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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포커스

다시 주목받는 미국의 내셔널 보수주의

글 : 윤정호  미국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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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선거에서 내셔널 보수주의자들의 승리, 트럼프의 재기 움직임 등에 주목해야
⊙ 2016년 트럼프 당선을 전후해서 주목받은 미국의 새로운 보수주의 사조
⊙ ‘테러와의 전쟁’에 매몰된 사이에 중국·러시아 등의 안보위협 커진 상황에 비판적
⊙ ‘정부 만능주의’와 ‘시장 방임주의’ 모두 배격
⊙ 사회복지제도, 빅 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에 관심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세이브 아메리카’를 만들어 대권 행보를 하면서 ‘내셔널 보수주의’에 다시 주목할 필요가 생겼다. 사진=AP/뉴시스
  지난 수년간 미국 정치에서는 거대한 지각 변동이 진행되어 왔다. 내셔널 보수주의(National Conservatism)라는 이름의 새로운 유형의 보수주의가 확산 중이다. 내셔널 보수주의는 미소(美蘇) 냉전 종식 후 보수 정치인들이 지향했던 이른바 ‘탈(脫)냉전 보수주의’의 치명적 자만에 도전한다. 기존 외교·안보, 경제 그리고 사회 정책들이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렸다고 비판하며 대안을 모색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로 막을 내린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을 바탕으로 보수주의의 혁신을 추구한다. 당시 대선 결과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학자들은 외부 세력 개입설을 제기했다. 캐서린 헐 재이미슨(Kathleen Hall Jamieson) 펜실베이니아대학 애넌버그 공공정책연구소(APPC) 소장 등은 러시아가 수천 개의 온라인 계정을 통해 가짜뉴스를 퍼뜨렸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연구처(IRA)라는 조직을 앞세워 연방 하원 선거를 진두지휘하는 민주당 하원선거위원회(DCCC), 중앙당 역할을 하는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 선거본부를 해킹해서 내부 정보를 유출했다고 말했다.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외세의 선거 개입 시도가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언론인들은 기성 언론의 한계가 드러났다고 토로했다. 전통적으로 언론은 선거 때마다 ‘킹 메이커’ 역할을 했다. 출마자들에 대한 보도의 양과 내용을 조절해가며 판세를 결정했다. 2016년 대선에서는 사뭇 다른 양상이 전개됐다. 거의 모든 제도권 언론 매체의 비난과 무시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인기몰이를 했다. 소셜미디어를 매개로 국민과 직접 소통을 했다. 보수 성향의 유튜브, 사용자가 콘텐츠를 골라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 그리고 라디오 시사 대담 방송인 토크 라디오(Talk Radio)와 같은 대안 언론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어필했다.
 
  시민운동가들은 남성 우월주의가 원인이었다고 주장했다. 미(美) 페미니스트들에게 2016 대선은 역사적인 이벤트였다. 1920년 8월 18일 여성 참정권이 허용된 뒤 처음 여성 후보가 메이저 정당의 대권 후보로 나섰다. 그러나 최초의 여자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꿈은 산산조각 났다. 여성 유권자들이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힐러리에 대한 여성 지지율은 54%에 그쳤다. 백인 여성들은 절반 이상이 트럼프를 찍었다. 결과를 접한 운동가들은 남성은 물론 여성들 사이에서도 “여자는 안 돼”라는 편견이 뿌리 깊다고 탄식했다.
 
  흔히 ‘냇콘(Nat Con)’이라고 불리는 내셔널 보수주의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이들은 정치 초년병 트럼프가 유력한 여야(與野) 대권 주자들을 누를 수 있었던 원인을 차별성 있는 공약에서 찾았다. 트럼프에 대한 “묻지 마”식 옹호를 금기시하지만 우파는 물론 좌파 및 정치 무관심층 유권자들까지 열광하게 했던 국정 비전을 높게 평가했다. 이에 기반해서 새로운 보수주의의 청사진을 모색했다. 미중(美中) 신(新)냉전, 서민과 중산층 경제 몰락 그리고 공동체 붕괴의 시대에 부합하는 정책을 제시했다. 내셔널 보수주의의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한 새로운 안보위기
 
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 테러로 숨진 전우들의 시신을 운반하는 미군들. 마군은 1991~2017년 약 7000명의 해외 작전 희생자를 냈다. 사진=AP/뉴시스
  내셔널 보수주의자들은 탈냉전 보수주의 대외(對外) 정책을 비판한다. 미국의 국력을 과대평가한 비현실적인 정책들이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위태롭게 했다고 고발한다. 대신 주권과 국익을 우선시하는 현실주의 외교·안보 정책의 복원을 추구한다.
 
