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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농협재단의 베트남 봉사활동 따라가 보니…

“누군가로부터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일 뿐”

글 : 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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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협중앙회 부회장, “베트남 봉사는 한국과 베트남 교류의 교두보 될 것”
⊙ 주베트남 한국대사, “한국의 새마을운동 전수해 주어야”
농협재단의 봉사단원들과 팜 김 두엔 씨네 가족 일동.
  격오지(隔奧地). 격오지란 중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을 일컫는 말이다. 주로 군에서 쓰는 용어다. 국어사전에도 없다. 보통 오지(奧地)라는 말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군대를 제대하고 기자가 이 말을 다시 듣게 된 것은 베트남의 하노이 국제공항에서였다.
 
  기자에게 이 단어를 상기시킨 사람은 농협재단의 박병희 사무총장이었다.
 
  “우리는 곧 격오지로 가서 대학생 봉사단원들과 합류하게 될 것입니다.”
 
 
  ‘隔奧地’와의 재회
 
봉사단원에 합류한 베트남 대학생, 부 티 마이 프엉(Vu Thi Mai Phuong) 씨.
  지난 8월 6일부터 13일까지 한국의 대학생 봉사단 20명은 농협재단 후원으로 베트남의 격오지에 사는 사람들 돕기에 나섰다. 20명 중 5명은 한국어를 잘 하는 베트남 현지 대학생들이다. 이들은 한국 대학생들과 베트남 현지에서 만나 봉사지역으로 이동했다. 한국 대학생들은 대부분 농촌 출신이다. 이번 대학생들의 베트남 봉사는 올해로 11년째다. 작년처럼 올해도 대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격오지의 마을 주민들이 대상이다. 타이 응우옌(Thai Nguyen)성(省)의 보나이(Vo Nhai)현(縣)과 꽝닌(Quang Ninh)성이 그 지역이다. 현지인들에게 문화회관을 지어주거나 가정집을 고쳐주는 일을 주로 한다. 타이 응우옌성은 베트남에서 많은 관료를 배출한 응우옌(Nguyen) 성씨의 고장이다.
 
  보나이현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했다. 잘 닦인 고속도로에 들어서나 싶었는데 이내 폭이 좁은 시골길이 나왔다. 베트남의 주요 교통수단은 오토바이다. 이 때문에 도로 위에는 오토바이와 차들이 뒤엉켜 있었다. 아마도 평생 볼 수 있는 오토바이를 다 보는 듯했다.
 
  고속도로에서 일반도로로 접어들자 차선이 그려져 있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그래서일까. 기자가 탄 차량은 마주 오는 차량을 피해 곡예 하듯 추월을 해댔다. 마주 오는 대형 트럭의 경적소리가 귓가를 스쳐 지나갈 때면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이런데도 사고가 나지 않는다니 ‘무질서 속 질서’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차들은 길 어디서든지 자신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핸들을 돌려댔고, 길 중간에서 유턴하는 사람, 차들이 미친 듯이 달리는 도로 한가운데를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도 자주 보였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놀라거나, 창문으로 삿대질을 하지 않았다. 한국이었다면, 분명 창문을 내리고 삿대질을 했을 법한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시골길은 이름만 포장도로였지 사실상 비포장도로와 다르지 않았다. 도로 마감이 매끄럽지 못해 튀어나온 곳과 움푹 팬 도랑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도로 가장자리가 흙과 풀로 뒤덮인 농지(農地)이다 보니 돌멩이와 흙이 도로 위에 굴러다녔다.
 
  농협재단의 한주식 팀장에 따르면, 타이 응우옌성에 한국의 삼성 공단이 들어서면서 도로 여건이 많이 개선된 것이 이 정도라고 한다.
 
  봉사단이 봉사를 하고 있는 타이 응우옌성 보나이현까지 가는 동안 한국의 한 재단이 정말 이런 곳에까지 와서 봉사를 하고 있나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막상 현장에 도착해 문화회관을 보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농협재단의 관계자들과 대학생 봉사단원들이 문화회관 준공식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기자가 차에서 내린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기자가 입고 있던 옷은 폭우라도 맞은 듯이 흠뻑 젖었다. 104년 만의 가뭄이라는 한국의 무더위가 오히려 견딜 만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준공식을 위해 양복을 입고 온 일부 농협재단 관계자들은 연신 땀을 닦아냈다. 뒤에서 보았을 때 이미 양복 상의는 땀이 번져 색이 바래 있었다.
 
 
  문화회관으로 다시 태어난 창고
 
베트남 전통의상을 입은 주민들이 준공식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보나이현의 띠엔퐁(Tien Phong) 마을은 다 합쳐도 187가구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베트남에서도 빈곤층에 속한다.
 
