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 최초 인터뷰] ‘아름다운 퇴장’의 주인공 李元鐘前 충북지사 : 월간조선

2006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둔 1월 4일, 李元鐘(이원종) 前(전) 충북지사는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다. 官選(관선) 충북지사와 서울시장을 지낸 이 전 지사는 당시 고향 충북에서 民選(민선) 지사로 연거푸 당선된 후 3선 도전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이 전 지사는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 3선 도전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때다.

이 지사의 불출마 선언은 언론에 ‘아름다운 퇴장’ 등으로 보도되면서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2006년 6월 30일 도지사직에서 물러난 이 전 지사는 그해 8월부터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석좌교수로 부임해 자신의 행정 경험을 강의하면서 後學(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이 전 지사는 도지사 재임 시절 政官界(정관계) 인사들이 흔히 내놓는 자서전이나 에세이류의 책을 펴낸 일이 없다. 그의 첫 저술은 2008년 5월 말 共著(공저)로 펴낸 <생명 속의 생명>이란 책자다. 자신이 도지사 시절 유치했던 2002년 오송 국제바이오 엑스포를 주제로 한 것이다.

‘인간 이원종’을 밝히는 두 권의 책은 주변 사람들에 의해 발간됐다. 하나는 충북지사 시절 이 전 지사와 함께 근무한 공무원들이 펴낸 <우리는 벌써, 그가 그리워진다>이고, 또 하나는 서울시장과 충북지사 시절 그를 모셨던 비서 38인이 쓴 <사람의 향기>라는 책자다. <우리는 벌써, 그가 그리워진다>는 이 전 지사가 퇴임하던 날 이 전 지사에게 獻呈(헌정)됐고, <사람의 향기>는 지난해 6월 발간됐다.

그런 그가 최근 <공공정책과 기업가형 리더십>이라는 다소 딱딱한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共著(공저)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저술은 이 전 지사가 했다. 충북지사로 재임 중 자신이 추진했던 바이오엑스포 개최 등의 성공사례와 밀레니엄 타운 건설 실패사례 등을 소개한 책이다.

“모든 걸 다 버렸다”

<공공정책과 기업가형 리더십> 표지.

서울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대 그의 연구실(호암관 508호실)에서 이 전 지사를 만났다. 방은 책상 두 개와 6인용 회의 테이블만으로도 꽉 찰 정도로 비좁아 보였다. 그는 ‘사랑의 쌀 나눔 운동본부’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방문객들은 이 전 지사에게 ‘사랑의 쌀 나눔 운동본부’의 고문직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고 있었다.

이 전 지사는 “좀더 고민해보자”며 확답을 주지 않았다. 관계자들이 밖으로 나가자 이 전 지사는 이런 말을 했다.

“제가 도지사 3선 안 하고 물러날 때는 ‘모든 걸 다 버리겠다’고 결심했어요. 사실 지금까지 여기 석좌교수직 빼고는 다 버렸어요. 누가 찾아와서 함께 무얼 하자고 해도 일절 응하지 않고 지금까지 지내왔습니다.”

―정치권에서 많이 찾아왔나 보죠?

“정치권도 그렇고 다른 분야도 있고 그랬죠.”

―‘사랑의 쌀 나눔 운동본부’ 고문 직책은 정치권과는 거리가 있고, 뜻있는 자리인 것 같은데요.

“제가 가끔 이런 얘길 해요. ‘인생은 애플파이에 비유할 수 있다. 인생에서 주어진 애플파이가 여덟 쪽이 있다면 이건 학교 다닐 때 써먹고, 이건 자식한테 주고, 이건 일터에 주고, 이건 어디 주고 하면서 쓰더라도 그걸 다 쓰지 말고 나머지 하나만은 자신 몫으로 써라’. 저는 지금 애플파이가 한쪽 남았는데, 그것은 저를 위해 써야죠.”

