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만명이 연금 수급… 20년 납부하면 월 평균 75만원 받아
⊙ “연금으로 해외에 좀 더 투자할 것”
⊙ 노조와 마찰 빚어… 공단 내에 무임승차 없앨 것
全光宇
⊙ 1949년生.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美 인디애나大 경제학 석사, MBA, 경영학 박사.
美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 美 미시간주립대학 경영학과 교수,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경제부총리특보,
우리금융그룹 부회장, 딜로이트코리아 회장, 금융위원회 위원장 역임.
現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 “연금으로 해외에 좀 더 투자할 것”
⊙ 노조와 마찰 빚어… 공단 내에 무임승차 없앨 것
全光宇
⊙ 1949년生.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美 인디애나大 경제학 석사, MBA, 경영학 박사.
美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 美 미시간주립대학 경영학과 교수,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경제부총리특보,
우리금융그룹 부회장, 딜로이트코리아 회장, 금융위원회 위원장 역임.
現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못 받을까 봐 걱정이 되신다고요? 꼭 돌려받습니다. 그것도 많이 돌려받습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연금이다 보니 본인이 넣은 것보다 더 많이 받는 구조로 되어 있죠. 국민연금이야말로 가장 좋은 노후 대책입니다.”
그의 말투는 단호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기자는 방금 ‘매달 월급에서 국민연금이 자동으로 빠져나가는데 나중에 돌려받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수장(首長)은 이런 당돌한(?) 질문에 당황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반격했다.
“연금 수급(受給)에 여전히 의구심이 많더라고요. 우리가 국민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를 대국민 신뢰 제고를 위한 원년(元年)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지난 7월부터 국민 모두가 국민연금과 함께 걱정 없는 노후를 준비하도록 하기 위한 ‘내 연금 갖기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에 들어 있지 않은 분들께 연금 제도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알려서 가입토록 하려고요.”
―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가질까요.
“급격한 저(低)출산과 고령화 시대를 맞아 이런 의문은 계속 갖는 것이라고 봅니다. 막연하게나마 ‘내가 연금을 받을 때까지 과연 기금이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일말의 불신(不信)을 말끔하게 해소해 드리겠습니다. 국민연금은 현재의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2060년까지 기금이 유지됩니다. 2060년이 지나야 기금이 소진되기 시작합니다.”
―40~50대(代)의 직장인들은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군요.
“그럼요. 저희가 기금이 소진돼 연금이 지급되지 않는 사태를 그냥 바라만 보고 있겠습니까? 기금을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국가의 공적(公的)연금 재정상태와 비교할 때 양호한 편입니다.”
1862만명 가입, 연금 수급자 300만명
전광우(全光宇)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은 조금 답답하다는 듯이 책상 앞에 놓인 메모지를 끌어당겼다. 펜으로 그림을 그려 설명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교수님’이었다.
“우리가 기금의 운용수익률을 연간 1%씩 올리면 기금의 고갈 시기를 9년 늦출 수 있습니다. 2060년이 아니라 2069년까지 기금이 남아 있는 것이죠. 만약 연간 수익률이 2%씩 높아진다면 현재의 낮은 출산율을 유지하더라도 연금 수급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주식을 해서 돈을 벌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는데, 매년 수익률이 높아지는 것이 말처럼 쉬운가요.
“물론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공단 내·외부에서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몇 년 안에 기금이 고갈되고, 내 차례까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국민들이 꼬박꼬박 내고 있는 연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이 많은가요.
“지난해 연말을 기준으로 1862만명이 국민연금에 가입했고, 오는 9월이면 연금 수급자가 300만명을 돌파합니다. 부부가 합산해서 한 달에 200만원 이상을 받는 가계도 있습니다. 그것 보세요. 우리 국민연금이 아직 국민들에게 정확히 홍보가 안되어 있다니까요(웃음).”
하긴 국민연금공단이 발족된 지 어느덧 스물세 해째를 맞고 있다.
정부는 1987년 10월, 국민이 나이가 들어 생업(生業)에 종사할 수 없을 때나 불의의 사고로 장해를 입었을 때, 또는 사망시에 국민들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 산하에 국민연금공단을 설립해 연금을 관리토록 했다.
1988년 1월, 처음 이 제도를 시행할 때에는 상시 근로자가 ‘10인 이상’인 직장만을 대상으로 했다. 이후 확대를 거듭해 현재에는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만 18~60세 미만의 전(全) 국민이 가입할 수 있다. 다른 공적연금에 가입해 있는 공무원, 직업군인, 사립학교 교직원 및 별정우체국 직원은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없다. 지난해 12월 말을 기준으로, 총 1862만명이 국민연금에 가입했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업종별로 사업장가입자, 지역가입자, 임의가입자, 임의계속가입자로 나뉜다. 이 중 ‘임의가입자’는 전업주부와 같이 가입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사람들이다.
국민연금공단 측은 최근 들어 임의가입자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2008년 말에 2만7614명이던 임의가입자는 2009년 말에 3만6366명, 지난 5월 말에는 4만4252명으로 늘었다. 한 달에 약 1000명씩 새로 가입한 꼴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우수성을 국민들이 알아 가고 있다는 증거”라며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는 트렌드를 조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는 9월에 기금 300조원 돌파 예정
현재 국민연금공단은 8실 1단 2센터, 기금운용본부 등 본부에 91개의 지사, 약 5000명의 직원으로 구성돼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의 이력관리, 연금보험료 징수, 연금급여 지급, 기금운용, 복지사업 실사 등이 주요 업무다. 공단 운영의 중요한 사항은 이사회를 통해 심의한다. 이사회는 이사장과 상임이사 3명, 비상임이사 7명 등 총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12월에 선임된 전광우씨가 공단을 이끌고 있다. 전 이사장은 ‘국제 금융통’이다. 1980년대 초에 이미 미국의 미시간주립대학에서 교수로 지냈고, 이후 15년 동안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약했다. IMF로 어려움을 겪던 시절,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귀국해 경제부총리 특보와 국제금융센터 소장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제1대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던 그가 공단의 새로운 선장이 된 것이다.
