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勝俊의 중국 바로보기] 그래도 중국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 월간조선

지난 5월 3일부터 7일까지 이뤄진 김정일(金正日)의 중국 방문에서 중국 미디어들은 사회주의 미디어로서의 ‘본질(本質)’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자본주의 미디어의 본질은 입법, 행정, 사법의 3권(權)과 분리된 ‘제4부’로서 나머지 3부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미디어들은 그렇지 않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최고의 자본주의에 도달한 것으로 보이는 중국이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자본주의 속도에 훨씬 못 미친다. 미디어 역시 사회주의 시스템 속에 머물러 있다. 특히 중국공산당의 경우 마오쩌둥(毛澤東)의 지시에 따라 ‘붓(筆杆子)’과 ‘총(槍杆子)’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총이 요구할 경우 붓은 언제든 총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중국사회라는 것을 김정일의 중국 방문 기간에 잘 보여주었다.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은 모든 준비를 해 놓고 있다가 김정일이 베이징(北京)을 떠나 압록강을 향해 달리고 있을 때인 7일 오전에야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비서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공산당 총서기 회담 내용에 관한 문자 뉴스와 동영상 파일을 공개했다. 그 동영상을 보면 그렇게 많은 중국 취재진이 김-후진타오 회담을 취재했지만, 7일 오전까지 회담이 실제로 이뤄졌는지조차 외부 세계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중국 미디어들이 그런 형편이고, 북한 보도기관들이야 더 말할 것이 없기에 김정일의 중국 방문의 실체는 정확히 그려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차피 중국과 북한 매체들이 보도한 것 이외에는 김정일 중국 방문의 실체를 그려볼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따라서 중국과 북한 매체들이 보도한 내용으로라도 최대한 상세하게 김정일의 중국 방문의 실체에 가까이 가보려는 노력을 해보기로 하자.

우선 김정일 중국 방문의 하이라이트로, 지난 5월 5일 오후 베이징 시내 한복판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김-후진타오 회담에 관한 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보도 내용 전문(全文)은 다음과 같았다.

<중국공산당 중앙총서기 겸 국가주석 후진타오의 초청에 따라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방위원회 위원장 김정일이 5월 3일부터 7일까지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 베이징을 방문하는 기간 후진타오는 김정일과 회담 및 환영연회를 가졌다. 중국공산당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장 우방궈(吳邦國),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겸 총리 원자바오(溫家寶)가 각각 김정일과 회견했다.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자칭린(賈慶林), 리창춘(李長春), 시진핑(習近平), 리커창(李克强), 허궈창(賀國强), 저우융캉(周永康)이 각각 김정일을 안내해서 관련 활동에 참가했다.

후진타오의 5개항 제의

회담 중 후진타오는 중국의 당과 정부, 인민을 대표하여 김정일이 다시 방중해 준 데 대해 열렬한 환영을 표했고, 조선 측이 칭하이(靑海) 위수(玉樹)에서 강력한 지진이 발생한 직후 신속하게 위문전보를 보내준 데 대해, 그리고 상하이(上海) 엑스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참가해 준 데 대해 감사를 표했다.

후진타오는 “중국과 조선의 전통적인 우의는 양당과 양국, 두 나라 인민들의 고귀한 재산이며, 중·조 간의 우의를 시대에 맞게 발전시켜 세대를 이어 전해 내려가게 하는 것은 쌍방 공동의 역사적 책임이다. 근년 들어 중·조 관계에는 부단히 새로운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특별히 작년에 양국은 수교 60주년을 경축하는 중·조 우호의 해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양국은 정치교류와 각 영역의 교류협력에서 풍부한 성과를 거뒀다. 중·조 우호협력관계를 공고하게 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흔들림 없는 방침이다. 우리는 시종일관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양국 관계를 파악하고, 지키고, 추진해 왔으며, 조선 측과 함께 중·조 관계를 부단히 발전시켜 새로운 단계로 올려놓기 위해 노력하고, 양국 인민들에게 복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노력해 왔으며, 이 지역의 영구적인 평화를 실현하고, 공동 번영하는 데 공헌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후진타오는 중·조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양국의 사회주의 건설에 유리하며, 양국의 공동이익을 지키는 데도 유리하며,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 번영을 지키는 데도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후진타오는 이를 위한 다음과 같은 5개 항의 건의를 했다.

