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림수산식품부 ‘중국, 한식당 진출 가이드’ 발간하고 한식당 지원 시동 걸어
⊙ “내년부터 고급 한식당 모델을 만들어 나가겠다” (정운천 한식재단 이사장 인터뷰)
⊙ 베이징 명물인 본사 쌍둥이 빌딩에 고급 한정식집 입점시키려는 LG그룹의 노력
⊙ “내년부터 고급 한식당 모델을 만들어 나가겠다” (정운천 한식재단 이사장 인터뷰)
⊙ 베이징 명물인 본사 쌍둥이 빌딩에 고급 한정식집 입점시키려는 LG그룹의 노력
- 한식세계화를 위한 외국인 쿠킹투어에 참가한 외국인들이 지난 2월 20일 서울 강남의 한 쿠킹스튜디오에서 자신들이 직접 시장에서 마련한 음식재료로 닭볶음과 나물요리를 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朝陽區)의 량마차오(亮馬橋) 일대는 일본인이 많이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량마차오에서 차오양(朝陽)공원 쪽으로 5분 정도 차를 몰면 ‘하오윈제’라는 작은 거리에 닿는다. 우리말로 ‘하오(好)’는 ‘좋다’이고 ‘윈(運)’은 ‘운’이며 ‘제(街)’는 ‘거리’니, ‘운 좋은 거리’ 정도가 된다. 당연히 영어 이름은 ‘럭키 스트리트(The Lucky Street)’.
약 50m 정도의 거리 한쪽에는 일본 식당과 터키, 독일, 인도 음식점들이 몰려 있다. 중국인이나 외국 관광객이 각국의 음식을 맛보려 이곳을 찾는다. 물론 주변에 일본인이 많이 살기에 일본 음식점이 주를 이룬다.
기자는 이곳에서 꽤 유명한 일본 야끼니꾸집(불고기집)에 일행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들어갔다. 우렁차게 ‘이라싸이마셍’(어서 오십시오)을 외치는 중국인 종업원들 사이로 다국적 손님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만석인 테이블에 음식이나 손님은 제각각이지만, 테이블마다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김치’였다.
김치 대신 ‘기무치’를 국제표준을 삼으려던 일본인의 김치사랑은 이미 유명하지만, 다국적 손님들로 북적이는 베이징의 일식당에서 테이블마다 김치가 있다니…. 유창하게 중국어를 구사하는 벽안의 외국인부터 나이 든 중국인 손님까지 고기를 먹을 때마다 김치를 곁들였다.
다국적 손님 사이에 놓인 ‘김치’
“중국에서 중국인들이나 외국인들이 김치 먹는 건 이제 흔한 일입니다.”
메뉴판에서 음식을 고르던 베이징대 김용환(金勇桓·신방과3)씨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일행에게 주문을 받으러 온 중국인 종업원 먀오 씨도 이에 동의했다.
“저도 이 식당에 근무하기 전부터 김치를 자주 먹었어요. 제가 살고 있는 류다오커(六道口) 근처 아파트에도 한국 반찬을 파는 가게가 있습니다. 우리 식당도 일본 불고기집이지만 손님들이 김치와 한국 나물 등 밑반찬을 많이 시킵니다.”
베이징에 온 지 4년째가 되는 김용환씨는 “한동안 김치찌개 열풍이 번져서 베이징대에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며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줬다.
“3년 전쯤 베이징대 교내에 있는 일반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팔았는데 학생과 교직원들 사이에서 엄청 인기가 높았어요. 한국 유학생들은 어디선가 김치찌개 냄새가 나면 ‘이제 밥때가 됐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러다 보니 중국 학생들 사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중국의 자존심인 베이징대에서 김치냄새가 진동을 하다니…’라는 얘기였죠. 결국 베이징대 학교당국에서는 김치찌개를 팔지 못하게 하고, 한국음식 팔던 식당을 학교 밖으로 몰아냈습니다. 그 정도로 김치나 한국음식은 중국에서 인기입니다.”
“중국인 선호음식 1위가 한식”
저녁을 먹은 후, 기자는 인근에 있는 쇼핑센터 ‘솔라나(SOLLANA)’로 향했다. 베이징의 청담동이라고 불리는 ‘솔라나’는 30~40대 전문직 중국인들에게 가장 선호도가 높은 쇼핑센터다. ‘차오양공원’ 호수가 병풍처럼 감싼 이 쇼핑센터는 미국 LA나 샌프란시스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을 찾을 수 있다. 한인잡지 <좋은아침>의 기자로도 활동 중인 김용환씨는 “베이징에서 일하는 잡지기자 중에서 이곳 기사를 한 번이라도 안 써 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기자는 솔라나 지하에 있는 식당가로 내려갔다. 유기농 채식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식당부터, 일본계 스시집, 중국의 주요 요릿집, 각종 패스트푸드집, 미국계 커피전문점 등 사이로 어김없이 한국음식점이 보였다. 이 음식점에서도 다국적 손님들이 오색 비빔밥과 김치 앞에서 땀을 흘리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당가 한쪽에 있는 식품매장에 들어가자, 한편에서는 아예 김치를 포기째 꺼내 놓고 팔았다. 또 각종 조미료와 장을 파는 진열대 한쪽 면 전체에서 우리 고추장, 된장, 쌈장, 간장 등이 손님을 기다렸다. 세계적으로 한식을 압도하는 일본의 미소시루와 간장은 우리 장에 밀려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미국계 컨설팅사인 액센추어사 조사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한국의 양념류, 특히 장류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 한다.
김치와 장으로 대표되는 발효음식은 우리의 자랑거리였지만 그 오묘한(?) 향기와 깊은 맛 때문에 선입견과 오해를 많이 받았다.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은 ‘김치·마늘 냄새’란 말로 조롱하고 비하했다. 그런 비하음식이 지금은 가장 사랑받는 음식 중 하나라는 역설이 한식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자가 베이징에서 만난 음식점 사장들은 한식에 대한 확신이 대단했다. 이들의 대략적인 반응을 요약하면 이렇다.
“중국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외국음식을 꼽으라면, 한식이 1등입니다. 중국인들에게 선호도가 높을 때, 한식이 비싼 돈 주고 사먹을 고급음식이라는 인식을 퍼뜨려야 합니다. 조선족이 먹는 소수민족 음식이라는 선입견을 이제 깰 기회가 왔습니다. 게다가 중국의 외식시장이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더없이 좋은 조건입니다.”