―李明博(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위촉은 돼 있었죠. 일한 건 없어요.”

―이명박 정부가 組閣(조각)할 때도 그랬고 개각설이 나올 때도 총리 후보로 이름이 거론되는데 직접 의사타진을 받은 일이 있습니까.

“없었어요. 제 이름이 거론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제게는 과분한 일이죠. 재목이 되지 않는데 옆의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니 부담스럽습니다.”

―그래도 국가에서 부르면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공직을 원 없이 한 사람이에요. 40년 넘게 공직생활을 했으니까 더 욕심부릴 이유가 없죠.”

도지사 8년 동안 ‘바이오’에 미쳐

2002년 9월 열린 바이오 엑스포장 개장식 장면.

―공직생활을 실컷 했어도 공직에 몸을 담았던 사람으로서 국가가 봉사를 부탁하면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인생을 살아보니까 50대까지는 나의 의지, 노력 이런 것이 공직생활에 상당히 영향을 미치더군요. 그런데 쉰 살을 딱 넘기니까 내 의지와 관계없이 인생이 펼쳐지더군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소명이 주어지면 쉰 넘어서는 자기를 버리고, 자기에게 주어지는 소명을 따르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이원종 지사는 “그런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자”며 화제를 돌리려 했다. 이 전 지사가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인터뷰 내용을 <공공정책과 기업가형 리더십>이라는 책 내용에 국한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필자는 “이왕 인터뷰를 하는 김에 책과 관련 없는 몇 가지 질문만 더 하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지사직에서 물러난 후 언론과의 인터뷰는 처음이시죠?

“지역 방송국에서 텔레비전 출연 요청도 있었고, 언론사들의 인터뷰 요청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일절 응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책과 관련된 내용으로 한다니까 응했던 거죠. 이 책이 알려지면 이걸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니까요. 저에게 그런 욕심은 있어요. 공직에 있는 후배들과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이 책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제가 40여 년 동안 국가에서 받은 혜택과 경험의 일부를 돌려주는 결과가 되겠죠.”

―충북지사 不出馬(불출마) 선언을 했을 당시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50%가 넘는 상황이었는데 더 하고 싶은 욕심은 없었습니까.

“그때는 물러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 딱 갖춰졌었어요. 도지사는 도민을 위해 있는 거예요. 도민에게 항상 희망과 꿈을 주는 일을 해야 해요. 그런데 도지사 8년 동안 저는 바이오(Bio)에 미쳐 있었습니다. 충청북도의 미래를 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이곳에 첨단산업인 바이오 마인드를 심고, 그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일에 8년 동안 전념했습니다.

불출마 선언을 할 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 4년을 더 할 때 내가 무엇으로 도민에게 희망을 주지? 나는 머릿속에 바이오밖에 없는데, 다른 건 다 써먹었는데, 지금의 나는 방전된 배터리 같지 않냐. 그럼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지’ 하는…. 그게 중요한 이유였어요.”

불출마는 혼자 결심

2006년 1월 4일 ‘5·31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는 이 전 지사.

―당시 야당(한나라당) 소속 단체장이었는데 여권의 압박 등 정치적인 배경은 없었습니까.

“없었어요. 또 다른 이유는 그해가 제가 1963년 초부터 9급으로 공무원을 시작해서 44년째 들어가는 해였어요. 공직자로서 그렇게 넘치는 축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서 ‘참 많이 했다. 충분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고 나니까 쉬고 싶더라고요. 솔직히 공직생활을 해 오면서 나 자신은 완전히 실종됐었어요. 사생활도 없고 친구들도 만나지 못하고 일가친척들도 만나기 어려웠어요. 아까 말한대로 ‘내 인생에 주어진 애플파이 중 나머지 파이 한 쪽은 나를 위해서 써보자’고 결심하고 나니까 얼마나 편하던지….”

―불출마를 혼자 결심했습니까.

