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 연세의료원장, 환자의 개인적 경험을 중시하는 ‘환자 경험’ 천명
⊙ 전문병원 시대 열고, 종양등록사업 등으로 의료계 변화 이끌어
⊙ “세브란스가 바뀌면 의료업계가 변한다”
⊙ 전문병원 시대 열고, 종양등록사업 등으로 의료계 변화 이끌어
⊙ “세브란스가 바뀌면 의료업계가 변한다”
- 2005년에 지은 서울 신촌의 세브란스 새 병원.
세브란스병원이 변화의 채비를 꾸렸다. 이철(李喆) 연세의료원장은 신년사에서 ‘환자 경험(Patient Experience)’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다.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넘어서서 환자의 관점에서 사소한 것까지 환자가 만족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쓴다는 개념이다. 언뜻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개념이지만 외국의 대형병원에서는 이미 중요 화두가 된 개념이다.
미국에서 발간되는 병원 경영 관련 잡지인 《헬스리더 미디어》(HealthLeaders Media)가 2009년에 병원 고위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환자 경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사했다. 응답자의 33%가 가장 중요한 화두로 생각한다고 답했고 54%는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5가지 이슈 중 하나라고 응답했다.
미국의 클리블랜드 병원(Cleveland Clinic)의 경우, 환자 경험이라는 개념을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적용 방침은 크게 5가지로 나뉜다. ▲환자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 ▲병원 환경 개선 ▲의료진 등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성취도와 만족도 개선 ▲의료서비스 진행 과정 개선 ▲전 세계적인 리더십 발휘 등이다.
구체적인 실천 내용 중에는 환자복의 ‘변신’이 눈에 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Diane von Furstenberg)가 디자인을 맡았다. 환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꼭대기 층에 통유리로 된 테라스도 설치했다. 당일 예약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바꾼 것도 눈에 띈다. 환자들의 정서 순화를 위해 3000여 개가 넘는 예술작품을 병원 곳곳에 전시하기도 한다.
올해 처음 병원 운영 방침으로 천명했지만, 세브란스병원은 이미 ‘환자 경험’을 실천하고 있는 게 아닐까. 클리블랜드 병원처럼 세브란스병원에도 400여 점의 예술품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의과대학에 전시한 것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병원에 전시한 작품만 400여 점이다. 이 중에는 기증받은 작품도 많다. 병원 입구에 있는 청동 작품 <소리-만남>은 감정가가 4억6700만원에 달한다. 서울대 미대 교수였던 전준 교수의 작품이다. 전준 교수의 자제가 연세대 의대에 진학한 인연으로 세브란스병원에 기증했다고 한다.
새로운 병원 경영 철학 ‘환자 경험’ 선포
2008년 5월에 새롭게 문을 연 장례식장에도 ‘환자 경험’을 중시하는 정책적 접근이 보인다. 원래 세브란스 장례식장은 3무(無)로 유명했다. 술·밤샘·도박이 그것이다. 조문을 하는 공간과 식사 공간도 떨어져 있었다. 새로 지은 장례식장에는 이런 부분이 개선됐다. 술·밤샘 허용은 물론이고 유족과 조문객을 위해 비즈니스룸, 어린이 놀이방 등을 갖췄다. 커피숍 등의 편의시설도 입점해 있어 어두운 분위기가 아닌 호텔 로비나 백화점 같은 분위기가 난다. 작년 9월에 별세한 최동원 감독의 경우, 다른 병원에서 운명했지만,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이용했다. 사실 ‘환자 경험’ 이전에도 환자를 중시하는 경영 방침이 존재했다. 바로 ‘환자 안전(Patient Safety)’이다. ‘환자 안전’은 대외적인 인정으로 이어졌다. 2007년에 국내병원으로는 최초로 받은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 인증이 대표적인 예다.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는 미국 시카고에 본부를 둔 비영리 국제기구로, 미국 의료기관의 의료 수준을 평가하는 비영리법인 JC(Joint Commission)가 1994년에 설립했다. 2000년에 처음 국제인증 업무를 시작했다. 1만5000개 이상의 의료기관이 인증을 획득한 세계 최대 규모의 의료서비스 인증제도다. 환자가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퇴원할 때까지 겪는 모든 상황에 대한 의료진의 대응 방법과 병원의 진료 시스템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해 안전하고 진료수준이 우수한 의료기관에 국제인증을 주고 있다. JCI 인증을 받았다고 하면 국제적인 스탠더드를 통과했다고 보면 된다. 구체적인 평가항목은 1033개에 달한다.