농수산물유통공사가(AT)가 지난해 베이징에 있는 대표적인 한국음식점 5~6곳의 사장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한결같이 ‘중국 내에서 한국음식과 한국문화에 대한 호감이 높아지고 있다’거나 ‘한식에 대한 체계적인 홍보와 대표적인 한국음식점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방안이 나오면 한식이 세계적인 음식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지금’이라고 내다봤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중국 외식시장
중국의 국가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외식업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외식산업진흥팀(구 한식세계화팀)이 올해 발간한 〈한식당 중국 진출 가이드북〉에 따르면, 중국의 사회소비품 시장규모는 2008년부터 급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중국의 사회소비품 판매총액 가운데, 도·소매 판매는 9조1199억 위안으로 전체의 84%를 차지했다. 외식 관련이 14%인 1조5404억 위안(한화 약 300조원·1위안에 200원 기준)으로 14%를 차지했다. 1994년 최초로 1000억 위안(약 20조원)을 돌파한 중국 외식업은 2008년까지 연속 10년간 두 자릿수의 고속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미 2006년쯤 외식산업 시장의 규모가 1조 위안을 돌파했고, 베이징 올림픽이 열렸던 2008년의 소비액은 1조5404억 위안으로 전년 대비 24.7%나 증가했다.
농림수산식품부 외식산업진흥팀 박순연(朴淳練·41) 팀장은 “경제성장과 올림픽 개최가 중국의 외식시장 팽창을 주도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인들은 원래 ‘식(食)’에 대해 관심 높은 민족입니다. 개혁개방 이후 부가 축적되면서 중국사람들이 외식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말부터 장기간 연휴제도가 도입되고 여가 시간을 많이 갖게 되면서 외식시장이 커졌죠. 그러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인들이 외식메뉴를 다양하게 찾고 고급음식을 즐기면서 외식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진 겁니다.
상하이나 광저우, 선전 등의 대도시에서는 축제일에 고급 레스토랑이나 캐주얼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가족이 급증했으며,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 때는 베이징의 성급호텔과 외식업의 소비액이 69.4% 증가했어요.”
박 팀장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가 중국 외식산업을 정책적으로 키운 것도 급성장 요인이라고 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2008년 내수시장 확대를 외식업과 연계시키며 ▲대중화 외식업 발전 ▲외식업의 안심소비를 위한 식품원료의 품질관리 ▲에너지 절약과 친환경 추진을 통한 지속적 외식산업 발전의 토대 마련이라는 세 가지 방침을 제시했다. 그는 “외식업은 중국 정부에서도 높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산업으로 앞으로도 성장전망이 밝은 산업”이라고 말했다.
외식기업 톱10에 한국기업과 한국음식은 ‘全無’
2008년 기준으로 300조원이 넘는 거대 외식시장은 어느 나라 음식이, 어떤 기업이 주도하고 있을까? 결론적으로 우리 한식은 아니고, 우리 기업은 한 곳도 없다.
중국 외식시장은 일부 상위 소수 기업에 매출이 집중되어 있는 피라미드 형태다. 외식업 ‘톱(Top)10’ 기업이 ‘톱100’ 외식기업 전체 매출의 52.2%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톱10’ 기업은 2008년 중국 전체 외식시장에서 약 6.6%인 약 532억 위안(약 11조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톱10’ 기업의 면면을 보면, 주로 KFC, 맥도날드, 피자헛 등 글로벌 외식 브랜드와 중국 훠궈(火鍋·중국식 샤부샤부 요리) 브랜드가 대부분이다. 농림수산식품부 한식세계화팀은 각각의 성공 요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KFC, 맥도날드 등의 서양식 패스트푸드 기업들의 경우 기존 다른 국가에서 성공한 경험과 선진 경영 시스템, 브랜드파워 등을 활용해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중국계 훠궈 기업들은 가족 단위의 외식을 자주 하는 중국식 문화를 공략해 성공했다. 훠궈 요리의 특성상, 메뉴 및 서비스 표준화와 식자재 대량 유통이 용이해 대형 체인화가 가능하며 효율적인 선진 서비스 도입으로 많은 매출과 높은 이윤율을 달성할 수 있었다.〉
외식산업진흥팀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외식시장을 유형별로 나누면 크게 중식, 패스트푸드, 기타 에스닉 푸드(Ethnic Food·다른 민족 음식. 여기서는 글로벌 패스트푸드 음식 외 다른 나라 음식) 등 세 유형으로 나뉜다.
외식시장의 다원화에도 불구하고 중식이 세 유형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중식은 외식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중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광둥 요리와 쓰촨 요리의 비중이 크다. 하지만 압도적인 중식 레스토랑의 비중도 자본력과 선진 시스템을 갖춘 외국계 에스닉 푸드의 공세에 위축되고 있다. 중식 레스토랑은 2003년 60%에서 2006년 50%로 하락추세에 있고 앞으로도 시장점유 비중이 지속적으로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번째 유형인 패스트푸드는 유럽·미국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진출 브랜드 수는 많지 않으나 중식의 점유비중을 빼앗으며 빠른 발전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에 대응한 중국기업의 대응도 눈에 띈다. ‘교자’, ‘라면’ 등 간단한 중국요리가 메인 메뉴인 패스트푸드점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각축전이 치열하다. 그러나 아직 유럽과 미국계가 주류이다.
제3국 음식인 에스닉 푸드는 우리 한식이나 일식, 이탈리아식 등이 포함된다. 중국의 외국문화에 대한 개방화 확대 및 소득수준 향상에 따라 에스닉 푸드 시장은 높은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주로 대도시 위주로 보급돼 있으며 아직까지는 한식, 일식, 이탈리아식 위주지만 점점 태국식, 베트남식 등 다양한 국가의 요리가 등장하고 있다. 농림식품부 관계자는 “중국인들의 한식 선호와 에스닉 푸드 시장의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성공한 한식 에스닉 기업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라고 했다.
“한식당은 低價식당으로 인식”
우리 한식을 바탕으로 한 한국 에스닉 푸드 기업이 등장하지 못한 것과 달리, 일본 외식기업들은 중국시장에서 순항 중이다. 일본 외식기업은 1995년 아지센라면(味千拉面)을 시작으로, 일본 하우스 식품이 카레 전문점인 이치반야(CoCo 壹番屋)를, 이토추상사가 2003년 12월 베이징에다 야끼니꾸 전문점인 규라쿠테이(牛樂亭)를 개점하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다.
가장 처음 진출한 아지센라면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홍콩 등 연해 대도시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쓰촨성, 윈난성 등 내륙까지 확장, 올해 말까지 500개 점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이토추상사의 ‘규라쿠테이’ 역시 올해 안에 100개 점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내세울 만한 우리 외식기업이 중국에 없지만, 한식당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다. 액센추어 컨설팅의 ‘설문조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에스닉 푸드 식당 점유율 순위는 일식당(35%), 미국식당(20.1%) 다음으로 한식당(16.6%)이다. 만약 베이징으로 지역을 국한하면, 한식당은 전체 에스닉 푸드 식당 2577개 가운데 783개로 약 30%를 차지한다. 단연 1위다.