탁월한 국제감각을 갖춘 사람을 수장으로 앉혔다는 점에서 오늘날 국민연금공단이 차지하는 위상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전세계의 연·기금 중에서 네 번째로 규모가 크다.
어느새 ‘성인(成人)’으로 훌쩍 자란 국민연금의 기금은 5월 말 현재 292조원. 올해 우리나라의 전체 국가 예산은 292조8159억원이다. 국가의 한 해 예산에 버금가는 돈이 모인 것이다. 오는 9월에는 기금이 300조원을 돌파할 예정이다.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신생(新生) 연·기금이라 아직은 이 정도에 불과하지만, 2014년 말(末)에는 430조원, 2043년에는 기금이 24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 금융 시장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기관투자가다.
국민연금공단은 조금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다.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기금을 운용하는 업무와, 기금을 가입자에게 지급하는 업무로 나뉘어 있다. 기금을 운용하는 부서는 공격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반면 연금지급을 실행하는 부서는 보수적이고, 정해진 규정에 맞춰 정적(靜的)으로 움직여야 하는 부서다. 어떻게 보면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가지 업무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곳이 공단이다.
전광우 이사장은 “공단은 두 개의 엔진으로 가는 배”라고 했다.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의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입니다. 기금 운용 부서는 차가운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해야 하고, 또 제도를 실행하는 부서는 국민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업무를 봐야 하는 곳입니다. 이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하루에도 냉탕과 온탕을 수십 번씩 왔다갔다 합니다(웃음).”
많은 사람의 관심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방법’이다. 앞서 말했듯이 수백조 원대의 돈을 어떻게 굴려, 얼마만큼의 수익을 내느냐에 따라 향후 얼마나 오랫동안 기금이 고갈되지 않느냐가 결정된다.
기금운용은 보건복지부 산하의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라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에서 결정된다. 이 위원회에서 자산운용 전문가 100여 명이 기금운용을 심의하고, 의결한다. 이들의 의결사항은 ‘기금운용본부’에서 시행되는데, 운용내역은 매년 국회에 보고된다.
2009년 최고의 수익률 기록
국민연금에는 희소식이 있었다. 매년 평균 5%대였던 연금의 수익률이 지난 2009년에 훌쩍 뛰어오른 것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1988년부터 2009년까지 총 328조700억원이 조성됐고, 51조1000억원이 연금급여 등으로 지출됐다. 기금적립금은 277조6000억원이었는데, 연도별 수익률이 5%대에 불과했다.
공단은 기금을 금융부문(주식·채권·대체투자 등)에 투자해서 지난 2005년에 8조2000억원(수익률 5.63%)을 벌었다. 2006년에는 10조1000억원(수익률 5.77%), 2007년에는 13조8000억원(수익률 6.79%)을 벌었다가, 2008년에는 4000억원(수익률 마이너스 0.18%)을 손해봤다. 그랬는데 2009년에는 26조2000억원(수익률 10.39%)을 벌었다. 이와 같은 추세라면, 연금이 고갈되는 것이 한참 늦춰질 수 있다.
전광우 이사장은 “국민의 노후자산을 잘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기금 운용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글로벌 운용 역량을 갖추는 것이 절실하다”고 했다.
―기금 운용계획을 수립할 때 어떤 과정을 거칩니까.
“자산별 기대수익률과 위험을 분석하고, 기금의 실질가치를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증식을 달성할 수 있는 목표수익률을 세웁니다. 일반적인 금융시장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에서부터 기금이 감내할 수 있는 위험한도 등을 사전에 설정하죠. 이후에 적절한 기금 포트폴리오를 확정합니다.”
“연금의 해외투자 비중 계속 늘려 갈 것”
―주식 대 채권, 부동산의 비중을 어느 정도로 투자합니까.
“최근에 기금운용위원회가 결정한 장기 포트폴리오상으로는 국내외 주식이 30% 이상, 채권 60% 미만, 대체투자 10% 이상입니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해외 투자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보도를 봤습니다만.
“국내 채권에 주로 투자했는데, 이 정도를 벌어서는 연금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기금의 규모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 투자에 변화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해외투자 확대는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국민연금은 2001년에 해외에 일부 투자를 시작해서 해외 채권, 주식, 대체투자로 해외 투자를 다변화하면서 투자금액을 확대해 왔습니다.”
―이를 잘 운용할 수 있는 인력은 있습니까.
“해외투자 확대를 위해 2006년에 각 팀에 흩어져 있던 해외투자 인력을 모아 해외투자 전담팀을 신설했습니다. 2007년에는 이 조직을 해외투자실로 격상시켰고, 역량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직원 5000명 중에서 130여 명이 기금을 운용하고 있는데, 해외투자, 주식투자에 더욱 매진해 투자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 이사장은 “하지만 노후생활 안정을 위한 책임준비금이기 때문에 안전성이 중요하다”며 “안전성을 바탕으로 한 수익성 추구를 기금 운용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지난 2010년 5월을 기준으로, 국민연금은 해외에 총 32조4000억원을 투자했다. 전체 기금의 11.1% 수준이다. 2015년 말에는 전체 자산의 20% 이상을 해외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것이 생겼다. 국민연금공단은 준정부기관이고, 그렇다면 직원들이 준공무원 신분이다. 과연 이들이 사기업에 몸담은 사람처럼 기금운용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까.
전광우 이사장의 얘기다.
“기금운용 파트는 금융시장에 대해 친화적인 사람이 맡아야 하는 업무입니다. 기금의 수익률에 따라서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어떠냐는 얘기를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민간기업처럼 무리하게 투자하도록 유인(誘引)을 하면 안정성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사태를 보면 알 수 있죠. 하지만 무리하지 않은 보상체계라 해도 보상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무리한 투자보상 체계는 맞지 않지만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연금의 기금운용과 제도운용을 나누어 운영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습니다.”
