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信·經 분리에 신경 집중한 崔圓炳 농협중앙회장 : 월간조선

“내가 무사히 4년 임기 마치고 고향 안강의 손자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최원병(崔圓炳) 농협중앙회장이 2007년 12월 취임 당시 직원들에게 당부한 말이다. 이전 회장들의 연이은 불명예 퇴직으로 추락한 농협의 대(對)국민 이미지를 정도(正道)경영과 투명경영으로 개선하겠다는 개혁 의지의 완곡한 표현이었다.

시작은 느긋하고 부드러웠으나 실천은 빠르고 저돌적이었다. 최 회장은 취임 직후인 2008년 1월부터 3월까지 전국을 누비며 지역 조합장들을 만났다. 농협 개혁 방향에 대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기 위해서였다. 곧이어 지역 조합장, 농민단체, 교수, 언론인이 참여하는 농협개혁위원회가 구성됐고, 위원회 가동 6개월 만에 구체적인 개혁 과제와 경영 쇄신 방안을 마련했다.

2009년 1월 농협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농협을 농업인에게 돌려주기 위한 농협 개혁 방안’이 그 결과물이다. ‘경제사업과 금융을 분리하는 사업구조 개편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한 뒤 그 성과를 농업인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구조조정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NH투자선물, 농협사료, NH무역, 농협물류 등 4개 계열사 대표를 공모를 통해 외부 전문가로 채웠고, 중앙회에 자회사 감사팀을 만드는 등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또한 중앙회 집행간부(상무급) 4명을 줄이고, 팀장급 이상의 연봉을 10% 이상 삭감하는 등 인건비도 대폭 감축했다.

신·경(信經) 분리가 핵심인 사업구조 개편은 몇몇 쟁점 때문에 정부와 농협이 신경을 곤두세운 가운데 조율 중이다. 정부는 농협의 경제사업과 금융을 2012년까지 각각의 지주회사로 분리하라는 입장이고, 중앙회는 그럴 경우 자본금 분할로 자기자본 비율이 낮아지니 부족자본 6조원가량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이를 이해하고 부족자본금을 지원한다는 방침이지만 중앙회는 언제 어떻게 얼마를 지원할 것인지 구체적인 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강력한 구조조정과 그로 인한 일부 지역농협 조합원들의 반발, 사업구조 개편을 놓고 벌이는 정부와의 줄다리기 등으로 농협중앙회는 지난 2년 동안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50년 농협 역사 이래 가장 큰 변혁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이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최원병 중앙회장을 만났다. 농협 관계자는 “농민신문 외의 언론과 갖는 인터뷰는 <월간조선>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역 조합장 6選의 비결

농협이 운영하는 농기계은행은 중고 농기계를 농민들로부터 구입, 저렴하게 임대해 주는 사업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사업에 1조원을 투입해 확대할 것을 지시했다.

―취임 2년이 지났는데, 언론과의 공식 인터뷰는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특별히 자랑할 만큼 내세울 것도 없지만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운 때라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인터뷰 요청을 다 거절해 왔습니다. 너무 튀면 잘못한 것이 없는 데도 나쁘게 이해할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해서요.”

지난 몇 년에 걸쳐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좋은 일이 있어도 함부로 자랑할 수 없는 농협의 입장이 그의 목소리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6선(選) 조합장 출신답게 신중하면서도 우직한 목소리를 냈다. 지역 조합장 시절 이야기부터 들었다. 그는 1986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21년 동안 안강농협을 이끌었다.

―지역 농협 조합장을 오래한 비결이라도 있나요.

“선거 조직이 아닌 작목별 조직 관리를 잘한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합원들에게는 농가 소득을 올려주는 리더가 최고지요. 지역에 잘 맞는 작목을 고르고,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전문조직을 육성하니 농가 소득이 높아져 조합이 살더군요. 이 조직이 나를 따르니 따로 선거 운동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조합장 시절 그가 안강에서 집중 육성한 작목은 찰토마토였다. 그는 고품질 토마토를 생산하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재배 기술을 지도하고 판로 개척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경매식 집하장을 지어 밤새워 경매를 하고 전국 도시를 찾아다니며 시장을 개척했다. 그 결과 이 지역에서 생산한 토마토는 ‘안강 찰토마토’로 불리는 명품 효자 농산물이 됐다.

