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시진핑 시대 중국의 경제·사회 개혁은 가능할까? : 월간조선

중국에서 시진핑 체제가 출범한 이후, 중국공산당의 정치·경제 개혁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지난해 11월 15일 제18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18기 1중전회)에서 총서기로 선출된 직후, 덩샤오핑이 지난 1982년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했던 광둥성 일대를 되짚으며 향후 자신의 정치노선이 개혁개방 중시라는 것을 중국 대내외에 천명했다.

총서기로 참가한 첫 정치국 집단학습회에서는 “물건은 반드시 썩고, 썩은 다음에는 벌레가 생겨나게 된다”며 부정부패 일소 의지를 공식화했다. 이를 계기로 중앙기율검사위가 썩은 부위 도려내기에 나서 중국 전역에 공무원 부정부패 사정 칼바람이 몰아쳤다. 중국의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말 공직자 재산신고 의무화를 규정한 법률을 올해 입법 계획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중국 최고인민법원은 공직자에게 1만 위안(한화 170만원 상당) 이상의 뇌물을 건넨 사람을 반드시 형사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해석 지침을 마련해 산하 법원에 하달했다. 중국 사법 당국이 뇌물을 건넨 사람에 대한 구체적인 처벌지침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중국 언론은 부패를 사전에 막기 위한 의미 있는 조치로 해석했다.

공산당 내부 동력만으로 경제개혁추진 어려워

중국 베이징 《신징바오(新京報)》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 총서기는 지난해 12월 31일 베이징에서 열린 당 정치국 집단학습에서 “개혁개방은 대단히 어렵고 힘든 임무로 반드시 대(代)에 걸쳐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 총서기는 “개혁개방이 없었다면 오늘의 중국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내일도 없다”며 “개혁개방 과정에서 생기는 모순은 개혁개방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진핑의 개혁개방 가속화 의지는 최근 문제가 된 중국 광둥성의 유명 잡지 《난팡저우모(南方週末)》 파업 사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당국의 검열에 반발해 지난 1월 6일 시작된 이 잡지의 파업 사태는 《난팡저우모》 기자들이 광둥성 당위원회와 협상 끝에 파업을 풀어 일단락됐다. 중국 내외에서는 이 사건이 ‘시진핑 총서기의 개혁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라고 여기며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유심히 지켜봤다. 결국 시진핑 총서기는 중국의 6세대 정치인 중 선두주자인 후춘화(胡春華) 광둥성 당서기를 소방수로 보내 “광둥성 정부가 기사에 대해 사전검열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사태를 매듭지었다.

지난 두 달 동안 시진핑 총서기가 보인 개혁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 총서기가 향후 자신의 집권 10년 동안 중국의 지식인들과 서구(西歐)가 요구하는 정치·경제 개혁을 제대로 실시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지금까지의 분석은 그것이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정치에 세 개의 정파가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아는 바다. 하지만 시진핑이 속한 태자당(太子黨), 공청단(共靑團), 그리고 상하이방(上海邦) 등이 경제노선을 두고 과거 마오쩌둥(毛澤東)이나 덩샤오핑(鄧小平) 시절처럼 목숨을 건 정쟁을 벌였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바로 이것이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전의 중국과 현재의 중국이 다른 점인데, 경제개혁을 위한 정치동력은 톈안먼 사태를 계기로 이미 사라졌고, 따라서 권력구조 내부의 동력으로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어렵게 됐다는 뜻이다. 최근 보시라이(薄熙來) 사건을 통해 권력투쟁이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은 사실이지만, 다툼은 누가 더 많이 권력을 갖느냐의 단순논리를 넘지 않았다.

중공 초기에는 자본주의 부분 인정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이 처음부터 자본주의를 상당 부분 인정하면서 출발했다면 대단히 놀랄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 10월 1일 정식 출범했다. 이틀 전 9월 29일 새 국가의 기본 틀을 토의하기 위해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제1차 전체회의가 개최됐다.