기금운용 부서 독립방안 국회에 상정
―전 이사장은 어떤 입장이십니까.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금운용본부를 공사(公社)로 독립화하더라도, 민간회사처럼 운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이 기금은 공공성을 가진 국민의 돈이니까요. 제가 국제금융 전문가이다 보니까 두 조직을 떼내는 일에 적합해서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모양입니다. 제 생각은 ‘한지붕 밑에서 병립할 수 있다’는 쪽입니다. 가령 삼성생명과 같은 생명보험사를 한번 보십시오. 보험회사가 자산운용 업무를 떼내서 별도로 하지는 않잖습니까. 노사관계가 합리적으로 정착이 된다면 두 개의 상반된 기능이 한 조직 내에서 원활히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기자는 월급명세서를 받을 때마다 국민연금이 과하게 부과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해외의 사례와 비교하자면 그렇지도 않단다.
국민연금공단 측의 설명에 따르면, 연금보험료는 기준소득월액에 보험료율을 곱해서 산정한다. 현행 연금보험료율은 소득의 9% 수준. 연금제도가 오래 전부터 시행된 선진국의 경우는 우리보다 보험료가 높다. 독일은 전체 소득의 19.9%, 프랑스 16.65%, 미국 12.4%, 일본 15.4%를 뗀다.
이렇게 돈을 내서 언제부터 받을 수 있는걸까. 국민연금의 기초가 되는 ‘노령연금’을 기초로 보면 이렇다. 연금보험료 납부 기간이 10년 이상이면 만 60세 이후부터 평생 동안 매월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지급연령이 2013년부터는 5년마다 1세씩 연장돼 2033년부터는 만 65세부터 지급받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1953~56년생은 만 61세, 1957~60년생은 만 62세, 1961~64년생은 만 63세, 1965~68년생은 만 64세, 1969년생 이후는 만 65세부터 연금을 받는다.
20년 이상 가입자, 月 평균 75만원 수령
올해부터는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본격적으로 은퇴를 하기 시작한다.
전광우 이사장의 얘기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시작하면서 국민연금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들 세대는 약 712만명으로 추산되는데 대부분이 국민연금을 납부한 이력이 있거든요.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507만명이 연금을 냈고, 37%(188만명)는 10년 이상 냈습니다. 20년 이상 연금을 낸 사람도 53만명에 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가 사회에 미치는 충격은 클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연금이 이들에게 연금을 지급함으로써, 이로 인한 충격이 상당히 완화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연금에 가입하고 싶었는데 수입이 적어서 못한 사람들도 있죠.
“아, 그게 참 아쉬워요. 영세 가입자의 경우에는 보험료의 일부를 국고에서 지원해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우리 공단도 보다 많은 사람이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다각도로 노력할 겁니다. 대국민 신뢰를 제고해서 많은 분을 국민연금에 가입시키고, 또 연금수급권 보장을 두껍게 하기 위한 운동이 바로 ‘내연금 갖기- 평생월급 국민연금’ 캠페인입니다.”
국민연금공단 측의 자료에 따르면, 가입기간이 최소 10년인 사람은 누구나 국민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꼬박 10년을 납부한 사람은 월 평균 25만2900원, 15년 납부자는 월평균 49만원, 20년 이상 납부자는 월평균 77만원을 받는다. 이는 평균치일 뿐이고, 개중에는 100만원 이상씩을 받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공단 측의 설명이다. 국민연금공단은 국내 증시의 ‘큰손’이다. 이들이 돈을 투자하고, 회수하는 것에 대해 한 회사의 주가(株價)가 출렁거린다. 국민연금이 5%의 지분을 확보한 곳이 무려 94개사(社)다.
2010년 3월을 기준으로, 공단은 KB금융지주 주식 4.98%(1924만8845주), 하나금융지주 7.57%(1604만5922주), KT 7.69%(2008만9288주), 삼성물산 보통주 5.62%(877만4953주), LG화학 5.21%(345만4947주) 등을 보유하고 있다. 주식을 보유한 기업에 대해 주주(株主)로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공적 성격을 가진 기금이라는 특성 때문에 적극적인 주권 행사를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 수장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금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수탁자로서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국민연금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공정하고 투명한 주주권을 행사하는 방안을 연구 중에 있습니다. 오는 8월 말에 이 방안이 완료되면 공청회 등을 통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입니다.”
―가령 투자한 회사 등에 사외이사를 파견해 이사회의 일원으로 참여시킬 건가요.
“의결권 행사 등 전문위원회에서 심층적으로 논의를 해야겠죠.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주주권을 행사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사외이사 추천을 포함해 다양한 주주권 행사 방안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은행 대주주로서 은행 간의 합병 반대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 등의 대주주인데요. MB정부에서 초대 금융위원장을 역임했던 경험 등으로 미뤄, 은행 간의 합병을 어떻게 봅니까.
“은행 간의 합병은 현재로서는 득(得)보다 실(失)이 큰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요.
“합병 주체인 인수은행 입장에서 보죠. 합병을 통해서 은행의 경쟁력이 개선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이슈입니다. 은행 간의 합병을 통해 생산성과 수익성 등 시너지가 창출되어야 하는 겁니다. 상당한 구조조정이 수반되지 않으면 합병의 효과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체력이 중요하지, 체중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구조조정 없는 은행 간의 합병은 합병 주체인 인수은행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않죠.”
―국민연금과 같은 투자자 입장에서는 어떻습니까.
“투자자들은 합병을 통해 투자가치가 높아지는지의 여부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요즘의 추세를 보자면 합병 추진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거시적 측면에서는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이 문제입니다. 이번에 미국발(發) 글로벌 위기를 거치면서, 전세계는 한 가지 사실을 되새겼습니다. 은행의 규모가 커지면 금융 시스템의 위험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이죠. 최근의 세계적인 추세는 은행의 사이즈를 오히려 줄이고, 작은 규모로 우량의 은행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은행의 합병은 득보다 실이 크죠. 경영층이 매우 신중하게 이 이슈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가상승률 반영해서 연금 지급
그의 은행 합병에 대한 생각은 굉장히 확고해 보였다.
