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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사례연구

새만금 잼버리 대회

누구 하나 정책 실패 책임지는 이가 없었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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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장 한 명만 깨어 있어도 이런 일은 안 일어났을 것”
⊙ 잼버리 실패 후 ‘애물단지 새만금’ 다시 손본다… 내년 새만금 SOC 예산 78% 삭감
⊙ 이미 매립한 땅이 아니라 새 갯벌인 ‘공유수면’에 잼버리 유치
⊙ 여가부 장관 “(잼버리) 조직위로부터 상당한 부실 보고를 받았다”
⊙ 하늘도 저버렸다… 7월 한 달 총 19일간 647.2mm 비 와(전년 같은 기간 5배)
⊙ “인천공항 건설 당시 강동석(신공항 건설공단 이사장)은 2년 반 정도 간이 숙소에서 기거”
⊙ 전북 환경단체 “예타 면제한 새만금신공항 사업 철회하라”
⊙ 새만금에 아직 매립이 안 된 곳은 항만 배후부지, 첨단산업복합단지 부지 등 8773만 평
⊙ “잼버리 백서 발간 맡은 업체는 전북도청 입점 문구점”
새만금 잼버리 세계대회의 메인 시설인 글로벌 청소년 리더센터 앞 모습이다. 여전히 곳곳에 물웅덩이가 보이고 땅이 파헤쳐져 있다.
  제25회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8월 1~11일)가 파행으로 끝이 났다.
 
  취재를 시작하며 기자는 전직 고위 공직자와 만나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두고두고 그의 말이 울림을 주었다. 대화를 소개하면 이렇다.
 
  “지금 사람들이 여성가족부가 잘못했느니, 전라북도가 잘못했느니, 한덕수 총리가 잘못했느니 싸웁니다. 제가 볼 때 아니에요. 공무원이 다 풀어진 겁니다. 공무원들이 (이렇게 될지) 아무도 생각을 안 했어요. 기강이 무너졌다고, 해이했다고 그러는데 아닙니다. 그냥 널브러진 겁니다. 단 한 사람만 깨어 있어도 이런 일은 안 일어났을 겁니다. 계장!”
 
  ― 6급 계장…?
 
  “정부나 지자체에서 일해봐서 아는데, 문제점이 있으면 차관이, 아니면 핵심 국장이 나서서 반드시 장관에게 보고했어야 합니다. ‘장관님! 캠핑장이 물바다입니다. 그냥 두시면 큰일 납니다. 이걸 이렇게 챙기셔야 합니다’라고 말이죠. 왜냐? 뻔하니까…. 수십 년간을 그 계통에 있었던 사람이니까. 만약에 차관이 멍한 사람이다. 그럼 국장이 나서야 해요. 그 마지막 실무선이 계장입니다. 계장이 사태를 파악해 직소(直訴)했다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을 겁니다. 다 풀어진 거예요. 그럼, 왜 풀어졌나? 정치적인 이용을 당하면 나만 손해이기 때문에. 괜히 나섰다가 시끄럽게 만들면 눈총만 받으니까. 뭔가 공(功)을 세우면 정권이 바뀌었을 시 찍힐 수 있으니까. ‘엿 먹어봐라’ 가만히 있는 겁니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
 
 
  “여가부 장관, 不實報告 받았다”
 
새만금 잼버리 파행 이후 처음 열린 11월 2일 국회 여성가족부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정복 의원과 김현숙 장관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11월 2일 여성가족부의 국회 국정감사장.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잼버리 사태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파행 책임은 잼버리 조직위의 ‘부실보고(不實報告)’에 있다고 못 박았다.
 
  김 장관은 “왜 7월 25일(잼버리 일주일 전) ‘모든 준비가 다 됐다’고 발표했나. 7월 24일 현장 점검도 했는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근거가 뭐였나”는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조직위 사무국으로부터) 상당한 부실보고를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장관의 주장이다.
 
  “조직위 사무총장을 포함한 사무국에서 ‘준비가 완벽하다’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이야기를 계속 했기 때문에, 저는 이게 일종의 상당한 부실보고라고 생각합니다.”
 
  ‘준비가 완벽하다’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엉터리 보고에 속아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 의원이 “엄중 문책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나?”라고 다시 묻자, 김 장관은 “허위에 가까운 부실보고를 조직위 사무국으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하고 이 부분은 감사원 감사를 통해 명명백백히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잼버리 조직위의 최고위급은 물론 현장의 최종 실무를 꿰뚫고 있는 인물 중에도 똘똘하고 정의감 있는 ‘계장’은 없었던 것일까.
 
  잼버리가 그렇게 끝이 났지만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잼버리 조직위원장이나 사무총장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현장을 지켰을 공직자들, 자원봉사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떻게 해서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기자는 잼버리 파행의 원인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고위직 공직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익명을 전제로 대화를 나눴다.
 
  “정말 터무니없고 말도 안 되는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일들이 일어난 겁니다. 당초 야영지에 숲을 조성하겠다고 그랬는데 초지(草地) 조성도 안 됐어요.
 
  애초에 잼버리를 하겠다고 할 때 바다 위(공유수면)에 선을 그었던 겁니다. 바다와 갯벌 위에 선을 그어 그걸 메워가지고 대회를 하려 한 겁니다. 그렇게 해서 야영지 조성을 2022년 12월에 끝낸 겁니다.”
 
 
  ‘2023년에는 풍성한 숲 공간 조성’
 
  그는 기자에게 관련 문건을 보여주었다.
 
  전북도가 새만금을 대상지로 하여 잼버리 유치가 확정됐을 때, 그러니까 2015년 9월에 ‘야영지 땅’은 관광레저용이었다. 나무를 잼버리장 곳곳에 심어 2023년에는 풍성한 숲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정부 문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잼버리 유치활동 결과보고서(전북도, 2018) : 무더위를 해결하기 위해 간척지에서 가장 잘 자라나는 나무를 잼버리장 곳곳에 심어 2023년에는 풍성한 숲 공간 조성.〉
 
  기자가 새만금으로 내려가 두 눈으로 확인한 잼버리 야영지에는 숲은커녕 나무 한 그루 없었다. 새만금처럼 간척지에 세계대회를 열었던 일본 잼버리(2015년 야마구치현 키라라하마)와 달리 매립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공유수면(公有水面)이었다. 행정용어인 공유수면은 강이나 바다, 하천을 말한다.
 
