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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분석

리콴유의 싱가포르 모델을 따라가는 중국

글 : 임계순  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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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샤오핑, “중국에 싱가포르 같은 도시 1000여 개를 세우는 것이 꿈”
⊙ 싱가포르 난양이공대학, 20년간 중국 공무원 1만3000명 교육, 전직 장관들이 수업 진행
⊙ “중국은 싱가포르 본보기로 한 ‘강한 정부+자유시장경제’ 체제 추구”
    (姚洋 베이징대학 국가발전연구원장)
⊙ 시진핑, “싱가포르가 개발도상국이 보이는 ‘장기 성장정체 현상’ 빠져나온 점 배워야”

任桂淳
⊙ 71세. 이화여대 사학과 졸업. 美일리노이대 사학과 박사(중국사 전공).
⊙ 한양대 사학과 교수, 同인문대학장, 대통령자문 동북아경제중심추진委 위원 역임.
    現한양대 명예교수, 中베이징대 중한역사문화연구센터 연구원.
⊙ 저서: 《청조팔기주방흥쇠사(淸朝八旗駐防興衰史)》 《청사(淸史): 만주족이 통치한 중국》
    《중국인이 바라본 한국》 《우리에게 다가온 조선족은 누구인가》 등.
1978년 11월 리콴유와 만난 덩샤오핑. 이후 중국은 싱가포르의 발전모델을 적극 도입했다.
  지난 3월 23일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91세의 나이로 서거하자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 국무원 총리 리커창(李克强),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 장더장(張德江) 등은 다투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렇게 중국 정계가 리콴유의 죽음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그의 원적(原籍)이 광둥(廣東)성 메이저우(梅州)인 싱가포르 국적 화인(華人)이래서만은 아니다. 리콴유와 싱가포르가 중국의 개혁개방과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며, 최근 중국 정계가 그가 이룩한 싱가포르 발전을 주시해 왔기 때문이다.
 
  2013년 중국공산당 18차 3중전회(제18기 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채택한 <전면적 개혁심화를 위한 몇 가지 중대 문제에 대한 중공중앙의 결정>은 향후 10년간 중국의 개혁과 발전 노선을 확정한 것이다. 이를 검토한 중국 칼럼니스트인 장팅빈(張庭賓)은 2013년 11월 18일자 《제일재경일보(第一財經日報)》에서 ‘중국이 싱가포르를 개혁의 모델로 삼았다’고 논평했다.
 
  사실, 중국 정계가 싱가포르 모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더 이른 시기인 개혁개방 초기부터였다. 싱가포르 모델은 1980년대 초기에 중국의 경제건설과 경제운영 방법의 참고자료가 되었고 후에는 사회관리에 있어 본보기가 되어 왔다.
 
 
  덩샤오핑, 前 싱가포르 부총리 초빙
 
1980년대 후반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자문한 고겅수 전 싱가포르 부총리.
  중국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당시 부총리이며 훗날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였던 덩샤오핑(鄧小平)은 1978년 11월에 중국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74세의 덩샤오핑은 싱가포르의 경제건설과 사회관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시 덩샤오핑과 리콴유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덩: 1920년 프랑스로 유학가는 길에 처음 싱가포르를 방문했을 때 싱가포르는 상당히 낙후되어 있었는데 이번 두 번째 싱가포르에 와 보니 아주 깨끗한 도시로 변했군요.
 
  리: 천만에요. 이곳은 아주 작은 지방이라 관리하기 쉽습니다.
 
