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창조경제의 모델국가 이스라엘의 한국주재 대사 우리 구트만 : 월간조선

박근혜(朴槿惠)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가 ‘교과서’처럼 여기는 《창업국가》를 비롯해 《INSIDE THE BOX》《나스닥으로 가라》 등 창조경제(creative economy) 관련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 정책의 모델국가로 이스라엘을 규정해서일까. 한국의 기업인들과 학생, 공무원들은 너도나도 이스라엘로 창조경제 성지순례를 떠나고 있다. 온 나라가 창조경제의 열풍에 휩싸인 느낌이다.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이스라엘대사관에서 만난 우리 구트만(Uri Gutman·55) 대사는 “창조경제는 일자리를 만들고 수입을 늘려주는 국가의 동력엔진”이라면서 “창조경제의 성공적 모델인 이스라엘도 창조경제의 결실을 위해 10년 이상 인내했듯, 한국도 꾸준히 투자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구트만 대사는 “한국과 이스라엘은 1948년 독립해 건국 초기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1960년대부터 풍부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들”이라며 “지금도 작은 국내시장과 천연자원의 부족, 안보문제 등 동병상련의 공감대를 갖고 있어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 든다”고 했다.

대사관 접견실 중앙에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사다(Masada·히브리어로 ‘요새’) 대형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사해(死海)를 바라보는 마사다는 페루의 공중도시 마추픽추를 연상케 한다. 인터뷰에는 샤이 브로벤더(47) 대령도 배석했다.

450ｍ 높이 산 정상에 위치한 마사다는 길이 650ｍ, 너비 300ｍ의 테이블 모양의 성채를 띤 공중요새다. 마사다는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정복당한 후 이스라엘 갈릴리 지방의 엘리에젤 벤 야일 장군이 960여 명의 열혈 유대인을 이끌고 AD 73년까지 이스라엘의 자유를 위해 로마에 저항하다 전원 자결한 곳이다.

샤이 대령은 “로마군이 올랐던 뱀길(snake way)이라고 불리는 옛길을 오르면 왼쪽으로는 로마의 실바 장군이 주둔하던 로마 주둔지와 협곡이 굽이쳐 흐르고, 오른쪽으로는 눈이 부시게 푸른 사해를 만날 수 있다”면서 “마사다 정상 헤롯궁전 인근 부지에서는 매년 성대하게 오페라 <아이다>가 공연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마사다의 저항정신을 기려 매년 장교임관식을 마사다에서 하면서 ‘마사다의 비극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다(Masada never again)’는 구호를 외친다죠?

“구호를 외치진 않지만 이스라엘 국민 모두가 마사다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로 그 문구를 되새깁니다. 저도 장교 기본훈련 과정을 마무리하면서 마사다에 올랐는데, 매우 격정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으로서의 정체성, 유대인의 유산(遺産)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 유대인은 2000년간 박해와 홀로코스트를 겪고도 생존했습니다.”

샤이 대령은 “병사들과 함께 마사다의 일출(日出)을 보기 위해 65km 야간 행군으로 정상에 올랐으나 구름이 가려 사해의 일출을 보지 못했다”며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꼭 한번은 마사다를 찾는다”고 했다.

朴正熙 대통령, 키부츠 모델로 새마을운동 시작

샤이 브로벤더 이스라엘대사관 무관(육군 대령).

지난해 8월 부임한 구트만 대사는 그해 11월 22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했다. 구트만 대사는 박 대통령과 창조경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산업·관광·학술·연구개발(R&D) 프로젝트 등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구트만 대사는 “신임장을 제정하는 대사들은 통상 5~10분간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상례인데, 20여 분으로 길어지는 바람에 두 번째로 신임장을 내는 대사에게 민폐를 끼쳤다”며 웃었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부임 전부터 알고 있었나요.

