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감원과 김경준의 진실게임
⊙ 금감원, “위조문건이다” vs 김경준측, “금감원에서 받았다”
⊙ 전문 변호사, “배 째라고 버티면 되는데, 이해 안 가”
⊙ 새로운 소송 두렵고, 미국 송환 앞당기려는 조급함 때문에 위조한 듯
⊙ 금감원, “위조문건이다” vs 김경준측, “금감원에서 받았다”
⊙ 전문 변호사, “배 째라고 버티면 되는데, 이해 안 가”
⊙ 새로운 소송 두렵고, 미국 송환 앞당기려는 조급함 때문에 위조한 듯
- 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경준. 비비케이북스 제공.
2007년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BBK 의혹’ 사건의 주범(主犯) 김경준 전(前) 옵셔널벤처스 대표(48·이하 존칭과 직함 생략, 천안교도소 수감 중)의 범죄행각이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김경준(미국명 크리스토퍼 김·Christoper Kim)은 주가조작으로 피해를 입은 소액주주들이 자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재판에서 금융감독원의 공(公)문서를 위조해서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에 제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7년 넘게 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경준이 금감원의 서류를 위조(僞造)해, 한국 최고법원을 속이려 한 대담한 범죄에 법률 전문가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공문서 위조는 법으로 10년 이하의 징역(형법225조)에 처할 수 있는 중한 범죄이다.
2007년 11월 16일 지난 17대 대선을 불과 32일 남겨 놓고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김경준은 한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여당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명박(李明博)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김경준의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소위 ‘BBK 의혹’에 목을 매고 있었다. BBK 의혹을 수사했던 검찰과 특검(特檢·특별검사)은 주가조작이 김경준의 단독범행이라고 결론지었다. 사법부의 판단 역시 같았다. 2009년 5월 28일 대법원은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등의 혐의로 징역 8년 및 벌금 100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 판결했다.
김경준은 2017년 5월 만료 예정으로 충남 천안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확정판결보다 형량이 1년5개월 늘어난 것은 벌금을 납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경준은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벌금 100억원 납부를 거부하고 17개월 수형(受刑)생활 연장을 선택했다.
이렇게 사법부 판단이 끝나면서 마무리된 것 같았던 옵셔널 주가조작 사건이 김경준의 공문서 위조 의혹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의혹은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김경준이 정말로 공문서를 위조한 것이 맞는가’라는 의문이다. 둘째, 공문서를 위조했다면, ‘어떻게 감옥에 있는 김경준이 금감원 서류를 위조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다. 당연히 교도소에는 컴퓨터가 없다. 조작을 위해서는 외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셋째, ‘과연 김경준이 위조 공문서를 법원에 제출했는가’라는 의문이 있다. 넷째, ‘왜 김경준이 공문서 위조로 처벌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법원에 해당 문건을 제출했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기자는 네 가지 의문을 차례로 파헤쳤다.
취재를 위해 김경준의 공문서 위조 혐의와 관련한 위조 문서, 판결문, 고소장 등 관련 서류 모두를 입수해 해당 분야 전문 변호사에게 자문을 했다. 또 사건 관련자의 증언을 통해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김경준, 변호사 도움 없이 혼자 재판 진행
2013년 11월 12일 옵셔널벤처스(이하 옵셔널) 소액투자 피해자는 경기 고양경찰서에 “김경준이 금융감독원의 공문서를 위조해 법원에 제출했다”며 공문서위조죄, 소송사기죄 등으로 김경준을 고소했다.
해당 고소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김경준 관련 재판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김경준 관련 재판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크게 두 부류인데, 첫째 옵셔널 소액피해자들이 김경준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민사소송들이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소액주주들이 그룹별로 뭉쳐서 4건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둘째는 김경준이 자신의 정당한 교도소 접견권이 침해받았다며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이 있다.
놀라운 것은 김경준이 일련의 재판을 변호사 도움 없이 혼자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손해배상 소송의 경우 대법원에서 승리하거나, 소액 피해자들의 피해보상 요구액을 30%까지 깎아 내는 등 적극적으로 소송에 대응하고 있다. 서면답변서를 50장 넘게 손으로 적어서 제출해, 재판부가 “어떻게 이 많은 수기(手記) 서류를 읽을 수 있느냐”며 하소연하도록 만드는 등 소송에 매우 적극적이다.
허위공문서 제출 의혹은 김경준과 소액피해자들 사이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불거졌다. 이와 관련한 고소장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경준은 자기의 재산을 불리려고 여러 건의 허위공시를 하였고, 이후 자신이 저지른 허위공시 등등의 불법이 드러날까 봐 회사의 회계장부를 멸실한 자이다. 그 후 김경준은 자신의 불법을 숨기기 위해 회사의 회계장부를 멸실하는 등 추가 범죄를 저질러 회사의 주식이 거래 정지되고 이어서 회사가 아예 증권시장에서 상장폐지가 되어서 소중히 모은 회사의 주식 재산이 휴지 값이 되게 만들었다.
김경준은 위의 불법 내용으로 주주들에게 직접 손해를 입혀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여러 건 제기되었다. 손해배상 청구를 당해 손해배상을 해 주어야 할 위기에 몰린 김경준은 소송 제기자들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허위공문서를 작성해, 관련 재판부(대법원,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했다.
허위공문서를 작성하고, 허위문서를 관련 재판부에 제출해 재판부를 적극적으로 속이려는 소송사기 범죄를 범했다고 생각된다.
김경준의 범죄행위에 대해 엄중하게 처벌해 주기를 바란다.
소액피해자 손배소송에서 대체로 승소
고소장에서 언급된 손해배상 소송은 2012년에 옵셔널 소액투자자들이 과거 2002년 옵셔널에 투자할 당시 회사가 제대로 공시를 하지 않아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며, 김경준과 옵셔널 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사소송이다. 소송에서 사기사건이 발생한 당시 시작됐던 통합전자공시(DART)를 통한 공시의무 발생 시점이 주요 쟁점이 됐다.
옵셔널의 공시의무 위반에 의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은 대체로 소액피해자들의 손을 들어 주고 있다. 다만 소송이 2012년 시작됐고, 대법원까지 가야 확정이 되는 관계로 아직까지 지루한 법정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 일부 소액피해자는 “김경준의 문서위조 사실을 확인해 재판부에 해당 사실을 알려서 손해배상이 가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혹 1: 김경준이 공문서를 위조한 것이 맞는가?
금감원과 김경준의 진실게임
고소장에서 언급한 금감원 공문서는 통합전자공시 시스템 개시(開始) 시기를 설명하고 있다. 내용은 통합전자공시 시스템이 언제부터 서비스를 개시했으며, 통합 공시자료 조회가 가능했던 시기를 설명하고 있다. 해당 사항은 옵셔널의 공시의무 발생 시점(始點)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금융감독원 민원회신자료
2013년 7월 15일(월)
작성부서 : 금융감독원 기업공시제도실 전자공시팀
책임자 : 조○○ 실장(3145-○○○○)
담당자 : 조○○ 팀장(3145-○○○○)
작성일 : 2013년 7월 15일(월)
배포부서 : 공시실(○○○○) 총1매
제목 : 금융감독원, 상장기업 전자공시(DART) 서비스 시행일
1. 개요
■ 금융감독원은 「통합전자공시(DART)」 시스템을 구축하여 ’02. 7. 1(월)부터 서비스를 개시.