2007년 국내 최초로 JCI 평가인증 받아
2011년 12월에는 국가고객만족도 조사(NCSI)에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삼성서울병원이었고 3위는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이었다. 세브란스병원이 대기업이 만든 병원과 국립병원을 제친 것이다. 국가고객만족도 조사는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지난 2년간 해당 병원에서 2번 이상 진료를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세브란스병원이 JCI 인증을 받은 후 다른 병원들도 앞다투어 인증 획득에 나섰다. 고려대 안암병원, 전남대병원(화순), 인하대병원 등이 인증을 받았고, 이제는 일부 1차 의료기관까지 인증에 도전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이 시작하고 국내 의료계에 관행처럼 퍼진 것은 JCI뿐만이 아니다. 2005년에 도입한 전사적 자원관리(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기업에서 여러 가지 자원의 흐름과 용도를 전체 시스템을 통해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경영기법을 병원에 적용한 것이다. 종합병원으로서는 최초였다.
국내병원 최초로 JCI 인증을 받은 후 세브란스병원은 블루크로스 블루실드(Blue Cross Blue Shield)라는 미국 최대 규모의 보험회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이 보험회사의 해외의료서비스 대행사를 통한 해외환자 진료에 관한 협약이었다. 이 보험에 가입한 미국인이 세브란스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미국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처럼 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내용의 계약이었다. 세브란스병원의 의술과 진료 시스템을 미국의 병원과 사실상 동등한 수준이라고 인정한 셈이다.
2010년 3월 한국을 방문한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갑작스럽게 복통을 일으켜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이때도 JCI 인증이 병원 선택의 한 요소였다고 한다. 이철 연세의료원 원장의 말이다.
“키신저 전 장관이 호텔에 계시다가 복통을 일으켰어요. 당시 명동의 웨스틴 조선호텔에 묵고 있었는데 세브란스로 오셨습니다. 증세는 심각한 게 아니었어요. 미국으로 돌아가시고 나서 치료 잘 받았다고 감사편지도 보내왔습니다.”
한국 의료의 흐름을 주도해 온 세브란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세브란스병원의 존재 자체가 한국 의료 발전의 초석이었다. 특히 외과의 설립과 발전에는 러들러(Ludlow) 교수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러들러 교수는 세브란스병원의 창립자금 기부자인 루이스 세브란스(Severance) 씨의 주치의였다.
의학교육도 마찬가지다. 현재 한국의 의대생이면 모두 거치는 ‘인턴’ 역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전)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제도다. 1914년 처음으로 실시됐다. 4년의 재학기간 동안 충분한 임상 실습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시작한 제도였다. 세브란스의전 졸업생들은 졸업 후 1년 동안 본인이 원하는 과를 순회하면서 실습 경험을 쌓았다.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전문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세브란스의전이 인턴 제도를 시작한 이후 다른 의학교에서도 조수(助手) 혹은 부수(副手)라는 명칭으로 같은 제도를 운영했다. 이것이 오늘날 의사직의 정규 수련 과정인 인턴제로 정착한 것이다.
환자 권리장전 최초 선포
‘첫째, 모든 환자는 인간으로서의 관심과 존경을 받을 권리가 있다. 둘째, 모든 환자는 의료진의 성실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
지금으로서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19년 전에, 그것도 병원 측에서 발표한 것이라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1993년 3월 세브란스병원은 한국 병원으로서는 최초로 ‘환자 권리장전’을 선포했다. 요즘에는 거의 모든 병원에서 볼 수 있는 환자 권리 선포문의 시발 또한 세브란스였던 것이다. 사회 전반에 군사문화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 있고, 의사라는 전문가와 환자 사이의 위계 관계가 엄격했던 분위기 속에서 환자 권리장전은 의료계에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권리장전의 나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셋째, 모든 환자는 담당 의료진의 전문분야에 대하여 알 권리가 있다. 넷째, 모든 환자는 담당 의료진으로부터 자신의 질병, 현재의 상태, 치료계획 및 예후에 대한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 다섯째, 모든 환자는 자신의 질병 치료를 위한 새로운 의학적 시도나 교육의 참여 여부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여섯째, 모든 환자는 치료, 검사, 수술, 입원 등의 의료행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시행여부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일곱째, 모든 환자는 담당 의료진이나 법적으로 허용된 사람을 제외하고는 개인의 의무 기록 열람을 금함으로써 진료상의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여덟째, 모든 환자는 진료와 관련하여 알려진 사생활의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아홉째, 모든 환자는 진료 목적으로 탈의하더라도 신체의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열째, 모든 환자는 진료비 내역에 대하여 알 권리가 있다.’
소액 기부 시대 열어
새 병원 건축 기금 모금에 6079명이 참여해 600여억 원을 모은 것도 세브란스병원이 최초가 아닐까 한다. 이 중에는 1억원 넘는 고액을 기부한 사람도 있었지만, 자신의 봉급 중 일부를 고정으로 납부하거나 저금통을 깨서 낸 고사리손 등 100만원 미만의 소액기부가 상당수를 차지했다. 소액 기부문화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계기로 볼 수 있다.
