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아들 현철씨 구속시켰던 沈在淪 전 부산고검장의 날 선 비판 : 월간조선

盧武鉉(노무현) 前(전) 대통령 일가와 李明博(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千信一(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 여권 실세까지 연루된 박연차 게이트는 무차별 금품 로비 스타일부터 과거 金泳三(김영삼) 정권 시절 발생한 한보 비리 사건과 닮았다.

당시 검찰은 정권과의 ‘조율’을 거쳐 鄭泰守(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진술한 리스트에서 뺄 것은 빼고, 처리할 순서를 정했다. 검찰은 당시 여당 실세였던 洪仁吉(홍인길) 신한국당 의원과 야당의 2인자였던 權魯甲(권노갑) 국민회의 의원의 수뢰 공개와 소환을 끝으로 수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검찰 내부 관계자의 폭로로 한보 비리 사건의 ‘몸통’을 밝히라는 여론이 들끓었고, 검찰은 결국 수사진을 교체해 현직 대통령의 아들인 金賢哲(김현철)씨까지 구속했다.

당시 온갖 外壓(외압)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댄 이가 沈在淪(심재륜·65) 전 부산고검장이다. 그는 당시 대검 중수부장을 역임하며 김현철씨를 알선수재 및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해 ‘국민의 중수부장’으로 불렸다.

항명 파동으로 면직

그는 金大中(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1월 27일 대전 법조비리사건 때 이종기 변호사로부터 전별금과 향응을 받았다는 이유로 사표를 강요받자 대검 기자실로 찾아와 ‘국민 앞에 사죄하며’란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당시 金泰政(김태정) 검찰총장과 李源性(이원성) 대검차장 등 검찰 수뇌부의 先(선) 퇴진을 요구했다.

그는 성명서에서 “그동안 검찰 총수와 수뇌부들은 권력만을 바라보고 권력의 입맛대로 사건을 처리해 왔으며 심지어 권력이 먼저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권력의 뜻을 파악해 侍女(시녀)가 되기를 자처해 왔다”며 “검찰을 정치권력의 시녀로 만든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恥部(치부)를 숨긴 채 후배 검사들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심 전 고검장은 검찰 역사상 최초의 ‘抗命(항명) 파동’으로 1999년 2월 免職(면직)됐다가 2년6개월 만인 2001년 8월 검찰 사상 초유의 ‘無補職(무보직) 고검장’으로 검찰에 돌아왔다. 이후 부산고검장으로 근무하다 2002년 1월 퇴임했다.

그는 퇴임사에서 “검찰이 인사 특혜와 권력 공유, 신분 상승을 위해 권력의 주변에 줄을 섰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권력의 입맛에 맞게 앞장서 충실한 시녀의 역할을 했다”며 “검찰상 회복을 위해서는 검찰의 중립과 독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 전 고검장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앞 그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600만 달러 이상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대통령으로서도 세 번째고, 아들로서도 세 번째네요. 김현철, 김홍일, 노건호까지. ‘몸통’과 아들 모두 다 비리에 연루됐죠.”

―林采珍(임채진) 검찰총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병처리에 대한 여론 수렴에 나서면서 결정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습니다.

“임채진 총장이 전직 대통령 때 임명된 총장이라서 담당 검사들의 부담이 큰 것 같은데, 그런 것에 연연한다면 검사가 아니죠. 닉슨을 구속한 특별검사도 닉슨에 의해 임명됐지만 검사 본연의 자세로 닉슨에게 칼을 겨누었고, 결국 닉슨을 낙마시켰어요. 검사는 검사일 뿐 누가 임명했든지 간에 의리를 지킨다든가, 정권의 기대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검사가 할 짓이 아니에요. 검찰이 국민의 지지도 받고, 집권층에도 잘보이는 묘수를 찾으려고 절치부심하는데 검사가 왜 그런 고민을 합니까. 고민하려면 사건에 대한 심증은 있는데 물증을 못 찾는 걸 고민해야죠.”

