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 한국 유학 시절 이선희 노래에 반해 25년 동안 한국 가요 예찬론자로 살아
⊙ 일본사람들은 최근 K-POP의 한국어 가사를 그대로 따라해
⊙ 20, 30대 일본 젊은이들 컴맹 엄마 위해 배용준 자료 검색해 주다 한국 문화에 매료돼
⊙ ‘사랑해요’ ‘언니’ ‘시원하다’ 등 일본어에 없는 표현 한국어로 보완하는 일본인 증가 추세
가미시마 류이치
⊙ 47세. 1994년 NHK 입사. 2009년부터 BS와 보도국에서 국제뉴스 등 시사정보프로그램 담당 중.
⊙ 現 NHK 국제방송국 다언어전개부 PD.
廉東浩
⊙ 46세. 경희대 졸업. 호세이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 저서: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괴짜 경영학》.
⊙ 일본사람들은 최근 K-POP의 한국어 가사를 그대로 따라해
⊙ 20, 30대 일본 젊은이들 컴맹 엄마 위해 배용준 자료 검색해 주다 한국 문화에 매료돼
⊙ ‘사랑해요’ ‘언니’ ‘시원하다’ 등 일본어에 없는 표현 한국어로 보완하는 일본인 증가 추세
가미시마 류이치
⊙ 47세. 1994년 NHK 입사. 2009년부터 BS와 보도국에서 국제뉴스 등 시사정보프로그램 담당 중.
⊙ 現 NHK 국제방송국 다언어전개부 PD.
廉東浩
⊙ 46세. 경희대 졸업. 호세이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 저서: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괴짜 경영학》.
스물을 갓 넘긴 일본인 청년이 한국말을 배우겠다고 서울을 찾은 것은 1987년, 대학교 4학년 때였다. 같은 또래의 학생들이 연일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거리로 나갔던 시절이었다. 청년에게 군사정권, 독재정권, 최루탄, 반정부 시위라는 단어가 오가는 한국 사회는 암울하게 느껴졌다.
그날도 청년은 최루 가스로 뒤범벅이 된 서울 공기를 마시며 하숙집 대신 사용하던 신촌의 한 구석진 여인숙으로 돌아왔다. 향수를 달래기 위해 틀어놓은 흑백 TV에서 한 곡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조그만 체구의 안경 낀 여가수의 노래는 그의 귀와 눈을 화면에 고정시켜 버렸다. 가수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이었다. ‘이렇게 곱고 아름다운 음이 있다니…’ 청년은 한국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어둡게 느껴졌던 한국, 서울, 그리고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의미는 몰랐지만 ‘음’에 매료된 그는 그날부터 어학당이 끝나면 거의 매일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노점으로 달려가 어눌한 한국어로 어제 들었던 노랫말을 되뇌며 테이프를 달라고 했다. 손수레 아저씨는 힐끗힐끗 쳐다보며 “뭐라고?”를 연발했다. 거의 매일 찾아오는 이상한 일본 청년에게 익숙해진 노점상 아저씨도 이제 더듬거리는 일본인 청년의 말을 대충 알아듣게 되었고 같이 테이프를 찾아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청년은 언제부터인가 방송국 가요 공개방송 녹화현장에서 여중고생들 속에 뒤섞여 열광하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체구인지라 거리에 나오면 행인들의 몸에 치였고, 간판이며 노점상이며 정돈되지 않은 것들에 부딪혔지만 그런 서울이 싫지 않았다. 거의 매일같이 마시는 최루 가스도 이제는 그 모든 것이 한국이라는 사회의 역동성으로 느껴졌다. 변하려고 몸부림치는 한국사회의 강렬한 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한국관을 바꿔놓은 조그만 여가수의 노래 한 곡. 그 노래의 힘에 매료된 그의 한국 가요 예찬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형이다.
이처럼 한국 가요를 사랑하는 그가 2011년 10월 30일, 서울에서 ‘NHK에 고이하세요 in 서울(NHKに戀하세요)’이라는 테마로 공개방송을 진행한다. 그는 최근 K-POP이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침투, 일상 언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최근 일본 내 한류(韓流)의 움직임과 한류 영향으로 바뀌고 있는 일본 젊은이들의 언어습관에 대해 물었다.
NHK 국제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시종 진지했다. 단어 하나하나를 챙기며 한일(韓日) 양국 모두에 누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젊은이들의 일상에 녹아든 한류
―서울에서 ‘NHK에 고이하세요 in 서울’이라는 테마로 행사를 한다지요? 그런데 타이틀이 한국어로는 좀 이상하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문법적으로 맞는, 제대로 된 한국어 문장이라면 ‘NHK를 사랑하세요’ 아니면 ‘NHK를 사랑해 주세요’가 되겠지요. 그런데 이 문장은 보시는 바와 같이 한국어와 일본어를 합성해서 만든 조어(造語) 문장입니다. 최근 한국의 여성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나 카라 등이 부르는 일본어 버전 노래에서 이러한 형태의 가사가 많이 나옵니다.
