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료 자율주행버스 석 달, A160번의 혁신적 여정
⊙ 낯 익힌 승객들, 서로 인사 나누고 사탕 건네기도
⊙ “승차감 편하고, 입석 없어 안전… 만석이라 탈 수 없을 땐 아쉬워”
⊙ 1급 면허 기사 동승, 긴급 상황이나 급코너에선 수동 운전
⊙ 낯 익힌 승객들, 서로 인사 나누고 사탕 건네기도
⊙ “승차감 편하고, 입석 없어 안전… 만석이라 탈 수 없을 땐 아쉬워”
⊙ 1급 면허 기사 동승, 긴급 상황이나 급코너에선 수동 운전
- 2025년 1월 22일 오전 3시50분경, 시민들이 쌍문역 정류장에서 A160번에 탑승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사진=고기정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 3시 30분, 도봉산광역환승센터에 정차해 있던 버스 한 대가 조용히 엔진을 가동하며 출발 준비를 마쳤다. 차창에 비친 가로등 불빛이 희미한 길을 따라 이어졌고, 도로엔 아직 정적이 감돌았다.
겉보기엔 평범한 저상(低床)버스지만, 이 버스는 운전석에 사람이 앉아 있지 않아도 스스로 달리는 자율주행버스다.
서울시는 환경미화원, 경비원 등 심야 노동자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새벽동행 자율주행버스’ A160번을 운영 중이다. 기존 160번 버스에 자율주행을 의미하는 알파벳 ‘A(Autonomous)’를 붙였다. 서울시는 기존 A21번(마포구 합정역~종로구 창신동), A01번(종로구 청와대~경복궁) 등 자율주행버스를 운행하고 있으나, 새벽 시간대에 운행하는 것은 A160번이 처음이다.
A160번은 2024년 4월 국토교통부의 ‘자율차 서비스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본격적인 운행 체계를 갖추고 같은 해 11월 26일부터 정식 운행 중이다. 도봉산역~쌍문역~미아사거리~종로~공덕역~여의도환승센터~영등포역을 잇는 기존 160번 간선버스의 주요 정류장 대부분을 그대로 따라가며, 승객들은 익숙한 동선에서 새로운 기술을 경험할 수 있다. 총 운행 거리는 25.7km이며 월~금요일 새벽 한 번씩만 운행하고, 요금은 무료지만 교통카드를 태그해야 탑승할 수 있다. 올해중 일반 시내버스 요금인 조조(早朝) 1200원으로 유료화할 예정이다. 서울시의 무제한 대중교통 이용권인 ‘기후동행카드’도 사용 가능하다.
기자는 지난 1월 22~23일 이틀에 걸쳐 A160번에 직접 올라봤다. 쌍문역에서 탑승해 약 1시간 30분을 달린 뒤 여의도역에서 하차하는 일정이었다. 발전된 자율주행 기술을 직접 체험해 보고, 새벽 출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들어볼 수 있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정말 고마운 버스”
“A160번 타세요?”
쌍문역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정효정(71)씨가 먼저 기자를 보고 말을 걸었다. 새벽 3시 무렵부터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로 낯익다. 그런데 낯선 얼굴이 보이자 신기해 물어온 것이다. ‘취재를 위해 A160번에 탑승하려 한다’는 기자의 말에 정씨는 “자리가 없을 수도 있는데…”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운행 초기에는 좌석이 넉넉했는데, 편리함이 알려지면서 요즘은 도봉산역 인근부터 만석이 되기 때문에 쌍문역에서는 탑승이 안 되는 때가 많다고 한다.
정씨는 광화문에 위치한 한 빌딩에서 청소 노동자로 일한다. 이전에는 출근을 위해 심야버스를 이용했는데, 목적지까지 가려면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했고 시간도 30분 이상 더 걸렸다. 하지만 A160번이 운행을 시작한 뒤로는 한 번에 갈 수 있어 훨씬 편리해졌다고 말했다.
‘A160번만의 장점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씨는 “(A160번이) 무료라서 좋다. 출퇴근 비용도 아끼고, 시간도 절약된다”며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정말 고마운 버스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작은 등불”이라고 답했다.
“버스 옵니다!”
