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민도 단숨에 졸부 되는 인생역전 드라마의 시절
⊙ 부동산 투기의 하이라이트는 정부기밀 유출
⊙ 군무원이 군사기밀 이용한 부동산 투기의 진원지로 확인
⊙ 군 신뢰 손상 이유로 군당국 격렬한 불만 표출
⊙ 실세 장군, “새파랗게 젊은 총장(김기춘)이 겁이 없다”고 공개 발언
⊙ 부동산 투기의 하이라이트는 정부기밀 유출
⊙ 군무원이 군사기밀 이용한 부동산 투기의 진원지로 확인
⊙ 군 신뢰 손상 이유로 군당국 격렬한 불만 표출
⊙ 실세 장군, “새파랗게 젊은 총장(김기춘)이 겁이 없다”고 공개 발언
- 1970~80년대 아파트 건설 붐은 망국적 부동산 투기를 야기했다.
박정희 시대를 거쳐 배고픔이 해결되자 사람들은 이내 ‘집과 땅’으로 눈을 돌렸다. ‘내 집’이 거의 없던 시절, 1970년대가 ‘내 집 마련’의 꿈이 싹트기 시작한 때라면 80년대는 그 꿈이 실현되기 시작한 때였다. 집과 땅에 대한 국민의 염원은 전두환-노태우 시대의 국가 운영전략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주택 건설, 특히 아파트 건설 열풍이 불었다. 대선 공약으로 200만 호 주택 건설이 제시되면서 부동산 열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분당·일산 신도시 건설계획도 이 시기의 발상이다. 복부인이니 부동산 망국론이니 하는 말들이 일상화된 것도 이 시절이다.
그러면서 부동산은 ‘내 집 마련’ 수준을 넘어 부(富)를 일구고 인생을 역전시키는 ‘한 탕 도박’으로 변질돼 갔다. 땀 흘려 버는 돈의 몇백 배, 몇천 배를 일순간에 거머쥐려는 욕심과 환상에 매료된 사람들은 아파트로, 땅으로 내달렸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투기 아닌 투자”라면서….
예나 지금이나 부동산-주식-펀드 등 재테크나 머니 게임(Money Game)에 뛰어드는 사람치고 그것을 사행성 혹은 범죄성 투기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남들도 다 하는’ 합법적이고 정당한 투자라고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투자(Invest)와 투기(Speculation)는 구별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1980년대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는 분명히 투자 수준을 훨씬 넘어 투기 열풍으로 번지고 있었다. 돈과 사람이 몰리는 곳에는 반드시 범죄가 있다. 부동산 시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온 나라에서 부동산 투기 사태가 벌어지면서 한편으로는 떼돈을 번 자들, 또 한편으로는 피해자들이 속출했다. 어딜 가나 사람들 사이에는 부동산 범죄와 비리에 대한 온갖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 상황이니 나라에서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으리라. 정부는 정부대로 갖가지 투기 방지, 단속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심했다. 검찰도 이 문제를 비켜갈 수 없었다. 대검찰청에 부동산 투기 합동단속본부가 설치되는 등 공식적, 전면적으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 나섰다. 대검에서 어떤 수사 방침이 서면, 당장 그 손발 격인 서울지검 특별수사부가 바빠진다. 자연스럽게 서울지검 특수1부장이던 내게 부동산 수사는 큰 숙제로 떨어졌다.
1970년대 400억대 투기 수사를 40억대로 줄여 발표
사실 나는 부동산 투기에 대한 검찰의 그러한 공식 대응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천착(穿鑿)하고 있었다. 내게 부동산 수사는 낯선 일이 아니었다. 앞서 1970년대 영등포지청 검사 시절, 강남을 무대로 벌어졌던 수백억 원대 땅 투기 사건을 수사했던 까닭이다.
일제 때 일본인들의 땅, 혹은 한국전쟁 때 주인 잃은 땅의 관련 서류들을 위조해 자기들 것으로 만들어 가진 부동산 투기꾼들을 대거 잡아들인 것이었다. 당시 투기꾼 6개 파를 소탕했는데 그들이 서류 위조 작업으로 집어삼킨 땅의 총 가액이 400억원대에 달했다. 그때로서는 농담으로도 이야기하기 힘들 만큼의 엄청난 액수였다. 그 수사결과를 곧이곧대로 세상에 꺼내놓으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라 하여 나는 결국 그것을 40억원대 사건으로 축소(?) 발표했었다. 이런 인연으로 진작부터 부동산 문제에 관심을 가져오던 터였다.
부동산 투기 은어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기획사 : 부동산 투기를 목적으로 투기꾼들이 반짝 차린 유령회사〉 〈바지 : 부동산 투기 회사에서 실제 경영주가 아닌, 가짜로 내세운 명목 사장. 무슨 문제가 생기면 이 바지 사장들이 죄다 뒤집어쓰게 마련이다〉 〈일꾼 : 이익이 날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해 부동산 투기에 끌어들이는 바람잡이〉 〈호구 : 뭣 모르고 부동산 투기에 달려드는 순진한 피해자들〉 〈접시 돌리다 : 사기작업에 들어가다〉.
이미 1970년대부터 접해온 터라 부동산 시장에서의 보편화된 말들도 내게는 익숙했다. 과거의 경험을 되새기며 나는 우선 여러 달에 걸쳐 항간에 돌아다니는 부동산 투기에 대한 소문들의 내막과 이면을 캐면서 관련 자료와 정보를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우리 부 소속의 조승식, 안대희 검사와 함께 부동산 투기, 투기꾼들과의 한판 승부를 준비한 것이다.