“혼자 했지. 주변과 상의하면 반대할 것이 분명했으니까요. 결심한 후 집사람에게 이야기했더니 흔쾌히 동의하더군요.”

―지사를 그만둔 후 해외여행도 다니고 친구도 많이 만났습니까.

“현직에 있을 때 외국 출장을 많이 다녔기 때문에 외국 여행은 잘 안 했어요. 대신 국내에서 그동안 소원했던 친지들과 친구들 만나서 열심히 놀았죠. 한편으로는 학교나 젊은이들이 모인 곳에서 특강 요청을 해 오면 어지간하면 갔어요. 저도 젊은 시절 명사들의 강의를 듣고 진로와 관련한 동기부여를 받은 적이 많았어요. 제가 100명의 젊은이 앞에서 특강했을 때 단 한 사람에게라도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된다면 그게 우리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치적인 외압이 없었다면 지사직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한나라당 탈당은 왜 한 겁니까.

“정치를 안 하려고 한나라당도 탈당한 거예요. ‘나 이제 앞으로 출마 같은 것 안 한다’는 결의로 탈당했죠. 다른 의도는 없었어요.”

―한나라당에 대한 서운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요?

“그런 마음 추호도 없었어요. 왜 내가 한나라당에 대해 서운해 합니까. 거기서 공천을 줘서 당선됐는데. 오히려 감사하죠.”

―지금도 지사직 불출마 선언에 대해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출마하면 당선은 떼논 당상인데 왜 관둬? 이상한 거 걸려서 안 나가는 거 아냐?’ 그렇게 해석하는 거는 얼마든지 가능하죠. 그런데 그것은 추측일 뿐이고, 분명한 것은 그런 추측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죠.”

毒을 빼고 책을 썼다

이 전 지사는 탁자 위에 놓여 있던 <공공정책과 기업가형 리더십>을 펼쳤다. 이제는 책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자는 뜻이었다.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를 말하기 시작했다.

“일본만 하더라도 공무원들 가운데 과장급이 되면 자기 분야에 전문가가 돼서 책을 많이 써요. 그런 자료가 축적이 돼서 후진들이 시행착오를 덜 겪는 거죠. 우리나라는 그런 게 아주 약해요. 개인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기관들 자료도 마찬가지예요. 기관의 자료도 전임과 후임의 인계인수가 잘 이뤄지지 않고 死藏(사장)되는 경우 많아요. 처음 배워서 다시 시작하니 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제 작은 경험이지만 후진들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면 큰 보람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글을 썼어요.”

―그렇다면 공직에서 물러난 후 바로 책을 내시지 그랬습니까.

“공무원들은 자칫하면 자기 독선 내지 자기 자랑에 빠질 수 있어요. 제가 공직에서 물러난 첫해에 책을 내지 않은 것이 그런 독선 내지 자기 자랑이라는 毒(독)을 빼기 위해서였어요. 누구나 자기 자신의 잣대를 세계의 중심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그 독을 빼낸 다음 책을 쓰기 시작한 거죠.”

이 전 지사는 이 책에서 전통산업 위주인 충북의 이미지를 첨단 바이오산업 이미지로 바꾸는 출발이 된 바이오 엑스포 개최, 지역정보화 구축 등의 사례와 함께 호남고속철 오송 분기역 유치,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 개방, 문장대·용화온천 개발 저지 등 지역 숙원문제 해결을 위해 중앙정부나 다른 자치단체와 대립하고 경쟁한 사례를 담고 있다. 이들 성공 사례와 함께 부실한 계획과 열정 부족으로 시간과 예산을 낭비한 밀레니엄 타운 조성사업 실패사례도 소개하고 있다. 자신의 실패에서 후배들이 배울 점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 제목에서도 느껴지지만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은 아니더군요.

