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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포커스

탈레반의 부활

글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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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레반 대변인, 美가 작년 12월 28일 아프가니스탄전쟁 終戰 선언하자 “도망치는 주제에 무슨
    종전 선언이냐”
⊙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과 압둘라 압둘라 최고행정관이 권력 分點, 정국 혼란
⊙ 물라 오마르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주지사·법원 등 ‘그림자 정부’ 운영하며 권력 탈환 노려
⊙ 미국이 소련 견제 위해 키운 하카니 네트워크, 파키스탄으로 진출
⊙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아우르는 ‘탈레바니스탄’ 출현 우려

李長勳
⊙ 58세. 서울대 영문과 졸업.
⊙ 공군사관학교 영어교관, 《한국일보》 국제부 차장, 《주간한국》 편집장 역임.
⊙ 저서: 《홍군 VS 청군-미국과 중국의 21세기 아시아 패권 쟁탈전》
    《네오콘-팍스 아메리카나의 전사들》 《유러화의 출범과 21세기 유럽합중국》
    《유럽의 문화도시》 《러시아 곰은 웅담이 없다》 등.
탈레반 전사들이 파슈툰족 지역에서 기도하고 있다.
  #1.“내 뒤에는 단 한 명의 병사도 남아 있지 않다. 아프가니스탄을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난 1989년 2월 15일 옛 소련과 아프가니스탄을 가로지르는 아무다리야강을 건너면서 아프가니스탄 주둔 소련군 사령관 보리스 그로모프 중장(中將)이 남긴 말이다. 그로모프 사령관에게 아프가니스탄전쟁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다.
 
  소련은 지난 1979년 12월 27일 아프가니스탄의 친소(親蘇)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병력 8만5000명을 동원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소련군은 개전(開戰) 초기 오합지졸(烏合之卒)이라는 말을 들어온 반군(叛軍) 무자헤딘과 전투를 벌여 연전연승(連戰連勝)했다. 하지만 소련군은 갈수록 무자헤딘의 저항에 고전(苦戰)해야만 했다.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등에서 무기와 보급품을 지원받은 무자헤딘은 게릴라 공격으로 소련군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9년간의 전쟁으로 소련은 1만5000여 명이 사망하고 5만여 명이 부상하는 등 엄청난 인적 피해를 입고 결국 철수해야만 했다. 당시 그로모프 장군은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의 베트남이었다”고 술회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소련군이 첫 패배자는 아니다. 대영제국(大英帝國)은 1838년 제정(帝政) 러시아의 남하(南下)정책을 막기 위해 2만명을 아프가니스탄으로 파견해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도스트 모하마드 국왕을 몰아낸 후 괴뢰정권을 수립했다. 하지만 식민지배에 맞선 아프가니스탄 군대의 끈질긴 저항에 영국군은 1842년 카불에서 인도로 철수했다. 영국은 철군(撤軍) 도중 험준한 산악에 매복한 아프가니스탄 군대의 공격으로 병사 1만3000여 명이 몰살되고 4000여 명이 얼어 죽는 참패(慘敗)를 당했다.
 
  아프가니스탄의 국토는 대부분 산악지대와 사막이지만, 러시아, 중국, 인도, 이란 등을 국경으로 맞대고 있는 전략 요충지(要衝地)이다. 이 때문에 강대국들은 아프가니스탄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해 왔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은 페르시아, 알렉산더 대왕의 마케도니아, 칭기즈칸의 몽골제국, 인도의 무굴제국 등 강대국들에 맞서 한 번도 순순히 지배를 당하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軍警, 1월 1일부로 안보 책임 인수
 
  #2. 지난해 12월 28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나토 국제안보지원군((ISAF) 사령부에서 미국과 나토의 아프가니스탄전쟁 종전(終戰) 행사가 거행됐다. 나토 국제안보지원군 겸 미군 사령관인 존 캠벨 대장은 ISAF 깃발을 내리면서 시종일관 굳은 표정을 보였다. 탈레반의 기습 공격을 우려해 비공개로 진행된 이 행사에서 캠벨 대장은 공식적으로 나토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전쟁 종결을 선언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아프가니스탄전쟁이 끝났다는 내용의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과 나토군은 지난해 말 전투임무를 종결하고 올해부터 일부 병력을 잔류시켜 아프가니스탄 정부군과 경찰의 교육과 대(對)테러 작전 지원 임무만 수행한다. 이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에는 미군 1만800명을 포함해 1만3500여 명의 나토군 병력이 남아 아프가니스탄 군경(軍警)의 교육과 대테러 작전을 지원하게 된다. 잔류하는 미군과 나토군은 오는 2016년 말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단호한 지원(Resolute Support)’이란 안정화 임무를 수행한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군과 경찰은 지난 1월 1일 0시를 기해 나토군과 미군이 맡아 오던 자국 안보 책임을 완전히 인수했다. 미군과 나토군은 부대별로 C-130 수송기 등을 이용해 속속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있다. 자비울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도망치는 주제에 무슨 종전 선언이냐”며 미국의 철군을 비웃었다.
 