첫째는 고위층 간의 교류를 유지하고, 쌍방 지도자들 간의 상호방문과 특사 파견을 통해서, 서로 구두메시지를 주고받는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자.

둘째, 전략적인 의사소통을 강화하자. 쌍방은 수시로, 또는 정기적으로, 양국의 내정과 외교의 중대문제, 국제문제와 지역문제, 그리고 치당(治黨)과 치국(治國)의 경험 등 공동 관심사에 대해 깊이 의사소통을 하자.

셋째, 경제무역 협력을 심화하자. 쌍방 정부의 관련 부처들은 경제무역 협력을 심화시키기 위해 진지한 토론을 진행하자.

넷째, 문화교류를 확대하자. 쌍방은 문화와 교육, 체육 등 각 영역에서 교류를 심화시키고, 특히 청소년 교류를 통해 중·조 간의 전통적인 우의를 세대를 이어가며 이어나가도록 하자.

다섯째, 쌍방은 국제와 지역문제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자.

김정일, 北·中 간 전통적 우의 강조

김정일은 후진타오가 깊은 정으로 초청해 주고 열렬히 접대해 준 데 대해 감사를 표하고, 후진타오가 양국의 실무적인 협력을 위해 제시한 5개 항의 건의에 완전한 찬동을 표시했다. 김정일은 양국의 선배 지도자들이 체결하고 육성해 온 조·중 간의 전통적인 우의가 시대의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시간적인 변화나, 세대의 교체에 따라 변화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년에 양국의 각계가 조·중 수교 60주년을 맞아 진행한 일련의 경축활동이 중·조 우의를 새로운 역사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 놓았으며, 쌍방의 공동 노력에 따라 쌍방 간의 각 영역 우호협력은 양호한 발전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새로이 합의에 도달한 압록강 대교 건설은 앞으로 조·중 우호협력의 새로운 상징이 될 것이라고 아울러 말했다. 상호이익의 원칙에 따라 조선 측은 중국기업들의 조선에 대한 투자를 환영하며, 조·중 간의 실무협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격상시키자고 말했다. 김정일은 조선의 당과 정부가 시종일관 견지해 온 것처럼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각도에서 조·중 관계를 파악하며, 조·중 관계를 부단히 공고하게 하고 발전시켜 나가자고 강조했다.

김정일은 상하이 세계박람회의 성공적인 개막에 대해 열렬한 축하를 표했다. 그리고 칭하이 위수 지진으로 빚어진 막대한 사상자와 재산 손실에 대해 친절한 위문의 뜻을 재차 표했다. 그는 자신이 중국에 올 때마다 항상 중국인민들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위대한 사업을 하면서 거둔 새로운 성과를 깊이 느낀다고 말했다. 중국이 이룩한 발전과 성과는 조선인민들을 크게 고무시킨다고 했다.

양국 지도자들은 각자의 국내 경제사회 발전의 정황을 서로 알려주었다. 김정일은 현재 조선의 각 영역 업무는 잘 추진되고 있으며,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부단히 제고시키는 것이 조선노동당의 중심 임무라고 말했다. 후진타오는 조선이 안정을 유지하고, 경제발전과 민생 개선을 위해 취한 적극적인 조치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조선인민들이 김정일 총비서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노동당의 영도에 따라 국가 건설 사업에서 더욱 큰 성과를 거두기를 축원한다고 말했다. 김정일도 후진타오 동지를 당 총서기로 하는 중국공산당의 영도 아래 중국인민들이 당의 집권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믿으며, 과학발전관을 실천하고, 화해(和諧)사회를 건설하는 역사적인 과정에서 부단히 새롭고 위대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표했다.

쌍방은 국제정세와 동북아 지역 형세 및 6자회담 등의 문제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교환했다. 쌍방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번영은 중·조 양국과 동북아 지역, 각국의 공동이익에 부합한다고 확인했다. 쌍방은 9·19공동성명의 입장에 근거해서 한반도 비핵화의 실현이라는 공동목표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쌍방은 6자회담 참가국들이 성의를 보여야 하며, 6자회담의 추진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확인했다. 조선 측은 한반도 비핵화를 견지하는 입장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고 밝혔다. 조선 측은 6자회담 참가 각국과 마찬가지로 조선도 6자회담 재개에 유리한 조건이 창조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조선 측은 중국 측이 6자회담을 위해 기울여 온 적극적인 노력과 공헌에 찬양의 뜻을 표했다.

