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慶男
⊙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캐나다 토론토 거주.
⊙ 저서: 《부부의 십계명》 《노년학을 배웁시다》 《유니스의 지구촌 여행》
《성지의 향기(The Fragrance of the Holy Land)》. 역서: 《고독》 《꿈꾸는 어른》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역술서: 《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
《윤치호 일기 제4권에 나타난 역사의 흐름》.
⊙ 現 국제펜클럽본부 회원, 한국번역가협회 회원, 좌옹 윤치호 문화사업회 이사.
⊙ 1부 (1895~1896년) 〈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
⊙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캐나다 토론토 거주.
⊙ 저서: 《부부의 십계명》 《노년학을 배웁시다》 《유니스의 지구촌 여행》
《성지의 향기(The Fragrance of the Holy Land)》. 역서: 《고독》 《꿈꾸는 어른》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역술서: 《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
《윤치호 일기 제4권에 나타난 역사의 흐름》.
⊙ 現 국제펜클럽본부 회원, 한국번역가협회 회원, 좌옹 윤치호 문화사업회 이사.
⊙ 1부 (1895~1896년) 〈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
- 1894년 12월 고종과 함께 일본 공사 이노우에 가오루를 접견하는 민비의 모습이 담긴 일본화가의 삽화.
1895년 1월 발행한 일본 잡지 《풍속화보》에 수록됐다.
1부 (1895~1896년) 〈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
11월 6일 수요일
수집과 명상들.
1. 지난 토요일 밤에 눈이 내리다.
2. 유길준이 나를 만나자고 해서 그의 사무실로 방문하다. 내가 놀란 것은, 지난번 대궐에서 일어난 왕비 살해 사건에 대한 그의 견해였다. 그는 외국인들 대부분이 자기를 의심하고, 총리대신이 음모단에 연루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아주 부당하다는 것이다. 자기는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왕비 폐위 문제에 반대했다는 것. 그가 일본 공사에게 우범선(禹範善)과 이두황(李斗璜)을 대궐에서 쫓아내라고 며칠 전에 권했다는 것이다. 그는 내게 외국 인사들에게 자신의 결백함을 이야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3. 유길준이 내게 말하기를, 류혁노(柳赫魯), 정남교(鄭南敎), 이주회(李周會) 등이 왕비 시해 사건의 주모자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며칠 전에 도망가 버렸다.
4. 유길준과 그의 일당이 우범선, 류혁노, 정남교, 이주회 등을 도주시킨 것은 그들에게 범행을 모두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틀림없다. 유길준과 스기무라 후카시(杉村濬)가 음모의 괴수들인 것을 생각하니, 그 불씨가 이제 내 발등에 떨어질 차례란 생각이 나서 걱정스럽다.
5. 가톨릭교회 사제들과 새 신자들이 원산과 안변 일대에서 터무니없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불쌍한 조선 사람들은 그들을 보호해 준다는 명분으로 가톨릭교회와 합세한 관리들에게 극심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제의 옷자락 밑에서 그들의 직장을 안전하게 지키고 있고, 마귀들은 온갖 죄악을 떠맡았고. 그 꼴을 보아도 지방 관리들은 그들을 처벌하지 못한다. 온 마을이 로마 가톨릭교회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가톨릭 선교부는 새 신자들을 수천 명씩 모아들이고 있다니!
6. 유길준이 말하기를, 경무사 권형진(權瀅鎭)이 걱정하는 것은 조정에서 폐위된 왕비의 지위를 다시 복권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1월 8일 금요일
1. 유길준의 요청으로 오전 10시에 사무실로 그를 방문하다. 그가 말하기를, 전하의 간절한 소원으로, 조정이 왕자 의화군을 억지로 불러들이기로 했다는 것. 그래서 내게 일본에 있는 의화군과 내 사촌 치오(致旿)에게 귀국하라는 편지를 내라는 것이다.
2. 유길준이 말하기를, 왕비 시해의 주모자가 세 사람인데, 유길준 자신과 서광범, 그리고 나(윤치호)라는 것이다. 나는 유길준이 점점 두려워진다. 이따금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술수를 쓴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뛰어난 재능과 능력을 갖춘 그가 입증되지 않은 거짓말을 소문인 척 퍼뜨리며 유길준 자신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람이다.
3. 헨드릭스 감독에게 편지 쓰다. 송도(개성)에 있는 산업학교에서 일해 줄 수 있는가 문의했다. 외부대신의 편지를 도쿄에 있는 우리나라 공사관에 보내다. 나의 사촌이 포함된 신입생 10명의 지원을 생각해 쓴 편지이다.
4. 아버님과 안경수(安駉壽)와 그레이트하우스(Greathouse, 고종의 법률고문) 장군은 유길준이 제안한 왕자 의화군의 귀국요청 편지를 내가 보내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갑작스런 소환은 어떤 음모가 있을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유길준은 오늘 아침 내게, 미국 공사가 전하에게 왕자 의화군을 소환하도록 건의했다는 것이다. 오늘 밤에 그레이트하우스 장군이 내게 편지를 보냈다. “실 공사와 호러스 알렌박사 두 사람 모두 ‘왕자 의화군을 소환하라’는 조언을 했다거나, ‘의화군이 조선에 돌아오기를 원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이것은 유길준의 또 다른 말장난인가?
5. 유길준이 오늘 아침 내게 비밀이라면서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총리대신과 내각을 해치려는 사람의 행동을 막기 위해, 김 아무개의 딸을 왕비로 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폐위된 왕비를 복위하는 일이 늦어지는 이유임을 이제야 알겠다.
6. 어제 아침에 포고문이 종각 앞에 나붙었다. 일본훈련대가 이달 보름날 대궐 문앞에 집결한다는 것. 왕비를 살해한 것으로 추측되는 군인들을 처형한다는 것이다.
11월 15일 금요일.
아름다운 날씨
저녁 8시 경에 탁지부대신 어윤중씨를 방문했다. 그는 오늘 서울에 다시 올라왔다. 그에게 그가 알고 싶어하는 소식들을 들려주고, 조정이 왕비 시해에 관한 포고문을 서둘러 내도록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
(1) 시해된 왕비의 칭호를 전과 같이 회복시켜 드릴 것.
(2) 문부(文部)와 농부(農部)를 폐지할 것.
(3) 제2왕자의 현재 직책을 해제할 것 등을 건의했다.
11월 17일 주일.
제물포. 아름다운 날씨
이노우에를 전송하려고 제물포에 내려왔다. 내일 오전 중에 떠나게 될 것이다. 일본정부는 조선정부를, 국모를 시해하고 나서도 지원하기로 결정했지만, 외국정부들은 새 내각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한다. 사건 전모에 대한 결론과 도덕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일본정부는 어찌 됐던 즐거운 처지가 된 것 같다. 왕비가 시해되고, 조선정부는 일단 일본이 호감을 갖는 사람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2. 이제부터 사람들은 임금과 세자의 안전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위의 두 분과 새 내각은 동반자가 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지금 잔인한 미소를 띠고 자비심을 베풀고 있다. 일본과 친일파들은 그들의 목적에 부합한다면, 어느 때이건 왕을 시해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3. 살인과 암살. 믿을 수 없는 배신행위의 본성을 가진 그들은 누가 희생자가 되든지(안중에도 없고), 나쁜 짓만 일삼은 자들로 성역화된 외부의 관중들은 부러운 찬사를 던지며 조선을 넘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 북 치고 장구 치며 색종이를 날리며 입성하는 개혁과 개화의 종착점이란 말인가.
4. 일본은 지금쯤 저들이 꾸며낸 음모와 자랑스러운 성공을 축하하고 있으리라.
5. 왕비 폐위를 꾸며 낸 총리대신과 일당이 우범선과 이주회에게 칼로 위협을 받으며 억지로 끌려나왔다고 하는 행위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그자들은 어째서 왕비의 칭호를 복귀하려고 하지 않을까, 이젠 그 강제성이 사라졌는데도?
11월 20일 수요일.
아름다운 날씨
제2왕자 의화군은 오늘 그의 강제 직분에서 풀려나다. 그레이트하우스 장군은, 내년 봄에 일본과 러시아 간에 전쟁이 일어나리라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승리하기를!
11월 21일 목요일.
좋은 날씨
사무실에 평상시대로 근무하다. 내 사촌 치오(致旿)로부터 어젯밤에 외부 사무실로 전보 한 통이 날아왔다는 정보를 들었다. 그러나 사무실 안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그 전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윤식 대신은 오늘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
11월 22일 목요일.
좋은 날씨
유길준이 오늘 아침에 외부에 들르다. 그는 내 사촌 치오의 전보를 자기가 입수했다고 했다. 전보 내용은 러시아와 영국 간에 아르메니아 정부 건으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조선의 왕비 시해 사건에 러시아 혹은 영국 두 나라가 모두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강력한 대외정책을 채택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또한 전하가 왕비 폐위의 복권을 단념하시도록 했다는 것이다. 유길준은 내게 말하기를, 자기는 그 전보 내용을 보지 못했으며, 김윤식 대신이 가지고 가서 그 내용을 조정의 어떤 대신에게도 보이지 않고-총리대신에게조차도-상감께 직접 보여드렸다는 것이다.
유길준은 한 술 더 떠 말하기를, 그의 당에서 대원군을 그의 집에 감금하고 이주회를 체포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외부대신이 어리석게도 대원군을 대궐에 다시 입궐하게 하려는 모의에 실패했던 이재면에게 누설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자, 어디 보자! 그런데 내 사촌 치오는 어쩌자고 이따위 전문을 보내는 바보짓을 했단 말인가! 치오는 내각에서 폐위한 왕비의 복권을 실행하지 말라는 충고나 하고 있다니, 제정신이 아니구나! 어찌 되었던 큰일이다. 외부대신이 전하에게 전보내용을 보여드리기 전에 적어도 김홍집과 유길준에게 먼저 의논했어야 하는 것인데. 더군다나 내 아버님은 어제 아침에 김윤식, 김홍집, 유길준 등이 유길준의 사랑방에서, 다시 말해 전보가 도착한 다음 날 아침에 비밀회의를 하는 것을 보셨다고 한다. 유길준이 그 전보내용을 본 적이 없다고 잡아떼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짐작해 보건대:
1. 조정이 러시아와 영국으로부터 지원 받을 희망을 차단하기 위해 그 전문을 전하에게 보여드려야 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2. 아마도 그들은 전하의 마음이 내게서 돌아서도록 편견을 갖기를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3. 김윤식이 내게 말하기를, 그는 전문을 이재면에게 보여주었고, 이재면은 전하에게 보여드렸다는 것이다. 전보문 내용은 폐위된 왕비의 복권을 반대한다는 상소의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재면은 전하가 제2왕자를 멀리하도록 계책을 쓰는 게 분명하다.
11월 26일 화요일.
좋은 날씨
오후 2시에 대궐에 입궐하다. 모든 외국공사관 대표들이 참석했다. 오후 2시30분에 전하의 인사말씀이 있었다. 내가 통역해 드리다. 전하가 외국 대표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신사 여러분들을 모신 것은, 내각이 여러분의 힘을 빌리기를 원해서입니다. 전례대로 중요한 사안들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보현당(寶賢堂)으로 자리를 옮겨서 기다려 주시면, 한 시간 후에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이 말씀은 전하의 형(이재면-옮긴이)이 상감을 대신해서 말한 내용이다. 외국 공사들이 대기실을 떠나간 다음, 나는 전하와 왕자를 아주 가까이서 뵐 기회가 있었다. 번뇌하시는 모습과 억압받는 여건에 놓인 상감과 왕자를 뵙자,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내 모습을 보신 상감과 왕자는 내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을 경고하려는 듯, 두 분은 내게 머리를 저으시고 손을 내젓는 몸짓을 하시며 내 앞으로 다가오셨다.
내각은 전하 앞에서 두 시간 가까이 회의를 이어 갔다. 오후 4시30분쯤에 김윤식이 외국 대표들 앞에서 새 칙령을 발표했다. 왕비의 호칭 복귀와 10월 9일에 문제가 된 안건을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궁내부대신이 공사관 대표들에게 새 내각을 발표했다.
군부대신 조희연(趙羲淵), 경무사 권형진 등은 파면되고, 이도재(李道宰)를 군부대신, 허진(許璡)을 경무사로 발령하며, 10월 8일에 일으킨 범죄자들은 모두 수색 검거해서 처벌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사관 대표들이 상감과 접견을 마치고 대궐을 떠나기 직전, 실 공사와 웨베르 공사 등이 전하에게 좋은 결정을 내리셨다고 치하했다.
“왕비 전하를 폐위하는 칙령을 내렸을 때, 우리는 그것을 전하께서 내리신 칙령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칙령은 우리가 인정할 수 없는 무의미한 것이었으니까요.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취소할 것도 없지요. 우리는 전하께서 그 칙령을 내리신 분이 아님을 믿어 왔고, 그 신뢰를 오늘 확인하게 되어 기쁩니다.”
그런 다음, 나는 전하께 오늘 시행하신 조치는 전하의 뜻이었는가 여쭈어 보았다. 전하께서는 모두 조정에서 해 놓은 일이며, 전하는 “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왕후 호칭을 복귀하는 단계에서 반대에 부딪혔다고 말씀하셨다. 전하와 소곤소곤 작은 소리로 말씀을 나누고 있을 때, 내시 두 명이 우리 옆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을 보시더니 전하께서 화제를 바꾸어 내게 말씀하셨다. “네 애비는 잘 있느냐?” “예, 잘 있습니다, 전하.” 대답해 드리고 나는 보현당을 빠져나왔다.
11월 27일 수요일.
좋은 날씨
평상시대로 사무실로 출근하다. 오후 4시 경에 아버님이 내게 제일 먼저 말씀해 주신 이야기다. 종친 몇 명이 이전에 대궐 경비대 소속이던 군인들을 데리고 오늘 밤에 대궐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신다. 목적은 위험한 상황에 계신 전하를 왕비를 시해한 살인자들에게서 구출하려는 것이다. 아버님은 그 지원자 일당들을 거느리고 내각의 수중에 잡히신 전하를 구출하기 위해서 들어가려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외국 공관에서도 사전에 알아야 하겠기에 같은 시점에서 대궐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실 공사와 웨베르 공사를 방문해서 그들에게 대궐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고, 밤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몇 사람의 외국인이 대궐에 같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암시를 하면서, 한 경호원이 전하를 안전한 거처로 모시기 위해 경호원 수가 늘어나게 되리라고 말해 두었다. 구출 부대원들이 건청궁(乾淸宮: 경복궁 안에 민비가 거처하도록 새로 지은 궁)을 지나 지금 전하가 계신 대궐로 들어가려고 한다. 이재순(李載純)은 일을 꾸미는 도사로 알려져 있고, 김재풍(金在豊)은 일꾼 가운데 한 사람이다.
