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대선, 진보적 자유주의 추구하는 민주당과 우익 포퓰리즘으로 뭉친 트럼프주의자들의 내전 될지도
⊙ J.D 밴스 부통령 후보, 트럼프 이후에도 트럼프주의 노선 이어갈 후계자
⊙ 20세기 현대사를 만든 핵심 개념인 ‘포드주의’, 중서부의 포퓰리즘 위에서 등장
⊙ 냉전 시대 민주당은 경제적 포퓰리즘-문화적 세계주의, 공화당은 경제적 세계주의-문화적 포퓰리즘 정당
임명묵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졸업, 現 서울대 대학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 중. 《조선일보》 《시사저널》 칼럼니스트 / 저서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 《K를 생각한다》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 J.D 밴스 부통령 후보, 트럼프 이후에도 트럼프주의 노선 이어갈 후계자
⊙ 20세기 현대사를 만든 핵심 개념인 ‘포드주의’, 중서부의 포퓰리즘 위에서 등장
⊙ 냉전 시대 민주당은 경제적 포퓰리즘-문화적 세계주의, 공화당은 경제적 세계주의-문화적 포퓰리즘 정당
임명묵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졸업, 現 서울대 대학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 중. 《조선일보》 《시사저널》 칼럼니스트 / 저서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 《K를 생각한다》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는 부통령 후보로 《힐빌리의 노래》의 저자인 J.D 밴스 상원의원을 지명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올해 11월 5일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전 세계인의 초미의 관심사이다. 2020년 선거에서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패배했지만,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노리며 출마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7월 13일에 트럼프가 저격을 당하고도 휘날리는 성조기 아래에서 주먹을 치켜드는 카리스마적 사진까지 남기자 ‘트럼프 대세론’은 그야말로 폭발했다. 물론 민주당에서도 고령에 인지력 논란이 불거진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를 설득해내, 유색인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로 대선 후보를 교체하여 다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공화·민주 양 당원이 총동원된 초박빙의 대선이 과연 미국과 세계를 어디로 이끌지, 11월의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펜스에서 밴스로
대선 레이스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인물이 있다. 트럼프에 의해 공화당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목된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다. 밴스는 2016년에 빈곤과 가족 해체를 딛고 자수성가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힐빌리의 노래》로 일약 스타가 된 인물이다. 밴스는 애팔래치아와 중서부의 제조업이 쇠퇴하고, 마약과 이혼이 일상이 된 자신의 고향과 미국의 엘리트들이 사는 부유한 도시는 너무나 다른 세계라고 꼬집었다. 《힐빌리의 노래》는 백인 노동 계층이 2016년에 트럼프를 지지하게 된 이유를 알려주는 책으로 세계적으로도 널리 읽혔고, 인지도를 쌓은 밴스는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밴스가 부통령 러닝메이트를 수락하자 곧이어 그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도 쏟아졌다. 원래 밴스는 트럼프를 지지하기는커녕 그를 격렬하게 비판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공화당에서 반(反)트럼프 계파가 영향력을 거의 상실하게 되는 과정에서 밴스 자신도 생각을 바꾸었다. 트럼프 지지를 표명한 밴스는 2022년 중간선거에서 자신의 고향 오하이오의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제 40세가 된 젊은 자수성가 아이콘의 등장은 다음 공화당 지도부 또한 트럼프의 색채가 강할 것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2016년 등장했던 트럼프 1기의 부통령은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노선을 따르지 않는 정통 공화당의 마이크 펜스였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포퓰리즘적 성향의 대통령을 펜스로 대변되는 기존 공화당 엘리트들이 견제하면서 운영되었다. 하지만 트럼프 충성파로 변신한 젊은 밴스는 트럼프를 억제하는 게 아니라 트럼프 이후에도 트럼프주의 노선을 이어갈 후계자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설령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가 패배한다고 하더라도, 트럼프 정신은 계속 남아서 공화당, 나아가 미국 전체에 걸쳐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미국은 하나의 거대한 문명
그렇다면 트럼프가 내세우는 메시지, 그리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의 심리는 대체 무엇일까? 미국 바깥에서 보기에는, 트럼프 현상은 너무나도 미국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미국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성조기를 휘날리며 강한 미국을 외치는 애국주의자들은 평소에 생각하는 그대로의 미국이지만, 보편적 이성(理性)과 개방의 가치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그들의 메시지는 ‘우리가 알던’ 미국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핵심이 있다. 미국은 하나의 거대한 대륙이자 문명이며, 우리가 흔히 ‘미국적’이라고 생각하는 요소는 수없이 상충(相衝)하는 다양한 ‘미국 정신들’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트럼프주의의 핵심 요소 또한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내세우는 메시지들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이 시작될 때부터 함께하며 미국의 역사에서 면면히 흘러온 것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에 트럼프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 포퓰리즘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이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두는 계몽주의와 함께 출발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서양 건너편 영국과 프랑스에서 발전한 계몽주의 사상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 식민지 주민들이 영국의 통치를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들은 왕과 귀족 대신에 양도할 수 없는 인민의 자연권(自然權)에 따라서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주기적 선거로 선출되는 대통령, 공화국의 가치와 인권을 정부의 근거로 삼은 헌법, 폭정(暴政)을 견제하기 위한 삼권분립(三權分立) 등을 핵심으로 하는 근대 자유주의 정치 체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잭슨 민주주의’