＊ 그동안 비상장 법인의 공시만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DART)으로 조회되어 유가증권 상장법인(코스피, 코스닥) 공시문서를 조회하기에는 불편함이 있었으나,
＊ 금번 서비스 개시로 전자공시(DART)를 통해 상장회사와 비상장회사를 공시문서로 확인할 수 있는 통합전자공시(DART) 시대를 열게 되었음.
2. 내용
■ ’02. 7. 1(월) 이전에는 비상장회사의 공시만 담당했던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DART)에서, ’02. 7. 1(월) 이후로는 유가증권 상장법인의 분기보고서를 인터넷을 통해 전자공시(DART)를 통해 조회 가능하게 되었고, 이는 비상장회사와 함께 상장법인(코스피, 코스닥)의 자료가 공시되어 통합공시자료의 조회가 가능하였음. 끝.
해당 문서는 여러 면에서 이상하다. 우선, 문서의 형식이 마치 금감원을 홍보하기 위한 보도자료처럼 느껴진다. 둘째, 문서의 내용을 보면 “금번 서비스 개시로~” 등 마치 2002년 7월 즈음해서 문서를 작성한 것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마지막으로, 금감원 등 공공기관은 민원인의 질의응답에 대해 통합된 시스템(전자답변 시스템)을 통해 답변을 하지, 해당 사례처럼 공문 형식으로 보내지 않는다.
금감원, “위조 문서다”
우선, 문서의 위조 여부를 분명히 하기 위해, 2월 초 금융감독원 기업공시제도실 전자공시팀 유길상 수석조사역과 전화 통화했다. 유 수석은 “금융감독원에서는 이런 형식의 자료를 보낸 사실이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자는 유 수석에게 이메일로 해당 문건을 스캔해 보낸 후, 정확한 감정을 수차례에 걸쳐 요구했다.
—해당 문건을 민원인에게 발송한 사실이 있는가요.
“금융감독원은 이런 형식의 민원회신 자료를 보내드린 사실이 없습니다.”
—해당 문서는 위조된 것인가요.
“네.”
—문서의 어떤 부분이 위조되어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금감원은 해당 문건을 생산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문서의 내용은 사실에 부합하나요.
“금감원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시면 전자공시시스템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전자공시시스템의 연혁이 나와 있어요. 문건의 내용은 옳지 않습니다. 전자공시시스템은 2001년 1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민원회신자료가 아니라 보도자료 형식입니다. 민원인의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민원회신의 형식이 아니라는 의미로 답변)”
금감원 녹취록, “도용(盜用)했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은 2013년 11월 5일 옵셔널 소액피해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해당 문서가 위조되었다고 확인했다. 기자가 입수한 당시 녹취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옵셔널 피해자(이하 피해자) : (해당 문서에) 문서번호가 없는 것이 이상해서 전화했습니다.
금감원 직원 : 이것은 보도자료 양식입니다. 보도자료 포맷을 그대로 땄는데요.
피해자 : 회신일자가 2013년 7월 15일로 되어 있는데요.
금감원 : 저희 쪽에서 업무를 제가 그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문서를 생산한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금감원에서는 민원회신을 이런 포맷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피해자 : 그러니까 2001년 1월 1일부터라는 얘기잖아요. 그지요?
금감원 : 저희가 2013년 8월 12일자로 서울고등법원에서 사실조회 의뢰가 왔습니다. 8월 12일자로 조회서에 대한 회신을 했습니다. 그 회신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금융감독원은 2001년 1월부터 다트를 통해 분기보고서를 접수 및 공시를 하고 있다’라는 내용입니다.
피해자 : 해당 문건의 출력자(법원 제출자)가 김경준으로 되어 있습니다. 법원 문서입니다.
금감원 : 법원에서도 이런 것을 도장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을 이것을 증거자료로 한다는 게 조금 이해는 안 되는데요.
피해자 : 조○○ 팀장, 조○○ 실장 명의로 발급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금감원 : 조○○ 팀장, 조○○ 실장이 저희 부서 책임자라는 것을 누구든지 알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을 조금 도용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상과 같은 금감원의 답변과 상식적인 판단으로 볼 때 해당 문건이 위조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우선 금감원이 자신들이 만든 문건을 만들지 않았다고 거짓으로 주장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고, 나아가 해당 문건의 내용 역시 사실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건의 형식과 작성 방식 또한 공공기관의 속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의심을 가지기 충분할 정도로 엉성하기 때문이다.
의혹 2: 누가 어떻게 위조했나?
의혹의 핵심 이병원 대표의 주장
김경준의 소송을 돕고, 그의 생각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이가 있다. 이병원씨는 2012년 10월 김경준이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기 위해 글을 쓴 《BBK의 배신》을 출간하기 위해 비비케이북스라는 출판사를 차렸다. 비비케이북스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이씨는 김경준을 주기적으로 면회하고, 주요 재판에 참석하는 등 실질적으로 김경준의 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2월 11일 기자는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 2층 커피숍에서 이병원 대표를 만나 관련 의혹을 물었다.
우선 논란이 되고 있는 금감원 문서가 어떻게 김경준에게 전달될 수 있었는지 물었다. 이 대표는 “금감원으로부터 편지로 해당 문건을 받았다”며 위조를 부인했다. 다음은 그와의 대화내용이다.
—(문제의 위조 문건을 보여주며)금감원에서는 해당 문건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황당하네요. 내가 받아서 (김경준에게)보낸 것입니다.”
—금감원에서는 해당 문건을 발행하지 않았다고 수차례에 걸쳐 밝혔어요.
“그러면 이것을 누가 만들었나요. 제가 거기(금감원)에 요청을 해서, 전화를 해서 받은 것이거든요. 저는 위조가 아니라 (금감원에서)받은 대로 (김경준에게)준 것이에요.”
—금감원에 문의하니, 서류의 내용도 틀리다고 답변했어요.
“미치겠네요. (금감원과)통화를 몇 번 했어요. 무슨 대리인가 하는 사람과 통화했어요. 처음에는 자기들 홈페이지에 나와 있으니 (홈페이지로 확인하라고)하다가 법적인 문제를 확인하고 (금감원이 보냈어요).”
—금감원 누구와 통화했나요.
“모르겠어요. 자기네들이 발행하지 않았다고 하니 미치겠네요. 우편물로 받았어요. 김경준을 지난 1월 면회했는데 소액투자자들이 이거(위조 문건)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경찰에서 연락이 올지 모른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렇다면 금감원 어느 부서에 전화를 했나요.
“전자공시팀에 연락을 했습니다. 제가 몇 번 통화했어요. 처음에는 못 준다고 했는데, 자기들이 법률적으로 확인해 본다며 2주가 지난 후에 (보냈어요).”
—해당 문건을 김경준이 대법원에 제출했나요.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김경준 측, “법적 대응 하겠다”
이병원 대표의 발언을 보면, 문제의 금감원 문서를 김경준에게 건네준 것은 이 대표인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이 대표에게 “《월간조선》이 김경준 금감원 문서 위조 의혹을 2월 17일 보도할 예정이다”며 “보도가 될 경우 이 대표가 위조 의심을 받을 수 있으니, 금감원을 빠른 시일 내에 찾아가 문서의 진위 여하를 밝히라”고 수차례에 걸쳐 요청했다.