공공연한 투기꾼, 검사에겐 물 반 고기 반
이윽고 1989년 봄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동안 축적한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곧바로 대대적인 검거를 시작한 것이었다. 수개월에 걸친 치열한 준비를 통해 다양한 투기 행태와 해당 투기꾼들에 대한 사전 수사가 이미 상당히 진행된 덕분이었다.
가장 먼저 잡아들인 대상은 직업적인 투기꾼들이었다. 부동산 거래가 이뤄지는 현지에서는 흔히 ‘떴다방’으로 불리는 무허가 복덕방 업자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레저, -개발, -기획, -유통 등 버젓이 위장 간판을 내건 회사를 차려놓고 전국을 무대로 투기를 일삼았다. 전문 투기꾼인 사장 밑에 적게는 10여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에 이르는 ‘일꾼’을 거느린 투기 조직이었다. 투기 행태도 다양했다.
△개발 예정지에 자기 회사의 일꾼들을 미리 이주시켜 헐값에 땅이나 주택을 매입한 뒤 이를 복부인 등에게 팔아넘겨 폭리를 취하거나 △개발 계획이 전혀 없는 지역이 개발될 것이란 헛소문이나 유언비어를 퍼뜨려 투기를 유인한 뒤, 자신들이 미리 확보해 둔 부동산을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팔아먹거나 △헐값에 부동산을 사들인 뒤 이를 등기(登記)하지 않고 남에게 팔아넘기는, 미등기 전매로 흔적 없이 차익(差益)을 챙기고 탈세를 자행했다. 또 아파트 분양권(이른바 딱지)이나 주택청약 예금통장을 편법으로 사들이거나, 그렇게 사들인 딱지나 통장을 다른 사람에게 비싼 값에 팔아넘기기도 했다.
한탕을 노린 이른바 복부인이나 일반 투기꾼도 적지 않았다. 개발 예정지나 이미 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에는 어김없이, 그곳 부동산을 거래해선 안 되는 외지인들이 비집고 들어와 있었다. 이들은 편법, 탈법으로 어떻게든 현지인 자격을 얻어낸 뒤 해당 지역의 부동산 거래에 뛰어들어 개발이익을 노렸다. 부동산 개발 정보를 빼돌리거나 투기꾼들과 유착한 몇몇 하급 공무원들도 검거했다. 부동산 투기를 위해 회사 자금을 빼돌린 기업주들도 있었다. 물 반 고기 반, 손만 뻗치면 금방 잡아들일 수 있을 만큼 투기꾼들은 아예 드러내놓고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한 달가량 걸린 수사과정을 통해, 정부 수립 이래 최대 규모의 투기사범들을 적발했다. 사법처리 대상이 된 피의자만 60여 명. 이 가운데 34명 구속, 7명을 수배하고 27명을 입건했다. 적발한 투기 ‘회사’만 해도 16개에 이르렀다. 이 같은 수사결과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부동산 시장은 일순 얼어붙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1989년 4월 26일 부동산 수사내용을 언론에 공개할 때 우리 수사팀은 이것을 ‘제1차 수사결과’라고 밝혔다. 그것은 곧 부동산 관련 ‘제2차’ 후속 수사를 예고한 것이었다.
군사기밀 빼낸 투기꾼을 잡아라!
결론부터 당겨 말하면 내가 최종적으로 겨냥한 타깃은 국가기밀을 이용한 부동산 범죄였다. 앞서 내가 줄곧 수집했던 관련 정보들 가운데는 정부나 군(軍)의 국토개발 계획 또는 토지이용 계획 등을 유출하거나 사전 입수해 투기하는 행태에 관한 것이 적지 않았다. 어디어디 누가 정부의 개발 정보를 알아내서 어찌어찌했다더라, 시중에 이 같은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었다. 물론 모든 소문이 그렇듯, 당장 사법처리할 수 있을 만큼 딱 떨어지는 정보나 인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국가기밀을 빼돌려 투기를 일삼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으리라는, 강한 심증(心證)을 갖고 있었다. 그런 중에 두 가지 루트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들을 포착했다.
하나는 앞서 1차 수사과정에서 파생한 정보였다. 이미 적발, 조사받은 투기사범들을 통해 국가기밀을 이용해 부동산 폭리를 취한 범죄와 혐의자들에 대한 여러 가지 내용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부동산 쪽으로 정통한 정보원들의 제보였다. 축적된 수사 자료와 이 두 가지 소스(Source)를 통해 더해진 구체적인 정보들을 따라 수사를 해나가던 중에, 놀랍게도 군사기밀을 이용한 투기세력을 포착했다.
국가기밀 중에서도 부동산 문제에 바짝 밀접해 있는 것이 바로 군사기밀이다. 군부대의 신설, 이전, 배치 등 군의 움직임 자체가 모두 정부의 국토개발 계획이나 토지이용 계획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군당국과의 협의를 거쳐야 하므로 가만히 앉아 있어도 군당국은 부동산 개발 등 기밀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군부대가 움직인다는 것은 곧 특정지역의 부동산 개발이나 시세 변동을 의미한다. 특히 군사적 이유로 개발이 금지되거나 제한됐던 지역이 해제대상이 되면 일대 땅값은 순식간에 치솟는다. 당연히 군과 관련된 그런 부동산 정보를 남들보다 먼저 입수하면 폭리를 취할 길이 널려 있었다.