  덩: 그래요. 만약 내가 상하이 정도의 지방을 관리한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리: 아니에요. 싱가포르에 온 중국인들은 모두 광둥(廣東)이나 푸젠(福建)성에 한 뼘의 땅도 없고,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노동자들의 후예입니다. 중국대륙에는 중원(中原)의 관리, 문인, 학사, 장원의 후예들이 많은데 싱가포르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중국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만들어도 더 좋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싱가포르에서 돌아온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적극 추진하고 싱가포르를 모델로 삼아 외자를 유치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사회경제적 모델이 공산당 집권을 위협할까 염려하여 ‘마르크스주의, 마오쩌둥 사상, 공산당 영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유지’하면서 외자유치에 한해서만 싱가포르 모델을 따르기로 했다. 그는 또한 싱가포르의 개국공신이자 재무부 장관과 부총리를 역임한 고겅수(吳慶瑞)를 1985년부터 중국 국무원 경제고문으로 초청하여 직접 싱가포르의 경험을 받아들였다. 고겅수는 6년간 중국의 첫 외국고문으로 활동하며 선전(深圳), 주하이(珠海), 산터우(汕頭)와 샤먼(厦門) 4곳의 경제특구 발전과 관광산업에 관해 조언했다. 여기서 중국이 개혁개방 초기, 중국 남부지역의 경제발전에 싱가포르의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南巡講話 이후 관심 고조
 
  중국에서 싱가포르 모델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 이후라 볼 수 있다. 덩샤오핑은 개방정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하여 개방의 선두지역인 선전으로 남행하였는데, 여기서 싱가포르의 사회질서를 칭찬하며 중국도 이를 본받아 더 엄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 “싱가포르를 배우자”는 열풍이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1993년 5월 당시 싱가포르 고문(顧問)장관이던 리콴유 전 총리는 쑤저우(蘇州)공업단지 합작개발을 통하여 싱가포르의 경험을 중국에 제공하기로 했다. 덩샤오핑의 뒤를 이은 장쩌민(江澤民)도 싱가포르 모델에 관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지는 못했다.
 
  싱가포르 모델이 더욱 주목을 받은 것은 2007년 중국공산당 17대 전국대표대회가 ‘사상해방’을 언급하면서부터이다. 후진타오의 심복 왕양(汪洋)이 광둥성 서기로 임명된 후 사상해방의 대토론을 개최했는데 그는 강연 중 “선전은 싱가포르에 도전해야만 한다”, “싱가포르와 남방의 사상해방을 학습하여 개혁의 새 방향을 심화하자!”고 역설(力說)했다.
 
  선전에서 활발한 토론회의 개최와 함께 정계와 학계에 이르기까지 싱가포르를 학습하자는 열풍이 불었다. 중국 지도자들의 인솔하에 많은 단체가 싱가포르에 가서 경험을 배워 오기 시작했다. 2007년 11월에는 원자바오 총리가 싱가포르를 방문하여 사회보장제도와 정체제도에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중국이 싱가포르에 주목하는 이유
 
  중국 지도자들이 싱가포르 모델을 지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크게 5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싱가포르는 중국인(華人)이 중심이 된 사회로 중국과 유사점이 많다. 덩샤오핑은 “싱가포르의 중국인이 할 수 있다면 그보다 훨씬 넓은 960만km²에 사는 중국인이 왜 못해 내겠는가? 왜 중국은 싱가포르를 확대한 것 같은 큰 국가가 될 수 없는가?”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덩샤오핑은 중국에 싱가포르 같은 도시 1000여 개를 세우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두 번째, 싱가포르의 총리 리콴유가 뛰어난 지도자라는 점이다. 싱가포르의 인민행동당이 50여 년간 장기집권하고 있지만 관료청렴 정도는 아시아에서 으뜸이고, 다민족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건국 이래 민족 간 충돌이나 큰 단체가 주도하는 주목할 만한 큰 사건이 거의 없으며, 경제상황이나 국민들의 생활수준도 양호하고 사회노령화에 대한 준비 또한 잘되어 있다. 리콴유는 어떻게 싱가포르를 이런 국가로 건설하고 관리하였는가가 중국 지도자들이 배우고 싶은 점이다.
 
  세 번째, 작은 섬나라로 제3세계 개발도상국이었던 싱가포르가 아시아의 4룡(龍) 중 하나이자 세계 유수의 선진국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부강한 나라가 된 것은 ‘경제가 먼저이고 민주는 나중’이라는 노선을 선택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싱가포르는 서양의 모델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하여 부강한 국가를 건설했다. 중국도 현재 민주주의보다 경제발전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싱가포르 모델에 더욱 주목한다.
 