  2015년 7월 28일부터 8월 7일까지 일본 야마구치(山口)현에서 열린 제23회 세계 잼버리 대회의 부지는 1964년 갯벌을 매립한 땅이었다. 그리고 1988년 이뤄진 개발로 이미 갯벌이 아닌 ‘육지’가 되었다. 당시 전 세계 155개국 3만4000명의 스카우트 대원 및 지도자가 참가했다. 일본은 간척지 특성상 나무가 없는 것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대책을 세웠다. 2012년 전국 식목 행사를 개최해 참가자들이 한 그루씩 나무를 심게 한 것이다.
 
  한국스카우트연맹 관계자는 “‘폭염 대피’와 관련해 일본과 한국의 야영지 차이는 나무에 있었다. 같은 환경이라도 일본 야마구치현 잼버리는 ‘나무’가 있어 그늘에서 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새만금은 나무도 없었고 그늘도 부족했다”고 했다.
 
 
  아직 공유수면인 곳에 나무 심는다?
 
  만약 일찌감치 간척지 매립을 끝냈더라면 나무를 심을 수 있었으리라. 2017년 8월 기준으로 새만금은 전체 용지 조성 계획부지 291㎢ 중 약 35%인 103.2㎢를 매립, 간척지를 조성했다. 1989년 11월 6일에 ‘서남해안 간척농지개발계획’이 확정되면서 새만금 간척사업이 추진되는 계기를 마련한 뒤 햇수로 34년이 흘렀다. 이미 ‘뻘’에서 ‘뭍’으로 천지개벽한 ‘땅’에서 행사를 치르면 되었다. 그런데도 부랴부랴 새로 갯벌을 매립하려 한 게 화근이었다. 아직 공유수면인 곳에 나무를 심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북도가 2018년 발간한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유치활동 결과보고서〉에도 ‘전북도가 잼버리를 새만금에 유치한 또 다른 이유는 새만금 개발의 조속한 추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결국 잼버리를 명분으로 새만금 간척사업에 속도를 붙이려는 무리수가 이런 사태를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정부 문건의 내용 중 일부다.
 
  〈2010년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된 후 전라북도는 새만금 내부 개발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으나 당초 2020년까지 계획 SOC 등이 더디게 추진되고 있었다. 이에 전라북도는 국제공항 건설 및 SOC 구축 등 새만금 내부 개발에 박차를 가할 명분이 필요했다.〉
 
  계속된 정부 관계자와의 대화다.
 
  ― 갯벌이 육지로 바뀌는 데 상당한 기간이 걸리지 않나요?
 
  “갯벌을 매립하면 자연적인 안정화 기간이 필요하다고 토목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지반이 굳기까지, 심지어 10여m까지 땅이 꺼지는 것에 따른 기술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물이, 바닷물이, 염분이 완전히 빠져나가도록 가라앉아야 하니까요. 오랜 성토 작업을 거쳐 갯벌이 육지로 바뀌는 오랜 기간의 안정화 기간이 필수적인데, 2022년 12월에야 부지 조성을 완료했으니 처음부터 불가능했어요.”
 
 
  ‘벌거벗은 임금님’
 
새만금 잼버리 당시 많은 폭우가 내렸지만 폭염으로 온열 환자가 속출했다. 8월 2일 노르웨이 대원들이 숙영지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일부 대원들은 더위에 지쳐 바닥에 누워 있다. 사진=조선DB
  ― 대회를 앞두고 비도 많이 내렸더군요.
 
  7월 한 달, 총 19일간 647.2mm의 비가 내렸다. 하늘이 갠 날보다 비가 온 날이 더 많았다. 그러니 강수량이 전년 7월(126.1mm)보다 무려 5.1배나 많았다. 야영장 부지가 농지 용도로 매립되어 경사면이 없이 평탄해 원활한 배수에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5월 초부터 집중 폭우가 내렸어요. 야영장과 활동장이 침수가 되어 공사차량 진입이 어려워 상부시설 설치가 지연되었죠.
 
  간척지는 기본적인 안정화 기간이 필요한데 5월부터 7월까지 비가 많이 내렸어요. 그 빗물이 빠지겠어요? 그런 현장의 문제점을 점검하기 위해 2022년 8월 2~7일 사이에 프레 잼버리를 하게 돼 있었던 겁니다. 부지 마련조차 안 돼 포기했잖아요. 그때 김 장관이 현장에 내려갔어야 했어요. ‘아무 문제없다’ ‘계획대로 잘 되고 있다’는 부실보고만 믿었던 겁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이 된 것이죠.”
 
  김현숙 여가부 장관이 새만금 잼버리 현장을 방문한 것은 모두 4차례다. 작년 9월 21일, 올 4월 27일과 5월 17일, 7월 24일이다.
 
  잼버리 대회 개최를 일주일 앞둔 지난 7월 24일 김 장관은 부안에 내려가 상부시설 현장을 처음으로 둘러보았다. 당시 폭우와 장마로 현장이 어지러웠다고 한다.
 
  참고로 부안 지역 강우량을 조사해보니 7월 16일 2.3mm, 17일 22.6mm, 18일 69.2mm, 22일 11.5mm, 23일 104.3mm, 24일 17.3mm, 25일 20.5mm의 비가 내렸다. 대회 이틀 전인 30일에도 1.6mm가 왔다. 이렇게 비가 쏟아졌으니 현장 상황은 엉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 스카우트 대원들이 속속 입국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조직위 사무국으로부터 “행사 추진하는 데 준비가 다 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터무니없는 거짓 보고였다.
 
 
  하늘도 새만금을 돕지 않았다
 
새만금 개발에 투입된 SOC 예산.
  김 장관은 현장에서 물웅덩이가 다수 눈에 띄어 추가적으로 확인을 요청했다. 조직위 사무국은 “다음 주면 다 마를 것이기 때문에 행사 개최에는 문제가 없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다음은 입수한 정부 문건에 담긴 당시 상황이다.
 
