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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니어재단 세미나 | 한국의 근현대사의 미래: 성취·반성·회한 그리고 길

정리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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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명의 국가 원로와 8명의 현역 학자가 대담과 토론
⊙ 김성수, 이홍구, 이종찬, 김진현, 김병익, 김종인, 최상용, 김학준, 이태진, 윤동한, 김황식, 송민순, 김대환, 김도연, 이광형 등 15명의 원로와 송호근, 강원택, 권현지, 김남국, 김병연, 김은미, 박태균, 장덕진 등 현역 학자 참여

[편집자 주]
지난 2007년 1월에 출범한 동아시아 문제 연구소인 니어재단(NEAR·North East Asia Research Foundation)이 출범 15주년을 기념해 지난 6월 29일 대규모 세미나를 열었다. 〈한국의 근현대사의 미래: 성취·반성·회한 그리고 길〉이라는 주제로 15명의 국가 원로와 8명의 현역 학자가 대담과 토론을 벌였다. 김성수 우리 마을 설립자(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이홍구 서울국제포럼 이사장(전 국무총리), 이종찬 우당기념관 관장(전 국가정보원장),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전 과학기술처 장관), 김병익 문학과 지성사 상임고문(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초대 위원장),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전 청와대 경제수석), 최상용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전 주일대사), 김학준 전 《동아일보》 회장, 이태진 한국역사연구원 원장(전 한국역사학회 회장), 윤동한 한국콜마홀딩스 회장, 김황식 호암재단 이사장(전 국무총리),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김대환 인하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전 노동부 장관), 김도연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전 포스텍 총장), 이광형 KAIST 총장 등 15명의 원로와 송호근 포항공대 석좌교수,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권현지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등 현역 학자 8명이 4시간 넘는 시간 동안 각자의 의견을 활발히 개진했다. 이번 세미나는 정치적 성향이 다른 여야 인사들이 모여서 토론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참석하지 못한 《월간조선》 독자들을 대신해 귀담아들을 만한 의견을 기고문 형식으로 게재한다. 순서는 발제자들의 가나다순(順)이다.
  노동
 
  “감원 주장하기보다 노동자들이 직업 훈련 통해 다른 일 하도록 도와야”
  김대환 인하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전 노동부 장관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1987년 체제가 한 세대를 지났는데도 노동계는 아직 거기 묶여 있다. 경영계도 경직성을 벗지 못하고 있다. 1987년에는 노동계가 공세를 취하고 경영계가 방어했다면, 1997년 IMF 위기 당시에는 공수(攻守)가 바뀌었다. 2004년 노동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1987년과 1997년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해 새로운 2007년 체제를 만들고자 했는데 너무 시대를 앞서간 얘기였다.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사 행위자들의 협력과 상생이 필요한데, 지금의 행위자들은 지나치게 정치화돼 있다. 합리적인 대화와 합의가 어렵다. 직접 만나 대화를 해보면 우리 사회의 큰 목표와 방향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노동시장, 특히 대기업 부문과 공공부문은 지금보다 유연화될 필요가 있으며 이와 동시에 중소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는 강화돼야 하고, 사회안전망은 두꺼워져야 한다. 이 방향 자체에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정작 논의가 이뤄지면 노동시장 유연화가 먼저냐 사회안전망 강화가 먼저냐,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식으로 논쟁하면서 시간만 보내기 일쑤다. 둘 다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어떻게 단계적, 점진적으로 해나갈 것인지를 논의해야 한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주장할 때 경영계는 가장 먼저 감원과 인원 조정을 말하는데 사회안전망이 미흡한 상태에서 노동자들은 이를 사형선고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것부터 하자는 건 비현실적이다. 노동계에서 생사(生死)의 문제로 받아들인다면 어차피 이를 먼저 시도해봐야 적용 가능한 폭은 지극히 좁다.
 
  유연화의 폭이 넓은 쪽은 따로 있다. 바로 직업 훈련이다.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하던 일과 다른 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요즘도 노동 수요가 반도체를 비롯한 ICT 쪽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해 현장에서는 인력난을 겪고 있다. 노동자들이 그런 쪽으로 이전해갈 수 있도록 정부가 능력 개발, 직업 훈련을 지원하는 쪽이 궁극적으로 유연성을 높이는 길이다.
 
  이렇게 직업 훈련을 강화하고 아울러 사회안전망을 두껍게 해 나가면, 실직하거나 직업을 바꾸더라도 어느 정도 사회에서 지탱해준다는 신뢰가 생길 것이다.
 