11월 28일 목요일.
좋은 날씨
밤잠을 아주 설쳤다. 새벽 3시30분쯤에 김화영(金華榮)이 들어와 나를 깨워 일으켰다. 군인들이 대궐로 몰려갔고, 유길준·어윤중·김홍집과 정병하(鄭秉夏)도 몰려갔으며, 정병하는 살해되었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군인들은 지휘관의 지휘 아래 대궐을 점령하고, 외국공관 대표들에게 ‘대궐로 들어가서 전하를 이 다급한 위기에서 보호해 달라’고 쪽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미국공사관으로 김화영과 함께 달려갔다. 공사관 문에 들어서자 대궐 가까운 쪽에서 큰 함성이 들려왔다.
실 공사와 힐리에르 씨는 러시아 공사관 담을 넘어서 들어갔다. 웨베르 공사와 의논이 되어 그들도 대궐로 함께 가기로 결정을 했다. 그런데 내가 공사관에 도착하기 전에 군인들이 보낸 쪽지에 공사관 대표들이 대궐을 향해 출발할 준비가 되었다고 전해 왔다. 그래서 나는 군인들을 동반해서 대궐로 뛰어갔다. 완전한 정적만이 대궐 주변을 감돌았다. 불길한 징조였다. 대궐 정문은 꽉 닫혀 있었고-계획이 성공할 것 같지 않았다.
자, 우리도 전진이다! 동쪽의 건춘문에 가까이 이르자,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조선사람 몇 명을 만났다. 그들이 말하기를, 그 사람들도 대궐문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어 외국공사 대표들이 도착하기를 걱정스럽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우리가 북동문 가까이에 이르자 그 문들은 아예 열리질 않았고, 궁궐에 힘으로도 들어갈 수 없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와 군인들의 말을 들은 외국공관 대표들은 상감께서 위기에 처하셨고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어떤 공사관 대표도, 밤낮을 틈타 대궐을 구출하려 나선 사람도 침착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 군인들은 곧 흩어져 각기 집으로 돌아가 버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군인 중 한 전령을 붙잡아 외국 공사 대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공사관 대표들은 그들의 공사관으로 돌아가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자 아버님도 돌아와 계셨다. 아버님은 함께 간 군인 일행이 약속된 고궁 옆에 있는 궁궐의 북동쪽 문(춘생문-옮긴이)에 이르자 문이 열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대궐 경비대가 완전 방어태세를 하고 있더라는 것. 그런가 하면, 공격하던 일당이 많은 희생을 치렀다고 했다. 아버님은 그 군인들에게 낯선 노인에 불과할 뿐, 그들에게 명령을 내려도 듣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일이 성사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 자리를 떠나셔야 했다는 전말(顚末)을 들려주셨다.
나는 아버님께 즉시 몸을 피하도록 간청했다. 외부 사무실에 근무하려고 나섰다. 그러나 호러스 알렌 박사가 나를 억지로 미국 공사관으로 데리고 갔다. 공사관에서 하루 온종일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밤에 아펜젤러 씨 댁에 가서 그리로 나를 찾아온 아내와 함께 자다.
11월 29일 금요일.
좋은 날씨
실제로 정동에 사는 많은 내 친구들이 하나같이 “길거리에 나다니지 말고 피신하라”고 충고했다. 그레이트하우스 장군은 “자신이 조선의 풍습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이런저런 충고를 해주겠느냐”고 한다. 하지만 나는 평상시대로 외부 사무실에 출근하기로 결심했다.
사무실에서 김윤식 대신을 보자, 그에게 어제 밤늦게 내 주변에 일어난 사건을 말해 주었다. 물론 내 아버님이 관련된 이야기는 빼고. 노신사 김윤식은 내가 그 사건에 개입된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나를 도와줄 테니 대신 현 내각의 첩자 노릇을 맡아 달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윤식은 또 말하기를, 친위대 이진호(李軫鎬) 참령(지금의 소령급-옮긴이)이 대궐 문들을 공격할 때 문을 열어 주기로 한 자로, 이미 오래 전에 변절해 조정에다 사실을 모두 밀고했다는 것이다. 이진호가 이범진에게서 받은 편지 4통을 보여주었다며, 조정은 이미 그 구출계획을 파악하고 완전 무장하고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계획이 실패하지 않을 리가 있나!
아버님과 함께 밀러 씨의 문간방에서 잤다. 이 구출계획에 참가한 사람 중에서 10명이 어제오늘 사이에 체포되었다.
12월 1일 주일.
좋은 날씨
여기저기에 체포령이 내리고 있다. 외부의 선교부 선생들이 많이 체포되었다. 내각은 이번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공연한 소동을 맘껏 벌이고 있다.
1)체포한 혐의자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움으로써 그들의 죄악상을 은폐하고, 시민들의 관심을 돌리려는 수작이다.
2)이런 기회는 대규모로 큰 문제를 일으킨 인간들을 잊어버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그런데 조정이 미국 공사관을 완전히 위협함으로써 생명에 위협마저 느끼게 하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서울에서 발행하는 일본 신문에는 왕비를 살해한 못된 일본 군인과 조선 군인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이 없고, 임금을 구출하려다가 실패한 왕당파 사람들에 대해서만 비난을 퍼붓고 있다.
12월 2일 월요일.
좋은 날씨
언더우드 박사 내외분이 내게 끔찍하게 잘해 준다. 언더우드 박사는 충직한 왕당주의자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호러스 알렌 박사와 실 공사는 그들에게 덮친 공포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애쓰고 있다. 헐버트 씨와 나는 신문을 만들기 시작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알렌 박사와 실 공사가 헐버트에게 말하기를, 공사관은 어떤 종류의 일을 시작하든지 곧 물러나고 만다는 것이다. 그들은 미국의 후원을 직접 간접으로 받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 반대하는 신문을 시작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대표 엉클샘, 실은 현 내각이 언뜻 보면 정부 같아 보이는 의사정부(擬似政府)라고 비꼬는 듯이 말한다. 왜냐하면 모든 칙령이 왕의 이름으로만 시행되기 때문이란다. 웃기는 일이다! 그 칙령들이란 왕비 시해 직후에 왕의 이름으로 공표한 칙령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면 미국공사관은 내각의 불법을 용인할 수 있단 말인가? 왜냐하면 왕의 칙령이 강압으로 시행되었고, 지금은 바뀌고 또 바뀌어서 그 칙령이 이제는 합법적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이런 모순되고 유약한 공사관은 어떤 한 사람을 잘못 알게 만드는 일이 참 많다.
12월 3일 화요일.
구름 끼고 더운 날씨
하느님, 감사합니다. 내 아버님과 일행이 곧장 위험지역을 벗어나 안전한 곳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안경수가 체포되었다고 들린다. 언더우드 박사는 왕비 전하께서 살아 계시리라고 굳게 믿고 있는 분이다. 실은, 내가 언더우드 박사 서재에 마련해 놓았던 왕비 전하의 침대 위에서 자고 있다. 왕비께서 사건이 일어난 늦은 밤에 이곳에 오시기로 돼 있었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왕비 전하가 살아 계셔서 위험을 물리칠 수 있게 해 주실 수가 있었을 텐데!
12월 1일 자로 왕비의 서거를 공식 발표했다. 공사관의 깃발들은 반기(半旗)를 올렸다. 유길준은 그레이트하우스 장군 편에 두 통의 편지를 내게 보냈다. 아주 정이 뚝뚝 묻어 나는 서신을. 자기가 도와준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고, 조정으로 자기를 만나러 오라는 것이다. 내각엔 자기 혼자만 있단 말인가? 그의 나에 대한 직업적인 우정은 진지해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와는 좀 다르게 볼 것이다. 한 번 틀어진 이상, 그가 내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12월 4일 수요일
그레이트하우스 장군이 오늘 아침에 나를 만나러 왔다. 나는 유길준에게 보내는 내 외부협판 사직서를 써서 그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전하는 지난 며칠 동안 외부세계와 완전히 단절하고 지내신다고 한다. 전하는 어제 언더우드 박사에게, “김홍집과 어윤중과 이재면이 갈수록 오만방자해진다”고 전갈을 보내셨다. 전하는 언더우드 박사에게 지금 대궐에 들어와 달라고 하문하셨다. 실제로는 실 공사가 겁에 질려, 언더우드 박사에게 대궐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말한 터였다.
그러나 언더우드 박사가 공사관의 요청 서한에 응답하기 위해 대궐에 입시(入侍)하자, 미국 공사 실은 좋은 결과도 없을 텐데 정략에 말려들고 있다고 빈정댄다. 미국 공사관이나 영국 공사관의 태도가 비겁하기 짝이 없다. 오늘 아침에 다이 장군이 언더우드 박사에게 전갈하기를, 저들이 전하를 아주 비위생적인 거처로 옮겨 드리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움이 어디에서 올까.’ 나는 헤아릴 수가 없구나! 만일 공사관이 애초부터 현 내각을 파악했다면 전하는 안전하게 계셨을 텐데. 하지만 저들의 완전무결하게 비겁한 태도는 지난날의 조정이 시행한 정책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강력하다. 그래서 일본은 감히 악마 같은 짓을 해 낸다.
1884년에 김옥균과 그 일당이 정부를 전복하려고 했을 때는 청국을 파멸시킨다는 희망이라도 들어 있었다. 그 무모한 타도는 결국 청국이 조선을 손아귀에 잡을 힘을 키워 주는 데 성공한 것뿐이었다. 올들어 10월, 일본은 러시아의 영향이 커지는 것에 주목했다. 그래서 왕비시해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그 세력을 약화시키려고 했다.
바로 그런 비열한 행동이 조선 사람들로 하여금 일본이 지금껏 이룩해 놓은 어떤 행위보다도 러시아를 더 선호하게 만들었다. 조선과 일본 사이엔 어둡고 불신에 찬 강이 흐르고, 건너지 못할 깊은 바다가 가로놓여 있다. 불신과 그리고 조선 왕비의 피로 붉게 물든 오만함만이 남게 되었다.
12월 9일 월요일.
몹시 추운 날씨
한 달 동안 아름다운 낮과 밤이 지나고 추운 계절이 왔다. 오늘 아침에 내 사촌동생이 우리 시골집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아, 날이 갈수록 일들이 어둡게만 꼬여 가는구나! 구원은 언제, 어디서 올까. 사랑하는 어머님과 어여쁜 내 아내의 안위에 대한 근심 걱정으로 내 가슴의 통증은 낮과 밤을 잊고 보낸다. 나는 언제쯤 안정된 가정을 꾸밀 것이며, 내 짐을 모두 풀어 놓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화와 사랑을 누리게 될 것인가!
왕비가 살인자 일본놈들로부터 도망치셨다는 요행을 믿으려는 희망이 모두 꺾이는 듯 두렵기만 하구나. 누군가가 중전마마의 불행한 재난은 유길준과 그 일당의 짓이라고 확신할 수도 있을 텐데. 그자들은 내게 왕비가 돌아가신 게 분명하다고, 감히 왕비의 존칭을 복위할 수 없다고 떠들어대는 점이 적어도 왕비의 시해당하심에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처사이다.
아, 아니다! 왜 나는 왕비 전하가 시해되고 불에 태워졌음에도 왕비가 살아계시리란 측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어윤중이 내게 여러 번 전갈하기를, 숨어 있지 말고 나와서 자기의 보호를 받으라고! 그러더니 오늘 아침엔 브라운 씨 편에 전언을 했다. 내가 숨어 있는 곳에 며칠 더 있어야겠다고.
일본인이 발행하는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에 언더우드 박사가 11월 28일 대궐 침입 사건(춘생문 사건)의 주모자였다는 기사가 났다. 언더우드 부인은 그 신문을 보고 화가 치밀어 일본신문과 상해신문에 항의문을 써 보냈다. 미국 공사 비서관인 호러스 알렌 박사가 특별 요청을 해서 11월 28일에 남편 언더우드 박사가 대궐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라고.
나는 언더우드 박사 부인이 그렇게까지 나선 것이 유감이다. 분명코 공사관 직원이 그 사건에 말려들게 하는 현명치 못한 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더우드 박사 부인도 여자이니만큼 그렇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상해에 계신 영 알렌 박사와 아버님께 상서하다.
12월 11일 수요일.
몹시 춥고 맑은 날씨
내 사촌동생이 어제 풀려났다. 오늘 오후에 사랑하는 아내와 아기가 나한테 와서 몇 시간을 함께 지내다. 수집과 명상들.
1. 10월 8일 사건이 나기 며칠 전, 유길준이 내 사촌 치오에게 굉장히 흥분해서 말하기를, 왕비께서 이제는 그 누를 길 없는 이기심을 더 이상 발산하지 못하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10월 7일 오후에 나는 육종윤(陸鍾允)이 김윤식의 귀에 대고 한 시간 이상을 뭔가 쏙닥거리고 있는 것을 봤다.
2. 10월 8일 아침, 김윤식이 왕비 전하의 시해되신 소식을 듣고 굉장히 안심하는 어조로 내 사촌동생에게 말했다고 한다. “아, 대사성의(大事成矣)로다(큰 일이 이루어졌도다).”
3. 서광범이 미국 체류 중에 언더우드 박사의 형님인 T. 언더우드 씨에게 도움을 받았다. 마음씨 좋은 그 신사는 서광범이 쪼들리는 살림을 하면서도 잘난 체하고 다니면서 도시인 행세를 하는 것에 속이 상했다. 아무 양복이나 입지 않고, 옷감을 사다가 만들 생각도 않고, 자기 스타일에 맞는 옷만 입고 다닌다는 것이다. 서광범이 언젠가 미국에서 일본에 돌아왔을 때 말한 것이 생각난다. 일본사람의 생활수준은 너무 빈약하고, 초라하고, 궁상맞아서 일본인들은 무슨 멋으로 사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나하고는 보는 눈이 굉장히 판이하다고 생각했다.