놀랍게도 회의의 공동강령에는 보통선거와 토지소유권을 의미하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포함되어 있었다. ‘신민주주의 사회(新民主主義社會)’라는 용어로 설명되는 초기의 정치경제 원칙은 우선 자본주의 요소들을 일정 부분 수용한 특징이 있었다. 다음 민주주의 혁명을 거쳐 봉건주의를 종식시키고, 자본주의의 물적 기반에 기초,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목표도 뚜렷했다. 중국공산당 역시 프롤레타리아만을 위한 계급정당이 아닌 중국 민족을 대변하는 민주세력의 정당으로 포장했다. 결국 자본주의의 장점을 인정하는 기류는 이미 형성됐다고 볼 수 있는데, 후일 친자본주의 정파(政派)인 주자파(走資派)가 공산주의 중국에서 아무런 맥락 없이 나온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중국공산당의 초기 정치경제 목표는 자본주의의 척결이 아닌, 소작료로 대변되는 착취적인 봉건주의의 타파였으므로 제대로만 된다면 생산성은 당연히 향상될 수밖에 없었다. 1949년 1차 토지개혁에 이어 1950년 6월 정식으로 채택된 토지개혁법 덕분에 농토는 더욱 균등하게 분배됐다. 1952년 말 중농이 전체 농가의 80%에 이르렀다는 통계를 보면 개혁의 성과는 확연해진다. 개혁은 곧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 1949년 1억1300만t이던 곡물 생산량이 1952년에는 거의 50% 증가한 1억6400만t이 됐다.

따라서 토지의 매매와 임대가 가능한 소유권, 그리고 그것에 기초한 생산 인센티브의 위력은 이미 증명됐다고 볼 수 있다. 이상 초기 중국경제의 모습을 통해 정치구도가 경제제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를 아는 데는 별 무리가 없다.

점진적 사회주의 실현 깬 마오

비극적이게도 마오쩌둥은 사회주의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인민정치협상회의 제1차 전체회의 입장을 갑자기 뒤집었다. 노선 변경은 1953~58년 ‘사회주의 개조’라는 이름으로 추진된 경제 집단화와 1957년 ‘반우파 척결’이라는 모습을 띠며 가시화됐다. 여기서 경제 집단화(collectivization)는 소련식 집체경제를 의미했고, 이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우파분자를 숙청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마오쩌둥은 왜 갑자기 기존 노선을 변경한 것일까? 토지개혁의 성과가 가시적이었고, 한국전에서 세계 최강 미국과 대등한 싸움을 했다는 점이 마오쩌둥의 자신감을 고취시켰다. 과거 공산주의 원칙을 전국에 적용시키는 데는 힘이 부쳤으나 이제는 문제가 극복됐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우파에 대한 숙청과 경제 집단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자 더욱 대담한 정책이 뒤를 이었다. 1958년부터 시작된 유명한 대약진 운동은 과감한 정책의 결정판이었다. 모든 생산수단의 집체화를 위해 인민공사가 설립됐다. 인민공사란 농업, 공업, 상업, 교육, 군대 등 다섯 개의 사회 주체를 통합하여 만든 군대식 농촌 조직을 의미한다. 1958년까지 전체 농가의 90%가 인민공사에 편입된 것을 보면 공산화의 속도를 짐작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인민공사는 결국 개인의 생산 인센티브를 없애는 조치였지만, 마오의 절대권력과 카리스마 때문에 인센티브를 강조하는 정파의 주장은 정치화할 수 없었다.

그러나 대약진 운동이 실패로 끝나면서 얘기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1959~62년 연속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은 물론, 당시 기근으로 약 40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통계는 실패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1958년까지만 해도 2억t이었던 곡물 생산은 1961년 1억4300만t으로 급감했다. 1966년이 돼서야 과거의 생산량을 회복할 수 있었으므로 농촌의 기근이 거의 8년 동안 지속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원인은 우선 개인의 생산 인센티브가 사라진 데 있었다. 갑작스런 공업화 정책 때문에 자원이 농촌에 충분히 배분되지 않은 것도 이유였다. 도시의 산업화를 위해 농촌으로부터 과도하게 농산물이 공출된 사실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제관 차이가 정치투쟁 촉발