일본 이곳저곳에서 많이 들리고 있는 한국 노래 속에 한국어가 많이 나타나고 있고, 그것을 일본 사람들이 따라 부르고 있습니다. 일본어와 어우러진 한국어 가사는 일본 젊은이들과 한국어를 아주 가깝게 해주었고 젊은이들의 언어 속에 소리 없이 녹아들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일본어 속에 스며들고 있는 한국어가 일본 젊은이들의 언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반짝반짝’이나 ‘진짜진짜’ 등 노랫말 속의 의태어나 의성어를 일본의 젊은이들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영어나 일본어 번역을 해서 처리했는데, 최근 K-POP은 한국어 가사를 그대로 부르고 있고, 이것을 일본 사람들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지요. 또한 CD표지 등에 한국어가 그대로 표기되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랫말의 의미를 알기 위해 사전이나 인터넷을 뒤지면서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고, 한국어나 한국 가요에 더욱 빠져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일상생활 속에서도 변화가 있겠는데요.
“맞습니다.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휴대전화의 커버를 직접 장식하는 젊은 여성들이 적지 않은데요, 이 커버에 자신의 이름을 핑크색 한국어로 새겨 넣는 사람도 있고, 메일을 보낼 때 그림문자를 한국어로 만들어서 보내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어의 ‘OK’에 해당하는 ‘알았어’를 그림문자로 만들어서 보내는 것이지요.”
―그건 상대방도 ‘알았어’라는 한국어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거네요.
“그렇지요. 한국어가 이처럼 일본 젊은이들의 일상 속에 녹아든 것은 한류가 그만큼 축적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0·50대 배용준 팬이 20·30대 견인
―한류라는 용어가 회자되기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이 되어 갑니다. 그런데 일본 젊은이들의 이런 움직임은 최근 현상인가요.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런 현상이 있었다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지난해부터 올해 사이에 K-POP이라 불리는 한국 가요 가운데 특히 여성 아이돌 그룹의 진출이 두드러지면서 지금까지의 한류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의 한류 수용세대가 40, 50대였다면 K-POP을 중심으로 한 최근의 한류는 10대와 20대까지 그 영향력이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바로 노래의 힘이 이전의 한류와는 다른 영향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9월 14일, 한국의 7인조 여성 아이돌 그룹 ‘레인보우’가 도쿄에서 개최한 일본 데뷔곡 ‘A’의 발매기념 이벤트에 약 2000명이 모였습니다. 발매 첫 주에 2만4000장이나 팔렸고, 9월 26일 오리콘 차트 주간 랭킹에서 3위를 기록했습니다. 첫 등장에서 3위는 K-POP 붐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카라(5위)나 소녀시대(4위)를 웃도는 기록입니다. K-POP 아이돌이라고 해서 무조건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이렇게 반응이 폭발적인 이유는 뭘까요.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드라마 붐이 일면서 40, 50대 여성 팬들이 급속히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들에게 배용준에 대해 정보를 검색해 달라고 했고,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자녀들은 배우나 드라마에 대해 검색하면서 다른 정보를 접하게 됐습니다.
2004년에 일본에서 동방신기가 데뷔했을 때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것도 그동안 알게 모르게 일본 젊은이들에게 정보가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방신기를 통해 드라마만 보던 엄마 세대도 같이 동방신기의 음악을 듣게 되고 모녀가 함께 팬이 되면서 집에 CD와 DVD가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지요.
젊은 세대들은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한국 음악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중에 소녀시대나 카라, 티아라와 같은 그룹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아이돌 그룹의 일본 데뷔는 최근 1~2년 사이에 이뤄졌지만 이미 많은 팬이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항에 마중을 나가거나 열광하는 것은 극히 자연발생적인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한국어가 지닌 음률에 매료돼
―가미시마 씨는 이미 1980년대부터 한국 음악을 접해 왔습니다. 1990년대에도 유명한 곡들이 많았는데 일본에서는 그다지 반응이 없었습니다. 1980~90년대 음악과 지금의 K-POP이 다른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1980~90년대 한국 음악은 발라드나 포크송이 주류였습니다. 이 장르의 음악을 만들고 리드하며 향유했던 주역들은 대학생들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인텔리 세대였는데, 지금 그 세대가 K-POP을 만들고 프로듀스하는 세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미국 음악을 비롯해 일본의 구와타 게이스케(桑田佳祐)나 안전지대(安全地帶) 같은 가수의 음악도 직간접적으로 섭렵한 세대들입니다. 직간접적인 응축을 통해 축적된 감성과 갈망하던 자유로움이 지금의 K-POP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K-POP 수용자들은 그때보다 연령대가 더 낮아지고 더 자유롭고 화려하며 개방적이 되었기에 그러한 성향과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전 노래에는 가사에 의미가 있고 스토리가 있었는데 요즘 가사에는 무의미하거나 모호한 내용이 많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보면 일본에서 불리고 있는 K-POP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거나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등의 지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일정 부분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용자로서 느끼는 매력적인 부분은 ‘의미’ 이전에 ‘소리’라든가 ‘멜로디’라든가 하는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음’이나 ‘소리’의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한 예로, 한국어를 거의 모르는 여고생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어를 ‘화장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일본어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부드럽고 귀여운 느낌을 주는 소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소리 그 자체만으로도 신선하게 느끼고 귀와 눈을 고정시키는 한국어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하니 이번 이벤트의 타이틀인 ‘NHK니 고이하세요’라는 문장을 곱씹어 보게 되는군요.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어와 일본어를 합성해서 만든 조어인데요,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기획을 하거나 의도적으로 정연하게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번 행사의 기획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한국인이 일본어를, 일본인이 한국어를 어떻게 도입하고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말의 달인이라고 하는 양국의 아나운서들이 어떻게 소화하고 또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토크쇼를 통해 담론을 얻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작년에도 비슷한 테마로 도쿄에서 행사를 했지요.
