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초 신당 구체화’ 밝힌 千正培 의원 : 월간조선

국회의원회관 521호실. 지난 4·29 재·보선을 통해 다시 국회의원 배지를 단 천정배(千正培) 의원의 방이다. 이웃해서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과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의 방이 있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8월 7일 오후라서인지 의원회관은 한산했다. 천 의원의 방으로 가면서 힐끗 살펴보니 안 의원이나 이 의원의 방도 한산해 보였다.

19대 국회의원 임기를 1년 남짓 남기고 다시 국회에 입성한 천 의원은 5선(選)이다. 한때 집권당 원내대표까지 지냈지만 지금은 소속 정당이 없다. 소속 정당이 없지만 그는 현재 야권 최고의 뉴스 메이커 중 한 명이다. 알려진 대로 야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당 창당 논의의 한가운데에 그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자신이 야권 신당 창당의 중심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신당 창당의 당위성을 전파하는 데 주력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산했던 의원회관의 모습과 달리 천 의원의 방은 분주했다. 약속 시각보다 15분 일찍 도착했을 때 천 의원은 내방객을 맞고 있었다. 그리고 약속 시각 10분 전에도 또 다른 내방객이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약속 시각인 오후 4시 정각에 마주할 수 있었다. 함께 간 사진기자와 기자가 건넨 명함을 잠깐 훑어보던 천 의원이 궁금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두 분의 명함에 있는 회사 주소가 다르네요. 한 분은 상암동이고 한 분은 태평로로 돼 있네요.”

“우리 회사가 광화문에서 상암동으로 이사를 간 지 몇 달이 안 돼서 아직 옛날 주소가 적힌 명함을 쓰고 있는 기자도 있습니다”고 대답하면서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명함 주소까지 봤습니까”라고 물었다. “정치인은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그 만난 사람들을 기억해 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든 버릇”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약속한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려는 태도가 역력해 보이는 모습과 짧은 시간에 명함에 적힌 작은 글씨의 주소 차이를 짚어내는 모습을 보며 기자가 알고 있던 정치인들의 모습과 천 의원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꽉 짜여 정밀하게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게 하려는 정확함을 추구하는 데서는 ‘정 없는 치밀함’이 느껴졌지만, 만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에서는 인간적인 모습이 느껴졌다.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듯한 두 단어가 천 의원에게는 공존하고 있는 듯했다.

천 의원은 바쁜 시간에도 틈틈이 신당과 관련한 보도를 꼼꼼하게 챙기는 것 같았다. 그는 그날 인터넷 뉴스에 올라 있던 ‘천정배, 돌고 돌아 결국 호남 신당?’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거론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돌고 돌아 호남 신당’이라고 했는데 저는 애초부터 호남 신당을 만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아예 없기 때문에 ‘돌고 돌아’라는 말은 저에게 맞지 않는 말이에요.”

신당은 시대적 요구

천정배 의원이 4·29 재·보선에서 당선한 이후인 5월 7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천정배 의원은 국회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토론회를 열고 있다. ‘개혁정치의 국가비전 모색’을 대 주제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통일, 교육 등에 대해 전문가의 발제를 듣고 토론을 벌인다. 지난 6월 5일 시작한 금요토론회는 8월 14일 11차를 끝으로 막을 내리고 번외 토론으로 노동개혁, 경제성장, 시대적 가치에 대한 토론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마침 기자와 천 의원이 만난 8월 7일은 10차 토론회가 열린 날이었다.

—금요토론회는 신당 정책을 준비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까.

“신당하고도 굳이 연결시키려면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가 국회에 다시 복귀해서 활동을 하게 됐고 현대 정치가 어떤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에 대해 기초적인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죠.”

—금요토론회 종료에 맞춰서 8월 말경에 신당 창당과 관련한 구체적 계획을 밝히겠다고 한 겁니까.

“그거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신당과 관련해서 정확히 말씀드리면 제가 8월 중에 지방을 몇 군데 가보려고 그래요. 대전하고 전주는 이미 다녀왔습니다만, 다른 곳도 더 가볼 생각입니다. 지방을 돌아다니며 신당 창당 여론도 조성하고 무엇보다도 그곳에 있는 분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소통을 맞춰가다 보면 좀 더 구체적인 윤곽을 말씀드릴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8월 말쯤이나 9월 초가 되겠죠. 그때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정리해서 말씀드리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신당 창당을 준비해 오면서 어느 정도 성과가 있다고 판단해서 시점을 꺼낸 것이죠?

