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어른이 어른처럼 행동을 해야 우리가 어른을 모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기가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면서 젊은 사람들한테 ‘어린 것들이 어쩌고저쩌고’라고 하는 어른은 어른도 아니죠. 무조건 자기만 옳다는 어른은 싫습니다”
⊙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하기 ‘글쎄…’, 음주운전 안 하기ㆍ버스 앞 한 줄 서기 ‘반드시 지켜야’
⊙ ‘공공장소에서 시비가 붙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잘못을 가려야 한다’(20대 52%, 《월간조선》 설문)
⊙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 베풀고, 아랫사람이 감동을 받아서 하는 것이 禮… 수직적 개념 아냐”
(청학동 장규채 훈장)
⊙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하기 ‘글쎄…’, 음주운전 안 하기ㆍ버스 앞 한 줄 서기 ‘반드시 지켜야’
⊙ ‘공공장소에서 시비가 붙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잘못을 가려야 한다’(20대 52%, 《월간조선》 설문)
⊙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 베풀고, 아랫사람이 감동을 받아서 하는 것이 禮… 수직적 개념 아냐”
(청학동 장규채 훈장)
지난 5월 22일, 수원행(行) 지하철 1호선에서 20대 남성이 80대 남성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야! 나와. 미친 새끼가 씨발. 나이 처먹고 뭐 하는 거야. 미친 새끼네. 서울역에 내려서 경찰서 갈래? 서울역에서 안 내리면 너 내 손에 죽는다. 사람 잘못 건드렸어, 씨발.”
80대 남성이 옆자리에 앉은 그에게 ‘다리를 꼬고 앉아 옷에 구두가 닿으니 치워달라’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보다 못한 등산객 한 명이 ‘젊은 사람이 그러면 못 써’라며 막아섰다. 20대 남성은 등산객에게까지 욕을 내뱉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승객들은 불편한 듯 하나 둘 다른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침 이 장면을 촬영한 한 이가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노인에게 욕을 하네요’라고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리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졌다.
욕설을 퍼부은 남성에게는 ‘20대 막말남’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한국 사회가 여기까지 왔다니 정말 슬프다’, ‘애들 요즘 왜 저렇게 되는 거지?’라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지하철 막말남 처벌’을 위한 서명운동까지 이어졌다.
이런 일은 잊힐 만하면 한 번씩 나온다.
지난해에는 한 여학생이 나이가 지긋한 미화원 아줌마에게 ‘내가 마신 우유곽을 버려라’며 말을 시작해 화장실에서 욕설을 퍼부은 ‘경희대 패륜녀 사건’이 있었고, 연세대에서는 60대 남성 미화원과 몸이 부딪히자 욕설을 하고, 쓰레기봉투를 밟아 찢어버린 ‘연세대 쓰레기남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12월에 일어난 일명 ‘지하철 반말녀 사건’은 이랬다.
반말녀: 나 이제 내리니까, 그때 앉아.
할머니: 말 조심해. 그러는 거 아니야.
반말녀: 아, 모르면 말 걸지 마. 나 모르는 인간이 말 거는 거 존나 싫으니까.
할머니: 인간이 뭐야. 인간이. 아버지 같고 할아버지 같은 사람한테.
반말녀: 우리 아빠는 이러지 않아.
할머니: 아빠는 너 이러는지 몰라. 그러면 안 돼.
반말녀: 아니. 내가 왜 어디서 굴러 떨어진 인간들한테 이런 소릴 들어야 돼? 안 그래도 짜증나 죽겠는데. 나 지금 속 시끄러우니깐 말 걸지 마. 괜히 말 걸다가 욕 얻어 처먹어 모르는 애한테 씨부렁씨부렁. 인간 봐가면서 건드려. 어떻게 날 건드려. 안 그래도 속 시끄러워서 소리지르고 싶은데.
할머니: 말세야, 말세야.
이 외에도 젊은이들의 ‘막말(혹은 행동) 사건’은 끝이 없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이런 얘기를 접할 때마다 ‘말세(末世)’를 외친다.
