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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기행

‘빅 브라더’가 지켜보는 中東의 오아시스

글 : 허우범  인하대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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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제국, 팔미라 왕국, 십자군, 우마야드 모스크 등 문화유적 즐비
⊙ 현대·기아차 인기, “사우스 코리아 굿! 이코노믹 그레이트”
⊙ “비밀경찰은 택시기사 중에 제일 많아, 그 다음이 청소원, 선생님, 가이드 순일 것”

許又範
⊙ 1962년생. 인하大 국문학과 졸업. 同 대학원 석사.
⊙ 인하大 홍보팀장, 인하大 물류전문대학원 행정실장 역임.
⊙ 저서 : <삼국지기행> <역사의 향기는 바람처럼 날리고>.
폐허가 된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
  ―한국인이세요?
 
  “네, 그렇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다 됐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내가 출국(出國)심사카드를 잘못 기재하자 손수 고쳐 쓰던 레바논 국경세관원이 반갑게 작별인사를 한다. 국경을 통과할 때면 으레 상기된 표정에 긴장감이 돌곤 했는데, 좁은 공간을 가득 메운 시끌벅적함이 국경검문소란 사실마저 잊게 한다.
 
  하지만 시리아 입국(入國)심사는 역시 오래 걸린다. 우리나라와 미(未)수교국인 사회주의 국가여서인가.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온 가이드가 입국절차를 대신 밟고 있음에도 쉽게 끝나질 않는다. 이제 끝났나 싶으면 계속되길 서너 번. 가이드는 찌푸린 얼굴로 여러 종류의 서류를 보여주며 제스처를 크게 한다. 그래도 뚱뚱한 체격의 심사원은 무표정인 채 서류를 뒤적인다. 드디어 짐 검사도 끝나고 시리아로 들어가려는 찰라, 국경수비대가 마지막 검문을 한다.
 
  ―여권을 보여주세요.
 
  가이드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준다. 그 밑에는 지폐 한 장이 접혀 있다. 기관총을 어깨에 멘 군인은 곁눈질로 힐긋 나를 쳐다보고는 곧장 차단기를 올려준다. 한동안 벌어질 실랑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이리라.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시간은 돈이다”라는 격언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 격언의 원래 의미와는 거리가 먼 형태로 말이다.
 
 
  곳곳에 걸린 아사드 대통령 사진
 
  시리아는 실크로드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여행은 쉽지 않은 국가다. 시리아여행을 하기로 마음먹은 지 3년 만에 첫 발을 딛는 시리아는 야트막한 구릉과 고만고만한 나무들 사이로 선인장을 담장 삼은 집들이 서 있다. 어쩌다 마주친 꼬마 한 명이 뜨거운 햇살을 피해 뛰어간다. 산은 온통 민둥산인 것이 마치 북한의 산을 보는 것 같다. 이제 한창 식수(植樹)사업이 진행 중이다.
 
  국경지대를 지나 제법 넓은 도로로 접어들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대통령 사진이다. 시리아 국기를 배경으로 군복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 대통령의 사진을 보며 시리아가 북한과 수교국임을 떠올린다. 그러고 보니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뒤 유리창에도 이차 저차 할 것 없이 아사드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자(父子)의 사진이 붙어 있다. ‘항상 곁에서 지켜보시는 대통령’을 자랑하는 것인가? 주요 지점에는 높다란 철제 기둥이 서 있고 대형 국기가 펄럭인다.
 
  30년 동안 철권(鐵拳)통치를 해온 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의 아들인 바샤르 알 아사드는 2000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35세의 나이로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 피선(被選)자격을 40세 이상으로 규정한 헌법조항은 하루아침에 개정됐다.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부자세습(父子世襲)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사드는 2007년 재선(再選)됐는데, 이때 지지율이 2000년(97.29%) 때보다도 높은 97.62%였다. 가위 부자세습의 사회주의에서나 볼 수 있는 수퍼대통령의 모습이 시리아의 도로를 메우고 있다.
 
  7살 난 딸을 둔 시리아 안내인 무하마드는 명랑해 보이는데, 콧수염을 기른 나이 많은 기사는 왠지 위엄이 느껴진다. ‘시리아에는 비밀경찰이 많다던데 혹시?’ 하는 생각이 든다.
 
  시리아는 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안 되는 것 투성이였다. 한국인 가이드는 구할 수 없다, 동행도 불가하다, 만약 구한다 해도 사전(事前)허가 사항이므로 절대 안 된다,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고 정치나 대통령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지 마라 등등 모든 것이 노(No)뿐이었다.
 
  그런데 가이드의 첫인상은 무척이나 편안하고 호감이 간다. 게다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굉장히 좋아한다. ‘그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내 아내가 한국의 오락프로를 너무 좋아한답니다!”
 
 
  크락 데 슈발리에
 
철옹성 크락 데 슈발리에의 내성과 외성의 모습.
  시리아에서의 첫 여정은 크락 데 슈발리에(기사의 성)서부터 시작하였다. 이 성은 중세(中世)의 원형(原形)을 그대로 간직한 장대한 성채(城砦)로, 세계서 가장 보존이 잘된 십자군(十字軍) 유적이다. 그래서인가. 45℃를 넘는 폭염(暴炎)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들로 가득하다. 일본인도 눈에 띄지만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온 관광객이 대다수다.
 