미국의 부호 루이스 세브란스의 기부로 세워진 세브란스병원의 제2막을 연 것이 새 병원 건축이었다. 재벌이나 국가 등의 든든한 ‘빽’이 없기 때문에 모금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이렇듯 많은 사람의 정성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주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연세대와도 재정을 따로 관리한다. 연희전문과 세브란스병원이 합쳐질 때부터 정한 원칙이다.
신축에 1800여억 원 이상이 들다 보니 대기업의 힘을 빌리려 시도한 적도 있었다. 새 병원 기공 당시 의료원장이었던 김일순(金馹舜) 명예교수의 증언이다.
“당시 연세대는 운영상 문제점을 찾아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전략을 수립하는 용역을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 맡기고 있었습니다. 이 용역에 우리 의료원은 제외돼 있었지만, 용역팀과 접촉은 하고 있었지요. 맥킨지는 당시 LG의 경영진단도 하고 있었는데 맥킨지 측에서 송자 총장을 통해 LG와 합작해서 병원을 짓는 일을 주선해 줄 수 있다는 의견을 전해 왔습니다. LG 측에서는 병원을 지을 노하우가 없고, 짓는다고 해도 일류 의료진을 확보할 방안이 없어서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LG에서 진단팀을 우리 의료원에 보내와 3개월간 상주하면서 합작 가능성을 조사했어요. 그 결과 타당성이 높다는 보고서를 본부에 제출했습니다. 핵심 조건은 LG가 비용을 부담하고, 우리는 기술을 맡고, 연세대 법인 이사회 산하에 양측 동수의 임원으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병원 운영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 이름은 ‘LG 세브란스병원’으로 정해졌다. 구본무(具本茂) 회장과 병원 측이 최종 합의까지 했지만, LG와 세브란스의 합작은 결국 무산됐다. LG사장단 회의에서 ‘병원의 소유주는 연세대이며 법적으로 LG는 소유권이 없다. 우리는 돈만 대고 아무 힘이 없다’는 등의 얘기가 나왔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암 완치에 도전한다-전문병원 건립
요즘 대형병원 중에는 ‘암센터’를 갖추지 않은 병원이 없다. 암센터뿐 아니라 심장혈관센터, 알레르기 센터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병원 체제를 갖추고 있다. 전문병원 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도 세브란스병원이다. 1969년에 암센터를 세웠다. 암의 심각성을 조기에 인지한 것이다. 이후 재활병원(1987년), 심장혈관병원(1991년), 안과이비인후과병원(1996년), 어린이병원(2006년) 등을 설립했다. 이 중 재활병원과 어린이병원은 수익을 남기기 힘든 분야라 다른 국립의료기관이나 기업형 병원에서는 운영을 기피하는 전문병원이다. 기독교 정신에 기반한 세브란스병원의 사회 공헌 방침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세브란스병원은 여기에서 나아가 ‘암 병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0월 한 권의 의미 있는 보고서가 나왔다. 2000년에 암을 진단받은 4600여 명의 생존율을 조사한 보고서였다. 보고서는 전체 암 환자의 절반가량이 10년 이상 생존해 있다고 밝혔다. 연세암센터가 낸 자료였다. 연세암센터는 1995년부터 종양등록사업을 시작했다. 역시 국내 최초다. 연세암센터 측은 ‘이 자료를 향후 암환자 건강관리 지침이나 연령별 건강검진 가이드라인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조사 취지를 밝혔다. 건강해져 병원 문을 나선 환자의 삶을 통해 또 다른 암환자의 삶을 구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외면받았던’ 암에 대한 연구에도 세브란스가 나서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의 송시영(宋始英) 교수는 췌장암, 담도암의 선구자다. 항암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동시에 써서 췌장암을 치료하는 요법을 국내 최초로 시도했다. 지금은 국내에서 췌장암을 치료하는 일반적인 요법으로 자리 잡았다. 송 교수의 말이다.
“췌장암과 담도암은 대표적인 고난이도 난치성 암입니다. 그런데 담도암 같은 경우는 약 자체가 없습니다. 저희 병원에서는 최초로 임상실험을 진행 중입니다. 의료기기 개발도 하고 있어요. 캡슐 내시경이 대표적인 개발 사례입니다. 세계 최초로 개발된 일회용 내시경 개발에도 저희가 참여했고요. 대학병원의 R&D가 난치성 암에 집중되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브란스가 바뀌면 의료계가 바뀐다”
병원에 대한 반 우스갯소리 중, ‘진단은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은 아산병원, 장례는 삼성의료원’이란 말이 있다. 세브란스병원의 고민이 여실히 드러나는 말이다. 이에 대해 서울의 모 대학병원 관계자는 “대형병원의 브랜드는 재단의 브랜드 가치를 그대로 이어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사실 요즘에는 서울 시내 주요 대형병원에 있는 의사라면 대부분 실력이 출중합니다. 병원마다 잘하는 분야가 다를 순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의술이 확연히 차이 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결국 모기업 격인 재단의 유명세나 이미지가 투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삼성서울병원은 삼성의 브랜드 가치를 안고 가고, 아산병원은 현대 혹은 정주영(鄭周永) 회장의 이미지를 안고 있어요. 서울대병원은 국립대라는 확실한 타이틀이 있고요.”