  첫째, ‘테러와의 전쟁’ 안보 정책을 질타한다. 마이클 앤턴(Michael Anton)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 부국장 등은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전 세계에 걸쳐 테러를 근원적으로 뿌리 뽑겠다”는,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목표를 추구했다면서 엄청난 규모의 혈세를 낭비했다고 꼬집는다. 브라운대학 부설 왓슨 연구소(Watson Institute)에 따르면 2001 회계연도에서 2016 회계연도 사이 4조8000억 달러가 투입됐다.
 
  내셔널 보수주의자들은 그러한 정책이 막대한 희생을 안겼다고 개탄한다. 의회입법조사국(CRS)에 따르면 1991년 12월 소련 붕괴 이후 2017년 4월까지 세계 각지에서 전개한 군사 작전으로 7000명에 육박하는 장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2001년 10월 시작한 아프가니스탄전쟁과 2003년 3월 개전한 이라크전쟁 전사자 수는 각각 2346명과 4411명에 달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군사력 증강을 소홀히 해서 더 큰 안보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국가 대(對) 국가 대결의 시대는 끝나고 대화와 협력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하고 테러리스트 소탕에만 몰두한 사이 러시아는 핵전력(核戰力)을 현대화했다. 중국은 재래식 군사력의 양적 우위를 달성했다. 북한은 핵보유국 대열에 합류했다.
 
 
  자유무역정책 재검토 주장
 
  둘째, 내셔널 보수주의자들은 자유무역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맨해턴연구원(MIPR) 선임연구원인 다이애너 퍼스콧-로스(Diana Furchgott-Roth) 등은 관세를 대폭 인하하거나 철폐해서 국제 무역을 활성화하고 교역 상대 국가의 경제 성장을 도우려 했던 정책은 잘못이었다고 지적한다.
 
  내셔널 보수주의자들은 그로 인해 경상수지 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연방인구조사국(USCB)의 집계에 따르면 1992년 390억 달러에 그쳤던 적자 규모는 8년 뒤인 2000년 10배가 늘어 3800억 달러가 됐다. 2000년대에도 적자 행진은 계속됐다. 2016년에는 48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러한 경상수지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 적자와 더불어 미국 경제를 위협했다.
 
  그 결과 과도한 수입 의존증을 불러왔다고 내셔널 보수주의자들은 지적한다. 자유무역 정책은 “경제에는 국경이 없다”는 믿음을 확산시켰다. 전략물자까지 수입하게 했다. 외국산 통신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통해 정보가 유출되는 ‘백도어 사건’을 야기했다. 반도체 대란의 씨앗을 뿌렸다.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고 비판한다.
 
  시카고대학의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 교수의 지적과 같이 중국은 미국의 안이한 통상 정책을 악용, 순식간에 세계 최대 수출국, 경제 초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은 지금 “선조들이 겪은 수모를 돌려주겠다”며 미국의 패권(覇權)에 정면 도전하고 있다. “시장 경제의 맛을 보면 친미(親美) 국가로 거듭날 것”이라는 미국의 바람은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났다.
 
제2의 클리블랜드를 노리는 트럼프
 
그로버 클리블랜드 前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제2의 클리블랜드가 될 것인가?”
 