“물론, 박정희 대통령과 따님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박 대통령이 안보와 경제발전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가진 나라로 이스라엘을 주목했고, 키부츠(kibbutz) 전략촌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2년간 파견해 새마을운동을 탄생시켰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키부츠는 2차대전 직후 영국군이 돌연 철수하면서 물밀듯이 공격해 오는 주변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밭을 갈다가 총 들고 싸우는’ 개념으로 만든 전략촌이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두 나라가 자매국가로 발전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스라엘을 창조경제 정책의 모델국가로 규정하고 있는데요.

“이스라엘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속적인 창업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창의적인 기술벤처들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으며 지구적 불황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한국 젊은이들에게 이스라엘 창조경제의 현장을 체험할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입니까.

“‘요즈마 펀드(yozma fund)’의 창업지원 프로그램입니다. 요즈마 펀드는 이스라엘 정부와 민간이 합동으로 첨단기술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1993년 조성한 펀드입니다. 한국 학생과 창업가들이 이스라엘의 시스템과 교류하고 이해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양국 경제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4개의 창업 인큐베이터 운영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주창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국민들에게 다가오는 개념은 모호합니다. 창조경제란 도대체 뭡니까.

“틀에 박힌 정의가 있는 건 아닙니다만, 창의력이 주가 되는 경제가 창조경제인 겁니다. 창조경제는 창업경제의 또 다른 표현이고요. 창업경제로 달성되는 국가가 바로 창업국가인 것입니다. 창업국가는 국민 개개인은 끊임없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정부는 정책지원으로 창업환경을 조성하고, 기업은 혁신과 기술개발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대학은 창업가정신 교육과 확산으로 청년 창업가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시스템을 갖춘 나라입니다.”

구트만 대사는 “창조경제는 자원이 없는 나라의 국가 경영 패러다임”이라면서 “국가는 간섭하지 않고 비즈니스에 친화적인 생태계를 만들어줄 뿐”이라고 했다. 구트만 대사의 말이다.

“이스라엘 경제부 소속 수석과학관실(OCS)은 산업기술의 연구개발이 활발해지도록 32개의 지원프로그램을 벤처들에 제공하고 있고, 주식 대신 로열티를 지급해 창업을 재정적으로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민간기업들도 창업가들에게 투자를 하고 있고요. 현재 이스라엘에는 총 24개의 창업 인큐베이터가 있고, 각 인큐베이터는 대략 8개의 창업 양성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매년 인큐베이터 내에서 70~80개의 신생기업(Start-ups)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한 것은 바로 ‘창조경제’를 국가적 과제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융합 시대에 맞게 IT와 산업의 융합,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통해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새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창조경제의 실현 과제다. 구트만 대사의 말이다.

“중요한 것은 ‘개업(business opening)’과 ‘창업(business creation)’을 혼돈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이웃의 잘되는 음식점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거죠. 특히 이스라엘과 한국처럼 자원이 없는 나라는 창조경제를 통해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것만이 지속 성장의 방법입니다.”

—한국과 이스라엘의 장점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산학(産學) 협동모델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그 내용은 무엇인지요?

“매년 양국 인재 200여 명이 상대 국가를 방문해 공동 연구·조사를 진행하고, 창업이나 대기업 취업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한국은 제조업·마케팅 분야가 강하고, 이스라엘은 기술력이 뛰어납니다. 이스라엘의 벤처기업과 글로벌 시장의 네트워크를 가진 한국 기업이 공동으로 상품을 만들어 유럽·아시아에 진출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한국에 좋은 비즈니스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실패를 두려워 마라, 후츠파 정신

엘리에젤 벤 야일 장군이 이끄는 유대인 960여 명이 1만5000명이 넘는 로마 10군단에 맞서 3년간 항쟁하다 전원 자결한 마사다 요새.