나이 든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세태가 하루 이틀 만에 생겼을 리는 만무하다. 물론 이런 이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가 많다. 과거와 달리 왜 이들은 나이 많은 어른을 존중하지 않는 걸까. 혹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는 없을까. 이런 근원적인 물음에서 취재를 시작했다.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느냐’는 말에 60대와 다퉈
《월간조선》은 지난 8월 2~3일 이틀에 걸쳐 20대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만약에 나이가 많은 이는 무조건 공경을 하고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설문조사는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과 시비가 붙으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52%는 ‘나이와 상관없이 잘못을 가려야 한다’고 답했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참아야 한다’는 답은 37%뿐이었다.
‘당신은 어떤 사람에게 예의를 갖춥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절반이 채 되지 않는 46%만이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예의를 갖춘다’고 답했다. ‘어른들이 어른답게 행동해야 예의를 갖춘다’는 답변(전체의 28%)이 2위였다.
‘당신은 나이가 존중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근소한 차이이기는 했지만, 전체의 48%가 ‘나이보다 어떤 일이 벌어진 상황(혹은 사회적 지위)에 따라 존중해야 한다’고 했고, 47%는 ‘나이가 많으면 일단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위의 설문 항목을 해석하면 간단하다.
20대는 상대방을 나이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이가 많다고 공경을 하거나, 다소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참지 않는다. 이들은 시비가 붙을 경우 잘잘못을 정확하게 따지고, 어떤 일이 일어난 상황을 주시한다. 이들에게 ‘나이가 많은 사람은 공경해야 한다’는 이른바 ‘연장자 프리미엄’은 통하지 않는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20대 중 많은 이가 나이 많은 사람과 싸우거나, 그들로 인해 기분 나빴던 적이 있다고 했다.
지하철에서 60대 남성과 다툰 적이 있다는 안근우(29ㆍ직장인)씨의 얘기다.
“스무 살 때 친구들과 지하철을 탔을 때예요. 일반석에 앉아 있는데 60대쯤 돼 보이는 할아버지가 다가와서 자리를 비키지 않는다고 다짜고짜 욕을 했습니다. 술에 좀 취한 듯 보이기는 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젊은 사람들에게 욕하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요?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죠.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네 부모는 너를 그렇게 가르쳤느냐’는 겁니다. 부모 욕을 하는 데 참는 사람이 있나요? 더 이상 듣고 있지 못하겠어서 같이 싸웠습니다. 우리가 부모가 있는 것처럼, 당신들도 나 같은 자식이 있을 텐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지 싶었습니다. 솔직히 어른들이 어른처럼 행동을 해야 우리가 어른들을 모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기가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면서 젊은 사람들한테 ‘어린 것들이 어쩌고저쩌고’라고 하는 어른들은 어른도 아니죠. 고리타분한 생각으로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 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만 옳다는 어른들은 싫습니다.”
김윤기(26ㆍ대학생)씨는 도서관에서 50대 남성과 싸웠던 얘기를 했다.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는 아저씨가 맨발로 시립도서관에서 냄새 풍기면서, 자리를 몇 개씩 차지하고 민폐를 끼쳤습니다. 자기가 도서관을 전세 낸 듯하더니, 난데없이 저한테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말투가 권위적이었어요. ‘처음 보는 사람한테 왜 반말을 하느냐’고 했더니 ‘도서관 밖으로 따라나오라’더군요. 저도 할 말 다하고 싸웠습니다. 자기보다 나이가 적어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반말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까지 어른 대접을 해줘야 합니까? 나이만 많다고 권위를 세우면 전부 다 어른인가요?”
20대 인턴기자가 노약자석에 한번 앉아보니…
20대의 경험을 직접 해보기로 했다.
《월간조선》의 김윤미 인턴기자는 지난 8월 1일 오후 5시, 지하철 1호선에 올랐다. 나이 많은 어른들이 가장 많은 곳이 1호선이라고 판단했다. 일반석은 사람들이 전부 앉아 있었고, 노약자석은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김 기자가 이 자리에 앉자 옆에 있던 김진풍(76)씨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자꾸 쳐다봤다. 김 기자가 버르장머리 없는 척 가장하고 김씨와 나눈 대화다.