그는 인구의 고령화와 저출산에 대해서도 관심이 컸다. 얼마 전에 딸이 출산(出産)을 했는데, 손자를 처음 만나서는 “나중에 커서 연금을 잘 내도록 해라”고 말을 했단다. 불과 반 년 만에 그가 완벽하게 ‘공단 수장’으로서의 삶에 익숙해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인구의 고령화와 저출산은 사실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선진 일류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죠. 노후소득 보장의 핵심 제도인 국민연금의 재정안정 측면에서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시기를 앞둔 노후대비 차원에서도 범국가적인 대처 방안이 꼭 필요합니다. 국민연금은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장기 재정안정화를 위한 제도 개혁을 실시했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서 기금을 내야 할 자원이 많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해외에서 벤치마킹을 하고 있는 기금이 있나요.
“각자의 목적과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효율성을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네덜란드의 ‘APG’와 캐나다의 ‘CCPIB’와 같은 연·기금 운용기관은 국민연금기금이 참고할 만한 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나라의 연·기금과는 전략적 제휴를 하고 상호간 투자 노하우를 교환하고 있습니다. 참, 꼭 해야 할 얘기가 있어요. 국민연금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해서 지급됩니다.”
―매년 지급액이 달라지는 겁니까.
“네. 일반 사보험이 절대 따라올 수 없는 국민연금의 장점입니다. 연금 지급액의 실질가치가 보장된다는 점이죠. 국민연금은 매년 4월마다 전년도 전국소비자물가 변동률만큼 연금 지급액을 높여요. 현재 연금을 받고 있는 약 260만명의 연금 수령액이 지난 4월에 2.8% 인상됐습니다. 배우자, 자녀, 부모 등 부양가족이 있으면 추가로 받는 가족수당 성격의 부양가족연금액도 같이 올라요.”
국민연금에 대해 한 가지라도 더 설명을 하려는 듯, 전광우 이사장의 목소리가 조금 빨라졌다.
“국민연금에는 유가족에게 주는 유족연금이 있습니다. 가입자 또는 가입자였던 사람이 사망을 한 경우 등에 그 유족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지급하는 연금이죠. 만약에 사업장 가입자로 되어 있는 직장인이라면, 퇴사를 해도 걱정하지 마세요. 퇴사 후에 소득이 없으면 예외신청을 해서 연금을 내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소득이 없는데 무조건 보험료를 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연금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국민들에게 유리한 제도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관료사회의 문턱 앞에 번번이 좌절해 별명이 ‘만년 행장 후보’
국민연금공단은 이외에도 복지사업을 하고 있다. 가입자들에게 실질적인 복지 혜택을 제공하고자, 충북 제천에 종합휴양시설 ‘청풍리조트’를 세웠다. 또 지역 주민들을 위한 대민(對民) 서비스는 물론 금융기관, 스포츠센터 등 국민연금회관을 만들었고, 노인복지시설도 확충했다.
전광우 이사장은 긴 시간 동안 편안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기자가 이해를 잘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학생에게 강의를 하듯이 펜을 들고 그림을 그려 가며 설명을 했다. 아직은 영어가 익숙한 듯이, 몇몇 경영학적 용어는 영어를 섞어 가며 보충 설명을 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싶었다.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 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를 받은 그는 꽤 오랫동안 미국 생활을 했다. 미국의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메릴린치, 세계은행 등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다가 IMF 때 국내로 돌아왔다. 이후 연세대와 이화여대 겸임교수, 우리금융그룹지주 부회장, 금융발전심의회위원, 딜로이트그룹 부회장 등을 맡았다가 지난 2008년에 금융위원회 위원장(장관급)으로 임명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금융위원장에 관료가 아닌 민간인이 임명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의 ‘발탁’에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랐다. 국내와 해외를 아우르는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전광우 이사장은 금융기관장 경선에서 여러 번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은행장과 공기업 사장이 공석일 때마다 그는 후보자로 거론됐었다. 하지만 한국의 높은 관료사회 문턱은 그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료 출신에게 밀렸고, 관료 출신이 미는 후보에게 밀렸다. 오죽하면 그의 이름 앞에 ‘만년 은행장 후보’ 라는 타이틀이 붙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금융위원장에 이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자리에까지 오른 것이다.
취임 직후 파격적인 인사로 노조와 마찰
전광우 이사장은 “어려운 길인 줄 알면서 왔다”고 했다.
“국민연금공단은 고령사회를 대비하는 핵심 제도를 운영하는 기관이고, 300조원에 가까운 세계 4대 기금을 보유한 곳입니다. 기금의 규모는 물론이고, 무거운 책임감이 요구되는 자리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장관직보다도 훨씬 중요한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산을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기금 운용의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동안 쌓아 온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실제로 전광우 이사장은 공단 수장을 맡은 후에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해 연말에 직급파괴 보직인사를 단행했다.
지난해 말에 국민연금공단 지사장 및 센터장 98명 중 65명을 교체했다. 이 중 10명은 직급에 상관없이 지사장급의 직을 부여했고, 조직운영 성과가 저조한 지사장 등 14명은 보직을 강등시켰다. 내부 공모를 통해 14개 주요 직위에 대한 적임자를 선발하기도 했다. 인사 드래프트제 및 성과부진자 관리 프로그램 등 역량 중심의 인사제도 개선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에는 간부들과 경영현안 토론회를 실시하고 있다.
그의 개혁 때문에 공단 노조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단호했다.
전광우 이사장의 얘기다.
“공공기관을 선진화하는 목적은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일을 하자는 차원에서입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일을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무임승차를 하는 직원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물론 대다수의 공단 직원이 열심히 일을 수행하고 있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한번 보십시오. 공공기관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업무를 해야 합니다. 현장경영을 통해 선진화 필요성을 전파하고 있죠. 생산적 노사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때라고 봅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요.