물론 군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대외비(對外秘)의 고급 기밀에 해당된다. 그것을 빼내거나 유출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그런 정보에 접근하거나 직접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누구일지, 상식적으로 따져보면 간단하게 답이 나온다. 첫째, 국가기밀을 입안하거나 처리하는 자, 둘째 기밀을 알고 있는 이를 통해 그것을 알게 된 자, 셋째 국가나 정부에 대형 개발사업을 건의하거나 계획할 수 있는 자(가령 대기업) 등이다. 아무리 법으로 규제하고 단속하려 해도 결국 사람이 다루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그 정보는 사람의 욕심을 타고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군사기밀을 빼내 투기하는 세력에 대한 단서와 정보를 포착하면서, 그동안 투기 일반에 대해 수사를 벌였던 수사팀의 역량도 그쪽으로 집중했다. ‘제2차 부동산 투기 수사’였다. 1차 수사가 일단락된 직후인 1989년 5월부터 수사를 시작해 한 달 남짓 파고들자 이윽고 투기세력의 윤곽이 드러났다. 군사기밀을 둘러싼 투기인 만큼 적지 않은 현역 군인과 군무원들이 연루돼 있었다. 또한 이들로부터 정보를 넘겨받아 발 빠르게 투기를 벌여온 부동산중개업자 등 전문 투기꾼과 일반인 등 다수의 민간인도 수사망에 걸렸다.
그런데 가장 원초적으로 군사기밀을 빼돌린 핵심인물들은 놀랍게도 군무원(軍務員), 그것도 부동산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고위 혹은 고참 군무원들이었다. 군무원은 직업군인이 아닌 민간인으로 각 군에서 행정 및 기술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다. 1948년 민간인을 군속(軍屬)이란 이름으로 채용하면서 제도가 시작됐다. 이후 줄곧 ‘군속’으로 불리던 이들은 1980년 이후 그 명칭이 군무원으로 정착됐다. 2010년 현재 전체 2만3000여 명으로 우리 군 인원의 4%가 좀 안 된다.
이들 몇몇 군무원은 군과 민간, 양쪽에 걸친 특수한 신분인 만큼 일반인보다 수월하게 군 내부의 부동산 정보를 바깥으로 빼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신분과 지위를 이용해 빼낸 부동산 정보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금품 등 잇속을 챙겼다.
군법회의에서 흐지부지되지 않게 꾀를 내다
국방부 합참본부의 최고참이자 최고위(2급 이사관) 군무원이던 정모씨는 그 상징적 인물이었다. 정씨는 오랫동안 군 시설 보호구역으로 개발이 묶였던 강남 서초동과 방배동 일대 땅 4만여 평이 1988년 4월 20일부터 해제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 그러고는 이런 사실을, 자신과 평소 알고 지내던 기업인 등 지인들에게 알려주었다. 정보를 입수한 이들은 해당지역의 개발제한 해제 사실이 공표되기 불과 10여 일 전 저마다 일정 구획의 땅을 사들였다. 그러고는 얼마 뒤 해제 공고가 나고 땅을 다시 팔아 수억 원씩을 남겼다.
정씨는 또 자신과 친분이 있는 다른 군무원들과 현역 장교들에게도 같은 정보를 알려주어 이들이 개별적으로 또는 공동으로 투기를 하게 했다. 대령 2명, 중령 1명, 소령 1명 등 영관급 4명 그리고 군무원 7명 등 혐의가 파악된 군 인사만 해도 11명이나 되었다.
해군본부 시설감실의 고참 군무원인 이모씨는 아예 국가기밀 서류나 국토계획 도면을 통째로 투기꾼들에게 넘겨 잇속을 챙겼다. 그는 일찍이 1986년부터 1989년 사이, 해군의 작전지역이나 군 시설 계획과 관련된 비밀자료들을 1건당 일정 금액을 받고 외부 투기꾼들에게 빼돌렸다. 그가 외부로 복사해서 빼돌린 자료에는 △아산-영해 중화학공업단지 타당성 조사 △서해 5해역 사령부 이전계획 △동서고속전철 계획안 △아산 항만계획도 등 20여 건의 국가기밀 서류와 도면이 포함돼 있었다. 물론 이 같은 기밀 서류나 도면을 넘겨받아 상습적으로 투기행각을 벌여온 부동산중개업자 2명 등 투기꾼들의 행적도 낱낱이 파악됐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제2차 부동산 투기수사, 곧 군사기밀 투기 사건에서는 이들 군무원과 이들로부터 정보를 넘겨받아 투기에 나선 현역 군인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불가피했다.
문제는 현역 군인은 물론 군무원 역시 일반 형법이 아니라 군 형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혐의가 있거나 혹은 범법행위를 했더라도 검찰에서 최종 사법처리는커녕 아예 내놓고는 수사조차 할 수 없었다. 일단 군 수사기관으로 넘겨야 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군의 위세가 시퍼렇던 시절이니 더 말할 나위 없었다. 그러나 군복을 입고, 국가기밀을 빼돌려 투기를 저질러온 악덕세력을 아무런 조사도 없이 순순히 군에 이첩(移牒)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영 마땅치 않았다. 더욱이 우리 검찰이 고생, 고생해 가며 잡아낸 범법자들을 다른 이의 손에 넘겨줘야 하다니….