  여기서도 중요한 문제는 우리 사회의 합리성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노사 관계가 너무 정치화돼 거의 전쟁처럼 돼 있다. 사회과학적 용어 중에서 ‘노동귀족’이라는 말은 있어도 ‘귀족노조’라는 말은 없다. 노조 자체를 귀족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또 헌법과 법률이 보호하는 노조를 그렇게 해체할 수는 없다. 파업권 가지고도 비난만 하는데,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놓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노동계도 마찬가지다. ‘노동귀족’이라는 비판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노조는 조합원만이 아니라 비조합원을 위한 서비스도 해야 한다.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비난을 받아온 것이다. MZ세대가 새로운 노조를 만들겠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나쁘게만 보지 말고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립할 게 아니라 끊임없이 대화해서 사회 전반에 통용되는 보편적인 논리를 찾아내야 한다.
 
 
 
  교육
 
  “문과·이과 구분을 멈추고 학부에서는 융합 교육해야”
  김도연 서울대 명예교수·전 교과부 장관

 
김도연 전 교과부 장관
  우리나라는 사람이 미래다. 지금은 문명 전환기이기에 교육 혁신을 지금 1년 게을리하면 앞으로 그 몇 배로 인재 양성이 타격을 입는다. 지금처럼 교육하는 것은 절망적이다. 고등 교육도 문제지만 입시 문제와 그에 딸린 초중등 교육 문제가 심각하다. 고등 교육과 초중등 교육의 큰 연결고리가 입시다. 입시 문제는 가장 먼저 고쳐야 한다.
 
  첫째, 수능을 바꿔야 한다. 수능은 엄청난 문제다. 예를 들어, 수학을 가르치는 제일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오래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한 문제를 오래 생각해서 풀어냈을 때의 희열감, 그게 연구라고 생각한다. 그런 훈련을 받아야 나중에 교수가 되어서도 오래 연구하는 힘을 기른다. 수능은 오히려 그런 역량을 키우는 것을 막는다. 애들에게는 어려운 수학 문제가 나오면 5분 이상 생각하면 안 되고 다른 문제로 넘어가라고 가르친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런 시험을 보게 하나. 80분 만에 다 맞힐 이유는 뭔가. 완전히 산업 시대의 전형적인 인재 교육을 지금도 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엄청난 낭비다. 아이들의 시간이 헛되이 쓰이고 있어 안타깝다.
 
  둘째, 전혀 의미 없는 문과, 이과의 구분이다. 1750년부터 2000년까지 산업문명 시대의 최대 메리트는 균일한 품질의 대량 생산이고, 거기에 맞는 교육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학생들을 문과, 이과로 나누었다. 효율적 교육만이 목표였다. 이제 그런 목표는 수명을 다한 지 오래다. 인간을 어떻게 문과와 이과로 나누나? 이것부터 고쳐야 한다. 문과, 이과를 구분하지 말고 문과라고 하더라도 훨씬 과학 기술을 많이 알고, 이과여도 특히 학부에서는 인문계 지식을 많이 아는 인재를 키워서 어디든지 가서 일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대학원 가서나 전공을 하는 거지, 학부 교육은 훨씬 뭉뚱그려서 융합 교육을 해줘야 한다. 고등 교육에서 그런 벽을 없애야 한다. 벽이 없으면 문과가 많으니 어쩌니 그런 것은 의미가 없다. 문과 전공도 너무 많고 우리나라에 공과대학도 너무 많다.
 
  과다하게 부풀려진 학과들을 그냥 두는 것은 폭탄 돌리기다. 지역의 사립대학원 정원 문제도 똑같다. 10년 전에 이미 다 예측된 문제다. 인구 때문에 정원은 저절로 줄어들 것이다. 무전공으로 자유롭게 풀어서 학생이 수요를 결정하게 해야 한다. 폭넓은 교육을 해야 한다. 학생들이 좋은 교수나 교사한테 교육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주고받으면서 성장하는 게 50% 이상이다. 그래서 좋은 애들을 모아놓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교수들의 정년 보장제도 철폐해야
 
  셋째, 오히려 시대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을 방해하는 교육부의 대학에 대한 규제다. 교육부가 고등 교육 기관들을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대학도 혁신이 필요하다. 총장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부의 저항을 관리하면서 변화를 추진하려면 장기적인 리더십이 핵심이다. 20년, 30년까지도 가야 한다. 그러면 팔로워십도 생긴다. 짧은 임기의 총장이 뭔가를 혁신한다고 하면 그때 기득권을 내려놓거나 자기희생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때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더 강하게 저항하는 방법을 택한다. 10년도 짧을 수 있지만, 혁신해간다고 생각하면 조금씩 적응하면서 해낼 수 있다. 한 가지라도 바뀔 수 있다면 대단한 것 아닌가.
 