“그럼요. 저는 우리 사회가 상당한 위기를 맞고 있다고 봅니다. 많은 분이 그렇게 또 이야기하시고요. 올해 1인당 GDP가 3만 달러 된다는데 그걸 실감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대다수의 국민은 불안정한 생활,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생활을 하고 있죠. 금요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왔던 유종일 교수(한국개발연구원)는 ‘현재 한국 경제의 문제는 급속한 조로 현상과 불평등·불공정·불안정의 3불 현상’이라고 진단했는데 저도 크게 공감하는 주장입니다. 선진국에 채 진입하기 전에 또는 진입하자마자 더 이상 치고 나갈 동력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죠.”

천 의원은 신당 창당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성장률 둔화, 고령화 문제 등을 길게 설명했다. 결국 그 이야기는 신당 창당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우리 경제가 위기 상황인데 양당 중심의 우리 정치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고민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워요. 무능하고 무기력하면서도 기득권에 심취해 버린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이 우리 정치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초에는 야당 얘기만 하다가 요즘은 한국 정치가 전면적으로 재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을 위한 개혁정치 세력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게 신당입니다.”

—신당의 출현은 시대적 요구다?

“실제로 제가 제 지역구인 광주에서 시민들을 만나보면 10명 중 9명이 신당을 만들라고 합니다. 엊그제는 전주에 갔었는데 서울에서 지역 민심을 취재하러 온 기자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해요. 전주는 10명 중에 10명이 신당을 만들라고 한다고 말이죠. 전주의 민심도 광주 못지않은 새로운 정치 세력, 새로운 정당에 대한 열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죠. 전국적인 여론조사에서도 신당에 대한 열망이 높은 것으로 나오고 있고요. 그래서 저는 신당이라는 게 시대적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신당을 만들 요건만 갖춰지면 만들고 싶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신당 창당에 함께하는 사람들

지난 4월 30일 열린 국회본회의에서 천정배 의원(왼쪽에서 두 번째) 등 4·29 재·보선 당선자들이 의원선서를 하고 있다.

—당위는 그런데 일부에서는 신당 창당 작업이 주춤하고 있다는 보도들이 나오는데요.

“제 입장에서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고요. 야당 쪽에서 신당을 추진하는 세력이 4개 그룹이다 5개 그룹이다 하는 소리가 많았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그런 분들이 신당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잠잠해진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신당 창당에 대한) 생각과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습니다.”

—천 의원 측에서 만든 것으로 언론에 보도된 신당 창당 로드맵은 어떻게 된 겁니까.

“전혀 신빙성 없는 이야기예요.”

—8월 말이나 9월 초 신당 창당과 관련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밝힌다는 것은 창당의 명분이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보기 때문인가요?

“정말 시대적 요구라고 볼 수 있다니까요.”

—새정치민주연합이 수권 세력으로서의 비전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죠?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도 그렇다고 봅니다. 여야가 다 한국 사회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보는 거죠.”

—신당 창당과 관련 박준영 전 지사나 염동연 전 의원, 박주선 의원 같은 분들과 실제로 논의한 적이 있습니까.

“저야 정치인이기 때문에 지금 말한 분들을 포함해서 사람들 만나는 게 일 아닙니까. 수없이 많은 분을 만났죠. 박주선 의원하고도 안 만날 일이 없는 것이고요. 박 의원과는 가깝기도 하고 광주에 지역구를 둔 동료 의원 아닙니까. 지금은 서로 소속이 달라졌지만 과거 당에 있을 때는 쇄신연대도 같이하고 최고위원도 같이한 사이입니다. 박준영 지사는 개인적으로 중학교 선배이고 과거 DJ 정권 때 청와대에 있으면서 우리하고도 긴밀하게 협의하고 했던 분이죠. 이런 분 저런 분들과 의견들 교환하고 하는 일들은 해오고 있습니다. 박 의원이나 박 지사는 그런 분들 중에 일부이죠. 다른 분들하고도 담 쌓고 지낼 필요도 없고요. 그런데 대체로 저하고 함께 일을 한다고 하면 염동연 전 의원과 이철 전 의원입니다. 두 분은 고문격입니다. 이분들은 지난 선거 때 광주까지 내려오셔서 상주하면서 밤낮없이 선거운동 하셨고 그때 제 선거대책위에 상임고문이셨어요. 두 분의 그 역할이 지금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제가 그 두 분이 언행을 하시는 데 대해서는 ‘어 그 말은 나하고 관계없다’고 그동안도 그렇게 말 안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저하고 같이하는 분들이죠. 그렇다고 그분들 말씀하시는 게 전부 다 제 생각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뜻을 같이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분들은 그렇고요. 다른 정치인들은 현재까지는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정도의 관계라고 보시면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조력자 내지는 마중물이 되겠다

