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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튀르키예 노병의 눈물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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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6일 튀르키예(터키)를 강타한 지진으로 4만 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다. 아이돌 스타와 기업들을 비롯해 많은 한국인이 ‘형제의 나라’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우리가 튀르키예를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이유는 고구려-돌궐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6·25 때 튀르키예가 1개 여단을 파병해 도와준 기억이 크게 작용했다. 튀르키예의 6·25 참전과 관련해 꼭 널리 알리고 싶은 얘기가 있다.
 
  황성준 전 《월간조선》 기자는 1998년 8월 튀르키예의 한 해변 휴양지에서 우연히 6·25 참전 노병(老兵)을 만났다.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다리를 잃은 그는 황 기자에게 오랫동안 자신의 인생을 원망하며 살아왔노라고 고백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 이(lice)가 득실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이후에도 정치적 탄압과 시위 같은 부정적인 소식만 전해지는 나라를 위해 전우들이 ‘개죽음’을 했고, 자신은 다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88 서울올림픽이었다. ‘정말 저것이 내가 갔었던 한국이란 말인가?’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그는 이후 튀르키예에 진출한 삼성전자 제품과 현대 자동차를 접하면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노병은 황 기자를 붙잡고 울음을 터트리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 고맙다. 너희가 잘살게 돼서. 만약 너희가 그때(6·25 당시)처럼 계속 굶주림 속에 있었다면, 나는 나의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왜 남의 나라 내전(內戰)에 끼어들어, 다리만 잃어버렸나 하고 삶을 원망해왔는데…. 그 전쟁은 단순한 외국의 내전이 아니었어. 자유와 번영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이를 파괴하려는 세력의 전쟁이었어. 나는 수백만, 아니 수천만이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살 수 있도록, 정말 조그맣기는 하지만 기여를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된 거야.”
 
  ‘고맙다’는 말은 자기가 해야 하는데 튀르키예 노병으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은 황 기자도 함께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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