  기존에 익숙한 것들을 건드려야 한다. 가장 먼저 건드려야 할 것은 총장 직선제다. 직선을 하려면 인기투표를 해야 하고 약속을 남발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프로페셔널 경쟁 사회에서 움직이는 것이 대학이다. 대학 총장을 직선으로 하는 건 프로야구팀 선수들이 모여서 그 안에서 감독을 뽑는 것과 같다. 다 똑같이 나눠 가지자는 거다. 밖에서 파격적인 대우를 해서 선수를 끌어오고 방출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교수들의 정년 보장을 없애야 한다. 현재는 보호가 너무 강하다. 어떻게 현직 교수들이 몇 달씩 소위 캠프에 가서 24시간 일을 할 수 있나? 겸직도 아니고, 정년 보장이 있어서 그렇다. 지난 20년 동안 정년 보장을 받지 못하고 나간 사람이 있나?
 
  논문 표절도 문제다. 구의회 의원들 정도면 박사 학위가 다 있다. 그 사람들이 언제 박사 논문을 썼을지 의문이다. 뒤져보면 거의 표절이다. 지도교수와 대학의 잘못이다. 대학은 그게 다 힘이라고 생각하고 격려한다. 대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런 걸 좀 버려야 한다. 그렇게 교수들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버려야 대학이 신뢰를 얻는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버리고 있다.
 
  우리나라를 ‘과학기술 강국’ ‘IT 강국’이라고 하는데 아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 무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 기술이 아니라 산업 강국이다. 전 세계 논문 숫자나 임팩트를 보면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 정도다. 그런데 무슨 노벨상이 나올 수 있겠나. 노벨상은 국력이고 교육이다. 올림픽 금메달은 바짝 훈련하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노벨상은 그렇게 안 된다. 더구나 초중등 교육을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국가적으로도, 대학도, 리더를 뽑는 과정이 점점 포퓰리즘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북한·인구
 
  “기획재정부 내에 인구 문제를 다루는 차관급 부서 만들어야”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이 됐다. 우리가 잘 변하면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쉽지는 않다. 일본이 1980년대에 얼마나 요란했는가. 제조업을 다 장악할 것처럼 여겨졌다. 1980년대 말까지 그렇게 황홀한 그림을 그렸지만, 1990년대 초반에 들어서 경기 침체가 왔고 지금까지 ‘잃어버린 30년’이 지속하고 있다. 우리의 모습이 바로 일본을 따라가는 것 같다.
 
  일본은 1970년대 말부터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돌입했는데 일본 정치인들이 그걸 모르다가 1980년대 중반이 돼서야 인식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우리의 저출산 문제는 심각하다. 2000년에서 2010년 무렵만 하더라도 1.15명 정도였던 출생률이 갑작스레 0.8로 떨어졌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역동성은 사라진다. 미래 50년은 고사하고, 20년 안에 복잡한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정부는 이 문제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지금은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중장기적 대책에 초점을 맞추고 어떻게 시스템을 만들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연금이 2050년 정도에 고갈된다고 얘기를 한다. 그렇다면 아직도 30년 정도의 시간이 있다. 그동안에 출산율을 1.5, 혹은 그 이상으로 늘릴 수 있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지 않는다면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그동안 정부는 단기 성과를 내는 데 치중했기 때문에 저출산과 같은 장기적 과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어렵다면 적극적인 이민 정책을 펴서 우리나라 인구 구조를 맞춰나가야 한다. 미국이 선진국 중 가장 인구 구조가 적정하게 구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적극적인 이민 정책으로 달성된 것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 민족 동질성만 고집하면서 외국인 근로자가 유입되는 것에 반대하다 결국 오늘날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지 슐츠(George P. Shultz) 전 미국 국무장관이 1990년대부터 늘 내게 강조한 말이 있다. 인구 구조를 잘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2010년도에 만났을 때는 인구 문제로 인해 중국 경제는 결국 한계에 봉착할 것으로 전망했고, 한국은 인구가 더 빠르게 감소할 것으로 보이니 더욱 조심하라고 얘기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우리는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관심이 턱없이 부족하다. 일부에서는 인구 문제를 풀기 위해 여성가족부를 인구가족부로 재출범시켜야 한다고 얘기한다. 인구 문제는 여가부를 바꾸는 방법으로는 힘들고 기획재정부가 맡아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획재정부는 전체 경제 정책을 다루는 조직이다. 인구 문제도 어느 한 부분만 가지고 정책을 펴서는 해결이 어렵다. 기획재정부 내에 인구를 담당하는 차관급 부서를 새로 만들어서 인구 문제를 담당하게 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보건복지부에 인구정책실을 만드는 방법으로서는 역부족이다. 보건복지부가 인구 문제를 풀기에는 문제 자체가 너무 복합적이다.
 
