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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조원 怪자금 사기에 농락당한 피해자들

“사채시장 큰손 양아들이다. 수조원을 상속받았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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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자금’ 큰돈으로 도움을 주겠다며 접근하는 사기꾼, 의외로 많아
⊙ “17조원 규모의 공익재단 설립해 도움 주겠다”… 법원, 실체 및 자산이 없는 재단
⊙ “차명재산이 수조원이다. 이제 거의 다 찾았으니 돈 좀 빌려줘”
⊙ “암 치료 받던 피해자 아내의 항암 치료비까지 가져가”… 아내는 정신적 고통으로 사망
⊙ 주범 안승관은 도주, 송인정은 구속… 피해자들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해”
  
  “지하자금으로 조성된 재산이 ‘10경(京)’이다.”
 
  “1000조원이 있다. 전직 총리가 비밀 자금을 관리한다. 숨겨둔 재산을 찾는 데 경비가 든다. 지금까지 50여 명의 변호사를 동원, 변호사 비용만 8000억원이 들어갔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곧 돈이 나온다.”
 
  “5, 6공 실세들이 보관 중인 1조원의 구권(舊券)을 실명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비용을 대면 일주일 내 25억원을 주겠다.”
 
  괴(怪)자금 사기사건에 등장한 각종 거짓말들이다. 10경, 1000조원, 1조원 등 천문학적인 돈에 사람들은 의외로 쉽게 현혹된다.(2017년 《월간조선》 8월호 〈정권교체기 황당 괴자금 사건 전말〉)
 
  왜 그럴까. 거짓말에 돈이 개입되면 거짓말의 효과는 증폭된다. 돈이란 상징물은 감정이입 능력이 탁월하다. 심지어 인지오류의 착시마저 불러온다. 심리학에선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 부른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경향을 말한다. 돈과 관련한 사기사건이 많은 것은 돈이 사람의 이성을 현혹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지하자금’ 같은 거액으로 도움을 주겠다며 접근하는 사기꾼이 의외로 많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잘 속는가.
 
  심리학자들은 의심 많은 이가 더 쉽게 속는다고 말한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이 신뢰하는 좁은 범위의 지인들만 만나려 한다. ‘사회적 위험’을 덜 감수하기 위해서다. 그런 이는 거짓말 의도와 동기를 읽어 내는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다. 결국 뜻밖에도 소수의 가까운 사람에게, 가까운 사람이 소개하는 지인들의 꾐에 빠진다. 의외로 간단히….
 
  최근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남수경(가명)씨는 2011년부터 사기꾼 일당에게 9억5000여만원을 뜯겼다. 지금까지 한 푼도 되돌려 받지 못했다. 그도 지인(후배)에게 사기꾼을 소개받았다. 지인을 신뢰하니 사기꾼도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남씨는 비료 도소매업과 농산물 유통업으로 건실하게 사업을 꾸려 가고 있었다. 그는 늘 현금 수백만 원씩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품질 좋은 농산물을 발견하면 바로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얼마면 되겠나. 자네에게 200억원을 주면 되겠나?”
 
1000조원 사기사건 혐의자인 안승관과 송인정. 안승관(왼쪽)은 잠적한 상태고 송인정은 구속 수감 중이다.
  2011년 2월 대전 유성구에서 지인을 통해 사기꾼 송인정(63)씨를 소개받았다. 지인은 그를 엄청난 재력가로 소개했다. 이틀 후 송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안하지만 급히 자금이 필요하니 260만원을 빌려 달라. 오후 4시까지 송금하겠다”는 것이었다. 곧바로 돈을 보냈으나 그날 오후 4시가 넘어도 입금이 되지 않았다. 속으로 ‘지인이 소개한 사람이니까 주겠거니’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남씨의 말이다.
 
  “처음 송인정을 만났을 때 그가 자신의 지갑을 보여줬는데 100만원짜리 수표가 가득했어요. 이튿날 지인을 통해 송씨가 만나자고 하더군요.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남동 안 회장(본명 안승관)이라는 분이 우리 형님인데 안 회장의 모친(김혜숙)이 제3공화국 시절부터 지하자금을 움직였던 사람이다. 갑자기 모친이 쓰러져 뇌사상태인데 지금까지 (모친의) 차명재산을 찾는 일을 하고 있다. 차명재산이 수조 원이다. 이제 거의 다 찾았으니 다음주엔 돈을 갚겠다’고 했어요.”
 
  그러나 다음주가 돼도, 그 다음주가 돼도 송씨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사기범 송인정’이 바로 2017년 《월간조선》 8월호 〈정권교체기 황당 괴자금 사건 전말〉에 등장하는 송모씨다.
 