  〈계속되는 호우 등으로 7월 27일 기준으로 재확인 파악해보니 (화장실, 텐트, 샤워장, 글로벌리더센터 등 상부시설) 설치가 잘 되지 않아, 조속한 이행을 다시 지시함.
 
  또한 행사 직전인 7월 31일에는 차관이 현장을 방문하여 전북도지사, 행안부 차관 등과 배수로 점검 후 침수 우려에 따라 포클레인 추가 설치 등을 제안하였으며, 그 외에도 그늘막 설치, 개영식 개최 장소인 대(大)집회장 등 현장을 꼼꼼히 살펴보았음.〉

 
  ‘꼼꼼히 살펴’본 것이 아니라 ‘문제없다’는 허황된 보고만 믿고 싶었던 것이다.
 
  대회가 시작되고도 비가 많이 내렸다. 8월 9일 20mm, 10일 69mm, 11일 5mm가 쏟아졌다. 사흘간 94mm가 내린 것이다. 야영지 바닥에 물이 몇 차례 차올랐다가 빠지기를 반복했다. 추가 예산을 투입해 간이 펌프 100대를 야영장 곳곳에 설치했지만 새발의 피였다. 또한 비가 오지 않을 때는 폭염으로 이어졌다. 행사 기간 낮 평균기온이 34.5도를 웃돌아 결국 경증 온열 질환자가 다수 발생했다. 8월 1일 156명에서 4일 누적 578명, 8일 누적 854명으로 환자가 급증했다. 결국 폭염과 폭우에 시달리다가 잼버리 대원들은 조기 퇴영, 한국을 떠나고 말았다. 어찌 보면 하늘도 새만금을 돕지 않은 것이다.
 
 
  “일일이 다 체크하고 소리 지르고 악 쓰고”
 
1998년 11월 9일 열린 국회 건설교통위 국정감사 당시 강동석 이사장이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공사현장에서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조선DB
  기자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 개발자문위원과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을 지낸 조용경(趙庸耿)씨와 만났다. 그는 새만금 간척사업과 인천 영종도 공항 건설 당시를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다.
 
  “1990년대 초 인천공항을 처음 건설할 때 간척지 매립 과정에서 부실시공 논란이 많았어요. 인천국제공항 건설은 영종도와 용유도를 연결하고 두 섬 사이에 있는 신불도, 삼목도를 깨부수고 갯벌을 매립하는 대역사(大役事)였습니다.
 
  다행히 강동석(姜東錫·훗날 인천국제공항공사 초대 사장, 건교부 장관 역임)이란 인물을 픽업해 당시 수도권 신공항 건설공단 이사장을 맡겼는데, 제가 알기로 그 양반이 2년 반 정도를 간이 숙소에서 기거하며 건설 현장에서 아예 살았다고 합니다.”
 
  강동석 전 장관은 1997년 9월부터 2년 넘게 현장 직원들과 똑같이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생활하며 영종도 신공항 건설 현장에서 떠나지 않았다. 경기도 안양의 자택에서 출퇴근하는 데 걸리는 하루 4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아침 8시30분부터 저녁 7시30분까지 종일 공항 건설 지휘에 매달렸다. 교통부기획관리실장, 해운항만청장을 지낸 고위 관료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직원들이 “사장이 이런 생활을 하는 게 볼썽사납다”고 했을 정도다. 휴일과 일요일에도 컨테이너 생활을 ‘사수’했다고 전한다. 강동석 전 장관은 “배우면서 건설하자”는 구호대로 자신도 건설공법을 배우며 현장을 지휘했다.
 
  계속된 조용경 전 부회장의 말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현장에서 소리를 질러대고 감시 감독한 거지요. 건설 기술자가 아닌데도 어디서 배워가지고 설계도를 들고 다니며 부실공사 여부를 따지고…. 예를 들어 암반에 파일이 제대로 박혔나 일일이 다 체크하고 소리 지르고 악 쓰고 다녔기 때문에 오늘의 인천국제공항이 된 거란 말입니다.”
 
  ― 새만금 현장에는 강동석 같은 인물, 건설 현장을 지키던 지휘관이 없었군요.
 
  “부안에 내려가 잼버리 현장을 둘러본 적이 있어요. 강동석 전 장관 같은 분만 있었더라도 그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모래사장 위에 포철을 세웠던 박태준 당시 총리가 인천공항 건설 현장을 둘러보시고 그를 격려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캠핑의 가장 기본적인 게 산림”
 
  기자는 한국캠핑캐라바닝연맹 장경우(張慶宇) 총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장 총재는 2024년 제94회 ‘세계캠핑캐라바닝대회’를 강원도 고성에 유치한 인물이다. 내년 6월 대회를 앞두고 준비가 한창이다. 마침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 세계잼버리수련장에 내려가 있었다. 1991년 8월 제17회 세계 잼버리 대회가 강원도 고성 신평리 일대에서 열렸었다. 세계캠핑캐라바닝대회는 바로 그곳에서 다시 열린다.
 
  장 총재는 “아무래도 새만금 잼버리가 어려움을 겪었기에 더 신경을 쓰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3년 전입니다. 김제 시장을 3번이나 연임한 이건식 전 시장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세계캠핑대회를 새만금에서 하면 어떠냐고 해서 답사를 간 적이 있어요. 그 무렵, 세계대회를 유치했지만 장소 확정은 안 된 상태였어요.”
 
  장 총재는 당시 강원도 삼척, 경북 경주, 충남 부여 등의 후보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새만금 현장을 둘러보니 이건 전혀 안 돼. 왜냐하면 나무 한 그루가 없는 완전히 벌판이야 벌판! 막 진흙투성이고요, 캠핑의 가장 기본적인 게 산림(山林)입니다.
 
  그리고 물이 있어야 해요. 새만금처럼 허허벌판에 사람들을 데려다 놓고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난 여기서 못 하겠다’고 했었죠. 그래서 다시 찾은 게 강원도 고성입니다. 얼마 전에 작고한 쌍용 김석원(金錫元·1945~2023년) 회장이 27년 전에 마련한 그 터입니다.”
 
  해마다 전 세계를 돌며 ‘캠핑계의 올림픽’을 여는 ‘세계캠핑캐라바닝연맹(FICC)’은 회원국이 40개국이며 회원 수가 600만 명이다. 각국의 서로 다른 자연을 체험하며 국경과 언어, 인종을 초월한 풍습과 문화를 즐기는데 아시아에서는 한국을 포함해 일본, 중국, 대만 등 4개국이 가입돼 있다.
 