군복 입은 피의자들을 군으로 넘기면 그동안 우리 검찰이 공들여 수사한 내용이 자칫 흐지부지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애당초 자기들이 시작한 사건이 아닌 만큼, 군이 우리 검찰만큼 정보나 자료, 당장 사건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을지 의문이었다. 더욱이 자기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킬 사건을, 과연 군(수사기관)이 강력하게 원칙적으로 처리할 것인지도 의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민간인을 제외하고, 어쨌든 종국에는 수사결과와 일반인이 아닌 군인·군속 피의자들을 몽땅 군에 넘겨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로서는 최소한 나중에 군에서 엉뚱한(?)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그러니까 피의자들이 확실하게 사법처리되도록 ‘못질’을 해야 했다. 결국 검찰의 수사 노력과 성과가 희석되지 않게 하면서 동시에 군의 위세나 압력을 피해갈 지혜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으로 일단 기초사실을 파악하여 조서화한 다음 군 관할 부분에 대해 신속히 이첩함으로써 관할권 시비를 최소화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군무원이 출근하지 않는 시간에 일제히 소환
일단 우리 수사팀은 투기 혐의가 파악된 관련자들을 모두 소환했다. 여느 범죄 같았으면 적당한 시간차를 두고 한 사람 한 사람 검찰에 들어오라 했겠지만 이번에는 거의 동시에, 한꺼번에 불러들이거나 직접 데려왔다. 평일에 불러들이면 그들 각자가 소속된 군부대에서 낌새를 알아챌 우려가 있어, 1989년 6월 11일 토요일 오후부터 6월 12일 일요일 아침에 걸쳐 일제히 불러들였다.
만약 그런 와중에, 소환 대상자 중 누구든 “우리는 군 소속이므로 검찰에 가지 않겠다”며 소환에 불응하면 우리로서도 도리는 없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다행히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죄지은 사람은 제 발이 저린 법이다. 우리 수사팀에서 “부동산 투기 관련해서 물어볼 것이 있으니 나와 달라”고 하면, 소환 대상자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더 쉬쉬하며 검찰로 순순히 들어왔다.
나는 피의자들이 검찰에 들어왔을 때 조사시간을 길게 끌어서는 안 된다는 수사원칙이랄까 방침을 견지해 왔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피의자들을 불러들이기에 앞서 그만큼 확실한 ‘사전준비’를 해야 한다. 피의자 개개인에 적용된 혐의 사실을 거의 확인해 둔 상태에서 그들을 소환하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 사건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욱이 당초 계획대로 군에서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군무원 및 군인들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군부대에 출근하지 않는 주말과 일요일에 모든 일정을 마쳐야 했다. 투기 피의자 자격으로 소환된 이들은 모두 21명. 이들이 군기밀을 이용한 투기로 단기간에 벌어들인 돈은 36억원대에 달했다. 수사팀은 일사천리로 이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월요일인 6월 13일 새벽, 개별조서는 물론 언론 발표문 작성까지 모든 일을 끝냈다. 나중에 군 수사기관에서 따로 더 조사할 것도 없을 만큼, 증거까지 다 확보해 놓고는 군 쪽으로 피의자들의 명단과 증거자료 일체를 넘겼다. 물론 그러면서 언론에 그간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군사정권 시절, 軍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검찰 발표문
군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우리는 수사결과를 발표하기 직전까지도 고심했다. 오전 10시로 예정됐던 발표시각도 다시 한 시간 연기했다. 결국 발표문에는 지금 같으면 전혀 불필요할 문구들이 들어갔다. △검찰은 피의자들을 소환해 조사하면서 비로소 현역 군인 및 군무원들이 개입된 사실을 알게 됐으며 △이번 사건은 일부 군무원 및 군인의 개인적인 소행으로 군 전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사건을 군 전체와 연관지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문구가 단서조항처럼 덧붙여진 것이었다.
당장 이날 석간신문부터, 언론은 일제히 ‘군기밀 부동산 투기’라는 제목으로 이번 사건 및 수사 상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군사기밀을 둘러싼 부동산 투기에다 장군 승진 예정자를 포함한 영관급 장교와 고위 군무원들이 연루되고 그 규모도 수십억 원대에 달한 만큼 사건의 파장은 컸다.
정부, 특히 국방부가 발칵 뒤집혔다. 이상훈 국방장관은 투기 관련자들은 물론, 기밀이 누설된 경위를 조사해 지휘책임까지 묻겠다며 수사확대 방침을 밝혔다. 검찰로부터 사건 혐의자 명단을 통보받은 군 수사기관, 곧 보안사령부도 철저한 수사방침을 공표했다. 청와대에서는 국가기밀이 새나간다는 정황을 중시해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를 통해 정부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보안감사를 시작했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과 평민당은 국회 국방위원회를 통해 진상조사를 벌여야 한다며 거품을 물고 일어섰다.
우리 검찰이 아무리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군과의 충돌을 피해 가려 했다 해도, 사실 군으로서는 부글부글 속이 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검찰이 몰래 군인 및 군무원을 불러 조사한 것도 화날 일인데 더욱이 언론에 일방적으로 수사결과를 발표했으니 불만이 고조됐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군 수뇌부는 “어떻게 검찰에서 언론에 그런 일을 터뜨리면서 사전에 군에 한마디 언질조차 주지 않을 수가 있느냐”며 대단히 섭섭해 했다는 보도가 나기도 했다. 또 당시 실세로 통하던 한 장군은 검찰에 대해 공개적으로 “새파랗게 젊은 총장(김기춘 검찰총장을 지칭)이 겁이 없다”며 항의인지 협박인지 모를 발언을 쏟아놓기도 했다.
그러니 직접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나에 대해 군인들이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가졌을지 짐작이 됐다. 자칫 군 고위층 혹은 군 출신 실세들의 압력으로 지방 좌천 등 불이익까지 감수해야 할 상황이었다. 어쨌든 사건이 매듭지어지고 나서 한참 후 김기춘 총장과 독대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김 총장은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살짝 내게 말했다. “심 부장, 지방으로 보낼 일은 없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김기춘 총장, 수사 후 “지방으로 보내지 않을 테니 걱정 마라” 격려
검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보안사는 후속 수사를 통해 군사기밀을 빼돌리거나 이를 넘겨받아 투기한 6명의 군무원을 구속했다. 국가기밀누설 혐의가 적용됐다. 그러나 부동산 정보를 입수해 땅을 사놓았던 영관급 장교 4명은 처벌규정이 없어 사법처리를 면했다. 인사상 징계처리되는 것으로 그쳤다. 민간인 투기꾼 가운데 일부는 일찍이 우리 검찰에 의해 구속됐고, 구속되지 않은 다수는 투기를 통한 부당이득에 대한 탈세 혐의로 국세청에 명단이 넘어갔다.