  지중해와 시리아의 주요 도시인 홈스를 연결하는 해발 750m의 요충지(要衝地)에 세워진 이 성채는 십자군이 이슬람지역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지리적 위치뿐 아니라 성채도 무척 견고하여 철옹성(鐵甕城)으로 불렸다. 이슬람의 영웅인 살라딘도 공략을 포기할 정도였다. 이러한 철옹성이 1271년 함락된 것은 한 통의 가짜 밀서(密書) 때문이었다. 이듬해 십자군을 이끌고 이곳을 찾은 영국의 에드워드 1세는 이 성에 매료되어 귀국 후 영국식 성의 모델로 삼았다.
 
  가이드는 성의 이곳저곳으로 나를 안내한다. 식량 저장고, 식당, 교회 등이 어둡고 음침한 복도 사이로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 중국의 재래식 화장실과 똑같은 출입문 없는 화장실도 있다. 많은 병사가 갇힌 공간에서 좁은 화장실을 사용하려면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성을 지키던 병사들의 고단했을 생활이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해자(垓字)를 사이에 둔 외성(外城)을 돌아 나오는데 ‘1936’이라고 새긴 금속판이 바닥에 박혀 있다.
 
  무슨 숫자냐고 물었더니 “프랑스 발굴팀이 이 성을 발굴한 해(年)를 적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해체되자 이곳을 차지했는데, 그때 이 성을 발굴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성의 이름에서도 프랑스 냄새가 난다.
 
 
  “여자가 종아리를 보이는 것은 엄청 야한 것”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알레포 시장 풍경.
  지중해에 접한 도시 라타키아로 가기 위해 넓은 국도(國道)로 접어들었다. 짐을 실은 트럭과 승용차들이 보이지만 길은 한산하다. 그런데 4차로는 됨직한 도로에 차선(車線)이 그려져 있지 않다. 순간, 레바논에서도 차선이 없어 삼거리에서 교통체증으로 시달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시리아도 차선이 없으니 시내에서는 전쟁을 치러야 할 판이다. 그러고 보니 차선이 없는 두 나라를 여행하며 교통사고 난 것을 보지 못했으니 참 희한한 일이다.
 
  시내가 가까워 오자 대통령 초상뿐 아니라 광고판도 보인다. 레바논에서 본 비키니 차림의 광고 홍수와는 차원이 다른 분유와 아동용품, 그리고 화장품이 이미지의 전부다. 어쩌다 여성의 발과 종아리를 보여주는 광고가 이곳에서는 최고의 이미지 광고다. 문득 레바논에서 여성가이드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여자가 종아리를 보이는 것 자체가 엄청 야한 것입니다.”
 
  이슬람 여성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천으로 만든 차도르를 쓰고 다닌다. 겨우 눈만 볼 수 있는데, 그것도 선글라스를 끼면 볼 수가 없다. 이러한 환경을 상기하면 여자의 발과 종아리를 노출한 것만 해도 정말 파격적인 광고다. 인간은 확실히 환경에 지배를 받는가 보다. 그것이 인위적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중세 이슬람 분위기가 가득한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내리는데 가이드가 방 열쇠를 주면서 내일 아침에 보잔다. 뭔가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이곳에서 같이 숙박하지 않나요?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자고 옵니다.”
 
  가이드와 기사는 분명 다마스쿠스에서 온 사람들인데 다른 곳에서 숙박을 하고 온다니, 이곳에선 저들을 무료(無料)로 재워 주지 않나, 아니면 비용절감을 위해 저렴한 곳에 가서 자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점점 하나로 모아진다.
 
  ‘분명 비밀경찰일 거야.’
 
  전에 여행한 적이 있는 ‘중앙아시아의 북한’ 투르크메니스탄과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다음날 아침 8시. 호텔 로비에 가이드와 기사가 나와 있다. 아침을 따로 먹고 만나니 친근하지가 않다. 마치 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서먹한 느낌이다. 하지만 며칠 지나면 그 또한 나아지리라.
 
 
  250원이면 빵 20인분 살 수 있어
 
시리아 곳곳에 서 있는 아사드 대통령의 사진.
  호텔을 나서자 햇살이 사정없이 내리꽂힌다. BBC방송의 날씨정보를 보았을 때, 48℃라고 했는데 과연 아침부터 용광로다. 레바논도 이런 날씨의 연속이어서 적응이 됐을 법도 한데 몸은 아직도 더위를 못 이겨 물병을 달고 산다. 출발 전부터 1.5L들이 물병의 반을 비운다. 차에도 서너 병을 실었지만 곧 동이 날 것이다. 그리고 오후엔 더 많은 물병이 필요할 것이다.
 
  시내 도로엔 노란색 택시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태반은 한국 자동차들이다. 아반떼, 마티즈서부터 포니, 세피아, 엘란트라, 모닝 등 한국산 중고차(中古車)들이 즐비하다. 가이드가 말한다.
 
  “한국의 자동차는 인기가 좋습니다. 가격에 비해 성능이 우수하기 때문이지요.”
 