“공단의 규모에 걸맞은 위상을 세우고, 투자전략을 실천에 옮기는 데 주력할 예정입니다. 해외투자 비중을 늘린다고 하면서도, 국민연금 해외지사가 하나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해당 부서의 예산을 받아 이를 검토할 것이고요. 기금운용과 기금지급이라는 두 개의 다른 기능적 조직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루아침에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빠른 길보다는 바른 길, 정도(正道)를 걷고자 했던 이사장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사진 : 서경리
<정리=李彩炫 月刊朝鮮 인턴기자>
그의 말투는 단호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기자는 방금 ‘매달 월급에서 국민연금이 자동으로 빠져나가는데 나중에 돌려받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수장(首長)은 이런 당돌한(?) 질문에 당황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반격했다.
“연금 수급(受給)에 여전히 의구심이 많더라고요. 우리가 국민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를 대국민 신뢰 제고를 위한 원년(元年)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지난 7월부터 국민 모두가 국민연금과 함께 걱정 없는 노후를 준비하도록 하기 위한 ‘내 연금 갖기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에 들어 있지 않은 분들께 연금 제도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알려서 가입토록 하려고요.”
―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가질까요.
“급격한 저(低)출산과 고령화 시대를 맞아 이런 의문은 계속 갖는 것이라고 봅니다. 막연하게나마 ‘내가 연금을 받을 때까지 과연 기금이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일말의 불신(不信)을 말끔하게 해소해 드리겠습니다. 국민연금은 현재의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2060년까지 기금이 유지됩니다. 2060년이 지나야 기금이 소진되기 시작합니다.”
―40~50대(代)의 직장인들은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군요.
“그럼요. 저희가 기금이 소진돼 연금이 지급되지 않는 사태를 그냥 바라만 보고 있겠습니까? 기금을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국가의 공적(公的)연금 재정상태와 비교할 때 양호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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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의 안전성을 알리는 국민연금 홍보포스터(왼쪽)와 전단. |
1862만명 가입, 연금 수급자 300만명
전광우(全光宇)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은 조금 답답하다는 듯이 책상 앞에 놓인 메모지를 끌어당겼다. 펜으로 그림을 그려 설명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교수님’이었다.
“우리가 기금의 운용수익률을 연간 1%씩 올리면 기금의 고갈 시기를 9년 늦출 수 있습니다. 2060년이 아니라 2069년까지 기금이 남아 있는 것이죠. 만약 연간 수익률이 2%씩 높아진다면 현재의 낮은 출산율을 유지하더라도 연금 수급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주식을 해서 돈을 벌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는데, 매년 수익률이 높아지는 것이 말처럼 쉬운가요.
“물론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공단 내·외부에서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몇 년 안에 기금이 고갈되고, 내 차례까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국민들이 꼬박꼬박 내고 있는 연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이 많은가요.
“지난해 연말을 기준으로 1862만명이 국민연금에 가입했고, 오는 9월이면 연금 수급자가 300만명을 돌파합니다. 부부가 합산해서 한 달에 200만원 이상을 받는 가계도 있습니다. 그것 보세요. 우리 국민연금이 아직 국민들에게 정확히 홍보가 안되어 있다니까요(웃음).”
하긴 국민연금공단이 발족된 지 어느덧 스물세 해째를 맞고 있다.
정부는 1987년 10월, 국민이 나이가 들어 생업(生業)에 종사할 수 없을 때나 불의의 사고로 장해를 입었을 때, 또는 사망시에 국민들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 산하에 국민연금공단을 설립해 연금을 관리토록 했다.
1988년 1월, 처음 이 제도를 시행할 때에는 상시 근로자가 ‘10인 이상’인 직장만을 대상으로 했다. 이후 확대를 거듭해 현재에는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만 18~60세 미만의 전(全) 국민이 가입할 수 있다. 다른 공적연금에 가입해 있는 공무원, 직업군인, 사립학교 교직원 및 별정우체국 직원은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없다. 지난해 12월 말을 기준으로, 총 1862만명이 국민연금에 가입했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업종별로 사업장가입자, 지역가입자, 임의가입자, 임의계속가입자로 나뉜다. 이 중 ‘임의가입자’는 전업주부와 같이 가입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사람들이다.
국민연금공단 측은 최근 들어 임의가입자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2008년 말에 2만7614명이던 임의가입자는 2009년 말에 3만6366명, 지난 5월 말에는 4만4252명으로 늘었다. 한 달에 약 1000명씩 새로 가입한 꼴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우수성을 국민들이 알아 가고 있다는 증거”라며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는 트렌드를 조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는 9월에 기금 300조원 돌파 예정
현재 국민연금공단은 8실 1단 2센터, 기금운용본부 등 본부에 91개의 지사, 약 5000명의 직원으로 구성돼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의 이력관리, 연금보험료 징수, 연금급여 지급, 기금운용, 복지사업 실사 등이 주요 업무다. 공단 운영의 중요한 사항은 이사회를 통해 심의한다. 이사회는 이사장과 상임이사 3명, 비상임이사 7명 등 총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12월에 선임된 전광우씨가 공단을 이끌고 있다. 전 이사장은 ‘국제 금융통’이다. 1980년대 초에 이미 미국의 미시간주립대학에서 교수로 지냈고, 이후 15년 동안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약했다. IMF로 어려움을 겪던 시절,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귀국해 경제부총리 특보와 국제금융센터 소장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제1대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던 그가 공단의 새로운 선장이 된 것이다.
탁월한 국제감각을 갖춘 사람을 수장으로 앉혔다는 점에서 오늘날 국민연금공단이 차지하는 위상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전세계의 연·기금 중에서 네 번째로 규모가 크다.
