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탈북자의 代父’ 千璂元 목사가 말하는 탈북 고아들의 실상 : 월간조선

“천신만고 끝에 국경을 넘어 탈북자들을 라오스 한국대사관에 인계하면, 그들은 늘 우리를 빚 받으러 온 사람처럼 대했습니다. 그들은 잘해도 본전인 이 일을 가장 싫어했죠. 이번 탈북자 강제북송도 현지 우리 대사관은 안이하게 대처한 반면, 북한은 단체관광비자까지 만들어 용의주도하게 미성년자를 포함한 탈북자들을 데려갔던 겁니다.”

라오스에서 중국으로 추방됐던 고아 출신 탈북자 9명이 결국 지난 5월 28일 낮 강제로 북송된 사실과 관련, 천기원(千璂元·57) 두리하나선교회 대표(목사)는 “친구 목사가 내몽골자치구에서 탈북자들을 돕다 내 눈 앞에서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며 “미 대사관 직원은 즉시 달려와 24시간 동안 함께 있으면서 석방 노력을 했고 결국 이튿날 친구 목사는 대사관 직원과 함께 석방됐다”고 말했다. 천 목사는 “저는 몽골 국경 지역에서 체포돼 8개월간 구속돼 있는 동안 대사관 직원이 면회 한 번 안 왔고, 재판 당일도 오지 않았다”며 “탈북자들이 우리의 형제요, 국민이라고 생각한다면 이토록 무관심하게 대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김정은 체제 후 탈북자 한국 입국 急減

천기원 목사는 1999년 10월에 설립한 두리하나선교회를 통해 1000여 명의 탈북자들이 한국과 미국 등지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운 ‘탈북자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인물이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두리하나선교원에서 만난 천 목사는 “지난해 한국으로 입국한 탈북자가 전년도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며 “북한 김정은 정권의 단속 강화가 탈북자 감소의 1차 원인”이라고 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으로 입국한 탈북자는 총 1508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2706명을 기록했던 전년도의 56% 수준이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탈북자는 지난 2006년부터 2011년까지 2000명 수준을 유지했다. 그런데 7년 만에 다시 1000명대로 떨어진 것이다.

실제로 김정은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장악하라”며 주민에 대한 통제 강화를 지시했고, 전국 분주조장 회의에 보낸 축하문에서는 “불순 적대분자를 모조리 색출해 짓뭉개버리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 목사는 “우선 중국 내에서 움직이는 게 제약이 너무 심하다”며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신분증이 없으면 기차표를 못 사고, 버스 역시 검문이 심해 자가용으로 실어나르고 있고, 검문에라도 걸리면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천 목사는 “북·중 국경 지역의 경비가 강화되면서 탈북 중개 비용도 오르고 있다”며 “한 번 도강(渡江)하는 데 적어도 중국 돈 7000~1만 위안, 미화로 1100~1600달러를 국경 수비대에 바쳐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전년도보다 거의 두 배 이상 오른 가격”이라고 했다.

탈북에 북한 국경 지역에서 중국 내륙까지 1000달러, 다시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까지 1500달러를 포함해 적어도 4000~5000달러 정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땅에서 탈북 여성은 ‘물건’

중국 산속에서 숨어지내는 탈북자들의 은신처.

—북송된 고아 출신 탈북자들은 어떤 처벌을 받습니까.

“북한형법 제62조 조국반역죄, 제233조 비법국경출입죄를 보면, ‘공민이 조국을 배반하고 다른 나라로 도망쳤거나 투항, 변절하였거나 비밀을 넘겨준 조국 반역행위를 할 경우에는 5년 이상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 정상이 특히 무거운 경우에는 무기로동교회형 또는 사형 및 재산몰수형에 처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식량을 구하기 위한 비법국경출입죄는 2년 이하의 노동단련형, 무거운 경우에는 3년 이하의 노동교화형 정도지만, 종교인을 만난다거나 한국행을 시도하다 적발되면 큰 처벌을 받습니다. 북한은 이번에 북송된 탈북자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 때문에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지만, 만일 비공개로 북송됐다면 바로 처형될 수도 있습니다.”