 
  북한은 홀로 살게 놔둬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중국, 러시아, 북한이 밀접해지고 있다. 북한 김정은은 절대 비핵화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핵화는 김정은에게 ‘네 생명을 내놓아라’와 똑같은 얘기다.
 
  우리가 지금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를 놓고 볼 때, 미국과 중국 모두 한반도가 통일되는 것을 실질적으로 원하지 않는다고 본다. 한반도가 통일돼 통일 한국이 자주권을 갖는다면, 경우에 따라 미국 편을 들 수도 있고 안 들 수도 있는 상황이 될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상황이 아닐 수 있다. 1950년 7, 8월에 대한민국이 없어질 뻔한 것을 미국이 막았다. 또 같은 해 10, 11월에 북한이 없어질 뻔한 것을 중국의 33만 명 군대가 막았다. 지금까지 남북한의 이해관계가 고착돼 있다. 어느 한쪽으로 가도 서로 불편해지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지금 상태로 있는 것이 미국도, 중국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국이 한국과 수교할 때 머뭇거린 이유는 북한 때문이다. 그런데 남북이 UN에 동시 가입을 하니까, 즉 남북이 모두 독자적인 나라가 됐으니까 수교를 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도 어느 정도 잘 유지하면서 북한은 스스로 홀로 살게 놔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일단 저 사람들은 그냥 안심하고 살게 해 주고, 우리가 같은 민족이니까 대화를 하고 도와줄 일이 생기면 도와주기도 하면서 지나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북한이 핵으로 무장했지만, 남한에 핵을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오커스(AUKUS) 같은 곳에 가입해서 중국이나 러시아를 적대적인 관계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에게 한미 동맹이 매우 중요하고, 우리도 국제적인 책무를 이행할 때에는 해야 하지만 국가 이익을 우선 전제하고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와 언론
 
  “공평하게 세상을 보도록 하는 것이 언론과 지성인의 역할”
  김학준 전 《동아일보》 회장

 
김학준 전 《동아일보》 회장. 사진=뉴시스
  민주주의의 후퇴나 회복은 최근 들어 매우 중요한 테마다. 포퓰리즘의 확산과 관련해서는 우선 법원, 언론, 대학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들 기구가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 정치권의 개입과 같은 폐해로부터 견제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잘못 중 가장 큰 것은 사회를 둘로 갈라 치기 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한(恨)’이라고 할까, 한 맺힌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를 풀어주기란 쉽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진상을 보려고 하기보다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보려는 경향이 있다.
 
  유교의 가르침 중 좋은 점은 모든 사물을 공평하게 보라는 가르침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특히 지도자는 더욱더 모든 것을 공평하게 봐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공평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고, 자기가 가진 고정관념과 독선, 그리고 정치 진영의 관점에서 현상을 보려는 경향이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소문 등에 너무 약하고 사실 확인을 하려는 노력도 부족하다. 요컨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경계했던 중우(衆愚)정치의 경향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정치인의 선동뿐 아니라 진영논리에 빠진 언론, 최근에는 소셜미디어, 유튜브 등에서 팔로워들을 갖는 선동가들도 모두 조심해야 한다.
 