4. 중전마마를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는 시해되시기 일주일 전날 밤이었다. 왕비는 기분이 언짢으신 듯했다. 중전께서는 자애로운 미소를 띠시고 내게 말씀하시기를, 민상호(閔商鎬)가 서기관으로 워싱턴에 가기로 했다고 하시기에, “저를 유럽의 어느 나라든지 보내 달라”고 여쭈었다. 왕비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이런 장난꾸러기 녀석 같으니라고” 하셨다. 왕비는 궁중 신하들에게 내가 왕자에게 《삼국지》를 얼마나 잘 읽어 주는지 모른다고 즐겁게 말씀하곤 하셨지. 나는 대기실 큰 방에서 잠들어 버리기가 일쑤였지. 나인들은 나를 또 얼마나 귀여워했던가. 왕비께서는 나를 얼마나 조카같이 귀엽게 여기며 바라보셨나 등. 생각나는 게 너무나 많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전께서 내게 자애로운 모습을 보이실 때면 나는 언제나 그분의 위엄에 눌리곤 했지. 30년 동안의 바둑판같이 복잡한 치세기간에도 대원군, 박영효, 이노우에 같은 이들도 왕비를 당해 내지 못했다. 죽음만이 그분을 정복했다. 그것은 또 얼마나 복된 일이었나. 중전께서 조선 땅에 태어나 당신의 조국을 위해 훌륭한 쪽으로, 자신의 이기심을 발휘한 만큼 눈부신 재능을 발휘하신 것은!
6. 극도의 이기심은 왕비에게나 한낱 종 같은 쿨리에게나 때로는 형벌을 가져온다. 누구도 왕비 치하가 압력과 잔인함과 매수로 점철된 긴 정권이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왕비는 몇 백만 명의 백성을 가난하게 했으며, 몇 사람만이 풍요를 누리게 했다. 왕비는 몇 백만 명의 가엾은 백성을 만들었는가 하면, 소수만이 행복에 겨워하게 했다. 왕비는 몇 백만 명을 굶주림과 추위에 떨게 했고, 몇 사람만이 비단옷에 호의호식하고 죄를 짓게 했다. 그렇다면 소수만이 왕비의 죽음에 비탄을 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닐까?
왕비 전하에 대한 추억은 왕비를 좋아하던 소수의 사람들만이 소중하게 마음에 담아 둔다. 가령, 내 아버님 같은 분은 충성심과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와 왕비의 죽음을 복수하려 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의 사람은 극소수이며 너무 멀리 있어서 눈에 띄지도 않는 법이다.
7. 할리 언더우드는 여섯 살 난 유난히도 귀여운 소년이다. 그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는 아이를 버릇없게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려고 든다. 그 아이는 내가 보기에 가장 몹쓸 아이와는 거리가 멀다.
12월 13일 금요일.
몹시 춥고 맑은 날씨
리처드슨 선생에게, 《노스캐롤라이나 헤럴드》에 통지해 내게 오는 신문을 중지해 달라고 쪽지를 보내다. 조중응(趙重應) 법부조사관이 나를 만나러 왔다. 그는 11월 28일 춘생문 사건의 ‘진상조서’를 써 가지고 갔다. 적어도 그는 내 편일 것 같다.
미국 공사관에 피신해 있는 이윤용, 이완용, 이하영, 현흥택, 민상호을 방문하다. 조정에서는 외국 공사관으로 도망친 도피객들을 해산시키는 일을 꺼려서, 이완용과 민상호를 설득해 귀가시키려고 한다. 이완용은 대원군을 무서워한다.
이윤용과 현흥택이 내게 말하기를, 10월 8일 비극의 날 아침에 왕비께서 왜놈들이 내실로 뛰어들어오는 소리를 들으시고 뛰어나오셨다고 한다. 그러나 정병하는 왕비께 “일본인들이 국제법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고는 왕비께서 거처로 다시 들어가시게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병하는 가장 죽일 놈의 배신자이다. 그는 왕비의 은총을 받은 자이다. 그는 왕비가 가장 신뢰하고 좋아하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왕비 시해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영향을 미친 사람 같다. 멀쩡하게 악한 역을 맡은 사람이다. 10월 8일 이후에 내각이 정병하를 그들에게 가장 신뢰를 주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실을 직시한다면, 현 내각이 이해의 가장 훌륭한 각료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가장 좋은 각료란 조선정부가 저주 받아야 할 분쟁을 피함으로써 일반적인 관심과 일반적인 위험을 한데 붙들어 매놓은 각료이다. 그들은 정치가가 아니고 사업가이다. 도망자들로 구성된 내각은 슬픈 비극을 맞게 되리라. 왜냐하면 그들은 원래 협동하기를 꺼릴 것이며, 서로 찔러서 얻어 내고, 업무와 정직성의 즐거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12월 15일 주일.
구름 끼고 추운 날씨
오늘 오후 4시에 어머님이 나를 보러 오셨다. 내게 말씀하시기를, 이재순이 어제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정부가 미국 공사관에 피신해 있는 도피자들을 해산하도록 조치를 요청할 것이라고 하신다.
아버님은 사면 대상에 들지 못하실 것 같다는 것, 안경수와 김재풍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만큼 위험한 처지라는 것 등은 한진창(韓鎭昌)이 어머님에게 알려드린 소식들이다. 일이 암담하게 돌아간다. 언제까지, 얼마나 더 오랫동안 왕비 시해범들, 일본인과 친일파가 앙심을 품고 권력을 남용하게 내버려두어야 할 것인가.
주목해야 할 것은 10명 가운데 하나인 ‘내로라하는 사람’은 두 달 전에 정부의 고위직에 올랐고, 나머지 9명이 도망하거나 숨어다녔다. 현재 그 내로라하는 사람은 모두가 미워하는 김홍집이라는 사람이다. 김홍집은 자존심을 버리고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악명이 높다.
어떤 이는 내게 말하기를, 김홍집은 상투자르기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 미련한 생각이라니! 이 나라의 통치자이신 왕비의 목을 잘라 버린 일본인과 공모한 그가, 이제 자기 상투를 자르는 일에 나섰으니 천박하지 않다면 가소롭다고나 해 둘까.
11월 28일에 일어난 춘생문 사건 전날이었다. 언더우드 박사가 실 공사와 호러스 알렌 박사에게 “왕비께서 공사관에 오시면 보호해 드려야 한다”고 요청했다고 한다. 존경하는 공사관 대표들이 숨을 데 없으신 왕비를 그들이 보호해 드리겠다고 확실하게 언약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진정한 친구들이다. 지난 두 달 동안 미국, 영국, 러시아 공사관 사람들과 대표들이 보여준 겁쟁이같이 어리석고 치욕적인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일본인들이 의기양양하게 떠들어대는 목소리가 외국 대표들을 겁에 질리게 했을 뿐이다. 며칠 전에 서광범이 워싱턴 공사로 임명 받다. 나는 놀라지 않는다. 이번 조치는 그를 현 내각에서 몰아내기 위한 음모였을 테니까.
12월 20일 금요일.
온화하고 구름이 낀 날씨
수집과 명상들.
1. 웨베르 공사가 어제 오후에 언더우드 박사를 만나러 왔다. 언더우드 박사도 대궐에 함께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요청한 것이다. 러시아 대표가 확실한 희망을 지닌 듯이 말한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사람에게 희망이 없다면 실망할 일도 없다는 사실을.
2. 언더우드 박사는 도량이 큰 사람이며 열심히 일하는 분이다. 그의 부인은 오래 사귀면 좋아진다. 가냘픈 몸매의 부인은 아직도 남편의 선교와 관련된 사업을 도와주고 있다. 언더우드 박사의 사촌인 레드패스 양은 그의 집을 돌봐주는데, 아주 열심이다. 그러나 (그녀는) 말은 많이 하는데 재미는 별로 없다.
3. 언더우드 부인. “이런, 할리야(언더우드 목사의 아들)! 빵을 씹지도 않고 입에 넣으면 안 된다고 했잖니? 아니, 할리야, 입에 넣어 삼키기 전에 잘 씹어야 한다고.”
4. 다이 장군이 보고하기를, 며칠 전에 옷을 갈아입으려고 대궐에서 나왔을 때 이야기를 한다. 옷을 갈아입고 다시 대궐로 들어가려고 하자, 경비병들이 못 들어가게 막더란다. 잘하는 짓이다! 그 시해 음모자들이 이제야 무얼 해야 할지 알게 된 모양이다.
5. 초대 일본 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가 15년 전 조선에 부임했을 때, 공사와 일행은 서대문 밖에 있는 천연정(天然亭, 현재 적십자병원 자리-옮긴이)에 숙박하고 있었다. 익살스런 어떤 조선인이 일본 깃발이 펄럭거리는 것을 보고 이렇게 해석을 달았다. “일본이 조선과 금방 싸우고 싶어하는군, 그래. 왜냐하면, 금방(깃대 꼭대기에 달린 둥근 금빛 놋쇠 공) 해(태양) 보자(보자기, 깃발 의미)고. 아니면 ‘우리 당장 싸우자’는 뜻이라고!”
6. 조선이 원하는 것은 민생고를 해결하고 치안을 책임져 줄 수 있는 강력한 정부이다. 어떤 조선 사람이 어제 내게 말하는데, 우리나라 백성들은 그 어떤 토지도 사 두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가 바뀌면 다음에 그 값이 오를지 내릴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지 않고 재주만 피우는 ‘공중제비’ 같은 정부에 식상해 버렸다는 것이다.
12월 21일 토요일.
몹시 춥다
어제 오전 중에 상해의 영 알렌 박사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다. 안전하게 도착하신 아버님이 이제 상해에 정착하셨다는 것이다. 리이드 박사에게서 더 신나는 글월을 받다. 아버님이 지금 리이드 박사님과 함께 머물고 계시다는 소식이다.
오후 4시 경에 어머님이 나를 만나보러 오셨다. 한진창의 믿을 만한 정보에 의하면, 김윤식, 유길준, 어윤중 등이 어제 거의 하루 종일 함께 밀담하며 지냈다는 것이다. 그자들이 하는 업무란 언제나 똑같이 웨베르 공사를 만나는 누군가의 청을 들어주도록 권유하는 문제를 토론하는 게 일이었다.
웨베르 공사와 언더우드 박사가 오후 4시에 대궐에 입궐하러 갔으나 거부당했다. 잘하는 짓이다! 그 ‘내각’은 웨베르 공사가 곧 출국할 것이며, 이미 후임 공사에게 직위를 넘길 단계임을 확실히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웨베르 공사에게는 화낼 일도 없고 기뻐할 일도 없기 때문에, 그에게 더 이상 바랄 것도 없고 무서워할 일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웨베르 공사는 외부(외무부)로부터 임금을 알현하라는 공식문서를 받은 것이다. 웨베르 공사는 그 무례한 짓에 소동을 피우며 변명을 들어줄 수도 있으리라. 아마도 단지 문지기 측의 감시로 끝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12월 24일 화요일.
구름 끼고 추운 날씨
아침나절, 미국 공사관에 피신해 있는 사람들(도피자들-옮긴이)과 함께 지내다. 새로운 소식은 없다. 오늘의 관보에 내가 외부협판(외무부 차관-옮긴이) 직에서 해임되었다는 공고가 났다. 그리고 이달 21일에 있었던 일(웨베르 공사가 문전박대를 당한 사건-옮긴이)에 대해 러시아 공사관에 사과한다는 내용과 함께. 나는 전하의 어명으로 외부에 부임한 것이다. 전하의 적수들이 나를 내몰아친 것은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일이다.
오늘 밤은 향수에 젖다! 내 사랑하는 아내와 나는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들에게 돌아갈 수가 없다. 언제쯤이나 우리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가정에서 다시 만나서 살게 될까?
12월 25일 수요일.
구름 끼고 추운 날씨
색다른 성탄일이다. 슬픈 표정을 짓거나 여자들처럼 징징거리는 바람에 성탄의 기쁨을 망가뜨리지 않으련다. 아직은 내 슬픈 심정을 미소로 위장할 수 있다. 오전에 내 어여쁜 아내와 아기가 찾아와서 커틀러 박사의 방에서 지냈다. 정동에 사는 숙녀들과 함께 간단한 점심을 들다.
한세진(韓世鎭)이 나를 만나러 왔다. 그의 우정은 내가 크게 존중하고 있다. 그는 박영효가 한 달 전에 제안한 좋은 자리를 거절했다. 그는 어느 당파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그런 처지의 그가 “나는 아직도 윤 협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소. 설령, 윤 협판이 시도한 마지막 기획이 실패해서 감옥에 가거나 죽게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오”라고 말했다.
웨베르 공사가 오늘 오후에 전하를 알현하다. 그가 전하에게 말씀드리기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훈령을 받았는데, 러시아의 후임 공사가 부임하더라도 전하와 조선에 도움이 된다면, 웨베르는 조선에 더 머물러도 좋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웨베르는 전하께 “현재 조정의 칙령과 지침은 완전히 개혁과 개화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말씀드렸다는 것이다.
웨베르 씨가 나에게 개인적인 우정을 나누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말한 것이 기뻤다. 지금도 전하와 전하의 가까운 친지들은 암살자들이 겁을 내는 웨베르의 처우로 인한 공포보다는 웨베르의 신실함에 더 희망을 두었다.
언더우드 박사 댁에서 멋진 성탄축하 만찬을 나누다. 저녁에는 아주 즐거운 게임을 했다. ‘운율 맞추기’ ‘질문에 답하기’ ‘교리문답’ ‘일치하기’ 등의 게임을 하다가, 12시가 되자 일행은 ‘올드 랭 사인’을 부르며 헤어졌다.
12월 26일 목요일.
온화한 날씨
오늘 아침에 대원군 측 사람이 찾아와서 언더우드 박사에게 알리기를, 대원군이 도피자들을 내쫓는 일에 매우 화가 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원군에게는 친구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일도 할 수 없고 무기력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 심부름꾼은 대원군 노인이 언더우드 박사가 공사관의 지원을 받아 그가 행세하는 일을 거들어줄 의사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보낸 게 분명하다. 언더우드 박사가 그 심부름꾼의 말을 믿을 만한 고관을 보내서 합의를 했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이 노 대감은 단지 표면상 이용당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손자 이준용이 며칠 전에 일본으로 발령이 났지만, 그 일은 노 대감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이 나라는 정치적인 사안들을 힘들게 만들어 놓고는 외국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고 든다.