“작년에는 ‘일본어가 한국에 미친 영향’이 테마였습니다. 과거의 경우 역사적인 문제가 있어서인지 일본어의 영향력은 상당히 수직적이었습니다만 최근에는 수평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간지(感じ, かんじ)난다’는 표현이 대표적인 사례지요.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언어를 통한 교류가 심화되고 친밀해지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보려고 합니다.”
“일본어로는 마음을 다 채울 수 없어”
―이번 행사를 위해 3·11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까지 가서 한국 가요 콘테스트를 취재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 가요 콘테스트는 주일(駐日) 한국 대사관이 주최하는 행사로 매년 1000여 팀이 참가하고 있는데, 각 지구별로 예선이 있습니다. 저희는 지난 3월 11일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입은 동북지방대회를 다녀왔습니다.
피해가 워낙 커서 개최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힘을 내자는 취지에서 개최가 실현됐고 20여 팀이 참가했습니다. 참가자 중에는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도 있었고, 후쿠시마 원전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이 모두 한국 가요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들이 일본 사람인데도 견디기 어려운 난관 앞에서 힘들 때 한국 가요를 부르며 위로를 받고 있다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한국 노래가 이들에게 중요한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어떤 노래가 그들에게 힘을 주고 있었는지요.
“다양한 장르의 노래가 소개되었습니다. 그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복구 작업을 하고 있는 남성이 부른 ‘보고 싶다’라는 노래였습니다. 그 남성은 전혀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동화사이트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음’이 좋아 CD를 사서 수십 번을 들으며 외웠다고 합니다. 지진 피해 속에서 노래를 불러도 될까, 하는 망설임도 있었지만, 이번 지진으로 보고 싶어도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애절한 심정을 노래에 담았다고 했습니다.”
―한국어나 한국 가요가 외국어로서 액세서리가 아니라, 감정이입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일본어를 보완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새로운 지식을 표현하는 도구로서의 존재도 있겠지만, 일본인에게 한국어라는 외래어는 정서를 표현하는 한 부분으로 스며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취재를 하던 중 일본인에게 좋아하는 한국어를 물었더니, ‘사랑해요’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너무나 흔하고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라서 이 사람에게 일본어에도 같은 표현인 ‘아이시테 마스(愛しています)’가 있지 않으냐고 되물었지요. 그랬더니 ‘일본어로는 마음을 다 채울 수 없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또 다른 예로 ‘언니’라고 답을 하는 여성도 있었습니다. ‘왜’냐고 물었더니, 일본어로는 친언니 외에는 언니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연상의 여성과의 친밀감, 여성 간의 우정을 표현하는 단어로도 쓰이고 있어서 아주 부럽게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일본어에 없는 부분을 한국어로 보충하는 일본인들이 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최근 일본 가정의 식탁에서도 많은 변화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김치나 한국산 김을 고정 메뉴로 올려놓는 가정도 있고, 요리에 마늘을 넣는 가정도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초중등학교 급식메뉴에도 ‘김치 볶음밥’이 정규 메뉴로 들어 있다고 합니다. 옛날 같으면 상상할 수 없었던 현상 아닌가요.
“저도 삼겹살을 좋아하고 김치도 좋아합니다. 대낮부터 삼겹살을 먹으면 냄새가 많이 나는데 그다지 의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희 방송국 사람들도 점심이나 저녁에 한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본에는 ‘에스닉(ethnic) 요리 붐’이라는 게 있습니다. 한국 요리도 에스닉 요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과거 ‘조선’ 요리가 이제는 나라나 지역의 의미를 벗어나 새로운 장르의 요리로 자리 잡게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어적으로 보면 ‘야키니쿠’가 ‘갈비’로, ‘삼마이니쿠’가 ‘삼겹살’로 변했고, ‘김치나베’도 바로잡아 ‘김치찌개’로 부르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일본에는 韓流, 한국에는 日流
―이번에는 드라마 이야기를 좀 해보지요. NHK에서 방영한 <대장금>이 히트를 치면서 최근 일본 주요 방송국들이 밤낮으로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일부 민방은 한류시간대를 별도로 편성한 곳도 있습니다. 평일 오후로서는 아주 높은 평균 5~6%의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도 많은데, 무엇보다 10, 20대의 여성시청자를 발굴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평이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에 어떤 매력이 있을까요.
“무엇보다 한국 배우들의 용모가 매력적이고,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들 수 있겠지요. 다음으로는 작품의 세계관이나 극적인 스토리도 매력적입니다. 일본에서는 고전적이어서 다루지 않는 소재도 한국은 역동적인 드라마로 그려내지요. 배우들의 풍부한 감정표현도 인기를 끄는 요인입니다.