  세계 각국의 자동차들이 팔리는 시리아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차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자동차가 일본차를 밀어내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한국을 대단한 경제강국으로 알고 있었다.
 
  장거리 여행을 위하여 주유소에 들렀다. 시리아는 산유국(産油國)이다. 1일생산량이 국내소비량을 넘어 수출까지 한다. 그럼에도 기름값이 우리나라보다 많이 싸지는 않다. 휘발유는 L당 우리 돈으로 1200원, 경유(輕油)는 500원이다.
 
  시리아에서는 대부분의 자동차가 경유를 쓴다. 난방과 취사에도 경유를 사용하는데 정부가 보조금을 준다. 주식이 빵이기 때문에 정부는 밀가루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밀가루값도 지원한다. 시리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피타빵은 얇고 둥근데 그 크기가 솥뚜껑만 하다. 너무 커서 4등분을 해서 먹는다. 우리 돈으로 250원이면 10개를 살 수 있다. 이는 20명이 먹을 수 있는 양(量)이다. 두 겹으로 되어 있어 서로 갈라서 먹는데, 특히 콩으로 만든 홈무스라는 소스에 올리브유(油)를 살짝 뿌려서 찍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로마의 빵바구니’
 
  시리아의 두 번째 큰 도시인 알레포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노란색 택시들이 붐비는 시내를 벗어나자 도로변엔 선글라스를 낀 대통령의 사진이 또 즐비하다. 그 모습이 마치 ‘나는 어느 곳에서도 너희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없이 위협하는 듯하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대형’(大兄·Big Brother)이라고나 할까.
 
  시리아 면적은 한반도 전체 면적보다 조금 작은 18만5000여㎢다. 하지만 사막이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경작지는 국토의 4분의1밖에 안된다.
 
  알레포로 가기 위해서는 레바논과 시리아에 걸쳐 있는 안티레바논 산맥을 넘어야 한다. 마른 계곡과 산길을 구불구불 넘어가는데 창밖의 풍경이 흡사 우리나라의 산 고개를 넘어가는 듯하다. 고개를 넘자 드넓은 평원지대가 끝없이 펼쳐진다. ‘비옥한 초승달지대’로 알려진 베카계곡이다. 밀 수확을 끝낸 평원은 다른 경작을 위해 다시 검붉은 빛을 띠고 있는데 그야말로 한눈에 보아도 비옥한 땅인 것을 알겠다. 세계제국을 건설한 로마인들이 이곳을 ‘로마의 빵 바구니’로 부른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리라.
 
  알레포가 가까워 오자 도로의 소나무들이 모두 동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겨울철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편서풍(偏西風) 때문인데 얼마나 강한 바람인지 기울기가 거의 70도에 가깝다. 내가 나무를 보며 웃자, 눈치 빠른 무하마드가 내게서 배운 한국말을 건넨다. “안녕하세요!”
 
  그 너머로 선글라스를 벗은 채 히틀러처럼 손을 들고 웃고 있는 아사드 대통령의 초대형 사진이 유리창에 어린다. 시리아 제2의 도시 알레포에 왔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시내로 접어들자 자동차 경적소리에 귀청이 따갑다. 차선이 없으니 자동차는 서로 앞서 가려고 난리인데, 그 틈새로 사람들이 왕래하니 어찌 나아갈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자동차와 사람이 뒤섞여 아수라장이다. 게다가 날씨는 인간의 참을성 한계를 넘어섰으니 너나없이 눌러대는 경적소리가 알레포의 화음(和音)인 양 길을 메운다. 가이드와 별반 말이 없던 기사마저도 짜증 섞인 목소리로 연방 경적을 울려댄다.
 
 
  알레포 성채
 
알레포의 상징인 시타델의 위용.
  알레포는 근 5000년의 역사를 지닌 도시다. 이곳이 지중해와 유프라테스강(江)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시내 동쪽에 위치한 재래시장 수크는 13세기에 지어졌는데 아직도 시장의 기능을 잃지 않고 있다. 시장 안은 좁다란 통로가 미로처럼 펼쳐져 있고 골목마다 빽빽이 들어선 상점들은 업종별로 구분이 되어 있어 눈만 마주치면 호객(呼客)행위가 한창이다. 수크 안에는 17세기에 지은 카라반싸라이(대상숙소)가 있다. 자연채광뿐인 어두운 시장골목을 둘러보노라니 당시 바삐 물건을 싣고 나르던 대상(隊商)들의 체취가 느껴지는 듯하다.
 
  알레포의 상징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시타델(Citadel·성채)이다. 알레포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에 위치한 시타델은 요충지인 알레포를 지키는 요새였다. 해자를 끼고 웅장하게 축성된 시타델은 입구가 오직 한 곳이어서 입구를 봉쇄하면 그야말로 난공불락(難攻不落)인 성채가 된다.
 
  입장료가 얼마인가 알아보았더니 시리아인은 400원이 채 안되는데 외국인은 10배의 금액을 내야 한다. 사회주의국가를 여행할 때마다 흔히 겪었던 일이어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런데 학생과 군인은 그보다 할인된 250원이다. 국제학생증이 있으면 국내 학생과 같은 금액이다. 시리아에서 학생은 군인과 함께 최고의 대우를 받는 것이다.
 