3시 52분경 쌍문역 정류장으로 A160번 버스가 진입했다. 버스를 기다리던 승객들이 줄을 섰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만석이었다. 버스 앞유리에 붙어 있는 ‘남은 좌석: 0석’ 푯말이 야속하기만 했다. 다행히 기자는 미리 취재 협조를 받아놓은 상태라 안내원의 도움으로 탑승할 수 있었다. 만석인 버스에 기자 홀로 탑승하는 게 꼴사나워 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 차를 못 탄 시민들은 “열심히 취재해서 A160번 배차가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되레 덕담으로 기자를 배웅했다.
자율주행버스여도 운전기사 동승
버스 출입문이 닫히자, 탑승해 있던 직원이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다.
“이 버스는 대부분의 구간을 자율주행으로 운행하지만, 일부 구간에서는 안전을 위해 운전자가 개입합니다.”
도봉산역을 출발한 버스는 쌍문역, 미아사거리를 지나 종로로 향했다. 아직 깜깜한 새벽, 그 고요 속에서 버스는 저 혼자 길을 잡아 부드럽게 움직였다. 차창 밖으로 도심의 희미한 불빛들이 새벽의 적막을 깨우고 있었다.
버스 앞쪽 개발자 화면에는 실시간으로 도로 정보와 장애물 감지 데이터가 표시되었다. 차체 곳곳에 장착된 라이다(LiDAR) 센서, 카메라, 레이더가 마치 눈과 귀처럼 도로 상황을 읽고 있었다. 전후좌우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으면서 차선과 신호를 철저히 따르는 모습은 마치 오랜 경험을 쌓은 베테랑 운전사가 핸들을 잡고 있는 듯했다.
이날 현장 설명을 위해 기자와 동행한 김진규 오토노머스에이투지(Autonomous A2Z) 매니저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버스 운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율주행버스의 특성상 조금의 로그 오차만 생겨도 당일에 오차를 수정해야 한다고 한다.
— 운전기사는 어떤 면허가 필요한가요?
“일반 버스와 똑같이 1종 면허 소지자라야 합니다.”
— 자율주행버스인데도 기사가 필요한가요?
“긴급 상황이나 코너를 빠르게 통과할 때는 기사가 수동으로 운전해야 합니다. 자율주행버스인 만큼 자율주행 기능에 관한 별도의 교육을 추가로 받습니다.”
안전 위해 입석 금지… 만석이면 허탕
“에이, 오늘도 못 타네.”
강북구청 등에서 탑승하려던 시민들이 만석인 버스를 보며 아쉬운 소리를 했다. 수유역에서는 입석이 금지되어 있는 버스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고 탔던 시민이 직원의 제지를 받고 버스에서 내리는 일도 있었다.
— 입석이 왜 금지된 건가요?
“안전상의 이유 때문입니다. 버스 외부에 있는 센서가 굉장히 민감해서 급발진 등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어 입석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 버스에 못 타서 아쉬워하는 시민들이 많네요.
“저희도 많은 분들을 모시지 못해 죄송스럽습니다. 되도록 많은 분들을 모시고 가고 싶죠. 조금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하차문 근처에는 현재 속도와 정류장을 표시하는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정류장 도착 10초 전부터는 카운트다운이 표시된다. 마치 ‘카트라이더(KARTRIDER)’ 게임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최첨단 자동으로 운영됐지만 시민들을 배려하는 사람의 손길이 여전히 남아 있는 영역도 있었다.
— 주행은 자율주행인데 승하차문은 기사가 조작하네요?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승하차문은 운전기사가 직접 관리합니다. 경전철처럼 출입문 개폐까지 자동화할 수 있는 기술이 물론 있지만, 지상 버스는 훨씬 더 많은 돌발 상황에 대처해야 하거든요.”
길음역부터는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내부를 살필 수 있었다. 최신 차량이어서 내부는 깨끗했고 관리 상태도 훌륭했다. 전기로 운행되는 차량이라 소음이 적어 일반 버스보다 쾌적하고 승차감도 부드러웠다.
길음역에서 탑승한 박민옥(66)씨는 “(A160번을 타는 사람들은) 모두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라며 앞 좌석에 앉은 시민과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씨에 따르면 A160번에 탑승하는 시민 대부분이 청소 노동자이거나 이른 아침 광화문·여의도 근처로 출근하는 직장인이라고 한다.