—중국 내 탈북 고아들의 삶이 얼마나 열악하기에 라오스 국경을 넘어 한국행을 택하는 건가요.

“중국은 탈북 고아들뿐만 아니라 모든 탈북자들을 범죄자로 취급해 북송합니다. 중국에선 탈북 여성들이 ‘물건’으로 통용됩니다. 짐승처럼 팔려가서 매를 맞고 살아도 하소연도 못하고 사는 것이죠. 탈북 여성들은 중국 땅에서 북송과 처벌에 관한 공포로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짐승 취급을 받으면서 팔려가더라도 북한에 가서 처형을 당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그곳에서 숨어 지내거나 목숨 걸고 국경을 넘어 한국행을 택하는 겁니다. 고아들도 마찬가집니다.”

—목숨을 걸고 탈북해 중국에서 라오스 국경을 넘어 한숨을 돌리는 탈북자들이 대사관의 미숙한 대응으로 북송된다면 심정이 어떨까요.

“지금까지 선교사들이 목숨을 걸고 2~3개 국경을 넘어 대사관에 인계를 하면, 대부분 한국행이 성공했습니다. 이번 라오스 건도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강제북송은 충분히 모면했을 겁니다. 99% 성공한 상황에서 무성의와 1%의 노력이 부족해 사지(死地)로 갔다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 아닌가요?”

—탈북자들에 대해 라오스 정부가 벌금을 부과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탈북자들에 부담 아닐까요.

“지난 3월 인신매매 당한 탈북 여성과 중국에서 태어난 탈북 2세 아이들을 라오스대사관으로 안내했는데 3개월 가까이 한국으로 입국이 지연돼 경위를 알아보니, 벌금 300달러에 항공료 480달러를 내라고 해서 가족들이 그것을 마련하느라 시간이 걸렸다는 겁니다. 라오스나 태국이 자국을 불법입국한 사람에게 국내법에 따라 처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벌금을 낼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안 됩니다. 만약 탈북자들이 돈만 있다면 이제는 탈북 브로커들이 많아 한국행을 위해 선금으로 100만~150만원만 주면 어느 선으로든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문제는 경제적 능력이 없어 브로커와 한국에 오면 갚는 후불조건으로 계약을 하게 되면 3~4배나 높은 금액을 지불하고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와야 하는 탈북자들에게 벌금까지 추가로 내야 하는 건 무리죠.”

—탈북자들이 미국으로 망명하는 경우, 미국 정부는 어떻게 이들을 대우합니까.

“미국은 탈북자들에게 정착금을 하나도 주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스스로 자립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정착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미국행 항공료를 정부가 선지불하고 입국 6개월 후부터 2년간 조금씩 나누어 상환하라고 합니다. 탈북자가 현지에 정착할 때까지 기다려준다는 취지가 참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국회, ‘북한인권법안’ 9년째 방치

영양실조 상태인 탈북 고아 아이의 발.

—북송된 9명이 처형당하지 않도록 돕는 방법이 있을까요.

“지금은 북송된 상태라 힘으로 미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북한도 외부의 체면을 중시하는 나랍니다. 국회 차원의 결의안도 내고 유엔도 나서고, 언론에서 북한의 탈북자 북송 문제와 생사를 집중적으로 추궁하는 길만이 유일한 길일 겁니다.”

—‘북한인권법안’이 18대 국회에서 상정된 이후 지금껏 잠자고 있습니다.

“미국은 2004년 북한인권법안을 발의했고 2006년 5월 5일 최초로 6명의 탈북자를 입국시켰습니다. 미국은 또 올해 탈북 고아들을 입양할 법안을 상하원에서 통과시켰습니다. 우리 국회는 왜 9년 동안 발의만 하고 처리하지 않았을까요. 계류된 법안을 지속적으로 반대해 온 민주당은 각성해야 합니다. 미국인들을 만날 때마다 창피하고 부끄럽습니다.”