액센추어 보고서는 이 같은 현상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한식과 미국식은 중국인들 사이에 널리 퍼진 저가 대중식당으로 포지셔닝. 한식은 대중적으로 보편화되어 있지만 가격단가가 다른 에스닉 푸드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저품질, 저가의 음식으로 포지셔닝되어 있다. 한식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저급 한식당도 상당수 있다.>
정부가 지난 2008년부터 한식세계화 사업을 국가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가 이 같은 한식의 이미지 때문이다. 2009년 농림수산식품부는 ‘한식세계화 추진전략’을 발표하면서 한식세계화 사업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국내에서 음식점은 적은 자본에 특별한 기술 없이도 창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생계대책이다. 차리기도 쉽지만 그만큼 망하는 일도 많다. 그러다 보니 인구 1000명당 음식점 수가 12.2개로 미국(1.8개), 일본(5.7개)에 비해 월등히 많고, 규모도 대부분 영세하다.
약 1만 개로 추정되는 해외 한식당도 대부분 교민, 관광객을 겨냥한 영세업체다. KOTRA의 2005년 조사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해외 한식당의 평균 투자규모는 2만 달러 미만이었다. 한식세계화는 이런 한식의 위상을 높여 중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태국 요리와 같이 세계인의 식단에 올리자는 것이다.>
영부인의 관심과 정운천 전 장관의 가세
정부는 지난 2008년 10월 한식세계화 추진식을 가졌고, 이듬해 5월 ‘한식세계화 추진단’이 출범했다. 영부인 김윤옥(金潤玉) 여사가 한식세계화사업의 명예회장이 되면서 한식세계화에 대한 일반인들과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영부인이 신경을 쓰는 사업인 만큼 구호만 나열하는 사업은 아닐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실제 김 여사는 ‘한식세계화’ 사업에 단순한 애정 이상의 노력을 쏟고 있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귀띔이다.
농식품부는 2010년 4월 17일 민간기구인 ‘한식재단’을 출범시켰다. 한식재단은 민관 합동기구인 ‘한식세계화추진단’의 업무를 인수해 한식세계화 사업을 집행하는 곳이다. 이 재단의 초대 이사장에 정운천(鄭雲天·56) 전(前)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임명됐다. 정 전 장관은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의 신임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데다, 본인이 장관으로 있던 당시에 만든 재단의 이사장이 됐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정 이사장은 당시 취임 기자회견에서 “주위에서 격이 떨어진 조직을 맡았다고 수군댈지 모르지만 우리 농업을 위해 진정으로 할 일이 뭔지 걱정하는 게 중요하기에 이사장직을 수락했다”고 했다. 지난 10월 11일 정운천 이사장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정 이사장은 “취임 이후 6개월 동안 기초 다지기를 했다”며 “우리 한식의 5대 식품이 모두 발효식품이라 한식이 건강식품이라는 것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했다. 다음은 정 이사장과 나눈 얘기다.
―한식재단 이사장을 맡는다고 했을 때 ‘한식세계화 사업은 잘되겠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영부인과 대통령이 신임하는 정 이사장이 동시에 관련이 됐으니까요.
“그래요?(웃음) 저도 한식에 참 관심이 많지만 김윤옥 여사의 관심도 대단합니다.”
―영부인이 실제 도움을 많이 줍니까.
“그럼요. 한식에 애정이 많아서 한식세계화 사업을 하는 데 큰 힘이 되죠. 영부인이 가끔 해외공관에서 현지 VIP를 대상으로 만찬을 여는데 직접 음식선정도, 조언도 하셔요. 이번 G20 정상회담 때 만찬이 다섯 번입니다. 영부인께서 다른 나라 대통령이나 수상들을 많이 만나 봐서 입맛을 잘 알고 있어요. 이번 정상회담 만찬 메뉴 선정에도 영부인의 조언과 아이디어가 도움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정 이사장에 따르면, 영부인이 대학시절, 방학 때마다 고향에 내려가면 부친(父親)이 김 여사에게 집안 식단을 맡겼다고 한다. 정 이사장은 “집안 어른들과 아이들의 식단을 책임졌으니 한식 하나하나에 얼마나 신경을 썼겠냐”며 “우리 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그때부터라고 들었다”고 했다.
기초 다지기 작업
―올해 국감에서 한식세계화 사업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저희 한식재단이 출범한 지 이제 6개월 됐습니다. 한식세계화에 대한 얘기가 지난 2008년부터 나와서 오래된 것 같지만, 실제 일한 시간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조급해하지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6개월 동안 기초 다지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초 다지기’ 가 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제가 농림부 장관이 되면서 부처 명칭을 ‘농림수산식품부’로 바꿨습니다. 한민족의 전통과 역사, 얼이 집약된 것이 음식이기에 한식을 세계화하는 게 부처의 임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의 얼과 전통, 지혜가 담겨 있는 한식 가운데 핵심이 김치, 젓갈, 간장, 고추장, 된장 등 5대 발효식품입니다. 이 음식이 한국인의 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또 세계인의 건강에는 얼마나 좋은지 검증하는 것이 한식세계화의 밑거름입니다. 그 검증을 대학교에 맡겨 현재 구체적인 데이터를 진행 중입니다.”
한식재단에서는 올해 한식 식이유형(dietary pattern)에 대한 명확한 지침과 규정을 정립하고 이를 근거로 고혈압, 당뇨병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정 이사장은 “한식을 건강음식으로 홍보하는 과학적 근거 자료를 마련하는 것이 목표”라며 설명을 이어 갔다.
“또 5대 발표식품에 대한 표준화, 규격화 작업을 통해 한식의 원형을 발굴하려 해요. 한식의 기본이 되고 가장 중요한 이들 식품이 어느 상태에서 최적인지 알아야 외국 사람들 입맛에 맞는 한식을 만들 게 아니겠어요? 또 비빔밥 소스 개발 및 표준화, 전통주 제조기술의 체계화, 한식 현지화 기술개발 등 한식의 상품화를 위한 계획도 잡고 있어요.”
“떡볶이가 한식의 대표로 오해받아선 안돼”
정운천 이사장은 올해까지 일본 도쿄에 한국식당 60곳을 ‘한식을 제대로 요리하는’ 식당으로 인증할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뉴욕, 베이징 등 전세계 5대 도시에 있는 한식당을 대상으로 인증제를 확대한다는 복안(腹案)이다.
―향후 어떤 사업을 계획하고 있습니까.
“올해에는 한식 홍보, 해외 한식당 인증 등의 사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단계적으로 한식당 경쟁력 강화, 조리사 교육, 컨설팅, 전 세계적 한식 네트워크 구축 등으로 업무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정부가 한식세계화 사업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만, 해외에 있는 한식당들은 너무 영세합니다. 이 때문에 한식당과 한식에 대한 이미지가 ‘싸구려’로 오해받는 게 현실인데요. 이를 해결하는 방안이 있습니까.
“선택과 집중을 할 겁니다. 우리 한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쉽게 만들고 접할 수 있는 떡볶이 같은 음식이 위주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급 음식점, 한식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음식점을 만들어서 ‘한식은 원래 이렇게 고급스럽고 건강에 좋은데다 맛까지 좋구나’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년에 뉴욕에 약 50억원을 들여 한식점의 모델이 되는 곳을 만들 겁니다. 그런 음식점들이 세계적으로 많이 생겨야 해요. 정부나 한식재단은 이 부분을 지원할 겁니다.”