  공평하게 세상을 보면서 이를 알리는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것이 지성인과 언론의 책임이다. 예전보다 오늘날에는 지식인의 비판적 역할이 많이 사라졌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인터넷이나 댓글을 통한 비난, 공격 등의 부정적 영향력을 들 수 있다. 이를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비판이 어렵고, 그렇다 보니 공평하게 보라고 말하기 어렵고, 또 팩트 체크조차 부족해졌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의원내각제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우리 세대에는 강력한 지도자, 즉 선의의 독재자에 대한 은근한 열망 및 기대가 있었다. 즉 카리스마를 가진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지지와 갈망이 컸고, 이런 정서가 박정희 정권을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게 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다른 문제가 생겼다. 박정희 정권은 당시에 억압적으로 지배했지만, 동시에 미래의 반대 세력을 만들어냈다. 즉 강압력이 지배했던 사회에서 자라면서 국가 기관에 대한 불신을 갖는 세대를 키웠다. 특히 제5공화국에서 국가 기관의 폭력을 경험한 세대들은 체제 전복에 대한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국가 기관의 폭력 행사로 인해 국가 기관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되고, 이후 이를 겪었던 세대들이 민주화 이후 권력을 잡게 됐다. 이들 중에는 주사파 세력과 같이 아예 체제를 부정하는 반대 세력이 자라났다. 이들은 국가 기관의 타도 필요성을 내면화시켰다.
 
  그런 점에서 국가 기관의 위신이 많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국가가 침해하지 못하고 관여하지 못하는 사회 내 여러 영역이 존재하게 됐고, 또 국가의 리더십이 분산된 것은 바람직했다. 이제 개헌을 통해 권력 구조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건강한 민주주의의 요건과 관련해 우선 의원내각제로 나가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제는 이제 수명이 다했고, 그 성공 사례는 미국을 제외하면 매우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의원내각제를 취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크다는 것에 널리 공감하는 이들이 많은 만큼 총리가 책임을 지고 통치하는 방식으로 다원화된 사회를 이끌 정치 리더십을 만들어가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가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이 있으니, 이원집정부 방식의 개헌으로 외교와 국방은 대통령이 담당하고, 내치는 전적으로 총리가 담당하는 식의 운영도 가능하다. 제2공화국 시기의 내각제 경험이 발목을 잡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60년이 지난 일이다. 그때의 한국 사회와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크게 달라졌다. 그때 내각제가 혼란을 가져왔다고 하지만, 이제는 그때의 기억에 너무 묻히는 것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의원내각제를 하기 위해서는 다당제를 수용해야 한다. 국민 대표성을 높여야 하며, 이를 가능케 하는 선거 제도가 필요하다. 내각제를 실시하기에는 우리나라의 정당이 너무 취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과거 제2공화국 선거 때 출마를 했던 양호민 선생이 ‘우리 정당은 하부구조가 너무 취약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가 선거를 많이 치렀고, 권리당원이라는 것이 생기는 등 정당도 많이 변화해왔다. 앞으로 정당 제도도 많이 개선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방자치도 처음에는 문제가 많았지만, 이를 개선해보면서 발전한 것처럼 정당 정치도 그런 방향으로 변화해갈 수 있다. 정당 정치를 이유로 권력 구조 개편을 마냥 미룰 수 없다.
 
 
 
  사법
 
  “판사는 자기 주관·소신보다 객관적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김황식 호암재단 이사장·전 국무총리

 
김황식 전 국무총리
  한국의 법치주의는 제도 등 형식적인 면에서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으나 그 운영 등 실질적인 면에서는 아직 미흡하다.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탓도 있지만, 법치(法治)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인치(人治)로 나아가려는 정치 지도자의 유혹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그동안 우리나라 민주화 등 다른 부문의 발전보다 조금 앞서 발전해왔다. 그것은 우수한 인재들이 사법부에 모여 비교적 정치권에 휘말리지 않고 사명감을 갖고 일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이나 사회에서도 사법부를 존중하고 간섭하지 않는 바람직한 분위기가 어느 정도 조성돼 있었다.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의 재판 제도와 수준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근자에 들어 일부 정치 세력이 사법부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일부 법관들도 이에 부화뇌동하는 경향을 보여 법치주의나 사법권 독립이 흔들리는 우려스러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적어도 사법부는 지금 퇴보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전에는 법률과 양심에 따라 성실하게 업무 수행하는 법관이 제대로 평가받고 승진하는 것이 당연한 관례였는데, 근자에 들어 기존 질서나 관행을 무시하고 평등과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합리적인 인사 기준이 무너지고 있다. 심지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를 폐지하고 법원장을 법관들이 선출하는 제도까지 도입해 국민을 위한 사법 봉사보다는 법관 개개인의 이해를 더 중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판사는 자기 주관이나 소신, 철학보다는 객관적 양심에 따라 재판에 임한다.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어떻든 바람직하지 않다. 라틴어로 양심(conscientia)은 함께(con) 아는 것(scientia)이라는 의미다. 그 사회가 공통으로 가진 객관적인 기준으로서 양심이 있고 거기에 따르다 보면 자기의 사적(私的)인 소신과 다른 재판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양심이나 소신에 반하는 성직자는 용서받을 수 없지만, 판사는 그렇지 않다.
 