박씨의 일터는 종로 부근이다. A160번 버스가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출근을 위해 143번 버스를 타고 종로2가에서 내려 260번 버스로 갈아타는 고난의 일정을 소화해야 했지만, A160번 버스가 상용화되면서 출근에 걸리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 앞으로도 A160번을 이용하실 계획인가요?
“당연하죠. 그런데 좌석이 부족해 탈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차라리 요금을 받고 운행하면 좋겠어요. 무료라서 불필요하게 이용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거든요.”
운전자가 없는 버스를 타는 것이 두렵지는 않을까. 박씨는 “처음에는 자율주행인 줄 몰랐다”며 “승차감이 일반 버스보다 편하고, 개통 이후 계속 이용해 왔지만 불편한 점은 거의 없었다”고 답했다.
— A160번 버스의 어떤 점이 가장 편한가요?
“입석이 없는 거죠. 보통 심야버스를 타면 버스가 발 디딜 곳 없이 만석이에요. 자리에 앉으려면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여야 하고요. 그런데 A160번 버스는 입석이 금지되어 있어서 참 좋아요. 안전하고요.”
— 단점은 없나요?
“입석이 안 되니 만석이면 못 탈 때도 많고… 그리고 난방이 너무 따뜻해요. 버스 정류장까지 뛰어온 날은 땀이 나는데, 버스 내부가 너무 덥더라고요. 하지만 모든 사람의 선호에 맞출 수는 없으니 작은 불편일 뿐이에요.”
기자는 둘쨋날 귀갓길은 여의도에서 A160번 자율주행버스를 내려 그 자리에서 일반 심야버스 막차를 타봤다. 쾌적한 A160번과 달리 사람들로 꽉 차 불편했다. 버스는 예정된 시각보다 12분 늦게 쌍문역에 도착했고, 집에 도착해서는 오후 늦게까지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중 3개 노선 신설… 유료화도 예정
기자가 체험한 A160번 버스는 한마디로 현대 기술의 집약체와 같았다. 다만, 입석이 불가능해 탑승객이 적다는 점과 몇몇 구간에서는 여전히 사람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은 단점으로 꼽혔다. 탑승해 본 후 생긴 궁금증을 서울시 미래첨단교통과에 질문해 보았다.
— 현재 ‘안정화 기간’이라 해서 석 달째 무료로 운영되고 있는데, 앞으로 유료화되면 예상되는 반응은?
“유료화가 되더라도 조조 할인을 받으면 1200원이고 환승 할인도 적용되기 때문에 큰 불편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A160번 버스의 입석 금지 정책은 왜 시행되고 있나요?
“법적으로 자율주행버스가 입석이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직 자율주행 기술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급정거, 급발진 등이 발생할 수 있어 승객 안전사고 예방 등을 위해 입석을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운행 학습을 통해 기술이 고도화되면 장차 입석도 허용할 예정입니다.”
— 시민들로부터 접수되는 불만 사항은 어떤 것이 있나요?
“접수된 민원이 그리 많지 않아서, 이제까지 총 3건입니다. 하나는 히터를 더 강하게 틀어달라는 요청이었고, 나머지 2건은 151번 등 다른 노선에도 새벽동행 자율주행버스를 도입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전 시범운영 때 A160번 버스에 직접 탑승해 보고 지적한 주요 개선 사항은 무엇이었나요?
“환경미화원, 경비원 분들이 이른 시각에 이용할 수 있는 새벽동행 자율주행버스는 시장님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만큼, 안전운행을 최우선으로 당부하셨습니다. 그에 따라 첨단 교통 혁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새벽동행 자율주행버스 노선을 계속해서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 구체적인 노선 확대 계획은?
“올해중 ▲상계~고속터미널(148번 단축) ▲금천(가산)~서울역(504번 단축) ▲은평~양재역(741번 단축) 등 3개 노선이 신설될 예정입니다.”
“가끔 어머니들이 간식도 챙겨줘”
“오늘도 새벽부터 수고해 줘서 고마워요.”
미아사거리역에서 하차하던 시민이 황급히 달려와 김 매니저의 손에 사탕 여러 알을 올려놓았다. 시민은 끊임없이 “고맙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사탕을 받은 김 매니저는 “가끔 어머니들이 간식을 챙겨주신다”며 얼굴을 붉히며, “해야 할 일을 할 뿐인데 이렇게 좋은 마음을 가져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라고 말했다.