정 이사장의 말대로 고급 한식당의 모델이 되는 곳은 외국에 없을까. 기자는 농림수산식품부 외식산업진흥팀으로부터 중국 베이징에 있는 한식당 ‘아이장산(愛江山)’을 소개받았다. 외식산업진흥팀이 발행한 중국 한식당 가이드북에서도 이 음식점은 베이징에서 성공한 고급 한식당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돼 있다.
지난 2006년 한국에서 음식점 사업을 하는 신자상 회장이 법인 직영으로 설립, 현재 베이징에서 두 곳의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1호점 약 2644㎡(약 800평), 2호점 약 5289㎡(약 1600평)로 주방장 등 조리사를 포함한 종업원 수만 300명이 넘는 기업형 대형 식당이다. 지난해 연 매출이 지점당 70억원이 넘는 성공을 바탕으로 10월 말 3호점을 오픈한다.
LG와 한식 전문 기업인의 만남
지난 10월 9일 베이징 궈마오(建國門外)에 있는 LG그룹 중국본사 빌딩인 베이징 쌍둥이 빌딩을 찾아갔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LG 본사처럼 같은 모양의 빌딩이 두 개라 건물 이름도 아예 쌍둥이 빌딩(雙子座 大厦)이라고 지었다. LG 쌍둥이 빌딩이 있는 젠궈먼와이(建國門外) 일대는 베이징의 대표적인 상업지구이다. 인근 궈마오에 베이징 최고층 빌딩인 국제무역센터가 있고 주요 외국계 기업의 베이징 지사와 중국 본사가 궈마오와 젠궈먼와이 일대에 몰려 있다. 이 때문에 LG 쌍둥이 빌딩의 임대료는 베이징에서 최고에 속한다고 한다.
아이장산 신자상 회장은 LG 쌍둥이 빌딩 서쪽 빌딩 5층에서 아이장산 3호점 마무리 공사를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베이징에서 가장 비싸고 중요한 위치에 3호점을 열게 됐다”며 “LG 측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LG가 어떤 배려를 해 줬습니까.
“LG 쌍둥이 빌딩은 베이징에서도 가장 비싼 곳 중 하나입니다. 이곳에 입주한 다른 외국계 음식점들은 대부분 전세계에 지점이 있는 대기업 형입니다. 이 때문에 저희는 입주할 엄두도 못 냈어요. 이를 알고 LG 측이 임대료 등 여러 조건을 파격적으로 지원해 줬습니다.”
―LG와 어떤 인연이 있기에 파격적인 지원을 받은 겁니까. 혹시 오너와 같은 집안은 아닙니까.
“그랬다면 도움을 받았다고 말도 안 꺼냈겠죠.(웃음) 원래 3호점이 들어오는 자리는 다른 고급 한정식 음식점이 있던 곳입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음식점입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서 장사가 잘 안됐습니다. LG는 이 음식점이 사정이 어려워서 나가려고 하자 상당히 오랫동안 임대료 등을 배려하면서 도와줬습니다. 그런데도 이 음식점이 사업을 접자, 저희에게도 같은 혜택을 준 겁니다.”
―LG 그룹이 왜 그렇게 배려해 준 겁니까.
“한국 기업의 자존심,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고 봅니다. LG 빌딩은 베이징에서 한국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이곳에 다른 나라 음식점은 모두 들어와 있는데 한국 음식점이 없다면 대체 중국과 각국 VIP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결국 그 나라 이미지가 기업 이미지에 영향을 주고 기업의 가치에 영향을 주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 점을 LG 경영진이 고려한 것이죠.”
―아이장산은 이곳에서 최고급 음식점으로 유명하더군요. 3호점도 최고급 음식점입니까.
“이곳은 오피스 밀집 지역입니다. 3호점은 그래서 샐러리맨들이 기존 아이장산 음식의 반 가격으로 최고의 정통 한식을 먹을 수 있도록 전략을 세웠습니다. 일종의 ‘아이장산 비스트로’라고 보면 됩니다.”
아이장산 1, 2호점은 베이징에서 음식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 때문에 한국 유학생들이나 웬만한 관광객들은 이곳에 가서 점심 한 끼 먹을 엄두를 못 낸다. 단골의 70%가 중국인이고 한국인, 외국인 순이다.
“2000년 넘게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를 왜 바꿉니까?”
―최고급 식당은 자본이 많이 들 텐데요. 아이장산 같은 음식점이 많이 생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 부분을 우리 정부나 대기업, 은행이 지원해야죠. 대기업이 일본 기업들처럼 제대로 외식사업에 뛰어들어서 확실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한 방법이죠. 다른 하나는 음식점 노하우가 있는 중소 외식기업이 외국 호텔체인점처럼 운영 노하우를 주고 대기업이나 은행들이 자본을 대는 방법이 있죠. 마지막은 정부가 해외에서 성공한 외식업체를 대상으로 업체의 기존업체를 담보로 자금대출을 보증해 주는 방법 등 다양합니다.”
신자상 회장은 3호점 외에 산시성(山西省) 타이위안(太原)에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준비 중이다. 평소 아이장산 단골 손님이었던 중국인 사업가가 자본을 대고 신 회장은 아이장산의 한국인 주방장과 매니저만 파견을 한다. 자본을 대지는 않았지만 운영 노하우를 알려주기 때문에 로열티를 받기로 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중국 전역에 아이장산 같은 고급 한식당을 퍼뜨릴 계획이다.
―흔히 한국음식을 외국에서 그대로 내 오면 현지화가 안돼서 실패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이장산 음식은 가장 한국적이더군요.
“맞아요. 아이장산 메뉴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메뉴가 잡곡밥에 청국장, 된장찌개 나물, 젓갈로 구성된 ‘조선밥 정식’이에요. 저는 아이장산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음식맛을 현지화’하라는 얘기를 무시했습니다. 한식은 가장 맛있을 때가 퓨전이 아니에요. 우리가 가장 맛있다고 느낄 때가 가장 맛있는 겁니다. 현지화라는 건 그 나라의 상황에 맞게 인적·물적 운용, 홍보 형태 등을 맞추라는 거지, 억지로 음식을 바꾸라는 게 아닙니다. 프랑스가 자기들의 와인을 현지화했으면 그 다양한 프랑스 와인은 살아남지 않았을 겁니다. 결국 프랑스 와인은 실패했을 겁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힘든 음식이나 이 사람들이 싫어하는 음식을 강요하면 안되죠. 중국인들이 샹차이(香菜)를 좋아한다고 우리나라에서 통용됩니까? 이런 부분만 조심하면 됩니다.”
그는 “한식은 까다로운 한국사람 입맛에 2000년 넘게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라며 “이런 한식맛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우리 정부가 한식세계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식세계화를 어떻게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까.
