야구 단일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장종훈 41개, 1992년)을 깨뜨려버렸다. 우즈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국내 리그에서 활약하며 KBO 리그 가장 성공한 외국인 선수로 평가받는다.
“(크게 웃으며) 물론 이승엽이죠. 물론 우즈가 미국인이지만 정말 무시 못 하는 선수죠. 그래도 결국 뽑는 선수는 이승엽이겠죠.”
―전성기 우즈가 귀화(歸化)한대도요?
“그래도 전성기 이승엽이 (최고) 아닌가요?”
우즈가 한국에서 성공한 비결을 두고 김인식 감독의 인내심을 꼽는 이들이 많다. 뚝심 있게 될 때까지 다그치거나 퇴출 압박을 하지 않았던 그다.
“우즈가 그해(1998년) 6월 초까지 못 쳤어요. 타율도 형편없었고… 유독 삼진이 많았어요. 우즈의 성공요인은 변화구에 적응을 하면서예요. 국내 최고 용병을 꼽자면 우즈와 펠릭스 호세(롯데 자이언츠, 1999·2001·2006~2007년)가 막상막하일 겁니다.”
―국내 최고타자로 꼽히는 이대호와 박병호 둘 중 한 명을 고른다면?
박병호는 홈런과 장타력 부문 KBO 리그를 석권한 뒤 올해 미국 MLB(미네소타 트윈스)에 진출했고, 이대호 역시 타율·홈런·타점 등 KBO 리그 타격 7관왕에 오른 강타자다. 이대호는 KBO와 일본 리그를 평정하고 올해 MLB에 도전,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을 맺었다.
“이대호인데….”
그의 선택은 뜻밖에도 박병호보다 이대호였다.
―장종훈과 심정수는?
‘연습생 신화’인 장종훈은 1992년에 41개의 홈런을 때려내 한국야구에 최초로 40홈런 시대를 연 한화 이글스의 레전드로 꼽힌다. 힘이 좋아 ‘헤라클레스’란 별명을 지닌 심정수는 전성기 시절 이승엽과 홈런 레이스를 벌일 만큼 장타력이 뛰어난 거포였다.
“심정수.”
―선발투수 중에서 전성기 선동열과 최동원 중 한 명만 택한다면?
“선동열.”
―메이저리그 투수 류현진과 박찬호는?
“박찬호.”
―송진우와 구대성은?
이글스에서 1989년부터 2009년까지 뛴 송진우는 21시즌 동안 KBO 기록 역대 최다 선발 등판(377차례), 최다 승리투수(210승), 최다 투구이닝(3003.0), 최다 탈삼진(2048개) 등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국과 일본·미국·호주 등 4개국에서 투수로 활약한 구대성은 KBO 리그 역대 최소경기 200세이브, 역대 최연소 200세이브를 기록한 베테랑이다.
“송진우.”
―장명부와 박철순은?
재일교포 출신 투수 ‘너구리’ 장명부(삼미 슈퍼스타즈)는 KBO 리그의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인 30승(16패 6세이브)을 거뒀다. ‘불사조’ 박철순은 기적 같은 22연승으로 프로야구 원년(1982년)에 24승(4패 7세이브)을 기록하며 그해 시즌 MVP가 됐다.
“전성기를 따지니까 장명부가 좀 더 나은 게 아닌가…?”
―국대 감독으로 우승, 준우승, 금메달도 땄습니다. 앞으로 뭘 더 하고 싶으세요.
“지금 하고 있는 일 잘 해야지.”
그는 KBO 규칙위원장과 기술위원장을 맡고 있다.
―현장 감독의 꿈, 여전한 거죠?
“뭐, 좀, 누가 불러주면… 제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勝보다 敗가 더 많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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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 시절(1990~92년), 김인식 감독은 경험이 전무한 선수, 쓸모없다 진단받은 선수를 모아 이기는 야구, 이기기 위해 전력을 쏟는 야구를 했다. |
통산 성적에서 승보다 패가 많다. 그 속에는 신생팀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을 맡아 악전고투하던 시절이 눅눅히 배어 있다. 당시 쌍방울 선수들은 1군 경험이 별로 없는 선수들과 ‘어중이떠중이 반쪽 선수들이 다수였다’고 한다. 쌍방울은 결국 프로야구 최초로 미아구단이 돼 한국야구사(史)에서 사라졌다. 그의 말이다.