  시타델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증개축(增改築)이 이어졌다. 때문에 시대별 종교별로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재(混在)되어 설명을 듣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성채 안에 알레포의 역사를 알려주는 박물관이 있어서 매우 반가웠다. 알레포의 초기 역사부터 오스만제국에 이르기까지 연대기별로 전시를 해놓았는데, 특히 이번 여행에서 일정상 포기해야 했던 메소포타미아문명의 고대(古代)도시인 마리(Mari)에서 발굴된 석기(石器)시대의 동상과 쐐기문자 석판(石板)은 나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호텔 앞 공원놀이터에는 새벽부터 아이들의 떠들어대는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시리아인들은 무더운 날씨를 피해 주로 저녁과 밤에 활동을 한다. 저녁식사도 밤 9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침이 바쁘다. 일찍 자는 대신에 선선한 아침에 노는 것이다. 그네와 미끄럼틀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1960년대를 연상시킨다.
 
 
  1만5000개의 점토판이 발견된 에블라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입맛을 잃었지만 살인더위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아침을 든든히 먹어 두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먹기를 잠시라도 중단하면 얼른 접시를 치운다. 다른 것은 느릿한데 식사 후의 뒤처리는 너무도 빠르다. 후식으로 과일을 준비해 오면 음료수가 치워지고 음료수나 커피를 가져오면 후식이 없어진다. 누군가 지키고 있어야만 편안하게 먹을 수 있다. 오늘도 마시려던 주스를 ‘도둑’맞고 말았다.
 
  알레포를 떠나 에블라로 향한다. 에블라는 기원전 2000년대에 있었던 고대 도시국가다.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중개무역으로 번성했는데, 당시 경쟁국이던 마리를 침략하자 위기를 느낀 아카드왕국의 나람 신 왕이 이곳을 정복하고 모든 것을 불태워 버렸다. 이때 설형문자가 적힌 많은 점토판 문서들이 단단하게 구워져 지하에 묻혔다. 이런 점토판이 모두 1만5000여 개 출토됐는데, 당시 서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 외교 등에 걸쳐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이 점토판에 적힌 많은 지명과 인물은 성서의 구약(舊約)시대를 해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에블라는 한 줌의 재가 되었기에 오히려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중형버스 한 대가 허허벌판 야트막한 구릉 앞에 서 있다. 강렬한 폭염은 더 탈 것 없는 에블라를 재차 훑고 있다. 왕궁터와 점토판이 발견된 도서관을 둘러보고 있는데 한 무리의 여행단이 지친 표정으로 설명을 듣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온 여행객들이다. 고대 로마제국을 여행 중이라고 하는데 이곳에도 꼭 와 보고 싶었단다. 아마도 이곳을 발견한 고고학자가 이탈리아인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水車의 도시 하마의 비극
 
오른테스 강변의 수차.
  하마로 가는 길은 경쾌하다. 그것은 사막과 들판을 벗어나 오랜만에 강을 접할 수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안티레바논 산맥에서 발원한 오른테스강이 지나가는 하마에는 거대한 수차(水車)가 여러 개 있다.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직경이 족히 20~30m는 됨직하다. 기원전 1세기 아람왕국 때부터 사용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이러한 수차가 100개가 넘었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수차를 ‘노리아스’라고 부르는데, 수차가 돌아가며 내는 소리가 ‘노리아, 노리아’처럼 들린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이 강물에 뛰어든다. 여성들은 차도르를 입은 채로 강변에서 앉아 몸을 적신다. 그다지 깨끗해 보이진 않지만 얼마나 귀한 물인가. 순간, 사계절 맑은 물이 넘치는 계곡이 있는 우리나라가 너무도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해외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되는 것이다.
 
  비옥한 도시 하마에도 아픈 상처가 있다. 1982년 무슬림형제단이 주도한 반(反)정부 폭동이 그것이다. 시리아의 무슬림은 대부분이 수니파로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은 전체의 5%도 안되는 알라위파다. 아사드에 대항하는 무슬림형제단은 수니파가 많이 사는 하마를 봉기의 중심으로 삼았다.
 
  폭동진압은 무자비했다. 아사드는 탱크를 앞세워 도시인구의 10분의 1인 2만5000명을 사살했다. 도시의 3분의 1이 폐허가 됐다. 당시 진압을 지휘했던 군(軍)사령관은 현(現)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삼촌이다. 그는 진압이 완료되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2만5000명 정도의 적은 희생으로 조국의 평화를 지킨 것이다. 만약 이번 사태가 레바논과 같은 내전(內戰)으로 발전했다면 적어도 30만명은 더 희생됐을 것이다. 그러므로 큰 재앙을 막은 것이다.”
 
  당시 희생자들을 집단으로 매몰했던 자리에는 높다란 호텔이 들어섰다. 이제는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금기(禁忌)사항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오직 이 모두를 지켜본 늙은 수차만이 삐거덕거리고 있다.
 