그는 이외에도 친환경 쌀 재배단지를 조성하고, 과수 농가를 위해 저온저장고와 퇴비제조장을 건립하는 등 조합원들의 편익과 소득 증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조합장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부터 전국적으로 조합장 선거가 실시되고 있는데, 여전히 불법·금품 선거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명선거를 위해 중앙회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작년 1월부터 조합장선거 전담기구인 ‘조합장선거 관리사무국’을 설치 운영하며 공명선거 정착과 효율적인 조합 선거 업무를 강화해 왔습니다. 또한 중앙회에서는 부정선거 등 사회적 물의로 농협의 대외적인 공신력을 실추시킨 조합에 대해 별도의 심의회 의결을 거쳐 자금 지원 제한 등 강력히 제재하고 있지요. 특히 일부 조합의 불법·금품선거와 관련해서는 이를 근본적으로 근절시키기 위해 농식품부·법무부 등 정부기관과 학계·농민단체 등 관계기관 단체를 총망라한 ‘조합공명선거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지역에서 조합장은 권력이라 할 만큼 이권이 큰가요.

“최근 모 언론에 조합장이라는 자리가 무슨 대단한 권력과 이권이 있는 것처럼 보도됐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조합장 연봉은 조합의 순익에 따라 배당되기 때문에 천차만별이죠. 연봉 1억원이 넘는 조합장이 있는가 하면 3000만원도 안되는 조합장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7500만원을 받았어요. 이 돈으로 생활은 물론 찾아오는 손님들 밥도 사고, 술도 사고 했죠. 조합장은 면장, 파출소장, 농업인 단체, NGO 등을 모두 상전으로 모셔야 하는, 지위가 그리 높지 않은 자리입니다. 농업인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봉사해야 하는 자리죠.”

대통령 “모범적으로 하라” 격려

최원병 회장은 포항 동지상고 출신으로 이명박(李明博) 대통령의 후배다. 지난 선거에서 전국의 조합장들이 그를 지지한 것은 이런 출신 배경도 영향을 미쳤을 법하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알고 지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자주 만납니까.

“어쩌다 행사 있을 때 현장에서 겨우 얼굴 뵈는 정도지요.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아는 척도 못하고 그냥 고개만 숙일 뿐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제 얼굴이 보이면 다가와 ‘절대 금품 제공받지 말고 열심히 하라, 모범적으로 하라’고 격려하시곤 하죠. 그 외에 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십니다.”

―대통령도 농협 개혁에 관심이 많죠.

“그렇습니다. 대통령께서 장관들과 회의하면서 ‘농협처럼 개혁 운동을 과감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만큼 애정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말라는 뜻이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최 회장이 취임한 지 1년이 되던 2008년 12월 서울 가락시장을 방문하던 중 농협을 강하게 질타하는 발언을 했다. 대통령은 이날 “농협이 금융하고 뭐해서 돈을 몇조 원씩 벌고 있는데 번 돈을 농민들에게 돌려줘라”고 했고, 세종증권 인수 비리를 염두에 둔 듯 “농협이 벌어서 사고나 치고 말이야”라며 “농협이 1조원 투자해서 농가 부채의 원인인 농기계를 사들인 후 저렴하게 임대해 주는 농기계은행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협의 농기계은행 사업은 농협이 농기계를 구입하여 농업인에게 임대해 주거나 직접 농작업을 대행해 주는 사업이다. 고령농 증가로 부족한 농촌 일손을 돕고, 고가(高價)의 농기계 구입으로 늘어만 가는 농가 부채를 줄여 보자는 취지에서 2008년 10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농협은 지난해 말까지 중고 농기계 1만6000대(3000억원)를 농업인들에게 매입하여 농가 부채를 줄이는 데 큰 몫을 했다. 최 회장은 “2012년까지 총 1조원의 자체자금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가락동 발언 파장이 상당히 컸는데, 당시 마음고생 좀 했겠습니다.

“당시만 해도 대통령께서는 밑에서 올라오는 보고서와 매스컴을 통해서만 농협을 파악하고 계셨어요. 그러다 보니 농협의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측면을 더 많이 접하신 것 같습니다. 후에 농촌 현장을 돌며 농민들을 직접 대면하면서 농협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지셨죠. 이후로는 ‘농촌이 제대로 갈 수 있도록 만들어라. 어쨌든 농촌이 어려우니까 내 임기 내에 장관과 농협중앙회장이 앞서서 변화시켜라. 정부는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격려하시곤 했습니다. 그 말씀에 감동받아 ‘정말 제대로 해야겠다. 정부가 돕고자 할 때 우리 스스로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부족자본 6조원 정부가 출연해야

작년 12월 8일 서울 은평구 구산동 시립 평화의 집을 방문, 중증 장애인들에게 봉사하고 있는 최원병 회장.

