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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취

나의 스승이신 교황 베네딕토 16세

“빨간 帽가 아닌 가난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신 분”

글 : 김정희  전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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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님은 “진리의 수호자” 또는 “진리의 협조자”
⊙ 바티칸을 ‘굼벵이’라고 지칭한 자들을 위해 많은 ‘참고서’ 집필
⊙ 적대시한 폴란드(요한 바오로 2세)와 독일(베네딕토 16세)의 대표자들이 세계교회를 걱정

金貞熙
1938년생. 조선대 생물학과 졸업,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신학박사[1967~1979·지도교수 요제프 라칭거(교황 베네딕토 16세)] / 전남대 윤리교육과 교수(1982~2004), 전남대 초대 종교문화연구소장 역임 / 저서 《여성의 갈 길은 어디인가》(1995), 《시간 속의 영원함》(1998), 《전환기의 인간학 모색》(2003) 등, 역서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세요》(교황 베네딕토 16세 著) 등 다수

[편집자 註]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신학박사인 김정희(金貞熙) 전남대 명예교수가 작년 12월 31일 선종(善終)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추모하는 글을 보내왔다. 김 교수는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유학 시절, 라칭거 교수(베네딕토 16세)의 제자였다. 담백한 문장이지만 가톨릭 교회에 남긴 교황의 뚜렷한 발자취와 헌신을 이해할 수 있다.
10년 전인 2013년 2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생전 모습이다. 사진=AP/뉴시스
  스승님은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러나 그의 숨결과 그의 온기는 남아 우리를 더욱 하나로 뭉치게 한다.
 
  42세가 되던 1969년 요제프 라칭거 교수는 뮌헨 프라이징(1961년)과 본대학, 뮌스터대학(1963년), 튀빙겐대학(1966년)을 거쳐 레겐스부르크대학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그해 겨울 학기에 나는 레겐스부르크대학에서 스승님을 처음 뵈었다. 라칭거 교수님은 독일의 여러 대학에서 신학교수직을 탁월하게 역임하셨고, 또한 그의 학문에 대한 명성도 높이 평가되었으며, 레겐스부르크에서 그의 동료교수 아우어(Auer)와 함께 교의(敎義)신학 업적의 계보를 출판하셨다.
 
  1977년 3월 바오로 6세 교황께서 스승님을 주교직에 임명했을 때 그의 인품과 업적을 소중히 평가하셨다. 그가 레겐스부르크를 떠날 때도 그와 인연을 맺은 많은 사람이 그와의 작별을 못내 아쉬워했다. 이 모든 사실이 뮌헨 대교구장의 소명과 사명을 더욱 확고히 할 것임을 미리 예측게 했다.
 

  쾰른의 대교구장이었던 프링스 추기경은 27세의 젊은 나이인 라칭거 교수를 자기 개인 공의회의 조언자로 천거하면서 그에게서 “‘역사와 세계교회의 숨소리’를 듣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라칭거 교수님께서는 공의회와 전체 교회의 상황을 바라보면서 공의회가 던진 가톨리시즘(Catholicism)에 대한 그의 심원한 강연을 통해 1966년 제81회 독일 밤벨그 가톨릭의 날을 발전시키셨다.
 
  공의회에 파견된 이래 그는 공의회가 던진 가톨리시즘에 대한 생각을 떨쳐낼 수 없으셨고, 그 생각을 균형적인 판단을 통해 미래에 대한 기본적인 동기로 삼으셨으며 그리고 중용의 길을 가려고 늘 시도하셨다.
 