  “우리는 이미 공식·비공식 대회 포함해 세 번 대회를 치른 경험이 있어요. 2002년 강원도 동해 망상, 2008년 가평 자라섬, 2015년 전북 완주에서 개최했죠. 그때만 해도 캠핑이 지금처럼 활성화하진 못했지만 지금은 캠핑에 대한 관심이 뜨겁죠.
 
  대회장에 텐트 수천 동이 세워지고, 카라반 수백 대가 설치됩니다. 참가자들은 낮엔 주변을 여행하고 저녁에 캠핑을 즐기는데 새만금 잼버리를 타산지석 삼아 공연과 체험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자체 한탕주의’
 
지난 8월 11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폐영식 모습이다. 사진=조선DB
  탈 많고 말 많았던 새만금 잼버리 대회로 온 나라가 들끓었다. 《조선일보》는 8월 10일 자 사설을 통해 ‘잼버리 한탕으로 예산 2조원 따낸 전북도, 대가는 나라 망신’이라는 글을 냈다. ‘지자체의 한탕주의’라고도 했다.
 
  어쨌거나 전북도는 잼버리를 계기로 총 2조6000억원 규모의 직간접 예산 혜택을 입게 되었다. 잼버리 이후 착공된 새만금 고속도로엔 4239억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앞으로 들어설 연계도로와 새만금 국제공항에도 수조원이 더 들어갈 예정이다. 향후 국가예산이 얼마나 새만금 블랙홀에 더 투입될지 알 수 없다.
 
  얼마 후 정부는 내년도 새만금 SOC 예산의 78%를 삭감한다고 발표했다. SOC 10개 사업의 부처 반영액 6626억원 중 5147억원을 삭감, 1479억원만 반영하겠다는 것이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도 SOC 사업은 모두 원점 재검토 원칙에 따라 새만금 SOC 사업도 사업별 진행 상황과 거기 따른 필수 요소를 반영해 편성했다”고 말했다. 한덕수 총리는 “새만금에 대한 발전을 위해 10년 내지 5년에 한 번은 새만금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며 “새만금 기본계획을 발전적으로 수립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정부 예산만 바라보거나 국가보조금에만 의존하는 새만금 개발 대신 친(親)시장 기조로 새만금 사업의 정책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만금 국제공항만 하더라도 잼버리 대회 개최가 명분이었고 정부가 이를 받아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했었다.
 
 
  종자 산업 클러스터도 난항 중
 
  기자는 몇 해 전 군산공항(전북 군산시 옥서면 산동길 2)에 간 적이 있다. 공항 바로 코앞이 새만금 국제공항 부지다. 1.3km 떨어진, 걸어서 10분 거리다. 허허벌판 매립지와 갯벌에 위치하고 있다.
 
  과거 인근에 김제공항 건설을 추진하다가 실패한 사례도 있다. 김제시 공덕면 공덕리와 백산면 조종리 일대 156ha(축구장 220개가 넘는 규모)에 1800m 길이 × 45m 폭의 활주로 1개와 보잉 737급 여객기용 계류장을 갖춘 김제공항을 추진했었다. 사업비가 확정되고 부지 매입까지 모두 끝냈으나 2008년 전면 취소되었다.
 
  이 김제공항 터를 활용해 최근 농식품부가 ‘종자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얘기가 있다. 정책 실패로 20년간 버려진 땅에 뭔가를 해볼 계획을 세운 것이다. 누구도 정책 실패를 책임지는 이가 없었다. (다시 확인하니 국토부와 농식품부의 이견으로 종자 산업 클러스터 사업 또한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 옛 김제공항과 군산공항까지 35km 정도 떨어져 있다. 승용차로 30분 남짓 한다. 그런데 군산공항 바로 곁에 새만금 국제공항을 짓겠다는 것이다.
 
  우선 잼버리 파행 이후 새만금 국제공항의 내년도 SOC 예산은 어떻게 반영됐을까.
 
  가덕도신공항, 대구경북신공항, 울릉공항 등 다른 지역공항 예산은 부처에서 요구한 그대로 반영되었다. 오로지 새만금 국제공항 예산만 전체 580억원을 요구했지만 89%를 삭감해 66억원만 반영되었다. (부산 가덕도신공항은 올 예산이 135억원이었지만 내년 예산은 5363억원이다. 41배나 늘었다.)
 
 
  “전북 탄압” “호남 차별”
 
  새만금 국제공항은 턴키 공사에 대해 입찰공고 중이다. 그러나 예산 89%를 삭감해 향후 입찰이 불투명해졌다. 그러자 전북도와 지역 정치권은 “잼버리 탄압” “전북 탄압” “호남 차별”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은 지난 11월 3일 국회 예결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재부가 삭감해버린 예산 때문에 새만금 신공항·내부 개발·수목원 사업 등의 공사를 중지해 발생하는 추가 비용만 해도 최대 113억원으로 추정되는, 기가 막힌 ‘예산 폭거’가 지금 진행되고 있다.”
 
  기자는 기재부 관료 출신의 모 국회의원에게 새만금의 미래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기재부 시절, 새만금 마스터플랜 마련을 지휘했었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한 문장이었다.
 
  “(향후 새만금 개발에 대해) 특별한 아이디어가 없네요.”
 
  새만금 개발은 정말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일까. 추경호 부총리의 말이다.
 
  “새만금 개발사업의 변경이 잦았고, 차제에 제대로 된 그림을 만들자, 그리고 이것이 대한민국 경제, 그리고 전북 지역에 정말 성장동력, 발전의 기폭제가 될 수 있도록 틀을 잡아서 하자, 그런 차원에서 적정성 검토 용역을 지금 발주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산도 내년 예산에 반영이 돼 있습니다.”
 