“한국인의 손맛이 핵심”
“한식세계화의 핵심은 ‘한국사람’입니다. 즉 우리 한국사람의 손맛이 핵심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단품 메뉴 한두 개로 시작을 하면 금방 다른 나라 사람들이 따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떡볶이나 비빔밥 같은 음식은 물론 우리나라 음식이 맛있지만 중국 사람들이 하는 식당에 가도 맛있게 하는 곳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에 힘을 쏟으면 정작 중요한 걸 못해요.”
―그럼 어떤 전략을 가져야 합니까.
“다른 나라 음식이 어떻게 세계화됐는지 보세요. ‘톱다운’ 방식이에요. 일본 스시, 프랑스 코스 요리, 중국요리, 이탈리아 스파게티 등은 처음 세계에 진출할 때 최고급 음식으로 통했어요. 최상류층 뉴요커들이 스시를 먹던 것이 점차 대중화돼서 캘리포니아롤이 됐고, 호텔에서만 맛볼 수 있던 이탈리아 식당이 시간이 가면서 비스트로화돼서 익숙해진 겁니다. 우리 한식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선택과 집중이에요. 지금처럼 한식당은 아무나 운영하는, 동네 어디에나 있는 분식집 형태가 돼서는 제대로 된 세계화는 어렵다고 봅니다. 한식을 ‘팝콘’ 같은 값싼 군것질거리로 만드는 게 한식세계화가 아니지 않습니까?”⊙
약 50m 정도의 거리 한쪽에는 일본 식당과 터키, 독일, 인도 음식점들이 몰려 있다. 중국인이나 외국 관광객이 각국의 음식을 맛보려 이곳을 찾는다. 물론 주변에 일본인이 많이 살기에 일본 음식점이 주를 이룬다.
기자는 이곳에서 꽤 유명한 일본 야끼니꾸집(불고기집)에 일행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들어갔다. 우렁차게 ‘이라싸이마셍’(어서 오십시오)을 외치는 중국인 종업원들 사이로 다국적 손님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만석인 테이블에 음식이나 손님은 제각각이지만, 테이블마다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김치’였다.
김치 대신 ‘기무치’를 국제표준을 삼으려던 일본인의 김치사랑은 이미 유명하지만, 다국적 손님들로 북적이는 베이징의 일식당에서 테이블마다 김치가 있다니…. 유창하게 중국어를 구사하는 벽안의 외국인부터 나이 든 중국인 손님까지 고기를 먹을 때마다 김치를 곁들였다.
다국적 손님 사이에 놓인 ‘김치’
“중국에서 중국인들이나 외국인들이 김치 먹는 건 이제 흔한 일입니다.”
메뉴판에서 음식을 고르던 베이징대 김용환(金勇桓·신방과3)씨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일행에게 주문을 받으러 온 중국인 종업원 먀오 씨도 이에 동의했다.
“저도 이 식당에 근무하기 전부터 김치를 자주 먹었어요. 제가 살고 있는 류다오커(六道口) 근처 아파트에도 한국 반찬을 파는 가게가 있습니다. 우리 식당도 일본 불고기집이지만 손님들이 김치와 한국 나물 등 밑반찬을 많이 시킵니다.”
베이징에 온 지 4년째가 되는 김용환씨는 “한동안 김치찌개 열풍이 번져서 베이징대에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며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줬다.
“3년 전쯤 베이징대 교내에 있는 일반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팔았는데 학생과 교직원들 사이에서 엄청 인기가 높았어요. 한국 유학생들은 어디선가 김치찌개 냄새가 나면 ‘이제 밥때가 됐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러다 보니 중국 학생들 사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중국의 자존심인 베이징대에서 김치냄새가 진동을 하다니…’라는 얘기였죠. 결국 베이징대 학교당국에서는 김치찌개를 팔지 못하게 하고, 한국음식 팔던 식당을 학교 밖으로 몰아냈습니다. 그 정도로 김치나 한국음식은 중국에서 인기입니다.”
“중국인 선호음식 1위가 한식”
저녁을 먹은 후, 기자는 인근에 있는 쇼핑센터 ‘솔라나(SOLLANA)’로 향했다. 베이징의 청담동이라고 불리는 ‘솔라나’는 30~40대 전문직 중국인들에게 가장 선호도가 높은 쇼핑센터다. ‘차오양공원’ 호수가 병풍처럼 감싼 이 쇼핑센터는 미국 LA나 샌프란시스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을 찾을 수 있다. 한인잡지 <좋은아침>의 기자로도 활동 중인 김용환씨는 “베이징에서 일하는 잡지기자 중에서 이곳 기사를 한 번이라도 안 써 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기자는 솔라나 지하에 있는 식당가로 내려갔다. 유기농 채식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식당부터, 일본계 스시집, 중국의 주요 요릿집, 각종 패스트푸드집, 미국계 커피전문점 등 사이로 어김없이 한국음식점이 보였다. 이 음식점에서도 다국적 손님들이 오색 비빔밥과 김치 앞에서 땀을 흘리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당가 한쪽에 있는 식품매장에 들어가자, 한편에서는 아예 김치를 포기째 꺼내 놓고 팔았다. 또 각종 조미료와 장을 파는 진열대 한쪽 면 전체에서 우리 고추장, 된장, 쌈장, 간장 등이 손님을 기다렸다. 세계적으로 한식을 압도하는 일본의 미소시루와 간장은 우리 장에 밀려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미국계 컨설팅사인 액센추어사 조사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한국의 양념류, 특히 장류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 한다.
김치와 장으로 대표되는 발효음식은 우리의 자랑거리였지만 그 오묘한(?) 향기와 깊은 맛 때문에 선입견과 오해를 많이 받았다.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은 ‘김치·마늘 냄새’란 말로 조롱하고 비하했다. 그런 비하음식이 지금은 가장 사랑받는 음식 중 하나라는 역설이 한식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자가 베이징에서 만난 음식점 사장들은 한식에 대한 확신이 대단했다. 이들의 대략적인 반응을 요약하면 이렇다.
“중국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외국음식을 꼽으라면, 한식이 1등입니다. 중국인들에게 선호도가 높을 때, 한식이 비싼 돈 주고 사먹을 고급음식이라는 인식을 퍼뜨려야 합니다. 조선족이 먹는 소수민족 음식이라는 선입견을 이제 깰 기회가 왔습니다. 게다가 중국의 외식시장이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더없이 좋은 조건입니다.”
농수산물유통공사가(AT)가 지난해 베이징에 있는 대표적인 한국음식점 5~6곳의 사장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한결같이 ‘중국 내에서 한국음식과 한국문화에 대한 호감이 높아지고 있다’거나 ‘한식에 대한 체계적인 홍보와 대표적인 한국음식점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방안이 나오면 한식이 세계적인 음식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지금’이라고 내다봤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중국 외식시장
중국의 국가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외식업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외식산업진흥팀(구 한식세계화팀)이 올해 발간한 〈한식당 중국 진출 가이드북〉에 따르면, 중국의 사회소비품 시장규모는 2008년부터 급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중국의 사회소비품 판매총액 가운데, 도·소매 판매는 9조1199억 위안으로 전체의 84%를 차지했다. 외식 관련이 14%인 1조5404억 위안(한화 약 300조원·1위안에 200원 기준)으로 14%를 차지했다. 1994년 최초로 1000억 위안(약 20조원)을 돌파한 중국 외식업은 2008년까지 연속 10년간 두 자릿수의 고속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미 2006년쯤 외식산업 시장의 규모가 1조 위안을 돌파했고, 베이징 올림픽이 열렸던 2008년의 소비액은 1조5404억 위안으로 전년 대비 24.7%나 증가했다.