대약진 운동을 가장 심도 있게 분석한 중국계 전문가 리 웨이(Li Wei)와 데니스 양(Dannis Tao Yang)의 다음과 같은 멋진 설명은 대약진 운동의 약점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집단화, 즉 중앙집중식 계획경제를 강요하면서 중국정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체제적인 위험(systemic risk)을 만들어 냈다. 결정이 중앙집권화됨으로써 어떤 정책상의 실패도 결국은 전국적인 충격으로 발전하는 구조가 형성됐던 것이다. 여기서 중국의 사례가 독특한 이유는 대약진 운동의 비극이 중앙 계획경제의 체제적인 실패(systemic failure)의 결과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The Great Leap Forward”,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대약진 운동이 실패했다는게 속속 밝혀지자 마오쩌둥은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중시하는 중국 지도자들이 자본주의 추종자라는 비꼬는 의미로 붙여준 주자파가 권력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온 셈이었다. 마오가 1959년 주석 자리를 내놓는 선에서 일차 수습안이 마련됐고 주석직은 주자파의 거두 류사오치(劉少奇)가 승계했다. 하지만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자 책임 추궁은 더 이어져 1962년 1월에 개최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확대공작회의(7000인 대회)에서는 신격화되어 있는 마오도 자아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주자파의 또 다른 중심축인 덩샤오핑이 그 유명한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들고 나온 것도 같은 해 7월이었다. 여하튼 “흰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라는 그의 주장은 주자파의 실용주의 노선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당시 상황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경제정책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가 충돌하며 경제관(經濟觀)이 ‘정치화’됐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정치화’란 특정의 이슈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가 정치투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중국공산당 내 주자파가 마오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는 걸 의미한다.

주자파의 공세는 대단히 매서워 1961년 제8기 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9차 회의(9중전회)에서 대약진 운동은 공식 폐기됐고, 실용주의 정책이 활성화하면서 중국경제는 다시 회복됐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는 경우 마오가 다시 권력을 잡을 기회는 당연히 적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마오는 주자파의 조치를 정치적 도전으로 인식하게 된다.

마오는 경제노선에서 패했으므로 권력의 회복을 위해서는 다른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공산주의의 가장 전형적인 정치투쟁 방식인 이데올로기를 활용한 공격이 시작됐는데, 이상이 1966년 이후 마오가 진두지휘한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의 배경이다. 홍위병, 노동자, 농민을 동원한 정치투쟁은 공산주의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명목하에 자본주의 요소를 뿌리 뽑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1968년 류사오치가 당에서 영구 제명됐고, 덩샤오핑 역시 관직을 삭탈당한 후 하방(下放)됐다. 이후 마오가 권력을 다시 독점하며 이데올로기 중심의 통치를 강화하자 중국경제는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고, 그런 비참한 상황이 마오가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다고 보면 된다.

마오 독재 시작으로 경제개혁 정체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운동으로 중국을 경제·정치적으로 장악하려 했다.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에게 붙잡힌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가운데).

애초 경제체제 혹은 경제정책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는 사소한 인식의 차이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관은 정치투쟁의 수단으로 진화했고, 그 결과 경제질서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변화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경제관을 지닌 집단이 공존하며 경쟁했기에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중국 출범 초기 때 자본주의 요소가 많이 가미됐던 경제정책이 몇 번이고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정파 간의 경쟁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이치상 경제개혁은 정체될 것이다.

1976년 1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9월에는 마오쩌둥이 사망했다. 이어 4인방과 화궈펑(華國鋒)의 투쟁에서 화궈펑이 승리했다. 덩샤오핑은 저우 총리가 죽기 전 저우의 후원에 힘입어 부총리로 다시 복권된 적이 있지만, 마오는 저우가 사망하자 문혁 수혜자들과는 반대 노선을 걷고 있는 그를 다시 숙청했다. 하지만 마오와 달리 신흥 세력인 화궈펑은 방대한 지지기반을 지니고 있던 덩을 통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 여러 압력에 굴복, 1977년 덩을 복권시켜야 했고, 이윽고 1978년 12월 11대 3중전회에서는 노선이 다른 두 정파가 충돌하게 된다.

회의 직전 사안을 조정하기 위해 열린 중앙공작회의에서 마오의 지시와 결정은 모두 옳다는 화궈펑의 양개범시론(兩個凡是論)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자 화궈펑은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화궈펑이 회의에서 자아비판을 한 것을 보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중앙공작회의 마지막 날 덩이 행한 <사상을 해방하고, 실사구시, 일치 단결하여 미래를 향해 보자>는 제목의 연설에는 주자파의 사고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역사는 바로 이 순간을 중국 개혁개방 정책의 시작으로 기억하고 있다. 역사는 다시 반복되어 서로 다른 경제 시각을 지닌 정파들이 충돌했고, 그 결과 승리한 측의 경제관이 새로운 경제제도를 결정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덩샤오핑의 고민과 자오쯔양의 ‘당정분리론’

자오쯔양은 ‘당정분리론’을 통해 당의 권력을 민간에 이양하자고 주장했지만 덩샤오핑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985년 인민대회당에서 함께 앉아 있는 자오쯔양(왼쪽)과 덩샤오핑(오른쪽).