종착점인 영등포역에 다다를 무렵, 창밖에는 이미 새벽을 깨운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밤의 장막을 헤치고 일터로 향하는 이들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여정처럼 보였다. A160번 버스 역시 서울의 밤을 가로지르며, 인간과 기술이 함께 만들어갈 미래를 향해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나아가고 있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저상(低床)버스지만, 이 버스는 운전석에 사람이 앉아 있지 않아도 스스로 달리는 자율주행버스다.
서울시는 환경미화원, 경비원 등 심야 노동자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새벽동행 자율주행버스’ A160번을 운영 중이다. 기존 160번 버스에 자율주행을 의미하는 알파벳 ‘A(Autonomous)’를 붙였다. 서울시는 기존 A21번(마포구 합정역~종로구 창신동), A01번(종로구 청와대~경복궁) 등 자율주행버스를 운행하고 있으나, 새벽 시간대에 운행하는 것은 A160번이 처음이다.
A160번은 2024년 4월 국토교통부의 ‘자율차 서비스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본격적인 운행 체계를 갖추고 같은 해 11월 26일부터 정식 운행 중이다. 도봉산역~쌍문역~미아사거리~종로~공덕역~여의도환승센터~영등포역을 잇는 기존 160번 간선버스의 주요 정류장 대부분을 그대로 따라가며, 승객들은 익숙한 동선에서 새로운 기술을 경험할 수 있다. 총 운행 거리는 25.7km이며 월~금요일 새벽 한 번씩만 운행하고, 요금은 무료지만 교통카드를 태그해야 탑승할 수 있다. 올해중 일반 시내버스 요금인 조조(早朝) 1200원으로 유료화할 예정이다. 서울시의 무제한 대중교통 이용권인 ‘기후동행카드’도 사용 가능하다.
기자는 지난 1월 22~23일 이틀에 걸쳐 A160번에 직접 올라봤다. 쌍문역에서 탑승해 약 1시간 30분을 달린 뒤 여의도역에서 하차하는 일정이었다. 발전된 자율주행 기술을 직접 체험해 보고, 새벽 출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들어볼 수 있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정말 고마운 버스”
“A160번 타세요?”
쌍문역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정효정(71)씨가 먼저 기자를 보고 말을 걸었다. 새벽 3시 무렵부터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로 낯익다. 그런데 낯선 얼굴이 보이자 신기해 물어온 것이다. ‘취재를 위해 A160번에 탑승하려 한다’는 기자의 말에 정씨는 “자리가 없을 수도 있는데…”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운행 초기에는 좌석이 넉넉했는데, 편리함이 알려지면서 요즘은 도봉산역 인근부터 만석이 되기 때문에 쌍문역에서는 탑승이 안 되는 때가 많다고 한다.
정씨는 광화문에 위치한 한 빌딩에서 청소 노동자로 일한다. 이전에는 출근을 위해 심야버스를 이용했는데, 목적지까지 가려면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했고 시간도 30분 이상 더 걸렸다. 하지만 A160번이 운행을 시작한 뒤로는 한 번에 갈 수 있어 훨씬 편리해졌다고 말했다.
‘A160번만의 장점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씨는 “(A160번이) 무료라서 좋다. 출퇴근 비용도 아끼고, 시간도 절약된다”며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정말 고마운 버스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작은 등불”이라고 답했다.
“버스 옵니다!”
3시 52분경 쌍문역 정류장으로 A160번 버스가 진입했다. 버스를 기다리던 승객들이 줄을 섰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만석이었다. 버스 앞유리에 붙어 있는 ‘남은 좌석: 0석’ 푯말이 야속하기만 했다. 다행히 기자는 미리 취재 협조를 받아놓은 상태라 안내원의 도움으로 탑승할 수 있었다. 만석인 버스에 기자 홀로 탑승하는 게 꼴사나워 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 차를 못 탄 시민들은 “열심히 취재해서 A160번 배차가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되레 덕담으로 기자를 배웅했다.