 
  체감온도 70~80℃
 
  느긋한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서려니 태양빛이 모든 것을 무채색으로 만들고 있다. 체감온도가 70~80℃에 이르는 거리는 숨죽인 듯 고요하다. 어쩌다가 지나가는 노란색 택시 외에 모든 자동차는 정차(停車)해 있다. 상점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 그늘진 골목에만 몇몇 사람이 모여 있을 뿐이다.
 
  “지금은 너무 더워서 다닐 수 없으니 호텔에서 쉬세요.”
 
  가이드 무하마드가 살인적인 폭염기간에 찾아온 나에게 타이르듯 말한다. 욕심은 넘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나머지 일정도 소화할 자신이 없다. ‘덥다’는 말은 이곳 날씨를 설명하는 단어가 못된다. 죽을 맛을 넘어 ‘사투(死鬪)한다’는 말이 적당할 것 같다. 나는 그래도 여행기간 중 선탠크림을 바르는 등 폭염에 잘 대처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귀국 후 보니 살갗이 탄 정도가 아니라 속살까지 익어 있었다. 화상을 입은 것이다. 그 때문에 귀국 후 2주일 가까이 고생을 했다.
 
  이런 까닭에 우리의 휴가철인 7월말과 8월초는 이곳에서는 여행 비수기(非需期)라고 한다. 너무 더워서 관광객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나처럼 어쩔 수 없는 사람들만 이렇게 폭염과 사투하며 여행하는 것이다. 날씨가 더우니 사람들도 게으르다. 호텔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도 웨이터들이 선뜻 다가오질 않는다. 손짓해서 불러야만 다가오고 매니저가 지시해야만 움직인다. 낯선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만은 아닐 터, 더위가 모두를 지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키 작은 동양여자는 모든 곳을 쓸고 닦으며 청소한다. 필리핀에서 온 메이드(maid)이다.
 
  이곳 중동지역에는 필리핀에서 온 메이드가 많다. 청소, 빨래 등 집안의 궂은일은 물론 아이들 뒤치다꺼리까지 맡아서 하는 사람들이다. 시리아에 오기 전에 레바논을 들렀는데 그곳은 메이드가 일반화해 20만명이 있다고 했다. 인원이 많다 보니 이런저런 사건이 생기는데 언제나 약자(弱者)인 메이드가 피해를 많이 본다. 급여착복, 감금에 이어 성(性)폭행까지 당하고 급기야는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한다. 국가가 부강하지 못하면 국민이 타국(他國)에까지 와서 고생하며 멸시와 천대를 받는 것이다.
 
 
  사막에서 낭패를 볼 뻔하다
 
  사막속의 오아시스 도시인 팔미라를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탔다. 고속도로라 해도 차량은 국도와 별반 차이가 없다. 승용차보다는 트럭 등 수송차량이 많지만 차선을 지키지 않아도 걱정 없이 달릴 수 있다. 마을을 지나치는 도로변 곳곳에는 자동차를 타려고 손짓하는 사람들이 서 있다. 무더운 날씨에 저들이 기다리는 자동차는 언제 올까. 자리가 있다면 태워 주고 싶은 마음이다.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와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는 직선거리로 약 600㎞다. 두 도시 사이는 온통 사막지대뿐인데 팔미라는 이러한 사막의 한가운데에 있다. 시리아 제3의 도시인 홈즈에서 동쪽으로 향했다. 어느덧 길가에서 동쪽을 향해 인사하던 소나무도 사라지고 올리브와 아몬드를 경작하는 구릉지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사막을 오르내리는 직선도로가 끝없이 동쪽을 향하고 있다. 옛날 실크로드 대상들도 이 길을 오갔을 것이다. 사막을 작열(炸熱)시키며 타오르던 열기가 회오리바람을 일으킨다. 높이가 수㎞에 이르는 누런 모래가 꿈틀거리며 하늘로 오르는 것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한낮에 사막을 횡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비록 자동차라 해도 마찬가지다. 엔진과 타이어에 무리가 갈 수 있고 만약 고장이라도 나면 꼼짝없이 사막에 갇히기 때문이다. 지루한 사막풍경이 최면을 걸 즈음, 엔진소리가 이상한 것이 힘이 느껴지질 않는다. 바퀴에서도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순간, 정신은 번쩍 들고 온몸엔 전율(戰慄)이 흐른다. 명랑하던 가이드도 긴장이 되는지 기사와 말을 주고받는다. 기사는 기어 변속과 함께 이것저것 만져 보며 운전을 한다. 내릴 수는 없고 속도를 늦추며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다. 조심스레 달리기를 10여 분. 엔진소리가 다시 부드러워진다. 바퀴에서 이상한 소리는 나지만 펑크가 난 것은 아니다.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팔미라까지는 아직도 100여㎞가 남았는데 기사가 자동차의 속력을 줄인다. 자동차를 살살 몰아 무사히 도착하기 위한 것이다. 마음을 진정시키자 사막의 열기가 에어컨바람을 끊고 들어온다. 차 안도 이럴진대 창밖은 어떠할까. 용광로처럼 이글거리는 거대한 사막 길을 현대문명의 이기(利器)라는 자동차 한 대에 의지해서 건너가는 내 모습이 갑자기 초라해진다. 자동차정비소는 물론 휴게소조차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자칫하면 낭패를 당할 뻔했으니,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대자연 속에서는 한낱 미미한 존재임을 실감할 뿐이다.
 