병원 경영을 연구하는 모 연구원은 이런 말을 했다.
“소위 업계 ‘선수들’끼리는 이런 말을 합니다. ‘삼성병원이 바뀌면 병원이 바뀌지만 세브란스가 바뀌면 의료계 전체가 바뀐다’는 말이죠. 세브란스가 변화의 물꼬를 튼 건 이후에 의료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JCI 인증을 보세요. 세브란스가 먼저 받은 이후 다른 병원들도 수억 원씩 드는 일종의 ‘외부 감사’를 자청해서 받겠다고 난리지 않습니까. 세브란스가 뭘 한다고 하면 업계는 일단 긴장을 합니다.”
올해 새로 선포한 ‘환자 경험’이 ‘세브란스’라는 브랜드의 새로운 핵심 가치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정·재계 ‘거물’들부터 그저 몸이 아픈 평범한 시민들까지, 환자라면 모두 들어서는 순간부터 최상의 의료 경험을 할 수 있는 병원이 되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적어도 지금까지 세브란스가 가는 길은 그대로 한국 의료의 이정표가 돼 왔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6대 癌’ 고치는 세브란스 명의들
한국인이 가장 빈번하게 걸리는 암(癌)은 위암ㆍ대장암ㆍ폐암ㆍ간암ㆍ유방암ㆍ자궁암이다. (빈도순 정렬) 비율을 보면 암환자 100명 중 65명은 위의 여섯 개의 암 중 하나와 싸우고 있다. 각 암별 세브란스병원 명의들을 소개한다.
위암
노성훈 교수(외과)
연세대 의대 졸업(1978). 同 대학원 의학석사(1982), 고려대 의학박사(2000)
진료분야: 위암, 외과종양학, 암전이 기전 및 치료
노 교수의 수술에는 세 가지가 없다. 메스, 콧줄(비위관), 심지(배액관)가 그것이다. 메스 대신 전기 소작기를 사용해 수술시간을 반으로 줄였다. 절개부위도 줄였다. 분비액과 가스를 빼는 콧줄과 고름을 빼는 심지 사용도 과감히 생략해 오히려 환자들의 회복을 도왔다는 평가다. 8천명 넘는 환자의 수술을 담당했다. 수술 후 사망률 0.5%, 합병증 15%, 5년 생존율 64.8%라는 수치를 자랑한다.
간암
한광협 교수
연세대 의대 졸업(1979). 同 대학원 박사, 대한간암연구회 회장
진료분야: 소화기내과, 간암
간은 우리 몸의 장기 중 가장 큰 장기다. 한광협 교수는 ‘간’ 전문가다. 만성바이러스성 간질환이 주요 연구 분야다. 간암의 조기 진단과 치료법 개발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2008년 아태 간 학회 간암진료 기준안 마련에 한국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현재 B형 간염과 C형 간염의 발병기전, 자연경과와 항바이러스 치료법, 간경변증의 합병증 예방과 치료법을 연구 중이다.
대장암
김남규 교수
연세대 의대 졸업(1981). 同 대학원 석ㆍ박사, 대한대장항문학회 이사장
진료분야: 대장항문외과(대장암ㆍ직장암 수술, 항문질환, 유전성 대장암)
김남규 교수는 암을 ‘천의 얼굴을 가진 불청객’이라 말한다. 같은 대장암이라도 사람마다 증상과 치료법이 제각각이란 뜻이다. 김 교수에게서 수술을 받은 환자의 평균 재발률은 국내에서 가장 낮은 그룹에 속한다. 특히 직장암 재발률은 7.2%로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환자 삶의 질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수술에 임해 환자의 만족감이 높은 편이다. 수술 후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빼놓지 않고 경청한다.