  주민들은 그동안 낡은 창고를 문화회관이란 이름으로 사용해 왔다. 1976년에 지었다니 오죽하랴. 금이 가 있는 벽이 많아 금세라도 무너져 내릴 듯했다. 이에 농협재단은 마을 주민과 협의하여 지난 4월부터 새 회관을 지어 왔으며, 마침 이번 대학생 해외봉사단원의 봉사시기에 맞춰 준공식을 갖기로 한 것이었다. 마을 주민은 물론이고 베트남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도 준공식에 참석했다.
 
  주민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기분이 들떠 있었다. 일부 주민은 농(Nong)이라고 부르는 지역 전통의상을 입고 왔다. 이 옷은 베트남 북부지역의 전통의상으로 마을 축제 등에서 춤을 출 때 입는다고 한다. 수많은 주민이 문화회관 안을 가득 메우고도 넘쳤다. 미처 회관 안에 자리를 잡지 못한 주민들은 회관 밖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농협재단은 미리 많은 주민이 몰릴 것으로 보고 회관 밖에도 대형 천막과 간이의자를 설치해 두었다.
 
  회관 준공식에는 김정식 농협중앙회 부회장, 윤동기 농협은행 부행장, 전대주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대사, 박석곤 금융감독원 하노이 사무소 소장, 응우옌 칵 딘 베트남 총리실 차관 등이 참석했다.
 
 
  베트남에 선보인 ‘새마을운동’
 
문화회관 위에 게양한 태극기, 베트남기, 새마을운동기(오른쪽부터).
  준공식 축사에서 김정식 부회장은 “한국과 베트남은 같은 유교 문화권이며 외세의 침략 속에서 전통을 지켜온 민족성도 닮았다. 최근에는 베트남 처녀들이 한국인과 국제결혼을 하여 국내에 잘 정착하고 있다. 또 한류 열풍을 통한 양국 간 정서적 교감도 있어 이번 농협재단의 문화회관 준공이 한국과 베트남 간의 문화 교류와 한국의 새마을운동 전파의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선진국일수록 농업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며, 경제발전에도 베트남의 농업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그 과정을 농협이 돕겠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의 축사가 끝나자, 마을 주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김 부회장의 축사에 이어, 전대주 주베트남 한국대사는 “농협재단의 문화회관 건설은 대한민국의 신(新)농촌 운동 및 우리의 새마을운동 정신을 전수해 주는 좋은 계기이며 이를 통해 베트남도 한국과 같은 발전을 이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 대사는 “한국은 올해 3분기 178억 달러를 베트남에 투자했으며, 4,500여 개의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해 있다”며 “2013년 한-베트남 FTA 체결 이후 이번 농협재단의 후원이 양국 간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에도 기여할 것”이라 말했다.
 
  응우옌 칵 딘 베트남 총리실 차관도 인사말을 했다. 응우옌 칵 딘 차관은 “띠엔퐁 마을은 베트남전쟁 기간 중 정부가 식량을 지원했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과거에는 베트남의 24개 정부기관이 있었으며, 호치민 주석도 이 지역에서 머물며 생활한 바 있다. 이런 유서 깊은 역사를 간직한 마을 주민들의 공을 생각해 베트남 정부는 이 지역의 경제개발을 승인했으며, 이를 토대로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말미에 차관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은 마을 단위의 개발운동이었으며, 이러한 계몽정신을 본받아 베트남도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을 함께 다지자”고 말했다. 모든 축사는 베트남 현지인이 한국어와 베트남어를 번갈아 통역하면서 진행했다.
 
전대주 주베트남 한국대사가 봉사단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응우옌 칵 딘 베트남 총리실 차관이 베트남어로 연설을 시작하자, 마을의 이장을 비롯한 주민들은 들뜬 분위기를 감추지 못했다. 주민들은 고위 관료의 방문 자체를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사실 총리실 차관과 같은 고위 관료의 오지 마을 방문은 특히 이례적인 것이다. 차관의 연설 내용에 대한 한국어 통역이 끝나기도 전에 환호를 보내는 주민도 있었다. 축사를 마친 농협재단 관계자와 베트남 관계자들은 서로 악수를 하며 기쁨을 나눴다.
 