 
  제노비아 여왕
 
팔미라서 만난 기념품을 파는 베드윈 소녀.
  끝없던 모래사막이 돌산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신기루(蜃氣樓)인 듯 울창한 야자수 숲이 보인다. 영국의 추리작가 아가사 크리스티가 말했듯이 ‘모래사막 한가운데 땅속에서 솟아오른 환상적인 도시’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드디어 팔미라에 도착한 것이다. 높이가 10m 넘는 야자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그야말로 사막속의 초록궁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막지대 한복판에 어떻게 이런 오아시스가 생겨났을까. 오늘날까지도 에프카라고 불리는 샘에서 나오는 풍부한 수량이 이토록 푸른 오아시스 도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팔미라의 원래 이름은 타드몰(Tadmor)인데 이는 고대 셈족어로서 야자수라는 의미다. 고대부터 오아시스 도시였음을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는 사막을 왕래하던 카라반들의 쉼터였고, 동서(東西)무역을 이어주는 교역도시였다. 로마시대 때 중개무역으로 전성기를 누렸는데, 로마도 넘보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군대를 보유한 도시국가로 발전했다. 팔미라가 로마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은 ‘중동(中東)의 클레오파트라’로 불린 제노비아 여왕 때였다.
 
  제노비아 여왕은 남편인 오다이나투스 왕이 암살당하자 스스로 아들의 섭정(攝政)이 되어 강력한 국가를 만들었다. 그녀는 아들을 황제라 칭했다. 그녀의 성세(盛世)는 로마의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친히 군대를 이끌고 팔미라를 정복하는 바람에 막을 내렸다. 그녀의 지나친 야심이 팔미라의 몰락을 가져오는 원인이 됐다.
 
  “원 달러, 원 달러!”
 
  삼형제묘의 프레스코를 관람하고 나오는데 베드윈족 아이들이 조잡한 기념품을 손에 들고 호객행위를 한다. 용광로 날씨에 모자도 없이 누구도 관심 없는 물건을 양손에 들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앞길을 막는다. 가엾다는 생각에 하나 사 주려고 하는데 가이드가 사지 말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러고는 내 손을 잡고 “빨리 가자”고 한다. 사막에서 천막을 치고 유목생활을 하는 베드윈족의 아이들은 주로 관광지에서 기념품을 판다. 내가 돌아서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걸어가자 가이드가 귀띔을 한다.
 
  “사 주면 버릇이 점점 나빠져요.”
 
  팔미라 유적은 더위가 조금 물러갈 때 보기로 하고 먼저 박물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팔미라에서 발굴된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대부분 로마시대와 관련 있는 것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 팔미라의 유적은 대부분 1~3세기의 로마시대에 건축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물관 진열대에 일본국기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박물관 건설을 지원하고 진열대를 기증했기 때문이란다. 그러고 보니 유물에 대한 설명에도 일본어 안내가 있다.
 
  ―일본사람들이 많이 오나요?
 
  “아시아에서는 제일 많이 오는 편이에요.”
 
  오후 5시에도 태양은 지칠 줄을 모른다. 로마시대의 열주(列柱)들이 부서진 폐허 사이에 우뚝 솟아 있다. 팔미라를 대표하는 벨 신전부터 찾아보았다. 벨은 바빌로니아 최고의 신으로 그리스의 제우스나 로마의 주피터와 같은 존재다. 현재 남아 있는 신전은 서기 32년 티베리우스 통치기간에 주피터 신에게 바쳐진 것이다. 벨 신전에는 세계적인 유적지답게 많은 관광객이 모였다. 프랑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미국, 러시아 등에서 온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아마도 시리아 여행 중 가장 많은 외국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일 것이다.
 
  총 16만 평에 이르는 팔미라 유적은 석조기술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열주도로와 아치형 석조문, 원형극장과 개선문, 시장 역할을 겸한 아고라 등을 통해 팔미라가 얼마나 장대하고 멋진 도시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사우스 코리아 굿! 이코노믹 그레이트”
 
팔미라를 대표하는 벨 신전.
  팔미라 유적을 둘러보던 관광객들이 어디론가 차를 타고 바삐 이동한다. 사막에서의 석양을 보기 위해 150m 산 위에 건설된 시타델로 이동하는 것이다. 나도 뒤따라서 시타델에 오르니 석양을 감상하기 좋은 장소엔 이미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한낮을 용광로처럼 달구던 태양이 마지막 붉은 빛을 사르며 사막 저편으로 사라진다. 그야말로 하루 중 태양이 베푸는 150초의 장관이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서의 석양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한다. 더욱 겸손하게 만든다. 그리고 성실한 자세로 삶에 임할 것을 가르쳐 준다.
 
  시타델을 내려오니 유적지는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해 있다. 햇빛이 누그러지자 축구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팔미라도 관람시간이 끝나면 새로운 사람들의 차지가 되는 것이다. 더위를 식힐 겸 과일주스를 먹기 위해 상점에 들렀다. 주스를 건네주던 시리아인이 내게 묻는다.
 