또한 일본 드라마는 소박한 설정이 많지만 한국 드라마에는 화려한 설정, 다시 말해 재벌이나 변호사, 의사, 기자 등 화려한 직업군이 등장합니다. 일본인들은 거기에 자신을 오버랩하면서 스토리를 그려보는 측면이 있고, 또 그러한 부분들이 역동적이고 힘차게 느껴져서 인기를 끄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류 방송이 너무 많다’는 비판도 일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인기가 과열돼 지상파 방송권을 놓고 방송국이 쟁탈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반감을 느낀 사람도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8월 하순에는 특정 방송국에 항의하는 ‘반한류’ 집회도 수차례나 열렸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객관적인 상황을 토대로 말씀드리면, TV나 잡지 모두 한국 드라마나 가수, 음악 프로그램 등이 일정 부분 시청자와 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방송을 하고 보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이 가장 심플한 진실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무역적 측면에서 압도적인 수입초과로 보일 수 있고 그러한 인상이 일부 일본인에게 막연한 초조감이나 불안감으로 나타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양쪽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에서는 일본 음식은 물론이거니와 한국 고등학생 중 60% 이상이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 한국인이 좋아하는 캐릭터 상위 10위 가운데 5개가 일본의 캐릭터라는 점을 생각하면, 무역불균형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갑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전체를 이야기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일본에 한류가 있다면 한국에는 ‘일류’(日流)가 있습니다. 현재의 한류처럼 요란스럽지는 않지만 조용하게 저류(低流)를 흐르는 측면이 있으므로 일본인도 차분하고 냉정하게 한국의 그런 모습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의 융합 현상도
―한국어, K-POP 등 한국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한류라는 이름을 타고 확산되면서 일본 사회에 내재되어 가고 있습니다. 현재 어떤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융합’이나 ‘내재화’ 단계에 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해 발매된 소녀시대의 ‘미스터 다쿠시’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처음에 일본어 버전이 나오고 다음에 한국어 버전이 나왔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패턴이어서 동화사이트를 살펴봤더니 말레이시아, 홍콩, 태국 등 동남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이 노래가 불리고 있더군요. 소녀시대를 따라 세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저는 이것을 한국 노래라고 해야 할지 일본 노래라고 해야 할지, 의문 아닌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일본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생성된 하이브리드형의 새로운 언어, 즉 아직 완성된 형태는 아니지만 새로운 형태의 엔터테인먼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융합’이며 앞으로 문화도 좋든 싫든 ‘융합의 시대’로 나아갈 것입니다. 서로의 언어를 무너뜨리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날이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있는 현상은 바꿀 수 없는 흐름이고 사실입니다. 이미 한국어는 일본어나 일본 사회에 있어서 그런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한류가 각지의 문화와 교류하며 뿌리를 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카라의 분열 소동 등을 보면서 일본인들은 실망이 컸습니다. 해산, 분열 소동은 일본인들에게 단순히 연예계나 연예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한 단면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그 이면에 숨어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한국 연예계의 한탕주의 심리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오래전에 신승훈이라는 가수의 팬 미팅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일본인 팬들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한 기억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가수는 아니지만 노래와 대화를 통해 교감하고 언어의 장벽을 전혀 느낄 수 없도록 해준 그런 쇼였습니다. 불과 1만 엔 정도의 실비만으로 이루어진 팬 미팅이었지만, 마지막에 라이트업된 화면에는 그날 참석한 팬들의 이름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막으로 처리돼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인상적인 쇼였습니다. 그들의 흐뭇해 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드리고 싶은 말은 좀 더 장기적인 측면에서, 일본을 소중한 시장으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K-POP이라는 대중문화를 매개로 일본어와 한국어의 관계성을 찾아보려는 NHK의 시도는 이색적이고 매우 흥미로운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10월 30일 서울에서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에 어떤 ‘말’들이 오가고, 또 ‘어떤 새로운 언어’가 발굴될지 궁금해지는군요.
“한국에도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미디어가 있다는 게 무엇보다 기쁩니다. 저희는 앞으로 계속해서 언어적인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 그리고 양국 언어의 변화에 대해 검증하고 확인해 나갈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한국과 일본 모두의 관심사이자 같이 해나가야 할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의견도 주시면 고맙겠고, 저희가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알려주시면 더욱 기쁘겠습니다. 많은 한국 분과 같이 고민하고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행사는 오는 10월 30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서 열린다(자세한 사항은 www.nhk.or.jp/korean 참조).
일본이 원하는 質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나 K-POP은 이제 하나의 장르로 뿌리를 내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류 내비게이터나 한국 대중문화 평론가라는 직업도 생겨났다. 한국어를 수강하려면 추첨을 해야 할 정도로 한국어 강좌에 학생들이 몰리는 대학도 있다.
한국 드라마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각 방송사의 한국 드라마 쟁탈전도 BS나 CS에서 이제 지상파로 옮겨갔다. 작품성으로 시청률을 담보하고 있다는 평에는 이론이 없지만 언제까지 호황을 누린다는 보장은 없다.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한류 드라마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배경에는 일본의 불황이 적지 않은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황으로 프로그램 제작비가 줄어, 비용이 낮고 높은 시청률을 내는 한국 드라마를 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일본이 원하는 ‘질’을 확보하기 위해 기획단계에서부터 일본 측의 의향을 반영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다. 한일 합작드라마나 영화가 대박을 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한류가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일본이나 특정 계층을 의식한 작품이 아니라 우리의 깊은 속을 듬뿍 담아내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K-POP이 인기몰이를 하면서 한류스타도, 일본 팬들도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한류 지지층은 확대되고 연령층도 다양해지고 있다. 일본어 속에서 나타나는 한국어의 위상도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전철역 안내판과 전철 차량 전광판에 한국어 안내가 표시되기 시작한 지도 벌써 수년 전이다.