 
  영원한 전진이든, 고집 센 주장이든
 
2023년 1월 7일 오후 알프레드 슈에레브 주한 교황대사가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추모 미사에서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조선DB
  교회 내에서 양극화되어가던 진보나 보수의 입장들이 공의회의 개최를 간절히 요청하고 있었던 만큼, 라칭거 교수님은 영원한 전진이든, 고집 센 주장이든, 그 어느 편에도 만족할 수 없으셨다. 그분은 이미 20년 앞서 전례적 쇄신의 입장을 취하셨다. 이는 어떤 것도 변형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 광신주의에 대한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론 전례 쇄신을 위한 많은 낭비가 오히려 하느님을 가려버릴 수도 있다는 위험을 예고한 것이었다. 라칭거 교수님은 20년 후에 제기될 문제점을 20년 전에 미리 예측하셨고, 또한 오늘날 교회가 재창조(=과학과 기계 기술문명)에 맞서야 한다는 심오한 깊이를 예견하셨다.
 
  그러나 라칭거 교수님 자신도 이 모든 것이 시간성 안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 또는 하느님이 종말의 시기에 이 모든 것 자체를 보유하는 것인지에 대해 공의회가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셨다.
 
  부모님이 묻힌 레겐스부르크로 돌아온 교수님은 레겐스부르크대학에서 이러한 모든 문제를 다시 종합하는 데 그의 신학적 가능성 전부를 헌신적으로 바치셨다. 그분의 이러한 작업이 익어갈 무렵, 1977년 3월 24일 스승님은 뮌헨 프라이징 대교구장으로 임명되셨고, 이 모든 것이 오늘을 준비하는 길이 되었음을 감히 말할 수 있다.
 
  이제 스승님의 학문은 실천적 측면에서 역량을 발휘하게 되셨고, 점차 완숙해지셨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사실은 그가 뮌헨 대교구장에 서품되셨을 때 보여주었던 예수 그리스도 모친에 대한 그의 뜨거운 사랑과 공경이었다. 이 또한 그의 유년 시절과 고향 인접 마을 알트외팅을 지나면서 마음 깊숙이 새긴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에 대한 신심과 신앙이었다.
 
  주교가 되시던 날, 바이에른 지방의 주보(主保)이신 성모님께 도움과 위로를 청함도 성교회의 자모이신 어머님의 손 아래서 그의 주교사명을 완수하고자 하심이었다. 그는 그런 뜻을 《교의와 선교》라는 책과 레겐스부르크에서 쓴 《시온의 딸》에서 표명하였다. 주교가 되신 후에도 스승님은 신학적 학문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는 학자로서 또 주교로서 모든 이에게 “겨자씨의 희망”을 심어주셨고, 특히 주교로서 현대문명에 맞서 “그리스도교적 윤리원칙”을 과감하게 펼치셨다. 이뿐이랴. 프랑스 교회를 위해 쓴 《교리의 위기와 극복》을 통해 오늘날 방황하는 모든 교리 교사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셨다.
 
 
  노래도 울림도 없는 무겁고 어두운 직무 속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쓴 모든 저작물은 이런 방식으로 교회의 업적을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스승님을 “진리의 수호자” 또는 “진리의 협조자”로 받들며, 그가 쓴 모든 저서는 우리 일상의 교재로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책장에 간직하게 된다.
 
  라칭거 추기경님은 그의 여행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이 지구촌 어느 국가에나 접근시키기 위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더불어 세계를 포괄하는 새로운 사명을 최대한 준비하셨다. 또 하나의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은 지금까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삶과 활동이 하나의 동일한 형식을 취하셨다는 점이다. 이 동일한 형식은 두 분이 교회의 공의회에 함께 계셨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적대시한 두 나라 폴란드(요한 바오로 2세)와 독일(베네딕토 16세)의 대표자들이 이제 세계교회를 함께 걱정하고 배려하셨다는 특이한 과정에 비추어 볼 때 하느님의 거룩한 정신만이 인간적인 모든 야심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 외에도 라칭거 추기경님은 교황님을 대리하여 페루, 콜롬비아, 미국을 방문하였으며 빨간 모를 쓴 지존한 교회로서가 아닌 겸손하고 가난한 교회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스승님은 공의회의 문헌 속에 담긴 희망과 기쁨의 교회에서 고통과 번뇌의 교회를 명확히 밝힘으로써 이미 현대교회의 종말론적 범위를 수용하셨다.
 