  수십 년간 하다 말다 하던 사업을 다시 원점에서 검토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군산·부안·김제 등 전북의 지역사회가 불안해하며 화들짝 놀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안일한 잼버리 준비가 이런 파장으로 미칠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새만금 국제공항에 매달리는 지역사회
 
새만금 잼버리 실패 후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를 요구하는 전북 지역 환경시민단체들의 반대 시위 모습이다. 이들은 “새만금의 생태 학살을 멈추고 갯벌을 복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자는 새만금 잼버리 현장을 찾기 앞서 군산공항을 먼저 찾았다. 지난 11월 4일 오전 승용차로 군산공항에 도착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거쳐 군산 시내에서 공항까지 길이 시원하게 뚫려 있었고 차들이 거의 없었다.
 
  놀랍게도 공항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공항 청사 내부는 텅 비어 있는데 말이다. 주차장을 가득 메운 차량은 누구의 것일까. 제주로 놀러 간 여행객들의 것이리라. 그래도 매년 30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고 한다.
 
  군산공항은 사실상 미군기지다. 전북과 군산시는 연간 평균 3억원가량의 공항 착륙료를 미군에 낸다.
 
  군산공항은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여객기 운항이 전면 중단되었었다.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9월에야 겨우 정상화됐다. 미군 측이 지반 침하와 노면 노후화 등으로 시설보수 동안 비행기 이착륙을 금지시켜버렸다. 지역사회로서는 새만금 국제공항이 더 간절했을 것이다.
 
  현재 제주~군산 간 비행기는 하루 3차례 운항한다. 제주에서 오는 비행기가 오전 10시15분 군산공항에 도착하면 오전 11시15분 다시 제주로 향한다. 또 13시30분, 17시35분 제주발 비행기가 군산공항에 도착하면 14시35분, 18시15분 다시 제주로 향하는 식이다.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군산공항 이용객은 7만8000명에 불과하다. 무안국제공항(14만4000명), 원주공항(13만8000명), 여수공항(40만2000명), 양양공항(15만8000명) 등 어디와 비교해도 절반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군산시가 지난 11월 5일 ‘군산공항 활성화를 위한 재정지원 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이하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항공사업자에 대한 재정지원 대상을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피 같은 세금을 물같이 써서라도 항공사를 붙잡겠다는 고육책이다.
 
  2018년과 2022년 국토부가 실시한 사전타당성 용역에서 새만금 공항은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이 0.479, 0.53으로 경제성 판단의 기준(‘1’)에 훨씬 못 미쳤다.
 
  인근 새만금 국제공항이 들어설 갯벌 매립지로 이동했다. 허허벌판이었다.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날아다녔다. 새소리가 들리고 억새가 바람에 흔들렸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생활 쓰레기도 보였다. 비행기 굉음이 들리고 저 멀리 새만금 방파제가 보일 듯 말 듯했다. 그만큼 넓고 광활(廣闊)했다.
 

  이곳 주민들에게 새만금 국제공항의 미래를 물어보았다. 이들은 공항 소음에 익숙한 갯벌 토박이들이다. 60대 노인의 말이다.
 
  “이 나이에 공항이 들어서면 다들 좋아진다고 하지만 듣기에 얄미운 소리죠. 몇몇 ‘환경 생각하시는 분들’도 반대할 일이 아니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다른 ‘환경 걱정하는 분들’은 또 갯벌이 죽는다고 그러고. 편익 논리를 자꾸 이야기하니까 이야기가 안 되는 거죠.”
 
  ‘편익 논리’라는 어려운 말을 써서 놀랐다. 아침부터 갯벌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있던 또 다른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갯벌에 가 보면 껍데기만 남은 조개들만 보입니다. 갯벌이 점점 말라가고 있어요.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코끝을 자극하던 갯벌의 냄새도 점점 썩은 냄새로 바뀌고 있고요. 공항을 하든 말든 얼른 결론이 났으면….”
 
  새만금 잼버리 파행 이후 전북 지역 환경단체들은 ‘예타’가 면제된 새만금 국제공항에 대해 전면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망한 잔치는 끝났다. 새만금신공항 사업을 철회하라”고 했다. ‘새만금신공항백지화 공동행동’ 등은 신공항 사업을 주관하는 국토부, 서울지방항공청에 전화와 팩스, 전자우편 등으로 사업 철회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공동행동에 따르면 공항 부지인 수라갯벌은 간척사업으로 매립되지 않고 남아 있는 새만금의 마지막 갯벌이자 연안습지라고 한다. 저어새(천연기념물 제205호)를 비롯해 정부가 지정한 50종 이상의 멸종위기 보호종 등 수많은 생명이 살고 있다. 특히 수라갯벌은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서천·고창갯벌과 같은 생태권역을 이뤄 보존가치가 크다고 한다. 작년 9월 국민소송인단 1308명이 새만금 국제공항 계획을 취소해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내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생판 갯벌 위에다 아들(아이들) 데려다가…”
 
위·아래 사진은 잼버리 대회가 끝난 뒤 새만금 현장의 모습이다. 몇몇 포클레인이 여전히 지반 작업을 하고 있었고 땅에 물이 고여 있었다.
  군산에서 4번 국도를 따라 새만금 잼버리 현장으로 향했다. 새만금개발청 앞 사거리(엑스포 교차로)는 새 도로로 포장돼 있었다. 교통 표지판을 보니 새만금국가산업단지 쪽은 붉은색 가위표를 해 진입을 막고 있었다. 현재로선 산업단지 조성이 불투명하다는 방증으로 보였다.
 
  간혹 화물 트럭이 지나고 몇몇 오토바이가 속력을 냈지만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주말 오전이어서 그럴 것이다. 그렇다 해도 도로가 너무 한산했다. 새만금 남북10교차로를 지나 계속 차를 몰았다. 남북도로를 타고 아무리 가도 길은 한 길밖에 없었다. 교통 표지판대로 산업단지로 진입하는 길은 막혀 있었다. 언제쯤 공장이 빽빽이 들어설까.
 
  4번 국도 부안~군산 구간은 지난 7월 26일 개통되었다. 새만금 잼버리 대회 시작을 닷새 앞둔 시점이었다. 부안~군산은 그간 바다 외곽의 새만금 방조제길(33km)을 통해서만 왕래할 수 있었는데 27.1km에 달하는 내부도로(새만금 남북도로)가 만들어진 것이다.
 