기자는 “최소한 해당 문건을 건네준 금감원 직원의 이름이라도 알려 주면, 직접 금감원을 찾아가 사실 여부를 확인할 것”이라며 이 대표의 적극적인 대처를 강하게 부탁했다. 또 기자는 이 대표가 2월 12일 법원에서 김경준을 만날 예정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김경준에게 금감원 문서 위조 의혹 보도 계획을 알리고 ‘할 말이 있으면 무슨 말이든 해라, 어떤 이야기를 하든 기사에 실릴 것이다’고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2월 12일 전화로 “김경준에게 《월간조선》 취재 내용을 말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며 “향후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답변했다. 이에 기자는 재차 “어떠한 해명이라도 기사에 반영할 예정이니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기사 마감 날까지 이병원 대표의 연락을 기다렸으나, 어떤 답변도 받지 못했다.
의혹 3: 김경준이 위조 문서를 법원에 제출했는가?
김경준, 고소인을 무고(誣告)로 맞고소할 수 있어
이병원 대표의 발언을 통해 문서위조가 김경준에게 전달된 과정은 어느 정도 해명이 됐다.
세 번째 의혹은 정말 김경준이 법원에 위조 금감원 문건을 전달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 부분은 위조 공문서를 자세히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최근 모든 소송은 전자시스템으로 진행되고 있다. 증거자료를 전자문서 형식으로 제출하고, 제출되었던 증거자료는 컴퓨터를 통해 확인 혹은 인쇄가 가능하다. 기자가 입수한 금감원 위조 문건 역시 전자시스템을 통해 발행된 문건이다. 해당 금감원 문건의 최상단을 보면 제출자와 제출일자가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제출자는 ‘김경준’이고, 제출일은 ‘2013년 10월 31일’이다. 따라서 김경준이 해당 문건을 법원에 제출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병원 대표 역시 해당 문건을 법원에 제출한 사 실을 인정했다.
또 만약 김경준이 해당 문건을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면, 김경준을 공문서 위조 등으로 경찰에 고소한 소액피해자는 김경준을 무고(誣告)한 것이 된다. 이럴 경우 김경준은 소액피해자를 무고죄 등으로 고소할 수 있다.
기자는 이병원 대표에게 “해당 문건이 위조 문건이 아니거나,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김경준을 고소한 소액피해자를 무고로 고소하라”고 재촉했으나, 이 대표는 기자의 요구에 대해 이렇다 할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의혹 4: 김경준은 왜 위험을 감수하고 문서를 위조했나?
집단소송 전문가, “김경준 이해할 수 없다”
이제 마지막으로, ‘왜 김경준이 공문서 위조로 처벌될 수 있음에도 위험을 감수하고 법원에 해당 문건을 제출했는가’라는 마지막 네 번째 의문이 남았다. 간단히 ‘재판에 승리하기 위해서 허위 공문서를 만들어서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결론짓기에는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기자는 좀 더 명확한 법리 검토를 위해, 기업 집단소송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전문변호사에게 관련 자문을 했다. 해당 변호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김경준이 법원에 위조 서류를 제출한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요. 공문서 위조는 형이 무거워요. 이런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법원에 위조 문서를 제출할 때에는 무언가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해요. 김경준이 위조 문서를 제출한 소송은 민사소송이에요. 액수도 매우 작아요. 몇 천만 원에 불과한 것이죠. 액수가 작을 뿐만 아니라, 김경준 입장에서는 배 째라고 버티면 그만입니다. 김경준이 국내에 남겨 놓은 재산은 없어요. 결국 미국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재산을 통해 (소액피해자들이 법원이 인정한) 피해액을 가져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몇 천만 원을 위해서 미국에까지 가서 소송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더군다나 집단소송이어서 피해자 개개인이 받을 액수는 몇 백만 원에 불과해요. 김경준 입장에서는 형기를 마치고 그냥 미국에 가 버리면 되는 것이죠. 즉, 가만있어도 되는데, 굳이 공문서 위조 혐의로 수형생활이 늘어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까지 위조 서류를 법원에 제출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김경준이 위험을 무릅쓴 이유
상당히 타당한 지적이었다. 그래서 과연 김경준 측이 옵셔널 소액피해자들과 민사소송에서 승리하기 위해 공문서 위조까지 감수하며 매달린 이유를 입체적으로 추적했다. 그 결과 김경준이 민사소송 승리를 원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됐다.
첫째, 김경준 입장에서 미국 소송이 두려웠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김경준과 옵셔널의 소송을 설명해야 한다. 지난 1월 15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항소법원은 김경준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자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 온 자동차부품회사 ‘다스’에 송금한 140억원은 다스가 아닌, 옵셔널 소유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았다.(자세한 내용은 《월간조선》의 2013년 5월호 ‘MB가 BBK에 발목 잡힌 속사정’ 참조) 거의 10년 넘게 끌어 온 소송으로 김경준과 누나 에리카 김은 소송에 발목 잡혔다. 김경준은 한국 수감 중에도 미국 소송에 매달렸다.
이와 관련, 미국에서 옵셔널을 대신해 소송을 진행 중인 메리 리 변호사는 “옵셔널은 지난 10년 동안 김경준이 미국에 숨겨 놓은 재산을 찾아 김경준이 옵셔널에서 횡령한 돈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 왔다”며 “지난 1월 미국 항소법원 판결은 (김경준이)이미 다스에 보낸 140억원은 옵셔널 것이라는 이야기로 김경준 입장으로서는 큰 손해 없이 재판이 종결된 것이다”고 말했다.
사실 메리 리 변호사의 설명대로 미국 항소법원의 판결은 김경준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는 결정이었다. 쉽게 정리하면, 미국 판결은 김경준이 다스에 건네준 140억원은 다스 것이 아닌 옵셔널 것이므로, 옵셔널이 알아서 다스로부터 140억원을 받아 가라는 의미다. 즉 김경준 입장에서는 추가적으로 돈을 내놓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경준이 다스에 보낸 140억원을 다시 찾아오는 노력은 순전히 옵셔널의 몫이기 때문이다.
메리 리 변호사는 “결국 김경준은 지긋지긋한 10년 소송에서 숨겨 놓은 재산을 지킨 것이다”며 “한국에서 수감생활을 마치고, 미국에 숨겨 놓은 돈으로 편하게 생활하고 싶은 김경준 입장에서 미국에서 새로운 소송이 시작되는 것이 두려울 수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미국 소송이란 무엇인가. 메리 리 변호사의 설명이다.
“현재 한국의 손해배상 소송은 사실 액수가 작아요. 그러나 잇단 승소에 고무된 피해자들이 계속 소송을 시작해 그 수가 늘어나고 있죠. 피해액은 김경준과 옵셔널이 연대해서 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만약 김경준이 돈을 주지 않을 경우 옵셔널이 배상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옵셔널이 미국에서 다시 김경준을 상대로 구상권(求償權)을 행사할 수 있어요. 김경준 입장에서는 지긋지긋한 새로운 소송이 시작되는 것이죠. 그럴 경우 김경준은 숨겨 놓은 돈을 재판이 끝날 때까지 사용할 수 없을 거예요. 김경준 입장에서 가장 끔찍한 시나리오인 것이죠.”