 
  美 역사상 가장 긴 전쟁
 
훈련 중인 아프간 정부군 특수부대. 아프간 軍警이 탈레반을 막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아프가니스탄전쟁은 미국이 벌인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다. 미국은 지난 2001년 9·11 테러 직후인 10월 7일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국제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와 이를 비호해 온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나토와 함께 아프가니스탄 주요 도시에 대한 공습을 하며 아프가니스탄전쟁을 시작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시작한 아프가니스탄전쟁은 후임인 오바마 대통령 임기 내내 이어져 총 13년2개월간 지속됐다. 이라크전쟁(2003년 3월~2011년 12월)은 8년9개월 만에 끝났다. 지금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은 12년간 이어진 베트남전쟁(1964~1975년)이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거둔 가장 큰 성과는 9·11테러의 주범인 알 카에다의 최고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한 것이고,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상당한 인적 피해도 발생했다. 탈레반의 공격과 테러 등으로 나토군 중 3485명이 사망했다. 미군이 2356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영국군(453명), 캐나다군(158명), 프랑스군(86명), 독일군(54명) 등의 순이다. 한국군도 지난 2007년 2월 바그람 기지에서 탈레반의 폭탄테러로 다산부대 소속 윤장호 하사(당시 병장)가 전사(戰死)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병사와 경찰은 1만여 명이 사망했다. 탈레반은 2만~2만50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탈레반의 자폭 테러와 나토 및 미군의 오폭 등으로 숨진 민간인도 2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특히 미국은 최소 1조 달러(1098조원)라는 막대한 전쟁 비용을 치러야만 했다. 이 비용에는 아프가니스탄 안정화를 위해 잔류하는 미군에 지원할 581억 달러(63조8000억원)는 제외됐다. 아프가니스탄 전비(戰費)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에 대한 미국의 전후(戰後)복구 원조사업이었던 ‘마셜플랜’ 규모마저 뛰어넘는 규모다. 미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전쟁 비용으로 7650억 달러를 책정했지만, 비용이 부족하자 상당액을 차입(借入)했다. 이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전비의 이자 비용으로만 1250억 달러가 지출됐다.
 
  또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부상을 당하거나 후유증을 앓는 군인들의 치료비가 1340억 달러에 달한다. 게다가 이들의 의료비와 퇴역군인 연금까지 합치면 향후 20~30년간 3조 달러 이상이 필요하다고 린다 빌름스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분석했다.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 재건에 투입될 자금도 1000억 달러를 웃돈다.
 
 
  아프가니스탄 안보 위해 매년 41억 달러 지원
 
  미국의 철군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문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평화가 정착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상황은 미국이 지난 2011년 12월 이라크에서 철군할 당시와 묘하게 닮았다고 볼 수 있다. 이라크에선 미군이 철군하자마자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간 종파 갈등이 격심해지면서 무장단체들이 발호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아랍의 봄’ 사태가 발생하면서 시리아에서 내전(內戰)이 발생했고, 이를 틈타 수니파 극단주의 반군인 이슬람 국가(IS)가 시리아는 물론 이라크까지 세(勢)를 확대했다. IS는 이라크의 주요 도시들을 점령하고 정부군과 대치하고 있다. 미국은 할 수 없이 IS를 격퇴하기 위해 이라크와 시리아를 공습하기 시작했고, 지상군 병력 3000여 명을 이라크에 파견해 지원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이와 같은 상황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반복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탈레반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거나 아프가니스탄이 알 카에다의 온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군과 경찰은 아직 탈레반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군과 경찰의 병력은 모두 35만명 규모이지만, 상당수가 제대로 훈련조차 받지 않았다.
 