  그는 사채시장 큰손(한남동 안 회장)의 양아들을 자처하며 수많은 이들을 속여 왔다. 송인정의 사기수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채업자인 양어머니가 뇌사상태인데 상속절차가 마무리되면 수조 원의 유산을 받는다. 사회환원 차원에서 견실한 중소기업에다 저리로 대출, 혹은 투자하겠다”며 사업자금이 필요한 이들에게 접근했다. 송씨는 상속절차에 돈이 필요하다며 피해자들에게 금품을 요구했다.
 
  다시 남수경씨 이야기로 돌아가자.
 
  어느 날 송씨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다짜고짜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남씨는 “병충해를 예방하는 비료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식물 영양제를 연구하는 공장과 연구소를 지어 주겠다. 얼마면 되겠나. 자네에게 200억원을 주면 되겠나?”
 
  깜짝 놀란 남씨는 “그런 큰 돈은 필요없다”고 했지만 “자네 같은 사람이 언제까지 이런 일에 매달려서야 되겠나. 나를 좀 도와 달라. ‘인정재단’ 일이 다 끝나 가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고 한다.
 
  인정재단이란 ‘한남동 안 회장’으로 알려진 안승관이 유산을 상속받아 설립하겠다는 공익재단을 말한다. 물론 이 재단의 실체는 없다. 그러나 송씨는 재단의 가용 자금 규모가 17조원에 이른다며 남씨의 환심을 샀다.
 
 
  ‘고려청자 이조백자 수백 점을 한국은행 지하금고에 보관 중’
 
‘한남동 안 회장’으로 알려진 안승관이 유산을 상속받아 설립하겠다는 인정재단의 정관. 이들은 사업자금이 필요한 이들에게 접근, 이 재단에서 건실한 중소기업에 투자한다고 속였다.
  송씨는 남씨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대전 유성에 있는 R호텔에 변호사와 재단 이사장이 차명재산을 전환하는 작업을 한다. 이들을 위해 10개의 호텔방을 잡아야 한다. 하루 400만원이 들어가니 경비 좀 빌려 달라.”
 
  송씨는 남씨가 반신반의하자 그를 R호텔로 불렀다. 그 자리에는 ‘한남동 안 회장’이 나와 있었다. 안 회장의 본명은 안승관. 그는 “송인정이 내 동생이니 남수경도 내 동생”이라고 친근감을 보였다. 그 자리에서 안 회장은 재경부 국장이라는 이남기, 버스회사와 가스 충전소를 운영한다는 신모씨, 안승관의 경호를 맡은 ‘미아리 건달두목’이라는 박모씨를 남씨에게 소개했다.
 
  남씨는 안승관·송인정이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안 회장은 남씨에게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수천조가 움직이는 일이라 정부 금융감독원의 눈치도 살펴야 하고 자금을 관리하는 이사진들이 다 합의를 봐야 한다. 고모부 아들이 현직 부장판사인데 우리 약점을 알고 너무나 큰돈을 요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합의가 되지 않아 큰일이다.”
 
  송씨와 안 회장은 재단 설립이 지연되고 있으며 온갖 핑계로 남씨에게 돈 요구를 계속했다. 참다 못한 그가 “이제까지 들어간 돈을 모두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송씨는 “내가 가지고 있는 그림과 이조백자 등 수만 점이 안승관의 한국은행 개인금고에 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말을 해라”거나 “서울 근교에 있는 1000~2000평 땅을 명의이전해 줄 것이니 주민등록등본과 인감증명서를 가지고 오라”며 다시 속였다.
 
  송씨는 남씨와 남씨 아내를 불러 10억원짜리 어음(문방구 어음) 2장을 끊어 주며 “곧 이 일이 끝나니 그때 현금으로 교환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어음은 가짜였고 돈은 되돌려 받지 못했다. 남씨 아내는 심한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으로 위암에 걸리고 말았다.
 
  남씨의 말이다.
 
  “아내가 암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아 몸이 호전되던 어느 날,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송인정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어요. ‘미안하다. 재단 일이 다 되어 가는데 자금이 조금 부족하다’는 겁니다. 제가 ‘아내 항암 치료비밖에 없다’고 하니 ‘진짜 다음주에 끝난다. 부탁한다. 이 일이 끝나면 최고 시설에서 치료받게 해 주겠다’고 했어요. 저는 ‘이번에는 정말이겠지…’ 하며 돈을 보냈습니다.”
 
  설마 아내의 암 치료비까지 떼먹지 않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이었다. 결국 남씨 아내는 2016년 6월 8일 사망하고 말았다. 안승관·송인정은 장례식장에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남씨의 계속된 말이다.
 
