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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세월호 잠수 취재기

“왜 못 찾나 싶었다. 물속에 들어가 보니 어떻게 찾나 싶었다”

글 : 이동욱  前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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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실방지망 점검 명목으로 해경과 함께 21분간 잠수 작업
⊙ 조류 때문에 수직 하강 불가능, 상태가 좋은 편이었는데도 5m 앞이 안 보여
⊙ 세월호 선체의 외벽은 큰 곡면, 기울어지는 세월호의 외부에서는 절대로 오를 수 없는 상태
⊙ 저체온증과 수압을 견뎌내면서 빛이 없는 통로를 더듬으며 작업한 해군·해경 잠수사들은 영웅
잠수를 마치고 바지에 올라온 후 숨을 헐떡이는 기자. 230시간이 넘는 잠수경력을 갖고 있지만, 이번 잠수가 가장 힘들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난 지 2년이 흘렀지만 ‘세월호’를 둘러싼 갈등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2014년 6월에 이어 세월호 잠수 수색 현장을 두 번째로 찾았던 그해 8월 19일, 기자는 해경을 설득해 비로소 잠수 취재 허락을 받았다. 대신, 유실방지망 점검이라는 수중 임무를 해경과 함께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레저 다이빙 최고 등급인 마스터 다이버 자격증을 갖고 있는 기자는 65m 대심도 잠수도 두 차례, 후카 장비를 착용하고 47m 연천 땅굴 수중 탐사에 두 번의 표류 경험도 가지고 있지만 해경은 못미더워했다.
 
  누구도 수중 취재를 해보지 않았던 세월호의 선체를 직접 보았을 때, 그 이전의 영상이나 사진으로 형성되었던 세월호의 기억과 상상은 물거품처럼 깨졌다. 수중의 선체를 직접 보던 순간, 거대한 곡면 철판과 먹빛 어둠 속 난장판이 된 객실 공간은 인간의 손길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실체였다. 지금은 해체돼, 경찰 아닌 경비로 전락해 버린 해경 소속 다이버와 산업 다이버들이 어둠의 우물 속에서 손으로 더듬어 시신을 찾아내고 껴안고 물 위로 오르는 일을 그해 봄부터 가을까지 반복하고 있었다. 지구촌에서 이런 최장기 잠수 수색은 전무후무할 것이다.
 
 
  밤 10시26분 입수하다
 
입수 전 해경이 기자에게 세월호 선체 구조와 작업지침을 설명하고 있다.
  잡생각이 달아났다. 메인 다이버, 기자, 그리고 페어 다이버가 한 줄로 다이빙 스테이지에 섰다. 주변은 별 하나 안 보이는 흐린 밤바다. 수평선을 에워싼 듯 채낚기 어선의 흰 불빛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마스크를 얼굴에 내리고 호흡기를 물었다. 바지선에서 입수하는 방식은 공중을 걸어가듯 발을 벌린 채 물속으로 들어가는 ‘워킹 다이빙(Walking Diving)’이다. 흔히 수면과 갑판과의 높이가 50cm 이상 되는 배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메인 다이버 양재석 경장이 먼저 검은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얀 포말이 조명에 빛났다. 기자는 그가 하잠줄을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
 
  이윽고 기자의 차례가 왔다. 예의 발을 공중으로 내디디며 물을 향해 몸을 밀었다. 인간의 신체가 기억하는 내용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보트 다이빙을 그렇게 많이 해서일까. 그 높이와 지금의 높이가 너무 달랐다. 한참을 떨어진다 싶었다. 그러고 엉덩이로 충격이 강하게 왔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다이빙 스테이션 ‘현대 보령호’는 수면과 갑판과의 높이가 3m에 달했다. 기실 레저 다이빙에서는 입수하지 않는 위험한 높이이기도 하다. 밤 10시26분이었다.
 
  기자가 하잠줄을 잡자 페어 다이버 이경학 경장도 익숙한 자세로 입수해 나에게 왔다. 내가 잡은 하잠줄 한쪽을 밀어주었다. 이제부터 차례대로 입수다.
 
  메인 다이버가 입수한 뒤 내가 그 뒤를 따랐다. 야간 다이빙에서는 머리를 아래쪽으로 향한 채 잠수하는 ‘헤드 퍼스트(Head First)’ 방식을 주로 쓴다. 한 손에 랜턴을 들고 수중의 장애물이나 도착지점을 살피며 내려가는 것이다. 통상 잠수는 입수할 때 빨리 내려가고 상승할 때 천천히 올라와야 한다. 그래서 ‘헤드 퍼스트’ 잠수 방식을 전문가들이 즐겨 사용한다.
 