—이스라엘은 지난 65년간 1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800만명의 이스라엘이 노벨상 수상자의 22%를 낸 저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이스라엘이 현재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분야가 과학연구, 과학 관련 출판, R&D에 대한 지출(4.4%), 창업(4800개 스타트업), 유동성과 적응력, 인구 1만명당 엔지니어 수입니다. 고등교육에 대한 열정과 투자, 뛰어나기 위한 그리고 변화를 추구하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문화, 실수 혹은 실패를 하더라도 용납하는 문화(it’s OK to fail)가 그 원동력일 것입니다. 《후츠파로 일어서라》(윤종록 지음)라는 책을 보면, 그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후츠파가 무엇인가요.

“히브리어로 ‘뻔뻔함’을 뜻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일어서는 불굴의 투지를 의미하죠. 이스라엘은 적대적인 이슬람 국가들의 위협과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벤처강국, 창업국가, 21세기 하이테크 산업의 선두 국가로 우뚝 섰습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미국 외의 나라에 처음 투자를 결정한 곳도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그것도 레바논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5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투자하면서 버핏은 ‘나는 이스라엘 땅에 투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창의적인 두뇌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냉철하고 보수적인 투자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유대인 고유의 민족정신, 후츠파(chutzpah·뻔뻔함)였습니다. 세계 3위의 지식자본 국가이자 전 세계 창업투자의 31%가 집중되는 벤처강국 이스라엘을 만든 후츠파 정신을 《창업국가》의 저자 댄 세노르가 저자 윤종록(尹宗錄) 미래부 차관에게 7가지 핵심 키워드로 소개했더군요. 7가지 키워드는 형식의 파괴(Informality), 질문의 권리(Questioning Authority), 섞임과 상상력(Mashing up), 위험의 감수(Risk taking), 목표 지향(Mission orientation), 끈질김(Tenacity), 실패로부터 얻는 교훈(Learning from failure) 등인데, 저도 상당히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이스라엘 학생들이 이스라엘 북부 도시 나블루스에 있는 한 신학교에서 유대교 경전의 내용을 두고 토론하고 있다. 유대인의 오랜 율법과 지혜를 다룬 책 《탈무드》는 기본적으로 “랍비(스승)의 가르침에 100% 동의하지 말고 항상 반대편에 서서 논쟁하라”고 가르친다.

—한국인들은 유대교 성전인 《탈무드》를 교육용으로 자녀들에게 많이 읽힙니다. 《탈무드》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유대인들에게는 영적이고 생활의 도구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랍비 등 종교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읽지 않아요. 한국인들은 《탈무드》에 나타난 이스라엘 교육의 내용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질문하기’ 정신에 주목해야 합니다. 설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도전과 질문 그리고 씌어 있는 내용과 믿음을 확실히 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질문하는 것을 멈추지 말고 항상 호기심을 가지라(The important thing is not to stop questioning, never lose holy curiosity)’고 했습니다.”

샤이 대령은 “한국 엄마와 이스라엘 엄마의 차이점이 뭔지 아느냐”면서 “자녀의 성공을 바라는 것은 두 엄마가 같지만,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한국 엄마는 ‘시험 성적 몇 점이나 받았니’라고 하고, 이스라엘 엄마는 ‘너 오늘 얼마나 많은 질문을 했니’라고 묻는 것이 다르다”고 했다. 그는 “군에서도 장교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부하들에게 이야기하고 부하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꼭 거친다”며 “전투에서의 실패는 용납하지 않지만, 훈련에서의 실패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유대인들의 10% 정도는 극단적인 유대교도(ultra-orthodox), 하레딤이라고 하지요? 이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군 입대를 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벤구리온 시대 때는 하레딤들의 숫자가 적어 면제를 했습니다만, 지금은 하레딤 숫자가 15%까지 육박하고 있어 병역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OECD 권유로 탈(Tal)법을 만들어 이들에게 군 입대 또는 ‘국가에 대한 봉사’를 권유합니다. OECD는 아랍인 여성(이스라엘 인구의 20% 차지)과 전통파 유대인 남성인구는 이스라엘의 성장동력(growth engine)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한국의 지도층 인사들은 병역을 기피하거나 면제받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구트만 대사는 “한국인들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은데, 이스라엘은 어느 부대에 있었는지를 제일 먼저 물어본다”고 했다.