  “안승관과 송인정은 많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박근혜 대선 당시 그쪽 캠프에 많은 돈을 대 주어 당선되면 바로 (재단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차명계좌에서 찾은 돈이) 현금 1300조, 부동산과 땅 1700조 등 3000조원’, ‘고려청자 이조백자 수백 점이 한국은행 지하금고에 보관 중이다’, ‘안승관은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맹희(삼성 이병철 회장의 장자)와 친구 사이’, ‘국회의원 중에 안승관 모친에게 뇌물 안 먹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사기꾼, ‘속이는 기쁨’을 탐닉하는 쾌락주의자
 
피해자들을 현혹하기 위해 만든 인정재단 로고. 구속된 송인정은 “재단의 가용 자금 규모가 17조원에 이른다”고 말했다고 한다.
  ‘안 회장’으로 알려진 안승관은 현재 지명수배 중이다. 송인정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4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계속된 피해자들의 신고와 증언으로 7년형이 추가돼 모두 11년형을 받았다. 1심 판결은 지난 2월 21일 서울중앙지법 제29형사부에서 이뤄졌다.
 
  송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송씨와 사실혼 관계인 윤모씨도 현재 같은 혐의로 수감 중이다.
 
  판결문에는 송씨의 사기행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지하자금으로 피해자를 현혹시킨 뒤 실명전환에 자금이 필요하다며 돈을 갈취하는 수법을 썼다. 다음은 판결문 중 일부다.
 
  〈… 송인정은 2015년 4월 서울 소공동 L호텔에서 최모 사장과 만나 “안승관의 부모가 개성에서 금광을 했었고 일제 강점기에 상납을 했었다. 그때 빼돌린 금이 있는데 6·25 전쟁 때 인천 소금 염전 밑에다 금을 묻어 놓았다. 이것을 지하자금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이 지하자금을 지인 약 30명에게 관리토록 해 놓고, 명의를 그들로 해 놓았다.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이후 명의를 안승관 앞으로 돌리기 위해 자금이 필요하다. 이 돈을 찾아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해 주는 것이 ‘인정재단’이고, 여러 회사에 많은 지원을 해 주었다. ‘인정재단’의 지하자금을 찾기 위해 필요한 금원을 달라. 지하자금을 회수하면 사업자금을 지원해 줄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
 
  법원은 ‘인정재단’을 실체 및 자산이 없는 재단이라고 밝혔다. 또 안승관의 부모가 일제 때 채굴한 금을 토대로 지하자금을 만든 사실도 없다고 했다. 다시 말해 ‘지하자금을 회수해 피해자들에게 사업자금을 지원해 줄 의사도 능력도 없었다’는 것이다. 모두 거짓말이란 것이었다.
 
  송인정·안승관은 정신의학 용어로 ‘작화’(confabulating·말을 지어내다)를 하는 자들이다. 일반적으로 만성적인 작화증(confablation·말짓기증)은 뇌손상을 입은 사람 중 아주 일부에서 일어나는 드문 유형의 기억장애다. 이들은 “자신과 세계를 날조하고 왜곡하거나 잘못 해석한 기억을 만들어 내는” 유형의 인간형이다. (참조 《타고난 거짓말쟁이들》, 북로드 刊)
 
  문제는 뇌손상을 입지 않은 이들이 하는 거짓말이다. 이들의 거짓말은 ‘솟구치는 창의력’으로 가득하다. 어쩌면 송인정·안승관은 타고난 이야기꾼일지 모른다. 지하자금, 구권화폐, 금융실명제, 상속·유산 등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꾸며 끊임없이 현실의 피해자들을 농락했다. 이들은 ‘속이는 기쁨’을 탐닉하는 쾌락주의자들이었다.
 
  흔히 사기꾼들은 자신의 거짓말을 진실이라 믿게 만들려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인물을 동원한다. 일종의 바람잡이들이다. 피해자들은 “안승관·송인정은 의심했지만 이들이 데리고 나온 인물들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다음은 판결문 중 일부다.
 
  〈… 피고인 송인정은 피해자 이모씨에게 미국에서 전기사업으로 큰돈을 번 것처럼 과시했고 이남기, 박정웅, 정태수를 각각 재경부 재무국장, 정주영 비서실장, 삼성생명 법인장으로 소개했는데 재력과 공신력 있는 인사를 내세워 피해자 이씨의 신뢰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
 
  〈… 피해자 장모씨는 피고인 송인정과 함께 있던 이남기를 대여섯 차례 만났는데 ‘이남기가 송인정 옆에 앉아 자신이 재경부 재무국장 출신이라고 하였고 들고 있던 가방 안에 있던 여러 뭉치의 외국 수표를 보여주었습니다’라고 진술하였고 이외에도 송인정은 박정웅, 송병섭, 이중규를 정주영 비서실장, 재무부 차관, 충북대 교수로 소개했다고 진술하였는바…〉
 
 
  사기꾼의 바람잡이들, 국장·비서실장·법인장·차관·교수…
 
  피해자 최모 사장과 이모씨, 장모씨는 기자와 만나 이렇게 설명했다.
 