국회에 출석한 천정배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전 대표, 문희상 전 비대위원장 등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신당 창당을 위해 구심점이 되는 인물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YS나 DJ에 버금가지는 않을지라도 그런 상징적인 인물을 접촉은 했습니까.

“네, 구심점이 되는 인물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많죠. DJ나 YS야 혼자서도 결심만 하면 당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정치적인 힘을 갖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 지금은 그런 분들이 없는 시대지만 상당한 정치 역량을 가진 분들이 뜻을 같이하고 계시죠. 그분들하고 나름대로 협력을 하고 추진하고 있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거명할 수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건 어려울 것 같고요. 그러나 대개 그쯤 되는 분들은 저명한 분들 아닙니까. 보통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가기는 어렵겠죠.”

—대선주자급 인물은 됩니까.

“뭐 하여튼 그렇게 말할 수도 있고요.”

—천 의원께서 직접 그런 인물이 될 생각은 없습니까.

“제가 요즘 주로 쓰는 말이 밀알입니다. 성경에 나온 대로 한 알의 밀알이 썩어 결국 거기서 많은 열매가 나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지난 총선에서 낙선하고 3년 동안 여의도를 떠나 생활하면서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중 새롭게 든 생각이 모든 일이 자기 의욕만 앞세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한국에 새로운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끼는데 이런 시대적 과제에 제가 제 역량만큼은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그 정도의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야 나도 대권주자의 반열에 올랐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가를 묻는 질문인 것 같은데 거기까지는 제가 아직 못 갔습니다. 조력자 내지는 마중물이 되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뭐든 열심히 하겠고 담대하게 하겠습니다. 그것이 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직은 스스로의 욕심을 가지고 신당을 주도할 만한 역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새로운 세력을 모을 수도 없다고 봅니다.”

—혹시 잘 되면 당권이든 대권이든 직접 나설 생각은 정말 없습니까.

“제 욕심을 중심으로 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신당 창당 작업은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의 활동 결과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겁니까.

“네. 저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미 비전을 잃었다고 봅니다. 흔히 말하듯 계파 패거리 패권주의 정치, 기득권 정치 세력이 돼 버려서 스스로 자기희생을 하는 것도 없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당을 나왔죠. 물론 혁신위 활동을 열심히 하긴 하는 것 같아요. 그것까지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 혁신위 활동을 가지고 스스로를 개혁하고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전이 없는데도 많은 현역 의원이 신당으로 합류할 가능성은 적어 보이는데요.

“그거는 두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치나 민심은 역동적입니다. 과거 양김(兩金)이 당을 만들 때 민한당 같은 기존 정당이 와르르 무너지는 걸 봤잖습니까. 그때 누가 그걸 예측하고 있었나요? 장담할 수 없지만 당을 잘 만들고 그게 지지를 받게 되면 우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기 살길을 찾는 의미에서라도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날 수 있겠죠.”

—여러 가지 이유로 교섭단체 구성이 중요한데 교섭단체 구성을 위해 소위 말하는 구태 정치인들이 신당에 합류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안 되죠. 구태정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문제겠지만 몇 가지 있잖습니까. 대표적인 것이 부패정치인인데, 그건 안 됩니다.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는 도덕적 하자가 있는 분들은 세상없어도 같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념 지표상 나는 맨 왼쪽 아니다

—내년 총선 전까지 교섭단체 구성은 가능하다고 보는지요.

“그거야 알 수 없는데요. 의원들 동향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지만 급격하게 새로운 세력과 기존 세력 사이에 승패가 가려져서 산사태 같은 변화가 오는 꿈을 꾸고 있는 거죠.”

—그런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보는 겁니까.