  새만금 만경대교를 지나는데 탄성이 절로 나왔다. 활을 뒤집어놓은 초승달 모양의 아치교였다. 길이는 1968m. 조금 더 달리니 동진대교(1258m)가 나왔다. 차를 세워 주변 경관을 보고 싶었지만, 비록 지나다니는 차량은 없었으나 지나쳐 왔다. 어느덧 수조교차로를 지나 새만금 남북도로를 빠져나왔다. 조금 더 달려 신재생에너지 테마파크 건물이 보였고 몇백 m 더 가 새만금 잼버리 졸음쉼터에 차를 세웠다. 쉼터 전망대에 오르니 잼버리 야영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관광버스 몇 대가 와서 사람들이 내렸다. 사진을 찍으며 저마다 한마디씩을 했다.
 
  “생판 갯벌 위에다 아들(아이들) 데려다가 엔간치 했어야지.”
 
  “북새질(북새통) 하던 아들이 잘 돌아갔을까. 그래도 가슬(가을)이 찾아오는가베. 쓸쓸하네.”
 
 
  다시 찾은 야영지 현장에서
 
기자가 찾은 새만금 잼버리 현장. 덩굴터널의 덩굴식물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 대회 기간 때도 덩굴식물의 생육이 부진해 제 기능을 못 했었다.
  잼버리 참가 국가의 국기도 보였다. 뻥튀기를 파는 차량에서 트로트 음악이 너무 크게 들렸다.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쉼터 안내소를 보니 다른 일을 보러 자리를 비운 것인지 직원이 없었다.
 
  쉼터에서 잼버리 야영지를 내려다보았다. 실제로 보니 더 놀라웠다. 멀리 섬이 보이고 바다가 보였다. 포클레인과 트럭 몇 대도 보였다. 초록색 지붕을 얹은 덩굴터널을 철거하고 있었다.
 
  야영지로 가기 위해 다시 차를 몰았다. 현장 출입길은 통제되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진입로에 들어섰다.
 
  야영지 바닥은 수많은 바퀴 자국이 그려져 있었다. 소금쟁이 같은 빠르게 움직이는 생물들이 가득했다. 땅인지 갯벌인지 헷갈렸다.
 
  바닥엔 여전히 물기가 있었고 디디니 구두가 푹푹 빠지는 느낌이었다. 성토한 흙은 일반 흙과는 다른 느낌이었는데 무척이나 고운 흙이었다. 붉은색을 띠었다. 그 위로 군데군데 풀들이 나 있었다. 소금기 때문인지 다 죽은 것처럼 붉은빛, 혹은 누런빛을 띠고 있었다. 그 옆으로 메뚜기가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러고 보니 이곳도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하늘이 무척 낮아 보이고 회색 구름이 어둡게 드리워졌다. 야영지 현장의 유일한 그늘이던 연두색 덮개로 씌운 덩굴터널로 걸어갔다. 폭 6m가량의 시설물은 대부분 해체되고 몇 안 남아 있었다. 칡, 등나무, 머루, 호박, 수세미, 여주, 박 등을 심어 인공 그늘을 만들려고 했지만 지금은 죄다 말라죽었다.
 
  게다가 잼버리 기간에도 생육이 부진해 제 기능을 못 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허허벌판에서 사실상 유일한 폭염 대책 시설이었다. 당시 덩굴식물로 폭염의 햇살을 가릴 수 없다고 판단한 전북도는 부랴부랴 연두색 차광막을 설치했지만 애초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직원들이 화분에 심은 덩굴식물이 잘 자라도록 현장에 머물며 온갖 정성을 다했으나 시간이 부족했고 터널도 늦게 설치돼 그늘을 만드는 데 부족함이 많았다”고 했었다.
 
  덩굴이 말라죽은 덩굴터널을 걸었다. 바닥은 여전히 푹푹 꺼졌다. 땅엔 여러 종류의 흙들이 보였다. 자갈도 보였다. 계속 물이 땅 위로 차올라 계속 외부에서 흙을 가져다 급히 덮었던 것이었다. 당시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 작업을 하던 공무원이나 봉사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를 지켜보던 스카우트 대원들은 또 어떻고….
 
 
  아직 완공 안 된 글로벌청소년리더센터
 
  글로벌 청소년 리더센터에 도착했다. 행사는 모두 끝났는데 아직 완공이 안 됐다. 480억원의 예산이 들었다고 한다. 포클레인 3대, 땅을 다지는 롤러기 1대, 트럭 몇 대가 보였다. 분주히 땅을 다지고 덮고 트럭이 무언가를 나르거나 정차해 있었다.
 
  글로벌 센터 주변 땅은 모두 파헤쳐져 있었다. 땅속 내장을 모두 끄집어낸 것처럼 여기저기 붉은 흙들이 보였다. 바닥은 갯벌에서 솟아오른 바닷물로 인해 곳곳이 웅덩이져 있었다. 도저히 걸어갈 수 없었다. 물을 메우면 계속 차올라 와서 계속 성토 작업을 했던 것으로 보였다.
 
  센터 앞 잼버리5교 밑으로 돌무더기가 보이고 강이랄까 바닷물이랄까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물은 얕아 발목까지만 잠길 정도. 곳곳에 터진 모래자루가 널브러져 있었다. 모래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그래도 부드럽고 따스한 느낌이었다.
 
  이 잼버리5교는 2020년 1월 20일부터 2022년 12월 16일까지 작업이 이뤄졌고 발주자는 한국농어촌공사, 시공사는 남양건설이었다. 폭은 13.9m, 총연장 길이는 45.1m였다. 이 센터 주변에 스카우트 대원들이 우글우글거렸을 것을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 아이들이 이 글로벌 센터를 어떻게 기억할까. 부디 좋은 기억만 가졌기를 바랄 뿐이다.
 
 
  잼버리 난맥상 ① 계약 문제
 
새만금 개발 기본 구상도.
  지난 5월 잼버리 조직위는 백서(白書) 작성을 위해 A업체와 4890만원의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조직위는 백서 제작 경험 등을 토대로 업체를 선정했다. 그러나 백서 제작 업체는 전북도청사에 입점한 문구점이었다.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월 24일 전북도 국정감사에서 “잼버리 백서 발간을 맡은 업체가 전북도청에 입점한 문구점이었다. 백서 편찬 전문업체도 아니고 전북도의 실책(失策)에 대해 공정하게 기록할 업체도 아니다”고 했다.
 