  ―차이나? 재팬? 코리아?
 
  “코리아!”
 
  ―오우, 코리아! 안뇽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노우스 코리아? 사우스 코리아?
 
  “사우스 코리아.”
 
  ―사우스 코리아 굿! 이코노믹 그레이트!
 
  북한이 수교국이건만 우리나라에 대한 호감이 훨씬 크다. 특히, 자동차와 가전제품이 인기가 있는데 그래서인지 시리아인들에게 한국은 경제대국으로 명성이 높다.
 
 
  황당한 교통표지판
 
  시리아인들은 친절하다. 유적지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그러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천천히 잘 보고 다시 오세요.”
 
  팔미라 박물관을 나와 유적지로 향할 때였다. 유물을 설명한 가이드가 내게 건넨 말이다.
 
  유구한 역사와 문명을 지닌 문화민족으로서의 수준 높은 자긍심이 배어 있는 말이다. 시리아 화폐 중 최고액수는 1000sp(시리아파운드)인데 그 지폐의 주인공은 아사드 대통령이다. 사회주의 체제이니 이는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누굴까. 500sp의 주인공은 팔미라의 제노비아 여왕이다. 시리아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순박함은 바로 이러한 유구한 문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아침 일찍 팔미라를 출발해 다마스쿠스로 향한다. 폭염이 극성을 부리기 전에 사막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도로표지판을 보니 다마스쿠스까지는 239㎞다. 그런데 한참을 달렸는데 240㎞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아니 무슨 표지판이 이 모양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찰라, 233㎞라는 표지판이 다시 보인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시리아식 사회주의 도로표지법인가 보다.
 
  황량한 지평선을 향해 달리는 사막 길은 아직도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사막을 달구는 열기가 드디어 차 안까지 스며든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사나 가이드가 긴장하지 않는다. 조금 가면 카페가 있으니 그곳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사람도 쉬고 자동차 열기를 식히고 가자고 한다. 여행객들 사이에서 유명한 ‘바그다드 카페’가 이 길에 있는 것이다.
 
 
  바그다드 카페
 
사막 길의 휴게소 바그다드 카페앞에 선 필자.
  바람개비 풍차가 돌아가는 바그다드 카페는 길 옆 공터에 나무로 만든 간이 휴게소가 있다. 차와 커피, 물과 음료수 등을 마실 수 있는 귀한 장소인데 건물 안에서는 각종 기념품도 판매하고 있다. 카페는 허름하게 친 천막과 낡은 의자들뿐이지만 사막 길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휴식처가 되어준다.
 
  커피 한 잔으로 오아시스의 달콤한 여유를 즐길 때, 팔미라로 가는 관광버스 두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온 여행객들인데 벌써부터 더위에 허덕인다. 모름지기 팔미라에 도착하고 나면 호텔방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리라. 더운 날씨일수록 뜨거운 물을 마시는 것이 더위를 잘 이기는 방법이다.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몸과 날씨의 평형을 맞추고 일어섰다.
 
  뜨거운 커피 덕분인지 무더위를 어느 정도 이겨낼 무렵 사막 길은 사라지고 도시로 접어든다. 공사 중인 도로에는 오른쪽으로 가라는 팻말이 보인다. 그런데 정작 길은 왼쪽으로 굽어 있다. 오른쪽 도로가 공사 중인 것이다. 이 나라 도로 위의 안내판은 모두 의심해야 할 판이다.
 
  다마스쿠스에 들어서자 차량들의 소음이 더욱 심하다. 정체 또한 극심하다. 우리의 기아차와 현대차들도 길거리에 즐비하다. 시리아의 수도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에 왔다는 것이 실감난다.
 
 
  우마야드 모스크
 
시리아 최고의 성전 우마야드 모스크.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우마야드 모스크(사원)다. 이 건물은 이슬람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이다. 이곳에는 이슬람의 영웅인 살라딘의 묘가 있고 참수(斬首)당한 세례 요한의 목이 담겼다는 관도 있다.
 
  한 종교의 건물 안에 어떻게 다른 종교의 선지자가 있을 수 있고, 한 종교의 건물 안에 어떻게 다른 종교의 건물들이 들어설 수 있는가. 하지만 이는 우리의 빗나간 상식일 뿐, 우마야드 모스크에서는 모두가 가능한 일이다.
 
  그 때문에 우마야드 모스크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각기 다른 종교들이 어울려 빚어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다. 우마야드 모스크에 들어서면 비록 종교를 믿지 않는 자일지라도 겸손과 화합의 마음이 저절로 우러날 것이다.
 
  우마야드 모스크를 나와 상점이 늘어선 골목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시간씩 정전이 되는 통에 상점은 컴컴하고 손님은 없다. 대신 좁은 골목길엔 자동차만 사람들을 제치고 쉴 새 없이 지나간다. 한 대도 조심하면서 지나가야 할 골목길을 저토록 빠르게 달려 나가니 그야말로 놀라운 운전솜씨가 아닐 수 없다.
 