하지만 미국 독립 혁명이 내세운 가치를 해석하는 양상은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었다. 북동부 뉴잉글랜드의 상공업자들과 남부 버지니아의 농장주들은 주(州·state)와 연방의 권한, 중상주의(重商主義)와 중농주의(重農主義), 노예제의 존치 여부 등을 둘러싸고 계속 논쟁을 벌였다. 이 논쟁은 훗날 노예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거대한 내전(內戰)인 남북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북부 상공업자와 남부 농장주 모두 엘리트 계급의 일원이라는 점은 같았다. 여전히 귀족과 유사한 엘리트들의 주도권은 강력했다. 건국 초기의 정쟁(政爭)은 미국적 가치를 둘러싼 북부 엘리트와 남부 엘리트의 해석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이 구도에 금을 낸 인물은 미국사 최초의 포퓰리스트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앤드루 잭슨이었다. 1829년부터 1837년까지 재임한 잭슨은 뉴잉글랜드나 버지니아와는 관련이 없는 내륙 애팔래치아의 한미한 가문 출신이었다. 전쟁 영웅으로 인기를 끌게 된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돌풍을 일으켰다. 북미 내륙의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를 대거 지지 세력으로 동원한 잭슨은 반(反)엘리트 정서를 활용하여 보통 선거권과 엽관제 등 현재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를 도입했다. 그리고 이 ‘잭슨 민주주의’로 표출된 대중의 의지는 미국 헌법을 통해 공표된 가치와 충돌할 때가 많았다. 잭슨 시기의 ‘인디언 전쟁’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의 토지를 강탈하여 백인 이주민들에게 분배한 것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잭슨 시대 이후 포퓰리즘은 잠시 미국 정치의 주요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 뒤 미국 정치는 노예 해방을 둘러싼 북부와 남부의 갈등으로 점철된다. 물론 남북전쟁도 광활한 북미 대륙에 사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믿음이 제각각이며, 헌법적 가치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방식으로 내전까지 벌어질 수 있음을 드러낸 일대 사건임은 분명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북미 대륙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경제 단위로 거듭나고 있었지만, ‘미국 정신’은 결코 단일하지 않았고 오히려 지역, 계층, 인종이 어지럽게 얽히며 형성된 합의 위에 서 있는 것이었다.
포퓰리즘은 북미 전역과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다시 발흥했다. 철도가 촘촘히 북미를 연결하고, 증기선은 미국의 상품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민자들을 실어 날랐다. 소규모 농가들은 세계 시장의 변동에 취약해져 생활 기반이 불안정해졌고, 이민자의 물결이 미국인들의 임금을 낮춘다는 불만도 팽배해졌다.
대평원, 중서부, 남부의 소농(小農)들의 불만은 1892년에 인민당이라는 형태로 조직되었다. 인민당은 금권정치 엘리트를 몰아내고, 평범한 사람들의 정치를 주장하며 의회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인민당은 부채 탕감, 철도 기업 규제 등 좌익 경제 정책과 이민 규제를 내세웠다.
189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주요 양당 중 하나인 민주당이 인민당의 요구를 정책에 수용하며 포퓰리즘으로 이동했다. 당시 민주당은 패배했지만, ‘타락한 엘리트’에 맞서는 ‘진짜 인민’을 동원하는 포퓰리즘의 힘은 입증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1900년대에 미국의 양당을 휩쓴 행정 개혁 사상인 혁신주의 운동은 인민당의 요구를 수용해 대중의 불만을 무마시키고자 노력했다.
중서부 포퓰리즘과 ‘포드주의’
그중에서도 오대호 연안에 위치한 중서부의 포퓰리즘은 정치보다는 산업과 경제에서 만개했다.
역사학자 스테판 링크는 《글로벌 포드주의 총력전》에서 20세기 현대사를 만든 핵심 개념인 ‘포드주의’가 중서부의 포퓰리즘 위에서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시카고를 중심으로 뻗은 거대한 농지와 농산물 가공 산업은 중서부에 뉴욕 월가로 상징되는 동부와 확연히 다른 풍경을 만들어냈다. 농촌 출신으로 직접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중서부의 엔지니어 문화는, ‘서류와 숫자만 보는 월가 금융인들’과는 다른 생산자의 미덕을 예찬했다.
손과 기계를 써서 원자재를 자동차라는 당시의 첨단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데서 자부심을 느낀 엔지니어 중에는 이 자동차가 소수 부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만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믿은 헨리 포드도 있었다. 포드는 기업 경영에서 이윤을 중시하는 경쟁사와 월가 투자자를 경멸했고, 대신에 대규모 비숙련 노동력을 고용해 가장 많은 생산량을 달성해내는 새로운 생산 체제를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컨베이어 벨트, 일관작업, 흐름 생산 등 20세기 대량 생산 체제의 핵심 요소들이 포드에 의하여 탄생했다.
‘이윤이라는 숫자에 매몰된 동부 엘리트’에 대한 그의 반감은 사회 질서에 대한 반자유주의적인 비전과도 쉽게 연결되었다. 포드는 이성에 따른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보다는 집단과 공동체의 도덕을 더 중시했다. 포드는 애팔래치아에서 갓 이주해 온 교육받지 못한 젊은이도,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도 포드 공장에서 숙련되며 ‘도덕을 체화(體化)한 근면한 노동자’로 거듭나게 만들고 싶었다.