  차기 대통령 선거는 약 2년 남았지만 벌써부터 미국 정계에서는 전임 대통령 트럼프의 대권 재도전에 대한 추측이 무성하다. 이로 인해 22대 및 24대 대통령을 역임한 그로버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클리블랜드는 1884년 대선에서 제임스 G. 블레인(James G. Blaine)을 누른 뒤 1888년 선거에서 벤저민 해리슨(Benjamin Harrison)에게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4년 뒤 해리슨과 재대결을 펼쳐 승리를 거뒀다.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연임에 실패한 뒤 백악관 재입성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최근 행보를 보자면 트럼프는 클리블랜드의 기적을 재현하려고 하는 듯 보인다. ‘실탄’ 모으기에 나섰다. 《워싱턴 포스트》는 2021년 상반기 트럼프가 무려 1억200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세이브 아메리카 정치활동위원회(Save America PAC)를 비롯한 산하 조직을 통한 모금 운동이 결실을 맺었다.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
 
  작년 4월 트럼프는 싱크탱크인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 연구원(AFPI)을 설립했다. 브룩 롤린스(Brooke Rollins) 국내정책위원회(DPC) 부위원장을 비롯해 최측근들을 전면 배치했다. 온라인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전 하원 정보위원회 위원장 데빈 누네스(Devin Nunes) 의원을 앞세워 내년 상반기 ‘트루스 소시얼(Truth Social)’이라는 이름의 소셜 미디어를 론칭한 뒤 뉴스, 예능 그리고 팟캐스트 등으로 콘텐츠 사업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트럼프의 재집권 시도가 내셔널 보수주의 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주목된다.
 
  다자외교에 비판적
 
  셋째, 내셔널 보수주의자들은 다자외교(多者外交)에 대한 맹신을 경고한다. 키런 스키너(Kiron Skinner) 카네기멜런대학 교수 등은 국제기구 또는 협약을 통해 셋 이상의 나라들이 이해를 조정하고 협력하는 방안을 찾아가는 외교 방식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들의 견해는 국민 여론을 반영한다. 많은 미국인은 국제연합(UN)을 비롯한 국제기구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국제연합이 맡은 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인색한 평가를 내린다. 여론 조사 전문기관 갤럽에 따르면 1993년 3월 진행된 조사에서 52%의 응답자들만 긍정적 평가를 했다. 2016년 2월 조사에서는 불과 38%만 합격점을 줬다. 실효성이 다했다는 이유에서다.
 
  멤버들 간 이해관계가 상충되면서 주요 7개국 정상회담(G7)이나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 등의 다자정상회의는 알맹이 없는 성명서만 양산하는 단체사진용 행사로 전락했다. 교토의정서를 비롯한 환경 협약이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과 같은 군축 조약은 종잇조각이 됐다. 서명국들은 노골적으로 의무 조항을 어겼다.
 
  무임승차 행위도 골칫거리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위시한 동맹국들은 국가 안보를 미국에 떠넘겼다. 국방 예산 증액을 미뤘다. 국제형사재판소(ICC)를 비롯한 국제기구의 회원국들은 기구 설립과 운영에 드는 비용 부담을 외면했다.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일삼았다.
 
 
  ‘정부 만능주의’ ‘시장방임주의’ 모두 배격
 
미국 미시간주 워런시 마운드로드에 위치한 크라이슬러의 트럭 조립 공장. 무너진 미국 제조업 현장 중 하나다. 사진=조선DB
  내셔널 보수주의자들은 탈냉전 보수주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보완을 요구한다. 비효율과 낭비의 온상인 ‘정부 만능주의’를 배격하는 한편 ‘시장 방임주의’의 도그마를 경계한다. 피폐해진 서민과 중산층 경제를 부활시키고자 한다.
 
  첫째, 제조업 재건 플랜을 주문한다. 마이클 린드(Michael Lind) 텍사스대 교수 등은 산업 정책(Industrial Policy)을 통한 제조업 육성 필요성을 제기한다. 2차 산업의 쇠락이 심각해서다. 1970년대부터 하락세를 거듭하던 제조업은 2000년대 들어 충격적인 퇴조를 겪었다. 생산량이 급감했다. 관련 일자리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업계 종사자 비율은 2015년 현재 전체 일자리의 8.7%로 떨어졌다.
 