유방암
박병우 교수
연세대 의대 졸업(1984). 同 대학원 석ㆍ박사, 한국유방암학회 학술ㆍ기획 위원장
진료분야: 유방암, 유방질환
유방암은 우리나라 여성 암 중 발병률 1위인 암이다. 특히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는 절반 이상이 40세 이하의 비교적 젊은 나이다. 박병우 교수는 한해 300여 명의 유방암 환자를 수술하는 대표적인 유방암 명의다. 세브란스병원 유방암클리닉에서 치료받은 환자의 10년 생존율은 80%에 육박한다. 박 교수는 “수술 후 채식주의자가 되는 환자도 있는데 육류 섭취의 무조건적 제한보다는 균형 잡힌 식단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폐암
김주항 교수(내과)
연세대 의대 졸업(1981). 미국 국립암연구소 연수, 폐암전문클리닉 원장
진료분야: 폐암, 두경부암, 식도암
김주항 교수는 폐암을 정복할 ‘신무기’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010년에 간접흡연에 노출돼 폐암에 걸린 환자가 직접 흡연으로 폐암에 걸린 환자보다 약물치료효과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해 화제가 됐다. 세브란스병원 폐암전문클리닉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의 5년 생존율은 70%에 달한다.
자궁암
김영태 교수(산부인과)
연세대 의대 졸업(1986). 同 대학원 의학석사(1989), 의학박사(1993)
진료분야: 자궁경부암, 난소암
자궁경부암은 현존하는 암 중 유일하게 예방 백신이 있는 암이다. 김영태 교수는 암 관련 단백질 특성 연구를 진행 중이다. 암세포는 유전자의 산물인 단백질 특성이 바뀌면서 세포 성장 조절에 이상이 발생해 나타난다. 이 점에 착안해 암세포가 된 단백질의 특성을 밝혀내면 특정 암에 대한 단서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김 교수의 연구가 관심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 발간되는 병원 경영 관련 잡지인 《헬스리더 미디어》(HealthLeaders Media)가 2009년에 병원 고위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환자 경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사했다. 응답자의 33%가 가장 중요한 화두로 생각한다고 답했고 54%는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5가지 이슈 중 하나라고 응답했다.
미국의 클리블랜드 병원(Cleveland Clinic)의 경우, 환자 경험이라는 개념을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적용 방침은 크게 5가지로 나뉜다. ▲환자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 ▲병원 환경 개선 ▲의료진 등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성취도와 만족도 개선 ▲의료서비스 진행 과정 개선 ▲전 세계적인 리더십 발휘 등이다.
구체적인 실천 내용 중에는 환자복의 ‘변신’이 눈에 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Diane von Furstenberg)가 디자인을 맡았다. 환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꼭대기 층에 통유리로 된 테라스도 설치했다. 당일 예약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바꾼 것도 눈에 띈다. 환자들의 정서 순화를 위해 3000여 개가 넘는 예술작품을 병원 곳곳에 전시하기도 한다.
올해 처음 병원 운영 방침으로 천명했지만, 세브란스병원은 이미 ‘환자 경험’을 실천하고 있는 게 아닐까. 클리블랜드 병원처럼 세브란스병원에도 400여 점의 예술품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의과대학에 전시한 것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병원에 전시한 작품만 400여 점이다. 이 중에는 기증받은 작품도 많다. 병원 입구에 있는 청동 작품 <소리-만남>은 감정가가 4억6700만원에 달한다. 서울대 미대 교수였던 전준 교수의 작품이다. 전준 교수의 자제가 연세대 의대에 진학한 인연으로 세브란스병원에 기증했다고 한다.
새로운 병원 경영 철학 ‘환자 경험’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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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브란스 새 병원 입구에 있는 청동 작품 〈소리-만남〉. |
2007년 국내 최초로 JCI 평가인증 받아
2011년 12월에는 국가고객만족도 조사(NCSI)에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삼성서울병원이었고 3위는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이었다. 세브란스병원이 대기업이 만든 병원과 국립병원을 제친 것이다. 국가고객만족도 조사는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지난 2년간 해당 병원에서 2번 이상 진료를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세브란스병원이 JCI 인증을 받은 후 다른 병원들도 앞다투어 인증 획득에 나섰다. 고려대 안암병원, 전남대병원(화순), 인하대병원 등이 인증을 받았고, 이제는 일부 1차 의료기관까지 인증에 도전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이 시작하고 국내 의료계에 관행처럼 퍼진 것은 JCI뿐만이 아니다. 2005년에 도입한 전사적 자원관리(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기업에서 여러 가지 자원의 흐름과 용도를 전체 시스템을 통해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경영기법을 병원에 적용한 것이다. 종합병원으로서는 최초였다.
국내병원 최초로 JCI 인증을 받은 후 세브란스병원은 블루크로스 블루실드(Blue Cross Blue Shield)라는 미국 최대 규모의 보험회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이 보험회사의 해외의료서비스 대행사를 통한 해외환자 진료에 관한 협약이었다. 이 보험에 가입한 미국인이 세브란스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미국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처럼 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내용의 계약이었다. 세브란스병원의 의술과 진료 시스템을 미국의 병원과 사실상 동등한 수준이라고 인정한 셈이다.
2010년 3월 한국을 방문한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갑작스럽게 복통을 일으켜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이때도 JCI 인증이 병원 선택의 한 요소였다고 한다. 이철 연세의료원 원장의 말이다.