“후배 공직자와 행정학자, 공공기관과 기업 CEO를 대상으로 쓴 책이에요. 일반인들에게는 전혀 재미없을 거예요. 공직자 외의 행정학도들도 행정학 논리만 배우는 것보다는 살아있는 현장사례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또 조직경영의 요체는 구성원의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통합시키면서 거기서 가장 좋은 양질의 에너지를 끄집어내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의 CEO에게도 참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이오를 話頭로 삼은 이유

―지사 재임 시절 道政(도정) 캐치프레이즈를 ‘바이오토피아(Biotopia) 충북’으로 내걸었는데 1998년 도지사에 취임할 당시에는 바이오란 말이 생소할 때였습니다. 충북이라는 기존의 이미지와 바이오라는 첨단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당시의 화두가 변화였어요. 제가 도지사에 당선되고 나서 느낀 점은 충청북도가 가라앉은 호수처럼 조용하다는 거였어요. 변화가 없는 거죠. 밖은 변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바이오를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래도 당시로서는 너무 앞서나간 것 아닙니까.

“충북 사람들이 점잖고 선량하고 기본적으로 훌륭한 도민들인데, 변화에 적극적이질 않아요. 그래서 뒤처지는 거죠. 문명의 발달을 그래프로 본다면 태고에서 중세까지는 거의 변화가 없어요. 르네상스 이후 서서히 상승하다가 현대에 오면서 수직 상승하게 되죠. 이렇게 세계는 변하는데 그 문명 변화의 곡선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다른 곳은 변하기 때문에 우리 충북은 영원히 뒤처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걸 극복하려면 남들보다 빨리 변화해야 하는데 당시 선진국이 추구하던 게 바이오였어요. 그 시대의 최첨단 화두였죠. 그래서 바이오 엑스포를 개최하는 등 당시 도민들에게는 생소한 바이오 마인드를 심어주기 시작한 거죠.”

―캐치 프레이즈만으로 도민들의 의식이 바뀔 수 있을까요?

“전통적인 농업사회에서 바이오산업으로 가려면 IT가 뒷받침돼야 해요. 그래서 충북의 지역정보화 사업을 먼저 했습니다. 초고속 통신망이 전국적으로 50%쯤 됐을 때 충북은 100%를 달성했어요. 지사 시절 村老(촌로)들이 저한테 철자법이 틀리기는 해도 ‘고마읍니다’라고 이메일을 보내올 정도로 충북은 전국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지역이 됐어요. 그 바탕 위에 바이오 마인드를 심은 겁니다.”

―사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충북이 대한민국의 바이오산업 중심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 그 전에는 충북에 대해 그런 이미지를 갖지 못했습니다.

“종자를 뿌린 거죠. 지난해 여름에 오송생명산업단지 준공식이 있었고, 이제 그곳에 기업 R&D 시설과 국제기관 등이 들어갈 거예요.”

地自體長이 제일 많이 찾는 곳은 국토해양부

1998년 7월 1일 충북도지사 취임식 후 도민으로부터 충북 발전을 위해 열심히 뛰어달라는 의미의 짚신을 받는 이원종 전 지사.

―지자체 사업과 관련해서 중앙부처의 長(장)들을 만날 일이 많을 텐데 지자체장이 가장 많이 찾아가는 중앙부처는 어디입니까.

“과거 건설부에서 이름이 바뀐 국토해양부죠. 지자체 사업과 관련된 예산이 제일 커요. 도로건설, 항만건설 같은 예산은 천문학적 숫자거든요. 그런 눈에 보이는 개발이 지역주민들에게는 성과로 바로 보이니까요. 지방행정을 총괄 지원해주는 곳인 행정안전부가 그 다음 순서겠죠.”

―중앙부처를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산을 따내기 위해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일도 쉽지 않을 텐데, 나름대로 설득 요령이 있었습니까.