당연히 그의 이런 꿈은 자유주의(리버럴) 성향의 미국 기존 엘리트들과 불화(不和)했다. 그리고 포드는 미국 정치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대신에 바다 건너편에서 부상(浮上)하고 있는 나치 독일, 일본 제국, 소비에트 러시아와 같은 반자유주의 국가에 영감(靈感)을 불러일으키고, 실제로 자신이 고안한 대량 생산 체제를 전파하면서 자유주의 엘리트들에게 계속 도전했다. 자유의 제국 미국은 포드주의와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를 통해 전 세계 반자유주의자들에게 전혀 다른 영감을 주는 땅이 되었다.
냉전과 ‘미국의 사명’
물론 미국이 반자유주의 대열에 합류하는 일은 없었다. 1932년 등장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는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하는 전면적인 국가 개조 정책인 뉴딜을 실시했고, 불만에 찬 노동자와 농민을 새로운 프로젝트에 합류시켰다.
미국 바깥에서 일어난 사건들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이 침략 전쟁을 개시하자, 미국의 조야(朝野)에서 지금의 세계 속 미국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영국과 소련의 항전에 자금과 무기를 지원하기 시작하며 전쟁에 발을 담근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완전히 뛰어들었다.
세계를 헝클어놓은 대전쟁을 수습하며 미국의 엘리트들은 다시는 세계가 이러한 참화에 뒤덮이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을 다지며 미국을 자유주의 세계 제국으로 만들었다. 세계대전에 참여하여 목숨을 던진 미국 병사들과 참전자들의 가족 또한 이러한 대의(大義)에 공감했고, ‘세계의 자유를 지키는 미국의 사명’이 엘리트와 대중을 막론하고 각인되었다.
이런 사명의식은 미국을 냉전(冷戰)에 뛰어들게도 하였다. 전후(戰後)에 등장한 미국의 엘리트들은 월스트리트와 재계, 국무부와 국방부, 백악관을 넘나들며 초당적(超黨的)인 합의를 도출했다.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은 배타적 세력권과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전체주의 도전자들 때문에 일어났다. 여기에는 영국과 프랑스라는 이전 세계 주인들이 자신의 부도덕한 식민지 제국을 유지하고자 세계적 의무를 방기(放棄)한 책임도 매우 크게 작용했다. 따라서 미국은 세력권을 구축하려는 모든 시도를 사전에 차단해야 했고, 미국 자신이 자유무역을 통해 인류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물적·제도적·도덕적 기반이 되어야만 했다. 동유럽을 점령하고 제3세계에서 식민지 해방운동을 지원하며 공산주의를 수출하는 것처럼 보인 소련이 전후 세계 최대의 위협으로 간주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소련이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하며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미국 엘리트들의 우려는 사실로 드러났다. 미국은 자유주의 세계 제국의 사명하에서 군사동맹을 구축하고, 세계 각지에 군사기지를 설치하면서 소련을 봉쇄했다. 동시에 빈국(貧國)에 대규모 경제 원조를 집행하고 각국의 수출품을 소화해주는 거대 시장의 역할을 떠안으며 공산주의의 확산을 예방하고자 했다.
자유주의–세계주의
냉전 시대의 공화·민주 양당은 경제와 문화 면에서 각기 서로 다른 노선을 취하면서 오늘날의 구도를 정립시켰다.
경제적인 면에서 뉴딜로 변신한 민주당은 이제 노동조합과 복지국가를 옹호했고, 문화적으로는 68운동으로 시작된 성(性)혁명과 인종평등, 민권운동을 수용했다. 반면 공화당은 경제 자유를 더 강조했고, 성과 인종 문제에 대한 더욱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이를 간편하게 진보·보수라고 규정할 수도 있겠지만, 보편적이고 추상적 가치를 따르는 세계주의 엘리트 성향과 공동체의 토착적인 질서에 애착을 갖는 포퓰리즘 대중 성향으로도 분류해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민주당은 경제적 포퓰리즘-문화적 세계주의 정당이고, 공화당은 경제적 세계주의-문화적 포퓰리즘 정당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냉전의 심화와 경제와 기술의 변화가 누적되며 양당은 경제와 문화 모든 영역에서 자유주의-세계주의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소련은 미국의 인종차별을 비판하며 제3세계 국가들을 포섭하고자 했고, 미국은 세계 전략 차원에서라도 남부의 인종 분리 정책을 더는 지지할 수 없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거대한 적자(赤字) 발생, 1970년대 석유파동과 서독과 일본 등 신흥 공업국의 성장은 강한 노동조합과 제조업을 미국에서 더는 유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 만약 미국이 자유주의 세계 제국으로서 짐을 내려놓는다면 가능했겠지만, 세계 제국이 주는 이익과 사명감이라는 모든 측면에서 미국이 그 역할을 포기할 리는 없었다.