민사소송은 미국 송환의 장애물
둘째, 미국에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조바심 때문에 민사재판에서 승리하고 싶었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이병원 대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검찰에 형집행순서 변경 신청서를 세 번 보냈습니다. 보통 초범인 경우 형의 70%를 마치면 가석방을 해 줘요. 외국인의 경우 2/3정도 살면 추방을 하죠. 추방하는 대신에 5년 동안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죠. 김○○ 검사(BBK 사건 담당 수사검사)로부터 수사를 받을 때 형의 1/3만 살고 그 다음에 벌금을 몸으로 때우면 추방시켜 준다고 했어요. 그렇게 믿고 있어서 (형집행순서 변경)신청을 한 것이죠. 그런데 검찰이 받아 주지 않았죠. 첫째는 벌금을 낼 돈이 국내외에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민사소송이 진행 중인데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첫 번째 사유는 검찰이 이미 수사를 했어요. 검찰이 이미 (김경준이 벌금을 낼 돈이 없다는 사실)확인을 했어요.(그러니 말이 안 된다)”
사실, 한국 검찰이 김경준의 숨겨 놓은 재산을 찾지 못한 것은 맞다. 나아가 현재 찾으려는 이렇다 할 노력도 하고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김경준이 미국으로 추방당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민사소송이다.
이런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이병원 대표의 주장을 정리하면, ‘김경준은 형기 만료 2017년 5월 전에 하루라도 빨리 미국으로 가고 싶은데 민사소송이 발목을 잡아 미국에 돌아갈 수 없어 민사소송 승리를 원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즉, 조기 미국 송환의 최대 걸림돌인 민사소송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하루라도 일찍 미국에 가고 싶다는 것이다.
한편, 이와 관련해 김경준 측은 자신이 피부암 투병 중이라며 조기 출소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사실, 김경준 집안은 가족력(家族歷)으로 암이 있다. 김경준이 이런 이유 때문에 수감생활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이다.
과연 김경준은 반성을 하고 있나?
기자는 2013년 3월 말 충남 천안교도소 면회실에서 김경준을 만났다. 개인적인 느낌으로 오랜 수감생활로 지쳐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김경준이,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말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김경준과 우편물을 통해 남겨진 BBK 의혹을 밝혀 내기 위한 취재를 계속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김경준의 생각을 이해하려 많은 노력을 했다. 또한 복잡하게 얽혀 있는 BBK 사건을 좀 더 분명하게 정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김경준의 저서 《BBK의 배신》이 금융권 종사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고, 또 김경준이 보낸 BBK 관련 서류와 자필 의견서를 분석하면서 그가 금융전문가로서 나름의 식견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이런 이유에서 과거의 잘못에 대해 명백한 사죄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나름의 경제 식견을 글로 써 보라고 김경준에게 권유했다. 그러나 김경준의 공문서 위조 의혹을 취재하면서, 그에게 많은 실망을 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기자는 김경준이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늦었지만 BBK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지금이라도 솔직히 말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지금 반성하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 과거 김경준이 기자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공개한다. 김경준의 생각을 가장 잘 담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김경준의 편지
옵셔널벤처스 사건 등으로 소액피해자들이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하셨는데, 아마 이에 대한 아무런 근거가 없으시고 그냥 통상적인 개념으로 말씀하시는 것일 것입니다. 저를 ‘싸가지 없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저의 다음과 같은 설명을 먼저 고려해 보신 후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저의 혐의는 대략 2가지입니다. ‘횡령’과 ‘증권거래법 위반’인데, 증권거래법 위반이 정확히 무엇인지 법원은 확인하지도 않고, 통상적인 주가를 끌어올린 후 매도하여 이득을 얻는 ‘주가조작’으로 마냥 간주했습니다.
저의 행위로 인하여 피해를 입었다는 ‘소액주주’들이라는 자들은 대략 2가지입니다.
* 하나는 저를 상대로 미국에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자들, 다른 하나는 저를 상대로 한국에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자들.
먼저, 국내 언론들의 완벽한 ‘거짓’ 보도들과 정반대로, 첫 번째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자’는 소액주주가 아니라 옵셔널벤처스(현 명칭 옵셔널캐피털) 법인 자체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현 옵셔널의 주주들은 거의 모두 저의 혐의가 종료된 2002년 7월 후부터 주식을 헐값에 매수한 ‘투기꾼’입니다.
이들은 피해는커녕 저의 모든 행위 후에 주식을 ‘헐값’에 매수하여 엄청난 이득을 본 자들입니다. 미국 소송에서 자신들이 피해를 받은 소액주주라고 대국민 사기를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자신들이 피해자 소액주주라며 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들 모두 제가 가한 행위들로 인한 손해 자체가 없고, 또 그들의 손해와 저의 행위 사이에 인과관계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그들의 청구들은 모두 기각하였습니다.
즉 이들이 피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법정에서 입증된 것입니다. 이들은 변호사들을 영입하였지만 저는 변호사 없이 교도소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형편없는 한국어 변론을 준비한 사실을 감안하면 이들의 청구가 얼마나 이유가 없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저의 형사판결은 ‘횡령’으로 인한 것입니다. 횡령은 회사 법인이 입은 손해이기에 소액주주들의 손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흔히 언론에서 저의 주가조작으로 소액주주들이 손해를 입었다면서 사실관계를 검토하지 않고 마냥 제가 외국인 투자 허위공시로 주가를 끌어올린 후 주식을 매도하는 하찮은 수법을 이용해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저의 형사판결 선고에서 ‘주가조작’으로 인한 손해를 전혀 특정하지 못한 것은 그런 사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식가격을 끌어올린 적이 없고 더 중요하게 주가조작으로 이득을 본 사실 자체가 없습니다. 사실 검찰에 의하면 저는 손해를 입었습니다. 외국인 투자 공시를 인용하여 주가를 끌어올렸다고 하지만 제가 분석한 민사소송 법정에 제출한 자료들에서 입증된 것과 같이 주가상승 자체가 없었습니다.
더 이어 언론들은 제가 횡령한 금액을 미국으로 빼돌렸다고 마냥 보도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상대로 수차례 사죄를 했습니다. 하지만, 위의 첫째, 둘째에 해당하는 자들은 피해자들이 아니라서 저에게 사죄를 요구하는 사실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사실 자체를 먼저 충분히 고려하신 후 판단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한국계 미국인 김경준(미국명 크리스토퍼 김·Christoper Kim)은 주가조작으로 피해를 입은 소액주주들이 자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재판에서 금융감독원의 공(公)문서를 위조해서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에 제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7년 넘게 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경준이 금감원의 서류를 위조(僞造)해, 한국 최고법원을 속이려 한 대담한 범죄에 법률 전문가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공문서 위조는 법으로 10년 이하의 징역(형법225조)에 처할 수 있는 중한 범죄이다.
2007년 11월 16일 지난 17대 대선을 불과 32일 남겨 놓고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김경준은 한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여당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명박(李明博)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김경준의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소위 ‘BBK 의혹’에 목을 매고 있었다. BBK 의혹을 수사했던 검찰과 특검(特檢·특별검사)은 주가조작이 김경준의 단독범행이라고 결론지었다. 사법부의 판단 역시 같았다. 2009년 5월 28일 대법원은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등의 혐의로 징역 8년 및 벌금 100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 판결했다.
김경준은 2017년 5월 만료 예정으로 충남 천안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확정판결보다 형량이 1년5개월 늘어난 것은 벌금을 납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경준은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벌금 100억원 납부를 거부하고 17개월 수형(受刑)생활 연장을 선택했다.