—유대인의 역사를 살펴보면 군사적 천재들은 발견되지 않는데, 어떻게 이처럼 독창적인 군사조직과 전술을 개발해 국가를 위기에서 건져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65년간 7번의 전쟁을 겪었고, 모두 승리했습니다. 우리의 기본전략은 오로지 전쟁억지, 선제공격, 속전속결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입니다.”

‘귀하신 몸’ 탈피오트 인재들

2012년 10월 6일 이스라엘 병사들이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에서 무인기(드론) 잔해 수색 작업을 마친 뒤 복귀하고 있다.

—탈피오트(Talpiot)란 제도가 눈길을 끕니다만.

“이스라엘군은 1973년 10월 욤 키푸르 전쟁(이집트와 시리아군이 유대교의 종교축제일인 욤키푸르, 속죄의 날에 이스라엘을 기습공격)을 치른 후, 발전된 무기체계 기술을 독자적으로 확보하려고 연구개발자와 엔지니어를 가진 조직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즉 어리고 경험 없는 아기 같은 군인들을 데려다가 막대한 투자를 거쳐 창조적 개발자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선발된 인재들을 교육해 개발자나 엔지니어로 양성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제대 후 창업가가 되죠. 군사기술을 민간기업과 연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구트만 대사는 탈피오트 제도에 대해 “탈피오트는 군 복무가 교육과 연계된 정점(頂點)에 있는 제도”라며 “최근 한국에서 ‘창조경제’를 거론하면서 부쩍 관심을 끈 특수부대”라고 말했다.

탈피오트는 고교 졸업생 중 성적 우수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치러 한 해 40명을 선발하는 영재개발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공군과 무기기술산업발전위원회가 후원하고, 이스라엘 최고 명문대학인 히브리대학이 교육을 주관한다. 선발된 인재들은 공군부대에서 숙식하며 히브리대에서 물리·수학·컴퓨터 공학 등 전공과목을 40개월간 학습한다. 군사훈련은 방학기간 중 2~3주간 받는다.

과정을 이수하면 이학사 학위를 받고 소위로 임관한다. 탈피오트 출신자들은 현역병 복무기간인 3년에 6년을 더해 총 9년간 의무복무 한다. 대부분 군이나 방산업체에서 연구요원으로 일하지만, 기업행을 원할 경우 거의 ‘납치(kidnapping)’ 수준으로 영입해 간다고 한다.

구트만 대사는 “1979년 도입된 탈피오트 프로그램으로 배출된 인재가 700여 명에 이른다”며 “이들 정예요원 전역자 중 상당수가 IT·BT 산업 중심의 벤처기업으로 진출했다”고 말했다.

—군 경험이 창업으로 이어진 케이스가 얼마나 됩니까.

“탈피오트 출신 인재들은 10년도 더 걸릴 로켓탄 요격시스템인 아이언돔(iron dome)을 2년 만에 개발했습니다. 지난해 5월 파산했지만 한때 ‘전기차 업계의 애플’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한 전기차 배터리 충전업체 ‘베터플레이스’도 대표적입니다. 공군 출신 퇴역 군인들은 전투기 엔진 교체 방식에 착안해 배터리를 통째로 바꿔주는 전기차 충전소 모델을 상용화했던 겁니다. 세계 의약시장에 자리 잡고 있는 캡슐내시경(알약 형태로 몸에 들어가는 내시경)의 선구자 필캠(PillCam)도 군에서 미사일 카메라를 연구하던 기술자와 의사가 의기투합해 세운 회사였습니다.”

신생기업 80% 이상 해외에 팔려

구글이 약 1조원에 매입한 이스라엘 신생기업이 만든 내비게이션 ‘웨이즈(Waze)’를 애플 아이폰으로 구동하는 모습.