  네 번째, 중국이 싱가포르 모델에 집착하는 이유는 중국의 현 정치체제하에서 미국이나 유럽의 양당제나 복수정당이 돌아가며 집권하는 체제는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1당이 장기집권하는 싱가포르 식의 정치운영은 국가가 개방의 진전과정과 속도를 조종할 수 있어 집권당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당내(黨內)정치를 조정·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중국 지도자들이 싱가포르 모델에 친근감과 매력을 느낀다고 볼 수 있다.
 
  다섯 번째, 싱가포르는 정책을 실행하여 효과를 보는 국가인데 이는 엄격하게 법치를 실현하여 공직자들이 청렴과 효율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이 효과를 보려면 우선 중국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부터 척결하고 법치국가를 건설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 지도층은 싱가포르 모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공산당 해외黨校’
 
  1992년부터 중국공산당은 싱가포르 난양이공대학(南洋理工大學)에 장기연수나 학위취득을 목적으로 간부를 파견하기 시작했다. 1997년부터는 중국 시장(市長)들의 연수를 위한 ‘중국 시장고급연수반’을, 1998년에는 중국 공무원들을 위해 중국어로 수업하는 ‘관리경제학 석사과정’을 개설했다. 난양이공대학은 2005년부터는 전문적인 ‘공공관리대학원’을 설립하여 대규모의 중국 공무원을 배출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난양이공대학은 ‘중국공산당 해외당교(海外黨校)’라는 별명을 얻었다. 20년간 난양이공대학에서만 1만3000여 명의 중국 중급·고급 공무원을 교육했다. 인민행동당 부비서장, 재정부 장관, 외교부 정무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전직 싱가포르 정계 요인들이 그들의 교육을 맡았다. 중국 중간층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당신 싱가포르에 갔었나?”가 만났을 때 인사말이 될 정도로 싱가포르 연수열풍이 거세다.
 
  중국의 간부들은 난양이공대학에서 주로 싱가포르의 경제, 공공관리, 사회통치, 환경보호, 반부패에 관련된 제반 정책에 대해 배운다. 수업의 목표는 3가지이다. 첫째, 국제적 시각으로 외국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배울 것, 둘째, 실제와 이론을 연결할 것, 셋째, 중국의 국정에 배운 것을 결합할 것이다.
 
  예를 들어, 시장반의 졸업논문은 그들이 귀국하여 자신들이 관리하는 현(縣), 시(市), 국(局) 내에서 실시할 수 있는 것을 주제로 한다. ‘장관과의 대담’이라는 시장반 과정에서는 중국 간부들이 장관을 지낸 정계요원이 중심이 된 교수들과 함께 앉아 한 주제에 관하여 토론하고 교류하면서 싱가포르의 성공 경험을 학습한다.
 
  중국공산당은 싱가포르의 집권당인 인민행동당이 어떻게 국가를 통치하는지 연구하도록 대표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2007년 중국공산당 방문단원 중의 한 사람인 중앙당교 연구실 부주임 쩡예쑹(曾業松)은 싱가포르의 인민행동당을 ‘세계에서 다당제(多黨制)를 실행하는 국가 중 국가에 대한 지배능력이 가장 강하고 집권기간이 가장 긴 정당’이라 평했다. 현 중국 국가부주석인 리위안차오(李源潮)는 중앙조직부 부장 재임시(2007~2012) “우리가 싱가포르를 지도자간부들의 해외연수 기지로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싱가포르의 발전경험이 중국에 본보기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 공무원들의 싱가포르 연수와 더불어 중국 내에서는 싱가포르 학파가 형성될 정도로 싱가포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사회보장 시스템도 전수
 