 
  검수완박으로 국가 수사 체계 혼란에 빠져
 
  검찰은 나름대로 사명감을 갖고 사정(司正)기관의 역할을 해왔으나 일부 검사들의 정권과의 밀착, 인권침해적 수사 관행, 전관예우, 경찰과의 관계에서 과도한 수사권의 독점 등으로 인해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고 그만큼 투명해지고 있어 그런 일부 불합리는 점점 시정돼가는 과정에 있었으나, 근자에 들어 정치권이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검찰을 이용하고 심지어 ‘검수완박’이라는 극단적 조치를 함으로써 국가 수사 체계가 혼란에 빠졌다. 법치주의의 후퇴이자 민주주의의 후퇴다. 하루빨리 검경 간의 합리적 수사권 조정을 통해 범죄 처단에 의한 사회 기강 확립과 함께 인권 침해를 방지하는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다. 따로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한 나라의 법치주의 수준은 그 나라 국가의 수준을 말해주고, 그것이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된다. 외국 기업이 다른 나라에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고려하는 요소 중 하나가 법치주의의 확립과 사법권 독립 여부다. 그러므로 법치주의의 확립과 법치주의의 효과적 실현을 위해 삼권분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한 법관의 독립과 함께 합리적 제도 설정이 중요하다.
 
  사법민주화는 중요한 이슈이고 사법 과정에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취지는 올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부작용에 대한 예방도 철저히 해야 한다. 법원장 직선제의 경우, 교육감 직선제처럼 개인에 대한 판단이 아닌 진영논리에 따른 판단으로 재판이 대중 인기에 영합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각급 법원장의 임명은 경험 많은 판사들의 지혜를 존중해 법원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다. 국민 참여 재판을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 헌법은 법관에 의한 재판을 규정하고 있어서 구속력 없는 의견 제시에 그치고 있다. 미국식의 배심제보다는 독일식의 참심제를 통한 국민 의견 반영이 더 낫다.
 
  미국식의 배심제가 재판부와의 의견 교환 없이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의 독립적인 심의를 이끌어낸다면, 독일식의 참심제는 재판부 3인 판사에 의해 일반인 2명이 재판부 구성에 참여해 사실상 5인으로 재판부를 구성하고 판사들과 시민이 충분한 사실관계나 법리 검토를 통해 상호 의견을 주고받는다. 재판 본래의 의미를 구현하는 차원이나 비용과 시간의 효율성 차원에서 훨씬 낫다.
 
 
  3심제 유지하며 1·2심에서 충실히 사건 심리해야
 
  상고법원 설립과 관련해 최종심의로 대법원 판단을 받아보고자 하는 기대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다 보니 상고 사건들이 많아지고 대법원의 업무량이 폭주해 심리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 모든 사건에 대해 상고를 허용하게 되면 정작 대법원에서 충실하게 심의해야 하는 진짜 중요한 사건들이 묻혀서 휩쓸려가는 수가 많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법관 숫자를 늘리는 안이 있다. 가령 현재 12명인 대법관 숫자를 20명 정도로 늘리는 것인데, 이때 문제점은 대법원의 본래 업무인 법령 해석의 통일을 위해 전원합의체 운영이 어렵다는 점이다. 20명이 모여서 효율적으로 회의하고 합의를 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 따라서 숫자를 조정하는 것은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다음으로 대법원 조직을 이원화해서 대법원에 대법관과 대법원 판사를 두고, 예컨대 대법관 1인과 대법원 판사 2인이 재판부를 구성해 함께 일하면 업무 처리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세 번째 대안은 상고법원 설립이다. 늘어나는 상고 사건들을 처리하기 위해 상고법원을 두면 4심제 문제가 생기는데, 이렇게 해서 대법원으로 갈 사건을 거른다고 해도 국민의 대법원 판단을 구해보고자 하는 기대가 충족되기 어렵다. 그래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3심제를 유지하면서 1, 2심에서 충실한 사건 심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관들이 각 하급심이 최종심이라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법관의 높은 사명감과 역량 개발 훈련이 필요하고, 최종적으로 사건 폭주로 인한 3심제 운영의 물리적인 부담에 대해 국민의 양해가 필요하다.
 