“아 그럼요. 정치라는 것이 국민의 지지에 달려 있는 것 아닙니까.”

—조국 서울대 교수가 신당과 새정치연합의 경쟁이 도움이 된다고 하면서 “구시대의 인물을 이삭줍기 하지 마라”는 등의 충고를 했는데 혹시 조국 교수를 신당에 영입할 생각은 없습니까.

“(웃음) 그쪽에서 워낙 훌륭한 분이고 사실은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 힘을 많이 갖고 계신 분 아닙니까. 지지자들도 많고요. 그런 분이 오신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분이야 이미 저는 가망이 없다고 보는 당에 희망을 걸고 열심히 활동하는데 신당에 올 수 있겠습니까.”

2002년 《중앙일보》는 국회의원들의 이념성향을 조사한 ‘의원노선 대해부’를 발표한 일이 있다. 정치·외교·경제·사회 분야의 핵심 이슈에 대한 의원과 국민의 답변을 점수로 환산해 평균을 구하는 방식이었는데 ‘가장 진보’는 0, ‘가장 보수’는 10으로 구분했다. 국민의 이념 평균이 4.5였던 2004년 조사에서 열린우리당의 이념 평균은 3.5였다. 그 전신인 민주당의 2002년 평균은 3.6이었고 국민은 4.6이었다.

—신당을 추진하는 박준영 전 지사나 염동연 전 의원은 신당의 성격을 중도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적도 있습니다. 한 중앙일간지가 조사한 이념성향 조사에서 천 의원은 가장 왼쪽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제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조사를 해마다 해서 아는데 제가 3.0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그 조사 때문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2002년쯤에 《중앙일보》가 그 조사를 했는데 노무현 후보가 1점 몇이 나왔어요. 국회의원은 아니었지만 대통령 후보라서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미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고 있을 때였는데 제가 깜짝 놀라서 참모들을 나무라는 일이 있었습니다. 설령 속마음이 1.5더라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의 이념성향이 온건진보 정도로 나와야 하는데 어떻게 답변을 했기에 그런 결과가 나왔느냐고 나무란 거죠. 그렇게까지 말한 저였는데 맨 왼쪽에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저는 아마 스스로 생각해 봐도 3.0 정도의 온건진보라고 해야 하나? 온건보수라고 해야 하나? 좌우간 그 정도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천 의원의 이념성향을 중도개혁쯤이라고 보면 될까요.

“저는 중도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요. 중도라는 말은 말고 온건진보, 합리적 진보 정도가 제 스스로 생각해 보는 제 좌표가 아닌가 생각하죠. 과거에는 제 스스로를 온건보수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온건보수에서 온건진보 정도로 약간 더 왼쪽으로 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안 믿을 것 같은데요. 기존 이미지 때문에.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법무부 장관 시절 동국대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하라는 수사 지휘를 했기 때문에 파장이 많이 일어났고 그걸 기억하는 것 같아요. 그거는 제가 진보적인 입장에 섰기 때문에 그랬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건전보수도 함께

광주 서구 농수산물 도매시장 공판장에서 무소속으로 4·29 재·보선 광주 서구을 출마를 선언하고 있는 천정배 의원.

—진보적 입장이 아니라면 어떤 입장이었습니까.