싱가포르는 쑤저우공업단지를 조성하면서 도시계획부터 사회보장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험을 전수했다.
  싱가포르는 중국 지방정부와 대형 공업단지 건설사업들을 공동으로 추진해 오고 있다. 이미 쑤저우(蘇州)공업단지의 건설, 우시(無錫) 신구(新區)에 중국 최대 태양광발전 산업기지 건설, 톈진(天津)생태도시 건설을 완성했으며, 광저우(廣州)지식도시 사업과 서부개발의 핵심지역인 쓰촨성 청두(成都)에 싱가포르-쓰촨 혁신과학기술단지 건설을 추진 중이다.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보인 싱가포르-중국 합작의 쑤저우공업단지 건설의 예를 살펴보자. 1993년 5월 당시 리콴유 고문장관이 무상으로 싱가포르의 경험을 중국에 제공하기로 하고 양국의 지도자들은 쑤저우공업단지 건설에 합의했다. 이를 위해 1994년을 전후해서 1000여 명의 처급(處級) 이상 중국 간부들이 싱가포르에 가서 시구(市區) 구획, 도시발전과 관리, 외국투자, 업무기술 훈련, 사회보장 시스템과 고객서비스 등의 방면에 교육을 받았다.
 
  쑤저우공업단지 개발은 도시계획 발전과 무역담당 관료의 훈련 면에서는 다른 어떤 국가보다, 심지어 홍콩, 마카오, 대만과의 합작보다 월등히 나은 모델이 되었다. 특히 공단의 노동관리잠행규정(勞動管理暫行規定) 중에 중앙 공적금(公積金)제도, 단체계약제도 및 노동조합, 그리고 원스톱 서비스(One Stop Service) 등은 모두 싱가포르의 경험으로부터 배워 제정한 것으로 당시 중국 내에는 전례가 없던 것들이었다.
 
  시범적으로 시행한 쑤저우공업단지는 중국인이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창구가 되어 더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세계의 유익한 경험을 익히는 본보기가 되었다. 쑤저우공업단지는 쑤저우 전체 중 4%의 토지와 인구를 차지하지만 전시(全市)의 15%의 지역생산총가와 재정수입을 올리고 있다. 수출입총액, 실제외자이용, 고정자산투자 면에서 이 공단 지역주민 수입의 지표가 매년 쑤저우 전 시에서 1위다. 쑤저우공업단지 설립 이래로 주요경제지표는 연평균 30% 정도 증폭하고 있으며 종합발전지수는 국가급 개발구 중 제2위다. 생태환경지표 또한 전국 개발구 중에서 앞서 있어 ‘국가생태공업시범단지’가 되었다. 쑤저우공단은 개혁개방 30년 동안의 가장 중요한 국제협력 사업일 뿐만 아니라 중국건국 이래 외국과 합작한 사업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꼽힌다.
 
  쑤저우의 성공은 사람들로 하여금 싱가포르의 경험이 중국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중국 각지로부터 25만명 이상의 공무원이 쑤저우공업단지에 와서 이 경험을 학습했다.
 
  쑤저우공단을 통하여 싱가포르 식의 공단운영과 싱가포르의 다양한 소프트웨어가 중국대륙 깊숙이 퍼져 나가고 있다. 쑤저우공업단지의 모델은 쑤저우 주변의 쑤첸(宿遷), 난퉁(南通), 추저우(滁州), 우시뿐만 아니라 신장(新彊)의 훠얼궈쓰(霍爾果斯)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1000개의 싱가포르를 중국에 건설하고자 했던 덩샤오핑의 꿈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는 셈이다.
 
 
  시진핑의 싱가포르 따라 배우기
 
싱가포르의 복합리조트 마리나베이샌즈. 시진핑은 싱가포르가 개도국 장기 성장정체 현상을 극복한 데 주목하고 있다.
  개혁개방의 기치를 내세운 지난 30여 년 동안 중국은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적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이와 함께 부패, 빈부격차, 도덕적 해이 등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2012년 11월에 중국 총서기직과 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물려받은 시진핑이 직면한 도전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정치적 모순을 해결하는 출구를 찾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자본주의화한 경제와 사회질서를 유지하여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그는 공산당을 혁신하여 국민의 지지를 받고 당의 장기집권을 보증할 수 있는 권위주의 정치모델이 필요하다.
 