농림수산식품부 외식산업진흥팀 박순연(朴淳練·41) 팀장은 “경제성장과 올림픽 개최가 중국의 외식시장 팽창을 주도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인들은 원래 ‘식(食)’에 대해 관심 높은 민족입니다. 개혁개방 이후 부가 축적되면서 중국사람들이 외식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말부터 장기간 연휴제도가 도입되고 여가 시간을 많이 갖게 되면서 외식시장이 커졌죠. 그러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인들이 외식메뉴를 다양하게 찾고 고급음식을 즐기면서 외식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진 겁니다.
상하이나 광저우, 선전 등의 대도시에서는 축제일에 고급 레스토랑이나 캐주얼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가족이 급증했으며,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 때는 베이징의 성급호텔과 외식업의 소비액이 69.4% 증가했어요.”
박 팀장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가 중국 외식산업을 정책적으로 키운 것도 급성장 요인이라고 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2008년 내수시장 확대를 외식업과 연계시키며 ▲대중화 외식업 발전 ▲외식업의 안심소비를 위한 식품원료의 품질관리 ▲에너지 절약과 친환경 추진을 통한 지속적 외식산업 발전의 토대 마련이라는 세 가지 방침을 제시했다. 그는 “외식업은 중국 정부에서도 높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산업으로 앞으로도 성장전망이 밝은 산업”이라고 말했다.
외식기업 톱10에 한국기업과 한국음식은 ‘全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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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부인 김윤옥(金潤玉) 여사는 한식세계화사업단의 명예회장이다. ‘영부인이 신경을 쓰는 만큼 한식의 세계화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사진은 김윤옥 여사가 지난 9월 27일 청와대에서 국내 해외 유명 조리사들을 접견, 한식의 세계화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중국 외식시장은 일부 상위 소수 기업에 매출이 집중되어 있는 피라미드 형태다. 외식업 ‘톱(Top)10’ 기업이 ‘톱100’ 외식기업 전체 매출의 52.2%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톱10’ 기업은 2008년 중국 전체 외식시장에서 약 6.6%인 약 532억 위안(약 11조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톱10’ 기업의 면면을 보면, 주로 KFC, 맥도날드, 피자헛 등 글로벌 외식 브랜드와 중국 훠궈(火鍋·중국식 샤부샤부 요리) 브랜드가 대부분이다. 농림수산식품부 한식세계화팀은 각각의 성공 요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KFC, 맥도날드 등의 서양식 패스트푸드 기업들의 경우 기존 다른 국가에서 성공한 경험과 선진 경영 시스템, 브랜드파워 등을 활용해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중국계 훠궈 기업들은 가족 단위의 외식을 자주 하는 중국식 문화를 공략해 성공했다. 훠궈 요리의 특성상, 메뉴 및 서비스 표준화와 식자재 대량 유통이 용이해 대형 체인화가 가능하며 효율적인 선진 서비스 도입으로 많은 매출과 높은 이윤율을 달성할 수 있었다.〉
외식산업진흥팀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외식시장을 유형별로 나누면 크게 중식, 패스트푸드, 기타 에스닉 푸드(Ethnic Food·다른 민족 음식. 여기서는 글로벌 패스트푸드 음식 외 다른 나라 음식) 등 세 유형으로 나뉜다.
외식시장의 다원화에도 불구하고 중식이 세 유형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중식은 외식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중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광둥 요리와 쓰촨 요리의 비중이 크다. 하지만 압도적인 중식 레스토랑의 비중도 자본력과 선진 시스템을 갖춘 외국계 에스닉 푸드의 공세에 위축되고 있다. 중식 레스토랑은 2003년 60%에서 2006년 50%로 하락추세에 있고 앞으로도 시장점유 비중이 지속적으로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번째 유형인 패스트푸드는 유럽·미국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진출 브랜드 수는 많지 않으나 중식의 점유비중을 빼앗으며 빠른 발전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에 대응한 중국기업의 대응도 눈에 띈다. ‘교자’, ‘라면’ 등 간단한 중국요리가 메인 메뉴인 패스트푸드점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각축전이 치열하다. 그러나 아직 유럽과 미국계가 주류이다.
제3국 음식인 에스닉 푸드는 우리 한식이나 일식, 이탈리아식 등이 포함된다. 중국의 외국문화에 대한 개방화 확대 및 소득수준 향상에 따라 에스닉 푸드 시장은 높은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주로 대도시 위주로 보급돼 있으며 아직까지는 한식, 일식, 이탈리아식 위주지만 점점 태국식, 베트남식 등 다양한 국가의 요리가 등장하고 있다. 농림식품부 관계자는 “중국인들의 한식 선호와 에스닉 푸드 시장의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성공한 한식 에스닉 기업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라고 했다.
“한식당은 低價식당으로 인식”
우리 한식을 바탕으로 한 한국 에스닉 푸드 기업이 등장하지 못한 것과 달리, 일본 외식기업들은 중국시장에서 순항 중이다. 일본 외식기업은 1995년 아지센라면(味千拉面)을 시작으로, 일본 하우스 식품이 카레 전문점인 이치반야(CoCo 壹番屋)를, 이토추상사가 2003년 12월 베이징에다 야끼니꾸 전문점인 규라쿠테이(牛樂亭)를 개점하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다.
가장 처음 진출한 아지센라면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홍콩 등 연해 대도시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쓰촨성, 윈난성 등 내륙까지 확장, 올해 말까지 500개 점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이토추상사의 ‘규라쿠테이’ 역시 올해 안에 100개 점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내세울 만한 우리 외식기업이 중국에 없지만, 한식당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다. 액센추어 컨설팅의 ‘설문조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에스닉 푸드 식당 점유율 순위는 일식당(35%), 미국식당(20.1%) 다음으로 한식당(16.6%)이다. 만약 베이징으로 지역을 국한하면, 한식당은 전체 에스닉 푸드 식당 2577개 가운데 783개로 약 30%를 차지한다. 단연 1위다.