—이렇게 태어난 회사들이 글로벌 기업에 팔리거나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케이스는 얼마나 됩니까.

“혁신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진면목은 창의적인 벤처기업의 성공에서 비롯합니다. 특히 떠오르는 미래산업 분야의 창업 건수는 독보적이어서 전 세계의 40%에 달합니다. 이스라엘 신생기업들은 80% 이상이 국외 투자자들에게 팔리고, 2013년 10월 현재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IT 스타트업 기업은 61개에 달합니다. 세계에서 2번째로 나스닥 상장기업이 많은 나라입니다.

2012년 69개의 M&A 거래가 성사됐고, 이는 총 97억4000만 달러(약 10조3000억원) 규모입니다. 지난해 6월 애플과의 경합 끝에 구글이 9억6600만 달러(약 1조240억원)에 인수한 내비게이션 서비스업체 ‘와제드(Wazed)’가 대표적인 케이스일 겁니다. IBM도 보안 소프트웨어 회사인 트러스티어(Trusteer)를 10억 달러에 매입했습니다.”

—선진국들이 이스라엘의 기업들을 주목하는 이유는 뭡니까.

“독창적이고 고난도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성공할 경우 부가가치가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2013년 11월 애플이 입체TV 개발을 위해 사들인 프라임센스(PrimeSense)는 좋은 예입니다. 구글이 글로벌 검색 시장의 패권을 잡을 수 있게 한 구글 서제스트, 파산 직전에 놓인 인텔의 극적 회생을 견인한 센트리노 칩이 모두 이스라엘 연구소에서 개발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들 성공 사례는 애플,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 유망한 다국적기업들이 안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 앞다투어 R&D 센터를 짓는 계기가 됐습니다.”

벤처로 성공한 기업들이 잇달아 미국 기업에 팔리는 것에 대해 구트만 대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인구 800만명에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규모의 경제가 불가능한 이스라엘이 선택한 방법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를 통한 IT강국입니다. 첨단 모바일 기기를 만드는 공장은 하나도 없지만 첨단 기기에 필요한 3D 입체화면 기술을 창조해 내는 10명 미만의 소프트웨어 기업이 제2의 실리콘 밸리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동부 해안지역의 IT집산지 ‘실리콘 와디(Silicon Wadi)’에 자리 잡고 있거든요. 이스라엘 스타트업 기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팔려나가지만, 이스라엘은 오히려 자랑스러운 성공담으로 취급합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에는 ‘연속적 창업자(serial entrepreneur)’라는 독특한 개념이 있습니다. 창업을 해서 회사가 성장하면 회사를 판 뒤 다시 창업에 나서는 거죠.”

구트만 대사는 기자에게 자료를 보여주며, “미국 매사추세츠주 자료를 보면, 비록 미국의 한 개 주에 불과하지만, 2012년 한 해에만 매사추세츠주 소재 이스라엘 관련 기업과의 협력으로 6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670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면서 “한-이스라엘이 교류를 늘리고 양국 기업들이 협력하면, 이스라엘이 이룩한 창조경제의 성공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선제공격, 이스라엘처럼 가능할까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스라엘의 명품무기들. 메르카바 전차(위)와 우리나라 서북 도서에 배치된 스파이크 미사일.

—이스라엘은 1981년 이라크의 오시리크 핵시설을 공습해 파괴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도 자위권 차원에서 북한 핵시설에 대한 폭격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스라엘은 공격을 받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고, 현재 한국의 상황은 이스라엘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한국정부 관계자들이 그들의 지식과 역량으로 한국에 최선인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군사적 수단은 언제나 마지막 선택입니다.”

—이스라엘과의 무역을 증진하는 것이 아랍국가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요.