1980년대 10년을 관통하는 두 개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아마도 군인과 부동산이 될 것이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실제로 집권을 시작한 1980년부터, 노태우 대통령에 이어 YS가 집권하기 전까지는 분명히 군인 출신 대통령의 시대였다. 그런 대통령 아래서 군의 힘과 위세는 막강했다. 그런 와중에 보릿고개를 벗어난 국민은 부동산으로 내달렸다. 정치적으로 군이 세상을 지배하고 사회적으로는 부동산 투기 광풍이 몰아치던 시대. 군복 입은 이들에 의한 군기밀 유출 부동산 투기 사건은 1980년대의 그러한 시대적 특성이 가져온 필연적인 범죄가 아니었을까.
우리의 조승식 검사가 가장 절친한 고교동창까지 직접 엄정 조사하여 엄청난 이 사건을 성공시켰으며 두고두고 범죄 앞에 공사(公私)를 구별한 모범을 보인 사례라고 화제가 된 것도 이 사건임을 명기해 둔다.⊙
그러면서 부동산은 ‘내 집 마련’ 수준을 넘어 부(富)를 일구고 인생을 역전시키는 ‘한 탕 도박’으로 변질돼 갔다. 땀 흘려 버는 돈의 몇백 배, 몇천 배를 일순간에 거머쥐려는 욕심과 환상에 매료된 사람들은 아파트로, 땅으로 내달렸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투기 아닌 투자”라면서….
예나 지금이나 부동산-주식-펀드 등 재테크나 머니 게임(Money Game)에 뛰어드는 사람치고 그것을 사행성 혹은 범죄성 투기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남들도 다 하는’ 합법적이고 정당한 투자라고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투자(Invest)와 투기(Speculation)는 구별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1980년대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는 분명히 투자 수준을 훨씬 넘어 투기 열풍으로 번지고 있었다. 돈과 사람이 몰리는 곳에는 반드시 범죄가 있다. 부동산 시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온 나라에서 부동산 투기 사태가 벌어지면서 한편으로는 떼돈을 번 자들, 또 한편으로는 피해자들이 속출했다. 어딜 가나 사람들 사이에는 부동산 범죄와 비리에 대한 온갖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 상황이니 나라에서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으리라. 정부는 정부대로 갖가지 투기 방지, 단속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심했다. 검찰도 이 문제를 비켜갈 수 없었다. 대검찰청에 부동산 투기 합동단속본부가 설치되는 등 공식적, 전면적으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 나섰다. 대검에서 어떤 수사 방침이 서면, 당장 그 손발 격인 서울지검 특별수사부가 바빠진다. 자연스럽게 서울지검 특수1부장이던 내게 부동산 수사는 큰 숙제로 떨어졌다.
1970년대 400억대 투기 수사를 40억대로 줄여 발표
사실 나는 부동산 투기에 대한 검찰의 그러한 공식 대응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천착(穿鑿)하고 있었다. 내게 부동산 수사는 낯선 일이 아니었다. 앞서 1970년대 영등포지청 검사 시절, 강남을 무대로 벌어졌던 수백억 원대 땅 투기 사건을 수사했던 까닭이다.
일제 때 일본인들의 땅, 혹은 한국전쟁 때 주인 잃은 땅의 관련 서류들을 위조해 자기들 것으로 만들어 가진 부동산 투기꾼들을 대거 잡아들인 것이었다. 당시 투기꾼 6개 파를 소탕했는데 그들이 서류 위조 작업으로 집어삼킨 땅의 총 가액이 400억원대에 달했다. 그때로서는 농담으로도 이야기하기 힘들 만큼의 엄청난 액수였다. 그 수사결과를 곧이곧대로 세상에 꺼내놓으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라 하여 나는 결국 그것을 40억원대 사건으로 축소(?) 발표했었다. 이런 인연으로 진작부터 부동산 문제에 관심을 가져오던 터였다.
부동산 투기 은어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기획사 : 부동산 투기를 목적으로 투기꾼들이 반짝 차린 유령회사〉 〈바지 : 부동산 투기 회사에서 실제 경영주가 아닌, 가짜로 내세운 명목 사장. 무슨 문제가 생기면 이 바지 사장들이 죄다 뒤집어쓰게 마련이다〉 〈일꾼 : 이익이 날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해 부동산 투기에 끌어들이는 바람잡이〉 〈호구 : 뭣 모르고 부동산 투기에 달려드는 순진한 피해자들〉 〈접시 돌리다 : 사기작업에 들어가다〉.
이미 1970년대부터 접해온 터라 부동산 시장에서의 보편화된 말들도 내게는 익숙했다. 과거의 경험을 되새기며 나는 우선 여러 달에 걸쳐 항간에 돌아다니는 부동산 투기에 대한 소문들의 내막과 이면을 캐면서 관련 자료와 정보를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우리 부 소속의 조승식, 안대희 검사와 함께 부동산 투기, 투기꾼들과의 한판 승부를 준비한 것이다.
공공연한 투기꾼, 검사에겐 물 반 고기 반
이윽고 1989년 봄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동안 축적한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곧바로 대대적인 검거를 시작한 것이었다. 수개월에 걸친 치열한 준비를 통해 다양한 투기 행태와 해당 투기꾼들에 대한 사전 수사가 이미 상당히 진행된 덕분이었다.