임채진 총장은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말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임 총장이 “(노 전 대통령을) 구속하면 검찰 내부가 분열되고 큰일이 난다”고 말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일선 검사들 사이에선 불구속 기소는 결과적으로 정치권 등 外風(외풍)에 휩쓸리는 것이란 비판이 일고 있는데요.

“검찰 수뇌부가 노 전 대통령을 구속하면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것 같은데, 폭동은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서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검찰은 검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면 되지 국론 분열이나 국가 위신 추락 등을 고려하면 안돼요. 전직 대통령이 부정이 있기 때문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검찰의 수사가 지연되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가요.

“지금 수사 진행 상황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600만 달러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당연히 구속이죠. 가중처벌이란 게 뭡니까. 엄중 처벌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집행유예도 안 나오는 범죄 가지고 여론을 물어요.”

박연차 게이트에선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4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출두하고 있다.

심 전 고검장의 비판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박연차 게이트 사건이 일어난 건 부산·경남 쪽이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은 물론 한나라당도 피할 수 없죠. 그 지역 출신은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어요. 검찰도 자유롭지 못해요. 영남지역에 다녀온 검사도 전별금으로 몇천만 원씩 받았다는데 어떻게 자유롭습니까. 이미 검찰 수사가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나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 여권의 목전까지 가 있어요. 그러니까 여야 아무도 검찰 수사를 원치 않는 거예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니까. 노 전 대통령에게 검찰이 초강경 수를 두면 노 전 대통령 측에서 어떤 카드를 제시할지도 모르고. ”

―임 총장이 노 전 대통령의 신병처리 문제를 차일피일 미루는 게 현 정권과도 연관돼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게 아니라 수사 진행 행태를 보니까 그렇다는 거예요. 지금 넘어야 할 산이 많은데 신병처리 문제 하나 가지고 시간을 끌면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잖아요. 다른 게 더 이상 나오는 걸 원치 않는 거죠. 천신일 회장 수사도 (로비) 관련자 조사보다는 탈세 쪽으로 수사를 하고 있어요. 검찰이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노무현 측 하나, 실세 측 하나 희생양 잡아서 ‘수사했지만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식으로 하려는 거죠. 탈세는 국세청에서도 얼마든지 조사할 수 있어요.”

검찰은 지난 5월 6일 서울지방국세청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의 원본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의 ‘특수부’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지난해 11월 韓相律(한상률·55) 당시 국세청장에게 모두 5개 항목으로 된 세무조사 결과보고서를 제출했으나 검찰에 제출한 것은 이 가운데 3개 항목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당시 조사4국은 박 회장이 여권 인사들과 검찰, 국정원, 경찰 등 司正(사정) 기관 관계자들과 두루 접촉했다는 단서를 포착했으며, 그 내용이 정리된 형태로 한 청장에게 보고됐다고 알려졌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은 지난해 11월 12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5개 항목 전부에 대해 直報(직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서는 박 회장으로부터 흘러나온 대선자금 관련 내역도 이 보고서에 들어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돌고 있다.

여론조사는 검찰이 항용 쓰는 방법

―검찰이 천신일 회장을 대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당비 30억원 대납 의혹도 수사한다고 했는데요.

“말은 그렇게 하죠. 그것이 현 정권의 로비 관련자를 압박하기 위한 수사라면 이해가 되죠. 하지만 그건 잘 나오지 않잖아요.”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 61학번 동기인 천 회장은 지난 3월 출국금지됐다. 지난 대선 때 고대 교우회장을 지내고 있던 천 회장은 각종 인맥을 통해 이명박 후보를 지원했고, 이 후보는 고비 때마다 천 회장에게 조언을 구했다.

천 회장은 이명박 정권의 원로급 실세들과 두루 가까운 사이다. 때문에 여권에서는 “천 회장보다 이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은 이 정권에 없다”며 “천 회장이 수사 대상이라면 그 자체로 정권의 거의 핵심부까지 수사가 간 셈”이라고 하고 있다.