두리하나선교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천기원 목사의 휴대전화 벨은 연방 울려댔다. 천기원 목사는 중국에서 활동 중인 동료들에게 수시로 휴대전화 번호를 바꿔가며 지시를 내린다. 그는 “공안(公安)을 조심하라!”, “서로 아는 체하지 마라!”, “잡히면 나머지 동료들을 위해 최대한 비밀아지트의 정보를 지켜라”라고 말한다.

천 목사는 탈북 고아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것을 “훔쳐온다”고 표현했다. 그는 “탈북 여성이 원치 않는 출산으로 키우다, 북송되거나 한국으로 탈출하면 탈북 고아들은 경제적 능력이 없는 아버지와 살게 돼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게 된다”며 “한국으로 먼저 탈출한 가족의 요청으로 시댁과 합의하에 어린아이들을 데려와야 하지만, 경제능력이 없는 할머니나 친지들이 내주지 않아 비참한 생활을 하는 아이를 훔치다시피 탈출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천 목사는 “만약 중국 공안에 적발된다면 영락없이 ‘인신매매범’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했다.

천 목사는 “지금 북한의 돈 없는 여성이 국경을 넘으려면 탈북 브로커에게 팔려갈 수밖에 없다”며 “탈북자들의 가정이 파괴되는 건 물론이고, 탈북여성이 자신들이 원치 않게 중국인의 아이를 출산해 모정(母情)으로 한국에 데려오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탈북 고아들의 문제는 통일 이후에도 큰 사회 문제가 될 것”이라며 “한국 교회가 이들을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정부가 적극 대응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탈북사태를 맞게 되는 셈”이라고 했다.

투먼에서 북한 주민 시체 보고 충격

스위스로 입양 보낸 탈북 고아 미향이(강제 임신중절 시도로 청각장애자가 됐다).

천 목사는 경북 경산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호텔리어로 시작한 인생이었다. 그러다 작은 호텔도 경영하며 그럭저럭 잘나가던 사업가였다. 1995년 12월, 경제특구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또 다른 사업거리를 찾으러 중국 베이징(北京)을 거쳐 두만강변에 있는 투먼(圖們)에 갔다가 큰 충격을 받는다.

“두만강을 보니까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강변에 내려가 사진을 찍으려는데, 얼어붙은 강물에 신발 한 켤레가 보였습니다. ‘이상도 해라, 얼음낚시 하는데 신은 왜 벗었나’하고 보니까 시체였어요.”

천 목사는 너무 놀라 가이드에게 물으니 “늘상 떠내려오는 게 조선 사람 시체”라고 했다. 가다 보면 더 있다고도 했다. 북한 사람이라면 머리에 뿔이 나고 빨간 피부를 가진 인간들일 것이라는 반공교육 세대였던 천 목사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두만강 푸른 물을 감상하려던 그의 가슴에 큰 멍이 들었다.

투먼에 이어 들른 훈춘(琿春)에서 천 목사에게 거지 소년들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한 다섯 살 된 애들이었는데, 동전을 주니까 막 뛰어가요. 그런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중국 경찰인 공안이,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애 귀가 찢어질 때까지” 곤봉으로 구타를 해대더라고 했다. 꽃제비, 굶주림을 피해 국경을 넘어온 북한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저녁식사 후에 구경 나간 시내에서 비명을 지르며 사내들에 의해 끌려가는 처녀를 목격했다. 가이드는 “저 처자도 조선 여잔데, 잡아가면 그 사람이 임자”라고 했다.

그날 밤, 천 목사는 “두 번 다시 중국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무작정 기도했다고 한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께 닿지 않았던 듯 싶다. 이듬해, “우리 집에 제발 목사 하나 있었으면”하는 작고한 노모의 서원기도와 김종순 목사의 권유로 신학교에 들어갔다. 어릴 때부터 귀 닳도록 들은 청이었지만, 40년을 거부하다 받아들였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신기하다”고 했다. 사업가 천기원, 그렇게 인생 계획을 바꿨다.

중국 두리하나 셸터에서 몽골로 출발하기 전 기도하는 모습.