가장 먼저 잡아들인 대상은 직업적인 투기꾼들이었다. 부동산 거래가 이뤄지는 현지에서는 흔히 ‘떴다방’으로 불리는 무허가 복덕방 업자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레저, -개발, -기획, -유통 등 버젓이 위장 간판을 내건 회사를 차려놓고 전국을 무대로 투기를 일삼았다. 전문 투기꾼인 사장 밑에 적게는 10여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에 이르는 ‘일꾼’을 거느린 투기 조직이었다. 투기 행태도 다양했다.
△개발 예정지에 자기 회사의 일꾼들을 미리 이주시켜 헐값에 땅이나 주택을 매입한 뒤 이를 복부인 등에게 팔아넘겨 폭리를 취하거나 △개발 계획이 전혀 없는 지역이 개발될 것이란 헛소문이나 유언비어를 퍼뜨려 투기를 유인한 뒤, 자신들이 미리 확보해 둔 부동산을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팔아먹거나 △헐값에 부동산을 사들인 뒤 이를 등기(登記)하지 않고 남에게 팔아넘기는, 미등기 전매로 흔적 없이 차익(差益)을 챙기고 탈세를 자행했다. 또 아파트 분양권(이른바 딱지)이나 주택청약 예금통장을 편법으로 사들이거나, 그렇게 사들인 딱지나 통장을 다른 사람에게 비싼 값에 팔아넘기기도 했다.
한탕을 노린 이른바 복부인이나 일반 투기꾼도 적지 않았다. 개발 예정지나 이미 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에는 어김없이, 그곳 부동산을 거래해선 안 되는 외지인들이 비집고 들어와 있었다. 이들은 편법, 탈법으로 어떻게든 현지인 자격을 얻어낸 뒤 해당 지역의 부동산 거래에 뛰어들어 개발이익을 노렸다. 부동산 개발 정보를 빼돌리거나 투기꾼들과 유착한 몇몇 하급 공무원들도 검거했다. 부동산 투기를 위해 회사 자금을 빼돌린 기업주들도 있었다. 물 반 고기 반, 손만 뻗치면 금방 잡아들일 수 있을 만큼 투기꾼들은 아예 드러내놓고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한 달가량 걸린 수사과정을 통해, 정부 수립 이래 최대 규모의 투기사범들을 적발했다. 사법처리 대상이 된 피의자만 60여 명. 이 가운데 34명 구속, 7명을 수배하고 27명을 입건했다. 적발한 투기 ‘회사’만 해도 16개에 이르렀다. 이 같은 수사결과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부동산 시장은 일순 얼어붙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1989년 4월 26일 부동산 수사내용을 언론에 공개할 때 우리 수사팀은 이것을 ‘제1차 수사결과’라고 밝혔다. 그것은 곧 부동산 관련 ‘제2차’ 후속 수사를 예고한 것이었다.
군사기밀 빼낸 투기꾼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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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투기지역에는 항상 ‘떴다방’으로 불리는 무허가 복덕방 업자들이 나타난다. |
하나는 앞서 1차 수사과정에서 파생한 정보였다. 이미 적발, 조사받은 투기사범들을 통해 국가기밀을 이용해 부동산 폭리를 취한 범죄와 혐의자들에 대한 여러 가지 내용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부동산 쪽으로 정통한 정보원들의 제보였다. 축적된 수사 자료와 이 두 가지 소스(Source)를 통해 더해진 구체적인 정보들을 따라 수사를 해나가던 중에, 놀랍게도 군사기밀을 이용한 투기세력을 포착했다.
국가기밀 중에서도 부동산 문제에 바짝 밀접해 있는 것이 바로 군사기밀이다. 군부대의 신설, 이전, 배치 등 군의 움직임 자체가 모두 정부의 국토개발 계획이나 토지이용 계획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군당국과의 협의를 거쳐야 하므로 가만히 앉아 있어도 군당국은 부동산 개발 등 기밀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군부대가 움직인다는 것은 곧 특정지역의 부동산 개발이나 시세 변동을 의미한다. 특히 군사적 이유로 개발이 금지되거나 제한됐던 지역이 해제대상이 되면 일대 땅값은 순식간에 치솟는다. 당연히 군과 관련된 그런 부동산 정보를 남들보다 먼저 입수하면 폭리를 취할 길이 널려 있었다.
물론 군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대외비(對外秘)의 고급 기밀에 해당된다. 그것을 빼내거나 유출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그런 정보에 접근하거나 직접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누구일지, 상식적으로 따져보면 간단하게 답이 나온다. 첫째, 국가기밀을 입안하거나 처리하는 자, 둘째 기밀을 알고 있는 이를 통해 그것을 알게 된 자, 셋째 국가나 정부에 대형 개발사업을 건의하거나 계획할 수 있는 자(가령 대기업) 등이다. 아무리 법으로 규제하고 단속하려 해도 결국 사람이 다루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그 정보는 사람의 욕심을 타고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군사기밀을 빼내 투기하는 세력에 대한 단서와 정보를 포착하면서, 그동안 투기 일반에 대해 수사를 벌였던 수사팀의 역량도 그쪽으로 집중했다. ‘제2차 부동산 투기 수사’였다. 1차 수사가 일단락된 직후인 1989년 5월부터 수사를 시작해 한 달 남짓 파고들자 이윽고 투기세력의 윤곽이 드러났다. 군사기밀을 둘러싼 투기인 만큼 적지 않은 현역 군인과 군무원들이 연루돼 있었다. 또한 이들로부터 정보를 넘겨받아 발 빠르게 투기를 벌여온 부동산중개업자 등 전문 투기꾼과 일반인 등 다수의 민간인도 수사망에 걸렸다.