“키신저 전 장관이 호텔에 계시다가 복통을 일으켰어요. 당시 명동의 웨스틴 조선호텔에 묵고 있었는데 세브란스로 오셨습니다. 증세는 심각한 게 아니었어요. 미국으로 돌아가시고 나서 치료 잘 받았다고 감사편지도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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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1월 12일에 세브란스병원에서 JCI 공식 시뮬레이션 교육이 진행됐다. 우리나라와 미국, 싱가포르, 태국 등 6개국, 29개 의료기관에서 80여 명이 참가했다. |
한국 의료의 흐름을 주도해 온 세브란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세브란스병원의 존재 자체가 한국 의료 발전의 초석이었다. 특히 외과의 설립과 발전에는 러들러(Ludlow) 교수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러들러 교수는 세브란스병원의 창립자금 기부자인 루이스 세브란스(Severance) 씨의 주치의였다.
의학교육도 마찬가지다. 현재 한국의 의대생이면 모두 거치는 ‘인턴’ 역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전)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제도다. 1914년 처음으로 실시됐다. 4년의 재학기간 동안 충분한 임상 실습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시작한 제도였다. 세브란스의전 졸업생들은 졸업 후 1년 동안 본인이 원하는 과를 순회하면서 실습 경험을 쌓았다.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전문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세브란스의전이 인턴 제도를 시작한 이후 다른 의학교에서도 조수(助手) 혹은 부수(副手)라는 명칭으로 같은 제도를 운영했다. 이것이 오늘날 의사직의 정규 수련 과정인 인턴제로 정착한 것이다.
환자 권리장전 최초 선포
‘첫째, 모든 환자는 인간으로서의 관심과 존경을 받을 권리가 있다. 둘째, 모든 환자는 의료진의 성실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
지금으로서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19년 전에, 그것도 병원 측에서 발표한 것이라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1993년 3월 세브란스병원은 한국 병원으로서는 최초로 ‘환자 권리장전’을 선포했다. 요즘에는 거의 모든 병원에서 볼 수 있는 환자 권리 선포문의 시발 또한 세브란스였던 것이다. 사회 전반에 군사문화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 있고, 의사라는 전문가와 환자 사이의 위계 관계가 엄격했던 분위기 속에서 환자 권리장전은 의료계에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권리장전의 나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셋째, 모든 환자는 담당 의료진의 전문분야에 대하여 알 권리가 있다. 넷째, 모든 환자는 담당 의료진으로부터 자신의 질병, 현재의 상태, 치료계획 및 예후에 대한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 다섯째, 모든 환자는 자신의 질병 치료를 위한 새로운 의학적 시도나 교육의 참여 여부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여섯째, 모든 환자는 치료, 검사, 수술, 입원 등의 의료행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시행여부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일곱째, 모든 환자는 담당 의료진이나 법적으로 허용된 사람을 제외하고는 개인의 의무 기록 열람을 금함으로써 진료상의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여덟째, 모든 환자는 진료와 관련하여 알려진 사생활의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아홉째, 모든 환자는 진료 목적으로 탈의하더라도 신체의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열째, 모든 환자는 진료비 내역에 대하여 알 권리가 있다.’
| ▣ 세브란스병원의 국내 최초 기록 1885년 최초의 근대식 병원 창립 1886년 최초의 의학 교육기관 설립 1956년 심장수술 시술 1969년 암센터 설립 1993년 환자권리장전 선포 1996년 폐이식술 성공 2005년 로봇수술 성공 2007년 국제의료기관(JCI) 인증 획득 2010년 JCI 재인증 |
소액 기부 시대 열어
새 병원 건축 기금 모금에 6079명이 참여해 600여억 원을 모은 것도 세브란스병원이 최초가 아닐까 한다. 이 중에는 1억원 넘는 고액을 기부한 사람도 있었지만, 자신의 봉급 중 일부를 고정으로 납부하거나 저금통을 깨서 낸 고사리손 등 100만원 미만의 소액기부가 상당수를 차지했다. 소액 기부문화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계기로 볼 수 있다.
미국의 부호 루이스 세브란스의 기부로 세워진 세브란스병원의 제2막을 연 것이 새 병원 건축이었다. 재벌이나 국가 등의 든든한 ‘빽’이 없기 때문에 모금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이렇듯 많은 사람의 정성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주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연세대와도 재정을 따로 관리한다. 연희전문과 세브란스병원이 합쳐질 때부터 정한 원칙이다.
신축에 1800여억 원 이상이 들다 보니 대기업의 힘을 빌리려 시도한 적도 있었다. 새 병원 기공 당시 의료원장이었던 김일순(金馹舜) 명예교수의 증언이다.