자율주행버스여도 운전기사 동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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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버스인 A160번의 운전석 모습. 운전기사 오른손 쪽 하얀 버튼을 누르면 자율주행이 시작된다. 사진=고기정 |
“이 버스는 대부분의 구간을 자율주행으로 운행하지만, 일부 구간에서는 안전을 위해 운전자가 개입합니다.”
도봉산역을 출발한 버스는 쌍문역, 미아사거리를 지나 종로로 향했다. 아직 깜깜한 새벽, 그 고요 속에서 버스는 저 혼자 길을 잡아 부드럽게 움직였다. 차창 밖으로 도심의 희미한 불빛들이 새벽의 적막을 깨우고 있었다.
버스 앞쪽 개발자 화면에는 실시간으로 도로 정보와 장애물 감지 데이터가 표시되었다. 차체 곳곳에 장착된 라이다(LiDAR) 센서, 카메라, 레이더가 마치 눈과 귀처럼 도로 상황을 읽고 있었다. 전후좌우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으면서 차선과 신호를 철저히 따르는 모습은 마치 오랜 경험을 쌓은 베테랑 운전사가 핸들을 잡고 있는 듯했다.
이날 현장 설명을 위해 기자와 동행한 김진규 오토노머스에이투지(Autonomous A2Z) 매니저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버스 운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율주행버스의 특성상 조금의 로그 오차만 생겨도 당일에 오차를 수정해야 한다고 한다.
— 운전기사는 어떤 면허가 필요한가요?
“일반 버스와 똑같이 1종 면허 소지자라야 합니다.”
— 자율주행버스인데도 기사가 필요한가요?
“긴급 상황이나 코너를 빠르게 통과할 때는 기사가 수동으로 운전해야 합니다. 자율주행버스인 만큼 자율주행 기능에 관한 별도의 교육을 추가로 받습니다.”
안전 위해 입석 금지… 만석이면 허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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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60번 버스가 시민들로 가득 찼다. 몇몇 시민들은 ‘입석이 금지되어 있다’는 직원의 말에 버스에 탑승하려던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사진=고기정 |
강북구청 등에서 탑승하려던 시민들이 만석인 버스를 보며 아쉬운 소리를 했다. 수유역에서는 입석이 금지되어 있는 버스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고 탔던 시민이 직원의 제지를 받고 버스에서 내리는 일도 있었다.
— 입석이 왜 금지된 건가요?
“안전상의 이유 때문입니다. 버스 외부에 있는 센서가 굉장히 민감해서 급발진 등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어 입석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 버스에 못 타서 아쉬워하는 시민들이 많네요.
“저희도 많은 분들을 모시지 못해 죄송스럽습니다. 되도록 많은 분들을 모시고 가고 싶죠. 조금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하차문 근처에는 현재 속도와 정류장을 표시하는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정류장 도착 10초 전부터는 카운트다운이 표시된다. 마치 ‘카트라이더(KARTRIDER)’ 게임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최첨단 자동으로 운영됐지만 시민들을 배려하는 사람의 손길이 여전히 남아 있는 영역도 있었다.
— 주행은 자율주행인데 승하차문은 기사가 조작하네요?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승하차문은 운전기사가 직접 관리합니다. 경전철처럼 출입문 개폐까지 자동화할 수 있는 기술이 물론 있지만, 지상 버스는 훨씬 더 많은 돌발 상황에 대처해야 하거든요.”
길음역부터는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내부를 살필 수 있었다. 최신 차량이어서 내부는 깨끗했고 관리 상태도 훌륭했다. 전기로 운행되는 차량이라 소음이 적어 일반 버스보다 쾌적하고 승차감도 부드러웠다.
길음역에서 탑승한 박민옥(66)씨는 “(A160번을 타는 사람들은) 모두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라며 앞 좌석에 앉은 시민과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씨에 따르면 A160번에 탑승하는 시민 대부분이 청소 노동자이거나 이른 아침 광화문·여의도 근처로 출근하는 직장인이라고 한다.
박씨의 일터는 종로 부근이다. A160번 버스가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출근을 위해 143번 버스를 타고 종로2가에서 내려 260번 버스로 갈아타는 고난의 일정을 소화해야 했지만, A160번 버스가 상용화되면서 출근에 걸리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 앞으로도 A160번을 이용하실 계획인가요?
“당연하죠. 그런데 좌석이 부족해 탈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차라리 요금을 받고 운행하면 좋겠어요. 무료라서 불필요하게 이용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거든요.”