 
 
  외교
 
  “남에게 침략당한 국민이라는 열등감 버리고 세계시민으로서 행동해야”
  이종찬 우당기념관 관장·전 국정원장

 
이종찬 전 국정원장
  문재인 정부가 가장 실패한 것은 자기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이고, 이것이 헌법적 가치다. 중국을 상대할 때 우리는 이것을 당당히 주장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우리가 종속되게 돼 있다. 그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헌법적 가치는 살려야 한다. 당당할 땐 당당해야 한다. 일본, 러시아, 북한에 대해서도 우리의 헌법적 가치를 당당하게 내세워야 한다.
 
  우리는 가장 성공한 나라다. 일본 민주주의는 우리만 못 하고, 일본은 정권 교체가 되는 나라도 아니다. 어느 시기에 가면 중국도 분권화돼야 한다. 억압하지 말고 그 지방에 선택권을 맡겨야 하는 것이 우리의 헌법적 가치다.
 
  중국이 베트남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베트남이 분명하게 할 말을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걸 놓쳤다. 그 결과 중국, 일본, 북한, 미국으로부터 모두 경멸당했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대사 임명도 하지 않았다. 바이든 시대가 열린 지 한참이지만, 여태 안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정체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무시당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개인적인 자질은 갖추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 혼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대통령을 잘 보좌하는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제갈공명 같은 지략가를 꼭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건 이상적인 그림일 뿐, 인적 요소가 그렇게 갖춰지기는 쉽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모든 걸 직접 하려고 하는 건 의사(疑似) 진보주의다.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비정규직 정책, 탈원전 등 서투른 정책을 다 직접 하려고 했다. 이런 잘못된 선택들로 인해 나라가 많이 망가졌으니 윤석열 대통령이 시민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좋다.
 
  정부가 되지도 않는 일을 간섭해서 시민의 의욕이나 창의력을 꺾어놓아서는 안 된다. 자유를 35번 얘기한 이유는 지난 5년 동안 지나친 간섭으로 의욕이나 창의력을 너무 망가뜨려 놓아서 극단적으로 자유를 주지 않는 한 바로잡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자유를 자꾸 보장해주고 정부는 될 수 있으면 뒤로 빠져야 한다. 지금 민영화 얘기가 나오는데 잘 다듬기만 한다면 찬성한다. 영국의 대처 총리가 했던 것도 전부 민영화 아닌가. 아직 초보적이긴 하지만 이런 논쟁이 일어나는 것은 좋다. 선과 악으로 보지 말고 시기적으로 어떤 쪽을 선택하는 게 좋으냐를 봐야 한다. 국가의 간섭을 빼고 민간에게 창의력과 자유를 주는 것이 좋은 시기가 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세계시민’이라는 말을 처음 쓴 것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잠재의식이 있다. 우리는 작은 나라다, 남에게 침략당한 나라다 이런 열등감 같은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열등감이 있다. 그러니까 일본에서 얘기하면 발끈하고 중국에서 얘기하면 발끈한다.
 
  이 열등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리가 당당한 세계시민이 돼야 한다. 우리가 소득이 경제 대국이라고 얘기를 하면서 실질적으로 대국다운 사고를 하지 못한다. 거기서부터 벗어나서 세계시민으로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가지고 중국, 일본에 우크라이나 전쟁 강 건너 불처럼 보고 있지 말고, 우리가 나서서 전쟁을 끝내자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적인 이슈에 대해 우리는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세계시민으로서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소리 아니냐’고 해야 한다. 중국이 웃어도 좋다. 대통령이 이런 얘기를 특사를 통해서, 주재 대사를 통해서 자꾸 시도해야 한다.
 
 
  중국에 민주주의 배우라고 권해야
 
  황준헌의 《조선책략》처럼 우리 시대에 맞는 신한반도책략이 필요하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 했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미국을 끌어들여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한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많은 토론을 했고, 김 전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사실 지금 미국의 이익은 일본에 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을 끌어들여 균형자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일본과는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 나는 제국 일본으로 인해 선친이 불구가 됐다. 일본에 대해 증오가 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헤이세이(平成)가 레와(令和)로 바뀔 때 일본과 관계 개선을 하라고 조언했다.
 