어느새 ‘성인(成人)’으로 훌쩍 자란 국민연금의 기금은 5월 말 현재 292조원. 올해 우리나라의 전체 국가 예산은 292조8159억원이다. 국가의 한 해 예산에 버금가는 돈이 모인 것이다. 오는 9월에는 기금이 300조원을 돌파할 예정이다.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신생(新生) 연·기금이라 아직은 이 정도에 불과하지만, 2014년 말(末)에는 430조원, 2043년에는 기금이 24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 금융 시장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기관투자가다.
국민연금공단은 조금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다.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기금을 운용하는 업무와, 기금을 가입자에게 지급하는 업무로 나뉘어 있다. 기금을 운용하는 부서는 공격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반면 연금지급을 실행하는 부서는 보수적이고, 정해진 규정에 맞춰 정적(靜的)으로 움직여야 하는 부서다. 어떻게 보면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가지 업무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곳이 공단이다.
전광우 이사장은 “공단은 두 개의 엔진으로 가는 배”라고 했다.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의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입니다. 기금 운용 부서는 차가운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해야 하고, 또 제도를 실행하는 부서는 국민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업무를 봐야 하는 곳입니다. 이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하루에도 냉탕과 온탕을 수십 번씩 왔다갔다 합니다(웃음).”
많은 사람의 관심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방법’이다. 앞서 말했듯이 수백조 원대의 돈을 어떻게 굴려, 얼마만큼의 수익을 내느냐에 따라 향후 얼마나 오랫동안 기금이 고갈되지 않느냐가 결정된다.
기금운용은 보건복지부 산하의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라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에서 결정된다. 이 위원회에서 자산운용 전문가 100여 명이 기금운용을 심의하고, 의결한다. 이들의 의결사항은 ‘기금운용본부’에서 시행되는데, 운용내역은 매년 국회에 보고된다.
2009년 최고의 수익률 기록
국민연금에는 희소식이 있었다. 매년 평균 5%대였던 연금의 수익률이 지난 2009년에 훌쩍 뛰어오른 것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1988년부터 2009년까지 총 328조700억원이 조성됐고, 51조1000억원이 연금급여 등으로 지출됐다. 기금적립금은 277조6000억원이었는데, 연도별 수익률이 5%대에 불과했다.
공단은 기금을 금융부문(주식·채권·대체투자 등)에 투자해서 지난 2005년에 8조2000억원(수익률 5.63%)을 벌었다. 2006년에는 10조1000억원(수익률 5.77%), 2007년에는 13조8000억원(수익률 6.79%)을 벌었다가, 2008년에는 4000억원(수익률 마이너스 0.18%)을 손해봤다. 그랬는데 2009년에는 26조2000억원(수익률 10.39%)을 벌었다. 이와 같은 추세라면, 연금이 고갈되는 것이 한참 늦춰질 수 있다.
전광우 이사장은 “국민의 노후자산을 잘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기금 운용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글로벌 운용 역량을 갖추는 것이 절실하다”고 했다.
―기금 운용계획을 수립할 때 어떤 과정을 거칩니까.
“자산별 기대수익률과 위험을 분석하고, 기금의 실질가치를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증식을 달성할 수 있는 목표수익률을 세웁니다. 일반적인 금융시장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에서부터 기금이 감내할 수 있는 위험한도 등을 사전에 설정하죠. 이후에 적절한 기금 포트폴리오를 확정합니다.”
“연금의 해외투자 비중 계속 늘려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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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이 해외투자 차원에서 구입한 호주 시드니의 업무용 빌딩. |
“최근에 기금운용위원회가 결정한 장기 포트폴리오상으로는 국내외 주식이 30% 이상, 채권 60% 미만, 대체투자 10% 이상입니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해외 투자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보도를 봤습니다만.
“국내 채권에 주로 투자했는데, 이 정도를 벌어서는 연금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기금의 규모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 투자에 변화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해외투자 확대는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국민연금은 2001년에 해외에 일부 투자를 시작해서 해외 채권, 주식, 대체투자로 해외 투자를 다변화하면서 투자금액을 확대해 왔습니다.”
―이를 잘 운용할 수 있는 인력은 있습니까.
“해외투자 확대를 위해 2006년에 각 팀에 흩어져 있던 해외투자 인력을 모아 해외투자 전담팀을 신설했습니다. 2007년에는 이 조직을 해외투자실로 격상시켰고, 역량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직원 5000명 중에서 130여 명이 기금을 운용하고 있는데, 해외투자, 주식투자에 더욱 매진해 투자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 이사장은 “하지만 노후생활 안정을 위한 책임준비금이기 때문에 안전성이 중요하다”며 “안전성을 바탕으로 한 수익성 추구를 기금 운용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지난 2010년 5월을 기준으로, 국민연금은 해외에 총 32조4000억원을 투자했다. 전체 기금의 11.1% 수준이다. 2015년 말에는 전체 자산의 20% 이상을 해외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것이 생겼다. 국민연금공단은 준정부기관이고, 그렇다면 직원들이 준공무원 신분이다. 과연 이들이 사기업에 몸담은 사람처럼 기금운용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까.
전광우 이사장의 얘기다.
“기금운용 파트는 금융시장에 대해 친화적인 사람이 맡아야 하는 업무입니다. 기금의 수익률에 따라서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어떠냐는 얘기를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민간기업처럼 무리하게 투자하도록 유인(誘引)을 하면 안정성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사태를 보면 알 수 있죠. 하지만 무리하지 않은 보상체계라 해도 보상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무리한 투자보상 체계는 맞지 않지만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연금의 기금운용과 제도운용을 나누어 운영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습니다.”
기금운용 부서 독립방안 국회에 상정
―전 이사장은 어떤 입장이십니까.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금운용본부를 공사(公社)로 독립화하더라도, 민간회사처럼 운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이 기금은 공공성을 가진 국민의 돈이니까요. 제가 국제금융 전문가이다 보니까 두 조직을 떼내는 일에 적합해서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모양입니다. 제 생각은 ‘한지붕 밑에서 병립할 수 있다’는 쪽입니다. 가령 삼성생명과 같은 생명보험사를 한번 보십시오. 보험회사가 자산운용 업무를 떼내서 별도로 하지는 않잖습니까. 노사관계가 합리적으로 정착이 된다면 두 개의 상반된 기능이 한 조직 내에서 원활히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기자는 월급명세서를 받을 때마다 국민연금이 과하게 부과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해외의 사례와 비교하자면 그렇지도 않단다.