김정일은 후진타오가 다시 조선을 방문해 주도록 초청했다. 후진타오는 이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요청을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북한 관영통신, 5개 항 건의 보도하지 않아

이상이 신화통신이 전한 김정일과 후진타오 정상회담 내용의 전부다. 회담 다음 날 후진타오는 김정일을 안내해서 이른바 ‘베이징의 실리콘 밸리’로 알려진 중관춘(中關村)의 바이오(Bio)기업인 보아오(博奧)를 보여주었다. 이 회사를 참관하면서 김정일은 “4년 만에 다시 중국을 방문해서 현지 참관을 하고 시찰을 하니, 중국이 관련 영역에서 거두는 발전과 진보에 새로운 이해와 감각을 갖게 됐으며, 특히 중국이 조화로운 발전과 기술혁신에서 거둔 풍부한 성과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김정일은 “조선 인민들은 중국이 국가건설에서 거둔 성과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김정일은 후진타오와 회담한 데 이어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장과도 회담했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도 회담했다. 김정일과 중국 지도자들의 회담에는 중국 측에서 왕치산(王岐山) 부총리, 류치(劉淇) 베이징시 당서기, 궈보슝(郭伯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링지화(令計劃) 당중앙판공청 주임, 왕후닝(王扈寧) 당 중앙서기처 서기,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 등이 배석했다. 북한 측에서는 김영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인민무력부장, 당 중앙서기처 서기인 최태복과 김기남,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당의 부장들인 장성택, 김영일, 김양건, 당 중앙 제1 부부장인 주규창, 국방위원회 국장 현철해, 이명수, 함경북도 당 책임서기 태종수, 평안북도 당위원회 책임서기 김평해 등이 참석했다. 김정일과 후진타오 회담에 배석한 중국 측 참석자들의 명패가 한자의 한글음 표기로 돼 있었던 점이 눈에 띄었다. 즉 ‘오방국’ ‘온가보’ ‘왕기산’ ‘류기’ ‘곽백웅’ ‘령계획’ 등이었다. 참석자들의 면면은 이번 김정일 방중이 조선노동당과 중국공산당의 당 대 당 최고수뇌 회담 형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두 당의 수뇌부가 회동하는 형식을 취했다.

신화통신이 전한 김정일-후진타오 회담 내용 가운데 주목할 부분은 후진타오가 김정일에게 했다는 ‘5개 항의 건의’이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김정일은 후진타오의 ‘5개 항 건의’가 양국의 실무적인 협력을 위해 제시한 것이라면서 5개 항의 건의에 완전한 찬동을 표시했다. 그러나 신화통신보다 하루 늦은 8일 김정일-후진타오 회담내용을 전한 조선중앙통신은 신화통신과 거의 같은 내용을 보도하면서도 유독 후진타오의 ‘5개 항 건의’만은 쏙 빼놓았다. 김정일이 ‘완전한 찬동’을 표시했다고 신화통신이 전한 데에도 북한 관영통신이 이 5개 항 건의를 보도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후진타오의 5개항 건의, 韓·中 전문가 보고서와 유사

주목할 점은 후진타오가 김정일에게 제시했다는 ‘5개 항의 건의’가 한국과 중국 양국의 학계 전문가들이 지난해에 시작해서 올해 4월 말까지 작성한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발전을 위한 보고서’의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후진타오가 제시한 5개 항 건의의 내용은 첫째, 고위층 간의 교류 확대, 둘째 국내외 문제에 관한 전략적인 의사소통 강화, 셋째 경제무역 협력 심화, 넷째 문화와 교육, 청소년 교류 확대, 다섯째 국제와 지역문제에서 협력 강화 등이었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후진타오가 김정일에게 제시한 이 5개 항 건의의 내용이 무슨 이유로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강화를 위한 보고서’의 골자와 비슷한가 하는 점이다. 이 한·중 간의 보고서는 지난 2008년 이명박(李明博) 대통령과 후진타오 국가주석 간의 베이징 회담 때의 합의에 따라 한·중 양국에서 14명씩의 전문학자가 참여해서 지난 4월 말까지 서울과 베이징을 오가며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보고서는 5월 하순으로 예정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방한 때 서울에서 채택될 예정이었다. 왜 후진타오가 김정일에게 제시한 ‘5개 항 건의’의 내용이 한·중 간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발전을 위한 보고서의 내용과 비슷한가 하는 점은 앞으로도 관찰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선(先) 천안함, 후(後) 6자회담’으로 정책 방향을 굳힐 경우, 60년 전 한국전쟁 때 형성된 한ㆍ미와 북ㆍ중 간 대립구도가 재연될 수도 있다. 사진은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지난 4월 외교통상부를 찾아 북핵 6자회담 우리 측 수석대표인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의 배신감