냉전이 끝나고 1990년대와 2000년대가 되었을 때, 공화당과 민주당은 경제와 문화 양 측면에서 모두 자유주의와 세계주의를 채택하게 되었다. 1980년대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공격적으로 경제적 자유주의와 문화적 보수주의를 내걸면서 뉴딜 질서를 해체하는 ‘레이건 혁명’을 이끌었다. 민주당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적 자유주의를 대거 수용하면서, 빌 클린턴 대통령이 주도하는 ‘신민주당’으로 변신했다. 클린턴 이후 민주당은 문화적 진보주의와 자유주의를 더 강하게 내걸면서 공화당에 대응했다. 이에 공화당 역시 인종평등, 성평등 등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당의 문화 자유주의를 수용했다.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로 이어지는 탈냉전의 20년 동안 미국은 경제와 문화 모든 면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지닌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제국이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세계인에게 심어주었다.
‘세계 제국의 짐’
그러나 양당 엘리트의 합의가 견고해지는 가운데 경제와 문화 모든 면에서 세계주의에 반대하는 포퓰리즘 세력이 이미 성장하고 있었다. 자유무역 질서의 주재자로서 제조업을 상실한 미국에서는 불평등이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었고, 일자리가 사라진 곳에서는 가족과 공동체의 해체가 뒤따르며 사회적 위기도 가속화되고 있었다. 계층 이동성은 그 어느 때보다 악화되었다. 문화적인 갈등도 심화되고 있었다. 흑인 커뮤니티의 악화와 도심 치안 위기, 정체성 정치의 결합은 인종 갈등을 민권운동 이래로 가장 격렬하게 만들었다. 기독교 보수주의자와 페미니스트는 여성의 낙태권을 둘러싼 싸움을 이어갔다. 급진적 진보주의를 받아들인 대학생과 지식인들은 ‘문화 엘리트’를 구성하여, 여성, 인종, 성소수자 권리가 적극적으로 나타나는 ‘깨어 있는(woke) 문화’를 주류 문화로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구도에서 자신들이 가장 소외받고 있다고 여기는 백인 노동 계층의 목소리는 공화와 민주 양당 엘리트들에 의해 무시되기 일쑤였다. 공화당은 그들이 현대 경제에서 더 좋은 위치를 점할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하라고 얘기했고, 민주당은 성차별주의나 인종주의와 같은 편견을 집어던져야만 그들의 상태가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선택한 대안(代案)은 자신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해주는 도널드 트럼프였다. 그는 관세를 올리고 제조업을 미국에 유치하여 자유무역 질서를 공격하겠다고 했고, 이민을 가로막겠다고 했으며, 해외 문제 때문에 돈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말해주었다.
냉전과 탈냉전 기간에 미국은 자유주의 세계 제국으로 자신을 규정했고, 그 규정은 미국 자유주의 정책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자유주의를 그만두기 위해서라도 세계 제국의 짐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이들이 부상한 것이다.
패트릭 드닌의 ‘체제 교체’
앤드루 잭슨, 인민당, 헨리 포드 등 과거의 포퓰리스트와 트럼프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도 여기에 있다. 과거 포퓰리즘의 주역들이 타락한 엘리트와 자유주의를 공격했을 때 미국은 북아메리카의 지역 강국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자유주의 세계 질서를 떠받치는 아틀라스다.
바로 그렇기에 자유주의에 대한 포퓰리즘의 공격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한 것이고, 미국의 포퓰리즘이 전 세계에 미칠 여파도 상상이 어려울 정도로 큰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국내 제조업을 진흥하고, 낙태를 제한하고, 가족법을 강화하는 포퓰리스트의 국내 정책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대외(對外) 정책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트럼프나 밴스에게는 ‘자신들을 지지하는 대중을 위해서’라면 국내적으로든 세계적으로든 자유주의 세계 제국은 부정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은 백인 노동 계층에만 국한하지는 않는다. 상류층의 전통 공화당 지지층임에도 민주당의 진보적 자유주의가 너무 싫어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는 이도 여전히 많다.
여기에 다양한 반자유주의, 비자유주의 지식인들의 등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라는 책을 저술한 노터데임대의 패트릭 드닌 교수는 《체제 교체: 탈자유주의 미래를 향하여》라는 더욱 급진적인 후속작을 내놓았는데, 최근 밴스가 그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체제 교체》에서 드닌은 공동체의 경제적 기반과 도덕 문화의 복원을 위해서 자유주의를 무너뜨리고, 도덕적 엘리트와 대중의 연합 체제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러시아를 지지하는 미국의 극우파들, 4chan과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뭉친 미국의 ‘이대남’까지, 자유주의 세계 제국이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표준적 미국’에 도전하는 우익의 도전이 몹시 거센 상황이다.
미국의 내전
그 깊은 역사적 뿌리와 어느 때보다 거대해진 갈등의 골을 생각했을 때 트럼프주의의 영향력은 설령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계속 울려 퍼질 것은 명확하다. 심지어 이번 대선이 진보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미국 민주당과 우익 포퓰리즘으로 뭉친 트럼프주의자들의 내전으로 번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트럼프주의자들은 엘리트를 불신하기에, 선거 기구 자체도 이미 주류 엘리트에 매수되었다는 음모론을 믿는 경향이 강하다.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폭동도 그래서 발생했으니, 2024년에도 트럼프가 패배한다면 훨씬 더 거대한 규모로 트럼프 지지자들의 선거 불복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도시 지역의 민주당 지지자들도 이미 자유주의에서 너무 멀리 떠난 것처럼 보이는 트럼프의 승리를 곧이곧대로 수용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트럼프 2기는 행정부 권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트럼프주의 정책이 더욱 맹렬한 기세로 추진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주와 주의 중심 도시와 배후 교외(郊外) 지역 간의 갈등이 이번 선거를 계기로 터져 나온다면, 중국과 러시아의 거센 도전에 대처할 미국의 힘은 더욱 약화될 것이다.