“이스라엘과 한국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한국과 아랍국가의 무역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 제품은 좋은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국제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아랍국과 무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터키, 요르단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1972년 서독 뮌헨올림픽 때 ‘검은 9월단’ 사건으로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이 죽자 모사드와 이스라엘군은 특수조직을 구성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정보책임자 3명을 끝까지 찾아내 응징했습니다. 만약, 한국도 북한의 아웅산 폭파사건 관련자, KAL기 폭파사건 관련자들을 이스라엘처럼 보복했다면 북한의 도발은 중단되지 않았을까요?

“이스라엘은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해결방법이 최선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종종 군사적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도록 ‘코너’에 몰리지만, 결국 협상테이블에 앉아서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평화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스라엘은 한국처럼 국토가 좁아 적에게 기습을 당하면 회복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1967년 6월 ‘6일 전쟁’ 때 이스라엘 공군기들의 기습공격으로 전쟁의 향방을 전투 30분 만에 결정지었던 선례가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 개념을 실전에서 사용하고 있고, 국제사회에서 용인을 받고 있는데, 한국도 이스라엘처럼 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할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은 1967년 당시 이집트, 시리아 등에 둘러싸여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즉 수에즈 운하도 막혀 있는 등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을 유지하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쥐가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듯,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제공격을 선택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국제사회에서 정당방위로 인정을 해주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한국 상황처럼 이스라엘 주변국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면, 이스라엘은 가만히 있었을까요?

“지금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기 보유 기도로 인해 한국과 똑같은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외교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풀어간다는 것이 현재 이스라엘 정부의 기본 입장입니다.”

—북한의 핵보유에 대응해 한국도 자위적 차원에서 조건부로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고 있는데.

“한국의 국내 문제라 제3자가 코멘트하기 곤란합니다.”

아이언 돔으로 서울 방어 가능

텔아비브에 배치된 이스라엘의 단거리 미사일 요격 시스템인 아이언 돔.

—한국은 휴전선 인근에 배치된 사거리 40km 이상의 방사포로 수도 서울의 안보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이언 돔이라는 단거리 방공체계를 개발해 현재 가자 지구(Gaza Strip)에서 86% 이상의 요격 성공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처음 개발할 때 방어용 무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것에 대해 의회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순전히 정치적 판단으로 개발을 결정했습니다.

가자 지구에서 날아오는 로켓이나 미사일 때문에 이스라엘 국민들이 생업에 종사하지 못하고 방공호에만 숨어 있다면,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은 현저하게 떨어질 겁니다. 그 경제적 피해는 아이언 돔 개발비에 비할 바가 아닐 겁니다. 지금 이스라엘 예루살렘이 보호받는 것처럼, 만약 한국이 아이언 돔을 도입한다면 서울도 안전하게 보호를 받을 겁니다.”

아이언 돔은 5~70km 거리에서 목표물을 격추하는 방어시스템이다. 2006년 레바논 전쟁에서 단거리 미사일, 로켓 공격으로 극심한 피해를 본 이스라엘은 2007년부터 약 3억7500만 달러(약 4090억원)를 들여 연구, 개발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2012년 11월 가자 지구에서 쏘아 올린 미사일 86%를 막아냈다고 밝혔다. 한국은 2010년 연평도 포격 이듬해 권오봉(權五俸) 당시 방위사업청 차장이 이스라엘을 방문, 아이언 돔 구매에 관심을 나타냈었다.

2012년 11월 15일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구에서 날아온 카삼로켓을 맞혀 떨어뜨리기 위해 ‘아이언 돔(Iron Dome)’ 요격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국내총생산(GDP)의 3%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방위산업 연구개발비를 투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주요 무기체계의 생산을 외국에 의존하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라크 등 적대국의 요격 위험 때문에 이스라엘은 지구 자전 반대방향인 서쪽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유일한 국가입니다. 그만큼 개발과정에 시행착오가 많았죠. 1980년대에는 독자적으로 전투기를 개발하다 미국의 압력으로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실패과정을 겪으며 이스라엘은 우주·항공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을 축적한 것입니다.”