“설득 요령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왜 해야 하느냐는 당위성과 확신을 갖고 만나야 해요. 예산의 속성은 주자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깎자는 데 있어요. 예산부서는 100을 달라면 10이라도 깎으려고 합니다. 왜 100이 필요한지를 설득하려면 당위성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을 납득시킬 수 있으니까요. 부수적으로 중요한 것이 인간적인 네트워크예요.”

―중앙부처에서 예산을 따낼 때 인간적인 네트워크가 도움을 준 사례는 어떤 게 있습니까.

“바이오 엑스포를 개최하려고 할 때였어요. 당시는 지방자치 단체장들이 지역축제 등 각종 이벤트성 행사들이 많아 중앙정부에서는 낭비라고 규제하던 때예요. 그런데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이 저와 행정고시 4회 동기였어요. 특혜를 받았다는 것은 아니고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거죠.”

―인구 규모에서 충북의 몇 배인 서울시장도 역임했는데 서울시장으로 재임할 때보다 충북지사를 할 때가 상대적으로 더 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까.

“성인을 다루는 의사도 있고 소아를 다루는 의사도 있습니다. 그러면 소아를 다루는 의사가 더 편합니까. 똑같아요. 내재한 인간사회의 여러 문제, 메커니즘, 사람의 니즈(needs), 이런 게 하나도 다를 게 없어요. 충북 인구 150만인데 결코 작은 인구 아니거든요.”

청남대 개방의 아쉬움

충북 청원군 강외면에서 열린 오송생명과학단지 기공식.

―충북지사로 계실 때는 당연히 수도권 규제 완화를 반대하셨지만 지금도 같은 입장이십니까.

“제가 이 책 서문에 ‘이 사례는 특정 자치단체장 입장에서 판단해 행한 것이기 때문에 입장에 따라 견해를 달리할 수도 있다’고 썼어요. 충북도지사였기 때문에 충북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하나 이제는 판단이 다를 수도 있죠. 규제 지속을 주장하는 측과 규제 철폐 내지 완화를 요구하는 양자의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어느 것도 버릴 수 없죠. 공존하는 정책, 공존하는 이해를 함께하는 국민적인 합의가 중요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요.”

―일본 같은 경우 수도권 규제 완화가 일자리 창출 등 경제발전에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는데요.

“그런 사례도 벤치마킹해야 하고 경제적 실용적으로 많은 고민을 해야 할 문제예요.”

―지사 재임 시절 애초에 공공기관 이전 지역에서 제외됐던 충북을 포함시키느라 힘쓰셨는데, 공공기관 유치가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큰 도움이 됩니까.

“도움이 되죠. 새로운 도시가 생기고 인프라가 생기고 사람이 늘어나니까요.”

―충북 같은 곳은 지리적으로 서울과 가깝기 때문에 공공기관이 입주하더라도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요.

“경계해야 할 것이 그거예요. 과천 같은 곳이 그런 현상이 나타났죠. 교육기관, 문화시설, 좋은 스포츠 레저시설, 이런 거 만들어 줘야 해요. 교육시설 좋고 문화생활 향유할 수 있으면 공기 탁하고 복잡한 서울 왜 가겠어요?”

―책에서 보면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를 개방한 일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는데 어떤 아쉬움인지요.

“두 가지가 아쉬운데 하나는 국가원수와 같이 정말 노심초사하고 많은 생각을 하는 분들은 편히 쉴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을 드려야 해요. 재충전을 위해 국가원수에게는 휴양할 장소가 필요한데 그게 없어져서 아쉬워요. 또 하나는 지역 입장에서 볼 때 ‘우리 지역에 대통령이 와서 쉬는 곳이 있어’라는 지역 시민의 긍지를 살리지 못한 것, 그 두 가지가 아쉬워요.”

실패 사례에도 교훈이 있다

수박재배 비닐하우스를 방문한 이 전 지사.

―이 책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게 일을 추진하고 이끌어나가는 지도자의 중요성이었다고 봅니다. 경제가 어려운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지도자상은 무엇입니까.