이렇게 사법부 판단이 끝나면서 마무리된 것 같았던 옵셔널 주가조작 사건이 김경준의 공문서 위조 의혹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의혹은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김경준이 정말로 공문서를 위조한 것이 맞는가’라는 의문이다. 둘째, 공문서를 위조했다면, ‘어떻게 감옥에 있는 김경준이 금감원 서류를 위조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다. 당연히 교도소에는 컴퓨터가 없다. 조작을 위해서는 외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셋째, ‘과연 김경준이 위조 공문서를 법원에 제출했는가’라는 의문이 있다. 넷째, ‘왜 김경준이 공문서 위조로 처벌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법원에 해당 문건을 제출했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기자는 네 가지 의문을 차례로 파헤쳤다.
취재를 위해 김경준의 공문서 위조 혐의와 관련한 위조 문서, 판결문, 고소장 등 관련 서류 모두를 입수해 해당 분야 전문 변호사에게 자문을 했다. 또 사건 관련자의 증언을 통해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2007년 11월 5일 통합신당은 ‘이명박 후보와 김경준이 공모해 옵셔널벤처스의 주가를 조작했다’는 고발장을 대검찰청에 접수시켰다. 즉, 사건의 핵심은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이었다. 사건의 공식 명칭 역시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등 사건’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옵셔널벤처스’는 낯설다. 오히려 BBK가 익숙한 단어이다. 사건이 BBK 사건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주가조작 사건을 연결시키려는 정치권의 네거티브(negative) 전략 때문이었다. 사건 당시 통합신당은 “BBK투자자문은 이명박 후보의 소유이며 BBK가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사건이 ‘옵셔널사건’이라고 불리지 않고 ‘BBK 사건’으로 불리게 된 것은 사건 자체가 MB를 조준(照準)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BBK 사건의 핵심은 ‘BBK투자자문 실소유주’ 규명이었다. 2007년 12월 5일 검찰은 수사발표에서 “BBK는 김경준 소유”라고 결론지었다. 《월간조선》은 2013년 5월호에서 관련 의혹을 보도했다. 검찰과 특검은 김경준을 옵셔널벤처스(이하 옵셔널)의 자금횡령, 주식의 시세조종, 주식소유상황 및 변동상황 미신고, 분기보고서 허위기재, 최대주주 변동사실 미신고 등의 혐의로 기소(起訴·재판청구)했다. 2008년 4월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2007고합1408)은 김경준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횡령),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증권거래법위반죄로 징역 10년 및 벌금 150억원을 선고했다. 2009년 2월 5일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2008노1143, 2008노1759 병합)은 징역 7년에 벌금 100억원을 선고했다. 결국 2009년 5월 28일 대법원(2009도1446)에서 기타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를 포함한 징역 8년, 벌금 100억원으로 재판은 마무리됐다. 이해를 돕기 위해 판결 내용을 쉽게 설명하면, 2000년대 초반 정보통신기술(IT) 거품 현상으로 첨단 업종에 진출하는 벤처기업에 ‘묻지 마 투자’가 유행하던 사회 분위기를 이용해 거짓으로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에 옵셔널이 진출한다고 투자자들을 속여서 돈을 마련한 후에 자신의 소유였던 BBK의 빚을 갚았다는 내용이다. 당시 법원 판결에서, 김경준의 주요 범죄사실은 아래와 같다. 1. 횡령 김경준은 자신이 운영하던 ‘BBK투자자문’의 투자자들에 대한 투자금을 반환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할 생각으로, 2001년 5월 22일 제3자 배정방식의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등 2001년 10월 5일까지 총4회에 걸쳐 359억원 상당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그 다음 2001년 7월 30일부터 10월 26일까지 약21회에 걸쳐 옵셔널을 위해 업무상 보관하고 있던 증자금 319억원을 BBK투자자문의 투자자들에 대한 투자금 반환 등의 용도로 임의 사용했다. 2. 허위공시 관련(증권거래법 위반) 자신이 취득한 주식을 높은 가격에 매각하기 위해 2001년 5월 8일 옵셔널의 기명식 보통주 60만주를 액면가 5000원으로 하여 30억원 상당의 운영자금을 조달한다는 명목으로 유상증자 결의공시를 하면서,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정보통신, 생명공학, 인터넷 등 업종의 주식에 투자할 계획이 없으면서도 2001년 9월 18일까지 4회에 걸쳐 마치 정상적으로 설립된 해외 법인이 옵셔널의 미래수익 가치를 기대하고 유상증자에 참여하여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처럼 오인케 했다. 2001년 사업연도 분기보고서를 작성해 금융감독위원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은 메드페턴트 테크놀로지 등 8개 회사의 주식에 투자한 사실이 없음에도 분기보고서에 179억원을 투자했다고 허위 기재했다. 2000년 12월 12일부터 2001년 12월 10일까지 가장매매 거래, 통정매매, 고가매도 주문, 허위매수 주문, 고가 허위매도 주문, 주식소유 상환 변동내용 미보고 등 증권거래법을 위반했다. |
김경준, 변호사 도움 없이 혼자 재판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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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준이 법원에 제출한 금감원 위조 문서. |
해당 고소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김경준 관련 재판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김경준 관련 재판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크게 두 부류인데, 첫째 옵셔널 소액피해자들이 김경준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민사소송들이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소액주주들이 그룹별로 뭉쳐서 4건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둘째는 김경준이 자신의 정당한 교도소 접견권이 침해받았다며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이 있다.
놀라운 것은 김경준이 일련의 재판을 변호사 도움 없이 혼자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손해배상 소송의 경우 대법원에서 승리하거나, 소액 피해자들의 피해보상 요구액을 30%까지 깎아 내는 등 적극적으로 소송에 대응하고 있다. 서면답변서를 50장 넘게 손으로 적어서 제출해, 재판부가 “어떻게 이 많은 수기(手記) 서류를 읽을 수 있느냐”며 하소연하도록 만드는 등 소송에 매우 적극적이다.
허위공문서 제출 의혹은 김경준과 소액피해자들 사이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불거졌다. 이와 관련한 고소장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경준은 자기의 재산을 불리려고 여러 건의 허위공시를 하였고, 이후 자신이 저지른 허위공시 등등의 불법이 드러날까 봐 회사의 회계장부를 멸실한 자이다. 그 후 김경준은 자신의 불법을 숨기기 위해 회사의 회계장부를 멸실하는 등 추가 범죄를 저질러 회사의 주식이 거래 정지되고 이어서 회사가 아예 증권시장에서 상장폐지가 되어서 소중히 모은 회사의 주식 재산이 휴지 값이 되게 만들었다.
김경준은 위의 불법 내용으로 주주들에게 직접 손해를 입혀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여러 건 제기되었다. 손해배상 청구를 당해 손해배상을 해 주어야 할 위기에 몰린 김경준은 소송 제기자들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허위공문서를 작성해, 관련 재판부(대법원,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했다.
허위공문서를 작성하고, 허위문서를 관련 재판부에 제출해 재판부를 적극적으로 속이려는 소송사기 범죄를 범했다고 생각된다.
김경준의 범죄행위에 대해 엄중하게 처벌해 주기를 바란다.