여권 주류는 천 회장이 박 회장에게서 받은 돈의 ‘出口(출구)’ 수사를 더 우려하고 있다. 여권 주류의 한 핵심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에서 ‘원로 그룹’과 가까운 인사들은 알게 모르게 돈이 많은 천 회장에게 개인적인 도움을 요청한 경우가 많다”며 “그 사람들이 지금은 다 정권 실세들인데 천 회장 계좌를 조사해서 그런 부분이 나온다면 파장은 메가톤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 전 고검장은 여론조사는 검찰에서 흔히 쓰는 방법이라고 했다.

“구속 여부는 주임검사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주임검사가 소신을 갖고 밀어붙이면 위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어요. 그때 항용 쓰는 방법이 여론조사죠. 주임검사가 고집을 꺾지 않으면 검사회의를 엽니다. 하지만 총장의 의도가 뻔한데 총장 의도에 반하는 의견을 낼 사람은 많지 않죠. 그럼 그 주임검사더러 ‘봐라, 너와 의견이 다른 사람이 더 많지 않으냐’면서 ‘검찰도 지치고, 기자들도 지쳤는데 그만하지’라는 식인 거죠. 지금 검찰이 피로감에 지쳐서 그만둘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아요.”

실제로 “반팔 입을 때까지 수사하겠다”며 철저한 수사를 다짐했던 검찰은 “박연차도 검찰도 지쳤다. 司正(사정) 피로감인 것 같다”며 한 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검찰 수사를 하면 그런 외압이 많이 들어옵니까.

“한보 비리 사건을 수사할 때 안기부에서 나를 포섭하려고 돈다발까지 들고 왔어요. 당시 안기부의 2인자가 찾아와서 ‘저 위에서 다 사전에 양해된 거 아시죠’라며 수표 다발을 내놓더군요. 당시 난 수사할 것이 많았는데 ‘이게 무슨 짓이오’라고 하면 적의를 드러내는 셈이 돼 ‘검찰 대표가 총장이니까 총장께 얘기하시죠’라며 돌려보낸 적이 있어요. 테러까지 걱정해야 했어요. 한보 사건 때도 그랬고, 항명 파동 때도 검찰 후배로부터 테러 위협을 받았죠.”

“각하(YS)가 울고 계십니다”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은 김현철씨가 항소심 첫 공판을 위해 1998년 1월 20일 오전 서울고법에 도착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과거 한보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김현철씨를 구속할 때 청와대 고위 관계자로부터 “각하가 울고 계십니다”란 전화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내가 죽일 놈이 된 거죠. 당시 金起秀(김기수) 검찰총장에게 ‘중수부장 하나 제대로 못 다루느냐’는 비난이 쇄도했죠. 30~40여 명의 감시원이 중수부장실을 둘러싸고,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어요. 하루는 부속실에서 여직원이 전화로 누군가와 싸우는 소리가 들렸어요.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사람이 술 취한 목소리로 전화해서 날 바꿔달라고 했는데 안 바꿔주니까 시비가 붙었나 봐요. 전화를 받으니까 ‘이제 그만 작작 입 좀 놀리시오. 언론사에 미주알고주알 다 해서 지금 각하가 울고 계세요. 각하가!’라면서 전화를 탁 끊더군요.”

―외압을 받으면서도 김현철씨를 구속할 수 있었던 힘은 뭔가요.

“언론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죠. 여론의 힘이 컸어요. 당시 현철씨의 국정 농단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심했어요. ‘소통령’ ‘小山(소산)’이라고 불렸죠. 아버지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號(호)가 ‘巨山(거산)’이었거든요. 군인, 경찰, 검찰, 각료가 되기 전에 후보들이 다 하얏트호텔이나 롯데호텔에서 현철씨를 접견했어요. 나이 칠십 노인이 그 앞에서 무릎 꿇고 울면서 장관 자리를 부탁할 정도로 굉장했어요. 현철씨가 후보 명단에 ○×를 했죠. 그걸 국민들이 다 알게 된 거죠.”