“당시 연세대는 운영상 문제점을 찾아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전략을 수립하는 용역을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 맡기고 있었습니다. 이 용역에 우리 의료원은 제외돼 있었지만, 용역팀과 접촉은 하고 있었지요. 맥킨지는 당시 LG의 경영진단도 하고 있었는데 맥킨지 측에서 송자 총장을 통해 LG와 합작해서 병원을 짓는 일을 주선해 줄 수 있다는 의견을 전해 왔습니다. LG 측에서는 병원을 지을 노하우가 없고, 짓는다고 해도 일류 의료진을 확보할 방안이 없어서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LG에서 진단팀을 우리 의료원에 보내와 3개월간 상주하면서 합작 가능성을 조사했어요. 그 결과 타당성이 높다는 보고서를 본부에 제출했습니다. 핵심 조건은 LG가 비용을 부담하고, 우리는 기술을 맡고, 연세대 법인 이사회 산하에 양측 동수의 임원으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병원 운영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 이름은 ‘LG 세브란스병원’으로 정해졌다. 구본무(具本茂) 회장과 병원 측이 최종 합의까지 했지만, LG와 세브란스의 합작은 결국 무산됐다. LG사장단 회의에서 ‘병원의 소유주는 연세대이며 법적으로 LG는 소유권이 없다. 우리는 돈만 대고 아무 힘이 없다’는 등의 얘기가 나왔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암 완치에 도전한다-전문병원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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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5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새 병원 봉헌식에 참석한 세브란스 전신 제중원 초대교장 에비슨의 손녀 조이스 에비슨 블랙(좌측)과 병원 설립 기부자 세브란스의 고손녀 루이즈 프랭크. |
지난 10월 한 권의 의미 있는 보고서가 나왔다. 2000년에 암을 진단받은 4600여 명의 생존율을 조사한 보고서였다. 보고서는 전체 암 환자의 절반가량이 10년 이상 생존해 있다고 밝혔다. 연세암센터가 낸 자료였다. 연세암센터는 1995년부터 종양등록사업을 시작했다. 역시 국내 최초다. 연세암센터 측은 ‘이 자료를 향후 암환자 건강관리 지침이나 연령별 건강검진 가이드라인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조사 취지를 밝혔다. 건강해져 병원 문을 나선 환자의 삶을 통해 또 다른 암환자의 삶을 구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외면받았던’ 암에 대한 연구에도 세브란스가 나서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의 송시영(宋始英) 교수는 췌장암, 담도암의 선구자다. 항암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동시에 써서 췌장암을 치료하는 요법을 국내 최초로 시도했다. 지금은 국내에서 췌장암을 치료하는 일반적인 요법으로 자리 잡았다. 송 교수의 말이다.
“췌장암과 담도암은 대표적인 고난이도 난치성 암입니다. 그런데 담도암 같은 경우는 약 자체가 없습니다. 저희 병원에서는 최초로 임상실험을 진행 중입니다. 의료기기 개발도 하고 있어요. 캡슐 내시경이 대표적인 개발 사례입니다. 세계 최초로 개발된 일회용 내시경 개발에도 저희가 참여했고요. 대학병원의 R&D가 난치성 암에 집중되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브란스가 바뀌면 의료계가 바뀐다”
병원에 대한 반 우스갯소리 중, ‘진단은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은 아산병원, 장례는 삼성의료원’이란 말이 있다. 세브란스병원의 고민이 여실히 드러나는 말이다. 이에 대해 서울의 모 대학병원 관계자는 “대형병원의 브랜드는 재단의 브랜드 가치를 그대로 이어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사실 요즘에는 서울 시내 주요 대형병원에 있는 의사라면 대부분 실력이 출중합니다. 병원마다 잘하는 분야가 다를 순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의술이 확연히 차이 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결국 모기업 격인 재단의 유명세나 이미지가 투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삼성서울병원은 삼성의 브랜드 가치를 안고 가고, 아산병원은 현대 혹은 정주영(鄭周永) 회장의 이미지를 안고 있어요. 서울대병원은 국립대라는 확실한 타이틀이 있고요.”
병원 경영을 연구하는 모 연구원은 이런 말을 했다.
“소위 업계 ‘선수들’끼리는 이런 말을 합니다. ‘삼성병원이 바뀌면 병원이 바뀌지만 세브란스가 바뀌면 의료계 전체가 바뀐다’는 말이죠. 세브란스가 변화의 물꼬를 튼 건 이후에 의료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JCI 인증을 보세요. 세브란스가 먼저 받은 이후 다른 병원들도 수억 원씩 드는 일종의 ‘외부 감사’를 자청해서 받겠다고 난리지 않습니까. 세브란스가 뭘 한다고 하면 업계는 일단 긴장을 합니다.”