김정일-후진타오 회담에서 두 번째로 주목할 부분은 김정일이 6자회담으로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점이다. 우리 외교 당국 일각에서는 김정일이 이번에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나, 국가 간 정상회담에서 “조선은 6자회담 재개에 유리한 조건이 창조되기를 바란다…우리는 중국이 6자회담을 위해 기울여 온 적극적인 노력과 공헌에 대해 찬상(讚賞)한다”라는 정도의 표현을 했으면 북한이 6자회담 복귀의사를 충분히 밝힌 것으로 보는 것이 외교 상식일 것이다.

또한 우리의 일부 외교 당국자들은 중국이 후진타오의 5개 항 건의를 통해 “내정과 외교에 관한 전략적인 의사소통 강화”를 김정일에게 제시한 것이 중국의 북한에 대한 내정간섭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으나 이는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굳이 ‘내정과 외교에 관한 전략적인 의사소통 강화’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으나, 이 표현이 중국의 북한에 대한 내정간섭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는 것은 과잉이며, “서로 가까운 동맹국이니 서로 국내외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논하자”는 수사학적(修辭學的) 표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김정일과 후진타오의 5·5회담은 천안함 침몰로 한국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는 가운데 이루어진 점 때문에 한국 국민에게 엄청난 분노의 대상이 됐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마당에 김정일이 베이징으로 달려가 ‘전통적인 우의’를 강조하면서 “6자회담으로 돌아갈 테니 형님 잘 봐주시오”라고 말하고, 후진타오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또 “지난날에도 우리 두 나라는 잘해 왔고, 앞으로는 더 잘 지내자”면서 6자회담을 잘해 보자고 말했던 점에서, 그리고 그런 김정일을 후진타오가 따뜻하게 최선을 다해 대접했다는 점에서, 많은 우리 국민은 중국에 배신감까지 느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래로 18년간 한국이 중국에 경제발전 경험을 전수해 가며 도와주었고, 1986년의 아시안게임 유치 경험을 1990년 베이징아시안 게임 주최 때 전해 주는 것으로 도와주었으며, 1988년 올림픽 유치와 그 진행 경험을 통해 2008년 중국이 베이징 올림픽을 잘 치를 수 있도록 도와준 기억이 한국 국민에게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한국 국민이 천안함 침몰 후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숨을 거둔 46명의 해군 장병에 대한 기억으로 슬픔에 빠져 있는 가운데, 그 천안함을 침몰시킨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북한의 지도부들과 “세세대대 대를 이어 잘 지내자”는 등으로 북한의 등을 다독거려 주는 모습을 보고 분노하지 않을 한국 국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김정일, 북한 지도부들과 ‘6자회담 재개’나 입에 올리는 중국 지도자들은 한국 국민에게 두고두고 씻을 수 없는 깊은 마음속의 상처를 남겼다.

냉정한 중국

중국을 보는 한국 국민의 눈을 더욱 싸늘하게 만든 것은 중국 외교부 장위(姜瑜) 대변인의 논평이었다.

“천안함 사건은 불행한 사건임이 분명하지만, 한국정부가 사건에 대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벌일 것이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할 것이다”라는 식의 논평을 하던 장 대변인은 김정일이 귀국한 뒤 첫 논평(5월 11일)을 통해서도 싸늘한 표현을 거두지 않았다.