  이에 따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정부군과 경찰의 전력(戰力) 강화와 자체 치안유지 능력을 갖추도록 철군 이후 매년 41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2015년부터 10년간 지원키로 했다. 이 자금의 절반은 미국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나토와 국제사회가 지원한다. 그 내용을 보면 프랑스 2억5000만 달러, 이탈리아 1억2000만 달러, 영국 1억 달러, 호주 1억 달러, 터키 2000만 달러 등이다. 우리나라도 5년간 5억 달러를 지원한다.
 
 
  ‘카불공화국’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
  또 다른 문제는 아프가니스탄의 정치 불안정과 심각한 부정부패이다. 정치 불안정은 지난해 6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비롯됐다. 당시 아슈라프 가니 후보가 압둘라 압둘라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됐지만 무려 3개월간 부정선거 시비가 벌어졌다.
 
  외무장관을 역임한 압둘라 후보는 반(反)탈레반 부족 연합체인 북부동맹을 이끌다 암살당한 군벌 아흐마드 샤 마수드 장군의 최측근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우즈베크계(系)와 타지크계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압둘라 후보는 선거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고 버텼다. 아프가니스탄의 최대 민족인 파슈툰족 출신이자 재무장관을 지낸 가니 후보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재검표 결과에 따라 자신이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통합 정부 구성을 제안하면서 두 후보를 중재해 겨우 부정선거 문제가 해결됐다. 가니 후보는 지난해 9월 대통령에 취임했고, 압둘라 후보는 총리직과 유사한 ‘최고행정관(CEO)’이란 직책을 맡았다. 최고행정관은 안보위원회를 비롯한 안보·경제 기구에서 대통령과 동등한 지분을 가지고 매주 내각 회의를 주재하는 등 실질적 권한을 갖는다. 최고행정관은 또 모든 장관과 2명의 부총리가 참가하는 장관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이 위원회가 정부의 행정권을 행사한다.
 
  대통령과 최고행정관 간의 권력분점(分點)은 현행 아프가니스탄 헌법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 또 대통령과 최고행정관의 권한이 모호하다 보니 양측이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내각 구성도 완료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최고 통치자가 사실상 두 명이다 보니 평화 정착을 위한 각종 정책도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또 정부의 행정력도 카불 이외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재 정부는 ‘카불공화국’으로 전락했다.
 
  게다가 관료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가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부패는 상상을 초월한다. 하미드 카르자이 전 대통령부터 말단 경찰까지 부패와 연루돼 있다. 존 앨런 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사령관은 “아프가니스탄 장래에 대한 최대 위협은 탈레반이 아니라 부패”라고 지적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지난해 175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부패인식지수에서 아프가니스탄은 172위를 차지했다.
 
 
  콜롬비아 같은 ‘마약국가’ 우려
 
아프간 병사들이 양귀비 밭을 가로질러 행군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농민들이 재배하는 양귀비도 문제다. 양귀비는 아편의 원료인데, 가난한 농민들의 유일한 수입원은 아편용 양귀비를 재배하는 것이다. 탈레반은 아편 농사를 통해 군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34개 주(州)에서 아편이 합법화된 주는 6개 주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불법 재배이지만 정부가 이를 단속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의 재배 면적은 22만4000ha(2240km²)인데, 지난 2013년에 비해 7%나 늘어나면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국토의 34% 규모로 한반도 면적과 맞먹는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된 아편은 전(全) 세계 공급 물량의 90%에 달한다. 특히 양귀비를 집중 재배하고 있는 9개 주는 탈레반이 득세하고 있는 지역들이다. 탈레반은 아편 수출로 얻은 수억 달러의 자금으로 병력을 모집하고 무기를 구입해 왔다.
 
  이 같은 상황을 방치할 경우 아프가니스탄은 민주정부가 뿌리를 내리더라도 마약조직과 반군들이 실질적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콜롬비아처럼 ‘마약 국가’가 될 수 있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그동안 대대적인 양귀비 제거작전을 벌였지만 농민들의 반발만 초래했다. 미국이 아편 근절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쏟아 부은 자금만 76억 달러에 달한다. 농민들은 양귀비 재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관리들에게 뇌물까지 바치기도 했으나, 지금은 탈레반에 아예 보호를 요청하고 있다. 탈레반은 농민들에게 양귀비 씨앗과 농사 자금까지 제공하고 있다.
 