1999년 7월 목사가 된 천기원이 중국을 다시 찾았다. 신학교 답사 여행이었다.

“옌지(延吉) 공항에서 꽃제비들이 중국 공안들에게 두들겨 퍼 맞는 장면을 목격하고, 기차역에 갔더니 처녀 하나가 납치돼 끌려갔습니다. 저녁 무렵 강바람 쐬러 나갔다 다리 밑에 탈북자 시체 두 구가 둥둥 떠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4년 전과 어찌 그리 똑같은지…. 기시감(旣視感) 정도가 아니라 똑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죠.”

처음 가본 낯선 장소에서 갑자기 자기가 와본 곳인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을 데자뷔(d´ej‵avu), 기시감이라고 한다. 천기원은 그해 12월, 무엇엔가 홀린 듯 두리하나선교회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선교는 둘째고, 탈북자 지원이 기본 목적인 단체였다. 이후 15년 동안 천 목사는 무려 1000여 명에 이르는 탈북민들을 도와 한국과 미국 등지에 정착해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왔다.

두리하나는 1999년 10월 2일 설립된 초교파 복음주의 선교단체로 통일한국을 꿈꾸며 북한 선교를 위해 기도하던 25명의 동역자들이 북한과 중국의 국경도시와 변방을 드나들며 굶주림에 지친 북한동포들과 유리방황하던 꽃제비들의 참상을 바라보며 눈물로 기도 모임을 갖게 된 것을 시작으로 최초 발족됐다.

천 목사는 “사명감을 갖고 시작한 게 절대 아니었다”며 “참혹한 모습을 매일 보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인간으로서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많은 분이 내게 특별히 북한 선교와 탈북자 구출사업에 대한 비전으로 시작했느냐고 물어옵니다. 난 아니라고 말합니다. 지금도 이메일이나 전화나 팩스로 매일 ‘살려달라’, ‘우리 딸을 찾아달라’는 애타는 목소리들이 들려오니까 하는 겁니다.”

공안에 붙잡혀 8개월 수감생활

2001년 중국 감옥에 수감 중인 천기원 목사.

천기원 목사는 2001년 12월 탈북자 12명을 데리고 몽골 국경을 탈출하다가 공안에 붙잡혔다. 체포 이유는 비법월경자(非法越境者) 방조죄. 당시 그를 구속한 공안검사 자전(賈禎)은 “중화인민공화국 법령에 따르면 당신에게 사형까지 구형할 수 있다”고 했다.

고문은 없었지만, 12월 몽골 추위는 지독했다. “영하 50도가 기본이었어요. 난방은 하루 1시간씩 네 번 틀어줬고요. 밥은 밀가루로 만든 만두 두 개가 다였죠.”

“2001년 12월 30일 공안에 체포됐을 때, 공안들은 체포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들이 제 소재를 수소문해 체포됐다는 사실을 알았고, 아내는 3개월 후에야 알게 됐습니다. 완전히 고립된 사막에서 미래를 알 수 없어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미국에 있던 천기원 목사 친구가 미국 의회에 청원을 했고 상하원이 석방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중국 정부를 압박했다. 감옥 생활 8개월 동안 한국 정부에서는 단 한 명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바깥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천기원 목사와 자전 검사는 매주 취조실에서 만났다. 검사가 “이 일을 시킨 자가 누군가”라고 물었다. 천 목사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내 민족이 마음 아파 돕는 것이다. 당신이 서울에서 대만 거지를 봤다고 하자. 그냥 지나치나? 도우면 죄가 되나?”라고 받아쳤다. 검사가 “비법월경자 납치죄, 3국 도피 방조죄, 불법종교 활동죄! 장난하지 마라. 돕겠다는 마음? 믿지 않는다. 교사(敎唆)한 자가 누군가”라고 다그쳤다. 천기원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이 교사했다.”