  “전직 고위관료라거나 대기업 임원 출신이라고 하니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분들이 안승관·송인정을 “총재님” 혹은 “회장님”이라 부르며 90도로 인사를 합니다. 임금도 그런 임금이 없어요. 그러니 의심하려는 마음에 혼동이 와 버린 거예요.”
 
  그러나 송인정은 검찰조사에서 “뭔가 착각을 해서 이남기가 재무국장이라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고 둘러댔다.
 
  누군가를 속이거나 숨기기 위해서는 순수한 연기술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거짓말은 이음매 없이 실제와 잘 접합돼야 하기 때문이다. 사기꾼들은 실제와 접합하는 방식으로 성공한 인사들을 동원했다. ‘재경부 재무국장’, ‘정주영 비서실장’, ‘삼성생명 법인장’, ‘재무부 차관’, ‘충북대 교수’가 그들이다.
 
  이들이 진짜 국장·실장·법인장·차관·교수일까. 물론 아니다. 피해자들은 이들의 경력을 확인하거나 이들이 몸담고 있다는 직장에 문의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안승관·송인정의 사기방식 중 눈에 띄는 것은 피해자와 의형제를 맺었다는 사실이다. 부자 행세를 하는 이들이 피해자들을 형, 동생이라 부르도록 한 것이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에 수조 원을 가졌다는 부자가 의형제를 맺자는 데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송인정은 피해자 남수경씨에게 안승관을 소개하자, 안씨는 “이 사람(송인정)이 내 동생이니, 이 사람의 동생도 내 동생”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50대인 남씨는 70대인 안씨를 형님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자 안씨는 이렇게 말했다.
 
  “관우가 유비보다 나이가 많으면서도 유비를 형님으로 모시는 예도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형님으로 불러라. 이제 곧 좋은 일이 많을 것이니 우리 (송)인정이 좀 도와주라.”
 
  여기서 “도와주라”는 의미는 송인정에게 “돈을 주라”는 의미다.
 
  송씨는 이명박 정권 말기에 일어난 ‘1000조원 사기사건’의 주인공이다. 2011년 3월 그는 대통령과 재벌 회장 등 고위층과의 친분을 사칭, 김모(63)씨에게 39차례에 걸쳐 약 1억8000만원의 금품을 받아 가로챘다. 그때도 송씨는 구속됐었다.
 
  10경, 1000조원, 1조원 등 거액에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는 이유는 뭘까.
 
  사람들은 누구나 ‘마술적 사고’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아닌 ‘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가난한 이가 부자를 꿈꾸고, 운동선수가 우승을 꿈꾸는 것과 같다. 노력과 훈련에 의해 성공을 꿈꾸는 것과 별개로 마법의 힘을 소망한다. 순진한 ‘마술적 사고’는 어린아이들도 한다. 동화 속 누군가가 되길 꿈꾼다.
 
 
  “거짓말은 잘 들키지 않아. 핑곗거리가 수없이 많기 때문”
 
송인정·안승관이 피해자들을 속인 방법은 간단하다. “사채시장 큰손의 양아들이다. 양어머니가 뇌사 상태인데 상속절차가 마무리되면 수조 원의 유산을 받는다”고 속였다. 사진은 사채 광고 전단.
  삶에서 한계를 느꼈을 때 사람들은 ‘작은 기적’을 믿고 싶어한다. 불가항력적인 어떤 힘이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판타지를 머릿속에 만든다. 사기꾼은 그런 ‘작은 기적’을 철저히 악용한다. 착한마음연구소 정은미 수석연구원의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정직과 솔직함을 숭배하죠. 가까운 친구나 지인의 말을 편견 없이 듣길 원하는 심리가 있어요. 누구나 성마른, 의심 많은 이가 되고 싶지 않아요. 사기꾼은 그런 믿음까지 악용합니다. 사실 거짓말은 잘 들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핑곗거리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죠.”
 
  안승관·송인정의 사기 행각에 피해자들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현재 확인된 피해액만 32억원에 이른다. 한 푼도 지금껏 돌려받지 못했다.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안승관은 잠적한 상태다. 그를 찾아야 돈을 찾을 수 있는데 오리무중이다. 구속된 송인정은 편취한 돈을 어디에 썼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법원에 따르면 “송씨가 피해자들에게 받은 돈의 사용처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수차례 진술했으나 신빙성 있는 피해자들의 진술을 뒤집을 만한 별다른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고 수사기관에 제출한 자료 역시 대부분이 2010년 이전의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 피해자들은 “안승관·송인정이 시중은행 대여금고에다 돈을 숨겨 놓았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이미 파산신청을 했거나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가 난 상태다. 재기를 위해서도 이들이 숨겨 놓았을 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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