―김현철씨가 그렇게 막강한 힘을 가졌다면 요로에 자기 사람들을 심어둬서 구속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검찰의 적은 청와대, 안기부, 국세청, 감사원 등 전부 적이죠. 누구든 당시 사태가 어디로 번질지 몰랐으니까요. 검찰에서도 총장하고 매일 싸웠어요. 수사진이 교체돼 처음 중수부장에 부임할 때까지만 해도 ‘대통령 아들을 구속하는 것은 대통령을 구속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현철씨 구속 불가론이 우세했는데, 점차 여론이 들끓으니까 구속 불가피론으로 바뀌었죠. 처음에는 구속 못하게 하더니 나중엔 구속시키고 빨리 끝내라고 하더군요. 그때 격려편지는 이루 말할 것도 없고, 성금까지 답지했어요.”

―당시 대선자금 수사는 어느 정도나 진행됐습니까.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나사본)’의 활동자금 잔여금 120억원을 김현철씨가 관리해 왔단 사실을 밝혔는데, 나사본이 뭡니까. 대선조직이거든. 난 ‘대선자금’이란 말은 쓰지 않았지만 언론에서 ‘대선자금’이라고 대서특필했죠.”

당시 검찰은 현철씨가 관리해 온 비자금 120억원에 대해 19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의 사조직인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의 활동자금 잔여금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언제, 어느 기업으로부터 돈이 유입됐는지, 비자금은 어디에 쓰였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검찰 수사에 영향

임채진 검찰총장이 5월 1일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조사가 끝난 뒤 먼저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떠나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 사건 수사에서도 외압이 작용한다고 보십니까.

“검찰 수사가 시간이 많이 소요됐어요. 보이지 않는 손이 상당히 작용한 거라고 봐야죠. 그렇지 않고서야 좀 이상하잖아요.”

―외압은 어떤 형태로 들어옵니까.

“스스로 알아서 기게 만들죠. 검찰을 떠날 때 퇴임사에서도 밝혔지만 ‘권력의 시녀’가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사람을 심어두는 거 아닙니까.”

심 전 고검장은 과거 정치권에서 횡행했던 외압의 사례를 들려줬다.

“예전에 모 인사가 여당으로부터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받았대요. 그 사람은 낙선이 뻔한 곳이라 출마하기가 싫었던 거라. 그랬더니 ‘국회의원에 출마하시겠습니까, 이걸로 처벌받으시겠습니까’라면서 자신의 비리 내용이 적힌 봉투를 건네더래요. 개인 비리가 많으면 맥을 못 춰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김영삼 정부 때 ‘킹메이커’였던 김윤환씨가 일본에 있을 때 청와대에서 불러서 ‘벼슬 하나 주려나’ 잔뜩 기대하고 YS를 만났는데 봉투 하나를 주더랍니다. 집에 와서 보니 자기 비리가 잔뜩 쓰여 있더라는 거예요. 원래 개인 비리를 적은 파일을 다 만들어 놓아요. 평소에는 안 써먹다가 결정적일 때 써먹죠. 본인은 평소에 개인 비리가 있는지도 몰라요.”

―그런 관행이 있습니까.

“원래 전부 다 그런 거예요.”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 대가 등의 명목으로 1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홍일씨.

―과거 항명 파동 당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셨는데요. 지금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얼마나 이뤄졌다고 보십니까.

“역사는 반복됩니다. 지금은 ‘권력의 시녀’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노 전 대통령 구속 여부를 두고 느닷없이 국가의 품격을 따지고, 국가 이익을 말하고 있어요.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검사가 국가의 정책 목표를 알고, 거기에 부응하는 수사를 해야 진짜 검사라고 했어요. 하지만 검사는 자기 본분에 충실하게 수사하면 되지, 국가 정책을 의식하고 수사를 해선 안돼요.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진보하지만 인문계는 발전이나 진보가 없어요. 남을 중상모략하고, 권력 장악하려 하는 것은 春秋戰國時代(춘추전국시대)나 지금이나 비슷해요. 그게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고요.”

―趙己淑(조기숙) 전 홍보수석은 “권력을 동원한 ‘조직적 범죄’와 (노 전 대통령 측) ‘생계형 범죄’는 다르다”고 노무현 대통령을 변호했는데요.