 
  세월호가 보여야 하는데…
 
헤드 퍼스트(head first)로 하강 잠수를 하고 있는 기자.
  야간 다이빙으로 입수해 보면 바닥에 도달할 때까지 풍경은 검은 우주공간과 흡사하다.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의 여행이나 마찬가지다. 열대바다라면 랜턴에 감광된 동물성 플랑크톤들이 발광을 하며 지나가는 것 외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다가 목표지점에 랜턴 빛이 도달하면 비로소 허연 바닥이 다이버에게 점점 가까워지는 식이다.
 
  한 손엔 하잠줄과 랜턴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마스크를 눌러 귀에 가해지는 압력을 해제시켜 가면서 오리발로 킥을 계속했다. 이 자세로 25m를 내려가면 세월호가 보여야 했는데 이상했다. 분명 이 정도 내려왔으면 도착지점이 보여야 한다고 신체의 감각이 일러주는데 실제는 이상하게 아직도 깜깜했다. 하잠줄이 없었더라면 기자는 게이지의 수심을 읽으면서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의 게이지는 두 곳에 있었다. 하나는 공기탱크와 연결된 게이지였고 다른 하나는 데이터 마스크로 마스크 우측 눈 밑에 달린 컴퓨터 스크린에 나타나는 게이지였다. 두 손을 다 사용하며 내려가야 했으므로 공기탱크와 연결된 게이지를 볼 여유는 없었다. 기자는 오른쪽 아래로 눈길을 돌려 수심을 읽었다. 17m. 이상하지 않은가. 바닥이 나올 때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감각적으로 한 33m 정도 하강했다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메인 다이버가 기자보다 5m 전방에서 선체와 만나고 있었다. 나중에 상승한 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조류로 휘어진 하잠줄이 길게 늘어서서 우리가 이동한 궤적이 그렇게 길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기자는 수직으로 잠수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반원 비슷한 코스를 그리며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세월호 선체에 내려섰다. 하얀 선체가 손에 닿았다. 선체를 쓰다듬어 보았다. 아주 얇은 막 같은 것이 덮인 듯했다. 물이끼류가 얇게 앉은 것이었다. 흙탕물이 지나가기도 하는데 선체 외벽은 아주 깔끔한 편이었다. 조류가 늘 씻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선체는 깔끔했다
 
  일단 현(現) 위치를 봐야 했다. 처음 입수하면서 선체가 어떤 방향으로 누워 있는지 숱하게 이미지를 그려두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전부 개가 물어간 듯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내려오면서 몇 바퀴를 돌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 선수이고 어느 쪽이 선미인지만 헷갈렸다면 괜찮은 편에 속한다. 기자는 배의 앞뒤는 물론이고 아래위도 구분이 가질 않았고 몇 층의 외부인지도 알 도리가 없었다. 처음 잠수해서 하잠줄을 설치하고 수색작업을 한 잠수사들이 얼마나 어려웠나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기자를 엄호하는 이경학 경장이 노끈 매듭 하나를 기자의 왼손목에 채웠다. 약 3m 길이의 다른 쪽 끝은 자신의 오른 손목에 감겨 있었다. 최소한 떠내려가도 혼자 보내지는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가 기자의 손목에 줄을 채우는 사이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 해역의 물이 가장 맑을 때인 지금 현재 시계(視界)는 5m 안팎에 불과했다. 5m 밖은 깊은 어둠으로 채워져 있어 당최 145m짜리 선체를 볼 수가 없었다. 물 밖에서는 수중의 세월호 선체 사진이 왜 없는지 궁금했었다. 들어와 보니 수중 사진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도면만 보면 이 선체 안에서 왜 못 찾나 싶었다. 그런데 물속에 들어와 보니 이 선체 안에서 어떻게 찾나 싶었다.
 
 
  임무 완수
 
기자는 해경 잠수부들과 함께 세월호 내 유실방지망의 C클램프를 조이는 작업을 했다. 기자를 엄호하는 이경학 경장이 노끈으로 자신과 기자의 손을 묶었다.
  메인 다이버가 줄을 깔면서 앞으로 이동했다. 비로소 임무가 생각났다. 새로 깔린 줄의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10m 정도 되는 거리에서 두 개의 랜턴 빛이 보였다. 우리 옆의 D팀이 입수해 작업지점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기자는 메인 다이버가 설치한 안내줄을 잡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다이빙 경력이 쌓이면 물속에서 공기를 아껴 쓰는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한다. 기자도 중상급 수준은 된다. 하지만 평소에 요가를 하며 신체를 적응시킨 다이버에 비하면 기자의 기술은 거의 초급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남보다 적은 공기를 갖고 수중으로 들어온 이상 최대한 숨을 아껴야 했다. 물속에서 공기를 아끼는 지름길은 쓸데없는 동작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빨리 움직일수록 공기 소모량은 더 많아진다. 천천히, 필요한 동작만을 하면서 호흡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이 방법이 몸에 익혀지면 그대로 우주 유영(遊泳)을 하는 우주인의 동작과 닮아간다. 우주인들의 훈련장이 다이빙 풀장인 이유이다.
 