  준공식이 끝난 뒤 두옹 반 민(Duong Van Minh) 띠엔퐁 마을 이장은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기분이 너무 좋다”는 말을 거듭했다. 김정식 농협중앙회 부회장으로부터 학용품과 슬리퍼를 선물 받은 응우옌 티 탄(Nguyen thi thanh·13세) 어린이는 “주민들의 생활여건이 좋아지고 마을이 발전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의 지원과 투자에 목맨 베트남
 
김정식 농협재단 부회장(좌)과 두옹 옥 롱 타이 응우옌성장(우)이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준공식에 이어 기자가 방문한 곳은 타이 응우옌성 청사(廳舍)이다. 청사를 방문한 이유는 농협재단과 타이 응우옌성이 MOU(양해각서)를 체결한다고 해서이다. 농협재단이 타이 응우옌성의 띠엔퐁 마을과 같은 낙후된 지역을 지원하기 위한 행정상의 절차라고 했다.
 
  타이 응우옌성 청사는 베트남에서는 비교적 시설이 좋은 편이지만, 한국으로 치면 1970년대 건물이었다. 엘리베이터는 한 대만 있었고, 탈 수 있는 인원도 10명이 채 안 됐다.
 
  양해각서를 체결하기 위한 회의장은 양국 관계자들이 마주앉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회의장 내 연단을 기준으로 우측에는 농협재단 관계자들이, 좌측에는 베트남 정부 관계자들이 앉았다. 회의는 두옹 옥 롱(Duong Ngoc Long) 타이 응우옌성장(省長)이 주재했다. 그는 회의 시작에 앞서 8월 8일(회의일 10일) 타이 응우옌성 주변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3명의 한국인 근로자에 대해 위로를 표명했다.
 
  두옹 옥 롱 성장은 모두발언에서 “올해는 베트남 건국 70주년이자 한국의 경상북도와 자매결연한 지 10주년이다. 이런 뜻깊은 시점에 한국의 농협재단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게 되어 기쁘다. 타이 응우옌성은 한국의 삼성과 같은 기업이 들어와 빠른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번 농협재단과 맺은 MOU가 지역주민들의 여건을 좋게 하고 경제발전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두옹 옥 롱 성장은 “2015년 상반기 84억 달러 규모의 수익을 창출했으며, 하반기에는 이보다 많은 170억 달러 정도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정식 농협중앙회 부회장과 두옹 옥 롱 성장이 양해각서에 사인을 하는 것으로 양측의 각서 체결은 마무리되었다.
 
  행사가 끝날 무렵 응우옌 칵 딘 총리실 차관은 자신이 말할 순서가 아니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 “한국의 농협재단이 앞으로 더 많은 지원과 투자를 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한국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응우옌 칵 딘 차관의 표정에서 부끄러움도 이겨낸 간절함을 읽을 수 있었다. 응우옌 칵 딘 총리실 차관의 이 발언 모습을 보자 문득 기자는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로부터 차관을 빌려오던 우리의 모습도 저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협재단 도움으로 5년 만에 친정집 방문한 팜 김 두엔
 
팜 김 두엔 씨네 보수를 하기 전 집의 모습.
  양해각서 체결을 마치고 타이 응우옌성에서 꽝닌성으로 이동했다. 꽝닌성까지의 거리는 하노이에서 타이 응우옌성까지의 거리에 비하면 가까웠다. 곡예를 하듯 운전하는 차를 타고 마음 졸인 끝에 꽝닌성 팜 김 두엔 씨의 집에 도착했다. 팜 김 두엔 씨는 2010년 한국으로 시집을 온 베트남 처녀로 현재는 경북 상주에서 한국인과 결혼해 슬하에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그는 결혼한 뒤로 지난 5년간 한 번도 친정집에 오지 못했다. 팜 김 두엔 씨의 딱한 사정을 접한 농협재단은 그의 모국 방문을 돕는 것은 물론, 그의 친정집 개보수 지원도 해주기로 했다.
 
팜 김 두엔 씨네 가정은 조부모부터 4대가 모여 살고 있다.
  팜 김 두엔 씨의 친정집은 꽝닌성에서도 빈민층이 거주하는 지역에 있었다. 그의 집의 시설은 매우 열악했다. 시설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정도였다. 특히 화장실이 없어 작은 국그릇 같은 곳에 온 가족이 용변을 보며 지내왔다고 한다. 그런 집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 조카까지 4대가 함께 살고 있었다.
 
떨어져 나간 대문도 보수할 예정이다.
  부서진 문, 땅이 그대로 보이는 바닥이며 군데군데 구멍 난 벽까지 성한 부분이 없었다. 다행히 농협재단의 도움으로 화장실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물도 제대로 쓰기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팜 김 두엔 씨의 집 화장실 위에 대형 물탱크가 등장했다. 이제 적어도 물은 물탱크에서 가져다 쓸 수 있는 정도가 됐다. 농협재단은 화장실뿐 아니라 세탁기와 같은 가전제품도 제공해 주었다.
 