  시진핑은 집권하기 이전부터 싱가포르 모델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싱가포르가 개발도상국이 보이는 장기 성장정체 현상(middle income trap)을 빠져나온 점을 중국이 배워야 한다”고 한 것으로 보아 싱가포르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관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자유경제와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인민행동당이 싱가포르 건국 이후 계속 장기집권하고 있는 점에 주목했을 것이다. 아마도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정치·언론·거주를 제한적으로 통제하는 싱가포르 식의 정치체제에 매력을 느끼고 있음에 틀림없다.
 
  시진핑이 싱가포르 모델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2012년 18대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전후로 시진핑 주관의 중앙당교 간행물인 《학습시보(學習時報)》에 게재된 문장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들의 내용은 주로 싱가포르의 정치권력 운영과 감독제도, 서비스형 정부건설 경험 및 통치경험을 중국이 어떻게 배울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부패척결에도 관심
 
야오양 중국 베이징대 국가발전연구원장.
  앞에서 언급했듯이 2013년 18차 3중전회(三中全會)에서 향후 10년간의 중국 개혁과 발전 노선을 확정했다. 베이징대학 국가발전연구원 원장 야오양(姚洋)은 “18차 3중전회에서 결정한 바의 목표가 만약 2020년에 전부 실현될 수 있다면 중국은 ‘강한 정부+자유시장경제’ 체제가 성립되는 것으로, 이는 싱가포르의 ‘강한 정부+자유시장경제’ 모델을 본보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18차 4중전회에서는 의법치국(依法治國)의 문제와 탐오(貪汚)와 부패척결을 핵심으로 삼았는데, 이 또한 기본적으로 ‘공직자 재산신고제도’ 등 싱가포르 모델을 참조한 것이다. 부패척결 정책은 이미 실천으로 옮겼고 노동을 통한 재교육제도의 개혁과 수입분배제도에 대한 개혁은 시진핑 ‘신정(新政)’의 기점이 되고 있다. 이런 사실들을 학자들이나 기자들은 싱가포르 모델을 선호하는 시진핑의 적극적인 신호로 보고 있다.
 
  시진핑의 개혁은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추진되겠지만 그 모든 것은 공산당 1당 체제라는 틀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한계에서 볼 때 1당이 장기집권하면서 국민의 자유와 인권보다 경제발전을 중시해 여러 가지 제한을 가하지만, 눈부신 성장을 이룩한 싱가포르의 모델은 중국 지도층이 선호하는 모델임에 틀림없다.
 
  시진핑의 정치지도부 구성원들은 왕양과 리위안차오가 포함된 중앙정치국 위원 25명과 정치국 상무위원으로는 시진핑을 포함하여 리커창, 장더장, 위정성(兪政聲), 류윈산(劉雲山), 왕치산(王岐山), 장가오리로 이들 대부분이 싱가포르 모델에 관심이 많은 지도자들이다.
 
 
  싱가포르와 중국의 차이점
 
  하지만 중국 일각에서는 싱가포르 모델이 중국에 적합한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싱가포르를 연구한 톈진 시위당교연구생부(市委黨校硏究生部) 강사인 니밍성(倪明勝)은 《학습시보》에 ‘싱가포르 통치경험을 어떻게 학습할까’라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중국과 싱가포르의 정황적 차이와 사회경제 발전단계의 차이를 내세워, 섬의 통치경험이 대륙에 적합할지는 의문이라고 하였다.
 