천 목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꼬박 6개월 동안 매주 같은 질문을 하는 거예요. 대답도 똑같았고요. 그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되니까 자기들을 놀리는 걸로 생각한 거죠. 팔짱을 끼고 듣다가 재미있단 표정을 짓더군요. ‘진실하게 조사에 임하면 빨리 처리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몇 년이고 조사만 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검사 세 명이 서류를 들고 들어와 판결문 조사서용 손도장을 찍어갔다. 두 사람이 먼저 나가고, 담당검사인 자전이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이제 털어놔라. 진짜 누가 시켰나.”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시켰나?”

“중국어 성경책에도 적혀 있다. ‘고아, 과부, 나그네를 도우라’고 돼 있다(출애굽기 12장 22절). 탈북자들이 다 고아고 과부고 나그네다. ‘너희가 억지로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면 그 사람들은 죽는다. 북한으로 가지 않으려고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하는데, 너희가 그렇게 만드는 거다.”

“나도 그 책 읽어볼 수 있나?”

순간 천 목사의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이 검사가 불법종교 활동을 추가로 죄목에 추가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한참 고민하다가 “그래라”고 했다. 다행히 함정은 아니었다. 검사는 그에게 “You, good man”이라며 “내가 뭔가 도와주고 싶은데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씩 웃으면서 나갔다. 천 목사는 검사에게 명함 한 장을 인사치레로 건넸고, 보름 후 천 목사는 수갑을 찬 채 한국으로 추방됐다. 천 목사는 230여 명을 ‘인신매매’한 혐의로 천신만고 끝에 8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고 220일 만인 2002년 8월 21일 풀려났다.

2002년 12월, 자전 검사는 천 목사에게 연락을 했고, 이듬해엔 고려대 외교통상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2년 내내 천 목사 집에 하숙하며 천 목사를 “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2003년 8월 베이징대에 유학 중이던 천 목사의 딸(한나)이 서울에 머무는 동안 둘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마침내 두 사람은 2006년 9월 30일 결혼식을 올렸다. ‘죄수의 딸’과 ‘검사’가 결혼한 셈이다.

탈북 고아들, 국적도 없는 국제 미아 신세

미국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린 북한 자유의 날 행사에서 연설 중인 천기원 목사.

천 목사는 2010년 5월 싱가포르 일간지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와의 인터뷰에서 “탈북자의 80%는 여성이고 이 여성들의 90%가 인신매매 피해를 당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중국 내 여성의 수가 부족해 매매 가격이 폭등, 거래가 매우 활발해져 농촌에서 약 1500달러 정도에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천 목사는 “이들 여성들은 탈북하기 전 ‘중국에 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꾐에 빠진다. 하지만 실정을 제대로 아는 여성은 거의 없다”며 안타까움도 토로했다.

탈북 과정은 먼저 중국 측 중개업자가 여성이 중국 국경을 통과할 수 있도록 국경 수비대원에게 1인당 500~1000위안을 내고, 이후 북한을 탈출해 구매자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농촌 등지에 팔려가고 있지만 성매매 업소에 팔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천 목사는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인 남성과 탈북 여성 사이에서 생기는 아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친부(親父)와는 상관없이, 국적이 없는 친모(親母)가 낳은 아이는 인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 목사는 “친모가 인신매매 현장에서 탈출하거나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면, 아이들은 국적도, 호적도, 부모도 없는 비참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천 목사는 “문제는 중국에서도 국적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 탈북 고아들을 한국 정부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우리 교회의 김성룡 군도 한국에 온 지 5년째입니다. 엄마가 중국에서 성룡이를 낳은 후, 북한으로 끌려가 처형당했습니다. 대한민국 법으로는 성룡이가 북한 주민의 아들이라는 게 증명이 돼야 정착금은 지급이 안 되더라도 국적이 나옵니다. 그런데 천국에 있는 엄마가 어떻게 증명을 해줍니까. 선교회 차원에서 ‘성룡이 엄마가 중국에서 북송 당했다’는 서류를 해당 공안국에서 발급받아 제출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성룡이 국적 문제는 5년이 지나도록 해결이 되지 않아 학교도 다닐 수 없지만, 가까운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배려로 현재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고는 있습니다. 중학교 입학은 사실상 어려운 상태입니다.”