뜨거운 것을 먹고 ‘시원하다’고 말하는 일본인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일본어에는 없는 개념이지만 시원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을 때가 있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어가 일본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 흐름 속에서 K-POP이라는 대중문화를 통해 한일 양국 언어의 관계성을 찾아보려는 NHK의 시도는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하지만 아직도 팬 미팅을 하는 데 거액을 받는 얄팍한 상술의 한류스타들도 있다. 남편의 저녁 밥상 차려주는 것도 잊을 정도로 그들을 끔찍하게 사랑한다는 팬들조차 팬 미팅이라는 이름으로 수금을 하러 온다고 수군거린다. 팬 미팅을 수익사업으로 생각하는 스타들은 말 없는 팬들의 불만을 깊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붐’에서 ‘문화’로 정착되어 가고 있는 한류는 언어, 문화가 융합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게 오랫동안 한류를 지켜봐 온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하지만 융합에도 형태가 있고, 내용이 있다. 어떤 모양으로, 또 어떤 내용으로 담아낼 것인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라 하겠다.⊙
그날도 청년은 최루 가스로 뒤범벅이 된 서울 공기를 마시며 하숙집 대신 사용하던 신촌의 한 구석진 여인숙으로 돌아왔다. 향수를 달래기 위해 틀어놓은 흑백 TV에서 한 곡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조그만 체구의 안경 낀 여가수의 노래는 그의 귀와 눈을 화면에 고정시켜 버렸다. 가수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이었다. ‘이렇게 곱고 아름다운 음이 있다니…’ 청년은 한국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어둡게 느껴졌던 한국, 서울, 그리고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의미는 몰랐지만 ‘음’에 매료된 그는 그날부터 어학당이 끝나면 거의 매일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노점으로 달려가 어눌한 한국어로 어제 들었던 노랫말을 되뇌며 테이프를 달라고 했다. 손수레 아저씨는 힐끗힐끗 쳐다보며 “뭐라고?”를 연발했다. 거의 매일 찾아오는 이상한 일본 청년에게 익숙해진 노점상 아저씨도 이제 더듬거리는 일본인 청년의 말을 대충 알아듣게 되었고 같이 테이프를 찾아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청년은 언제부터인가 방송국 가요 공개방송 녹화현장에서 여중고생들 속에 뒤섞여 열광하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체구인지라 거리에 나오면 행인들의 몸에 치였고, 간판이며 노점상이며 정돈되지 않은 것들에 부딪혔지만 그런 서울이 싫지 않았다. 거의 매일같이 마시는 최루 가스도 이제는 그 모든 것이 한국이라는 사회의 역동성으로 느껴졌다. 변하려고 몸부림치는 한국사회의 강렬한 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한국관을 바꿔놓은 조그만 여가수의 노래 한 곡. 그 노래의 힘에 매료된 그의 한국 가요 예찬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형이다.
이처럼 한국 가요를 사랑하는 그가 2011년 10월 30일, 서울에서 ‘NHK에 고이하세요 in 서울(NHKに戀하세요)’이라는 테마로 공개방송을 진행한다. 그는 최근 K-POP이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침투, 일상 언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최근 일본 내 한류(韓流)의 움직임과 한류 영향으로 바뀌고 있는 일본 젊은이들의 언어습관에 대해 물었다.
NHK 국제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시종 진지했다. 단어 하나하나를 챙기며 한일(韓日) 양국 모두에 누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젊은이들의 일상에 녹아든 한류
―서울에서 ‘NHK에 고이하세요 in 서울’이라는 테마로 행사를 한다지요? 그런데 타이틀이 한국어로는 좀 이상하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문법적으로 맞는, 제대로 된 한국어 문장이라면 ‘NHK를 사랑하세요’ 아니면 ‘NHK를 사랑해 주세요’가 되겠지요. 그런데 이 문장은 보시는 바와 같이 한국어와 일본어를 합성해서 만든 조어(造語) 문장입니다. 최근 한국의 여성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나 카라 등이 부르는 일본어 버전 노래에서 이러한 형태의 가사가 많이 나옵니다.
일본 이곳저곳에서 많이 들리고 있는 한국 노래 속에 한국어가 많이 나타나고 있고, 그것을 일본 사람들이 따라 부르고 있습니다. 일본어와 어우러진 한국어 가사는 일본 젊은이들과 한국어를 아주 가깝게 해주었고 젊은이들의 언어 속에 소리 없이 녹아들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일본어 속에 스며들고 있는 한국어가 일본 젊은이들의 언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반짝반짝’이나 ‘진짜진짜’ 등 노랫말 속의 의태어나 의성어를 일본의 젊은이들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영어나 일본어 번역을 해서 처리했는데, 최근 K-POP은 한국어 가사를 그대로 부르고 있고, 이것을 일본 사람들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지요. 또한 CD표지 등에 한국어가 그대로 표기되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랫말의 의미를 알기 위해 사전이나 인터넷을 뒤지면서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고, 한국어나 한국 가요에 더욱 빠져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일상생활 속에서도 변화가 있겠는데요.