헐버트: “헬렌, 대답해 봐, 롯의 아내가 어떻게 했지?”
헬렌(다섯살배기 딸): “그 여자는 석양녘에 죽어 버렸습니다.”
서재필 혹은 필립 제이슨 박사라는 사람이 지금 서울에 있다. 그는 현재 미국 시민이다. 그는 미국 시민들이 사는 곳에 정착하려고 애쓰고 있다.
오늘 아침에 미옥이를 방문하다. 12살 된 박영효의 딸로, 정동에 있는 감리교여학교에 다닌다. 미옥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어린 소녀의 모습에서 아버지 박영효의 장래 성쇠(盛衰)의 운이 어떻게 될지, 그리고 그의 딸이 겪을 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언더우드 부인이 올빼미 파티를 마련했다. 유니언 룸에서 열린 성탄 축하잔치에 가지 못한 미옥이를 포함해서 11명의 어린이들이 참석했다. 내 딸, 로라도 끼였다. 만찬에 이어 게임, 요술쟁이 램프와 크리스마스트리를 제일 앞자리에 갖다 놓았다. 어린이들은 화면에 전하의 얼굴이 나타나면 즐거워했으나, 일본인들이 보이면 “쉿!” 하고 서로 소리를 죽이면서 그들의 설움을 가라앉혔다.
오늘 오전에 이문규와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왜 사람들이 모두 일본사람을 미워할까요? 일본에 오래 살았던 사람도 일본사람을 독벌레 보듯 싫어하던데요”라고 했더니, 이문규가 이렇게 대답했다.
“왜냐하면요, 그 사람들은 너무 빼빼 마른 데다 간사스럽거든요. 그자들의 장사하는 솜씨를 보세요. 일본제는 튼튼하고 오래 간다는 상표가 없어도 잘만 팔리지요. 그런데 저들의 말씨와 행동이 일치하질 않거든요. 그자들은 우리를 도와주려고 한다고 말합니다만, 저들이 하는 짓은 우리에게 상처만 줍니다. 그자들이 우리에게 상투를 자르게 하는 건, 그네들의 모자 가게와 양복점만 돈 벌게 해 주기 위해서랍니다. 아니, 아니죠. 일본은 우리를 개화시키진 못할 거예요. 우리 조선이 외국의 영향을 받아 개화하려 한다면, 일본보다는 유럽이 더 낫지요.” 이문규는 학식 있는 사람도 아니고 관리는 더욱 아니다. 그의 감각적인 느낌은 모든 사물에 공통적인 감정을 표시한 공통지수일 뿐이다.
12월 27일 금요일.
바람 불고 추운 날씨
온 장안이 지난밤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였다. 오전 11쯤에 이용원(李容元)이라는 한 노인이 언더우드를 만나러 왔다. 그는 풍채가 좋은 노인이다. 그는 언더우드 박사에게 말하기를, 대원군이 지금 ‘변절자들(현 내각)’ 때문에 대단히 성이 났고, 나아가 현재의 왕비 시해자들이 이끄는 정부가 걱정되어 그들을 뒤엎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에 들어온 일본 관리들을 파멸시킨다면 얼마나 기쁠지 모르겠노라고 말했단다.
이문규는 (현 내각에서 일하는) 일본인 밑에서 종같이 일하는 노동자 이야기를 할 때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말했다. 그러더니 새로운 내각의 대신들로, 시대감각이 뒤떨어지는 몇 사람의 늙은이를 들먹거렸다. 대원군의 편에서 그는 언더우드 박사에게 웨베르의 개입을 요청해 달라고 말했다. 언더우드 박사는 웨베르와 담화를 나누었으나, 웨베르가 “러시아는 조선의 내부 사건에 간섭할 수 없으므로 대원군과 협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면서 거절했다. 내슈빌의 나운버드 박사에게서 편지를 받다. 아버님의 하서(下書)도 받다.
12월 28일 토요일.
몹시 춥고 맑은 날씨
아침에 대원군 측근의 사람이 와서 언더우드 박사에게 말하기를, “어젯밤에 대궐에서 아주 큰 소동이 일어났는데, 상감과 세자 전하와 대원군에게 상투를 자르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마치 임금을 강요하는 강압정치를 계속하려는 것 같았다는 것. 대원군은 조선을 러시아에 종속국으로 넘겨 주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과, 준비해 둔 협상을 오늘로 마감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대원군은 궁내부대신인 그의 큰아들 이재면을 믿을 수 없어한다는 것이다.
언더우드 박사에게 이 사건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고 조언했다. 조선이 만일 멸망해서 러시아의 종속국이 된다면, 러시아 당국이나 조심할 일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나는 그 일을 성사시키는 도구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언더우드 박사 자서전 집필자인 송씨가 오늘 아침에 깜짝 놀랄 만한 일을 내게 알려주었다. 즉,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도 상투 자르기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일본사람들이 그렇게 강제로 끌어내 상투를 자르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항의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터무니없는 짓들이다!” 나는 화를 억누르고 냉정하게 보이려고 애쓰며 말했다. “사람들은 어째서 일본이 우리 왕비마마를 개처럼 죽였을 때는 아무 말도 않더니, 이제 와서 상투 좀 자른다고 항의를 하는 건가!” 대원군의 대리인 이요원이 오늘 웨베르와 오랫동안 회담을 가졌다. 웨베르가 대답하기를, 개입해야 할 사안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
12월 29일 주일.
몹시 춥다
대원군 측 사람이 오후 7시30분쯤 언더우드 박사에게 와서 말하기를, 군인들이 오늘 밤에 상투를 단발하러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제적으로 상감, 세자, 대원군의 상투를 차례로 자른다는 것이다.
만일 조정에서 이번 일에 성공을 거둔다면, 아주 분별 있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언더우드 박사는 그런 일을 강압적인 방법으로 행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유를 들어 거절한다면 강제로 복종하게 하고야 말 것이다. 오직 내게 걱정되는 것은 그 정보가 잘못된 소문일 수 있다는 점이다.
대원군이 그의 대리인을 통해 웨베르에게 말하기를, 만일 웨베르가 대원군의 진의를 의심한다면 웨베르가 새 내각 안에 친러파 사람들의 이름을 내놓아도 좋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대원군 노인은 정직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12월 30일 월요일.
맑고 추운 날씨
저들은 어젯밤에 대궐에서 삭발을 단행하지 못했다. 조정이 단발령을 강행할 만큼 그렇게 강력하거나 분별력 있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대원군이 어제 웨베르에게 건넨 비밀 협상은 이미 주위에 쫙 알려졌다. 이용원이 달아나 버렸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어제 대량의 관보에 포고문이 올랐다. 박선, 이주회, 윤석우 등이 10월 8일의 범죄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된다고 한다. 그들의 처형은 그들의 죄상에 대한 다음 사건을 급속도로 강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 박선은 머리를 짧게 깎고, 외국인 옷을 입고 일본인으로 변장해서 의심 받아 온 인물이다. 10월 8일 일찍이 그는 폭군 무리에 들어가 일본인들과 함께 광화문 통을 달려갔다. 홍계훈(洪啓薰)이 문에 서서 그에게(혹은 무리들에게) “배반자들”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박은 홍계훈의 팔을 칼로 쳤다. 그러고는 바로 왕비의 거처로 직행한 것이다. 그는 칼로 왕비의 머리를 베고 뜰로 끌고 나왔다. 그는 칼로 왕비의 가슴을 찔렀다. 그러고는 시신을 검정 담요에 말아서 그 위에 석유를 끼얹어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2. 이주회는 10월 8일 아침 일찍 영추문(迎秋門)으로 갔다가 광안당으로 직행했다. 그러고는 세자와 공주를 위험에서 구출해 나왔다. 그러나 그가 처음에 했던 고백은, 그가 대궐 안에서 총포소리를 듣자마자 사복차림으로 광화문으로 달려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문은 닫혀 있었고, 그가 영추문에 이르렀을 때는 그곳에 감시하는 보초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대궐 안에 있는 여러 개의 대문을 통과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건이 발생한 그날 아침에(장박은 T.H.Y.의 음모를 다 알고 있었고), 폭도들이 생각없이 보초도 세우지 않고 대문을 모두 열어 둔 채인 것이 믿기지를 않았다.
다시 그의 두번째 고백을 들어 보면, 그는 신거문(辰居門)에서 십여 명의 대궐 하인들이 폭도 군인들 손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위험한 상항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몸짓으로 주의를 주자, 군인들이 그를 보고 하인들을 놓아둔 채 도망쳤다는 것이다. 이 상황은 이주회가 그 폭도 중의 한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무슨 몸짓과 명령을 했기에 폭도들의 그 소란스러운 정신을 조정할 기술이 있었단 말인가?
그 이후의 세 번째 고백은 그도 스스로 인정한 대목이다. 그 사건 현장에서 그 군인들이 자신이 명령 내린 것에 복종하는 것을 하인들이 알아보았기 때문에,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폭도의 공범자로 몰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3. 윤석우는 그의 뛰어난 상관들인 이두황(李斗璜), 이범래(李範來), 남만리(南萬里)의 명령에 따라, 그의 군사 일행을 끌어내어 태화궁(太和宮)으로 인도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그는 춘생문을 지나 강령전(康寧殿) 뜰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그의 군인들을 다른 작전지역으로 배정했다.
그가 광화문과 건춘문을 돌고 있는 동안, 녹산(鹿山)에 있는 흙더미 앞까지 이르렀다. 그곳에서 그는 불타는 시체를 보고 조심스럽게 묻자, 그것은 시녀의 시신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 날 그가 들은 것은 왕비께서 도망치실 틈이 없었고, 대궐 안에서 죽은 시녀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정보를 듣고 그는 흙더미 옆에서 그가 본 불타는 시신은 왕비마마의 시신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날 밤에 우범선과 이두황의 동의를 얻어 불에 탄 시신을 낮은 분지를 찾아 오운각(五雲閣) 서봉(西峰)에 매장했다는 것이다. 윤석우가 설령 그날 밤(혹은 새벽)에 그의 상관의 명령에 따라 대궐에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해도, 그가 꾸민 놀라운 의구심은 여전히 남는다.
더군다나 그 행위는 굉장히 부도덕하고 건방진 행위이다. 그의 편에서 보더라도, 그 시신이 누구인지를 알았다면서 어떻게 감히 성스러운 시신을 옮길 수 있었단 말인가. “이 마당에서 언도 받은 세 명의 죄수를 참수하기로 결정한다.” 나는 이주회와 윤석우는 죽일 가치조차 없는 범죄자라고 쓴 신문을 보았다. 만일 장, 박, 그리고 그의 폭도 친구들이 이렇게 얄팍한 함정으로 세상을 기만하려고 했다면 잘못된 생각임을 알게 될 것이다.
저녁 7시30분에 빈턴 박사 내외와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다. 빈턴 박사의 생일잔치였다. 파티 때 ‘코넌 드럼스’라는 인디언 놀이를 했다.
12월 31일 화요일.
구름 끼고 추운 날씨
수집과 명상들.
1. 어제 전하께서 음력 11월 보름날(12월 30일)에 상투를 자르시기로 결심하셨다는 포고문을 붙이라고 하셨다. 관리들과 백성들은 이 단발령을 이행해야 한다. 불쌍하신 왕 전하와 그의 아버님은 어제 온종일 외국공사관의 도움을 청했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고, 종내 두 분은 밤 11시에 상투를 자르시게 되었다.
2. 조병호(趙秉鎬)는 상투를 자르는 처사를 모면하려고 궁내부 직을 포기한 사람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이 되고 만 것인가! 왕비가 시해되셨을 때는 직책을 내놓지 않다가 보기 흉한 상투를 안 자르려고 도망치다니! 그뿐 아니라, 종로에 있는 상점 주인들은 10월 8일 왕비 시해 사건이 터진 날에도 개점하고 장사를 벌였다.
시해 사건에 대한 철학적인 견해가 달라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은 적어도 그들의 상투를 억지로 잘라야 한다고 하니까 가게문을 모두 닫아 버렸다. 그래서 장터의 모든 남자들이 물건들을 모두 내동댕이치고 엉뚱한 칙령이 무서워 도망친 것이다. 어느 나라 백성이 이러한 조선 사람들보다 더 비열할까? 그들은 낙타라도 삼켜버릴까, 설마….
3. 이도철과 임최수는 오늘 처형되는 11월 28일의 춘생문 사건과 연루되어 있다. 안경수와 김재풍은 3년 유죄선고를 받았으나, 단지 투옥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4. 러시아가 조선의 중대 사건들에 간여하지 않는 이유는 대원군과 임금이 일본의 병력투입을 두려워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현 상황에서 일본이나 친일파와 겨룰 만한 상황이 못 된다. 어떤 주둔군과도 대결해서 이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한에서 말이다.
5. 언더우드 박사 댁 응접실에서 철야기도 모임에 참석했다.
6. 오늘은 우리 로라의 돌날이다. 오늘 아기와 아내와 어머님과 함께 지낼 수 없어서, 식구들에게 미안하고 슬프기만 하다.⊙
| 1895년 11월에 일어난 일들 ● 임금과 세자는 왕궁에 유폐당하다. 임금은 웨베르와 언더우드에게 구출을 요청하다. ● 이노우에가 조문한다는 명분으로 다시 오다. ● 유길준이 말하기를, 왕비 시해 주모자가 3명인데 유길준, 서광범, 윤치호라는 터무니없는 중상을 하다. ● 헨드릭스 감독에게 남감리교 선교부가 개성에 산업학교를 설립하게 해 달라고 편지하다. ● 왕비의 폐위된 호칭을 복귀하고, 외국 공관장에게 알리다. ● 민비 시해에 연루된 각료들을 제거하다. ● 임금을 구출하려던 계획이 사전 밀고로 실패하다(춘생문 사건). ● 구출작전을 지휘했던 윤웅렬은 상해로 도피하다. ● 윤치호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집으로 피신하다. ● 친미각료 이완용, 이윤용, 이하영, 현흥택, 민상호는 미국공관으로 피신하다. 11월에 등장하는 주요인물 ● 유길준(兪吉濬, 1856~1914): 민비시해 연루설을 변명하다. 친일내각의 실권자. ● 어윤중(魚允中, 1848~1896): 48세. 탁지부대신. 해임되었다가 민비 시해 후에 복직. 이듬해 고향에서 피살됨. ● 의화공(義和公, 1877~1955): 제2왕자, 이강(李堈). 의친왕. 일본에서 유럽으로 가고 싶어함. ● 이재면(李載冕, 1845~1912): 대원군의 큰아들. 고종의 형. 흥친왕. 궁내부대신. ● 김윤식(金允植, 1835~1922): 민비 칭호 격하를 주장하는 외부대신. |
11월 6일 수요일
수집과 명상들.