  제조업은 한때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다. 고임금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양산해 저학력, 저소득층을 중산층으로 만들었다. 이와 관련, 냇콘들은 학비 부담 없는 평생・수시 직업 교육 확대를 통해 우수 인력을 현장에 공급하고 소득 양극화 현상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민간 부문의 기여가 부진한 것도 이유다.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와 내셔널 보수주의
 
  “우리가 옳았다!”
 
  공화당의 쾌승으로 끝난 버지니아주 주지사 선거 결과를 접한 내셔널 보수주의자들의 반응이다. 냇콘들은 작년 11월 2일 정치 신인 글렌 영킨(Glenn Youngkin)이 백전노장 테리 맥컬리프(Terry McAuliffe)를 상대로 거둔 승리를 내셔널 보수주의의 승리로 여긴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탈냉전 보수주의가 소홀히 했던 사회 이슈를 중시했다. 영킨은 교육 개혁을 으뜸 공약으로 삼았다. 교실이 급진주의 정치 이념의 선전 선동장으로 전락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학부모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미국 역사와 사회를 인종주의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 교육을 금지할 것을 약속했다.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과 중도 성향 엄마, 아빠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냈다.
 
  둘째, 트럼프에 대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입장을 견지했다. 제프 로(Jeff Roe)와 크리스틴 데이비슨(Kristin Davison)이 이끄는 영킨 선본은 트럼프를 맹목적으로 비판하지도 무조건 찬양하지도 않았다. 열성 지지층을 집중 공략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개인적 인기에만 의존해 선거를 치르려 하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을 불러 함께 한 표를 호소한 맥컬리프와 달리 트럼프에게 지원 유세를 요청하지 않았다. 반트럼프 정서가 짙은 도시와 교외 지역 유권자들의 이반(離叛)을 최소화했다. 민주당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버지니아에서 주지사 선거는 물론 부지사, 법무부 장관 그리고 하원 선거를 모두 이기는 기염을 토했다. 공화당의 2022년 중간 선거 전략을 예고했다.
 
  빅 테크 기업들에 대한 규제 역설
 
  미 기업인들은 제조업을 찬밥 취급했다. MIT대 IT 혁신재단(ITIF)의 윌리엄 B 본빌리언(William B Bonvillian) 이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연구 개발을 경시하고 고정 자본 투자를 미뤘다. 자사주 매입과 같은 금융 기법에 의존해 실적을 부풀리고 고액 연봉을 챙겼다.
 
  둘째, 거대 IT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역설한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결제서비스 페이팔(Pay Pal)의 설립자인 피터 틸(Peter Thiel) 등은 “시장 경제 질서를 지키려면 기업들의 일탈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빅 테크(Big Tech)’라고 불리는 아마존, 애플, 구글, 페이스북,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초대형 정보산업 업체들에 대해 비판적이다.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했기 때문이다. 법규 미비를 이유로 연방거래위원회(FTC) 등 유관 기관들이 솜방망이 처벌만 한 결과 이들은 마구잡이 인수 합병과 신규 사업 진출을 거듭했다. 스타트업의 성장을 막고 유망 중소기업들을 줄도산시켰다.
 
  개인 정보 침해 문제도 심각하다고 말한다. IT 공룡들은 소비자들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생체 정보를 비롯한 개인 정보를 무차별 수집했다. 다른 기업들과 공유하거나 판매해서 이윤을 챙겼다. 페이스북 내부고발자 프랜시스 하우겐(Frances Haugen)에 따르면 미성년자를 비롯한 취약계층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품 및 서비스 개발에 악용했다.
 
  그뿐이 아니다. 빅 테크들은 노골적인 정치 개입을 일삼았다. 자신들은 이념적·정치적 중립을 지킨다고 주장하는 IT 공룡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성향의 콘텐츠를 자의적으로 탄압했다. 크고 작은 선거에 ‘관중’이나 ‘심판’이 아니라 ‘선수’로 뛰었다.
 