대안학교 ‘두리하나국제학교’ 운영

두리하나국제학교 개교식 모습. 새누리당 황우여 의원, 이혜훈 전 의원의 모습이 보인다.

현재 두리하나선교회는 탈북자 구출활동을 중심으로 북한 복음화와 지하교회 지원, 천사의 집(무국적 탈북 고아원) 운영, 탈북자 정착지원 전개, 탈북자 난민 지위 확보를 위한 국제 연대와 인권운동 전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천 목사의 말이다.

“전국 각 교회와 탈북 동포들과의 결연 사업을 진행해 탈북 동포들이 겪고 있는 문화적 충돌과 외로움을 해결해 줌으로써 보다 안정적으로 남한 생활에 적응하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을 잃은 탈북 동포들에게 조금이나마 편안하고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보금자리를 마련해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대안학교로 2009년 두리하나국제학교를 설립했다고 들었습니다.

“중국에서 떠돌던 젊은이들이 나이가 많아 한국에서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도 어렵고, 영어를 따라갈 수 없다고 합니다. 글로벌시대에 영어를 모르면 생존할 수 없잖아요. 두리하나국제학교는 탈북한 젊은이들을 통일을 염두에 둔 미래의 지도자로 양성하기 위해 설립했습니다.

다행히 미국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선생님들을 비롯해 80여 명의 원어민 자원봉사자들이 번갈아 학생들을 지도하며 영어중심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졸업 후 본인이 원하면 미국 정부에 등록된 법인인 ‘두리하나USA’ 이사진들의 교회와 연계하여 해외유학도 보내고 있습니다.”

두리하나선교회는 대학생까지 포함해 현재 50여 명의 탈북자들이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둥지를 틀고 있다. 천 목사는 “방배동 4층짜리 선교회는 월 1200만원 월세를 살고 있다”며 “국제학교와 기숙사를 함께 마련하려다 보니 공간이 부족해 최근에는 소형 아파트 3채를 기숙사로 추가로 빌렸다”고 했다.

인터뷰 중간에 식당에 내려가니 교사와 학생들이 신나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천 목사는 “키가 크고 영양상태가 나은 아이들은 중국에서 온 탈북 고아들이고, 키가 작고 왜소한 아이는 북한에서 탈북한 아이들”이라고 했다. 현재 초·중·고생 25명 가운데 30%에 해당하는 7명이 중국 내 탈북 고아 출신이라고 했다.

—중국에서 자란 탈북 고아들은 우리말을 합니까.

“처음에는 우리말을 전혀 못해요. 그러나 국제학교에서 6개월 정도 집중적으로 교육하면, 우리말이 트이기 시작합니다. 중국어에 능통한 선생님들이 많기도 하고요. 용케 엄마와 상봉한 탈북 고아들도 마음의 상처가 아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부, 탈북자 정착지원 프로그램 마련해야

—초기에는 탈북자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데 주력하다 지금은 국제학교를 만드는 등 정착을 지원하는 쪽으로 초점을 바꾼 거죠?

“처음 300명의 탈북자를 데려왔을 때만 해도 그 사람들이 자유를 찾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4년쯤 지나 4500명이 넘어서면서 제대로 정착하는 사람들이 드물고 범죄자가 됐다는 소식이 들려요. 해외로 도망도 가고요. 나무를 옮겨 심으려면 뿌리를 잘 내리도록 하는 게 내 책임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탈북자들에게 맞는 교육을 시켜 사회로 내보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천 목사는 “북한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당에서 시키는 일만 하고, 당으로부터 받는 일에만 익숙해, 수동적이고 남에게 베풀 줄 모르고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데도 익숙하지 않다”며 “도움을 받으면 감사하기보다는 ‘저 사람이 왜 나를 도와줄까? 원하는 게 뭘까?’라고 먼저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천 목사가 목숨을 걸고 탈북을 도와준 탈북민들이 오히려 공금횡령과 성추행 혐의로 자신을 고소했을 때 많이 울고 힘들었다고 한다.

—탈북자들은 김정은을 어떻게 말합니까.