“사람들은 ‘강정구 교수가 북한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그것을 천정배가 감쌌다. 이러니 이 사람이 뭔가. 그건 나쁘게 말하면 종북이고 좋게 말해줘도 한국 사회에서 진보적인 생각에 동조한 것 아니냐’ 해서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은 전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인권 문제와 법치주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보수적인 입장에서도 사람을 함부로 구속하거나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헌법이나 형사소송법의 정신도 법치주의와 인권이란 말이죠. 그래서 아무리 저 사람이 국가보안법 혐의자든 그 이상의 범죄자이든 또 국민의 여론이 그 사람을 질타하고 하는 여론이 있더라도 제대로 된 법치국가라면 법 원칙과 인권을 잘 지켜나가면서 그 사람을 구속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법은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있을 때 구속하라고 있는 것이지 국민적 지탄을 받는다고 해서 구속하라고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죠. 그때 제 생각에는 법치주의와 인권의 원칙을 앞으로 우리 검찰이나 형사사법 과정에서 좀 더 과거의 여론에 밀리는 관행에서 벗어나서 한 차원 높은 법치주의와 인권보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거는 진보나 보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폐지 입장에 섰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되겠군요. 제가 법무장관을 할 때 아침마다 제일 먼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게 뭐냐 하면 재소자 현황이에요. 전국 교도소 현황이죠. 어제 몇 명이 들어왔고 나갔고 그리고 국가보안법으로 몇 명이 복역 중이고 하는 문서죠. 그런데 거기에 보면 제 기억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인한 수감자가 대체로 10명이 안 됩디다. 그중에는 김동식 목사를 북으로 납치해 갔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한 부분에 대해서는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국가보안법 중 찬양, 고무, 불고지 등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저촉되는 부분들은 없애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나머지 간첩죄 등은 형법에 반영해 대체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은 없어지는 것이지만 국가안보 등에 필요한 조항은 유지되는 것이죠. 국가보안법 문제에 관해서는 저야말로 합리적인 입장에 견고하게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제 입장인데요. 그건 진보하고 관계가 없는 일이죠. 남하고 비교해 보면 제 이념성향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동쪽에 있는 산도 보는 방향에 따라 서쪽 산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한미(韓美)FTA 체결은 왜 반대했습니까.

“2007년 당시 한미FTA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와 관련한 조항 등 일부 독소조항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반대한 겁니다. 한 번 체결되면 바꾸기 힘들게 돼 있어서 우리 국익에 해가 된다고 생각한 일부 조항들에 대해 반대한 겁니다. 그런 조항을 막는 게 우리 국익을 위해 옳다는 생각으로 단식까지 하게 된 거죠. 저의 그런 행위를 한미FTA 자체를 막 반대하는 사람들하고 구별해서 보기가 어려웠겠지만 제 뜻이 잘못 알려진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럴지라도 천 의원을 바라보는 일부 시각은 천 의원이 여전히 강하게 진보적이라는 겁니다.

“제가 최근 몇 년간 기성 정치인치고는 약자들의 투쟁 현장에 많이 가는 편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정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든 간에 한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사람들이 절규하는 곳에 가서 그분들의 의견을 듣고 필요하면 도와주고 하는 것이 정치인으로서의 당연한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의회정치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고요. 약자인 그분들이 주장하는 것이 어쨌든 진보 진영하고 연결이 돼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들의 아픔에 동참한다고 해서 그들이 가진 이념적 색깔에 제가 철저하게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듭 말하지만 진보와 보수를 떠나 위로가 필요한 곳에 위로를 주는 정치인이 돼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신당 창당에 건전보수 세력도 들인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렇습니다. 좀 전에 말한 것처럼 국가보안법을 독소조항 없애서 개선하자는 것, 재벌개혁, 이런 것들이 진보만의 어젠다는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검찰이나 국정원 개혁 이런 등등이 다 보수 어젠다이기도 한 것으로 봅니다. 합리적이고 개혁의지가 확실한 보수는 당연히 함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유승민 의원의 경우는…

천정배 의원이 4·29 재·보선에서 당선한 후 자신의 지역구인 광주 서구 풍금사거리에서 큰절을 하며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

—신당이 만들어지고 난 후 대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과 합칠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까.

“새정치민주연합과 합당이라고 했습니까? 합당이라면 지금 생각할 수 없죠.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미 이대로는 안 되는 정당이니까요.”

—신당이 새정치민주연합 세력을 흡수한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죠. 신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사라진 후 야권의 주도권을 쥐는 당이 돼야겠죠. 대선 전 합당이라는 말은 적절치 않지만 새누리당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모든 세력이 힘을 합치는 형태, 즉 협력이나 연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야권 인사들이 만든 민주당이라는 당명을 사용하는 정당이 있던데요.

“저도 민주당이란 당명에 애정을 가지고 있고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미 현재로서는 사용이 불가능하게 됐잖아요? 앞으로 신당을 만들게 되면 새로운 가치와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당명을 만들어야 되겠죠.”

동교동계는 아직 안 만나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3월 27일 국회 본청 앞에서 한미FTA 협상 중단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천정배 의원.

—새정치민주연합의 김한길 전 대표나 안철수 전 대표 그리고 박지원 의원과는 접촉을 했습니까.