  현장에서는 농협재단이 고용한 현지 인부들과 대학생 봉사단원들이 정신없이 집을 보수하고 있었다. 전해들은 에피소드를 풀자면, 베트남 기후의 특성 때문인지 사회주의 노동 방식에 젖은 때문인지 현지 인부들에게 부지런함을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다고 한다. 보통 오전 10시나 11시부터 일을 시작하고, 일을 한 지 한두 시간이 지나면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해 오후 4시나 5시 정도면 일을 마친다고 한다. 하루 노동시간이 6시간 남짓. 한국의 부지런한 업무처리 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농협재단은 현지 코디네이터와 함께 공사기한을 넘기지 않고 개보수가 진행될 수 있도록 공사현장을 관리감독하고 있다.
 
 
  마을에서 제일 좋아진 팜 김 두엔 씨 집
 
대학생 농협재단 봉사단원들이 팜 김 두엔 씨네 집 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다(왼쪽). 농협재단은 팜 김 두엔 씨네 집 화장실을 새로 만들어 주었다.
  한쪽에서는 20명의 대학생 봉사단원이 벽에 하얀색 페인트를 칠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페인트가 떨어져 옷과 신발에 묻는지도 모른 채 너저분했던 벽을 깨끗하게 가꾸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페인트 롤러를 미는 모습이 영 어색했다. 페인트칠은 서툴렀지만,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그들의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여러 명의 학생이 달려들어 벽면을 하얗게 칠하자, 어느새 벽은 낡은 티를 벗었다.
 
  팜 김 두엔 씨네 집 개보수처럼 집을 통째로 수리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단기간에 많은 사람이 허름한 빈민가에 모여들어 대대적인 공사를 하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도 종종 팜 김 두엔 씨네 집 공사현장을 구경거리로 삼기도 했다. 마을 주민 모두는 이 공사가 한국의 농협재단이 추진하는 공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을 주민들은 한국에서 온 농협재단 관계자들이 지날 때면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주민 중 한 사람은 집에서 키우던 개가 공사현장을 드나들던 농협 관계자들에게 연신 짖어대자, 다음날 개를 팔아버리기도 했다. 마을에서 얼마나 농협재단의 봉사를 감사하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팜 김 두엔 씨의 할아버지이자, 집안의 가장인 팜 반 고안(Pham Van Ngoan) 씨는 기자가 소감을 묻자, “한국의 대학생들이 이런 곳까지 와서 (집의) 보수를 해주어 너무 기쁘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팜 김 두엔 씨도 “한국 농협재단 덕분에 모국을 방문했으며, 이제 우리 집이 동네에서 제일 좋다”며 기뻐했다. 취재 중 만난 박주영(경인교육대학교·21세) 대학생 봉사단원은 “나의 도움은 누군가로부터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농협 관계자들도 “앞으로도 베트남의 빈민층을 지원할 것이며, 우리가 베푼 봉사를 베트남도 훗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나눠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번 농협재단의 베트남 봉사기간 동안 펼친 봉사활동은 현지에서도 대단한 호응을 받았다. 이는 현지 매체인 하노이TV의 취재진이 농협재단을 따라다니며 밀착 취재를 한 덕분이다. 농협재단의 관계자에 따르면, 농협재단의 봉사활동은 현지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방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농협재단이란?

 
농협재단은 지방 농업인의 대학생 자녀들이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장학관(기숙사)을 운영 중이다.
  농협재단은 농촌 지역의 사회적 발전과 농업인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2004년 7월 설립되었다. 설립 이래 농협재단은 국내 늘어나는 농촌 지역의 다문화가정 모국방문지원 사업을 벌여왔다.
 
  이번 팜 김 두엔 씨의 모국 방문 및 집 개보수도 이러한 사업의 일환이다. 2013년까지 농협재단은 1226가구의 다문화가정 모국 방문을 지원했다.
 
  뿐만 아니라, 농업인 자녀들의 장학금 지원은 물론, 지방 거주 농업인의 대학생 자녀를 위한 기숙사인 농협장학관 또한 만들어 운영 중이다. 2011년,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 건설된 농협장학관은 총 500명의 농업인 자녀를 수용할 수 있다. 성적이 우수한 자녀들을 선발해 지원 중이다. 향후 농촌의 부흥에 중요한 자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농협재단에 따르면 농협장학관을 통해 2013년까지 약 1500명의 학생들이 혜택을 받았다.
 
  이 외에도 농협재단에서는 농업인 대학생 자녀들의 취업을 위한 교육도 지원하고 있다. 작년에는 전문가를 초빙, 모의면접 및 면접을 위한 차림새 등에 대한 교육 등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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