올해 새로 선포한 ‘환자 경험’이 ‘세브란스’라는 브랜드의 새로운 핵심 가치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정·재계 ‘거물’들부터 그저 몸이 아픈 평범한 시민들까지, 환자라면 모두 들어서는 순간부터 최상의 의료 경험을 할 수 있는 병원이 되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적어도 지금까지 세브란스가 가는 길은 그대로 한국 의료의 이정표가 돼 왔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6대 癌’ 고치는 세브란스 명의들
한국인이 가장 빈번하게 걸리는 암(癌)은 위암ㆍ대장암ㆍ폐암ㆍ간암ㆍ유방암ㆍ자궁암이다. (빈도순 정렬) 비율을 보면 암환자 100명 중 65명은 위의 여섯 개의 암 중 하나와 싸우고 있다. 각 암별 세브란스병원 명의들을 소개한다.
위암
노성훈 교수(외과)연세대 의대 졸업(1978). 同 대학원 의학석사(1982), 고려대 의학박사(2000)
진료분야: 위암, 외과종양학, 암전이 기전 및 치료
노 교수의 수술에는 세 가지가 없다. 메스, 콧줄(비위관), 심지(배액관)가 그것이다. 메스 대신 전기 소작기를 사용해 수술시간을 반으로 줄였다. 절개부위도 줄였다. 분비액과 가스를 빼는 콧줄과 고름을 빼는 심지 사용도 과감히 생략해 오히려 환자들의 회복을 도왔다는 평가다. 8천명 넘는 환자의 수술을 담당했다. 수술 후 사망률 0.5%, 합병증 15%, 5년 생존율 64.8%라는 수치를 자랑한다.
간암
한광협 교수연세대 의대 졸업(1979). 同 대학원 박사, 대한간암연구회 회장
진료분야: 소화기내과, 간암
간은 우리 몸의 장기 중 가장 큰 장기다. 한광협 교수는 ‘간’ 전문가다. 만성바이러스성 간질환이 주요 연구 분야다. 간암의 조기 진단과 치료법 개발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2008년 아태 간 학회 간암진료 기준안 마련에 한국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현재 B형 간염과 C형 간염의 발병기전, 자연경과와 항바이러스 치료법, 간경변증의 합병증 예방과 치료법을 연구 중이다.
대장암
김남규 교수연세대 의대 졸업(1981). 同 대학원 석ㆍ박사, 대한대장항문학회 이사장
진료분야: 대장항문외과(대장암ㆍ직장암 수술, 항문질환, 유전성 대장암)
김남규 교수는 암을 ‘천의 얼굴을 가진 불청객’이라 말한다. 같은 대장암이라도 사람마다 증상과 치료법이 제각각이란 뜻이다. 김 교수에게서 수술을 받은 환자의 평균 재발률은 국내에서 가장 낮은 그룹에 속한다. 특히 직장암 재발률은 7.2%로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환자 삶의 질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수술에 임해 환자의 만족감이 높은 편이다. 수술 후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빼놓지 않고 경청한다.
유방암
박병우 교수연세대 의대 졸업(1984). 同 대학원 석ㆍ박사, 한국유방암학회 학술ㆍ기획 위원장
진료분야: 유방암, 유방질환
유방암은 우리나라 여성 암 중 발병률 1위인 암이다. 특히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는 절반 이상이 40세 이하의 비교적 젊은 나이다. 박병우 교수는 한해 300여 명의 유방암 환자를 수술하는 대표적인 유방암 명의다. 세브란스병원 유방암클리닉에서 치료받은 환자의 10년 생존율은 80%에 육박한다. 박 교수는 “수술 후 채식주의자가 되는 환자도 있는데 육류 섭취의 무조건적 제한보다는 균형 잡힌 식단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폐암
김주항 교수(내과)연세대 의대 졸업(1981). 미국 국립암연구소 연수, 폐암전문클리닉 원장
진료분야: 폐암, 두경부암, 식도암
김주항 교수는 폐암을 정복할 ‘신무기’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010년에 간접흡연에 노출돼 폐암에 걸린 환자가 직접 흡연으로 폐암에 걸린 환자보다 약물치료효과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해 화제가 됐다. 세브란스병원 폐암전문클리닉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의 5년 생존율은 70%에 달한다.
자궁암
김영태 교수(산부인과)연세대 의대 졸업(1986). 同 대학원 의학석사(1989), 의학박사(1993)
진료분야: 자궁경부암, 난소암
자궁경부암은 현존하는 암 중 유일하게 예방 백신이 있는 암이다. 김영태 교수는 암 관련 단백질 특성 연구를 진행 중이다. 암세포는 유전자의 산물인 단백질 특성이 바뀌면서 세포 성장 조절에 이상이 발생해 나타난다. 이 점에 착안해 암세포가 된 단백질의 특성을 밝혀내면 특정 암에 대한 단서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김 교수의 연구가 관심을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