“맞습니다.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휴대전화의 커버를 직접 장식하는 젊은 여성들이 적지 않은데요, 이 커버에 자신의 이름을 핑크색 한국어로 새겨 넣는 사람도 있고, 메일을 보낼 때 그림문자를 한국어로 만들어서 보내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어의 ‘OK’에 해당하는 ‘알았어’를 그림문자로 만들어서 보내는 것이지요.”
―그건 상대방도 ‘알았어’라는 한국어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거네요.
“그렇지요. 한국어가 이처럼 일본 젊은이들의 일상 속에 녹아든 것은 한류가 그만큼 축적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0·50대 배용준 팬이 20·30대 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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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스타 배용준이 작년 10월 도쿄를 방문하자, 하네다 공항에 4000여 명의 팬들이 모였다. |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런 현상이 있었다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지난해부터 올해 사이에 K-POP이라 불리는 한국 가요 가운데 특히 여성 아이돌 그룹의 진출이 두드러지면서 지금까지의 한류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의 한류 수용세대가 40, 50대였다면 K-POP을 중심으로 한 최근의 한류는 10대와 20대까지 그 영향력이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바로 노래의 힘이 이전의 한류와는 다른 영향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9월 14일, 한국의 7인조 여성 아이돌 그룹 ‘레인보우’가 도쿄에서 개최한 일본 데뷔곡 ‘A’의 발매기념 이벤트에 약 2000명이 모였습니다. 발매 첫 주에 2만4000장이나 팔렸고, 9월 26일 오리콘 차트 주간 랭킹에서 3위를 기록했습니다. 첫 등장에서 3위는 K-POP 붐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카라(5위)나 소녀시대(4위)를 웃도는 기록입니다. K-POP 아이돌이라고 해서 무조건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이렇게 반응이 폭발적인 이유는 뭘까요.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드라마 붐이 일면서 40, 50대 여성 팬들이 급속히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들에게 배용준에 대해 정보를 검색해 달라고 했고,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자녀들은 배우나 드라마에 대해 검색하면서 다른 정보를 접하게 됐습니다.
2004년에 일본에서 동방신기가 데뷔했을 때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것도 그동안 알게 모르게 일본 젊은이들에게 정보가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방신기를 통해 드라마만 보던 엄마 세대도 같이 동방신기의 음악을 듣게 되고 모녀가 함께 팬이 되면서 집에 CD와 DVD가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지요.
젊은 세대들은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한국 음악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중에 소녀시대나 카라, 티아라와 같은 그룹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아이돌 그룹의 일본 데뷔는 최근 1~2년 사이에 이뤄졌지만 이미 많은 팬이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항에 마중을 나가거나 열광하는 것은 극히 자연발생적인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한국어가 지닌 음률에 매료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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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시마 씨는 말의 달인들인 한일 아나운서가 양국 언어의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방송을 진행한 바 있다. |
“1980~90년대 한국 음악은 발라드나 포크송이 주류였습니다. 이 장르의 음악을 만들고 리드하며 향유했던 주역들은 대학생들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인텔리 세대였는데, 지금 그 세대가 K-POP을 만들고 프로듀스하는 세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미국 음악을 비롯해 일본의 구와타 게이스케(桑田佳祐)나 안전지대(安全地帶) 같은 가수의 음악도 직간접적으로 섭렵한 세대들입니다. 직간접적인 응축을 통해 축적된 감성과 갈망하던 자유로움이 지금의 K-POP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K-POP 수용자들은 그때보다 연령대가 더 낮아지고 더 자유롭고 화려하며 개방적이 되었기에 그러한 성향과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전 노래에는 가사에 의미가 있고 스토리가 있었는데 요즘 가사에는 무의미하거나 모호한 내용이 많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보면 일본에서 불리고 있는 K-POP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거나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등의 지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일정 부분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용자로서 느끼는 매력적인 부분은 ‘의미’ 이전에 ‘소리’라든가 ‘멜로디’라든가 하는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음’이나 ‘소리’의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한 예로, 한국어를 거의 모르는 여고생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어를 ‘화장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일본어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부드럽고 귀여운 느낌을 주는 소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소리 그 자체만으로도 신선하게 느끼고 귀와 눈을 고정시키는 한국어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하니 이번 이벤트의 타이틀인 ‘NHK니 고이하세요’라는 문장을 곱씹어 보게 되는군요.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어와 일본어를 합성해서 만든 조어인데요,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기획을 하거나 의도적으로 정연하게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번 행사의 기획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한국인이 일본어를, 일본인이 한국어를 어떻게 도입하고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말의 달인이라고 하는 양국의 아나운서들이 어떻게 소화하고 또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토크쇼를 통해 담론을 얻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작년에도 비슷한 테마로 도쿄에서 행사를 했지요.
“작년에는 ‘일본어가 한국에 미친 영향’이 테마였습니다. 과거의 경우 역사적인 문제가 있어서인지 일본어의 영향력은 상당히 수직적이었습니다만 최근에는 수평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간지(感じ, かんじ)난다’는 표현이 대표적인 사례지요.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언어를 통한 교류가 심화되고 친밀해지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보려고 합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3·11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까지 가서 한국 가요 콘테스트를 취재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 가요 콘테스트는 주일(駐日) 한국 대사관이 주최하는 행사로 매년 1000여 팀이 참가하고 있는데, 각 지구별로 예선이 있습니다. 저희는 지난 3월 11일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입은 동북지방대회를 다녀왔습니다.