그런데 가장 원초적으로 군사기밀을 빼돌린 핵심인물들은 놀랍게도 군무원(軍務員), 그것도 부동산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고위 혹은 고참 군무원들이었다. 군무원은 직업군인이 아닌 민간인으로 각 군에서 행정 및 기술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다. 1948년 민간인을 군속(軍屬)이란 이름으로 채용하면서 제도가 시작됐다. 이후 줄곧 ‘군속’으로 불리던 이들은 1980년 이후 그 명칭이 군무원으로 정착됐다. 2010년 현재 전체 2만3000여 명으로 우리 군 인원의 4%가 좀 안 된다.
이들 몇몇 군무원은 군과 민간, 양쪽에 걸친 특수한 신분인 만큼 일반인보다 수월하게 군 내부의 부동산 정보를 바깥으로 빼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신분과 지위를 이용해 빼낸 부동산 정보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금품 등 잇속을 챙겼다.
군법회의에서 흐지부지되지 않게 꾀를 내다
국방부 합참본부의 최고참이자 최고위(2급 이사관) 군무원이던 정모씨는 그 상징적 인물이었다. 정씨는 오랫동안 군 시설 보호구역으로 개발이 묶였던 강남 서초동과 방배동 일대 땅 4만여 평이 1988년 4월 20일부터 해제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 그러고는 이런 사실을, 자신과 평소 알고 지내던 기업인 등 지인들에게 알려주었다. 정보를 입수한 이들은 해당지역의 개발제한 해제 사실이 공표되기 불과 10여 일 전 저마다 일정 구획의 땅을 사들였다. 그러고는 얼마 뒤 해제 공고가 나고 땅을 다시 팔아 수억 원씩을 남겼다.
정씨는 또 자신과 친분이 있는 다른 군무원들과 현역 장교들에게도 같은 정보를 알려주어 이들이 개별적으로 또는 공동으로 투기를 하게 했다. 대령 2명, 중령 1명, 소령 1명 등 영관급 4명 그리고 군무원 7명 등 혐의가 파악된 군 인사만 해도 11명이나 되었다.
해군본부 시설감실의 고참 군무원인 이모씨는 아예 국가기밀 서류나 국토계획 도면을 통째로 투기꾼들에게 넘겨 잇속을 챙겼다. 그는 일찍이 1986년부터 1989년 사이, 해군의 작전지역이나 군 시설 계획과 관련된 비밀자료들을 1건당 일정 금액을 받고 외부 투기꾼들에게 빼돌렸다. 그가 외부로 복사해서 빼돌린 자료에는 △아산-영해 중화학공업단지 타당성 조사 △서해 5해역 사령부 이전계획 △동서고속전철 계획안 △아산 항만계획도 등 20여 건의 국가기밀 서류와 도면이 포함돼 있었다. 물론 이 같은 기밀 서류나 도면을 넘겨받아 상습적으로 투기행각을 벌여온 부동산중개업자 2명 등 투기꾼들의 행적도 낱낱이 파악됐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제2차 부동산 투기수사, 곧 군사기밀 투기 사건에서는 이들 군무원과 이들로부터 정보를 넘겨받아 투기에 나선 현역 군인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불가피했다.
문제는 현역 군인은 물론 군무원 역시 일반 형법이 아니라 군 형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혐의가 있거나 혹은 범법행위를 했더라도 검찰에서 최종 사법처리는커녕 아예 내놓고는 수사조차 할 수 없었다. 일단 군 수사기관으로 넘겨야 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군의 위세가 시퍼렇던 시절이니 더 말할 나위 없었다. 그러나 군복을 입고, 국가기밀을 빼돌려 투기를 저질러온 악덕세력을 아무런 조사도 없이 순순히 군에 이첩(移牒)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영 마땅치 않았다. 더욱이 우리 검찰이 고생, 고생해 가며 잡아낸 범법자들을 다른 이의 손에 넘겨줘야 하다니….
군복 입은 피의자들을 군으로 넘기면 그동안 우리 검찰이 공들여 수사한 내용이 자칫 흐지부지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애당초 자기들이 시작한 사건이 아닌 만큼, 군이 우리 검찰만큼 정보나 자료, 당장 사건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을지 의문이었다. 더욱이 자기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킬 사건을, 과연 군(수사기관)이 강력하게 원칙적으로 처리할 것인지도 의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민간인을 제외하고, 어쨌든 종국에는 수사결과와 일반인이 아닌 군인·군속 피의자들을 몽땅 군에 넘겨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로서는 최소한 나중에 군에서 엉뚱한(?)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그러니까 피의자들이 확실하게 사법처리되도록 ‘못질’을 해야 했다. 결국 검찰의 수사 노력과 성과가 희석되지 않게 하면서 동시에 군의 위세나 압력을 피해갈 지혜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으로 일단 기초사실을 파악하여 조서화한 다음 군 관할 부분에 대해 신속히 이첩함으로써 관할권 시비를 최소화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군무원이 출근하지 않는 시간에 일제히 소환
일단 우리 수사팀은 투기 혐의가 파악된 관련자들을 모두 소환했다. 여느 범죄 같았으면 적당한 시간차를 두고 한 사람 한 사람 검찰에 들어오라 했겠지만 이번에는 거의 동시에, 한꺼번에 불러들이거나 직접 데려왔다. 평일에 불러들이면 그들 각자가 소속된 군부대에서 낌새를 알아챌 우려가 있어, 1989년 6월 11일 토요일 오후부터 6월 12일 일요일 아침에 걸쳐 일제히 불러들였다.