“그분들하고 제가 왜 안 만나겠습니까. 만나고 그러죠. 그분들을 많이는 못 만나봤지만 그래도 국회에 오고 난 다음에 대부분 인사 겸해서 한 차례 정도는 만나보고 했습니다.”

—신당과 관련해서 만난 적이 있는가를 묻는 겁니다.

“(신당 얘기를 하기에는) 당 안에 계신 분들하고 제가 말하는 데는 한계가 있죠. 더구나 그분들은 당의 대표급 인사들이잖습니까. 그분들과 신당 논의를 한 일은 전혀 없습니다.”

—동교동계 분들은요.

“아닙니다. 전혀요. 바쁘기도 하고 그분들을 제대로 못 뵈었습니다.”

—한때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의원을 천·신·정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어서 탈레반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세 분이 지금도 자주 만납니까.

“그분들과 제가 서로 정치적인 생각이 달라도 인간적인 관계마저 멀어질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혁명동지 같은 사이죠. 일종의 평생 동지입니다. 두 분 다 가깝게 지내는데요. 신기남 의원은 국회에 제가 다시 돌아와서 몇 번 만났고 정동영 의장은 제가 선거 후에 제대로 못 봤습니다.”

—얼마 전 전주를 방문해 신당을 만들 때 정동영 전 의원과 함께할 수도 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는 일관되게 한국 야당 정치에서 정동영만 한 인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왔고 말해 왔습니다. 정동영 의원에 대한 제 생각이 신당 창당을 앞두고 바뀐 게 아닙니다.”

—그럼 정 전 의원과 함께할 수도 있다는 겁니까.

“자꾸 그렇게들 이야기하는데 그건 아니고요. 예컨대 새누리당 사람들 가운데도 제가 보기에 정치적으로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꼭 새누리당하고 당파를 같이해야 하나요? 그 문제는 다르죠. 제가 높이 평가한다는 것과 저하고 당을 같이할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죠. 엊그제도 제 전주 발언의 진의가 잘못 보도됐는데 정동영이라는 정치인과 제가 개인적으로 친하고 동지일지라도 지금은 신당을 만드는 데 같이하기 위해 논의를 할 수 있는 단계는 전혀 아니죠. 정 의원은 지난 선거 이후 100일이 지났지만 그분이 앞으로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정치를 할지 이런 게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거기에 협력이나 이런 걸 논의할 수 있습니까.”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신당에 온다면요.

“광주에서 많이 듣는데 실제로 유승민 의원하고 같이하면 어떠냐 하는 분들 많습니다(웃음). 제가 유승민 의원과는 개인적으로 많은 접촉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유 의원은 건전하고 합리적인 보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원내대표 연설 평판이 하도 좋아서 제가 일부러 그걸 읽어봤는데 정말 탁월하고 훌륭하더군요. 유 의원이야말로 합리적·개혁적 보수입니다. 당연히 당을 함께할 수 있는 대상이죠.”

—2002 대선 때 현역의원 중 유일하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는데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같은 길을 갈 겁니까.

“당연합니다. 그분이 현실적으로도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있는 경쟁력이 있는 후보였고 그분의 정치철학도 높이 평가했고요. 다만 이럴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그때는 무조건 지지했다고 하면 지금은 조금은 조건을 달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조건요?

“호남 정치인으로서 호남의 낙후를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보면 그걸 지역주의로 매도할 수도 있지만 전혀 아니고요. 대한민국이 어느 지역이든 평등한 사회가 돼야 한다고 봐요. 저는 호남이 상대적으로 차별받고 있고 경제적으로 특히 낙후돼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타개할 정치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건을 달아서 약간의 딜을 하는 것이 옳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친노’는 없고 ‘친문’만 있다는 말에 동의합니까.

“저도 그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친노’가 노무현과 친하다는 의미라면 제가 원조 ‘친노’죠. 계파로서의 ‘친노’에는 제가 처음부터 가입한 적도 없기 때문에 제가 ‘친노’였다가 이탈한 게 아닙니다.”

상의를 챙겨 입으며 천 의원은 마지막 질문에 답을 했다. 보좌진이 다음 약속 일정에 늦을 수도 있다고 보챘기 때문이다. 천 의원은 아마 그의 정치 인생에서 요즘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상단주메뉴

‘9월 초 신당 구체화’ 밝힌 千正培 의원

“내 역할은 한 알의 밀알”

0건

사이트 이용안내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