  싱가포르관리대학 정치과 부교수 브리짓 웰시(Bridget Welsh)도 싱가포르 모델을 중국이 직접적으로 받아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그는 니밍성의 주장에서 한층 더 나아가 “중국공산당 내 부패의 정도가 매우 광범위하고 깊어서 중국 지도부는 당의 쇄신에 먼저 전력(全力)을 쏟아 부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렇다면 싱가포르와 중국의 다른 점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이에 대해 베이징대학 국가발전연구원 원장 야오양은 크게 4가지 차이점을 제시했다.
 
  첫째, 규모 면에서 중국은 정부가 모든 정보를 장악하기가 불가능하다.
 
  둘째, 중국에는 수많은 국영기업이 있는데 정부가 국영기업을 통하여 경제에 개입하고 있다.
 
  셋째, 중국에는 시장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실체로서의 강대한 지방정부가 존재한다.
 
  넷째, 중국 정부가 장악한 자원이 싱가포르 정부의 것보다 월등히 많다.
 
  이 같은 차이점 때문에 야오양 등 전문가들은 싱가포르 모델을 중국에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중국 베이징대 정치학자 리판(李凡)은 “중국 집권 당국이 싱가포르 모델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서 “싱가포르 국민은 기본적으로 결당(結黨)과 결사(結社),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지만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언론인 자오링민(趙靈敏)도 “중국 지도자들이 싱가포르의 정치체제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2011年 5월 싱가포르 대선(大選)에서 야당인 노동당이 여러 명의 후보자가 나오는 대선거구에서 승리했고 이후 두 번의 보궐선거에서도 승리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반대당을 탄압하기 위한 어떠한 부정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싱가포르 민중은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데 어떠한 거리낌도 없었다. 그러므로 중국 지도층이 반대의 목소리를 용납하는 싱가포르의 체제를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덧붙이자면 정치제도와는 무관하지만 중국의 지도층이 자신들이 향유하고 있는 수많은 기득권을 포기해 가며 싱가포르 모델을 받아들일지도 미지수이다. 또한 오랜 전통과 역사과정에서 형성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중국의 현황을 단지 표면적으로 받아들인 싱가포르의 제도와 정책으로 타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싱가포르 모델을 받아들이려 한다면 몇 가지 선행(先行)해야 할 조건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시진핑이 절대적으로 권력을 장악해야만 싱가포르 모델을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되는 것들을 제거할 수 있다.
 
  둘째, 더 중요한 것은, 본받으려는 싱가포르 모델의 껍데기가 아닌 그 배후의 주요 원칙 혹은 정신을 먼저 본받아야 한다. 즉, “위기를 직시한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실무적인 사업 수행에 힘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국민을 근본으로 한다, 단련하고 용감하게 나아간다” 등이다.
 
 
  리콴유의 해법
 
  이와 관련하여 생전에 리콴유가 지적했던 중국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리콴유는 89세 때 미(美) 국방부 고위관료였던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과 로버트 블랙윌(Robert Blackwill) 전 인도주재 미국대사와 인터뷰를 가졌다. 이 인터뷰에서 리콴유는 ▲외국인에게 어려운 언어 ▲자유로운 교류와 경쟁이 허용되지 않는 문화 ▲전근대(前近代)의 틀을 벗지 못한 법치가 없는 통치체제 ▲극심한 부패와 지역간의 경제적 격차 등을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점으로 꼽았다.
 
  리콴유는 “중국공산당은 그들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군벌(軍閥)시대가 다시 도래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다당제의 일인일표제(一人一票制)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지만, 통신·교통의 발달로 중국인들은 다른 나라의 제도와 문화에 노출될 것”이라면서 중국이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당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정부가 지금처럼 실용적인 정책을 취하면서 철저한 보안통제를 유지하여 폭동이나 반란을 허용하지 않는 동시에 성(省), 도시에 더 많은 권한을 주고 민초들에게도 더 많은 권한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해법이었다. 리콴유는 “작은 마을에서부터 의회제 민주제를 실시하여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발전하도록 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근대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행정법규와 실질적으로 중앙권위를 강화하는 법률제도를 정비하여 법으로써 지방정부와 공무원 그리고 국민을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기의식과 소통
 
찰리 멍거 버크셔 헤서웨이 부회장.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의 파트너인 찰리 멍거(Charlie Munger) 버크셔 헤서웨이 코퍼레이션 부회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정치제도는 특정 상황하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싱가포르의 정치제도”, “싱가포르 정부 체제가 세계에 존재하는 가장 성공한 정부체제”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세계 정치사를 연구하려면 리콴유의 생애와 그의 업적을 연구하라고 말한다.
 