샤이 대령은 “이스라엘도 다른 나라처럼 엄청난 돈을 들여 거대한 무기시스템을 생산하는 것보다 해외로부터 구입하는 것을 선호했으나, 1967년 이스라엘이 6일 전쟁에서 이집트를 선제공격하자 드골 대통령은 무기판매를 일방적으로 중단했다”며 “이스라엘의 공군 창설자 알 쉼머는 스위스의 엔지니어를 영입해 미라지 전투기의 엔진 설계도를 얻어내고 프랑스 미라지 전투기를 복제해 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6일 전쟁 이후 미국 정부는 호크 대공미사일을 시작으로 이스라엘에 무기시스템을 팔기 시작하는 등 프랑스를 대신해 미국이 이스라엘의 주요 군수 공급국가가 됐다”면서 “그러나 프랑스의 배신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더 이상 외국의 무기공급업체에 의존할 수 없다는 자각과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라비 프로그램 중단했지만…

이스라엘은 전차, 전투기와 같은 주요 무기체계를 자국의 힘으로 만들기로 하고, 1978년 현재 4세대 전차모델로 발전한 메르카바 전차를 제작했다. 또 훗날 미라지 전투기의 이스라엘 모델인 네셔를 생산했고, 그 후 1973년 처녀비행에 성공한 크피르 모델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스라엘의 야심 찬 계획은 미국의 엔진을 이용해 이스라엘과 미국이 공동으로 라비(Lavi) 전투기를 생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라비는 크피르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것일 뿐 아니라 세계 일류전투기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라비는 1982년 본격개발에 들어갔고, 1986년 말 첫 번째 전투기 시험비행이 있었다. 그러나 1987년 8월 5대의 전투기를 만들기 위해 수십억 달러의 연구개발비가 들어간 라비 프로그램은 미국 의회의 반대와 이스라엘 내각의 12대 11의 표 대결로 전격 취소됐다.

—이 프로젝트의 취소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라비의 개발은 의미 있는 군사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스라엘은 동맹국과 적국에 이스라엘이 국가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첨단전투기를 독자적으로 개발·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둘째로 1988년 이스라엘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세계 12번째 나라가 됐습니다. 라비의 개발에서 축적된 기술적 노하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라비 프로그램 종료로 1500여 명의 엔지니어들이 졸지에 직장을 잃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이스라엘에 남아 민간산업 분야로 기술이전을 하는 첨병 역할을 했습니다. 항공기술자 요시 그로스 씨는 17개의 신생 기술기업을 창업했고, 모두 300개가 넘는 특허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드골은 이스라엘인들에게 더 이상 외국에 의존해서는 자주권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 스승이 됐습니다.”

—이스라엘의 무기 벤처들이 국제 방위산업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갖게 됐습니까.

“이스라엘은 전장(戰場)에서 증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전장에서 성능이 검증된 무기체계를 사고 싶어합니다. 이스라엘 무기체계들은 비용당 효율이 다른 나라 무기체계보다 큽니다. 우리는 시스템뿐만 아니라 기술이나 노하우까지 판매하고 있습니다.”

—한국형 전투기개발사업(KFX)에 이스라엘은 참여할 의사가 있습니까. 특히 이스라엘은 항공전자장비(avionics)에서 강점이 있고, 한국에 파격적으로 기술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방산업체인 엘빗이나 라파엘, IAI가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양국 방위산업 업체들이 서로를 잘 알고 긴밀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기회가 주어지면 한국의 항공력 발달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구트만 대사는 “히브리어로 산모의 출산용 의자를 뜻하는 ‘마쉬베르(mashiber)’는 혼란(混亂)과 공황(恐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며 “새 생명 탄생과 공황이 같은 단어로 쓰인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그만한 진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정부든 창업자든 더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의 성공모델을 만들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구트만 대사는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인 갈비와 만두를 이번 설날 마음껏 즐길 수 있어 행복하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