 
  사회안전망 재정비 촉구
 
앵거스 디턴 교수. 사진=AP/뉴시스
  셋째, 사회안전망의 재정비를 촉구한다. 시사 계간지 《내셔널 어페어즈(National Affairs)》의 유벌 르빈(Yuval Levine) 편집장 등은 복지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많은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임금이 제자리걸음을 걷는 임금정체 현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근로 가능 연령대의 절반 가까이는 저임금 노동에 종사해왔다.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Angus Deaton) 프린스턴대학 교수가 밝힌 바와 같이 해마다 수십만 명이 ‘절망사(Death of Despair)’의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생계를 비관한 자살과 알코올 중독 그리고 약물 남용이 확산되며 백인 블루칼라 계층의 평균수명이 줄어들었다.
 
  내셔널 보수주의자들은 동시에 고강도 개혁을 주문한다. 사회는 급변했지만 복지 제도는 그대로라는 이유에서다. 마이클 포스너(Michael Posner) 뉴욕대학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고용 환경은 상전벽해(桑田碧海)를 했다. 평생직장은 사라진 지 오래다. 투잡, 쓰리잡을 뛰는 이들이 늘었다. 가계 소비 구조도 변했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통신비가 급증했다.
 
  내셔널 보수주의자들은 복지환경의 변화에 따른 재원(財源) 마련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수명이 늘어나며 노후 소득 및 의료 비용 지원 제도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Social Security)은 향후 75년 동안 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제도인 메디케어(Medicare)의 병원 진료 보험금은 2026년 고갈될 전망이다.
 
 
  내셔널 보수주의 사회 정책
 
2013년 4월 미국 의회 앞에서 열린 이민법 개혁 촉구 집회. 내셔널 보수주의자들은 불법 이민자들을 구제하라고 요구하는 이들과 대척점에 서 있다. 사진=AP/뉴시스
  내셔널 보수주의자들은 탈냉전 보수주의 사회 정책의 대안을 요구한다. 소위 ‘시대정신’을 따라야 한다며 일부 여론 주도층의 견해를 좇아 급조한 사회 정책들의 부작용을 비판한다. 와해 위기에 놓인 공동체의 회복을 추구한다.
 
  첫째, 무분별한 이민 정책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마크 크리코리언(Mark Krikorian) 이민연구센터(CIS) 전무이사 등은 불법 이민 문제에 경종을 울린다. 불법 이민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국토안보부(DHS)에 따르면 1990년에서 1999년 사이 불법 이민자 수는 420만 명에 달했다. 2000년에서 2015년 사이에도 560만 명의 불법 이민자가 발생했다. 2015년 현재 위법 입국 및 체류하는 이민자는 전체 국민의 3.6%까지 치솟았다.
 
  이들은 그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가 크다고 주장한다. 불법 이민자들은 고용 기회를 앗아갔다. 일용직과 단순 노무직을 휩쓸며 서민층의 일자리 마련을 어렵게 했다. 치안 불안을 야기했다. 마약 밀매, 인신 매매 및 조직 폭력과 같은 흉악 범죄를 저질러도 검거가 어려웠다. 기존 이민자 수용 정책은 한계를 드러냈다고 말한다. 불법 이민자들은 미국 사회에 동화를 거부했다. 집단 거주 지역에서는 국민들이 역차별을 당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스펙테이터(Spectator)》의 칼럼니스트 폴리나 노딩(Paulina Neuding)의 지적과 같이 “다양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영어와 문화 교육과 같은 동질화 정책을 외면한 결과였다.
 
 
  가족과 기독교 중시
 
  둘째, 친(親)가족 정책을 촉구한다. 스콧 예너(Scott Yenor) 보이시(Boisie)주립대 교수 등은 가족을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하는 세태에 대해 우려한다. ‘가족 해체’ 현상이 심각해서다. 결혼율이 급감했다. 결혼을 안 하거나 이혼 뒤 재혼을 하지 않은 성인 인구 비율은 2016년 현재 50%대에 이르렀다.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출산율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지만 혼인 관계를 맺지 않고 아이를 낳는 혼외(婚外) 출산 사례는 급증했다. 비영리 아동복지 연구단체인 차일드 트렌즈(Child Trends)에 따르면 혼외 출산 비율은 1990년 28%에서 2016년 40%로 높아졌다.
 