피해가 워낙 커서 개최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힘을 내자는 취지에서 개최가 실현됐고 20여 팀이 참가했습니다. 참가자 중에는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도 있었고, 후쿠시마 원전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이 모두 한국 가요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들이 일본 사람인데도 견디기 어려운 난관 앞에서 힘들 때 한국 가요를 부르며 위로를 받고 있다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한국 노래가 이들에게 중요한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어떤 노래가 그들에게 힘을 주고 있었는지요.
“다양한 장르의 노래가 소개되었습니다. 그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복구 작업을 하고 있는 남성이 부른 ‘보고 싶다’라는 노래였습니다. 그 남성은 전혀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동화사이트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음’이 좋아 CD를 사서 수십 번을 들으며 외웠다고 합니다. 지진 피해 속에서 노래를 불러도 될까, 하는 망설임도 있었지만, 이번 지진으로 보고 싶어도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애절한 심정을 노래에 담았다고 했습니다.”
―한국어나 한국 가요가 외국어로서 액세서리가 아니라, 감정이입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일본어를 보완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새로운 지식을 표현하는 도구로서의 존재도 있겠지만, 일본인에게 한국어라는 외래어는 정서를 표현하는 한 부분으로 스며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취재를 하던 중 일본인에게 좋아하는 한국어를 물었더니, ‘사랑해요’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너무나 흔하고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라서 이 사람에게 일본어에도 같은 표현인 ‘아이시테 마스(愛しています)’가 있지 않으냐고 되물었지요. 그랬더니 ‘일본어로는 마음을 다 채울 수 없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또 다른 예로 ‘언니’라고 답을 하는 여성도 있었습니다. ‘왜’냐고 물었더니, 일본어로는 친언니 외에는 언니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연상의 여성과의 친밀감, 여성 간의 우정을 표현하는 단어로도 쓰이고 있어서 아주 부럽게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일본어에 없는 부분을 한국어로 보충하는 일본인들이 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최근 일본 가정의 식탁에서도 많은 변화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김치나 한국산 김을 고정 메뉴로 올려놓는 가정도 있고, 요리에 마늘을 넣는 가정도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초중등학교 급식메뉴에도 ‘김치 볶음밥’이 정규 메뉴로 들어 있다고 합니다. 옛날 같으면 상상할 수 없었던 현상 아닌가요.
“저도 삼겹살을 좋아하고 김치도 좋아합니다. 대낮부터 삼겹살을 먹으면 냄새가 많이 나는데 그다지 의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희 방송국 사람들도 점심이나 저녁에 한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본에는 ‘에스닉(ethnic) 요리 붐’이라는 게 있습니다. 한국 요리도 에스닉 요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과거 ‘조선’ 요리가 이제는 나라나 지역의 의미를 벗어나 새로운 장르의 요리로 자리 잡게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어적으로 보면 ‘야키니쿠’가 ‘갈비’로, ‘삼마이니쿠’가 ‘삼겹살’로 변했고, ‘김치나베’도 바로잡아 ‘김치찌개’로 부르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일본에는 韓流, 한국에는 日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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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대장금>의 한 장면. |
“무엇보다 한국 배우들의 용모가 매력적이고,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들 수 있겠지요. 다음으로는 작품의 세계관이나 극적인 스토리도 매력적입니다. 일본에서는 고전적이어서 다루지 않는 소재도 한국은 역동적인 드라마로 그려내지요. 배우들의 풍부한 감정표현도 인기를 끄는 요인입니다.