정부나 농협이 생각하는 농협 변화의 골자는 농협법 개정을 통한 사업구조 개편이다. 사실 농협의 사업구조 개편 문제는 농협의 비자금 사건이나 일부 인사들의 금품 비리가 터질 때마다 거론되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현안으로 떠오른 ‘뜨거운 감자’였다. 그럼에도 섣불리 손을 대지 못한 것은 농협이 100% 조합원들의 출자로 설립된 조직이고, 농업인과 농촌의 실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사업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농협의 사업구조 개편은 농업인과 농촌의 실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점에서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은데, 농협 입장에서도 이번에는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고 보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유통은 점점 대형화되고 있고, 금융은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이 같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면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각 사업 부문의 역량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경제사업은 그동안의 지원 중심 사업 방식에서 탈피해 농산물 유통 인프라에 과감하게 투자해 산지와 소비지를 연계하는 경쟁력 있는 농협 농산물 유통경로를 구축할 계획이고, 신용사업은 자본 건전성과 시장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수익력을 극대화할 생각입니다. 이렇게 되면 더 많은 수익을 농업인과 농촌에 환원할 수 있을 겁니다.”

―사업구조 개편을 위해서는 6조원 규모의 정부지원금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렇게 막대한 자금이 왜 필요합니까.

“우선 경제사업은 산지·소비지 사업 기반시설을 대폭 확충해야 하기 때문에 투자 재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신용사업은 지금까지 중앙회 자본금 전체를 자본금으로 인정받아 왔지만 개편 후에는 신용 부문에 배분된 자본금만으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등 규제비율을 산출·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부족자본이 발생합니다. 애초에는 2017년까지 농협이 자력(自力)으로 재원을 조달한 후 사업구조 개편을 할 계획이었는데, 그 일정이 앞당겨지면서 정부지원이 필요하게 된 것이지요.”

농협 복지재단이 서울 우이동에 건설 중인 NH장학관 조감도. 올 11월에 완공되며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한 농촌자녀 500명이 무료로 생활하게 된다.

―민간자본을 끌어들이면 되는 것 아닌가요.

“민간자본이 유입될 경우 경영 개입이나 수익 위주의 경영으로 협동조합의 정체성과 자율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습니다. 이는 농협의 설립 취지인 ‘농촌·농업인의 실익 증진’에 맞지 않지요.”

―정부의 지원 방침에 대해 구체적인 조건과 방식까지 제시해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압니다.

“그렇습니다. 부족자본을 정부지원으로 조달하는 것은 협동조합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유지하고 지원 효과가 농촌에 환원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니 지원 방식도 그 취지에 맞게 결정되어야지요. 농협이 전략적 필요에 의해 지주회사 경영체제를 도입하기는 하지만, 일반회사와는 다른 협동조합의 공동발전에 기여하는 기업이 되려면 협동조합인 중앙회가 지주회사의 지배권을 100%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때문에 정부가 (지주회사가 아닌) 중앙회에 부족자본을 지원하면 중앙회가 이를 지주회사에 지원하는 방식이 돼야 하지요. 또한 사업구조 개편의 목적을 조기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환이나 이자 부담이 없는 출연방식이어야 하고요. 향후 도입이 예정되어 있는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르면 정부지원이 출연 이외의 방식으로 이뤄질 경우 자본이 아닌 부채로 인식될 우려가 큽니다.”

농협보험 설립 문제 농민 입장에서 풀어야

서울시 중구 충정로1가에 있는 농협중앙회 본관.

―지주회사를 설립하게 되면 세금 부담도 크게 늘어날 것 같은데….

“사업구조 개편에 따라 추가적으로 부담해야 할 세금이 개편 연도에만 약 1조2000억원이고, 개편 후에도 매년 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농업인에게 지원돼야 할 이처럼 막대한 금액이 세금으로 납부되면, 사업구조 개편의 취지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조세특례를 통해 이를 해결하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지만, 세금 규모가 워낙 크고,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와의 협의도 필요한 사안이어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요. 얼마 전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를 통합해 LH공사가 설립되는 과정에서 일부 조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수천억 원의 세금 부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 같은 전철을 농협이 밟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농협보험회사 설립 문제도 뜨거운 쟁점이다. 농협은 지난 50년 동안 일반 보험사처럼 거의 모든 보험 상품을 취급해 왔다. 이 때문에 농협 측은 “보험사 설립은 기존 사업 부문을 일반 보험사 체제로 전환하는 것뿐 신규 사업은 아니다”라고 설명하지만 기존 민간보험사들은 이를 특혜라며 반발하고 있다. 농협은 모든 종목의 상품을 취급하는 일반 보험 대리점 채널을 원하고, 민간보험사들은 한정된 상품만 취급이 가능한 금융기관 대리점 채널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협보험회사를 설립하는 데 대해 민간보험사들이 특혜라며 반발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입장은 어떻습니까.