운전자가 없는 버스를 타는 것이 두렵지는 않을까. 박씨는 “처음에는 자율주행인 줄 몰랐다”며 “승차감이 일반 버스보다 편하고, 개통 이후 계속 이용해 왔지만 불편한 점은 거의 없었다”고 답했다.
— A160번 버스의 어떤 점이 가장 편한가요?
“입석이 없는 거죠. 보통 심야버스를 타면 버스가 발 디딜 곳 없이 만석이에요. 자리에 앉으려면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여야 하고요. 그런데 A160번 버스는 입석이 금지되어 있어서 참 좋아요. 안전하고요.”
— 단점은 없나요?
“입석이 안 되니 만석이면 못 탈 때도 많고… 그리고 난방이 너무 따뜻해요. 버스 정류장까지 뛰어온 날은 땀이 나는데, 버스 내부가 너무 덥더라고요. 하지만 모든 사람의 선호에 맞출 수는 없으니 작은 불편일 뿐이에요.”
기자는 둘쨋날 귀갓길은 여의도에서 A160번 자율주행버스를 내려 그 자리에서 일반 심야버스 막차를 타봤다. 쾌적한 A160번과 달리 사람들로 꽉 차 불편했다. 버스는 예정된 시각보다 12분 늦게 쌍문역에 도착했고, 집에 도착해서는 오후 늦게까지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중 3개 노선 신설… 유료화도 예정
기자가 체험한 A160번 버스는 한마디로 현대 기술의 집약체와 같았다. 다만, 입석이 불가능해 탑승객이 적다는 점과 몇몇 구간에서는 여전히 사람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은 단점으로 꼽혔다. 탑승해 본 후 생긴 궁금증을 서울시 미래첨단교통과에 질문해 보았다.
— 현재 ‘안정화 기간’이라 해서 석 달째 무료로 운영되고 있는데, 앞으로 유료화되면 예상되는 반응은?
“유료화가 되더라도 조조 할인을 받으면 1200원이고 환승 할인도 적용되기 때문에 큰 불편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A160번 버스의 입석 금지 정책은 왜 시행되고 있나요?
“법적으로 자율주행버스가 입석이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직 자율주행 기술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급정거, 급발진 등이 발생할 수 있어 승객 안전사고 예방 등을 위해 입석을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운행 학습을 통해 기술이 고도화되면 장차 입석도 허용할 예정입니다.”
— 시민들로부터 접수되는 불만 사항은 어떤 것이 있나요?
“접수된 민원이 그리 많지 않아서, 이제까지 총 3건입니다. 하나는 히터를 더 강하게 틀어달라는 요청이었고, 나머지 2건은 151번 등 다른 노선에도 새벽동행 자율주행버스를 도입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전 시범운영 때 A160번 버스에 직접 탑승해 보고 지적한 주요 개선 사항은 무엇이었나요?
“환경미화원, 경비원 분들이 이른 시각에 이용할 수 있는 새벽동행 자율주행버스는 시장님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만큼, 안전운행을 최우선으로 당부하셨습니다. 그에 따라 첨단 교통 혁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새벽동행 자율주행버스 노선을 계속해서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 구체적인 노선 확대 계획은?
“올해중 ▲상계~고속터미널(148번 단축) ▲금천(가산)~서울역(504번 단축) ▲은평~양재역(741번 단축) 등 3개 노선이 신설될 예정입니다.”
“가끔 어머니들이 간식도 챙겨줘”
“오늘도 새벽부터 수고해 줘서 고마워요.”
미아사거리역에서 하차하던 시민이 황급히 달려와 김 매니저의 손에 사탕 여러 알을 올려놓았다. 시민은 끊임없이 “고맙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사탕을 받은 김 매니저는 “가끔 어머니들이 간식을 챙겨주신다”며 얼굴을 붉히며, “해야 할 일을 할 뿐인데 이렇게 좋은 마음을 가져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라고 말했다.
종착점인 영등포역에 다다를 무렵, 창밖에는 이미 새벽을 깨운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밤의 장막을 헤치고 일터로 향하는 이들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여정처럼 보였다. A160번 버스 역시 서울의 밤을 가로지르며, 인간과 기술이 함께 만들어갈 미래를 향해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