  문구점 A업체는 2017년 10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잼버리 유치 백서 제작을 수행했다는 ‘용역수행 실적증명원’을 허위로 제출한 것이 곧 탄로가 났다. 실적증명원은 전북도 잼버리지원단 B사무관이 사인하고 발급해줬다. 이 사무관은 잼버리가 끝나자마자 사직했으며, 현재 전북도 산하기관에서 근무 중이다.
 
  새만금 잼버리 행사 기간에 세계 각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에겐 간식이 제공됐다. 간식 납품업체는 프린터 잉크와 토너를 싸게 판다는 동네 가게였다. YTN과 인터뷰한 조직위 관계자는 “겉보기에는 문구점으로 보이지만, 음식료품 관련해서 업종이 돼 있고 늦게까지 (음식료품 조달과 배달을) 해주실 수 있다고 해서…”라고 했다. 부득이할 수 있겠지만 주먹구구식이란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나무로 만든 잼버리의 출입문인 ‘영문(營門)’ 제작에는 3000만원이 들었다. 이 계약을 따낸 한 업체는 속눈썹 시술업체였다. 잼버리가 끝난 후 YTN이 이 업체 주소지로 찾아갔더니 간판은 사라졌고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고 한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6년간 잼버리 전체 계약의 30%가 대회 한 달을 앞두고 급히 체결됐다”며 “업체들에 ‘왜 당신들이 전공도 아닌데 이렇게 급하게 일을 맡았느냐’고 물었더니 ‘전북도 공무원이 조직위에 파견됐는데 그분들이 제발 좀 사정 봐달라, 편의를 좀 봐달라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도와주는 심정으로 했다’고 말하더라”고 말했다.
 
  계약 업무가 치밀하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예산이 허투루 쓰였을 개연성이 높다. 조 의원은 10월 24일 열린 전라북도 국정감사에서 이런 주장도 했다.
 
  “본 의원실이 파악하는 문제점은 빙산의 일각이었습니다. 대회장의 셔틀버스 운행은 전북 지역 업체들이 서로 짜고 투찰률을 맞춘 뒤 특정 업체가 높은 투찰률로 낙찰받을 수 있도록 들러리를 쓴 정황도 있습니다.”
 
  현재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이다. 조직위와 조직위 파견 공무원들의 비위, 업무 미숙과 태만, 방관, 침묵, 미숙한 일처리까지 제대로 파헤쳐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희생과 봉사의 상징이던 대한민국 공직자들이 왜 이렇게 망가졌을까.
 
잼버리 전북도 제한 입찰은…
 
  잼버리 계약 관련 법령상 입찰 시 지역 제한이 가능했다고 한다. 호남 업체로 입찰 대상을 제한해도 계약에 문제가 없었다는 얘기다. 조직위가 밝힌 ‘지역 제한’ 입찰 건수는 총 54건의 계약 입찰 중 25건. 이 25건은 전북 지역 업체만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잼버리의 1000만원 이상 소요된 각종 계약 중에 전북 지역 업체와 맺은 계약은 모두 182건이었다. 전체 건수(281건)의 64.8%. 대략 1000만원 이상 계약 중 3분의 2를 전북에 소재하는 업체가 맡았다. 다만 액수는 서울 소재 업체가 많았다. 서울 소재 업체의 계약금액은 241억원(37.7%), 전북 업체는 199억원(31.3%), 경기 173억원(27.2%) 순이었다. 대구, 경북, 제주 업체는 한 곳도 없었다.
 
  잼버리 난맥상 ② 인력 문제
 
제25회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 모습이다. 156개국 4만2646명의 대원들이 새만금 잼버리 현장을 찾았다.
  잼버리 준비가 미흡한 것은 조직위 인력 부족이 원인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조직위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작년 5월부터 올 초까지 민간 전문 인력을 8차례 공개 모집했다. 또 공무원 파견도 확대했다.
 
  작년 4월 조직위의 민간인 전문 인력은 8명이었으나 대회 당시인 8월엔 44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공무원 수도 36명(지자체 28명)에서 71명(53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8차례 공개 모집을 했을 정도로 구인난을 겪었다. 왜 그랬을까. 왜 세계 스카우트 청소년들의 축제를 꺼렸을까. 기자가 입수한 정부 문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단기 채용에 대한 기피, 지방 정주 여건 불편, 지방 근무에 대한 급여 수당 등 유인책 부족으로 민간 인력 채용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음.〉
 
  민간인 채용이 어려웠다면 공무원을 충분히 파견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가부 관계자는 “당초 조직위가 잼버리 행사의 경우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행사로 판단하고 공무원보다 스카우트 전문 인력을 희망했기에 민간 전문가 채용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결국 민간 전문가 채용이 원활하지 못했기에 올해 공무원 정원을 확대하여 증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잼버리 조직위는 전북 부안에 위치해 있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 중 파견을 나가고 싶어 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북도청 공무원, 전북도 내 14개 시·군 공무원조차 부안행을 마뜩잖게 여겼는데 중앙 부처 공무원은 말할 것도 없다. 업무에 대한 보상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고 격오지(隔奧地) 근무로 여겨 죄다 기피했다.
 
  심지어 잼버리 조직위에서 2~3년 이상 책임감을 가지고 근무한 공무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1년 단위로 아니 1년도 채우지 않고 담당 공무원들이 바뀌어 나갔고 그 속에서 잼버리 준비는 뒷전으로 밀렸다.
 
  지난 8월 8일, 잼버리 행사 화장실 청소에 동원됐던 공무원이 쓴 글이 한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전북 지역 공무원 노조 관계자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글이었다. 그 글을 종합해보면 파견 공무원들에게 휴게 공간이 없었다. 사전 협의된 업무와 다른 일을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지시하는 일이 허다했고, 업무 현장까지 차량 이동을 금지시켜 도보로 40분을 걸어간 이도 있었다.
 
  업무분장 문제로 자주 갈등이 빚어졌고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지원 나간 공무원들을 지시하는 등 혼선이 일었다고 한다. 원활한 식사 또한 불가능했다. 모두 눈치껏 먹었다.
 