자유주의를 둘러싼 극심한 국내 갈등에, 미국 바깥에서 강해지는 반자유주의까지, 어쩌면 지금 미국이 마주한 상황은 과거 남북전쟁과 대공황 시기의 도전들이 합쳐진 수준으로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 당시처럼 미국이 북미의 고립된 존재로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세계와 미국이 한 몸일 정도로 긴밀히 연계되어 있는 것도 사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분열하기 시작한 집’
미국의 다음 시대가 어떤 시대가 되었든, 경착륙보다는 연착륙이 미국과 세계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 했을 때, 결국에 초점은 자유주의와 포퓰리즘 사이의 합의를 어떻게 새로이 만들어낼 것인지에 달린 듯하다.
실제 합의의 실마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로부터 중서부 노동계급을 다시 탈환하기 위해 민주당 방식의 제조업 진흥 및 노동조합 강화 정책을 추진했고, 레이건에서 오바마까지 이어진 신자유주의 정치 질서도 막을 내렸다.
문제는 지금 포퓰리스트들의 반발은 경제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자유주의-보수주의의 문화 전쟁과 세계주의-고립주의라는 대외 정책에서의 논쟁은 경제보다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 미국인들을 분열시키고 있다.
‘분열되기 시작한 집’인 미국이 이 문제들에서도 나름의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을까? 아니면 내전에 준하는 거대한 갈등의 서곡이 울려 퍼질 것인가? 만약 후자(後者)라면, 미국의 자유주의와 함께 성장한 대한민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할까?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태평양 건너편을 지켜보아야 할 때이다.⊙
펜스에서 밴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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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 밴스의 《힐빌리의 노래》 |
밴스가 부통령 러닝메이트를 수락하자 곧이어 그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도 쏟아졌다. 원래 밴스는 트럼프를 지지하기는커녕 그를 격렬하게 비판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공화당에서 반(反)트럼프 계파가 영향력을 거의 상실하게 되는 과정에서 밴스 자신도 생각을 바꾸었다. 트럼프 지지를 표명한 밴스는 2022년 중간선거에서 자신의 고향 오하이오의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제 40세가 된 젊은 자수성가 아이콘의 등장은 다음 공화당 지도부 또한 트럼프의 색채가 강할 것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2016년 등장했던 트럼프 1기의 부통령은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노선을 따르지 않는 정통 공화당의 마이크 펜스였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포퓰리즘적 성향의 대통령을 펜스로 대변되는 기존 공화당 엘리트들이 견제하면서 운영되었다. 하지만 트럼프 충성파로 변신한 젊은 밴스는 트럼프를 억제하는 게 아니라 트럼프 이후에도 트럼프주의 노선을 이어갈 후계자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설령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가 패배한다고 하더라도, 트럼프 정신은 계속 남아서 공화당, 나아가 미국 전체에 걸쳐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미국은 하나의 거대한 문명
그렇다면 트럼프가 내세우는 메시지, 그리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의 심리는 대체 무엇일까? 미국 바깥에서 보기에는, 트럼프 현상은 너무나도 미국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미국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성조기를 휘날리며 강한 미국을 외치는 애국주의자들은 평소에 생각하는 그대로의 미국이지만, 보편적 이성(理性)과 개방의 가치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그들의 메시지는 ‘우리가 알던’ 미국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핵심이 있다. 미국은 하나의 거대한 대륙이자 문명이며, 우리가 흔히 ‘미국적’이라고 생각하는 요소는 수없이 상충(相衝)하는 다양한 ‘미국 정신들’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트럼프주의의 핵심 요소 또한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내세우는 메시지들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이 시작될 때부터 함께하며 미국의 역사에서 면면히 흘러온 것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에 트럼프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 포퓰리즘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이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두는 계몽주의와 함께 출발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서양 건너편 영국과 프랑스에서 발전한 계몽주의 사상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 식민지 주민들이 영국의 통치를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들은 왕과 귀족 대신에 양도할 수 없는 인민의 자연권(自然權)에 따라서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주기적 선거로 선출되는 대통령, 공화국의 가치와 인권을 정부의 근거로 삼은 헌법, 폭정(暴政)을 견제하기 위한 삼권분립(三權分立) 등을 핵심으로 하는 근대 자유주의 정치 체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잭슨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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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포퓰리스트 대통령’ 앤드루 잭슨. |
이 구도에 금을 낸 인물은 미국사 최초의 포퓰리스트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앤드루 잭슨이었다. 1829년부터 1837년까지 재임한 잭슨은 뉴잉글랜드나 버지니아와는 관련이 없는 내륙 애팔래치아의 한미한 가문 출신이었다. 전쟁 영웅으로 인기를 끌게 된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돌풍을 일으켰다. 북미 내륙의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를 대거 지지 세력으로 동원한 잭슨은 반(反)엘리트 정서를 활용하여 보통 선거권과 엽관제 등 현재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를 도입했다. 그리고 이 ‘잭슨 민주주의’로 표출된 대중의 의지는 미국 헌법을 통해 공표된 가치와 충돌할 때가 많았다. 잭슨 시기의 ‘인디언 전쟁’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의 토지를 강탈하여 백인 이주민들에게 분배한 것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잭슨 시대 이후 포퓰리즘은 잠시 미국 정치의 주요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 뒤 미국 정치는 노예 해방을 둘러싼 북부와 남부의 갈등으로 점철된다. 물론 남북전쟁도 광활한 북미 대륙에 사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믿음이 제각각이며, 헌법적 가치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방식으로 내전까지 벌어질 수 있음을 드러낸 일대 사건임은 분명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북미 대륙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경제 단위로 거듭나고 있었지만, ‘미국 정신’은 결코 단일하지 않았고 오히려 지역, 계층, 인종이 어지럽게 얽히며 형성된 합의 위에 서 있는 것이었다.