덩샤오핑 시대 시장원리의 도입은 과거와는 비교도 안되는 수준으로 이루어졌고, 대외개방 역시 파격의 연속이었다. 문제는 ‘외형상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의 정치경제 체제가 이를 감내할 수 있느냐’였다. 다시 말해 자유경제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중국지도부가 새로운 경제운영 방식을 만들 수 있는지가 우선 의문이었고, 기존의 정치체제가 자본주의의 부산물인 자유의 확산을 무리 없이 수용할 수 있는지도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1989년 톈안먼 사태는 위의 의문점들이 표면화하는 계기였다. 중국사회의 급속한 변화가 문제였는데, 자본주의 경제운영 방식이 중국에 유입되면서 배금주의 사상과 관료들의 부패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1985년 봄부터는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권력분립, 자유언론, 견제와 균형 등 새로운 정치수단으로 과거 서구와 비슷하게 자본주의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 개진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물론 경제개혁을 더욱 가속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뒤를 이었다.

하지만 보수파의 반대 역시 심했으므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고, 그 와중에 후일 중국 민주화의 상징이 되는 물리학자 팡리즈(方勵之)가 부학장으로 있던 안후이성 과학기술대학에서 1986년 12월 첫 민주화 시위가 시작됐다. 순식간에 상하이와 베이징 등 대도시 150여개 대학이 시위에 가담하자, 당시까지 정치개혁을 고심하고 있던 덩샤오핑이 드디어 시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중요한 것은 개혁파의 선두였던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가 1987년 1월 실각됐다는 사실이다. 문책 사유는 민주화 시위에 호의적이었던 그의 태도였다.

아무튼 이 사태를 통해 민주화 문제를 두고 1978년 개혁개방이 단행된 이후 처음으로 지도부가 분열됐다. 과거 류사오치, 덩샤오핑으로 대변되는 주자파와 마오쩌둥의 급진파가 대립했고, 화궈펑과 덩이 각을 세웠던 것과 비슷하게 경제문제를 둘러싼 정파의 대립이 반복됐음을 알 수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경제를 어느 정도 자유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입장 차이를 넘어 ‘정치체제 개혁’이 쟁점으로 부각됐다는 사실일 것이다.

후야오방이 실각한 후 총서기직은 개혁파의 또 다른 기수인 자오쯔양(趙紫陽)에게 넘어갔지만, 문제를 덮기는 쉽지 않았다. 자오쯔양 역시 민주화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었다. 1987년 가을 제13차 공산당 전국대회를 위해 그가 주도해 작성한 정치체제 개혁안에 ‘당정분리론’이 포함된 것을 보면 그의 입장은 분명했다. 당정분리론의 핵심은 아래와 같다.

‘아래로의 권력이양, 그에 맞는 정부기구의 개혁, 그리고 법제의 강화.’

톈안먼 탄압 이후 南巡講話로 경제개혁 추진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이 실각하면서 정치적인 역동성이 사라지며 경제개혁도 함께 실종됐다. 사진은 후야오방이 1981년 덩샤오핑과 함께 있는 모습.

톈안먼 사태는 이런 정치적 대립 상황에서 불거져 나온 시민운동이었다. 1989년 4월 정치국 회의 도중 후야오방이 급서하자, 그를 추모하는 집회가 6월 톈안먼에서 열리면서 민주화 요구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던 것이다. 위협을 느낀 덩샤오핑은 민주화에 호의적이던 자오쯔양을 과거 후야오방처럼 숙청하고 시위를 무력 진압했다. 결국 보수파의 손을 들어 준 셈이었는데, 중요한 것인 이때부터 진정한 의미의 개혁파는 무대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경제노선 및 정치질서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지닌 정파들 간의 경쟁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고, 당연한 결과로 과거 수십 년간 이어진 정치투쟁이 가시화할 가능성 역시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톈안먼 사태는 중국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다. 대규모 시위와 무력탄압이 전 세계로 중계되면서 서방세계는 분노했고, 때문에 서방과 경제협력도 여의치 않게 됐다. 관료들 또한 보수파의 눈치를 보면서 경제개혁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악화하는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했는데, 이것이 1992년 덩샤오핑의 유명한 남순강화의 배경이다. 남순강화 직후 ‘경제개혁은 더욱 가속화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다음과 같은 공식 메시지가 빠르게 전달된 것을 보면 덩이 대단히 급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姓社姓資)와 같은 논쟁은 하지 말라. 사물의 시비에 대해 판단할 때는, 첫째 생산력의 발전, 둘째 종합적인 국력, 셋째 인민의 생활향상에 유리한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1992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제2호 문건)