  하얀 선체를 짚어가며 천천히 전진하다 보니 갑자기 큰 구멍 같은 곳이 나왔다. 그 속은 그야말로 검은 공간이었다. 그 위를 가로질러 설치된 유실방지망이 나타났다. 그러니까 이곳이 깨진 유리창이 있던 곳이다. 저 컴컴한 공간 속에 단원고 학생들이 있었을 것이다. 잡념을 멀리한 채 유실방지망을 고정시키는 네 개의 C클램프를 찾았다. 창문 모서리마다 하나씩 클램프가 끼워져 있었고 긴 볼트가 돌려져 클램프를 고정시키고 있었다. 나사 홈마다 벌겋게 녹이 슬어가는 중이었다. 유실방지망은 이 네 개의 클램프를 기둥 삼아 가로세로로 줄을 쳐둔 것이다. 이 정도면 선체 내부의 시신이 밖으로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기자가 클램프 볼트를 하나씩 감아보았다. 느슨해진 볼트가 기자의 작업에 의해 다시금 꽉 조여졌다.
 
  기자의 임무인 유실방지망 점검은 이렇게 끝이 났다. 물 밖이었다면 어린애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물속에서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되고 있었다. 공기탱크와 연결된 게이지를 보니 135mb가 남았다. 아껴야 오래 머물 수 있었다. 임무를 마친 뒤 선체 외벽의 다음 창문으로 전진했다. 그곳엔 이미 노란색 공기호스가 들어가 있었다. D팀이 선체 내부로 들어간 것이다. 기자는 그곳을 살짝 넘어가야 했는데 이때부터 난조(亂調)를 보인다.
 
 
  동료 잠수사의 머리를 차다
 
  부력(浮力)조끼에 공기를 주입해 두지 않았기에 기자의 몸은 강한 킥킹을 하지 않으면 가라앉는, 부력이 없는 상태였다. 강하게 물을 차고 올라서 깨진 유리창의 출입구 위로 지났어야 했는데 공기를 아낄 요량으로 기어가듯 출입구를 가로질렀다. 그때 안을 들여다보니 시커먼 우물 속에 잠수사가 작업을 위해 들어서 있는 게 보였다. 기포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그 속에서 메인 다이버와 연결된 호스가 꺾이지 않도록 잡고 있었다. 메인 다이버는 그보다 더 안쪽 어느 구석을 더듬어 가고 있을 것이다.
 
  기자의 상체가 완전히 공간을 가로지를 때 그만 기자의 다리 부분이 선체 내부로 슬그머니 가라앉고 말았다. 문제는 기자의 두 발이 잠수사의 머리 위로 내려앉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만있다가는 좁은 통로에서 두 다이버가 당황한 채 몸을 격하게 움직이게 되고 그렇게 되면 호흡줄이 꼬이는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이 상황을 피하려면 기자가 숨을 깊이 들이마셔서 허파로 부력을 최대한 확보하고 오리발을 강하게 차면서 올라와야 했는데 그러자면 어쩔 수 없이 잠수사의 머리를 치게 된다. 사고는 나지 않더라도 난데없이 오리발로 머리를 얻어맞은 다이버는 기분이 참 더러웠을 것이다.
 
  이제 다시 선체 위를 기어서 전진했다. 그때야 비로소 기자의 위치가 4층 우현 선수 쪽 유리창의 두 번째 지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선체를 자세히 보았다. 세월호 선체의 외벽은 곡률(曲律)반경이 큰 곡면에 가까웠다. 기울어지는 세월호의 외부에서는 절대로 오를 수 없는 상태였다. 평평하다 해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자가 있는 지점으로 항공구조사가 눈길을 주었을 것인데, 절대로 걸어서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다. 수십m나 되는 외벽이 평면도 아닌 곡면으로 휘어져 있으니 사람이 지나갈 곳이 아닌 것이다.
 