포퓰리즘은 북미 전역과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다시 발흥했다. 철도가 촘촘히 북미를 연결하고, 증기선은 미국의 상품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민자들을 실어 날랐다. 소규모 농가들은 세계 시장의 변동에 취약해져 생활 기반이 불안정해졌고, 이민자의 물결이 미국인들의 임금을 낮춘다는 불만도 팽배해졌다.
대평원, 중서부, 남부의 소농(小農)들의 불만은 1892년에 인민당이라는 형태로 조직되었다. 인민당은 금권정치 엘리트를 몰아내고, 평범한 사람들의 정치를 주장하며 의회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인민당은 부채 탕감, 철도 기업 규제 등 좌익 경제 정책과 이민 규제를 내세웠다.
189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주요 양당 중 하나인 민주당이 인민당의 요구를 정책에 수용하며 포퓰리즘으로 이동했다. 당시 민주당은 패배했지만, ‘타락한 엘리트’에 맞서는 ‘진짜 인민’을 동원하는 포퓰리즘의 힘은 입증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1900년대에 미국의 양당을 휩쓴 행정 개혁 사상인 혁신주의 운동은 인민당의 요구를 수용해 대중의 불만을 무마시키고자 노력했다.
중서부 포퓰리즘과 ‘포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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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포드(Henry Ford·1863~1947년) |
역사학자 스테판 링크는 《글로벌 포드주의 총력전》에서 20세기 현대사를 만든 핵심 개념인 ‘포드주의’가 중서부의 포퓰리즘 위에서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시카고를 중심으로 뻗은 거대한 농지와 농산물 가공 산업은 중서부에 뉴욕 월가로 상징되는 동부와 확연히 다른 풍경을 만들어냈다. 농촌 출신으로 직접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중서부의 엔지니어 문화는, ‘서류와 숫자만 보는 월가 금융인들’과는 다른 생산자의 미덕을 예찬했다.
손과 기계를 써서 원자재를 자동차라는 당시의 첨단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데서 자부심을 느낀 엔지니어 중에는 이 자동차가 소수 부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만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믿은 헨리 포드도 있었다. 포드는 기업 경영에서 이윤을 중시하는 경쟁사와 월가 투자자를 경멸했고, 대신에 대규모 비숙련 노동력을 고용해 가장 많은 생산량을 달성해내는 새로운 생산 체제를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컨베이어 벨트, 일관작업, 흐름 생산 등 20세기 대량 생산 체제의 핵심 요소들이 포드에 의하여 탄생했다.
‘이윤이라는 숫자에 매몰된 동부 엘리트’에 대한 그의 반감은 사회 질서에 대한 반자유주의적인 비전과도 쉽게 연결되었다. 포드는 이성에 따른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보다는 집단과 공동체의 도덕을 더 중시했다. 포드는 애팔래치아에서 갓 이주해 온 교육받지 못한 젊은이도,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도 포드 공장에서 숙련되며 ‘도덕을 체화(體化)한 근면한 노동자’로 거듭나게 만들고 싶었다.
당연히 그의 이런 꿈은 자유주의(리버럴) 성향의 미국 기존 엘리트들과 불화(不和)했다. 그리고 포드는 미국 정치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대신에 바다 건너편에서 부상(浮上)하고 있는 나치 독일, 일본 제국, 소비에트 러시아와 같은 반자유주의 국가에 영감(靈感)을 불러일으키고, 실제로 자신이 고안한 대량 생산 체제를 전파하면서 자유주의 엘리트들에게 계속 도전했다. 자유의 제국 미국은 포드주의와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를 통해 전 세계 반자유주의자들에게 전혀 다른 영감을 주는 땅이 되었다.
냉전과 ‘미국의 사명’
물론 미국이 반자유주의 대열에 합류하는 일은 없었다. 1932년 등장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는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하는 전면적인 국가 개조 정책인 뉴딜을 실시했고, 불만에 찬 노동자와 농민을 새로운 프로젝트에 합류시켰다.
미국 바깥에서 일어난 사건들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이 침략 전쟁을 개시하자, 미국의 조야(朝野)에서 지금의 세계 속 미국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영국과 소련의 항전에 자금과 무기를 지원하기 시작하며 전쟁에 발을 담근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완전히 뛰어들었다.