만약 그런 와중에, 소환 대상자 중 누구든 “우리는 군 소속이므로 검찰에 가지 않겠다”며 소환에 불응하면 우리로서도 도리는 없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다행히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죄지은 사람은 제 발이 저린 법이다. 우리 수사팀에서 “부동산 투기 관련해서 물어볼 것이 있으니 나와 달라”고 하면, 소환 대상자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더 쉬쉬하며 검찰로 순순히 들어왔다.
나는 피의자들이 검찰에 들어왔을 때 조사시간을 길게 끌어서는 안 된다는 수사원칙이랄까 방침을 견지해 왔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피의자들을 불러들이기에 앞서 그만큼 확실한 ‘사전준비’를 해야 한다. 피의자 개개인에 적용된 혐의 사실을 거의 확인해 둔 상태에서 그들을 소환하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 사건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욱이 당초 계획대로 군에서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군무원 및 군인들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군부대에 출근하지 않는 주말과 일요일에 모든 일정을 마쳐야 했다. 투기 피의자 자격으로 소환된 이들은 모두 21명. 이들이 군기밀을 이용한 투기로 단기간에 벌어들인 돈은 36억원대에 달했다. 수사팀은 일사천리로 이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월요일인 6월 13일 새벽, 개별조서는 물론 언론 발표문 작성까지 모든 일을 끝냈다. 나중에 군 수사기관에서 따로 더 조사할 것도 없을 만큼, 증거까지 다 확보해 놓고는 군 쪽으로 피의자들의 명단과 증거자료 일체를 넘겼다. 물론 그러면서 언론에 그간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군사정권 시절, 軍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검찰 발표문
군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우리는 수사결과를 발표하기 직전까지도 고심했다. 오전 10시로 예정됐던 발표시각도 다시 한 시간 연기했다. 결국 발표문에는 지금 같으면 전혀 불필요할 문구들이 들어갔다. △검찰은 피의자들을 소환해 조사하면서 비로소 현역 군인 및 군무원들이 개입된 사실을 알게 됐으며 △이번 사건은 일부 군무원 및 군인의 개인적인 소행으로 군 전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사건을 군 전체와 연관지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문구가 단서조항처럼 덧붙여진 것이었다.
당장 이날 석간신문부터, 언론은 일제히 ‘군기밀 부동산 투기’라는 제목으로 이번 사건 및 수사 상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군사기밀을 둘러싼 부동산 투기에다 장군 승진 예정자를 포함한 영관급 장교와 고위 군무원들이 연루되고 그 규모도 수십억 원대에 달한 만큼 사건의 파장은 컸다.
정부, 특히 국방부가 발칵 뒤집혔다. 이상훈 국방장관은 투기 관련자들은 물론, 기밀이 누설된 경위를 조사해 지휘책임까지 묻겠다며 수사확대 방침을 밝혔다. 검찰로부터 사건 혐의자 명단을 통보받은 군 수사기관, 곧 보안사령부도 철저한 수사방침을 공표했다. 청와대에서는 국가기밀이 새나간다는 정황을 중시해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를 통해 정부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보안감사를 시작했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과 평민당은 국회 국방위원회를 통해 진상조사를 벌여야 한다며 거품을 물고 일어섰다.
우리 검찰이 아무리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군과의 충돌을 피해 가려 했다 해도, 사실 군으로서는 부글부글 속이 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검찰이 몰래 군인 및 군무원을 불러 조사한 것도 화날 일인데 더욱이 언론에 일방적으로 수사결과를 발표했으니 불만이 고조됐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군 수뇌부는 “어떻게 검찰에서 언론에 그런 일을 터뜨리면서 사전에 군에 한마디 언질조차 주지 않을 수가 있느냐”며 대단히 섭섭해 했다는 보도가 나기도 했다. 또 당시 실세로 통하던 한 장군은 검찰에 대해 공개적으로 “새파랗게 젊은 총장(김기춘 검찰총장을 지칭)이 겁이 없다”며 항의인지 협박인지 모를 발언을 쏟아놓기도 했다.
그러니 직접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나에 대해 군인들이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가졌을지 짐작이 됐다. 자칫 군 고위층 혹은 군 출신 실세들의 압력으로 지방 좌천 등 불이익까지 감수해야 할 상황이었다. 어쨌든 사건이 매듭지어지고 나서 한참 후 김기춘 총장과 독대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김 총장은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살짝 내게 말했다. “심 부장, 지방으로 보낼 일은 없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김기춘 총장, 수사 후 “지방으로 보내지 않을 테니 걱정 마라”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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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투기 수사를 했던 조승식 검사. |
1980년대 10년을 관통하는 두 개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아마도 군인과 부동산이 될 것이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실제로 집권을 시작한 1980년부터, 노태우 대통령에 이어 YS가 집권하기 전까지는 분명히 군인 출신 대통령의 시대였다. 그런 대통령 아래서 군의 힘과 위세는 막강했다. 그런 와중에 보릿고개를 벗어난 국민은 부동산으로 내달렸다. 정치적으로 군이 세상을 지배하고 사회적으로는 부동산 투기 광풍이 몰아치던 시대. 군복 입은 이들에 의한 군기밀 유출 부동산 투기 사건은 1980년대의 그러한 시대적 특성이 가져온 필연적인 범죄가 아니었을까.
우리의 조승식 검사가 가장 절친한 고교동창까지 직접 엄정 조사하여 엄청난 이 사건을 성공시켰으며 두고두고 범죄 앞에 공사(公私)를 구별한 모범을 보인 사례라고 화제가 된 것도 이 사건임을 명기해 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