소액피해자 손배소송에서 대체로 승소
고소장에서 언급된 손해배상 소송은 2012년에 옵셔널 소액투자자들이 과거 2002년 옵셔널에 투자할 당시 회사가 제대로 공시를 하지 않아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며, 김경준과 옵셔널 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사소송이다. 소송에서 사기사건이 발생한 당시 시작됐던 통합전자공시(DART)를 통한 공시의무 발생 시점이 주요 쟁점이 됐다.
옵셔널의 공시의무 위반에 의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은 대체로 소액피해자들의 손을 들어 주고 있다. 다만 소송이 2012년 시작됐고, 대법원까지 가야 확정이 되는 관계로 아직까지 지루한 법정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 일부 소액피해자는 “김경준의 문서위조 사실을 확인해 재판부에 해당 사실을 알려서 손해배상이 가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혹 1: 김경준이 공문서를 위조한 것이 맞는가?
금감원과 김경준의 진실게임
고소장에서 언급한 금감원 공문서는 통합전자공시 시스템 개시(開始) 시기를 설명하고 있다. 내용은 통합전자공시 시스템이 언제부터 서비스를 개시했으며, 통합 공시자료 조회가 가능했던 시기를 설명하고 있다. 해당 사항은 옵셔널의 공시의무 발생 시점(始點)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금융감독원 민원회신자료
2013년 7월 15일(월)
작성부서 : 금융감독원 기업공시제도실 전자공시팀
책임자 : 조○○ 실장(3145-○○○○)
담당자 : 조○○ 팀장(3145-○○○○)
작성일 : 2013년 7월 15일(월)
배포부서 : 공시실(○○○○) 총1매
제목 : 금융감독원, 상장기업 전자공시(DART) 서비스 시행일
1. 개요
■ 금융감독원은 「통합전자공시(DART)」 시스템을 구축하여 ’02. 7. 1(월)부터 서비스를 개시.
＊ 그동안 비상장 법인의 공시만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DART)으로 조회되어 유가증권 상장법인(코스피, 코스닥) 공시문서를 조회하기에는 불편함이 있었으나,
＊ 금번 서비스 개시로 전자공시(DART)를 통해 상장회사와 비상장회사를 공시문서로 확인할 수 있는 통합전자공시(DART) 시대를 열게 되었음.
2. 내용
■ ’02. 7. 1(월) 이전에는 비상장회사의 공시만 담당했던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DART)에서, ’02. 7. 1(월) 이후로는 유가증권 상장법인의 분기보고서를 인터넷을 통해 전자공시(DART)를 통해 조회 가능하게 되었고, 이는 비상장회사와 함께 상장법인(코스피, 코스닥)의 자료가 공시되어 통합공시자료의 조회가 가능하였음. 끝.
해당 문서는 여러 면에서 이상하다. 우선, 문서의 형식이 마치 금감원을 홍보하기 위한 보도자료처럼 느껴진다. 둘째, 문서의 내용을 보면 “금번 서비스 개시로~” 등 마치 2002년 7월 즈음해서 문서를 작성한 것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마지막으로, 금감원 등 공공기관은 민원인의 질의응답에 대해 통합된 시스템(전자답변 시스템)을 통해 답변을 하지, 해당 사례처럼 공문 형식으로 보내지 않는다.
금감원, “위조 문서다”
우선, 문서의 위조 여부를 분명히 하기 위해, 2월 초 금융감독원 기업공시제도실 전자공시팀 유길상 수석조사역과 전화 통화했다. 유 수석은 “금융감독원에서는 이런 형식의 자료를 보낸 사실이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자는 유 수석에게 이메일로 해당 문건을 스캔해 보낸 후, 정확한 감정을 수차례에 걸쳐 요구했다.
—해당 문건을 민원인에게 발송한 사실이 있는가요.
“금융감독원은 이런 형식의 민원회신 자료를 보내드린 사실이 없습니다.”
—해당 문서는 위조된 것인가요.
“네.”
—문서의 어떤 부분이 위조되어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금감원은 해당 문건을 생산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문서의 내용은 사실에 부합하나요.
“금감원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시면 전자공시시스템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전자공시시스템의 연혁이 나와 있어요. 문건의 내용은 옳지 않습니다. 전자공시시스템은 2001년 1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민원회신자료가 아니라 보도자료 형식입니다. 민원인의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민원회신의 형식이 아니라는 의미로 답변)”
금감원 녹취록, “도용(盜用)했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은 2013년 11월 5일 옵셔널 소액피해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해당 문서가 위조되었다고 확인했다. 기자가 입수한 당시 녹취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옵셔널 피해자(이하 피해자) : (해당 문서에) 문서번호가 없는 것이 이상해서 전화했습니다.
금감원 직원 : 이것은 보도자료 양식입니다. 보도자료 포맷을 그대로 땄는데요.
피해자 : 회신일자가 2013년 7월 15일로 되어 있는데요.
금감원 : 저희 쪽에서 업무를 제가 그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문서를 생산한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금감원에서는 민원회신을 이런 포맷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피해자 : 그러니까 2001년 1월 1일부터라는 얘기잖아요. 그지요?
금감원 : 저희가 2013년 8월 12일자로 서울고등법원에서 사실조회 의뢰가 왔습니다. 8월 12일자로 조회서에 대한 회신을 했습니다. 그 회신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금융감독원은 2001년 1월부터 다트를 통해 분기보고서를 접수 및 공시를 하고 있다’라는 내용입니다.
피해자 : 해당 문건의 출력자(법원 제출자)가 김경준으로 되어 있습니다. 법원 문서입니다.
금감원 : 법원에서도 이런 것을 도장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을 이것을 증거자료로 한다는 게 조금 이해는 안 되는데요.
피해자 : 조○○ 팀장, 조○○ 실장 명의로 발급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금감원 : 조○○ 팀장, 조○○ 실장이 저희 부서 책임자라는 것을 누구든지 알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을 조금 도용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상과 같은 금감원의 답변과 상식적인 판단으로 볼 때 해당 문건이 위조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우선 금감원이 자신들이 만든 문건을 만들지 않았다고 거짓으로 주장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고, 나아가 해당 문건의 내용 역시 사실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건의 형식과 작성 방식 또한 공공기관의 속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의심을 가지기 충분할 정도로 엉성하기 때문이다.
의혹 2: 누가 어떻게 위조했나?
의혹의 핵심 이병원 대표의 주장
김경준의 소송을 돕고, 그의 생각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이가 있다. 이병원씨는 2012년 10월 김경준이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기 위해 글을 쓴 《BBK의 배신》을 출간하기 위해 비비케이북스라는 출판사를 차렸다. 비비케이북스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이씨는 김경준을 주기적으로 면회하고, 주요 재판에 참석하는 등 실질적으로 김경준의 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2월 11일 기자는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 2층 커피숍에서 이병원 대표를 만나 관련 의혹을 물었다.
우선 논란이 되고 있는 금감원 문서가 어떻게 김경준에게 전달될 수 있었는지 물었다. 이 대표는 “금감원으로부터 편지로 해당 문건을 받았다”며 위조를 부인했다. 다음은 그와의 대화내용이다.
—(문제의 위조 문건을 보여주며)금감원에서는 해당 문건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황당하네요. 내가 받아서 (김경준에게)보낸 것입니다.”
—금감원에서는 해당 문건을 발행하지 않았다고 수차례에 걸쳐 밝혔어요.