액센추어 보고서는 이 같은 현상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한식과 미국식은 중국인들 사이에 널리 퍼진 저가 대중식당으로 포지셔닝. 한식은 대중적으로 보편화되어 있지만 가격단가가 다른 에스닉 푸드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저품질, 저가의 음식으로 포지셔닝되어 있다. 한식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저급 한식당도 상당수 있다.>
정부가 지난 2008년부터 한식세계화 사업을 국가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가 이 같은 한식의 이미지 때문이다. 2009년 농림수산식품부는 ‘한식세계화 추진전략’을 발표하면서 한식세계화 사업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국내에서 음식점은 적은 자본에 특별한 기술 없이도 창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생계대책이다. 차리기도 쉽지만 그만큼 망하는 일도 많다. 그러다 보니 인구 1000명당 음식점 수가 12.2개로 미국(1.8개), 일본(5.7개)에 비해 월등히 많고, 규모도 대부분 영세하다.
약 1만 개로 추정되는 해외 한식당도 대부분 교민, 관광객을 겨냥한 영세업체다. KOTRA의 2005년 조사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해외 한식당의 평균 투자규모는 2만 달러 미만이었다. 한식세계화는 이런 한식의 위상을 높여 중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태국 요리와 같이 세계인의 식단에 올리자는 것이다.>
영부인의 관심과 정운천 전 장관의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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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운천 한식재단 이사장. |
농식품부는 2010년 4월 17일 민간기구인 ‘한식재단’을 출범시켰다. 한식재단은 민관 합동기구인 ‘한식세계화추진단’의 업무를 인수해 한식세계화 사업을 집행하는 곳이다. 이 재단의 초대 이사장에 정운천(鄭雲天·56) 전(前)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임명됐다. 정 전 장관은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의 신임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데다, 본인이 장관으로 있던 당시에 만든 재단의 이사장이 됐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정 이사장은 당시 취임 기자회견에서 “주위에서 격이 떨어진 조직을 맡았다고 수군댈지 모르지만 우리 농업을 위해 진정으로 할 일이 뭔지 걱정하는 게 중요하기에 이사장직을 수락했다”고 했다. 지난 10월 11일 정운천 이사장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정 이사장은 “취임 이후 6개월 동안 기초 다지기를 했다”며 “우리 한식의 5대 식품이 모두 발효식품이라 한식이 건강식품이라는 것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했다. 다음은 정 이사장과 나눈 얘기다.
―한식재단 이사장을 맡는다고 했을 때 ‘한식세계화 사업은 잘되겠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영부인과 대통령이 신임하는 정 이사장이 동시에 관련이 됐으니까요.
“그래요?(웃음) 저도 한식에 참 관심이 많지만 김윤옥 여사의 관심도 대단합니다.”
―영부인이 실제 도움을 많이 줍니까.
“그럼요. 한식에 애정이 많아서 한식세계화 사업을 하는 데 큰 힘이 되죠. 영부인이 가끔 해외공관에서 현지 VIP를 대상으로 만찬을 여는데 직접 음식선정도, 조언도 하셔요. 이번 G20 정상회담 때 만찬이 다섯 번입니다. 영부인께서 다른 나라 대통령이나 수상들을 많이 만나 봐서 입맛을 잘 알고 있어요. 이번 정상회담 만찬 메뉴 선정에도 영부인의 조언과 아이디어가 도움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정 이사장에 따르면, 영부인이 대학시절, 방학 때마다 고향에 내려가면 부친(父親)이 김 여사에게 집안 식단을 맡겼다고 한다. 정 이사장은 “집안 어른들과 아이들의 식단을 책임졌으니 한식 하나하나에 얼마나 신경을 썼겠냐”며 “우리 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그때부터라고 들었다”고 했다.
기초 다지기 작업
―올해 국감에서 한식세계화 사업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저희 한식재단이 출범한 지 이제 6개월 됐습니다. 한식세계화에 대한 얘기가 지난 2008년부터 나와서 오래된 것 같지만, 실제 일한 시간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조급해하지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6개월 동안 기초 다지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초 다지기’ 가 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제가 농림부 장관이 되면서 부처 명칭을 ‘농림수산식품부’로 바꿨습니다. 한민족의 전통과 역사, 얼이 집약된 것이 음식이기에 한식을 세계화하는 게 부처의 임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의 얼과 전통, 지혜가 담겨 있는 한식 가운데 핵심이 김치, 젓갈, 간장, 고추장, 된장 등 5대 발효식품입니다. 이 음식이 한국인의 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또 세계인의 건강에는 얼마나 좋은지 검증하는 것이 한식세계화의 밑거름입니다. 그 검증을 대학교에 맡겨 현재 구체적인 데이터를 진행 중입니다.”
한식재단에서는 올해 한식 식이유형(dietary pattern)에 대한 명확한 지침과 규정을 정립하고 이를 근거로 고혈압, 당뇨병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정 이사장은 “한식을 건강음식으로 홍보하는 과학적 근거 자료를 마련하는 것이 목표”라며 설명을 이어 갔다.
“또 5대 발표식품에 대한 표준화, 규격화 작업을 통해 한식의 원형을 발굴하려 해요. 한식의 기본이 되고 가장 중요한 이들 식품이 어느 상태에서 최적인지 알아야 외국 사람들 입맛에 맞는 한식을 만들 게 아니겠어요? 또 비빔밥 소스 개발 및 표준화, 전통주 제조기술의 체계화, 한식 현지화 기술개발 등 한식의 상품화를 위한 계획도 잡고 있어요.”
“떡볶이가 한식의 대표로 오해받아선 안돼”
정운천 이사장은 올해까지 일본 도쿄에 한국식당 60곳을 ‘한식을 제대로 요리하는’ 식당으로 인증할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뉴욕, 베이징 등 전세계 5대 도시에 있는 한식당을 대상으로 인증제를 확대한다는 복안(腹案)이다.
―향후 어떤 사업을 계획하고 있습니까.
“올해에는 한식 홍보, 해외 한식당 인증 등의 사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단계적으로 한식당 경쟁력 강화, 조리사 교육, 컨설팅, 전 세계적 한식 네트워크 구축 등으로 업무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정부가 한식세계화 사업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만, 해외에 있는 한식당들은 너무 영세합니다. 이 때문에 한식당과 한식에 대한 이미지가 ‘싸구려’로 오해받는 게 현실인데요. 이를 해결하는 방안이 있습니까.
“선택과 집중을 할 겁니다. 우리 한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쉽게 만들고 접할 수 있는 떡볶이 같은 음식이 위주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급 음식점, 한식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음식점을 만들어서 ‘한식은 원래 이렇게 고급스럽고 건강에 좋은데다 맛까지 좋구나’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년에 뉴욕에 약 50억원을 들여 한식점의 모델이 되는 곳을 만들 겁니다. 그런 음식점들이 세계적으로 많이 생겨야 해요. 정부나 한식재단은 이 부분을 지원할 겁니다.”
정 이사장의 말대로 고급 한식당의 모델이 되는 곳은 외국에 없을까. 기자는 농림수산식품부 외식산업진흥팀으로부터 중국 베이징에 있는 한식당 ‘아이장산(愛江山)’을 소개받았다. 외식산업진흥팀이 발행한 중국 한식당 가이드북에서도 이 음식점은 베이징에서 성공한 고급 한식당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돼 있다.