  장 뤽 르마이유 유엔 마약범죄사무국(UNODC) 정책 대표는 “아프가니스탄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양귀비 재배를 뿌리 뽑아야 한다”면서 “아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탈레반을 소탕할 수도 없고, 아프가니스탄의 경제 발전은 더욱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파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의 평화 정착에 얼마나 협조하느냐도 중요하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자체 치안능력을 강화한다 해도 파키스탄에 있는 탈레반과 알 카에다가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끊임없이 괴롭힌다면 평화를 정착시킬 수 없다. 이 때문에 파키스탄 정부가 적극적으로 탈레반과 알 카에다를 소탕하는 것이 필요하다. 파키스탄은 과거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할 때 이를 인정했던 국가다.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을 잠재적 적국(敵國)인 인도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 왔다.
 
  특히 파키스탄은 이슬람권에서 반미(反美) 정서가 가장 높은 국가다. 전체 국민 1억8400만명 가운데 97%가 이슬람을 믿는다(수니파 75%, 시아파 20%). 파키스탄은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자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무슬림이 많은 나라다. 국교(國敎)인 이슬람은 사회와 문화는 물론 정치, 경제, 법률에까지 큰 영향을 끼치며 무슬림의 5대 의무가 모든 가치 기준의 척도가 된다.
 
  파키스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016달러고, 전체 인구 중 5분의 1이 하루 1.25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극빈층이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파키스탄에선 다른 어느 국가보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파키스탄은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 미국 편에 서서 소련과 맞섰지만, 1990년대 핵(核)개발에 나서면서 미국과 갈라섰다. 당시 미국은 파키스탄에 강력한 제재(制裁)조치를 취했다. 이때부터 파키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반미 정서를 부추겨 왔다.
 
 
  ‘아프팍전쟁’
 
  파키스탄 군부(軍部)의 반미 정서도 매우 심하다. 파키스탄 국방부 산하에 있는 정보부(ISI·Inter-Services Intelligence)는 탈레반과 알 카에다를 비롯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지원했다는 의심을 받아 왔다.
 
  미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전쟁을 ‘아프팍(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AfPak)전쟁’이라고 명칭까지 바꿔 가며 그동안 파키스탄의 협력을 끌어내려고 총력을 기울였다. 미국이 9·11테러 이후 지금까지 파키스탄에 지원한 자금은 매년 20억 달러씩 모두 240억 달러나 된다. 미국이 파키스탄에 공을 들인 이유는 무엇보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의 파슈툰족 거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탈레반과 알 카에다를 소탕해야 하기 때문이다.
 
  파슈툰족은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종족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체 인구의 42%인 1400만명이나 된다. 파키스탄에는 아프가니스탄보다 훨씬 많은 2800만명(전체 인구의 15%)의 파슈툰족이 산다. 험준한 산악지대인 파키스탄의 파슈툰족 거주 지역은 그동안 탈레반과 알 카에다의 피신처이자 보급기지 구실을 했다. 이 지역의 청년 가운데 상당수는 탈레반과 알 카에다에 가입해 전사(戰士)가 됐다.
 
  탈레반은 크게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하카니 네트워크, 파키스탄 탈레반운동(TTP) 등 3개 그룹으로 나뉜다.
 
  애초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남부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파슈툰족에 바탕을 둔 부족단체에서 출발한 조직이었다. 탈레반은 전통 이슬람학교(마드라사)의 학생들을 가리키는 탈레브의 복수형(複數形)이다.
 
  원조(元祖) 격인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하 탈레반으로 표기)은 지도자인 무하마드 오마르를 추종하는 세력이다. 탈레반은 미국이 전투 종결을 선언하고 병력을 대거 철수시키자 아프가니스탄에서 정권을 다시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있다. 탈레반은 지난 1990년대 중반 활동을 시작, 지도자 오마르를 중심으로 결속해 1997년 정권을 장악했으며 이후 2001년 미국의 공격으로 축출되기까지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했다. 오마르와 탈레반 지도부는 미국의 공격이 시작되자 잠적했다.
 