결국 톈안먼 사태가 남순강화를 통해 일단락됐음을 알 수 있는데, ‘신권위주의론’이라는 논리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저개발 상태인 중국의 현실에 비추어 근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안정되어야 하고, 따라서 강력한 권력을 지닌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주자파의 전통적인 주장대로 주안점은 경제부흥에 두고, 정치문제는 이와 분리함으로써 더 이상 논쟁거리가 될 수 없다는, 즉 정경분리원칙이 확립됐다고 보면 된다.

1997년 2월 덩은 죽었다. 그의 생존 시는 물론, 그 후 장쩌민(江澤民)과 주룽지(朱鎔基) 치하의 중국 역시 덩이 기획한 대로 경제개혁과 개방에는 대단히 열심이었다. 1990년 상하이와 선전(深圳) 주식시장의 개장, 1993년 중국 국유기업의 해외 증권시장 상장, 2001년 국제무역기구(WTO) 가입 등은 개혁 정도를 말해 주고 있다. 1994년에는 공식환율과 외환 스와프시장의 환율이 통합되면서 단일환율제도 만들어졌다. 1996년 경상수지가 전면 자유화된 것 역시 가시적인 개혁이었다. 1998년 부실은행의 정리, 채권시장의 양성, 그리고 중국 주식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의 허용 등도 돋보이는 자유화 조치였다.

중앙집권화로 경제개혁에 필요한 정치동력 상실

경제개혁은 가시화됐지만 그것의 정치적 해석은 매우 달랐다. 톈안먼 사태를 겪은 후 덩샤오핑을 비롯한 신권위주의파는 톈안먼 사태의 주요 원인이 권력을 지방에 너무 많이 이양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지방정부와 경제의 개별 단위에 많이 이양했던 권한을 중앙정부가 다시 회수하는 조치는 불가피하다고 봤다. 1994년 실시된 ‘분세제’는 대표적이었는데, 국세와 지방세를 분리하여 국세의 비중을 높임으로써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정책이 시행됐다.

요약하면 정치적으로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고, 중앙정부의 판단에 의해서 경제정책을 조율한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위에서 소개한 경제개혁도 지방이나 개별경제 단위가 아닌 중앙정부의 판단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중앙집권화의 정치적 함의는 작지 않다. 지방의 권한이 축소됨으로써 지방의 자율성이 낮아졌다. 특히 자오쯔양의 성장배경을 보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분명해진다. 1976년 저우언라이와 마오가 사망할 즈음 권력공백기를 틈타 당시 쓰촨성(四川省) 제1서기였던 자오는 성내 농민의 자주권을 대폭 확대하는 조치를 자의적으로 취한 적이 있다. 생산 인센티브 덕분에 농업생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됐는데, 이 실적을 바탕으로 자오는 중앙무대에 진출, 최고위층에 오를 수 있었다. 1978년 안후이성(安徽省) 샤오강춘(小岡村)에서도 권력 이완을 틈타 농민 18명이 비밀결사를 조직, 초과 생산한 농산물을 국가가 아닌 개인이 갖는다는 밀약을 체결한 적이 있다. 생산성이 가시적으로 높아지자 정부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 1982년에는 바로 이들의 모험을 ‘농가청부생산책임제(農家請負生産責任制)’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적극 수용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중앙정부의 권력강화 때문에 이러한 자율성이 억제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지방의 자의적인 행동으로부터 분출되는 개혁의 동력 역시 약화된다는 사실이다. 정치구조 내부을 살펴봐도 비슷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정치와 경제가 완전히 분리되면서 경제개혁은 외형상 가시화됐지만, 정치권력은 반대로 강화되었기에 경제정책을 둘러싼 이견이 과거처럼 분출될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정치와 경제를 분리시킨 조치 자체가 핵심 지도부에 과거와는 달리 서로 다른 경제관을 지닌 정파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여지를 축소시켰기 때문이다. 설사 경제정책에 대한 이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번에는 정경분리의 원칙이 적용되므로 이견이 정치화되어 권력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당연히 줄어들게 된다. 여하간 경제개혁에 필요한 정치적 동력은 사실상 사라진 셈이었다.