지난 2006년 한국에서 음식점 사업을 하는 신자상 회장이 법인 직영으로 설립, 현재 베이징에서 두 곳의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1호점 약 2644㎡(약 800평), 2호점 약 5289㎡(약 1600평)로 주방장 등 조리사를 포함한 종업원 수만 300명이 넘는 기업형 대형 식당이다. 지난해 연 매출이 지점당 70억원이 넘는 성공을 바탕으로 10월 말 3호점을 오픈한다.
LG와 한식 전문 기업인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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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5289㎡(약 1600평) 부지에 지어진 한식당 '아이장산' 2호점. |
아이장산 신자상 회장은 LG 쌍둥이 빌딩 서쪽 빌딩 5층에서 아이장산 3호점 마무리 공사를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베이징에서 가장 비싸고 중요한 위치에 3호점을 열게 됐다”며 “LG 측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LG가 어떤 배려를 해 줬습니까.
“LG 쌍둥이 빌딩은 베이징에서도 가장 비싼 곳 중 하나입니다. 이곳에 입주한 다른 외국계 음식점들은 대부분 전세계에 지점이 있는 대기업 형입니다. 이 때문에 저희는 입주할 엄두도 못 냈어요. 이를 알고 LG 측이 임대료 등 여러 조건을 파격적으로 지원해 줬습니다.”
―LG와 어떤 인연이 있기에 파격적인 지원을 받은 겁니까. 혹시 오너와 같은 집안은 아닙니까.
“그랬다면 도움을 받았다고 말도 안 꺼냈겠죠.(웃음) 원래 3호점이 들어오는 자리는 다른 고급 한정식 음식점이 있던 곳입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음식점입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서 장사가 잘 안됐습니다. LG는 이 음식점이 사정이 어려워서 나가려고 하자 상당히 오랫동안 임대료 등을 배려하면서 도와줬습니다. 그런데도 이 음식점이 사업을 접자, 저희에게도 같은 혜택을 준 겁니다.”
―LG 그룹이 왜 그렇게 배려해 준 겁니까.
“한국 기업의 자존심,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고 봅니다. LG 빌딩은 베이징에서 한국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이곳에 다른 나라 음식점은 모두 들어와 있는데 한국 음식점이 없다면 대체 중국과 각국 VIP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결국 그 나라 이미지가 기업 이미지에 영향을 주고 기업의 가치에 영향을 주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 점을 LG 경영진이 고려한 것이죠.”
―아이장산은 이곳에서 최고급 음식점으로 유명하더군요. 3호점도 최고급 음식점입니까.
“이곳은 오피스 밀집 지역입니다. 3호점은 그래서 샐러리맨들이 기존 아이장산 음식의 반 가격으로 최고의 정통 한식을 먹을 수 있도록 전략을 세웠습니다. 일종의 ‘아이장산 비스트로’라고 보면 됩니다.”
아이장산 1, 2호점은 베이징에서 음식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 때문에 한국 유학생들이나 웬만한 관광객들은 이곳에 가서 점심 한 끼 먹을 엄두를 못 낸다. 단골의 70%가 중국인이고 한국인, 외국인 순이다.
“2000년 넘게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를 왜 바꿉니까?”
―최고급 식당은 자본이 많이 들 텐데요. 아이장산 같은 음식점이 많이 생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 부분을 우리 정부나 대기업, 은행이 지원해야죠. 대기업이 일본 기업들처럼 제대로 외식사업에 뛰어들어서 확실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한 방법이죠. 다른 하나는 음식점 노하우가 있는 중소 외식기업이 외국 호텔체인점처럼 운영 노하우를 주고 대기업이나 은행들이 자본을 대는 방법이 있죠. 마지막은 정부가 해외에서 성공한 외식업체를 대상으로 업체의 기존업체를 담보로 자금대출을 보증해 주는 방법 등 다양합니다.”
신자상 회장은 3호점 외에 산시성(山西省) 타이위안(太原)에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준비 중이다. 평소 아이장산 단골 손님이었던 중국인 사업가가 자본을 대고 신 회장은 아이장산의 한국인 주방장과 매니저만 파견을 한다. 자본을 대지는 않았지만 운영 노하우를 알려주기 때문에 로열티를 받기로 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중국 전역에 아이장산 같은 고급 한식당을 퍼뜨릴 계획이다.
―흔히 한국음식을 외국에서 그대로 내 오면 현지화가 안돼서 실패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이장산 음식은 가장 한국적이더군요.
“맞아요. 아이장산 메뉴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메뉴가 잡곡밥에 청국장, 된장찌개 나물, 젓갈로 구성된 ‘조선밥 정식’이에요. 저는 아이장산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음식맛을 현지화’하라는 얘기를 무시했습니다. 한식은 가장 맛있을 때가 퓨전이 아니에요. 우리가 가장 맛있다고 느낄 때가 가장 맛있는 겁니다. 현지화라는 건 그 나라의 상황에 맞게 인적·물적 운용, 홍보 형태 등을 맞추라는 거지, 억지로 음식을 바꾸라는 게 아닙니다. 프랑스가 자기들의 와인을 현지화했으면 그 다양한 프랑스 와인은 살아남지 않았을 겁니다. 결국 프랑스 와인은 실패했을 겁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힘든 음식이나 이 사람들이 싫어하는 음식을 강요하면 안되죠. 중국인들이 샹차이(香菜)를 좋아한다고 우리나라에서 통용됩니까? 이런 부분만 조심하면 됩니다.”
그는 “한식은 까다로운 한국사람 입맛에 2000년 넘게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라며 “이런 한식맛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우리 정부가 한식세계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식세계화를 어떻게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까.
“한국인의 손맛이 핵심”
“한식세계화의 핵심은 ‘한국사람’입니다. 즉 우리 한국사람의 손맛이 핵심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단품 메뉴 한두 개로 시작을 하면 금방 다른 나라 사람들이 따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떡볶이나 비빔밥 같은 음식은 물론 우리나라 음식이 맛있지만 중국 사람들이 하는 식당에 가도 맛있게 하는 곳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에 힘을 쏟으면 정작 중요한 걸 못해요.”
―그럼 어떤 전략을 가져야 합니까.
“다른 나라 음식이 어떻게 세계화됐는지 보세요. ‘톱다운’ 방식이에요. 일본 스시, 프랑스 코스 요리, 중국요리, 이탈리아 스파게티 등은 처음 세계에 진출할 때 최고급 음식으로 통했어요. 최상류층 뉴요커들이 스시를 먹던 것이 점차 대중화돼서 캘리포니아롤이 됐고, 호텔에서만 맛볼 수 있던 이탈리아 식당이 시간이 가면서 비스트로화돼서 익숙해진 겁니다. 우리 한식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선택과 집중이에요. 지금처럼 한식당은 아무나 운영하는, 동네 어디에나 있는 분식집 형태가 돼서는 제대로 된 세계화는 어렵다고 봅니다. 한식을 ‘팝콘’ 같은 값싼 군것질거리로 만드는 게 한식세계화가 아니지 않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