세계를 헝클어놓은 대전쟁을 수습하며 미국의 엘리트들은 다시는 세계가 이러한 참화에 뒤덮이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을 다지며 미국을 자유주의 세계 제국으로 만들었다. 세계대전에 참여하여 목숨을 던진 미국 병사들과 참전자들의 가족 또한 이러한 대의(大義)에 공감했고, ‘세계의 자유를 지키는 미국의 사명’이 엘리트와 대중을 막론하고 각인되었다.
이런 사명의식은 미국을 냉전(冷戰)에 뛰어들게도 하였다. 전후(戰後)에 등장한 미국의 엘리트들은 월스트리트와 재계, 국무부와 국방부, 백악관을 넘나들며 초당적(超黨的)인 합의를 도출했다.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은 배타적 세력권과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전체주의 도전자들 때문에 일어났다. 여기에는 영국과 프랑스라는 이전 세계 주인들이 자신의 부도덕한 식민지 제국을 유지하고자 세계적 의무를 방기(放棄)한 책임도 매우 크게 작용했다. 따라서 미국은 세력권을 구축하려는 모든 시도를 사전에 차단해야 했고, 미국 자신이 자유무역을 통해 인류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물적·제도적·도덕적 기반이 되어야만 했다. 동유럽을 점령하고 제3세계에서 식민지 해방운동을 지원하며 공산주의를 수출하는 것처럼 보인 소련이 전후 세계 최대의 위협으로 간주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소련이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하며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미국 엘리트들의 우려는 사실로 드러났다. 미국은 자유주의 세계 제국의 사명하에서 군사동맹을 구축하고, 세계 각지에 군사기지를 설치하면서 소련을 봉쇄했다. 동시에 빈국(貧國)에 대규모 경제 원조를 집행하고 각국의 수출품을 소화해주는 거대 시장의 역할을 떠안으며 공산주의의 확산을 예방하고자 했다.
자유주의–세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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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
경제적인 면에서 뉴딜로 변신한 민주당은 이제 노동조합과 복지국가를 옹호했고, 문화적으로는 68운동으로 시작된 성(性)혁명과 인종평등, 민권운동을 수용했다. 반면 공화당은 경제 자유를 더 강조했고, 성과 인종 문제에 대한 더욱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이를 간편하게 진보·보수라고 규정할 수도 있겠지만, 보편적이고 추상적 가치를 따르는 세계주의 엘리트 성향과 공동체의 토착적인 질서에 애착을 갖는 포퓰리즘 대중 성향으로도 분류해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민주당은 경제적 포퓰리즘-문화적 세계주의 정당이고, 공화당은 경제적 세계주의-문화적 포퓰리즘 정당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냉전의 심화와 경제와 기술의 변화가 누적되며 양당은 경제와 문화 모든 영역에서 자유주의-세계주의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소련은 미국의 인종차별을 비판하며 제3세계 국가들을 포섭하고자 했고, 미국은 세계 전략 차원에서라도 남부의 인종 분리 정책을 더는 지지할 수 없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거대한 적자(赤字) 발생, 1970년대 석유파동과 서독과 일본 등 신흥 공업국의 성장은 강한 노동조합과 제조업을 미국에서 더는 유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 만약 미국이 자유주의 세계 제국으로서 짐을 내려놓는다면 가능했겠지만, 세계 제국이 주는 이익과 사명감이라는 모든 측면에서 미국이 그 역할을 포기할 리는 없었다.
냉전이 끝나고 1990년대와 2000년대가 되었을 때, 공화당과 민주당은 경제와 문화 양 측면에서 모두 자유주의와 세계주의를 채택하게 되었다. 1980년대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공격적으로 경제적 자유주의와 문화적 보수주의를 내걸면서 뉴딜 질서를 해체하는 ‘레이건 혁명’을 이끌었다. 민주당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적 자유주의를 대거 수용하면서, 빌 클린턴 대통령이 주도하는 ‘신민주당’으로 변신했다. 클린턴 이후 민주당은 문화적 진보주의와 자유주의를 더 강하게 내걸면서 공화당에 대응했다. 이에 공화당 역시 인종평등, 성평등 등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당의 문화 자유주의를 수용했다.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로 이어지는 탈냉전의 20년 동안 미국은 경제와 문화 모든 면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지닌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제국이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세계인에게 심어주었다.
‘세계 제국의 짐’
그러나 양당 엘리트의 합의가 견고해지는 가운데 경제와 문화 모든 면에서 세계주의에 반대하는 포퓰리즘 세력이 이미 성장하고 있었다. 자유무역 질서의 주재자로서 제조업을 상실한 미국에서는 불평등이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었고, 일자리가 사라진 곳에서는 가족과 공동체의 해체가 뒤따르며 사회적 위기도 가속화되고 있었다. 계층 이동성은 그 어느 때보다 악화되었다. 문화적인 갈등도 심화되고 있었다. 흑인 커뮤니티의 악화와 도심 치안 위기, 정체성 정치의 결합은 인종 갈등을 민권운동 이래로 가장 격렬하게 만들었다. 기독교 보수주의자와 페미니스트는 여성의 낙태권을 둘러싼 싸움을 이어갔다. 급진적 진보주의를 받아들인 대학생과 지식인들은 ‘문화 엘리트’를 구성하여, 여성, 인종, 성소수자 권리가 적극적으로 나타나는 ‘깨어 있는(woke) 문화’를 주류 문화로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구도에서 자신들이 가장 소외받고 있다고 여기는 백인 노동 계층의 목소리는 공화와 민주 양당 엘리트들에 의해 무시되기 일쑤였다. 공화당은 그들이 현대 경제에서 더 좋은 위치를 점할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하라고 얘기했고, 민주당은 성차별주의나 인종주의와 같은 편견을 집어던져야만 그들의 상태가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선택한 대안(代案)은 자신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해주는 도널드 트럼프였다. 그는 관세를 올리고 제조업을 미국에 유치하여 자유무역 질서를 공격하겠다고 했고, 이민을 가로막겠다고 했으며, 해외 문제 때문에 돈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말해주었다.