1. 지난 토요일 밤에 눈이 내리다.
2. 유길준이 나를 만나자고 해서 그의 사무실로 방문하다. 내가 놀란 것은, 지난번 대궐에서 일어난 왕비 살해 사건에 대한 그의 견해였다. 그는 외국인들 대부분이 자기를 의심하고, 총리대신이 음모단에 연루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아주 부당하다는 것이다. 자기는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왕비 폐위 문제에 반대했다는 것. 그가 일본 공사에게 우범선(禹範善)과 이두황(李斗璜)을 대궐에서 쫓아내라고 며칠 전에 권했다는 것이다. 그는 내게 외국 인사들에게 자신의 결백함을 이야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3. 유길준이 내게 말하기를, 류혁노(柳赫魯), 정남교(鄭南敎), 이주회(李周會) 등이 왕비 시해 사건의 주모자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며칠 전에 도망가 버렸다.
4. 유길준과 그의 일당이 우범선, 류혁노, 정남교, 이주회 등을 도주시킨 것은 그들에게 범행을 모두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틀림없다. 유길준과 스기무라 후카시(杉村濬)가 음모의 괴수들인 것을 생각하니, 그 불씨가 이제 내 발등에 떨어질 차례란 생각이 나서 걱정스럽다.
5. 가톨릭교회 사제들과 새 신자들이 원산과 안변 일대에서 터무니없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불쌍한 조선 사람들은 그들을 보호해 준다는 명분으로 가톨릭교회와 합세한 관리들에게 극심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제의 옷자락 밑에서 그들의 직장을 안전하게 지키고 있고, 마귀들은 온갖 죄악을 떠맡았고. 그 꼴을 보아도 지방 관리들은 그들을 처벌하지 못한다. 온 마을이 로마 가톨릭교회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가톨릭 선교부는 새 신자들을 수천 명씩 모아들이고 있다니!
6. 유길준이 말하기를, 경무사 권형진(權瀅鎭)이 걱정하는 것은 조정에서 폐위된 왕비의 지위를 다시 복권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1월 8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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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고종의 다섯째 아들로 귀인 장씨에게 태어난 의화공 이강. |
2. 유길준이 말하기를, 왕비 시해의 주모자가 세 사람인데, 유길준 자신과 서광범, 그리고 나(윤치호)라는 것이다. 나는 유길준이 점점 두려워진다. 이따금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술수를 쓴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뛰어난 재능과 능력을 갖춘 그가 입증되지 않은 거짓말을 소문인 척 퍼뜨리며 유길준 자신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람이다.
3. 헨드릭스 감독에게 편지 쓰다. 송도(개성)에 있는 산업학교에서 일해 줄 수 있는가 문의했다. 외부대신의 편지를 도쿄에 있는 우리나라 공사관에 보내다. 나의 사촌이 포함된 신입생 10명의 지원을 생각해 쓴 편지이다.
4. 아버님과 안경수(安駉壽)와 그레이트하우스(Greathouse, 고종의 법률고문) 장군은 유길준이 제안한 왕자 의화군의 귀국요청 편지를 내가 보내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갑작스런 소환은 어떤 음모가 있을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유길준은 오늘 아침 내게, 미국 공사가 전하에게 왕자 의화군을 소환하도록 건의했다는 것이다. 오늘 밤에 그레이트하우스 장군이 내게 편지를 보냈다. “실 공사와 호러스 알렌박사 두 사람 모두 ‘왕자 의화군을 소환하라’는 조언을 했다거나, ‘의화군이 조선에 돌아오기를 원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이것은 유길준의 또 다른 말장난인가?
5. 유길준이 오늘 아침 내게 비밀이라면서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총리대신과 내각을 해치려는 사람의 행동을 막기 위해, 김 아무개의 딸을 왕비로 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폐위된 왕비를 복위하는 일이 늦어지는 이유임을 이제야 알겠다.
6. 어제 아침에 포고문이 종각 앞에 나붙었다. 일본훈련대가 이달 보름날 대궐 문앞에 집결한다는 것. 왕비를 살해한 것으로 추측되는 군인들을 처형한다는 것이다.
11월 15일 금요일.
아름다운 날씨
저녁 8시 경에 탁지부대신 어윤중씨를 방문했다. 그는 오늘 서울에 다시 올라왔다. 그에게 그가 알고 싶어하는 소식들을 들려주고, 조정이 왕비 시해에 관한 포고문을 서둘러 내도록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
(1) 시해된 왕비의 칭호를 전과 같이 회복시켜 드릴 것.
(2) 문부(文部)와 농부(農部)를 폐지할 것.
(3) 제2왕자의 현재 직책을 해제할 것 등을 건의했다.
11월 17일 주일.
제물포. 아름다운 날씨
이노우에를 전송하려고 제물포에 내려왔다. 내일 오전 중에 떠나게 될 것이다. 일본정부는 조선정부를, 국모를 시해하고 나서도 지원하기로 결정했지만, 외국정부들은 새 내각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한다. 사건 전모에 대한 결론과 도덕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일본정부는 어찌 됐던 즐거운 처지가 된 것 같다. 왕비가 시해되고, 조선정부는 일단 일본이 호감을 갖는 사람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2. 이제부터 사람들은 임금과 세자의 안전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위의 두 분과 새 내각은 동반자가 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지금 잔인한 미소를 띠고 자비심을 베풀고 있다. 일본과 친일파들은 그들의 목적에 부합한다면, 어느 때이건 왕을 시해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3. 살인과 암살. 믿을 수 없는 배신행위의 본성을 가진 그들은 누가 희생자가 되든지(안중에도 없고), 나쁜 짓만 일삼은 자들로 성역화된 외부의 관중들은 부러운 찬사를 던지며 조선을 넘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 북 치고 장구 치며 색종이를 날리며 입성하는 개혁과 개화의 종착점이란 말인가.
4. 일본은 지금쯤 저들이 꾸며낸 음모와 자랑스러운 성공을 축하하고 있으리라.
5. 왕비 폐위를 꾸며 낸 총리대신과 일당이 우범선과 이주회에게 칼로 위협을 받으며 억지로 끌려나왔다고 하는 행위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그자들은 어째서 왕비의 칭호를 복귀하려고 하지 않을까, 이젠 그 강제성이 사라졌는데도?
11월 20일 수요일.
아름다운 날씨
제2왕자 의화군은 오늘 그의 강제 직분에서 풀려나다. 그레이트하우스 장군은, 내년 봄에 일본과 러시아 간에 전쟁이 일어나리라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승리하기를!
11월 21일 목요일.
좋은 날씨
사무실에 평상시대로 근무하다. 내 사촌 치오(致旿)로부터 어젯밤에 외부 사무실로 전보 한 통이 날아왔다는 정보를 들었다. 그러나 사무실 안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그 전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윤식 대신은 오늘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
11월 22일 목요일.
좋은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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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5년 무렵 윤웅렬 장군과 윤치호 부자. |
유길준은 한 술 더 떠 말하기를, 그의 당에서 대원군을 그의 집에 감금하고 이주회를 체포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외부대신이 어리석게도 대원군을 대궐에 다시 입궐하게 하려는 모의에 실패했던 이재면에게 누설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자, 어디 보자! 그런데 내 사촌 치오는 어쩌자고 이따위 전문을 보내는 바보짓을 했단 말인가! 치오는 내각에서 폐위한 왕비의 복권을 실행하지 말라는 충고나 하고 있다니, 제정신이 아니구나! 어찌 되었던 큰일이다. 외부대신이 전하에게 전보내용을 보여드리기 전에 적어도 김홍집과 유길준에게 먼저 의논했어야 하는 것인데. 더군다나 내 아버님은 어제 아침에 김윤식, 김홍집, 유길준 등이 유길준의 사랑방에서, 다시 말해 전보가 도착한 다음 날 아침에 비밀회의를 하는 것을 보셨다고 한다. 유길준이 그 전보내용을 본 적이 없다고 잡아떼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짐작해 보건대:
1. 조정이 러시아와 영국으로부터 지원 받을 희망을 차단하기 위해 그 전문을 전하에게 보여드려야 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2. 아마도 그들은 전하의 마음이 내게서 돌아서도록 편견을 갖기를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3. 김윤식이 내게 말하기를, 그는 전문을 이재면에게 보여주었고, 이재면은 전하에게 보여드렸다는 것이다. 전보문 내용은 폐위된 왕비의 복권을 반대한다는 상소의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재면은 전하가 제2왕자를 멀리하도록 계책을 쓰는 게 분명하다.
11월 26일 화요일.
좋은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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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아렌 미국공사의 초청으로 정동 미국공사관에서 회의를 가진 후 기념촬영한 사진. 오른쪽 두 번째부터 독일, 프랑스, 미국, 청나라, 영국 공사이고, 왼쪽에서 두 번째가 러시아 공사다. |
“오늘 신사 여러분들을 모신 것은, 내각이 여러분의 힘을 빌리기를 원해서입니다. 전례대로 중요한 사안들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보현당(寶賢堂)으로 자리를 옮겨서 기다려 주시면, 한 시간 후에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이 말씀은 전하의 형(이재면-옮긴이)이 상감을 대신해서 말한 내용이다. 외국 공사들이 대기실을 떠나간 다음, 나는 전하와 왕자를 아주 가까이서 뵐 기회가 있었다. 번뇌하시는 모습과 억압받는 여건에 놓인 상감과 왕자를 뵙자,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내 모습을 보신 상감과 왕자는 내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을 경고하려는 듯, 두 분은 내게 머리를 저으시고 손을 내젓는 몸짓을 하시며 내 앞으로 다가오셨다.
내각은 전하 앞에서 두 시간 가까이 회의를 이어 갔다. 오후 4시30분쯤에 김윤식이 외국 대표들 앞에서 새 칙령을 발표했다. 왕비의 호칭 복귀와 10월 9일에 문제가 된 안건을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궁내부대신이 공사관 대표들에게 새 내각을 발표했다.
군부대신 조희연(趙羲淵), 경무사 권형진 등은 파면되고, 이도재(李道宰)를 군부대신, 허진(許璡)을 경무사로 발령하며, 10월 8일에 일으킨 범죄자들은 모두 수색 검거해서 처벌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사관 대표들이 상감과 접견을 마치고 대궐을 떠나기 직전, 실 공사와 웨베르 공사 등이 전하에게 좋은 결정을 내리셨다고 치하했다.
“왕비 전하를 폐위하는 칙령을 내렸을 때, 우리는 그것을 전하께서 내리신 칙령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칙령은 우리가 인정할 수 없는 무의미한 것이었으니까요.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취소할 것도 없지요. 우리는 전하께서 그 칙령을 내리신 분이 아님을 믿어 왔고, 그 신뢰를 오늘 확인하게 되어 기쁩니다.”
그런 다음, 나는 전하께 오늘 시행하신 조치는 전하의 뜻이었는가 여쭈어 보았다. 전하께서는 모두 조정에서 해 놓은 일이며, 전하는 “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왕후 호칭을 복귀하는 단계에서 반대에 부딪혔다고 말씀하셨다. 전하와 소곤소곤 작은 소리로 말씀을 나누고 있을 때, 내시 두 명이 우리 옆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을 보시더니 전하께서 화제를 바꾸어 내게 말씀하셨다. “네 애비는 잘 있느냐?” “예, 잘 있습니다, 전하.” 대답해 드리고 나는 보현당을 빠져나왔다.
11월 27일 수요일.
좋은 날씨
평상시대로 사무실로 출근하다. 오후 4시 경에 아버님이 내게 제일 먼저 말씀해 주신 이야기다. 종친 몇 명이 이전에 대궐 경비대 소속이던 군인들을 데리고 오늘 밤에 대궐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신다. 목적은 위험한 상황에 계신 전하를 왕비를 시해한 살인자들에게서 구출하려는 것이다. 아버님은 그 지원자 일당들을 거느리고 내각의 수중에 잡히신 전하를 구출하기 위해서 들어가려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외국 공관에서도 사전에 알아야 하겠기에 같은 시점에서 대궐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실 공사와 웨베르 공사를 방문해서 그들에게 대궐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고, 밤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몇 사람의 외국인이 대궐에 같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암시를 하면서, 한 경호원이 전하를 안전한 거처로 모시기 위해 경호원 수가 늘어나게 되리라고 말해 두었다. 구출 부대원들이 건청궁(乾淸宮: 경복궁 안에 민비가 거처하도록 새로 지은 궁)을 지나 지금 전하가 계신 대궐로 들어가려고 한다. 이재순(李載純)은 일을 꾸미는 도사로 알려져 있고, 김재풍(金在豊)은 일꾼 가운데 한 사람이다.
11월 28일 목요일.
좋은 날씨
밤잠을 아주 설쳤다. 새벽 3시30분쯤에 김화영(金華榮)이 들어와 나를 깨워 일으켰다. 군인들이 대궐로 몰려갔고, 유길준·어윤중·김홍집과 정병하(鄭秉夏)도 몰려갔으며, 정병하는 살해되었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군인들은 지휘관의 지휘 아래 대궐을 점령하고, 외국공관 대표들에게 ‘대궐로 들어가서 전하를 이 다급한 위기에서 보호해 달라’고 쪽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미국공사관으로 김화영과 함께 달려갔다. 공사관 문에 들어서자 대궐 가까운 쪽에서 큰 함성이 들려왔다.
실 공사와 힐리에르 씨는 러시아 공사관 담을 넘어서 들어갔다. 웨베르 공사와 의논이 되어 그들도 대궐로 함께 가기로 결정을 했다. 그런데 내가 공사관에 도착하기 전에 군인들이 보낸 쪽지에 공사관 대표들이 대궐을 향해 출발할 준비가 되었다고 전해 왔다. 그래서 나는 군인들을 동반해서 대궐로 뛰어갔다. 완전한 정적만이 대궐 주변을 감돌았다. 불길한 징조였다. 대궐 정문은 꽉 닫혀 있었고-계획이 성공할 것 같지 않았다.