 
  부패한 정부보다 탈레반이 낫다
 
미군의 추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한 아프간 탈레반 지도자 무하마드 오마르.
  ‘얼굴 없는 지도자’ ‘애꾸눈 지도자’로 알려진 오마르는 ‘물라’라는 호칭으로 불리는데, 스승이라는 뜻이다. 칸다하르의 한 마드라사에서 교편을 잡았던 오마르는 지난 1994년 꿈에서 아프가니스탄에 평화를 찾아 주라는 예언자 무하마드의 계시를 들었다고 한다. 자신을 따르던 젊은 학생들을 모아 탈레반을 결성한 오마르는 지역 군벌(軍閥)들을 패배시키고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했다. 이슬람 극단주의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오마르는 알라가 축복한 아프가니스탄을 세계에서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가 엄격하게 시행되는 유일한 국가로 만들었다. 탈레반 정권은 영화와 음악을 금지했고, 여성에게는 교육 기회를 박탈하고 전신(全身)을 덮는 부르카를 착용하도록 강제했다. 세계 문화유산인 바미얀 석불(石佛)을 파괴하기도 했다.
 
  오마르의 목표는 무하마드가 이뤘던 신정일치(神政一致)의 초기 이슬람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다. 또 그는 아프가니스탄을 이슬람의 순수한 땅으로 만들고, 모든 이슬람 국가들을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미국이 그의 목에 현상금 1000만 달러를 거는 등 집요하게 추적해 왔지만, 그는 현재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접경지대에 숨어 지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했던 탈레반 지도부는 오마르를 제외하면 대부분 미군의 공습 등으로 사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은 지금까지도 건재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탈레반이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해 결속을 다져 왔기 때문이다.
 
  현재 오마르를 수장(首長)으로 하는 15인 위원회 ‘케타 슈라’라는 최고의사결정기구가 탈레반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다. 탈레반은 또 각 주마다 이른바 ‘그림자 주지사’를 두고 있다. 그림자 주지사는 지역 사령관을 겸임하면서 각 지역별로 상당한 규모의 전사들을 이끌고 있다.
 
  이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의 낮과 밤을 지배하는 세력은 서로 다르다. 낮에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임명한 주지사가 각 지역을 통치하지만, 밤이 되면 오마르가 임명한 탈레반 주지사가 등장한다. 탈레반은 정권 재탈환에 대비해 일종의 ‘그림자 정부’를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탈레반은 주지사 이외에도 경찰 총수와 지구 행정관 및 법관까지 임명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거두고 그 대가로 철저하게 안전을 보장해 준다. 아프가니스탄 국민들 중 상당수는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정부보다 차라리 탈레반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패밀리 테러리스트’
 
하카니 네트워크를 만든 지도자 잘라루딘 하카니.
  하카니 네트워크는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항해 게릴라전을 벌였던 무자헤딘 지도자 잘라루딘 하카니가 지난 2003년 조직한 무장 단체이다. 병력이 4000~1만2000명이나 되는데 가장 위험한 조직이라는 말을 들어 왔다.
 
  현재 하카니 네트워크는 30대 후반인 잘라루딘의 아들 시라주딘 하카니가 이끌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12년 하카니 네트워크를 테러단체로 지정하고 지도자인 시라주딘에게 현상금 500만 달러를 걸었는데, 지난해 8월 현상금을 1000만 달러로 올렸다.
 
  하카니는 이탈리아 마피아와 비슷하다. 영화 〈대부〉의 코를레오네 가문처럼 하카니란 성을 가진 씨족들이 뭉친 조직이다. 이 때문에 ‘패밀리 테러리스트’라고도 불린다. 지난 1980년대 부족마을 수준이었지만 잘라루딘 족장을 중심으로 9명의 형제 자식이 뭉쳐 인근 부족을 통합하며 힘을 키운 점도 마피아와 닮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지난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전쟁을 방해하고자 하카니 가문을 적극 지원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카니 가문의 존재는 미국엔 악몽과도 같다. 오사마 빈라덴처럼 미국이 스스로 키운 ‘암 세포’이기 때문이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잘라루딘을 백악관에 초청해 ‘선(善)의 화신’이라 칭송하기도 했었다.
 
  특히 하카니 네트워크는 자살폭탄 테러와 첩보 활동에 능하다. 지난 2007년 카불 인터콘티넨털호텔 폭탄 테러, 2008년 인도대사관 폭탄 테러, 2010년 카불 시내 동시 다발 공격과 바그람 미군기지 폭탄 테러 등이 모두 하카니 네트워트가 저지른 소행들이다. 탈레반에서 이들의 자살폭탄 노하우를 배워 갈 정도다.
 
  하카니 네트워크는 파키스탄 군정보부(ISI)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주로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활동하던 하카니 네트워크는 지난 2008년 이후 시라주딘이 지도자가 되면서 활동 무대를 파키스탄 등으로 넓혀 왔다.
 