냉전과 탈냉전 기간에 미국은 자유주의 세계 제국으로 자신을 규정했고, 그 규정은 미국 자유주의 정책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자유주의를 그만두기 위해서라도 세계 제국의 짐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이들이 부상한 것이다.
패트릭 드닌의 ‘체제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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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드닌 교수와 《체제 교체》. |
바로 그렇기에 자유주의에 대한 포퓰리즘의 공격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한 것이고, 미국의 포퓰리즘이 전 세계에 미칠 여파도 상상이 어려울 정도로 큰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국내 제조업을 진흥하고, 낙태를 제한하고, 가족법을 강화하는 포퓰리스트의 국내 정책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대외(對外) 정책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트럼프나 밴스에게는 ‘자신들을 지지하는 대중을 위해서’라면 국내적으로든 세계적으로든 자유주의 세계 제국은 부정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은 백인 노동 계층에만 국한하지는 않는다. 상류층의 전통 공화당 지지층임에도 민주당의 진보적 자유주의가 너무 싫어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는 이도 여전히 많다.
여기에 다양한 반자유주의, 비자유주의 지식인들의 등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라는 책을 저술한 노터데임대의 패트릭 드닌 교수는 《체제 교체: 탈자유주의 미래를 향하여》라는 더욱 급진적인 후속작을 내놓았는데, 최근 밴스가 그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체제 교체》에서 드닌은 공동체의 경제적 기반과 도덕 문화의 복원을 위해서 자유주의를 무너뜨리고, 도덕적 엘리트와 대중의 연합 체제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러시아를 지지하는 미국의 극우파들, 4chan과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뭉친 미국의 ‘이대남’까지, 자유주의 세계 제국이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표준적 미국’에 도전하는 우익의 도전이 몹시 거센 상황이다.
미국의 내전
그 깊은 역사적 뿌리와 어느 때보다 거대해진 갈등의 골을 생각했을 때 트럼프주의의 영향력은 설령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계속 울려 퍼질 것은 명확하다. 심지어 이번 대선이 진보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미국 민주당과 우익 포퓰리즘으로 뭉친 트럼프주의자들의 내전으로 번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트럼프주의자들은 엘리트를 불신하기에, 선거 기구 자체도 이미 주류 엘리트에 매수되었다는 음모론을 믿는 경향이 강하다.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폭동도 그래서 발생했으니, 2024년에도 트럼프가 패배한다면 훨씬 더 거대한 규모로 트럼프 지지자들의 선거 불복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도시 지역의 민주당 지지자들도 이미 자유주의에서 너무 멀리 떠난 것처럼 보이는 트럼프의 승리를 곧이곧대로 수용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트럼프 2기는 행정부 권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트럼프주의 정책이 더욱 맹렬한 기세로 추진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주와 주의 중심 도시와 배후 교외(郊外) 지역 간의 갈등이 이번 선거를 계기로 터져 나온다면, 중국과 러시아의 거센 도전에 대처할 미국의 힘은 더욱 약화될 것이다.
자유주의를 둘러싼 극심한 국내 갈등에, 미국 바깥에서 강해지는 반자유주의까지, 어쩌면 지금 미국이 마주한 상황은 과거 남북전쟁과 대공황 시기의 도전들이 합쳐진 수준으로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 당시처럼 미국이 북미의 고립된 존재로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세계와 미국이 한 몸일 정도로 긴밀히 연계되어 있는 것도 사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분열하기 시작한 집’
미국의 다음 시대가 어떤 시대가 되었든, 경착륙보다는 연착륙이 미국과 세계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 했을 때, 결국에 초점은 자유주의와 포퓰리즘 사이의 합의를 어떻게 새로이 만들어낼 것인지에 달린 듯하다.
실제 합의의 실마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로부터 중서부 노동계급을 다시 탈환하기 위해 민주당 방식의 제조업 진흥 및 노동조합 강화 정책을 추진했고, 레이건에서 오바마까지 이어진 신자유주의 정치 질서도 막을 내렸다.
문제는 지금 포퓰리스트들의 반발은 경제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자유주의-보수주의의 문화 전쟁과 세계주의-고립주의라는 대외 정책에서의 논쟁은 경제보다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 미국인들을 분열시키고 있다.
‘분열되기 시작한 집’인 미국이 이 문제들에서도 나름의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을까? 아니면 내전에 준하는 거대한 갈등의 서곡이 울려 퍼질 것인가? 만약 후자(後者)라면, 미국의 자유주의와 함께 성장한 대한민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할까?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태평양 건너편을 지켜보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