“정치와 행정은 책임이 중요하고 기업은 능률이 더 중요하죠. 그런데 책임 없는 능률, 능률 없는 정책은 다 실용적이지 못해요. 경제 리더가 됐든 공공 리더가 됐든 책임과 능률을 함께 추구하는 리더가 중요하죠. 한 가지 덧붙인다면 국민을 위해서 내가 쓰인다는 생각을 가지면 좋은 리더라 생각해요. 거기에 사랑이란 게 뒷받침된다면 제일 좋은 지도자겠죠. 그럼 헌신도 나오고 보람도 나오고 열정도 나오고 고민도 나오고 그러겠죠.

실제로 작은 조직이든 큰 조직이든 앞에서 끌고 가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해요. 지도자는 비전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해요. ‘나를 따르면 희망봉이 있고 오아시스가 있다’는 방향성을 제시해야 해요. 비전만 제시하고 땀 안 흘리면 안돼요. 그 다음은 몰입해서 열정을 쏟아야 하고요. 땀을 흘릴 때 같이 흘려야지 ‘너희 잘해봐’ 하고 맡기면 적당히 넘어가기 마련이죠.”

―밀레니엄 타운 실패사례도 소개했는데 골프장 건설 때문에 환경단체 등의 반대가 심했더군요.

“당시 반대한 단체들이 조금은 원망스럽죠. 시민들의 수준은 그들이 이용하는 인프라와도 관계가 깊어요. 골프를 치면 골프 치는 수준으로 변하고 고스톱 치면 고스톱 치는 수준에 머무르는 거예요. 우리가 계획했던 것은 비싼 골프장이 아니라 골프는 접근이 어려우니까 테니스보다 약간의 돈을 더 내면 칠 수 있는,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생각한 거예요.”

지도자의 길

―그런데 왜 실패했습니까.

“비유하자면 길도 안 닦고 자동차를 몰고 가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환경단체 등과 대화를 많이 했으면 됐을 거예요. 저는 박세리가 미국에 가서 활약하면서 국민들에게 골프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놨으니까 저항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골프장을 추진한 거예요. 그러나 불특정 다수의 생각이 바뀌는 것은 쉽지 않더군요. 상황 리딩이 잘못됐어요. 잘못됐다 싶으면 빨리 거둬들였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자존심에 오기까지 생기니까 토하지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하고 10년을 끈 거예요. 시간은 시간대로 가고 예산은 예산대로 낭비한 거죠.”

―혹시 ‘내가 해서 안 된 일이 없었는데 이걸 못할 것 같으냐’ 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닙니까.

“그건 아닌데 방법이 틀렸다는 것이죠. 물론 그것도 작심하고 했으면 했지요. 그런데 작심하지 못한 이유가 두 가지예요. 하나는 그 일을 작심하고 하려면 바이오 엑스포가 안돼요. 중요한 것부터 해야죠. 또 하나는 공조직은 앞에서 끌고 가는 리더가 얼마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냐에 따라 임팩트가 달라져요. 그 당시 그 일은 좀 늦다 해도 큰 문제가 안 생겨요. 그러니까 중요도가 뒤로 밀린 거죠.”

환경단체 등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밀레니엄 타운 건설에는 실패했지만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여 사업을 완성시킨 사례도 있다. 충북 도청소재지인 청주에 특급호텔을 짓는 일이었다. 주민들은 호텔은 퇴폐적이며 소비적인 시설이라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이 전 지사는 정면돌파로 특급호텔 건립을 성사시켰다. 현재 이 호텔은 지역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그 사례를 들려주며 이 전 지사는 이런 말을 했다.

“지도자가 자신이 추진하는 사업이 미래가 요구하는 방향임이 분명한데도 그곳으로 주민들을 이끌지 못하고 주민들의 정서나 눈높이를 따르는 것은 꿈과 사명을 저버리는 행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