 
  파키스탄 탈레반, TTP
 
  ‘테릭-이-탈레반 파키스탄(TTP: 파키스탄 탈레반 운동)’은 지난 2007년 파키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13개가 연합해 결성됐다. ‘파키스탄 탈레반’이라고도 불리는 이 단체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는 별개의 조직이다.
 
  TTP는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지대인 파키스탄의 연방직할부족지역(FATA)을 본거지로 삼아 활동해 왔으며 3만~3만5000명으로 추산되는 대원들은 대부분 파슈툰족이다. TTP는 그동안 갈수록 세력을 확대해 왔고 현재는 부족 단위 30여 개 무장그룹이 가담한 상태다. 존 브레넌 미 CIA 국장은 TTP가 알 카에다와 자금과 테러기법을 공유하는 밀접한 관계라고 밝힌 적이 있다. 물론 TTP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도 유대를 맺어 왔다.
 
  TTP는 파키스탄 정부를 ‘미국의 꼭두각시’로 보고, 이슬람주의에 입각한 국가 건설을 목표로 파키스탄 정부군과 경찰을 상대로 지속적인 공격을 벌여 왔으며 각종 테러 공격도 자행해 왔다. TTP는 서구식 교육이 학교에서 이뤄지는 것을 반대해 왔고, 특히 여성이 교육받는 것은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다고 주장해 왔다.
 
  TTP의 초대(初代) 최고지도자는 바이툴라 마흐수드였는데, 지난 2007년 12월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단 총리의 암살과 지난 2009년 3월 라호르 경찰학교 습격사건 등 굵직한 테러를 배후에서 지휘했던 과격한 이슬람 극단주의자였다. 미국은 지난 2009년 50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렸던 마흐수드를 무인(無人) 공격기로 공습해 제거했다.
 
  미국은 마흐수드가 죽자 TTP가 와해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마흐수드의 사촌 동생인 하키물라 메수드가 새로운 지도자로 등극했다. 메수드는 나토와 미군의 물자 수송로인 카이버 패스를 공격하는 등 마흐수드보다 더욱 과격한 테러를 자행했다. 현상금 500만 달러가 걸렸던 메수드도 지난 2013년 11월 미국의 무인공격기의 폭격으로 숨졌다.
 
 
  홍보전문가 출신 지도자
 
파키스탄 병사들이 페샤와르 인근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TTP를 현재 이끌고 있는 인물은 마울라나 파즈룰라이다. 하키물라 사망 이후 최고지도자가 된 파즈룰라는 파키스탄 북서부 스와트 지방에서 지하드(이슬람 성전)를 선동하는 불법 라디오방송을 운영했었다.
 
  파즈룰라는 야전(野戰) 지휘관 출신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라디오 선동방송으로 구축한 지지기반을 통해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파즈룰라는 전투보다는 홍보에 더 관심이 많은 독특한 카리스마를 보이고 있다. 농부의 아들이었던 파즈룰라는 지난 2004년부터 시작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반(反)서방, 반테크놀로지를 표방하는 무장투쟁 논리를 설파했다. ‘물라 라디오’라는 별명으로 불린 파즈룰라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원하는 소아마비 등 각종 질병의 예방접종에는 음모가 있다고 선동하기도 했다.
 
  파즈룰라는 서구식 학교와 여성에 대한 교육을 ‘악(惡)’으로 간주하면서 테러 공격을 감행할 것을 지시해 온 인물이다. 201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10대 여성교육 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 암살을 지시한 것도 파즈룰라였다. 유사프자이는 지난 2012년 10월 스쿨버스로 하교하던 중 TTP 대원이 쏜 총에 두개골을 맞아 죽을 뻔했었다. 유사프자이는 TTP의 여성교육 탄압을 영국 BBC 방송에 고발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던 여학생이다.
 
  파즈룰라는 지난해 12월 페샤와르의 군 부설 학교를 무차별 테러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TTP 대원 7명은 이 학교에 침입해 무고한 10대 학생 132명과 교사 등 모두 148명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TTP가 어린 학생들을 테러 대상으로 삼은 것은 파키스탄 정부군이 지난해 6월부터 진행해 온 소탕 작전에 대한 보복이었다. 정부군의 작전으로 TTP 대원 1800여 명이 사살되자 TTP는 군 자녀들이 공부하는 이 학교를 테러 공격한 것이었다.
 