“김정일 총비서의 방중에 대해 중국의 관련 부문이 이미 상세한 정보를 발표했다. (베이징에 주재하는 내외신 기자 여러분은) 필요한 상황을 투명하게 이해했을 것이다. 중국과 조선 양국은 고위층 내왕의 전통이 있고, 김정일 총비서의 이번 방중은 쌍방에 중요한 방문이었다. 방문 기간에 양국 지도자들은 회담하고 공동 관심사에 대해 깊은 의견을 교환하고, 광범위한 공동 인식에 도달했으며, 양국 간의 전통적인 우의를 진일보 심화시켰다. 천안함 사건에 관해서는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밝혔지만, 이는 불행한 돌발사건이다. 중국 측은 이미 한국 측에 애도와 위문을 표했다.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므로, 관련 문제들이 잘 처리될 것으로 희망한다. 6자회담에 관해서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지키는 것이 동북아 각국의 공동이익에 부합하며, 각 참가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관련국들이 성의와 적극성을 보여주기를 희망하며, 형세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모두 (6자회담 재개) 조건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천안함과 6자회담 연계안, 고집하지 말아야

장위 대변인의 말은 김정일-후진타오 회담에서 김정일이 밝힌 대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조건이 창조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천안함 사태에도 6자회담은 재개되는 것이 중국 측의 희망이라는 논리이며, 한국과 미국이 밝히고 있는 “선(先) 천안함 침몰 사건 규명, 후(後) 6자회담 재개”라는 방침과 중국은 생각을 달리한다는 뜻이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뉴스 브리핑이라는 것이 대변인 본인의 생각을 임의로 표현하는 자리가 아니다. 브리핑에 나서는 외교부 대변인은 해당 문제에 대해 몇 차례의 회의를 거친 끝에 중국 외교부가 입장을 정리한 것을 노트에 정리해 와서 그대로 읽는 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장위 대변인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중국 외교부의 공식 입장이다. 따라서 천안함 침몰과 6자회담 재개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것이 중국 외교부의 방침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결국 선택은 한국 정부의 몫으로 넘어왔다. 천안함 사태로 한국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는 가운데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6자회담보다 천안함 침몰 사건 규명이 우선”이라고 밝힘으로써 시작된 ‘선 천안함, 후 6자회담’이라는 정책 방침은 우리 정부가 채택함으로써 한·미 간의 공동 방침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그런 한·미 간의 정책 조율에 중국은 ‘천안함과 6자회담은 별개’라는 브레이크를 걸고 나선 것이다. 천안함 침몰로 당혹감에 빠져 있던 이명박 대통령과 우리 정부가 “선 천안함, 후 6자회담”으로 정책방향을 굳힐 경우 한반도에는 60년 전 한국전쟁 때 형성된 한·미와 북·중 간의 대립이라는 구도가 형성될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보다 냉정한 입장을 찾아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의 이해와 협조 없이 천안함 관련 단호한 조처를 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단호한 조처를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정부가 중국을 미국과 마찬가지로 천안함 단호한 조치 관련 우리 정부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쪽으로 유도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마음속에서는 ‘선 천안함, 후 6자회담’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더라도, 우리 외교 당국은 천안함과 6자회담 연계안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천안함과 6자회담은 별개’, 더 나아가서 “6자회담은 6자회담대로 재개돼야 하지만, 천안함 사건에 대한 단호한 조치는 6자회담과는 별개로 단행될 것”이라고 입장을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천안함 사건도 6자회담의 중요한 의제로 삼을 것”이라는 방향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중·러·일 등 강대국 대표들이 모인 6자회담 회의 석상에서 북한 대표를 향해 천안함 침몰에 관한 준엄한 비난을 퍼붓는 것도 차가운 바닷물 속에 가라앉아 숨진 46명의 장병의 복수를 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닐까. 그러면서 다짐해야 할 것이다. 중국사람들이 즐겨하는 말 가운데에는 이런 말도 있다.

“사나이가 10년 안에만 복수를 하면 사나이라고 말해 줄 수 있다(十年報仇, 可說好漢).”

복수 기간이 길어져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냉정하고, 또 냉정해야 할 것이며, 감정과 현실을 잘 가리고 또 잘 가려야 할 것이다. 천안함 침몰 사건 규명과 단호한 조치에 관해 중국을 결국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김정일이 베이징으로 달려간 행동을 무효화시키는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