또한 일본 드라마는 소박한 설정이 많지만 한국 드라마에는 화려한 설정, 다시 말해 재벌이나 변호사, 의사, 기자 등 화려한 직업군이 등장합니다. 일본인들은 거기에 자신을 오버랩하면서 스토리를 그려보는 측면이 있고, 또 그러한 부분들이 역동적이고 힘차게 느껴져서 인기를 끄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류 방송이 너무 많다’는 비판도 일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인기가 과열돼 지상파 방송권을 놓고 방송국이 쟁탈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반감을 느낀 사람도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8월 하순에는 특정 방송국에 항의하는 ‘반한류’ 집회도 수차례나 열렸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객관적인 상황을 토대로 말씀드리면, TV나 잡지 모두 한국 드라마나 가수, 음악 프로그램 등이 일정 부분 시청자와 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방송을 하고 보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이 가장 심플한 진실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무역적 측면에서 압도적인 수입초과로 보일 수 있고 그러한 인상이 일부 일본인에게 막연한 초조감이나 불안감으로 나타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양쪽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에서는 일본 음식은 물론이거니와 한국 고등학생 중 60% 이상이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 한국인이 좋아하는 캐릭터 상위 10위 가운데 5개가 일본의 캐릭터라는 점을 생각하면, 무역불균형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갑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전체를 이야기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일본에 한류가 있다면 한국에는 ‘일류’(日流)가 있습니다. 현재의 한류처럼 요란스럽지는 않지만 조용하게 저류(低流)를 흐르는 측면이 있으므로 일본인도 차분하고 냉정하게 한국의 그런 모습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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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걸그룹 카라. |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융합’이나 ‘내재화’ 단계에 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해 발매된 소녀시대의 ‘미스터 다쿠시’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처음에 일본어 버전이 나오고 다음에 한국어 버전이 나왔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패턴이어서 동화사이트를 살펴봤더니 말레이시아, 홍콩, 태국 등 동남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이 노래가 불리고 있더군요. 소녀시대를 따라 세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저는 이것을 한국 노래라고 해야 할지 일본 노래라고 해야 할지, 의문 아닌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일본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생성된 하이브리드형의 새로운 언어, 즉 아직 완성된 형태는 아니지만 새로운 형태의 엔터테인먼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융합’이며 앞으로 문화도 좋든 싫든 ‘융합의 시대’로 나아갈 것입니다. 서로의 언어를 무너뜨리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날이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있는 현상은 바꿀 수 없는 흐름이고 사실입니다. 이미 한국어는 일본어나 일본 사회에 있어서 그런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한류가 각지의 문화와 교류하며 뿌리를 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카라의 분열 소동 등을 보면서 일본인들은 실망이 컸습니다. 해산, 분열 소동은 일본인들에게 단순히 연예계나 연예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한 단면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그 이면에 숨어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한국 연예계의 한탕주의 심리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오래전에 신승훈이라는 가수의 팬 미팅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일본인 팬들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한 기억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가수는 아니지만 노래와 대화를 통해 교감하고 언어의 장벽을 전혀 느낄 수 없도록 해준 그런 쇼였습니다. 불과 1만 엔 정도의 실비만으로 이루어진 팬 미팅이었지만, 마지막에 라이트업된 화면에는 그날 참석한 팬들의 이름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막으로 처리돼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인상적인 쇼였습니다. 그들의 흐뭇해 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드리고 싶은 말은 좀 더 장기적인 측면에서, 일본을 소중한 시장으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K-POP이라는 대중문화를 매개로 일본어와 한국어의 관계성을 찾아보려는 NHK의 시도는 이색적이고 매우 흥미로운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10월 30일 서울에서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에 어떤 ‘말’들이 오가고, 또 ‘어떤 새로운 언어’가 발굴될지 궁금해지는군요.
“한국에도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미디어가 있다는 게 무엇보다 기쁩니다. 저희는 앞으로 계속해서 언어적인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 그리고 양국 언어의 변화에 대해 검증하고 확인해 나갈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한국과 일본 모두의 관심사이자 같이 해나가야 할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의견도 주시면 고맙겠고, 저희가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알려주시면 더욱 기쁘겠습니다. 많은 한국 분과 같이 고민하고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행사는 오는 10월 30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서 열린다(자세한 사항은 www.nhk.or.jp/korean 참조).
일본이 원하는 質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나 K-POP은 이제 하나의 장르로 뿌리를 내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류 내비게이터나 한국 대중문화 평론가라는 직업도 생겨났다. 한국어를 수강하려면 추첨을 해야 할 정도로 한국어 강좌에 학생들이 몰리는 대학도 있다.
한국 드라마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각 방송사의 한국 드라마 쟁탈전도 BS나 CS에서 이제 지상파로 옮겨갔다. 작품성으로 시청률을 담보하고 있다는 평에는 이론이 없지만 언제까지 호황을 누린다는 보장은 없다.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한류 드라마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배경에는 일본의 불황이 적지 않은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황으로 프로그램 제작비가 줄어, 비용이 낮고 높은 시청률을 내는 한국 드라마를 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일본이 원하는 ‘질’을 확보하기 위해 기획단계에서부터 일본 측의 의향을 반영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다. 한일 합작드라마나 영화가 대박을 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한류가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일본이나 특정 계층을 의식한 작품이 아니라 우리의 깊은 속을 듬뿍 담아내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K-POP이 인기몰이를 하면서 한류스타도, 일본 팬들도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한류 지지층은 확대되고 연령층도 다양해지고 있다. 일본어 속에서 나타나는 한국어의 위상도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전철역 안내판과 전철 차량 전광판에 한국어 안내가 표시되기 시작한 지도 벌써 수년 전이다.
뜨거운 것을 먹고 ‘시원하다’고 말하는 일본인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일본어에는 없는 개념이지만 시원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을 때가 있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어가 일본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 흐름 속에서 K-POP이라는 대중문화를 통해 한일 양국 언어의 관계성을 찾아보려는 NHK의 시도는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하지만 아직도 팬 미팅을 하는 데 거액을 받는 얄팍한 상술의 한류스타들도 있다. 남편의 저녁 밥상 차려주는 것도 잊을 정도로 그들을 끔찍하게 사랑한다는 팬들조차 팬 미팅이라는 이름으로 수금을 하러 온다고 수군거린다. 팬 미팅을 수익사업으로 생각하는 스타들은 말 없는 팬들의 불만을 깊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붐’에서 ‘문화’로 정착되어 가고 있는 한류는 언어, 문화가 융합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게 오랫동안 한류를 지켜봐 온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하지만 융합에도 형태가 있고, 내용이 있다. 어떤 모양으로, 또 어떤 내용으로 담아낼 것인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