국민연금공단 측의 설명에 따르면, 연금보험료는 기준소득월액에 보험료율을 곱해서 산정한다. 현행 연금보험료율은 소득의 9% 수준. 연금제도가 오래 전부터 시행된 선진국의 경우는 우리보다 보험료가 높다. 독일은 전체 소득의 19.9%, 프랑스 16.65%, 미국 12.4%, 일본 15.4%를 뗀다.
이렇게 돈을 내서 언제부터 받을 수 있는걸까. 국민연금의 기초가 되는 ‘노령연금’을 기초로 보면 이렇다. 연금보험료 납부 기간이 10년 이상이면 만 60세 이후부터 평생 동안 매월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지급연령이 2013년부터는 5년마다 1세씩 연장돼 2033년부터는 만 65세부터 지급받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1953~56년생은 만 61세, 1957~60년생은 만 62세, 1961~64년생은 만 63세, 1965~68년생은 만 64세, 1969년생 이후는 만 65세부터 연금을 받는다.
20년 이상 가입자, 月 평균 75만원 수령
올해부터는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본격적으로 은퇴를 하기 시작한다.
전광우 이사장의 얘기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시작하면서 국민연금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들 세대는 약 712만명으로 추산되는데 대부분이 국민연금을 납부한 이력이 있거든요.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507만명이 연금을 냈고, 37%(188만명)는 10년 이상 냈습니다. 20년 이상 연금을 낸 사람도 53만명에 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가 사회에 미치는 충격은 클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연금이 이들에게 연금을 지급함으로써, 이로 인한 충격이 상당히 완화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연금에 가입하고 싶었는데 수입이 적어서 못한 사람들도 있죠.
“아, 그게 참 아쉬워요. 영세 가입자의 경우에는 보험료의 일부를 국고에서 지원해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우리 공단도 보다 많은 사람이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다각도로 노력할 겁니다. 대국민 신뢰를 제고해서 많은 분을 국민연금에 가입시키고, 또 연금수급권 보장을 두껍게 하기 위한 운동이 바로 ‘내연금 갖기- 평생월급 국민연금’ 캠페인입니다.”
국민연금공단 측의 자료에 따르면, 가입기간이 최소 10년인 사람은 누구나 국민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꼬박 10년을 납부한 사람은 월 평균 25만2900원, 15년 납부자는 월평균 49만원, 20년 이상 납부자는 월평균 77만원을 받는다. 이는 평균치일 뿐이고, 개중에는 100만원 이상씩을 받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공단 측의 설명이다. 국민연금공단은 국내 증시의 ‘큰손’이다. 이들이 돈을 투자하고, 회수하는 것에 대해 한 회사의 주가(株價)가 출렁거린다. 국민연금이 5%의 지분을 확보한 곳이 무려 94개사(社)다.
2010년 3월을 기준으로, 공단은 KB금융지주 주식 4.98%(1924만8845주), 하나금융지주 7.57%(1604만5922주), KT 7.69%(2008만9288주), 삼성물산 보통주 5.62%(877만4953주), LG화학 5.21%(345만4947주) 등을 보유하고 있다. 주식을 보유한 기업에 대해 주주(株主)로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공적 성격을 가진 기금이라는 특성 때문에 적극적인 주권 행사를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 수장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금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수탁자로서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국민연금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공정하고 투명한 주주권을 행사하는 방안을 연구 중에 있습니다. 오는 8월 말에 이 방안이 완료되면 공청회 등을 통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입니다.”
―가령 투자한 회사 등에 사외이사를 파견해 이사회의 일원으로 참여시킬 건가요.
“의결권 행사 등 전문위원회에서 심층적으로 논의를 해야겠죠.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주주권을 행사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사외이사 추천을 포함해 다양한 주주권 행사 방안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은행 대주주로서 은행 간의 합병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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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위원장 시절 기자간담회를 하는 전광우 이사장. |
“은행 간의 합병은 현재로서는 득(得)보다 실(失)이 큰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요.
“합병 주체인 인수은행 입장에서 보죠. 합병을 통해서 은행의 경쟁력이 개선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이슈입니다. 은행 간의 합병을 통해 생산성과 수익성 등 시너지가 창출되어야 하는 겁니다. 상당한 구조조정이 수반되지 않으면 합병의 효과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체력이 중요하지, 체중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구조조정 없는 은행 간의 합병은 합병 주체인 인수은행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않죠.”
―국민연금과 같은 투자자 입장에서는 어떻습니까.
“투자자들은 합병을 통해 투자가치가 높아지는지의 여부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요즘의 추세를 보자면 합병 추진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거시적 측면에서는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이 문제입니다. 이번에 미국발(發) 글로벌 위기를 거치면서, 전세계는 한 가지 사실을 되새겼습니다. 은행의 규모가 커지면 금융 시스템의 위험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이죠. 최근의 세계적인 추세는 은행의 사이즈를 오히려 줄이고, 작은 규모로 우량의 은행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은행의 합병은 득보다 실이 크죠. 경영층이 매우 신중하게 이 이슈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가상승률 반영해서 연금 지급
그의 은행 합병에 대한 생각은 굉장히 확고해 보였다.
그는 인구의 고령화와 저출산에 대해서도 관심이 컸다. 얼마 전에 딸이 출산(出産)을 했는데, 손자를 처음 만나서는 “나중에 커서 연금을 잘 내도록 해라”고 말을 했단다. 불과 반 년 만에 그가 완벽하게 ‘공단 수장’으로서의 삶에 익숙해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인구의 고령화와 저출산은 사실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선진 일류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죠. 노후소득 보장의 핵심 제도인 국민연금의 재정안정 측면에서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시기를 앞둔 노후대비 차원에서도 범국가적인 대처 방안이 꼭 필요합니다. 국민연금은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장기 재정안정화를 위한 제도 개혁을 실시했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서 기금을 내야 할 자원이 많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해외에서 벤치마킹을 하고 있는 기금이 있나요.