  내셔널 보수주의자들은 가족은 ‘사회화(Socialization)’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조슈아 미첼(Joshua Mitchell) 조지타운대학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개인들은 유년 시절 부모와 형제로부터 의식적, 무의식적 학습을 통해 언어와 관습을 습득한다. 건전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인성, 가치관, 그리고 태도를 형성한다. 가족은 구성원들에게 정서적 울타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미성년자 자살과 같은 현대사회의 고질병을 완화해준다. 함께 생활하며 키워온 유대감으로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Noreena Hertz)가 고발한 원자화되고 파편화된 개인들로 가득한 ‘고독의 시대’를 살며 겪는 소외감을 극복할 수 있게 돕는다.
 
  셋째, 반(反)기독교 정책을 멈춰야 한다고 역설한다. 종교 저널 《퍼스트 싱스(First Things)》의 편집장 러셀 리노(Russell Reno) 등은 기독교에 대한 부당한 박해를 규탄한다. 헌법상 기본권 침해라는 것이다.
 

  1791년 12월 비준된 헌법권리장전(Bill of Rights)의 첫 조항인 수정헌법 제1조는 “의회는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세계 최대의 기독교 국가인 미국. 기독교는 독립전쟁, 남북전쟁, 그리고 흑인 민권운동과 같은 미 역사의 변곡점마다 선두에 섰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 보복성 세무 조사와 악법의 법제화가 잇따랐다.
 
  내셔널 보수주의자들은 기독교는 사회적 기능을 한다고 증언한다. 교인들은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는 말씀을 따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해왔다.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의 100대 자선 단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단체 대다수는 기독교 계열이다. 교회는 현대 복지 제도가 등장하기 전부터 미망인과 고아를 돌보고 범법자들의 갱생에 앞서왔다.
 
  기독교는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프린스턴대학 로버트 워스너(Robert Wuthnow) 교수는 기독교는 필수적인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지적한다. 국민들이 공공선(公共善)을 구현하기 위한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규범을 창출한다고 설명한다.
 
 
  트럼프 패배에도 내셔널 보수주의는 진보 중
 
  2020년 대선 패배와 함께 트럼프는 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내셔널 보수주의는 진화 중이다. 소장파 학자, 언론인 그리고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2020년 11월 3일 있었던 각종 선거에서 트럼프와 공화당이 거둔 성과가 힘을 실어줬다.
 
  트럼프는 연임(連任)에 실패했지만 현직 대통령 가운데 사상 최다 득표를 했다. 소수 인종 유권자들로부터 역대급 지지를 받았다. 공화당은 연방하원 선거에서 대패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깼다. 오히려 두 자릿수 의석을 더했다. 주(州) 의회 선거의 경우 민주당의 파상 공세를 막아냈다. 뉴햄프셔주 상·하원을 탈환했다.
 
  아울러 내셔널 보수주의 관련 싱크탱크들이 연이어 출범하고 있다. 내셔널 보수주의 성향의 싱크탱크가 첫 등장한 것은 2017년 7월이다. 짐 디민트(Jim DeMint) 전 상원의원이 보수주의 파트너십 재단(CPI)을 설립했다. 2019년 1월에는 정치학자 요람 하조니(Yoram Hazony)가 이끄는 에드먼드 버크 재단(The Edmund Burke Foundation)이 문을 열었다. 2021년 5월에는 맨해튼 연구소(Manhattan Institute) 수석연구원 출신 오렌 캐스(Oren Cass)의 아메리칸 컴퍼스(American Compass)가 출범했다. 미국기업연구소(AEI)를 위시한 관록의 우파 정책 연구소들에 도전장을 내놓았다.
 
약진하는 공화당 여성 의원들
 
  누가 공화당을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만을 위한 정당이라고 했는가? 공화당 여성 의원들은 2020년 대선과 함께 치러진 연방 하원 선거에서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성공의 주역은 2021년 5월 원내 지도부에 선출된 엘리스 스테파닉(Elise Stefanik)이 개발한 후보 발굴 및 육성 프로그램이다.
 