“먹고살 길이 없어 도둑질하는 게 생계형 범죄죠. 그런데 노무현 비리는 화이트칼라 범죄예요. 조 전 수석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됐습니다. 그런 발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망치는 거죠.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이 뇌물을 받은 건 정치적 목적에서였어요. 퇴임 후에도 ‘上王(상왕)’ 노릇을 하며 권력의 향수를 누리고자 한 것이지요. 상왕 노릇을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죠. 그건 광의의 정치자금에 포함되지만 이건 시계 받고, 자기 아들 집 사주고. 그런 측면에서 보면 생계형 범죄와 뉘앙스는 비슷할 수도 있겠네요. 허허.”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 기대하기 어려워

김현철씨를 재소환한 1997년 5월 15일 심재륜 대검 중수부장이 대검찰청에서 앞으로의 수사진행과 김씨의 구속 시기에 대해 기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박연차 회장은 검찰에 “과연 당신들이 천신일 회장을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말까지 했던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박연차 회장도 어느 선에서는 입을 열지 않을 거예요. 다 포기한 건 아니니까. 세상에 자백을 해도 다 자백하는 사람은 못 봤어요. 범행 동기라도 숨기려고 하죠. 박 회장도 천 회장은 못 건드릴 거예요. 천 회장 다음엔 현 정권 실세가 있을 테니까요.”

―결국 여권 실세 등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기대하기 어렵습니까.

“수사 상황을 지켜보면 검찰이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사전 포석에 따라 거기에 이르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 같아요. 검찰 내부에 전별금으로 수천에서 수억 원씩 받은 검사도 있다잖아요. 수사를 할 수 있나. 못하는 거지.”

―수십억 원의 뇌물을 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형사처벌을 면하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요.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그마저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있어요. 검찰에서 불구속 얘기가 흘러나오는데 그러면 구속영장을 청구해도 판사에게 영장을 기각할 빌미를 주는 셈이에요. 刑(형) 집행정지, 그리고 사면을 기다리겠죠. 법원에서 뇌물 준 사람에게 물어보면 다 ‘대가성 없는 돈이었다’고 말해요. 자꾸 묻는 판·검사도 어리석은 거예요. 한보 사태 때 정태수 회장에게 대가성 여부를 따져 물으니까 한번은 ‘고수들끼리 다 아는 거지’라면서 버럭 화를 냈어요. 그래서 무죄 받는 사람 많아요.”

―수사가 얼마나 더 진행되리라고 보십니까.

“결국 식상하게 만들고 피로감에 지쳐서 끝날 것 같아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구속될 수도 있단 말입니까.

“과거에 그런 일이 많았죠. 김현철씨나 김홍일씨 등 다 사면됐잖아요. 그런 ‘아름다운 풍습’이 계속되죠.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 봐주고, 다음 대통령이 또 봐주고. 용작두를 써야 할 데 개작두를 쓰고 있어요.”

중국 宋(송) 나라의 判官(판관) 包靑天(포청천)은 皇族(황족)을 벌할 때 龍(용)작두를, 탐관오리를 벌할 때 虎(호)작두를, 평민을 벌할 때 개작두를 썼다고 한다.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검사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면 돼요. 민심도 수습하고, 실력자한테도 밉보이지 않을 수 있는 묘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그런 건 없어요. 검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수사를 철저하게 하면 됩니다. 구속 사유는 여기저기 묻고 다닐 문제가 아니라 법에 정해져 있어요.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것은 개인적 감정을 섞지 말라는 거예요. 오늘의 결정은 미래의 결정의 지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역사적 교훈이 될 수 있단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심재륜 전 고검장은 인터뷰 말미에 “지금 각종 게이트 몇 개나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필자가 ‘이용호 게이트’ ‘박연차 게이트’ ‘한보 사태’ 등을 대며 우물대자 그가 말했다.

“거봐요. 얼마 모르잖아요. 다 까먹어요. 망각의 세계로 다들 잊히는 거지. 세상을 뒤흔든 대형 비리 사건들도 다 망각의 세월 속에 잊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