“북한 내부 인사들과 통화를 해보면 김정은 체제는 2015~2018년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해요. 통치력을 행사하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병행해야 하는데, 당근 없는 물리력은 반발만 불러오거든요. 고위급 자제들이 다니는 평양과기대 학생들은 인터넷을 다 보고 있어요. 외부세계의 막힌 창들이 하나둘 뚫리고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지금도 김일성 이야기를 할 때면 자세가 달라집니다. 나름 존경심이 있어요. 김정일은 상대적으로 덜하고, 김정은 이야기가 나오면 ‘아새끼가 뭘 안다고…’하면서 대놓고 욕해요.”

—왜 한국사회에 적응이 힘들까요?

“오랫동안 사회주의에서 체질화된 생활습관 때문입니다. 북한에서는 일자리와 배급을 주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력하지 않으면 살아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이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자립심을 키우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고, 누가 오더라도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정착지원 매뉴얼을 만들어야 합니다.”

천기원 목사는 탈북 청년들에게 자본주의 체제를 가르치기 위해 선교원 앞마당에서 의류를 판매하도록 했다. 천 목사는 “의류를 판매하는 청년들에게 고정급 100만원 외에 인센티브를 적용하고 있다”며 “내가 노력하면 수입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게으름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는 “현재는 헌옷을 수선해서 한 벌당 1000~2000원에 팔고 있지만, 대기업 의류업체에서 도움을 준다면 탈북자들의 교육과 경제적인 면에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콜로라도 주지사, ‘두리하나의 날’ 선포

1999년 12월부터 2008년 3월까지 두리하나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벗어난 탈북자는 약 1000명이 넘는다. 중국 입국이 불허됐을 당시 천 목사는 전화로 중국 내 활동가들과 작전을 짜고 사람들을 빼냈다.

1990년대 후반, 북한의 식량난으로 촉발된 대량 탈북 사태로 중국 내에 4만명(추산)에 이르는 탈북자들이 숨어 살고 있다. 이 가운데 1만여 명이 인신매매로 태어난 탈북 고아로 추정되고 있다.

천 목사는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인권 문제”라며 “2012년 입국금지가 풀린 다음에는 필요하면 중국에 들어가 탈북자들을 데려오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천 목사는 2008년 3월 《조선일보》와 협력으로 탈북리포트 <천국의 국경을 넘다>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EBS를 통해 2011년 5월 2일부터 5월 4일까지 방영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2007년 3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압록강과 두만강의 국경을 넘나드는 북한 동포들의 삶을 생생하게 취재한 것이다.

<천국의 국경을 넘다>는 전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렸고, 모나코 몬테카를로 TV페스티벌 최우수상 등 국내외 16개 언론상을 수상했고, 국내 최초로 미국 에미상 후보에 오르며 극찬을 받았다. 2009년 2월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북한 탈출기’로 천 목사의 활약상을 보도했다. 지난 2009년 7월 18일, 당시 콜로라도 주지사였던 빌 리터는 7월 17일을 ‘두리하나의 날’로 선포해 선교회의 사역과 복음 활동에 힘을 실어주었다.

천 목사는 “이들 탈북 동포들이 더 이상 힘들게 북한을 탈출해 중국 등지를 떠돌며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될 때까지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뿐”이라며 “반세기 넘게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지내왔지만 우리는 분명히 한 민족이고, 피해의식과 배신감, 원한, 분노, 원망에 가득 차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탈북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어 안고 품어주는 자세가 절실하다”고 했다.

두리하나선교회의 ‘두리하나’는 성경 에스겔서(31장 17절)에 나오는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하나님이 유다와 이스라엘의 통일을 에스겔 선지자에게 예언한 것이다.

‘이 넓은 세상에/ 수많은 사람 중에/ 널 만난 건 내겐 너무 특별해/ 둘이 하나 될 수 있도록/ 둘이 하나 될 수 있도록/ 어떤 현실도 서로 참아낼 수 있어/ 너 없는 이 세상은 생각할 수 없어~.’ 천 목사 휴대전화의 컬러링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