 
  수중에서 줄이란 줄은 전부 조심해야
 
세월호 선체 내에 작업을 위해 설치해 놓은 각종 줄들. 잠수사들에게는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
  기자가 두 번째 창문으로 접근하는 중에 페어 다이버와 기자의 왼손목과 연결된 줄이 강하게 당겨졌다. 돌아보니 그와 기자 사이에 위에서 내려온 또 다른 공기호스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기자가 후진을 해서 조심스럽게 공기호스 위로 빠져나왔다. 페어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게이지를 보니 110mb가 남았다. 머물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기자가 있는 위치에서 조금만 더 가면 세월호 4층의 정면 지점이 될 것이다. 그곳에 가면 조타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움직여 나아가자 선체 한쪽에 가는 철근으로 엮은 난간이 보였다. 승객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난간은 아니라고 생각될 만큼 철근은 가늘었다. 장식이었다. 그렇다면 이 지점은 4층과 5층 사이의 끝단을 의미한다. 사다리처럼 한 칸씩 잡고 전진하는데 그동안 여러 차례 작업하면서 남겨둔 굵기와 색상이 서로 다른 안내줄들이 거미줄처럼 남아 있었다. 잘못하면 줄에 엉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어 조심했다. 다이버들을 위협하는 사고 중에는 어망(漁網)에 엉키는 일이 많다. 오죽하면 레저 다이빙에서조차 나이프를 필수 지참물로 설정하고 있을까. 하여간 수중에서 줄이란 줄은 전부 조심해야 한다.
 
 
  검은 낭떠러지 아래의 조타실
 
작업을 마친 후 줄을 잡고 힘겹게 철제 계단을 올랐다. 40㎏이 넘는 장비를 메고 지친 몸으로 계단을 오를 때 가장 힘들었다.
  이곳을 지나면서 보니 선체 한편에 작은 원통 같은 것이 보였다. ‘현등(舷燈)’이었다. 모든 배는 좌우현에 등을 켜게 돼 있다. 좌현은 적색등이며 우현은 녹색등이다. 기자가 본 현등은 마지막까지 녹색 불빛을 내보냈을 것이다. 기자는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갔다. 선체는 더 이상 연장되지 않은 채 끝이 나고 있었다. 4층 선수(船首) 끝단에 도착한 것이다.
 
  여기서 아래로 90도를 꺾어서 내려다보면 조타실이 보일 것이다. 기자는 아직도 상상을 하고 있었다. 희뿌연 창문들을 가지런히 드러낸 채 있을 조타실을. 확인은 해야 했다. 기자는 선체 끝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그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시커먼 낭떠러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약하지만 아래서 위로 조류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랜턴을 비추니 갑판 쪽에 설치된 자이로리피터가 뿌연 펄을 뒤집어쓴 채 횡으로 누워 있었다. 분명 자이로리피터가 보이면 우현 갑판이고 그 안쪽이 조타실일 것이다. 자이로리피터는 조타실 외부 갑판 좌우측에 설치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타실 입구까지 가려면 최소한 수심 5m 이상은 더 내려가야만 했다. 남은 공기로 모험을 하기엔 무리가 따랐다. 그 아래로는 수심 40m가 넘는 곳에 바닥이 있을 것이다.
 
  기자는 4층 선수 모퉁이를 붙잡은 채 그 아래로 펼쳐진 검은 낭떠러지를 내려다보았다. 호흡기를 물고 고른 숨으로 기포를 내뱉으며 생각해 보았다. 발견되지 않은 나머지 시신 10구를 찾기 위해서 의무감을 가진 해경과 해군 다이버들이 과연 목숨 걸고 저 아래로 계속 다녀와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懷疑)가 들었다.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임무를 맡긴 채 누구도 이들의 수고를 고마워할 줄도 모른다. 저체온증과 수압을 견뎌내면서 빛이 없는 통로를 더듬어 가도록 만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몰인정과 냉정함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해경을 속죄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해경이니까 헛된 희생도 당연히 해야 하며, 세금이니까 무한정 써야 한다고 말한다.
 
 
  21분간 잠수
 
  페어 다이버는 메인 다이버에게 신호를 보냈다. 메인 다이버 양재석 경장이 하잠줄을 찾아 끌고 왔다. 그리고 그가 맨 위에, 기자가 두 번째로, 페어 다이버가 기자 아래로 선 채 서서히 상승을 시작했다. 부력이 없던 관계로 기자는 계속 오리발을 차며 하잠줄을 당겨 상승해야 했다. 수면 도착 시각은 10시47분. 21분간 잠수한 것이다.
 