“그러면 이것을 누가 만들었나요. 제가 거기(금감원)에 요청을 해서, 전화를 해서 받은 것이거든요. 저는 위조가 아니라 (금감원에서)받은 대로 (김경준에게)준 것이에요.”
—금감원에 문의하니, 서류의 내용도 틀리다고 답변했어요.
“미치겠네요. (금감원과)통화를 몇 번 했어요. 무슨 대리인가 하는 사람과 통화했어요. 처음에는 자기들 홈페이지에 나와 있으니 (홈페이지로 확인하라고)하다가 법적인 문제를 확인하고 (금감원이 보냈어요).”
—금감원 누구와 통화했나요.
“모르겠어요. 자기네들이 발행하지 않았다고 하니 미치겠네요. 우편물로 받았어요. 김경준을 지난 1월 면회했는데 소액투자자들이 이거(위조 문건)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경찰에서 연락이 올지 모른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렇다면 금감원 어느 부서에 전화를 했나요.
“전자공시팀에 연락을 했습니다. 제가 몇 번 통화했어요. 처음에는 못 준다고 했는데, 자기들이 법률적으로 확인해 본다며 2주가 지난 후에 (보냈어요).”
—해당 문건을 김경준이 대법원에 제출했나요.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김경준 측, “법적 대응 하겠다”
이병원 대표의 발언을 보면, 문제의 금감원 문서를 김경준에게 건네준 것은 이 대표인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이 대표에게 “《월간조선》이 김경준 금감원 문서 위조 의혹을 2월 17일 보도할 예정이다”며 “보도가 될 경우 이 대표가 위조 의심을 받을 수 있으니, 금감원을 빠른 시일 내에 찾아가 문서의 진위 여하를 밝히라”고 수차례에 걸쳐 요청했다.
기자는 “최소한 해당 문건을 건네준 금감원 직원의 이름이라도 알려 주면, 직접 금감원을 찾아가 사실 여부를 확인할 것”이라며 이 대표의 적극적인 대처를 강하게 부탁했다. 또 기자는 이 대표가 2월 12일 법원에서 김경준을 만날 예정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김경준에게 금감원 문서 위조 의혹 보도 계획을 알리고 ‘할 말이 있으면 무슨 말이든 해라, 어떤 이야기를 하든 기사에 실릴 것이다’고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2월 12일 전화로 “김경준에게 《월간조선》 취재 내용을 말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며 “향후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답변했다. 이에 기자는 재차 “어떠한 해명이라도 기사에 반영할 예정이니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기사 마감 날까지 이병원 대표의 연락을 기다렸으나, 어떤 답변도 받지 못했다.
의혹 3: 김경준이 위조 문서를 법원에 제출했는가?
김경준, 고소인을 무고(誣告)로 맞고소할 수 있어
이병원 대표의 발언을 통해 문서위조가 김경준에게 전달된 과정은 어느 정도 해명이 됐다.
세 번째 의혹은 정말 김경준이 법원에 위조 금감원 문건을 전달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 부분은 위조 공문서를 자세히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최근 모든 소송은 전자시스템으로 진행되고 있다. 증거자료를 전자문서 형식으로 제출하고, 제출되었던 증거자료는 컴퓨터를 통해 확인 혹은 인쇄가 가능하다. 기자가 입수한 금감원 위조 문건 역시 전자시스템을 통해 발행된 문건이다. 해당 금감원 문건의 최상단을 보면 제출자와 제출일자가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제출자는 ‘김경준’이고, 제출일은 ‘2013년 10월 31일’이다. 따라서 김경준이 해당 문건을 법원에 제출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병원 대표 역시 해당 문건을 법원에 제출한 사 실을 인정했다.
또 만약 김경준이 해당 문건을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면, 김경준을 공문서 위조 등으로 경찰에 고소한 소액피해자는 김경준을 무고(誣告)한 것이 된다. 이럴 경우 김경준은 소액피해자를 무고죄 등으로 고소할 수 있다.
기자는 이병원 대표에게 “해당 문건이 위조 문건이 아니거나,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김경준을 고소한 소액피해자를 무고로 고소하라”고 재촉했으나, 이 대표는 기자의 요구에 대해 이렇다 할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의혹 4: 김경준은 왜 위험을 감수하고 문서를 위조했나?
집단소송 전문가, “김경준 이해할 수 없다”
이제 마지막으로, ‘왜 김경준이 공문서 위조로 처벌될 수 있음에도 위험을 감수하고 법원에 해당 문건을 제출했는가’라는 마지막 네 번째 의문이 남았다. 간단히 ‘재판에 승리하기 위해서 허위 공문서를 만들어서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결론짓기에는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기자는 좀 더 명확한 법리 검토를 위해, 기업 집단소송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전문변호사에게 관련 자문을 했다. 해당 변호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김경준이 법원에 위조 서류를 제출한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요. 공문서 위조는 형이 무거워요. 이런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법원에 위조 문서를 제출할 때에는 무언가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해요. 김경준이 위조 문서를 제출한 소송은 민사소송이에요. 액수도 매우 작아요. 몇 천만 원에 불과한 것이죠. 액수가 작을 뿐만 아니라, 김경준 입장에서는 배 째라고 버티면 그만입니다. 김경준이 국내에 남겨 놓은 재산은 없어요. 결국 미국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재산을 통해 (소액피해자들이 법원이 인정한) 피해액을 가져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몇 천만 원을 위해서 미국에까지 가서 소송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더군다나 집단소송이어서 피해자 개개인이 받을 액수는 몇 백만 원에 불과해요. 김경준 입장에서는 형기를 마치고 그냥 미국에 가 버리면 되는 것이죠. 즉, 가만있어도 되는데, 굳이 공문서 위조 혐의로 수형생활이 늘어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까지 위조 서류를 법원에 제출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김경준이 위험을 무릅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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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1월 16일 김경준이 검찰 수사관들과 함께 서울 서초동의 서울중앙지검을 들어가던 중 기자들을 향해 영문을 알 수 없는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
첫째, 김경준 입장에서 미국 소송이 두려웠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김경준과 옵셔널의 소송을 설명해야 한다. 지난 1월 15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항소법원은 김경준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자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 온 자동차부품회사 ‘다스’에 송금한 140억원은 다스가 아닌, 옵셔널 소유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았다.(자세한 내용은 《월간조선》의 2013년 5월호 ‘MB가 BBK에 발목 잡힌 속사정’ 참조) 거의 10년 넘게 끌어 온 소송으로 김경준과 누나 에리카 김은 소송에 발목 잡혔다. 김경준은 한국 수감 중에도 미국 소송에 매달렸다.
이와 관련, 미국에서 옵셔널을 대신해 소송을 진행 중인 메리 리 변호사는 “옵셔널은 지난 10년 동안 김경준이 미국에 숨겨 놓은 재산을 찾아 김경준이 옵셔널에서 횡령한 돈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 왔다”며 “지난 1월 미국 항소법원 판결은 (김경준이)이미 다스에 보낸 140억원은 옵셔널 것이라는 이야기로 김경준 입장으로서는 큰 손해 없이 재판이 종결된 것이다”고 말했다.