“각자의 목적과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효율성을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네덜란드의 ‘APG’와 캐나다의 ‘CCPIB’와 같은 연·기금 운용기관은 국민연금기금이 참고할 만한 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나라의 연·기금과는 전략적 제휴를 하고 상호간 투자 노하우를 교환하고 있습니다. 참, 꼭 해야 할 얘기가 있어요. 국민연금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해서 지급됩니다.”
―매년 지급액이 달라지는 겁니까.
“네. 일반 사보험이 절대 따라올 수 없는 국민연금의 장점입니다. 연금 지급액의 실질가치가 보장된다는 점이죠. 국민연금은 매년 4월마다 전년도 전국소비자물가 변동률만큼 연금 지급액을 높여요. 현재 연금을 받고 있는 약 260만명의 연금 수령액이 지난 4월에 2.8% 인상됐습니다. 배우자, 자녀, 부모 등 부양가족이 있으면 추가로 받는 가족수당 성격의 부양가족연금액도 같이 올라요.”
국민연금에 대해 한 가지라도 더 설명을 하려는 듯, 전광우 이사장의 목소리가 조금 빨라졌다.
“국민연금에는 유가족에게 주는 유족연금이 있습니다. 가입자 또는 가입자였던 사람이 사망을 한 경우 등에 그 유족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지급하는 연금이죠. 만약에 사업장 가입자로 되어 있는 직장인이라면, 퇴사를 해도 걱정하지 마세요. 퇴사 후에 소득이 없으면 예외신청을 해서 연금을 내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소득이 없는데 무조건 보험료를 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연금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국민들에게 유리한 제도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관료사회의 문턱 앞에 번번이 좌절해 별명이 ‘만년 행장 후보’
국민연금공단은 이외에도 복지사업을 하고 있다. 가입자들에게 실질적인 복지 혜택을 제공하고자, 충북 제천에 종합휴양시설 ‘청풍리조트’를 세웠다. 또 지역 주민들을 위한 대민(對民) 서비스는 물론 금융기관, 스포츠센터 등 국민연금회관을 만들었고, 노인복지시설도 확충했다.
전광우 이사장은 긴 시간 동안 편안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기자가 이해를 잘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학생에게 강의를 하듯이 펜을 들고 그림을 그려 가며 설명을 했다. 아직은 영어가 익숙한 듯이, 몇몇 경영학적 용어는 영어를 섞어 가며 보충 설명을 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싶었다.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 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를 받은 그는 꽤 오랫동안 미국 생활을 했다. 미국의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메릴린치, 세계은행 등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다가 IMF 때 국내로 돌아왔다. 이후 연세대와 이화여대 겸임교수, 우리금융그룹지주 부회장, 금융발전심의회위원, 딜로이트그룹 부회장 등을 맡았다가 지난 2008년에 금융위원회 위원장(장관급)으로 임명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금융위원장에 관료가 아닌 민간인이 임명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의 ‘발탁’에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랐다. 국내와 해외를 아우르는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전광우 이사장은 금융기관장 경선에서 여러 번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은행장과 공기업 사장이 공석일 때마다 그는 후보자로 거론됐었다. 하지만 한국의 높은 관료사회 문턱은 그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료 출신에게 밀렸고, 관료 출신이 미는 후보에게 밀렸다. 오죽하면 그의 이름 앞에 ‘만년 은행장 후보’ 라는 타이틀이 붙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금융위원장에 이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자리에까지 오른 것이다.
취임 직후 파격적인 인사로 노조와 마찰
전광우 이사장은 “어려운 길인 줄 알면서 왔다”고 했다.
“국민연금공단은 고령사회를 대비하는 핵심 제도를 운영하는 기관이고, 300조원에 가까운 세계 4대 기금을 보유한 곳입니다. 기금의 규모는 물론이고, 무거운 책임감이 요구되는 자리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장관직보다도 훨씬 중요한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산을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기금 운용의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동안 쌓아 온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실제로 전광우 이사장은 공단 수장을 맡은 후에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해 연말에 직급파괴 보직인사를 단행했다.
지난해 말에 국민연금공단 지사장 및 센터장 98명 중 65명을 교체했다. 이 중 10명은 직급에 상관없이 지사장급의 직을 부여했고, 조직운영 성과가 저조한 지사장 등 14명은 보직을 강등시켰다. 내부 공모를 통해 14개 주요 직위에 대한 적임자를 선발하기도 했다. 인사 드래프트제 및 성과부진자 관리 프로그램 등 역량 중심의 인사제도 개선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에는 간부들과 경영현안 토론회를 실시하고 있다.
그의 개혁 때문에 공단 노조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단호했다.
전광우 이사장의 얘기다.
“공공기관을 선진화하는 목적은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일을 하자는 차원에서입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일을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무임승차를 하는 직원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물론 대다수의 공단 직원이 열심히 일을 수행하고 있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한번 보십시오. 공공기관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업무를 해야 합니다. 현장경영을 통해 선진화 필요성을 전파하고 있죠. 생산적 노사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때라고 봅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요.
“공단의 규모에 걸맞은 위상을 세우고, 투자전략을 실천에 옮기는 데 주력할 예정입니다. 해외투자 비중을 늘린다고 하면서도, 국민연금 해외지사가 하나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해당 부서의 예산을 받아 이를 검토할 것이고요. 기금운용과 기금지급이라는 두 개의 다른 기능적 조직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루아침에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빠른 길보다는 바른 길, 정도(正道)를 걷고자 했던 이사장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사진 : 서경리
<정리=李彩炫 月刊朝鮮 인턴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