  결국 전북도에서 파견된 14개 시·군 공무원들은 주먹구구식 업무를 보이콧하고 현장을 떠났다. 전북도청 공무원들만 남아 새벽 4시 반부터 오후 2시까지, 오후 2시부터 23시까지 근무하는 조를 짜 화장실 상태를 체크하러 다녔다.
 
 
  잼버리 난맥상 ③ 화장실 문제
 
새만금 잼버리 조직위 관계자가 더러운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다. 사진=조선DB
  한덕수 총리는 8월 6일까지 전북 새만금 숙영지 곳곳을 다닌 뒤 “오늘 둘러보다 화장실에 남이 안 내린 물을 내리고, 묻은 것도 지웠다”고 했다. 총리의 화장실 청소가 전해지면서 조직위가 발칵 뒤집어졌다. 이후 현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급수 문제나 ‘쿨링 버스’ 투입 등 폭염 대비책도 개선되고, 청소 용역 인력도 기존 70명에서 542명까지 늘었다.
 
  총리의 화장실 청소 사태는 공복(公僕)이어야 할 공직자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현실이었다. 세월호 참사, 핼러윈 참사 같은 행정 참사를 반복하는 비극에는 공직자의 희생과 용기의 부재도 포함돼 있다.
 
  잼버리 ‘푸세식’ 재래 화장실은 어떻게 해서 결정된 것일까.
 
  기자는 관련 정부 자료를 확인해보았다. 2020년 8월 기재부에 제출한 〈국제행사 개최 변경 계획서〉에 따르면 총 사업비 규모를 491억원에서 1190억원으로 증액 요청하며 그 사유 중의 하나로 ‘비데가 있고 에어컨 시설을 갖춘 화장실 마련’이 포함돼 있었다.
 
  다시 말해 여가부 쪽에서는 조직위 사무국으로부터 “계획대로 (비데+에어컨이 설치된) 화장실이 다 이행되는 것으로 보고받았으나 실제로는 계획과 같이 설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장에 설치된 화장실 414개 중 비데가 설치된 화장실은 46개에 불과했다. 이 비데도 이슬람 지역 참가자를 위해 설치된 핸디형 비데였다고 한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쓴 이동식 화장실 262개에는 에어컨은 설치됐으나 비데는 없었다. 장애인 화장실 46개에는 에어컨은 물론 비데도 없었다.
 
  정부 관계자는 재래식 화장실과 관련해 이런 말을 했다.
 
  “재래식 화장실은 현대건설 후원으로 설치되었다. 재래식이어서 설치하지 않으려 했으나 현대건설에서 국무조정실 협조 요청으로 설치해야 한다고 해, 설치 및 관리를 현대건설이 책임지는 조건으로 허가하였다.”
 
 
  잼버리 난맥상 ④ 농지 전용 문제
 
  새만금 잼버리가 열린 부안군 하서면은 당초 관광레저용지였다. 새만금청이 시행 주체였다. 2023년 8월 대회 때까지 부지 마련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농지관리기금을 매립 예산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난 2017년 12월 6일 열린 제19차 새만금위원회(위원장 이낙연 총리)에서 잼버리 부지를 ‘관광레저용지’에서 ‘농생명용지’로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관련 예산이 1817억원에서 1846원으로 증액되었다.
 
  용지 변경과 관련해 법률자문을 한 김앤장 측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농식품부에 전달했다.
 
  〈1. 잼버리 대회는 보이스카우트 세계 야영대회로서 농지관리기금의 설치목적과 관계가 없다.
 
  2. 잼버리 부지 매립공사가 농지 농업과 관련된 사업이나 농지관리기금 관련 사항에 해당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3. 농지로 활용되는 것이 주된 목적도 아니고 향후 농지로서 전혀 활용이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잼버리 부지 매립공사를 농지관리기금을 사용할 수 있는 사업으로 보기 어렵다.
 
  4. 농어촌공사는 농지관리기금의 용도 및 사용에 있어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농식품부는 2017년 11월 이 같은 자문을 받고도 또 다른 법률자문을 받은 뒤 용지 변경을 승인하고 말았다. 정치적 타협이었던 셈이다. 이 땅은 일정 기간 농업용지로 활용한 뒤 관광레저용지 수요 발생 시 새만금개발공사 등에 매각하여 활용할 계획을 세워놓았다. 그래서 당장은 농업용지 땅에 잼버리 시설물을 지을 수 없다. 향후 시설물 철거 등의 원상회복이 필요하다. 다음은 정부 문건에 적힌 사항이다.
 
  〈농지기금으로 조성된 부지임에도 농지가 되었을 때 시설 설치 제약 때문에 공유수면을 농지로 바꾸는 행정 절차를 유보한 채 사실상 바다에서 세계잼버리 개최.〉
 
  농지법에는 화장실, 샤워실, 식음료 판매점은 물론 잼버리 기초시설인 야영장 역시 설치가 제한되는 시설물로 명시돼 있다. 정부는 문제점을 파악했으면서도 용지 변경을 강행해 향후 예산 낭비를 초래하게 만들었다. 농지 변경은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다음은 정부 문건 내용.
 
  〈농업용지 특성상 경사면이 평탄하여 배수가 잘 이뤄지지 못해 폭우에 취약한 한계가 있었고, 간척지 염분 등으로 나무 식재가 어려워 고온 문제에도 대응이 어려운 근본적 한계가 있었음.〉
 
 
  다시 개발이냐 환경이냐
 
  잼버리는 막을 내렸지만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점을 던져주었다. 당장 애물단지 새만금을 어떻게 경제허브로 키울 것이냐에 대한 화두를 다시 갖게 했다. 새로 용역을 줘서 청사진을 그린다고 한다. 지금까지 숱하게 청사진을 그렸을 텐데 말이다. 새만금에서 매립이 아직 안 된 곳은 항만 배후부지, 복합 개발 용지, 첨단산업복합단지 등 2만9000ha(290㎢, 8773만 평)에 이른다.
 
  전북 지역 환경단체들은 갯벌이라는 수만 년 동안 형성된 자연의 유산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잼버리 실패가 이들에게 갯벌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만들었다.
 
  새만금 사업은 어떻게 될까. ‘표로흥정하려는 정치꾼들의 미끼’가 된 새만금 사업이 개발이냐 환경이냐를 넘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자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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