“야구감독으로 능력을 발휘하려면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쓴맛을 두루 겪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소 400승, 400패를 겪어봐야 해요. 계속 승리하는 팀만 맡아도 곤란해요. 승리의 맛은 알아도 패배의 고통은 모르잖아요.
제가 해태 수석코치(86~89년) 시절, 해태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에서 4번 연속 우승을 했어요. 그 시절에는 뭐 한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늘 이기는 거야. 그런데 쌍방울 감독(90~92년)을 하며 패배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뭘 해도 늘 지는 거야. 굉장히 힘들었어요. 경험이 없거나 다른 팀에서 방출된 선수들만 꾸려서 경기를 해야 했어요.
선수 멤버가 좋을 때, 또는 선수 멤버가 약할 때를 모두 경험하며 얻은 게 많았어요. 선수 멤버가 좋으면 시행착오나 잘못이 조금 있더라도 묻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수 멤버가 좀 나쁘다 싶으면 조금만 실수해도 크게 (실수가) 불어납니다. 최소 400승에 400패는 해봐야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쌍방울 시절, 기억나는 선수가 있나요?
“투수 김원형, 포수 박경완 같은 신인이 기억나요. 김기태 감독(현 KIA 타이거즈)도 쌍방울 때 신인으로 들어왔어요. (김기태 감독이) 처음엔 잘 적응을 못 했어요. 루키를 4번 타자에 기용한다고 말들이 많았어요. 턱걸이 2할로 근근이 버티다 잠실구장에서 홈런을 치면서 어느 순간 홈런타자로 변했습니다.”
나중 김기태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김인식 감독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고. 김인식 감독의 인내심이 그를 살려냈다는 것이다.
―김응룡식 야구와 곧잘 비교가 되던데요?
“아마야구 시절, 한일은행과 크라운맥주 등에서 같이 야구를 했어요. 그분이 선배지요.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고 할까요? (김응룡 감독이) 후배들에게 엄한 면은 좀 있었지만 실제는 안 그런데 남들 보기에 그렇게 보이는 거지….”
―김응룡 감독보다 ‘더 용기 있고 더 망설이지 않는’ 감독이라는 평이 있어요.
야구 전문가들은 ‘김응룡의 단호함과 용기가 김인식에게서 더 철저히 업그레이드됐다’고 평한다. 몇몇 야구기자는 “김인식이 순진한 듯 보이지만 누구보다 영리하고 치밀하며 냉혹하다”고 말한다.
김 감독이 쌍방울 시절, 현장을 취재한 임건순 기자는 “김 감독은 경험 전무한 선수, 타 팀에서 방출된 쓸모없다 진단받은 선수를 모아 이기는 야구, 이기기 위해 전력을 쏟는 야구를 했다. 이것은 신생팀과는 뭔가 맞지 않아 보였다”고 했다. 임 기자는 “선수들은 이기면서 성장한다. 강해서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면서 강해진다. 투수들을 항상 쏟아부으면서 매번 전력투구하는 야구를 김인식이 보여주었다”고 회고했다.
김인식 감독은 패배를 끊기 위해 죽기 살기로 덤벼야 했고, 1승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눈물과 땀으로 경험하게 됐다.
―김응룡의 ‘한화’를 어떻게 봅니까. 실패작인가요?
명장 반열에 오른 김응룡 감독도 한화 감독(2012~2014년)을 맡은 후 최악의 승률을 기록하고 말았다.
“순위로만 따지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아무리 좋은 감독도 시즌 100게임 이상을 소화해야 하는 페넌트레이스에서는 전력 좋은 팀을 못 이깁니다. 단기전이나 중요 경기에서 감독 역할이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어요. 1년에 100게임 이상 하는 경기에서 감독이 조금 실수를 해도 팀 전력이 강하면 감독 실수를 선수들이 희석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약팀이 강팀을 못 이기게 돼 있어요. 단기전은 승부를 예측할 수 없고 약팀이 강팀을 뒤집는 이변도 가능할 수 있지만 많은 시합을 치르면 역시 전력이 강한 팀이 승을 더 많이 가져갈 수밖에 없어요.”