사실 메리 리 변호사의 설명대로 미국 항소법원의 판결은 김경준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는 결정이었다. 쉽게 정리하면, 미국 판결은 김경준이 다스에 건네준 140억원은 다스 것이 아닌 옵셔널 것이므로, 옵셔널이 알아서 다스로부터 140억원을 받아 가라는 의미다. 즉 김경준 입장에서는 추가적으로 돈을 내놓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경준이 다스에 보낸 140억원을 다시 찾아오는 노력은 순전히 옵셔널의 몫이기 때문이다.
메리 리 변호사는 “결국 김경준은 지긋지긋한 10년 소송에서 숨겨 놓은 재산을 지킨 것이다”며 “한국에서 수감생활을 마치고, 미국에 숨겨 놓은 돈으로 편하게 생활하고 싶은 김경준 입장에서 미국에서 새로운 소송이 시작되는 것이 두려울 수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미국 소송이란 무엇인가. 메리 리 변호사의 설명이다.
“현재 한국의 손해배상 소송은 사실 액수가 작아요. 그러나 잇단 승소에 고무된 피해자들이 계속 소송을 시작해 그 수가 늘어나고 있죠. 피해액은 김경준과 옵셔널이 연대해서 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만약 김경준이 돈을 주지 않을 경우 옵셔널이 배상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옵셔널이 미국에서 다시 김경준을 상대로 구상권(求償權)을 행사할 수 있어요. 김경준 입장에서는 지긋지긋한 새로운 소송이 시작되는 것이죠. 그럴 경우 김경준은 숨겨 놓은 돈을 재판이 끝날 때까지 사용할 수 없을 거예요. 김경준 입장에서 가장 끔찍한 시나리오인 것이죠.”
민사소송은 미국 송환의 장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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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월 22일 김경준이 특검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역삼동 ‘이명박 특검’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
이와 관련해 이병원 대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검찰에 형집행순서 변경 신청서를 세 번 보냈습니다. 보통 초범인 경우 형의 70%를 마치면 가석방을 해 줘요. 외국인의 경우 2/3정도 살면 추방을 하죠. 추방하는 대신에 5년 동안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죠. 김○○ 검사(BBK 사건 담당 수사검사)로부터 수사를 받을 때 형의 1/3만 살고 그 다음에 벌금을 몸으로 때우면 추방시켜 준다고 했어요. 그렇게 믿고 있어서 (형집행순서 변경)신청을 한 것이죠. 그런데 검찰이 받아 주지 않았죠. 첫째는 벌금을 낼 돈이 국내외에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민사소송이 진행 중인데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첫 번째 사유는 검찰이 이미 수사를 했어요. 검찰이 이미 (김경준이 벌금을 낼 돈이 없다는 사실)확인을 했어요.(그러니 말이 안 된다)”
사실, 한국 검찰이 김경준의 숨겨 놓은 재산을 찾지 못한 것은 맞다. 나아가 현재 찾으려는 이렇다 할 노력도 하고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김경준이 미국으로 추방당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민사소송이다.
이런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이병원 대표의 주장을 정리하면, ‘김경준은 형기 만료 2017년 5월 전에 하루라도 빨리 미국으로 가고 싶은데 민사소송이 발목을 잡아 미국에 돌아갈 수 없어 민사소송 승리를 원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즉, 조기 미국 송환의 최대 걸림돌인 민사소송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하루라도 일찍 미국에 가고 싶다는 것이다.
한편, 이와 관련해 김경준 측은 자신이 피부암 투병 중이라며 조기 출소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사실, 김경준 집안은 가족력(家族歷)으로 암이 있다. 김경준이 이런 이유 때문에 수감생활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이다.
과연 김경준은 반성을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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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준이 2012년 10월에 출간한 《BBK의 배신》. 미국 유학 준비생을 대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
그 후 김경준과 우편물을 통해 남겨진 BBK 의혹을 밝혀 내기 위한 취재를 계속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김경준의 생각을 이해하려 많은 노력을 했다. 또한 복잡하게 얽혀 있는 BBK 사건을 좀 더 분명하게 정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김경준의 저서 《BBK의 배신》이 금융권 종사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고, 또 김경준이 보낸 BBK 관련 서류와 자필 의견서를 분석하면서 그가 금융전문가로서 나름의 식견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이런 이유에서 과거의 잘못에 대해 명백한 사죄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나름의 경제 식견을 글로 써 보라고 김경준에게 권유했다. 그러나 김경준의 공문서 위조 의혹을 취재하면서, 그에게 많은 실망을 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기자는 김경준이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늦었지만 BBK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지금이라도 솔직히 말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지금 반성하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 과거 김경준이 기자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공개한다. 김경준의 생각을 가장 잘 담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 [편집자 주] 기자는 2013년 3월 취재 당시 김경준에게 ‘옵셔널벤처스 사건 등으로 소액피해자들이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 피해자들에게 사죄할 생각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우편으로 보냈다. 김경준은 기자에게 다음의 편지를 보냈다. 다음은 주요 내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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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행위로 인하여 피해를 입었다는 ‘소액주주’들이라는 자들은 대략 2가지입니다.
* 하나는 저를 상대로 미국에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자들, 다른 하나는 저를 상대로 한국에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자들.
먼저, 국내 언론들의 완벽한 ‘거짓’ 보도들과 정반대로, 첫 번째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자’는 소액주주가 아니라 옵셔널벤처스(현 명칭 옵셔널캐피털) 법인 자체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현 옵셔널의 주주들은 거의 모두 저의 혐의가 종료된 2002년 7월 후부터 주식을 헐값에 매수한 ‘투기꾼’입니다.
이들은 피해는커녕 저의 모든 행위 후에 주식을 ‘헐값’에 매수하여 엄청난 이득을 본 자들입니다. 미국 소송에서 자신들이 피해를 받은 소액주주라고 대국민 사기를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자신들이 피해자 소액주주라며 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들 모두 제가 가한 행위들로 인한 손해 자체가 없고, 또 그들의 손해와 저의 행위 사이에 인과관계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그들의 청구들은 모두 기각하였습니다.
즉 이들이 피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법정에서 입증된 것입니다. 이들은 변호사들을 영입하였지만 저는 변호사 없이 교도소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형편없는 한국어 변론을 준비한 사실을 감안하면 이들의 청구가 얼마나 이유가 없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저의 형사판결은 ‘횡령’으로 인한 것입니다. 횡령은 회사 법인이 입은 손해이기에 소액주주들의 손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흔히 언론에서 저의 주가조작으로 소액주주들이 손해를 입었다면서 사실관계를 검토하지 않고 마냥 제가 외국인 투자 허위공시로 주가를 끌어올린 후 주식을 매도하는 하찮은 수법을 이용해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저의 형사판결 선고에서 ‘주가조작’으로 인한 손해를 전혀 특정하지 못한 것은 그런 사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식가격을 끌어올린 적이 없고 더 중요하게 주가조작으로 이득을 본 사실 자체가 없습니다. 사실 검찰에 의하면 저는 손해를 입었습니다. 외국인 투자 공시를 인용하여 주가를 끌어올렸다고 하지만 제가 분석한 민사소송 법정에 제출한 자료들에서 입증된 것과 같이 주가상승 자체가 없었습니다.
더 이어 언론들은 제가 횡령한 금액을 미국으로 빼돌렸다고 마냥 보도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상대로 수차례 사죄를 했습니다. 하지만, 위의 첫째, 둘째에 해당하는 자들은 피해자들이 아니라서 저에게 사죄를 요구하는 사실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사실 자체를 먼저 충분히 고려하신 후 판단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