  다이빙을 많이 해보면 입수할 때보다 출수(出水)할 때가 더 힘들다는 걸 안다. 태어날 때보다 이승을 하직할 때가 더 고통스러운 것일까? 기자가 수면에 도착했을 때 파도가 제법 일었다. 철제 사다리가 3m 높이의 바지선 위까지 45도 각도로 붙어 있었다. 저기를 장비를 멘 채 자력(自力)으로 올라야 한다. 40kg이 넘는 장비가 물속에서는 무게를 느끼지 못하지만 막상 수면으로 나오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잠수를 하고 나면 수압에 의해 근육이 이완되는 편이다. 거기에 중량이 더해지면 진짜 무거움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이 상태로 사다리를 올라야 한다니….
 
  일단 오리발을 벗어 위로 전해야 했다. 텐더들이 사다리 끝까지 내려와 오리발을 회수했다. 왼발을 벗어 전달했다. 이번엔 오른발을 벗었는데 파도가 쓸어버려 텐더와의 거리가 더 멀어졌다. 숨이 가빴다. 한 손으로는 줄을 잡고 있어야 휩쓸리지 않는다. 다른 한 손으로 오리발을 벗는 것도 숨을 차게 만드는데 파도 때문에 한 모금 물을 먹어야만 했다. 엄청나게 짜다는 느낌이 휙 지나갔다. 더 중요한 일이 물맛을 무시하게 만들었다. 다시 오리발 전달을 시도했다. 출렁거리는 물결이 텐더의 손과 오리발을 확 떼어버렸다. 두 번째 실패. 겨우 세 번째야 오리발을 전해줄 수 있었다.
 
  이번에는 계단을 올라야 했다. 암벽 등반을 해온 기자가 40kg이 넘는 장비를 짊어지고 사다리를 오르는 일이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 한 칸 한 칸 발을 옮길 때마다 숨이 턱 턱 막혀 왔다. 갑판까지 대략 5m의 거리가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갑판에 오르자 비로소 수많은 얼굴들이 걱정을 하다 무사히 돌아온 기자를 보고 달려들었다. 그들은 기자를 벤치에 앉히고 장비를 탈착시켰다.
 
 
  우리 시대의 진짜 英雄들
 
왼쪽부터 해경 122구조대의 양재석 경장, 이동욱 기자, 이경학 경장.
  그 무거운 더블 탱크를 벗고 나니 갑자기 뒷골이 아파 왔다. 참기 어려워 얼굴을 찡그리면서 나도 모르게 뒷목을 주물렀다. 잠수 후 어떤 이상이 생길까 싶어 노심초사한 표정으로 기자를 지켜보던 이춘재 경비국장, 임근조 상황실장, 그리고 박광호 팀장이 연방 괜찮은지를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잠수사가 “저체온으로 인한 두통입니다. 한두 시간쯤 지나면 사라져요”라고 설명해 주었다. 진짜 그의 말대로 이 두통은 두 시간 동안 내 뒷목에 머물다 사라졌다.
 
  바지선에 도착해 장비를 다 벗고 나서 드는 감정은, 불철주야로 이곳에서 잠수 수색을 하는 모든 잠수사를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들은 저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라 하면 들어가고, 시신을 찾아오라 하면 시신을 안고 올라오는 묵언(默言)의 수행자 같았다.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영웅들이었다.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이 키운 충무공의 후예들이었다.
 
  재난은 지구촌에 태어난 모든 생명에게 숙명처럼 가까이 존재한다. 재난은 피해자를 가리지 않는다. 피해자의 인종, 종교, 나이, 성별, 선악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런 재난은 생명처럼 ‘예방-대비-대응-복구’라는 4단계의 주기를 갖고 있다.
 
 
  재난의 끝은 복구
 
  세월호의 경우, 예방과 대비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으나 대응 단계에서는 거의 만점이었다. 30분 만에 P123정과 헬기 그리고 어업지도선과 민간 소형 어선들이 가세해 구조를 기다리며 선체 밖으로 빠져나온 승객 172명 전원을 구조했기 때문이다. 대응단계를 거쳐간 재난은 인간들의 복구 노력 속에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추며 사라진다. ‘복구단계’는 그 사회의 통합능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인간의 실수로 빚어진 인적 재난인 세월호 사건은 대응단계를 거친 뒤 복구되지 못한 채 사회적·정치적 재난으로 번져서 지금도 자라는 중이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발족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제대로 사고 조사를 해본 적도 없다. 연안 노선 복선화(複線化) 과정과 중고 선박 도입 과정은 해양수산부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한데도 검찰과 감사원은 침묵한다. 아무런 실익도 없는 침몰 선체 인양 작업에만 1000억원 이상의 세금이 사용되지만 누구도 잘못된 집행을 멈추지 못하는 사회가 됐다. 영웅으로 칭송받아도 모자랄 P정 함장은 업무상 과실치사(過失致死)로 3년형을 받아 수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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