자, 우리도 전진이다! 동쪽의 건춘문에 가까이 이르자,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조선사람 몇 명을 만났다. 그들이 말하기를, 그 사람들도 대궐문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어 외국공사 대표들이 도착하기를 걱정스럽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우리가 북동문 가까이에 이르자 그 문들은 아예 열리질 않았고, 궁궐에 힘으로도 들어갈 수 없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와 군인들의 말을 들은 외국공관 대표들은 상감께서 위기에 처하셨고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어떤 공사관 대표도, 밤낮을 틈타 대궐을 구출하려 나선 사람도 침착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 군인들은 곧 흩어져 각기 집으로 돌아가 버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군인 중 한 전령을 붙잡아 외국 공사 대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공사관 대표들은 그들의 공사관으로 돌아가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자 아버님도 돌아와 계셨다. 아버님은 함께 간 군인 일행이 약속된 고궁 옆에 있는 궁궐의 북동쪽 문(춘생문-옮긴이)에 이르자 문이 열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대궐 경비대가 완전 방어태세를 하고 있더라는 것. 그런가 하면, 공격하던 일당이 많은 희생을 치렀다고 했다. 아버님은 그 군인들에게 낯선 노인에 불과할 뿐, 그들에게 명령을 내려도 듣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일이 성사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 자리를 떠나셔야 했다는 전말(顚末)을 들려주셨다.
나는 아버님께 즉시 몸을 피하도록 간청했다. 외부 사무실에 근무하려고 나섰다. 그러나 호러스 알렌 박사가 나를 억지로 미국 공사관으로 데리고 갔다. 공사관에서 하루 온종일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밤에 아펜젤러 씨 댁에 가서 그리로 나를 찾아온 아내와 함께 자다.
춘생문은 현재 경복궁의 북동쪽 문이다. 1895년 10월, 민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乙未事變) 이후에 친일정권에 포위되어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던 국왕 고종(高宗)을 궁 밖으로 나오게 하여 친일정권을 타도하고 새 정권을 수립하려고 시도했던 사건이다. 11월 28일에 명성황후계, 친미파, 친러파의 관리와 군인, 그리고 외교관들이 관련한 사건이다. 11월 28일, 구(舊)시위대 군인들이 안국동을 경유하여 건춘문(建春門)에 이르러 궁궐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삼청동으로 올라가 춘생문에 이르러 담을 넘어 입궐하려고 시도했다. 사전에 미국인 군사교관 다이와 약속이 된 친위대장 이진호가 문을 열어 주어 그들이 궁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협의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진호가 변심하여 미리 군부대신 서리 어윤중(魚允中)에게 계획을 밀고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결과 친위부대가 맹렬히 반격함으로써 ‘춘생문 사건’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주모자들은 모두 흩어졌고, 윤웅렬은 망명길에 올랐고, 외교관들은 공사관으로 몸을 피했으며, 윤치호는 선교사 언더우드의 집에 피신한다. 춘생문 사건을 ‘춘생문의거(春生門義擧)’라고도 한다. 춘생문 사건의 실패로 처벌을 받은 사람 중에 이도철(李道徹), 임최수(林最洙) 등은 이 의거가 고종황제가 전달한 ‘대조선 대군주 이재황(李載晃): 나를 궁궐에서 구하라’는 밀지(密旨)에 대해 끝까지 함구한 채 처형된다. 훗날 고종은 춘생문 의거와 관련 순절한 신하들에게 충절을 생각하여 복권해 주었고, 이도철에게는 충민공(忠愍公)의 시호를 내리고 장충단에 제사를 지내게 했다. 명성황후 시해를 빌미로 춘생문 의거→단발령→을미의병→아관파천→을사조약으로 일제 강점기 한말의 처참한 역사가 이어졌던 것이다. |
11월 29일 금요일.
좋은 날씨
실제로 정동에 사는 많은 내 친구들이 하나같이 “길거리에 나다니지 말고 피신하라”고 충고했다. 그레이트하우스 장군은 “자신이 조선의 풍습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이런저런 충고를 해주겠느냐”고 한다. 하지만 나는 평상시대로 외부 사무실에 출근하기로 결심했다.
사무실에서 김윤식 대신을 보자, 그에게 어제 밤늦게 내 주변에 일어난 사건을 말해 주었다. 물론 내 아버님이 관련된 이야기는 빼고. 노신사 김윤식은 내가 그 사건에 개입된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나를 도와줄 테니 대신 현 내각의 첩자 노릇을 맡아 달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윤식은 또 말하기를, 친위대 이진호(李軫鎬) 참령(지금의 소령급-옮긴이)이 대궐 문들을 공격할 때 문을 열어 주기로 한 자로, 이미 오래 전에 변절해 조정에다 사실을 모두 밀고했다는 것이다. 이진호가 이범진에게서 받은 편지 4통을 보여주었다며, 조정은 이미 그 구출계획을 파악하고 완전 무장하고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계획이 실패하지 않을 리가 있나!
아버님과 함께 밀러 씨의 문간방에서 잤다. 이 구출계획에 참가한 사람 중에서 10명이 어제오늘 사이에 체포되었다.
| 1895년 12월에 일어난 일들 ● 임금 구출계획(춘생문 사건)이 실패로 돌아가자 가담자들을 반역자로 몰아 검거하다. ● 윤치호는 언더우드 집으로 피신하다. ● 친미각료 이완용, 이윤용, 이하영, 현흥택, 민상호는 미국 공사관으로 피신하다. ● 웨베르 공사와 언더우드 선교사는 임금 구출에 적극적이었으나, 실 미국공사는 겁이 나서 개입하지 않으려고 하다. ● 대원군이 일본인에게 이용당한 것을 뒤늦게 알고 언더우드에게 지원을 요청하려 사람을 보내다. 12월에 등장하는 주요인물 ● 웨베르(Karl Ivanobichi Weber, 1841~1910): 러시아 공사. 고종이 가장 의지했던 외교관. ●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 36세. 고종이 가장 신임했던 장로교 선교사, 윤치호를 보호하고 있다. ● 안경수(安駉壽, 1853~1900): 41세. 군부대신. ● 이윤용(李允鎔, 1822~1892): 41세. 이완용의 서형(庶兄), 경무사(경찰청장), 대원군의 사위. ● 어윤중: 47세. 탁지부대신. 해임되었다가 민비시해 후에 복직. 이듬해 고향에서 피살. ● 서광범(徐光範, 1859~1897): 36세 주미공사. 갑신정변 가담자. 사면 받은 후 연립내각에서 법무대신 역임. ● 이재면: 53세. 흥친왕. 고종의 형. 궁내부대신. 이준용의 아버지. ● 필립 제이손(Philip Jaisohn, 1864~1951): 31세. 서재필 박사의 미국 이름, 중추원 고문관. |
12월 1일 주일.
좋은 날씨
여기저기에 체포령이 내리고 있다. 외부의 선교부 선생들이 많이 체포되었다. 내각은 이번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공연한 소동을 맘껏 벌이고 있다.
1)체포한 혐의자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움으로써 그들의 죄악상을 은폐하고, 시민들의 관심을 돌리려는 수작이다.
2)이런 기회는 대규모로 큰 문제를 일으킨 인간들을 잊어버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그런데 조정이 미국 공사관을 완전히 위협함으로써 생명에 위협마저 느끼게 하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서울에서 발행하는 일본 신문에는 왕비를 살해한 못된 일본 군인과 조선 군인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이 없고, 임금을 구출하려다가 실패한 왕당파 사람들에 대해서만 비난을 퍼붓고 있다.
12월 2일 월요일.
좋은 날씨
언더우드 박사 내외분이 내게 끔찍하게 잘해 준다. 언더우드 박사는 충직한 왕당주의자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호러스 알렌 박사와 실 공사는 그들에게 덮친 공포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애쓰고 있다. 헐버트 씨와 나는 신문을 만들기 시작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알렌 박사와 실 공사가 헐버트에게 말하기를, 공사관은 어떤 종류의 일을 시작하든지 곧 물러나고 만다는 것이다. 그들은 미국의 후원을 직접 간접으로 받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 반대하는 신문을 시작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대표 엉클샘, 실은 현 내각이 언뜻 보면 정부 같아 보이는 의사정부(擬似政府)라고 비꼬는 듯이 말한다. 왜냐하면 모든 칙령이 왕의 이름으로만 시행되기 때문이란다. 웃기는 일이다! 그 칙령들이란 왕비 시해 직후에 왕의 이름으로 공표한 칙령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면 미국공사관은 내각의 불법을 용인할 수 있단 말인가? 왜냐하면 왕의 칙령이 강압으로 시행되었고, 지금은 바뀌고 또 바뀌어서 그 칙령이 이제는 합법적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이런 모순되고 유약한 공사관은 어떤 한 사람을 잘못 알게 만드는 일이 참 많다.
12월 3일 화요일.
구름 끼고 더운 날씨
하느님, 감사합니다. 내 아버님과 일행이 곧장 위험지역을 벗어나 안전한 곳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안경수가 체포되었다고 들린다. 언더우드 박사는 왕비 전하께서 살아 계시리라고 굳게 믿고 있는 분이다. 실은, 내가 언더우드 박사 서재에 마련해 놓았던 왕비 전하의 침대 위에서 자고 있다. 왕비께서 사건이 일어난 늦은 밤에 이곳에 오시기로 돼 있었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왕비 전하가 살아 계셔서 위험을 물리칠 수 있게 해 주실 수가 있었을 텐데!
12월 1일 자로 왕비의 서거를 공식 발표했다. 공사관의 깃발들은 반기(半旗)를 올렸다. 유길준은 그레이트하우스 장군 편에 두 통의 편지를 내게 보냈다. 아주 정이 뚝뚝 묻어 나는 서신을. 자기가 도와준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고, 조정으로 자기를 만나러 오라는 것이다. 내각엔 자기 혼자만 있단 말인가? 그의 나에 대한 직업적인 우정은 진지해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와는 좀 다르게 볼 것이다. 한 번 틀어진 이상, 그가 내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12월 4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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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5년 4월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한 언더우드 선교사는 학교 교육에 관심을 갖고 1886년 고아 두 명으로 오늘날 경신학교와 연세대의 전신인 언더우드학당을 설립했다. |
그러나 언더우드 박사가 공사관의 요청 서한에 응답하기 위해 대궐에 입시(入侍)하자, 미국 공사 실은 좋은 결과도 없을 텐데 정략에 말려들고 있다고 빈정댄다. 미국 공사관이나 영국 공사관의 태도가 비겁하기 짝이 없다. 오늘 아침에 다이 장군이 언더우드 박사에게 전갈하기를, 저들이 전하를 아주 비위생적인 거처로 옮겨 드리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움이 어디에서 올까.’ 나는 헤아릴 수가 없구나! 만일 공사관이 애초부터 현 내각을 파악했다면 전하는 안전하게 계셨을 텐데. 하지만 저들의 완전무결하게 비겁한 태도는 지난날의 조정이 시행한 정책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강력하다. 그래서 일본은 감히 악마 같은 짓을 해 낸다.
1884년에 김옥균과 그 일당이 정부를 전복하려고 했을 때는 청국을 파멸시킨다는 희망이라도 들어 있었다. 그 무모한 타도는 결국 청국이 조선을 손아귀에 잡을 힘을 키워 주는 데 성공한 것뿐이었다. 올들어 10월, 일본은 러시아의 영향이 커지는 것에 주목했다. 그래서 왕비시해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그 세력을 약화시키려고 했다.
바로 그런 비열한 행동이 조선 사람들로 하여금 일본이 지금껏 이룩해 놓은 어떤 행위보다도 러시아를 더 선호하게 만들었다. 조선과 일본 사이엔 어둡고 불신에 찬 강이 흐르고, 건너지 못할 깊은 바다가 가로놓여 있다. 불신과 그리고 조선 왕비의 피로 붉게 물든 오만함만이 남게 되었다.
12월 9일 월요일.
몹시 추운 날씨
한 달 동안 아름다운 낮과 밤이 지나고 추운 계절이 왔다. 오늘 아침에 내 사촌동생이 우리 시골집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아, 날이 갈수록 일들이 어둡게만 꼬여 가는구나! 구원은 언제, 어디서 올까. 사랑하는 어머님과 어여쁜 내 아내의 안위에 대한 근심 걱정으로 내 가슴의 통증은 낮과 밤을 잊고 보낸다. 나는 언제쯤 안정된 가정을 꾸밀 것이며, 내 짐을 모두 풀어 놓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화와 사랑을 누리게 될 것인가!
왕비가 살인자 일본놈들로부터 도망치셨다는 요행을 믿으려는 희망이 모두 꺾이는 듯 두렵기만 하구나. 누군가가 중전마마의 불행한 재난은 유길준과 그 일당의 짓이라고 확신할 수도 있을 텐데. 그자들은 내게 왕비가 돌아가신 게 분명하다고, 감히 왕비의 존칭을 복위할 수 없다고 떠들어대는 점이 적어도 왕비의 시해당하심에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처사이다.
아, 아니다! 왜 나는 왕비 전하가 시해되고 불에 태워졌음에도 왕비가 살아계시리란 측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어윤중이 내게 여러 번 전갈하기를, 숨어 있지 말고 나와서 자기의 보호를 받으라고! 그러더니 오늘 아침엔 브라운 씨 편에 전언을 했다. 내가 숨어 있는 곳에 며칠 더 있어야겠다고.
일본인이 발행하는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에 언더우드 박사가 11월 28일 대궐 침입 사건(춘생문 사건)의 주모자였다는 기사가 났다. 언더우드 부인은 그 신문을 보고 화가 치밀어 일본신문과 상해신문에 항의문을 써 보냈다. 미국 공사 비서관인 호러스 알렌 박사가 특별 요청을 해서 11월 28일에 남편 언더우드 박사가 대궐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라고.
나는 언더우드 박사 부인이 그렇게까지 나선 것이 유감이다. 분명코 공사관 직원이 그 사건에 말려들게 하는 현명치 못한 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더우드 박사 부인도 여자이니만큼 그렇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상해에 계신 영 알렌 박사와 아버님께 상서하다.
12월 11일 수요일.
몹시 춥고 맑은 날씨
내 사촌동생이 어제 풀려났다. 오늘 오후에 사랑하는 아내와 아기가 나한테 와서 몇 시간을 함께 지내다. 수집과 명상들.