  2014년 사상 최연소 여성 의원으로 하원에 입성한 뒤 트럼프 탄핵 정국에서 탄핵의 부당성을 설파해서 스타덤에 오른 스테파닉은 여성 후보 의무할당제를 반대했다. ‘보여주기식’ 여성 우대 정책은 부실한 무자격 후보를 양산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대신 전국을 발로 뛰며 진흙 속 진주들을 찾아 나섰다. 오랜 기간 유권자들과 동고동락해온, 삶을 통해 체득한 보수 정치 철학을 간직한 소상공인, 중소기업인 그리고 지역 정치인들의 출마를 설득했다. 밀착식 후보 육성을 했다. 육아와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정치 입문을 망설이는 여성들을 배려했다. 선배 정치인들로 하여금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노하우를 공유하게 했다. 촘촘한 온라인 지원망을 조직했다. 신세대 정치인들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영건스(Young Guns) 프로그램을 통해 인지도를 높여줬다.
 
  이러한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여성 초선 의원은 19명에 달하게 됐다. 2021년 11월 현재 공화당 여성 하원 의석수를 31석까지 늘리는 데 일조했다. 민주당 내 급진 성향의 소장파 의원들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맞대결을 전개하며 여성 참정권 운동의 본산이자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의원을 배출한 공화당의 새로운 얼굴로 떠오르고 있다.
 
  내셔널 보수주의 정치인들
 
마코 루비오 美 상원의원. 사진=퍼블릭 도메인
  내셔널 보수주의의 대의(大義)에 동참하는 정치인들도 증가세다. 차기 대권 주자 물망에 오르는 론 드샌티스(Ron DeSantis) 플로리다 주지사, 크리스티 노엄(Kristi Noem) 노스다코타 주지사, 그리고 마코 루비오(Marco Rubio) 상원의원 등은 내셔널 보수주의의 문제 의식을 반영한 법안과 정책들을 내놓았다. 《빅 테크의 압정(The Tyranny of Big Tech)》의 저자 조시 헐리(Josh Hawley) 상원의원, 아이디어 뱅크로 각광받는 짐 뱅크스(Jim Banks) 하원의원 그리고 자전적 소설 《힐빌리의 노래》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J.D. 밴스(J.D. Vance) 상원 예비 후보 등 차세대 리더들도 맹활약 중이다.
 
  무엇보다도 미국 공화당이 여전히 트럼프의 영향력 아래 있고,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2024년 대선을 향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그것이 미국 내셔널 보수주의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트럼프와 내셔널 보수주의는 ‘꺼진 불’이 아니다.
 
  우리도 내셔널 보수주의를 주목할 만하다. 내셔널 보수주의는 지적 자양분을 제공한다. 긴 역사를 통해 수많은 분파들이 있었지만 국내의 미국 우파 정치사상에 대한 연구는 특정 시대, 특정 유파에 치우쳤다. 흔히 ‘레이건 보수주의’로 불리는 냉전 보수주의에 집중되었다.
 
  트럼프 시대 보수주의에 대한 연구는 드문 가운데 소개 글들은 그에 대한 지지 여부에 따라 양극단으로 갈렸다. 트럼프에 대한 맹목적 추종과 무조건적 비난을 모두 경계하는 새로운 사조(思潮)의 기원과 동향에 대한 고찰은 학문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내셔널 보수주의는 정치 혁신의 준거점을 제시한다. 20대 대선을 목전에 둔 국민들은 답답한 심경이다. 보수 야당은 가슴을 뜨겁게 하는 차별성 있는 국정 비전 제시에 소홀하다. 한국판 탈냉전 보수주의의 덫에 걸려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중국의 야욕으로 급변한 국제 정세, 좌절의 수렁에 빠진 서민과 중산층, 그리고 불신과 증오로 찢겨진 공동체의 시대에 부합하는 창발적인 정책 공약이 아쉽다. 내셔널 보수주의의 비판적 수용을 통해 국민들의 소리 없는 절규에 귀기울일 수 있기를, 직선제 개헌 35주년을 맞는 2022년을 정치 대변혁의 해로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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