  오늘날 교회의 승리주의는 완전히 무너졌다. 스승님은 그의 저서 《마귀와의 고별》에서 부정한 권력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도 밝히셨다. 프라이징 주교좌 성당에서 거행되었던 스승님의 사제서품에서, 그리고 그의 형님인 게오 라칭거 신부님이 지휘했던 레겐스부르크 대성당 참새합창단의 노래 속에 봉헌된 대미사에서 모든 것이 시간 속에서 변하는 가운데, 이제 스승님은 노래도 울림도 없는 무겁고 어두운 직무와 회의 속에서 필연적인 삶을 사셔야만 하셨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스승님은 레겐스부르크에 계시는 동안 동방정교회와도 각별한 인연을 가지셨으며 교회일치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셨다. 특히 그는 선교학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였고, 뮌헨대학에서는 선교학을 위한 학문의 지위를 확고히 하셨다.
 
 
  바티칸을 ‘굼벵이’라고 지칭한 자들에게…
 
  오래전에 제자 모임에서 스승님에 대한 두 가지 사실을 듣게 되었다. 하나는 이탈리아 신문기자 빅토리오 메조리와의 대화 내용이 《신앙의 처지》라는 제목으로 이태리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그리고 독일어로 출판되었는데, 그 책의 내용이 깜짝 놀랄 만한, 개방과 더불어 현대교회의 ‘위험스러운 증상’에 대한 진단이었던 것이었다.
 
  스승님께서는 지난날 로마교회가 정당성에 대한 판가름에 항시 늑장을 부려 신도들의 신경을 곤두세운 바티칸을 ‘굼벵이’라고 지칭한 자들을 신앙의 일치로 인도하기 위해서 대화를 통해 시대의 물음에 대한 많은 ‘참고서’를 집필하셨다.
 
  특히 공의회의 관점이 《도덕의 위기》 《교회 안의 여성》 《전례의 쇄신》 《마지막의 것》 《마귀와의 결별》 《종교일치에 대한 물음》 《해방신학》 등의 단편집에서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 공의회의 조언자이신 스승님은 우리에게 참으로 공의회를 새롭게 알려주신다.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기본적인 텍스트에 비추어 극좌에 맞서 비판하셨고, 온건한 전통주의 극우도 부인하셨다.
 
  다른 하나는 고인이 된 프링스 추기경 탄생 100주기를 기념하는 추도사에서 스승님은 프링스 추기경의 공의회 연설문 속에 담긴 ‘제2차 바티칸 정신과 문자’에 대한 물음에 고인의 정신을 재조명하시면서, 죽어 있는 문자를 살아 있는 정신으로 개혁하는 것이 공의회의 뜻임을 이 시대에 더욱 강조하셨다.
 
  프링스 추기경이 공의회의 진보주의로 비판받게 된 사실에 대해 그의 공의회 조언자 라칭거 추기경께서는 계시, 성서 그리고 저승에 대한 물음을 탐구함으로써 그의 조언자인 라칭거의 정신에 의해서 프링스 추기경의 공의회 연설문이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성서적 말씀으로 수용되었던 것이다.
 
  이제 이승을 떠나 하늘에 계신 우리의 스승이신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세계의 새 복음화가 성취되도록, 우리가 ‘신앙 안에 굳건히 서도록’ 천상에서 인도해주시리라 믿으며,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도록 하느님의 축복을 모아본다. 제자로 받아주신 그 무한한 은혜에 보답할 길 없으나 주님께서 갚아주시기를 기도하며,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나의 영원한 스승님! 많이 그립습니다.
 
  2022년 12월 31일 스승님 임종하신 날
 
  제자 김정희 빅토리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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