1. 10월 8일 사건이 나기 며칠 전, 유길준이 내 사촌 치오에게 굉장히 흥분해서 말하기를, 왕비께서 이제는 그 누를 길 없는 이기심을 더 이상 발산하지 못하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10월 7일 오후에 나는 육종윤(陸鍾允)이 김윤식의 귀에 대고 한 시간 이상을 뭔가 쏙닥거리고 있는 것을 봤다.
2. 10월 8일 아침, 김윤식이 왕비 전하의 시해되신 소식을 듣고 굉장히 안심하는 어조로 내 사촌동생에게 말했다고 한다. “아, 대사성의(大事成矣)로다(큰 일이 이루어졌도다).”
3. 서광범이 미국 체류 중에 언더우드 박사의 형님인 T. 언더우드 씨에게 도움을 받았다. 마음씨 좋은 그 신사는 서광범이 쪼들리는 살림을 하면서도 잘난 체하고 다니면서 도시인 행세를 하는 것에 속이 상했다. 아무 양복이나 입지 않고, 옷감을 사다가 만들 생각도 않고, 자기 스타일에 맞는 옷만 입고 다닌다는 것이다. 서광범이 언젠가 미국에서 일본에 돌아왔을 때 말한 것이 생각난다. 일본사람의 생활수준은 너무 빈약하고, 초라하고, 궁상맞아서 일본인들은 무슨 멋으로 사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나하고는 보는 눈이 굉장히 판이하다고 생각했다.
4. 중전마마를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는 시해되시기 일주일 전날 밤이었다. 왕비는 기분이 언짢으신 듯했다. 중전께서는 자애로운 미소를 띠시고 내게 말씀하시기를, 민상호(閔商鎬)가 서기관으로 워싱턴에 가기로 했다고 하시기에, “저를 유럽의 어느 나라든지 보내 달라”고 여쭈었다. 왕비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이런 장난꾸러기 녀석 같으니라고” 하셨다. 왕비는 궁중 신하들에게 내가 왕자에게 《삼국지》를 얼마나 잘 읽어 주는지 모른다고 즐겁게 말씀하곤 하셨지. 나는 대기실 큰 방에서 잠들어 버리기가 일쑤였지. 나인들은 나를 또 얼마나 귀여워했던가. 왕비께서는 나를 얼마나 조카같이 귀엽게 여기며 바라보셨나 등. 생각나는 게 너무나 많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전께서 내게 자애로운 모습을 보이실 때면 나는 언제나 그분의 위엄에 눌리곤 했지. 30년 동안의 바둑판같이 복잡한 치세기간에도 대원군, 박영효, 이노우에 같은 이들도 왕비를 당해 내지 못했다. 죽음만이 그분을 정복했다. 그것은 또 얼마나 복된 일이었나. 중전께서 조선 땅에 태어나 당신의 조국을 위해 훌륭한 쪽으로, 자신의 이기심을 발휘한 만큼 눈부신 재능을 발휘하신 것은!
6. 극도의 이기심은 왕비에게나 한낱 종 같은 쿨리에게나 때로는 형벌을 가져온다. 누구도 왕비 치하가 압력과 잔인함과 매수로 점철된 긴 정권이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왕비는 몇 백만 명의 백성을 가난하게 했으며, 몇 사람만이 풍요를 누리게 했다. 왕비는 몇 백만 명의 가엾은 백성을 만들었는가 하면, 소수만이 행복에 겨워하게 했다. 왕비는 몇 백만 명을 굶주림과 추위에 떨게 했고, 몇 사람만이 비단옷에 호의호식하고 죄를 짓게 했다. 그렇다면 소수만이 왕비의 죽음에 비탄을 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닐까?
왕비 전하에 대한 추억은 왕비를 좋아하던 소수의 사람들만이 소중하게 마음에 담아 둔다. 가령, 내 아버님 같은 분은 충성심과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와 왕비의 죽음을 복수하려 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의 사람은 극소수이며 너무 멀리 있어서 눈에 띄지도 않는 법이다.
7. 할리 언더우드는 여섯 살 난 유난히도 귀여운 소년이다. 그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는 아이를 버릇없게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려고 든다. 그 아이는 내가 보기에 가장 몹쓸 아이와는 거리가 멀다.
12월 13일 금요일.
몹시 춥고 맑은 날씨
리처드슨 선생에게, 《노스캐롤라이나 헤럴드》에 통지해 내게 오는 신문을 중지해 달라고 쪽지를 보내다. 조중응(趙重應) 법부조사관이 나를 만나러 왔다. 그는 11월 28일 춘생문 사건의 ‘진상조서’를 써 가지고 갔다. 적어도 그는 내 편일 것 같다.
미국 공사관에 피신해 있는 이윤용, 이완용, 이하영, 현흥택, 민상호을 방문하다. 조정에서는 외국 공사관으로 도망친 도피객들을 해산시키는 일을 꺼려서, 이완용과 민상호를 설득해 귀가시키려고 한다. 이완용은 대원군을 무서워한다.
이윤용과 현흥택이 내게 말하기를, 10월 8일 비극의 날 아침에 왕비께서 왜놈들이 내실로 뛰어들어오는 소리를 들으시고 뛰어나오셨다고 한다. 그러나 정병하는 왕비께 “일본인들이 국제법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고는 왕비께서 거처로 다시 들어가시게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병하는 가장 죽일 놈의 배신자이다. 그는 왕비의 은총을 받은 자이다. 그는 왕비가 가장 신뢰하고 좋아하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왕비 시해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영향을 미친 사람 같다. 멀쩡하게 악한 역을 맡은 사람이다. 10월 8일 이후에 내각이 정병하를 그들에게 가장 신뢰를 주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실을 직시한다면, 현 내각이 이해의 가장 훌륭한 각료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가장 좋은 각료란 조선정부가 저주 받아야 할 분쟁을 피함으로써 일반적인 관심과 일반적인 위험을 한데 붙들어 매놓은 각료이다. 그들은 정치가가 아니고 사업가이다. 도망자들로 구성된 내각은 슬픈 비극을 맞게 되리라. 왜냐하면 그들은 원래 협동하기를 꺼릴 것이며, 서로 찔러서 얻어 내고, 업무와 정직성의 즐거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12월 15일 주일.
구름 끼고 추운 날씨
오늘 오후 4시에 어머님이 나를 보러 오셨다. 내게 말씀하시기를, 이재순이 어제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정부가 미국 공사관에 피신해 있는 도피자들을 해산하도록 조치를 요청할 것이라고 하신다.
아버님은 사면 대상에 들지 못하실 것 같다는 것, 안경수와 김재풍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만큼 위험한 처지라는 것 등은 한진창(韓鎭昌)이 어머님에게 알려드린 소식들이다. 일이 암담하게 돌아간다. 언제까지, 얼마나 더 오랫동안 왕비 시해범들, 일본인과 친일파가 앙심을 품고 권력을 남용하게 내버려두어야 할 것인가.
주목해야 할 것은 10명 가운데 하나인 ‘내로라하는 사람’은 두 달 전에 정부의 고위직에 올랐고, 나머지 9명이 도망하거나 숨어다녔다. 현재 그 내로라하는 사람은 모두가 미워하는 김홍집이라는 사람이다. 김홍집은 자존심을 버리고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악명이 높다.
어떤 이는 내게 말하기를, 김홍집은 상투자르기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 미련한 생각이라니! 이 나라의 통치자이신 왕비의 목을 잘라 버린 일본인과 공모한 그가, 이제 자기 상투를 자르는 일에 나섰으니 천박하지 않다면 가소롭다고나 해 둘까.
11월 28일에 일어난 춘생문 사건 전날이었다. 언더우드 박사가 실 공사와 호러스 알렌 박사에게 “왕비께서 공사관에 오시면 보호해 드려야 한다”고 요청했다고 한다. 존경하는 공사관 대표들이 숨을 데 없으신 왕비를 그들이 보호해 드리겠다고 확실하게 언약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진정한 친구들이다. 지난 두 달 동안 미국, 영국, 러시아 공사관 사람들과 대표들이 보여준 겁쟁이같이 어리석고 치욕적인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일본인들이 의기양양하게 떠들어대는 목소리가 외국 대표들을 겁에 질리게 했을 뿐이다. 며칠 전에 서광범이 워싱턴 공사로 임명 받다. 나는 놀라지 않는다. 이번 조치는 그를 현 내각에서 몰아내기 위한 음모였을 테니까.
12월 20일 금요일.
온화하고 구름이 낀 날씨
수집과 명상들.
1. 웨베르 공사가 어제 오후에 언더우드 박사를 만나러 왔다. 언더우드 박사도 대궐에 함께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요청한 것이다. 러시아 대표가 확실한 희망을 지닌 듯이 말한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사람에게 희망이 없다면 실망할 일도 없다는 사실을.
2. 언더우드 박사는 도량이 큰 사람이며 열심히 일하는 분이다. 그의 부인은 오래 사귀면 좋아진다. 가냘픈 몸매의 부인은 아직도 남편의 선교와 관련된 사업을 도와주고 있다. 언더우드 박사의 사촌인 레드패스 양은 그의 집을 돌봐주는데, 아주 열심이다. 그러나 (그녀는) 말은 많이 하는데 재미는 별로 없다.
3. 언더우드 부인. “이런, 할리야(언더우드 목사의 아들)! 빵을 씹지도 않고 입에 넣으면 안 된다고 했잖니? 아니, 할리야, 입에 넣어 삼키기 전에 잘 씹어야 한다고.”
4. 다이 장군이 보고하기를, 며칠 전에 옷을 갈아입으려고 대궐에서 나왔을 때 이야기를 한다. 옷을 갈아입고 다시 대궐로 들어가려고 하자, 경비병들이 못 들어가게 막더란다. 잘하는 짓이다! 그 시해 음모자들이 이제야 무얼 해야 할지 알게 된 모양이다.
5. 초대 일본 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가 15년 전 조선에 부임했을 때, 공사와 일행은 서대문 밖에 있는 천연정(天然亭, 현재 적십자병원 자리-옮긴이)에 숙박하고 있었다. 익살스런 어떤 조선인이 일본 깃발이 펄럭거리는 것을 보고 이렇게 해석을 달았다. “일본이 조선과 금방 싸우고 싶어하는군, 그래. 왜냐하면, 금방(깃대 꼭대기에 달린 둥근 금빛 놋쇠 공) 해(태양) 보자(보자기, 깃발 의미)고. 아니면 ‘우리 당장 싸우자’는 뜻이라고!”
6. 조선이 원하는 것은 민생고를 해결하고 치안을 책임져 줄 수 있는 강력한 정부이다. 어떤 조선 사람이 어제 내게 말하는데, 우리나라 백성들은 그 어떤 토지도 사 두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가 바뀌면 다음에 그 값이 오를지 내릴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지 않고 재주만 피우는 ‘공중제비’ 같은 정부에 식상해 버렸다는 것이다.
12월 21일 토요일.
몹시 춥다
어제 오전 중에 상해의 영 알렌 박사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다. 안전하게 도착하신 아버님이 이제 상해에 정착하셨다는 것이다. 리이드 박사에게서 더 신나는 글월을 받다. 아버님이 지금 리이드 박사님과 함께 머물고 계시다는 소식이다.
오후 4시 경에 어머님이 나를 만나보러 오셨다. 한진창의 믿을 만한 정보에 의하면, 김윤식, 유길준, 어윤중 등이 어제 거의 하루 종일 함께 밀담하며 지냈다는 것이다. 그자들이 하는 업무란 언제나 똑같이 웨베르 공사를 만나는 누군가의 청을 들어주도록 권유하는 문제를 토론하는 게 일이었다.
웨베르 공사와 언더우드 박사가 오후 4시에 대궐에 입궐하러 갔으나 거부당했다. 잘하는 짓이다! 그 ‘내각’은 웨베르 공사가 곧 출국할 것이며, 이미 후임 공사에게 직위를 넘길 단계임을 확실히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웨베르 공사에게는 화낼 일도 없고 기뻐할 일도 없기 때문에, 그에게 더 이상 바랄 것도 없고 무서워할 일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웨베르 공사는 외부(외무부)로부터 임금을 알현하라는 공식문서를 받은 것이다. 웨베르 공사는 그 무례한 짓에 소동을 피우며 변명을 들어줄 수도 있으리라. 아마도 단지 문지기 측의 감시로 끝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12월 24일 화요일.
구름 끼고 추운 날씨
아침나절, 미국 공사관에 피신해 있는 사람들(도피자들-옮긴이)과 함께 지내다. 새로운 소식은 없다. 오늘의 관보에 내가 외부협판(외무부 차관-옮긴이) 직에서 해임되었다는 공고가 났다. 그리고 이달 21일에 있었던 일(웨베르 공사가 문전박대를 당한 사건-옮긴이)에 대해 러시아 공사관에 사과한다는 내용과 함께. 나는 전하의 어명으로 외부에 부임한 것이다. 전하의 적수들이 나를 내몰아친 것은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일이다.
오늘 밤은 향수에 젖다! 내 사랑하는 아내와 나는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들에게 돌아갈 수가 없다. 언제쯤이나 우리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가정에서 다시 만나서 살게 될까?
12월 25일 수요일.
구름 끼고 추운 날씨
색다른 성탄일이다. 슬픈 표정을 짓거나 여자들처럼 징징거리는 바람에 성탄의 기쁨을 망가뜨리지 않으련다. 아직은 내 슬픈 심정을 미소로 위장할 수 있다. 오전에 내 어여쁜 아내와 아기가 찾아와서 커틀러 박사의 방에서 지냈다. 정동에 사는 숙녀들과 함께 간단한 점심을 들다.
한세진(韓世鎭)이 나를 만나러 왔다. 그의 우정은 내가 크게 존중하고 있다. 그는 박영효가 한 달 전에 제안한 좋은 자리를 거절했다. 그는 어느 당파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그런 처지의 그가 “나는 아직도 윤 협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소. 설령, 윤 협판이 시도한 마지막 기획이 실패해서 감옥에 가거나 죽게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오”라고 말했다.
웨베르 공사가 오늘 오후에 전하를 알현하다. 그가 전하에게 말씀드리기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훈령을 받았는데, 러시아의 후임 공사가 부임하더라도 전하와 조선에 도움이 된다면, 웨베르는 조선에 더 머물러도 좋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웨베르는 전하께 “현재 조정의 칙령과 지침은 완전히 개혁과 개화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말씀드렸다는 것이다.