김응룡 VS. 김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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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 이글스 감독 시절(2005~2009년)의 김인식. |
―한화 암흑기의 이유는 뭡니까.
“아마 스카우트 실패도 있을 겁니다. 팀이 단단해지려면 노장, 중간, 신인이 골고루 있어야 하는데 한화는 그렇지 못했어요. 밑(신인)에서 위로 못 올라와 중간층과 노장층이 같이 늙어가는 식이었죠. 송진우와 정민철이 은퇴하고 이범호, 김태균이 해외로 이적하는 시기와도 맞물려 있어요.”
그는 “FA 제도가 있을 때인데도 선수를 못 데려와 선수층이 얇아진 것도 (암흑기의) 원인”이라고 했다.
“구단의 재정사정이 나빴어요. 타 팀 선수를 데려오자고 했는데 (프런트에서) 돈이 없다고 해요. 정확히 표현하자면, 돈 없다는 말은 못 하고 핑계를 대요. 마침 두산 홍성흔이 FA시장에 나왔는데 제가 영입을 주장하니 ‘어깨가 어떻고…’ 그러는 겁니다. 속으로 말했죠. ‘당신이 나보다 야구를 많이 알아?’라고요. 그땐 그룹 회장이 마른 수건도 짜라고 할 때였어요.”
당시 두산 홍성흔은 27억원의 FA 계약을 맺고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김성근 감독이 한화를 맡은 뒤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어요.
“저는 올해 우승팀으로 두산과 NC와 함께 한화가 경합을 벌일 것으로 보여요. 4강요? 롯데나 삼성, KIA, KT가 한데 뭉쳐서 한 자리 싸움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또 10개단 중에 분위기가 좋은 팀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NC, 두산의 전력이 제일 좋으니까 팀 분위기도 좋겠죠. 삼성도 계속 잘해 왔고 요즘의 한화 역시 으샤으샤 하는 분위기니까 좋을 것 같고.
다만, 박병호나 김현수 같은 KBO 스타가 MLB로 빠져나갔으니 흥행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는 측면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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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이 빛났던 OB 베어스(현 두산베어스) 감독 시절(1994~2003) 모습. |
“놀고 있던 최동원을 코치로 데려왔고 (남들이 외면한) 조성민도 투수로 데려왔어요. KIA에서 방출당한 타자 김인철도 한화에서 재기해 꽃을 피웠어요. 한화 오기 전에 김인철이가 홈런을 하나 쳤어요. 2005년 한화 와서 홈런 10개 치고 많이 도움이 됐어요. 한화 전력이 약하니까 (재활해서) 데려다 쓴 것이지요.”
그 외에도 지연규·조원우 등을 받아들여 약체평가 받던 한화를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두산 감독 시절에도 조계현·심재학 같은 중고참을 영입해 믿음의 야구를 꽃피웠다.
―배짱이 뭔가요? 단기전 승부는 일종의 도박이 아닌가요?
김인식 감독은 2001년 두산 감독 시절, 10승 투수 하나 없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꺾었다. 2000년 한국시리즈는 더 놀랍다. 18승 투수를 3명이나 거느리고 정규시즌 91승을 거둔 현대 유니콘스를 상대로 3연패 후 3연승을 거뒀다. 마지막 경기에서 패하고 말았으나 한국야구사에 최고의 기적을 연출할 뻔했다.
“글쎄요, 특별히 배짱이 좋은 건 아닙니다.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라는데, 일단 야구가 너무 어려워요. 너무 어려워….”
김 감독은 “어렵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자신의 야구를 ‘미완성(未完成)’으로 표현했다. 할수록 어렵고 여전히 배울 게 많다는 것이다. 실패와 패배로 쌓아올린 김인식의 야구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당장, 통산 성적 980승에서 1000승을 이루고 싶다.
―명장의 조건은 뭔가요?
“순간적으로 결정하거나 판단해야 할 때 보는 눈이 날카로워야 하고, 열정과 냉정함을 갖춘 가슴도 필요합니다. 또 포근한 가슴도 가져야 명장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도 그렇게(명장이) 되고 싶은데, 쉽지 않더라고요. 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