“보험업계에서는 마치 신설 농협 보험사가 기존 보험 시장을 잠식하는 것처럼 우려하고 있지만 사실 농협은 공제사업을 통해 지난 50년 동안 보험시장에 참여해 왔습니다. 이번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보험 제도권에 진입하는 것일 뿐 새로운 경쟁자는 아니에요. 그리고 농협보험이 일반 금융기관과 같은 보험 채널로 전환할 경우 농업인뿐 아니라 조합 경영에도 큰 피해가 초래될 것입니다. 가령 회원조합을 금융기관 보험 대리점으로 간주하면 농업인 안전보험, 농기계종합보험 등 주요 농업인 실익 상품의 경우 취급하기 힘들어 농업인이 필요한 보험에 가입할 수 없게 되거나 보장 수준이 떨어지는 불이익을 보게 되죠.”

최 회장은 “농협보험의 설립 문제는 단순히 보험업계의 영역 다툼 시각에서 접근하기보다는 농업인의 권익 증진과 회원조합의 건전한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을 담을 농협법 개정은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올해 4월쯤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정부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가슴앓이를 하고 있지만 과거와 달리 정부가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며 깊이 간섭하지 않았다”며 “이번에는 개혁안을 우리 스스로 도출한 뒤 정부에 건의하는 식이어서 생각보다 반발이 적었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릴 때 농촌에서 힘들게 자라서 농촌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농촌이 힘들고 어렵다는 점도 잘 알고 있지요. 대통령의 특별한 배려로 새로운 농협을 만드는 데 박차를 가할 계획입니다. (농협법이) 100% 갖춰진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초점을 맞춰 사업 분리를 하면 농민들에게 엄청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과거에는 농촌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신뢰하게 될 거예요.”

한 해 농촌자녀 장학금 400억원

―취임 후 2년여 동안 그야말로 숨 가쁘게 달려왔는데,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요.

“농협법을 바꾸는 과정에도 과거 잘못된 내용들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끊임없이 비판을 받았습니다. 과거사 때문에 농협이 사회적으로 부도덕한 조직으로 몰릴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개인적으로 보면 비판받아 마땅한 부분이 있지만 전체 조직으로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는 “농협이 그동안 좋은 일도 많이 했고, 지금도 사회 공익이 되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데 과거의 불미스런 일들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농협 자랑도 좀 하시죠.

“농협은 영농자재를 원활하게 공급하는 등 농업인·조합원의 실익 증진을 위해 하는 일이 많습니다. 비료와 사료의 경우 국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한 2008년 이후 가격을 세 번이나 낮췄습니다. 그 때문에 농협 계열사인 남해화학과 농협사료가 낸 적자가 1000억원입니다. 농협이 가격을 낮추면 일반 회사들도 낮추기 때문에 농업인들에게 돌아간 혜택은 훨씬 더 컸을 거예요.”

그는 “농촌자녀 장학금으로 올해 404억원을 지원했을 만큼 교육 사업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일례로 농협 복지재단에서는 매년 대학에 입학하는 농업인 자녀 중 300명을 선발해 대학 4년 학비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연 30억원 정도의 장학금이 나가고 있는 셈이죠. 또 올해 11월 완공을 목표로 서울 우이동에 농업인 자녀를 위한 기숙사를 건립 중이기도 합니다.”

수용 인원 500여 명 규모의 이 기숙사는 농업인 자녀 중 가정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을 선발해 무료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 회장은 “입실 학생들이 ‘우리 엄마 아빠가 농촌에 사시길 잘하셨구나, 조합원 역할을 제대로 하셨구나’라는 마음이 느껴지도록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농협은 이외에도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일반 기업들처럼 널리 홍보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원죄 의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6월 8일 오전 청와대에서 농협법 개정 공포안에 서명을 하자 참석인사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분리 후에도 신용사업이 경제사업 지원해야

―임기의 절반이 흘렀습니다. 남은 임기 동안에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중앙회 사업구조 개편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농업인과 회원조합에 더 많은 실익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조합이 지역 금융센터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제1금융권 수준으로 업무영역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조합의 신용사업은 예전부터 농촌의 고리채를 없애고, 수지가 맞지 않아 은행이 들어서지 않는 지역에서도 농업인과 도시 서민에게 양질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해 왔지요.

그런데 서민금융을 활성화하는 데 금융기관의 업무영역을 제한하고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은행이 들어서지 않는 농촌지역이라고 해서 대도시와 같은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면 농촌경제가 활성화되기 어렵지요.”

농협중앙회는 2009년 3월 기준 21개의 계열사에 임직원 1만7000명(정규직)이 근무하고 있는 거대 조직이다. 또한 전국에 포진해 있는 조합원이 240만여 명에 이른다. 농협의 사업구조 개편은 이 거대한 조직을 흔들어 재편성하는 일이다. 최원병 회장의 어깨가 무겁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그동안 경제사업에서 연 1500억~2500억원씩 낸 적자를 신용사업에서 벌어 갚아왔다”며 “지주회사가 되고 난 다음에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놓고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신용이든 경제든 모든 수익금은 농업인에게 돌리는 채널로 가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사진 : 서경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