  싱가포르 모델이 싱가포르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영토가 작아 통치하기 용이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싱가포르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싱가포르가 처했던 특수한 정치·군사·외교·경제적인 환경으로 인한 위기의식과 이것을 지도자가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국민을 이해시켰고 국민의 신뢰를 받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중국이 자신의 성장 모델로 싱가포르 모델을 선택한다고 해도 어느 수준까지 실현될 수 있을지 필자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분명 1980~1990년대의 개혁개방 시기 선전특구를 위시하여 연해지역 경제특구에서 외국인 투자유치의 싱가포르 모델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쑤저우공업단지와 같은 싱가포르와 중국과의 합작사업을 통해 싱가포르 식의 관리운영 기법과 기업윤리 및 다양한 싱가포르의 소프트웨어가 중국에 전수되어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개혁의 성공 여부는 지도자의 의지와 역량에 크게 좌우된다. 중국공산당 중앙문헌연구실은 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한 2012년 11월 15일부터 2014년 4월 1일까지의 시진핑의 발언과 강연 내용을 발췌하여 《시진핑, 개혁을 심화하라》를 편찬했다. 이 책을 통해 시진핑은 그의 개혁의지를 분명히 밝히면서 ‘지금이야말로 개혁을 심화할 때’라고 강조했다.
 
 
  리콴유, 시진핑 극찬
 
  리콴유는 생전에 시진핑에 대해 “대범하고 시야가 넓으며 통찰력이 깊고 신중하고 당당한 데다가 카리스마까지 넘치는 인물이다. 문화대혁명 기간 시련을 겪었지만 이를 잘 극복하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에 비할 만하다”고 극찬한 바 있다. 오랜 세월 세계의 수많은 지도자들과 교류해 온 리콴유이니만큼 그의 관찰은 정확할 것이다. 따라서 개혁주체로서의 시진핑의 역량은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시진핑과 싱가포르 모델》의 저자인 우진성(武津生)은 “시진핑에게 ‘강인정치(强人政治)’, 즉 ‘수퍼맨과 같은 지도자’가 되도록 조언한 것이 바로 장쩌민과 리콴유였다”고 말한다.
 
  2013년 이후 시진핑의 발언과 그가 추진하는 정책 등을 미루어 볼 때 중국이 변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시진핑은 싱가포르 식의 부패척결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법치국가 건설을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 이제 중국 지도층이 국민을 우선으로 하는 창의적이고 효율적이면서도 실무적인 싱가포르의 경험과 그 정신을 접목시켜 발전한다면 중국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 1등 국가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중국이 싱가포르 모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법치주의, 사회보장체계, 조직관리체계, 사회관리 서비스 시설, 다양한 소프트웨어 등을 받아들일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시진핑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화정책과 맞물려 덩샤오핑이 소망한 것이 현실이 되어 중국대륙에 쑤저우공업단지, 톈진생태도시, 그리고 광저우지식도시와 같은 도시들이 1000여 개 들어서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중국이 양적(量的)성장을 넘어 질적(質的)성장에도 성공할 경우, 동북아(東北亞)에서 대한민국은 어디쯤에 위치하게 될지 무척 걱정이 된다. 지금 우리야말로 과거 리콴유나 지금 시진핑처럼, 다음 세대를 위한 전면적인 제도 개혁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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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규    (2015-05-25) 찬성 : 99   반대 : 60
와진짜 박사시네요!!
우리나라에 이런 지식인이 계심에 감사드립니다짝짝짝!!!^^

20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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