  아무튼 TTP의 학교 테러 공격으로 파키스탄 정부와 군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6년 동안 사형 집행을 유예해 온 교도소 수감 테러범 500명을 처형할 계획임을 밝히는 등 ‘피의 보복’을 천명했다.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좋은 탈레반과 나쁜 탈레반을 구분하지 않겠다”면서 반테러 특별부대 구성, 테러범에 대한 재정지원 중단 등 17개항의 반테러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샤리프 총리와 파키스탄 정부의 강경한 입장은 그동안 전략적 목적에 따라 탈레반을 선별적으로 지지해 온 이중적 입장을 철회하는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접근하는 중국
 
  실제로 파키스탄 군부의 최고 실력자 라힐 샤리프 참모총장은 카불을 방문해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대테러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물론 파키스탄 정부의 강력한 대테러 정책이 TTP를 완전 소탕하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근거지까지 없애는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이다.
 
  미군 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평화 정착과 안정화 여부는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의 국제질서에서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다시 정권을 잡는다면 이란-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반미벨트가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중국의 신(新)실크로드 전략에도 중요한 지역이다. 중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자국 편으로 끌어들인다면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인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군사 동맹국인 파키스탄을 합쳐 육상 실크로드 경제권을 완성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경제 원조란 ‘당근’을 제시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중국은 ‘아프가니스탄에 관한 이스탄불 프로세스’를 통해 아프가니스탄 재건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지난해 10월 베이징을 방문한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에게 향후 4년간 20억 위안( 3400억원)을 지원키로 약속하기도 했다. ‘이스탄불 프로세스’는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인도·러시아 등 주변 14개국이 아프가니스탄 문제 해결을 위해 2011년 결성한 국제회의인데, 미국은 배제돼 있다.
 
  중국은 구리광산 개발에 30억 달러를 투자한 것을 비롯, 유전 등 모두 1조 달러 규모의 아프가니스탄 자원 개발권 확보 등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또 신장(新疆) 지역 위구르족의 분리 독립 움직임 차단을 위해서도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협력할 필요가 있다. 양국은 76km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위구르 분리 독립 운동 단체가 연계돼 있다고 중국 정부는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와 이란
 
  중국의 아프가니스탄 접근은 자칫하면 또 다른 ‘거대한 게임(Great Game)’이 될 수도 있다. ‘거대한 게임’은 제정러시아와 대영제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놓고 패권 싸움을 벌인 것을 말한다. 미국이 인도에 대해 아프가니스탄 지원에 적극 나설 것을 요청한 것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도도 파키스탄을 견제하고 라이벌인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접근하고 있다. 인도는 타지키스탄과 쌍무 협정을 맺고 파르코르에 첫 해외 군사 기지를 설치한 바 있다. 인도의 목표는 중앙아시아에서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인도는 현재 세계에너지 6위 소비국이다. 인도로서는 당연히 중앙아시아가 전략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과의 관계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아프가니스탄이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AARC)에 가입한 것도 인도의 적극적인 지지 덕분이었다. 인도는 지난해 파키스탄이 제안한 중국의 SAARC 가입안을 단호하게 거부했었다.
 
  아프가니스탄 정세에서 또 다른 변수는 이란이다. 이란은 과거 탈레반 정권 시절 아프가니스탄과는 극도로 사이가 나빴다. 시아파의 맹주(盟主)인 이란은 수니파였던 탈레반 정권과 사사건건 대립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전쟁 종전 선언은 이란에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이란은 아프가니스탄을 경유해 파키스탄과 인도를 연결하는 파이프라인 건설을 추진해 왔으나, 미국의 방해로 번번이 실패했다. 이란으로선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해 온 미군이 눈엣가시인 셈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체 인구 가운데 16%를 차지하고 있는 하자라족은 시아파이다. 이란은 이를 지렛대로 이용해 앞으로 아프가니스탄과의 새로운 협력 관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帝國들의 무덤’
 
  아프가니스탄은 ‘제국들의 무덤’이라는 말을 들어 왔다. 미국은 소련에 이어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사실상 패배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종전 선언과 철군 이후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바니스탄(Talebanistan·탈레반의 나라)’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탈레반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고 알 카에다까지 부활한다면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물론 국제사회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때문에 국제사회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출구전략(Exit Strategy)’이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전쟁과 기아, 종교적 극단주의와 각종 테러 등에 시달려 왔던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누구보다도 평화가 정착되기를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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