  다마스쿠스에서도 어김없이 만난 대통령은 보다 세련되어 있다. 정장차림에 선글라스도 벗었다. 세계적인 도시의 대통령이기에 그러한가. 그동안 보아 왔던 권위주의적이고 종교창시자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호텔에서 짐을 풀고 나를 안내해 주기로 했던 유학생을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리아 여행이 가이드에만 의지하는 것보다 훨씬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은 왠지 끌려다닌 듯한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와 동행한 가이드와 기사는 한 번도 같은 호텔에서 잔 적이 없다. 매번 어디론가 ‘퇴근’하고 아침에 돌아왔다. 설명도 유적지에만 집중되었다. 명랑하긴 했지만 궁금한 것 투성이다. 내가 비밀경찰이 아니냐고 의심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비밀경찰은 택시기사 중에 제일 많다”
 
  “비밀경찰은 택시기사 중에 제일 많아요. 그 다음이 청소원이고 그 다음은 선생님이에요. 가이드는 그 다음일 거예요.”
 
  사람을 많이 접하는 직업이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일하는 직업에 비밀경찰이 많은 것이다. 국민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불평과 불만을 털어놓는지 항상 은밀하게 다층적으로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관광사업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외국인에게는 관대한 편이에요. 정치이야기만 하지 않으면 되거든요.”
 
  시리아에는 100만명이 넘는 이라크 난민(難民)이 있다. 전쟁을 피해 시리아로 왔지만 먹고살기가 힘들어 여성들은 몸까지 팔아 가며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다고 한다.
 
  “엄마와 딸이 함께 술집에 나가는 경우도 있답니다.”
 
  다마스쿠스 난민촌은 이라크 난민들에게는 꿈과 같은 곳이다. 그러나 이곳도 이미 포화(飽和)상태다. 이제는 난민들이 다시 이라크로 돌아간다고 하니 인간의 삶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전쟁은 사전에 막아야만 한다.
 
  다마스쿠스에서 남쪽으로 110㎞ 떨어진 보스라로 향한다. 오늘도 날씨는 45℃를 넘는다. 수퍼마켓에 들러 물을 사는데 작은 것으로 세 병을 사고 물으니 40sp라고 한다. 50sp를 주고 차에 올라 잔돈을 확인해 보니 5sp이다. 병에 표기된 물값을 보니 10sp라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시리아인들은 장삿속만 보이면 사기를 잘 친다’고 하더니 꼬마 녀석에게 순식간에 15sp를 도둑맞은 것이다. 여기저기서 산 생수병들도 살펴보니 거의 같은 수준으로 손해를 본 셈이다. 외국인이 자국 화폐에 대한 셈이 늦는 것을 이용해 약삭빠르게 이득을 챙겼으니 외국인 등쳐먹는 것도 이 정도면 프로급이다.
 
  보스라가 국경지대에 가깝게 있어선지 차량들이 제법 눈에 띈다. 그런데 많은 차가 도로변에 서 있다. 경찰이 모두 세운 것인데 우리 차도 예외는 아니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창문을 열고 다가오는 경찰을 바라보는데, 상급자인 듯한 경찰이 내가 외국인임을 확인하더니 “어서 가라”고 손짓을 한다. 괜한 트집을 잡아 운전자들에게 벌금을 뜯어낼 요량이었던 것이다. 기사와 가이드는 어이없다는 몸짓을 하며 출발하는데, 뒤이어 오던 자동차들은 여지없이 도로변에 정차를 한다.
 
 
  석별
 
보스라 원형극장의 웅장한 모습.
  보스라에 도착하니 역시 대통령이 제일 먼저 마중 나와 있다. 정말로 시리아 전역을 순찰하는 대통령이다. 보스라는 로마제국 시대 아라비아 지역의 행정수도였다. 잘 보존된 거리와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이 아직도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성채와 극장을 둘러보고 시리아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위해 식당에 들렀다. 가이드 무하마드도 시리아에서의 마지막 식사이기에 특별히 생선요리를 주문했다고 한다. 여태껏 양고기와 닭고기만 먹어 왔는데 생선이라니. 반가움 한편으로 진작 메뉴에 넣었으면 좋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우리의 생선가스와 같은 요리가 나왔다. 오랜만에 생선을 대한 나는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무하마드가 자기 것을 내게 덜어 준다. 사양하려 했지만 그의 눈빛이 그윽하다. 체제가 다른 곳에서 온 이방인과 많은 대화는 나누지 못한 그였지만 며칠 동안 함께했던 인간적인 정(情)이 다정하게 오고 감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직업이 설령 비밀경찰일지라도.
 
  ―시리아에 또 올 건가요?
 
  “가능하다면 한 번 더 오고 싶어요.”
 
  “네, 꼭 오세요. 그리고 오실 때 꼭 다시 만나요.”
 
  석별(惜別)의 포옹을 하는 무하마드가 힘주어 말한다.
 
  “그래요. 그때는 매일 생선요리를 시켜 줘야 해요.”
 
  나를 태운 차가 국경지대를 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무하마드는 양손을 높이 흔들었다. 나도 창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정들자 이별’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시리아와 마음을 열 즈음, 시리아를 떠나고 마니 시리아가 다시 그리움으로 다가올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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