  문 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이 난 것을 자기가 어떻게 좌지우지하느냐며 반대했다. 그러면 대법원 판결 때문에 영원히 일본과는 적대감을 갖겠다는 것인가. 그 후로는 나를 원로 모임에 부르지 않았다.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바뀌고 있다. 지금은 무기력해 보이지만 언제 가속도가 붙을지 알 수 없다. 나는 이홍구, 이부영 선생과 함께 일본 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운동에도 참여했다. 지금 관계를 개선하고 이런 운동에 참여하면서 일본이 헌법을 바꾸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국에 대해서도 우리의 민주주의를 배우도록 자꾸 권해야 한다. 자유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자유가 없으면 중국 경제도 어느 순간 막혀버리게 됨을 납득시켜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는 매우 어렵다. 계속해 친하게 지내면서 견제할 수밖에 없는 관계다. 대한민국이 중국 변두리에 있으면서도 살아남은 것은 그야말로 민족성의 강인함 때문인데, 이걸 잃지 말아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문어가 감싸서 먹이를 삼키듯이 그 힘에 휘말리게 된다. 고대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자신을 왜소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정체성을 키워놓아야 한다. 우리는 절대 그들의 역사에 편입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한일 관계
 
  “한일 문제는 역사, 안보, 인권 문제로 완전히 분리시켜 접근해야”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전 한국역사연구원 원장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미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인류의 평화 공존 지향의 리더십을 발휘한 나라다. 반면에 일본과 중국은 그렇지 못했다. 두 나라는 전후(戰後) 국제 질서 재확립에서도 여전히 패권주의를 지향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함께해야 할 나라는 저절로 드러난다.
 
  한국은 이웃 나라를 침략한 사례가 거의 없는 인류 역사상 매우 드문 평화 지향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안중근은 옥중에서 쓴 자서전에서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를 번민하던 끝에 내가 인약(仁弱)의 나라, 곧 약하지만 남을 침범하지 않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의 평정을 얻어 형장으로 갈 때 조금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였다. 소중한 정체성 발견의 순간이었다.
 
  같은 동아시아의 일원으로서 한국이 취할 중국과 일본에 대한 배려는 경제 교류 관계 이상을 넘어설 필요가 없다. 두 나라가 전근대적인 패권주의, 우두머리 의식을 버리지 않는 한 그들의 프레임에 속박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두 나라 국민이 평화 공존 지향의 세계로 들어오도록 종용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지난 한 세기 이상 한국은 국력이 약해 국제사회에서 정신의 힘으로 힘겹게 버텨왔다. 지금은 이번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방문에서 드러났듯이 삼성전자, 현대차 등 대기업의 세계적인 약진으로 아시아 국제 질서 모색의 중심축에 들기 시작했다.
 
  중국과 일본의 패권주의를 고치게 하고, 더 넓은 국제사회를 상대로 평화 공존의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전파하는 중심 국가로 나아가는 것을 새로운 국시(國是)로 삼을 때라고 생각한다.
 
 
  한일의 진정한 화해는 현재로서는 요원
 
  ‘국가 신도’의 정신 기반을 가진 일본, 유교의 공화 정신을 자유민주주의로 전향한 한국, 두 나라 사이의 정신세계 간극이 크다. 이에 대한 대책 수립 없이 한일 양국의 진정한 화해는 요원하다.
 
  제국 시대 일본은 천황가의 신성성을 강조하면서 일본 민족의 독존적 우수성을 주입하는 역사 교육으로 천황제를 받들었다. 패전 후에도 이 정신세계는 근본적으로 고쳐지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양국 국가 정상이 만나 화해를 선언한다고 해서 진정한 화해가 될 수 없다. 일본 민족의 독존적 우월 의식이 고쳐지지 않는 한 되기 어려운 일이다. 일본 역사학계가 제국 시대 역사학의 반성에 소극적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큰 문제다.
 
  한·미·일 3국의 동맹 관계는 중국,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와 대치해야 하는 동북아시아의 현실에 비춰 필수적이다.
 
  현실적으로 한일 두 나라의 경제 협력 관계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다. 지금까지 한일 관계는 역사 문제로서 합법·불법 논쟁이 저네를 규제하다시피 했다.
 
  그간의 경험을 살려 이제는 주요 현안들을 나누어 다루는 지혜를 발동할 필요가 있다. 역사 문제는 학계, 지식계가 더 연구를 진행하게 두고, 경제·안보 협력 관계는 양국 정부가 상호 시급한 과제로 다루고, 강제 징용과 군 위안부 문제는 인권 문제 차원에서 다루어 나가는 것으로 방향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역사 문제는 2010년 이후 샌프란시스코 대일평화조약이 큰 장애로 파악하고 4차에 걸친 국제학술회의를 가졌다. 정부가 학계의 이런 노력과 성과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 역사, 경제·안보, 인권 문제 3자 분리 속에 전문 인력을 활용해 70년의 난제를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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