웨베르 씨가 나에게 개인적인 우정을 나누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말한 것이 기뻤다. 지금도 전하와 전하의 가까운 친지들은 암살자들이 겁을 내는 웨베르의 처우로 인한 공포보다는 웨베르의 신실함에 더 희망을 두었다.
언더우드 박사 댁에서 멋진 성탄축하 만찬을 나누다. 저녁에는 아주 즐거운 게임을 했다. ‘운율 맞추기’ ‘질문에 답하기’ ‘교리문답’ ‘일치하기’ 등의 게임을 하다가, 12시가 되자 일행은 ‘올드 랭 사인’을 부르며 헤어졌다.
12월 26일 목요일.
온화한 날씨
오늘 아침에 대원군 측 사람이 찾아와서 언더우드 박사에게 알리기를, 대원군이 도피자들을 내쫓는 일에 매우 화가 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원군에게는 친구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일도 할 수 없고 무기력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 심부름꾼은 대원군 노인이 언더우드 박사가 공사관의 지원을 받아 그가 행세하는 일을 거들어줄 의사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보낸 게 분명하다. 언더우드 박사가 그 심부름꾼의 말을 믿을 만한 고관을 보내서 합의를 했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이 노 대감은 단지 표면상 이용당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손자 이준용이 며칠 전에 일본으로 발령이 났지만, 그 일은 노 대감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이 나라는 정치적인 사안들을 힘들게 만들어 놓고는 외국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고 든다.
헐버트: “헬렌, 대답해 봐, 롯의 아내가 어떻게 했지?”
헬렌(다섯살배기 딸): “그 여자는 석양녘에 죽어 버렸습니다.”
서재필 혹은 필립 제이슨 박사라는 사람이 지금 서울에 있다. 그는 현재 미국 시민이다. 그는 미국 시민들이 사는 곳에 정착하려고 애쓰고 있다.
오늘 아침에 미옥이를 방문하다. 12살 된 박영효의 딸로, 정동에 있는 감리교여학교에 다닌다. 미옥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어린 소녀의 모습에서 아버지 박영효의 장래 성쇠(盛衰)의 운이 어떻게 될지, 그리고 그의 딸이 겪을 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언더우드 부인이 올빼미 파티를 마련했다. 유니언 룸에서 열린 성탄 축하잔치에 가지 못한 미옥이를 포함해서 11명의 어린이들이 참석했다. 내 딸, 로라도 끼였다. 만찬에 이어 게임, 요술쟁이 램프와 크리스마스트리를 제일 앞자리에 갖다 놓았다. 어린이들은 화면에 전하의 얼굴이 나타나면 즐거워했으나, 일본인들이 보이면 “쉿!” 하고 서로 소리를 죽이면서 그들의 설움을 가라앉혔다.
오늘 오전에 이문규와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왜 사람들이 모두 일본사람을 미워할까요? 일본에 오래 살았던 사람도 일본사람을 독벌레 보듯 싫어하던데요”라고 했더니, 이문규가 이렇게 대답했다.
“왜냐하면요, 그 사람들은 너무 빼빼 마른 데다 간사스럽거든요. 그자들의 장사하는 솜씨를 보세요. 일본제는 튼튼하고 오래 간다는 상표가 없어도 잘만 팔리지요. 그런데 저들의 말씨와 행동이 일치하질 않거든요. 그자들은 우리를 도와주려고 한다고 말합니다만, 저들이 하는 짓은 우리에게 상처만 줍니다. 그자들이 우리에게 상투를 자르게 하는 건, 그네들의 모자 가게와 양복점만 돈 벌게 해 주기 위해서랍니다. 아니, 아니죠. 일본은 우리를 개화시키진 못할 거예요. 우리 조선이 외국의 영향을 받아 개화하려 한다면, 일본보다는 유럽이 더 낫지요.” 이문규는 학식 있는 사람도 아니고 관리는 더욱 아니다. 그의 감각적인 느낌은 모든 사물에 공통적인 감정을 표시한 공통지수일 뿐이다.
12월 27일 금요일.
바람 불고 추운 날씨
온 장안이 지난밤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였다. 오전 11쯤에 이용원(李容元)이라는 한 노인이 언더우드를 만나러 왔다. 그는 풍채가 좋은 노인이다. 그는 언더우드 박사에게 말하기를, 대원군이 지금 ‘변절자들(현 내각)’ 때문에 대단히 성이 났고, 나아가 현재의 왕비 시해자들이 이끄는 정부가 걱정되어 그들을 뒤엎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에 들어온 일본 관리들을 파멸시킨다면 얼마나 기쁠지 모르겠노라고 말했단다.
이문규는 (현 내각에서 일하는) 일본인 밑에서 종같이 일하는 노동자 이야기를 할 때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말했다. 그러더니 새로운 내각의 대신들로, 시대감각이 뒤떨어지는 몇 사람의 늙은이를 들먹거렸다. 대원군의 편에서 그는 언더우드 박사에게 웨베르의 개입을 요청해 달라고 말했다. 언더우드 박사는 웨베르와 담화를 나누었으나, 웨베르가 “러시아는 조선의 내부 사건에 간섭할 수 없으므로 대원군과 협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면서 거절했다. 내슈빌의 나운버드 박사에게서 편지를 받다. 아버님의 하서(下書)도 받다.
12월 28일 토요일.
몹시 춥고 맑은 날씨
아침에 대원군 측근의 사람이 와서 언더우드 박사에게 말하기를, “어젯밤에 대궐에서 아주 큰 소동이 일어났는데, 상감과 세자 전하와 대원군에게 상투를 자르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마치 임금을 강요하는 강압정치를 계속하려는 것 같았다는 것. 대원군은 조선을 러시아에 종속국으로 넘겨 주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과, 준비해 둔 협상을 오늘로 마감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대원군은 궁내부대신인 그의 큰아들 이재면을 믿을 수 없어한다는 것이다.
언더우드 박사에게 이 사건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고 조언했다. 조선이 만일 멸망해서 러시아의 종속국이 된다면, 러시아 당국이나 조심할 일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나는 그 일을 성사시키는 도구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언더우드 박사 자서전 집필자인 송씨가 오늘 아침에 깜짝 놀랄 만한 일을 내게 알려주었다. 즉,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도 상투 자르기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일본사람들이 그렇게 강제로 끌어내 상투를 자르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항의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터무니없는 짓들이다!” 나는 화를 억누르고 냉정하게 보이려고 애쓰며 말했다. “사람들은 어째서 일본이 우리 왕비마마를 개처럼 죽였을 때는 아무 말도 않더니, 이제 와서 상투 좀 자른다고 항의를 하는 건가!” 대원군의 대리인 이요원이 오늘 웨베르와 오랫동안 회담을 가졌다. 웨베르가 대답하기를, 개입해야 할 사안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
12월 29일 주일.
몹시 춥다
대원군 측 사람이 오후 7시30분쯤 언더우드 박사에게 와서 말하기를, 군인들이 오늘 밤에 상투를 단발하러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제적으로 상감, 세자, 대원군의 상투를 차례로 자른다는 것이다.
만일 조정에서 이번 일에 성공을 거둔다면, 아주 분별 있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언더우드 박사는 그런 일을 강압적인 방법으로 행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유를 들어 거절한다면 강제로 복종하게 하고야 말 것이다. 오직 내게 걱정되는 것은 그 정보가 잘못된 소문일 수 있다는 점이다.
대원군이 그의 대리인을 통해 웨베르에게 말하기를, 만일 웨베르가 대원군의 진의를 의심한다면 웨베르가 새 내각 안에 친러파 사람들의 이름을 내놓아도 좋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대원군 노인은 정직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12월 30일 월요일.
맑고 추운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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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6년 1월 1일, 머리를 깎으라는 단발령이 내렸다. 고종황제는 이날 먼저 상투를 자르고 전국민에게 단발할 것을 명령했다. 단발령 덕에 일인 소유 이발소와 모자가게만 번창했다. |
1. 박선은 머리를 짧게 깎고, 외국인 옷을 입고 일본인으로 변장해서 의심 받아 온 인물이다. 10월 8일 일찍이 그는 폭군 무리에 들어가 일본인들과 함께 광화문 통을 달려갔다. 홍계훈(洪啓薰)이 문에 서서 그에게(혹은 무리들에게) “배반자들”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박은 홍계훈의 팔을 칼로 쳤다. 그러고는 바로 왕비의 거처로 직행한 것이다. 그는 칼로 왕비의 머리를 베고 뜰로 끌고 나왔다. 그는 칼로 왕비의 가슴을 찔렀다. 그러고는 시신을 검정 담요에 말아서 그 위에 석유를 끼얹어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2. 이주회는 10월 8일 아침 일찍 영추문(迎秋門)으로 갔다가 광안당으로 직행했다. 그러고는 세자와 공주를 위험에서 구출해 나왔다. 그러나 그가 처음에 했던 고백은, 그가 대궐 안에서 총포소리를 듣자마자 사복차림으로 광화문으로 달려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문은 닫혀 있었고, 그가 영추문에 이르렀을 때는 그곳에 감시하는 보초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대궐 안에 있는 여러 개의 대문을 통과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건이 발생한 그날 아침에(장박은 T.H.Y.의 음모를 다 알고 있었고), 폭도들이 생각없이 보초도 세우지 않고 대문을 모두 열어 둔 채인 것이 믿기지를 않았다.
다시 그의 두번째 고백을 들어 보면, 그는 신거문(辰居門)에서 십여 명의 대궐 하인들이 폭도 군인들 손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위험한 상항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몸짓으로 주의를 주자, 군인들이 그를 보고 하인들을 놓아둔 채 도망쳤다는 것이다. 이 상황은 이주회가 그 폭도 중의 한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무슨 몸짓과 명령을 했기에 폭도들의 그 소란스러운 정신을 조정할 기술이 있었단 말인가?
그 이후의 세 번째 고백은 그도 스스로 인정한 대목이다. 그 사건 현장에서 그 군인들이 자신이 명령 내린 것에 복종하는 것을 하인들이 알아보았기 때문에,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폭도의 공범자로 몰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3. 윤석우는 그의 뛰어난 상관들인 이두황(李斗璜), 이범래(李範來), 남만리(南萬里)의 명령에 따라, 그의 군사 일행을 끌어내어 태화궁(太和宮)으로 인도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그는 춘생문을 지나 강령전(康寧殿) 뜰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그의 군인들을 다른 작전지역으로 배정했다.
그가 광화문과 건춘문을 돌고 있는 동안, 녹산(鹿山)에 있는 흙더미 앞까지 이르렀다. 그곳에서 그는 불타는 시체를 보고 조심스럽게 묻자, 그것은 시녀의 시신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 날 그가 들은 것은 왕비께서 도망치실 틈이 없었고, 대궐 안에서 죽은 시녀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정보를 듣고 그는 흙더미 옆에서 그가 본 불타는 시신은 왕비마마의 시신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날 밤에 우범선과 이두황의 동의를 얻어 불에 탄 시신을 낮은 분지를 찾아 오운각(五雲閣) 서봉(西峰)에 매장했다는 것이다. 윤석우가 설령 그날 밤(혹은 새벽)에 그의 상관의 명령에 따라 대궐에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해도, 그가 꾸민 놀라운 의구심은 여전히 남는다.
더군다나 그 행위는 굉장히 부도덕하고 건방진 행위이다. 그의 편에서 보더라도, 그 시신이 누구인지를 알았다면서 어떻게 감히 성스러운 시신을 옮길 수 있었단 말인가. “이 마당에서 언도 받은 세 명의 죄수를 참수하기로 결정한다.” 나는 이주회와 윤석우는 죽일 가치조차 없는 범죄자라고 쓴 신문을 보았다. 만일 장, 박, 그리고 그의 폭도 친구들이 이렇게 얄팍한 함정으로 세상을 기만하려고 했다면 잘못된 생각임을 알게 될 것이다.
저녁 7시30분에 빈턴 박사 내외와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다. 빈턴 박사의 생일잔치였다. 파티 때 ‘코넌 드럼스’라는 인디언 놀이를 했다.
12월 31일 화요일.
구름 끼고 추운 날씨
수집과 명상들.
1. 어제 전하께서 음력 11월 보름날(12월 30일)에 상투를 자르시기로 결심하셨다는 포고문을 붙이라고 하셨다. 관리들과 백성들은 이 단발령을 이행해야 한다. 불쌍하신 왕 전하와 그의 아버님은 어제 온종일 외국공사관의 도움을 청했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고, 종내 두 분은 밤 11시에 상투를 자르시게 되었다.
2. 조병호(趙秉鎬)는 상투를 자르는 처사를 모면하려고 궁내부 직을 포기한 사람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이 되고 만 것인가! 왕비가 시해되셨을 때는 직책을 내놓지 않다가 보기 흉한 상투를 안 자르려고 도망치다니! 그뿐 아니라, 종로에 있는 상점 주인들은 10월 8일 왕비 시해 사건이 터진 날에도 개점하고 장사를 벌였다.
시해 사건에 대한 철학적인 견해가 달라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은 적어도 그들의 상투를 억지로 잘라야 한다고 하니까 가게문을 모두 닫아 버렸다. 그래서 장터의 모든 남자들이 물건들을 모두 내동댕이치고 엉뚱한 칙령이 무서워 도망친 것이다. 어느 나라 백성이 이러한 조선 사람들보다 더 비열할까? 그들은 낙타라도 삼켜버릴까, 설마….
3. 이도철과 임최수는 오늘 처형되는 11월 28일의 춘생문 사건과 연루되어 있다. 안경수와 김재풍은 3년 유죄선고를 받았으나, 단지 투옥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4. 러시아가 조선의 중대 사건들에 간여하지 않는 이유는 대원군과 임금이 일본의 병력투입을 두려워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현 상황에서 일본이나 친일파와 겨룰 만한 상황이 못 된다. 어떤 주둔군과도 대결해서 이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한에서 말이다.
5. 언더우드 박사 댁 응접실에서 철야기도 모임에 참석했다.
6. 오늘은 우리 로라의 돌날이다. 오늘 아기와 아내와 어머님과 함께 지낼 수 없어서, 식구들에게 미안하고 슬프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