현상유지만을 바라는 공산당 내의 3개 정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래도 장쩌민과 주룽지 시절의 경제개혁은 돋보이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권력이 약화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부터는 경제개혁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당연한 결과로 후진타오(胡錦濤)와 원자바오(溫家寶)가 2002년 실권을 장악한 다음에는 정체 현상이 더욱 가시화됐다. 개혁이 실종된 이유는 우선 자오쯔양과 후야오방이 사라진 후 경제개혁을 위한 정치동력이 사실상 사라진 현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2000년을 전후해 굵직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중국 지도부가 위축된 것 역시 사태를 악화시킨 또 다른 원인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다.

한국의 외환위기를 통해 과도한 개방과 자유화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인식하며 중국의 지도층은 더 이상의 개혁개방을 일단 유보한 채 보수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이 같은 경제적 분석 외에 정치적으로는 더욱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공산당 일당 독재의 당연한 결과지만 중국정치는 기본적으로 공산당 내 혁명을 주도한 가족 중심의 정치단위, 즉 특별한 이익집단에 기초하고 있다. ‘태자당’으로 불리거나 ‘공청단’으로 불리는 초기 공산정권의 형성과 그 후 공산주의가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인맥이 중국정치를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경우 현재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정치경제 시스템이 안정되어야 이득이 극대화되므로 기존 질서의 유지는 곧 이들의 이해가 된다. 그러므로 논리상 정치경제적 안정에 관한 한 집권세력의 이해는 하나로 모아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상유지(status quo)를 위한 강력한 정치동력이 분출되고 있는 셈이다.

후진타오와 원자바오가 2002년 권력을 승계하면서 내세운 ‘조화로운 사회(和諧社會)’와 그것의 실행방안인 ‘과학발전관(科學發展觀)’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즉 중국정부는 자본주의와 고속성장의 폐해를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시정할 것이니 중국의 기본 정치경제 질서를 국민들이 뒤흔들지는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화로운 사회가 위의 분석대로 현상유지를 위한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는 점은 이들이 집권한 10년 동안 과학발전관에서 명시한 정책 중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이행된 것이 없다는 사실을 통해 분명해진다.

여기에 장쩌민 집권 말기에 발생한 정치구조상의 변화를 추가하면 현상유지의 힘이 왜 강화됐는지를 알 수 있다. 장의 작품인 중국공산당을 새롭게 정의한 ‘3개 대표론’은 자본주의 국가로 변신한 중국의 경우 돈을 번 사람도 공산당원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문제는 이를 통해 부와 권력이 만날 수 있는 공식 채널이 열렸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 중국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정경유착 문제는 그때 이미 공식화됐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 부와 권력이 유착되면서 기득권층이 더욱 넓어졌다는 사실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업을 해 돈 번 사람 역시 덩샤오핑이 구축한 새로운 체제의 수혜자이므로 공산당 혁명 주도자의 자녀들이 그러하듯, 현 체제를 변화시킬 동인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결국 현상유지를 원하는 사회계층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개혁의 동력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권력이양 없이 경제, 사회개혁 어렵다

개혁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정치경제학의 원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에서 정치와 경제개혁이 연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최초의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자오쯔양 전 총서기는 1980년대 초 다음과 같은 연설을 통해 위의 원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농민과 기업의 자율권을 확대하는 것과 당과 정부의 개입을 축소한다는 것은 100퍼센트 동의어다. 조금 더 분명히 말한다면 경제외적인 행정강제 요인을 경제주체에게 양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국가의 죄수》)”

결국 경제주체들에게 권력이 이양되지 않으면 경제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인바, 자본주의와 민주정치 관계를 오래 전 위와 같이 꿰뚫어 본 것에 대해서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따라서 시진핑 등 지도부가 권력을 양보할 의사가 없다면 경제개혁은 물론 그 밖의 사회개혁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중국 지도부가 위의 원리를 공개적으로 천명하며 실천을 약속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기에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경제개혁을 위한 정치동력이 상실된 현실을 대입하면, 이제 개혁은 권력 내부가 아닌 밖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 중국 국민이 개혁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됐다는 의미이므로 중국의 미래는 결국 중국인들의 자각에 달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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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시진핑 시대 중국의 경제·사회 개혁은 가능할까?

민간에 권력이양 없이는 원천적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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