기자: 왜 자꾸 보세요. 저 노약자석에 앉으면 안 되는 거예요? 자리가 비어 있으니까 좀 앉아 있다가 나중에 양보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 쳐다보세요?
김씨: 여기는 노약자석이잖아. 노인들 앉으라고 정해 놓은 거니까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니야?
기자: 젊은 사람들이 왜 노약자석을 양보해야 돼요?
김씨: 자리 양보하고 서서 가면 뿌듯하잖아. 그런 게 미덕 아니야? 인간이면 지킬 줄 알아야 하는 것. 그게 도덕인 거야. 학교에서 윤리 교육을 하지만 이런 건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야. 배우지 않아도 좋은 일 하면 뿌듯한 게 사람이야. 어떤 사람은 낳아준 것만 해도 부모한테 고맙다는데, 누구는 부모가 자기한테 해준 게 뭐냐고 따지잖아. 그거랑 똑같은 거야.
기자: 그런 말 듣다가 욕하는 젊은 애들도 있던데요.
김씨: 그러면 안 되지. 어디 어른한테 욕을 하고 그래. 나이 든 사람이 좀 잘못했다손 쳐도 그렇게 대드는 건 아니지. 그래도 어른한테 그러면 안 돼.
기자가 김씨와 한창 대화를 하는 와중에 60대로 보이는 부부가 그 앞에 섰다고 한다. 자리를 금세 양보하지 못했더니, 김 기자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점점 사나워졌다고 한다.
김씨의 얘기를 들어보면, 나이 든 연장자들은 젊은이들의 ‘자리 양보’ 등에 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여타의 ‘막말 사건’을 두고 ‘나이 든 사람이 좀 잘못했다손 쳐도’ 어린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도덕이란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
도덕(morality)은 라틴어 ‘모레스(mores)’에서 유래됐다. 모레스는 행동에 대한 규제를 말한다. 고등학교 도덕 교과서에서 말하는 도덕은 이렇다.
<도덕이란 사회의 구성원들이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춰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의 총체다. 외적 강제력을 갖는 법과 달리 각자의 내면적 원리로 작용하며, 종교와 달리 초월자의 관계가 아닌 인간 상호 관계를 규정한다.>
논어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鄕人飮酒杖者出斯出矣(향인음주장자출사출의)>
고을 사람들이 술이 나오는 연회에서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물러가는 것을 지켜보고 난 뒤에 자신이 물러나는 것을 정도(正道)로 여겼다는 얘기다.
《맹자》(孟子)에는 ‘친친(親親)은 인야(仁也)요, 경장(敬長)은 의야(義也)니, 무야(無也)는 달지천하야(達之天下也)’고 나와 있다. ‘어버이와 썩 친함은 인이요,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의이니,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온 천하에 두루 통하기 때문이다.’ 어른 공경을 강조한 대목이다.
‘공자왈, 맹자왈’을 논하기에 앞서, 어른 공경 사상이 우리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한 것은 사실이다. 또 20대 중에서 이 관습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이도 다수다.
나이에 대한 권위주위적 문화가 바뀌기 시작
정태민(25ㆍ대학생)씨는 주위에서 예의가 바르다는 소리를 듣는다. 지하철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잘 양보하고, 길 가다가 무거운 짐을 옮기는 어른이 있으면 대신 들어준다.
그의 얘기는 이렇다.
“그냥 제 만족이지요. 제 앞에 어르신이 서 있는데 자리 양보를 안 하고 앉아서 가면 제 마음이 더 불편하니까 차라리 양보를 하는 편이 좋습니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제 마음이 편하니까 하는 거죠.”
옆에 있던 임신영(23ㆍ대학생)씨는 “내가 양보를 하지 않고 계속 앉아서 간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 때문에 양보를 하는 편”이라고 했다.
박찬구(朴贊玖) 서울대 윤리교육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는 노인이면 무조건 양보를 해야 한다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심하게 말하자면 몸이 너무 아픈 상황에서, 심지어는 여성들이 하혈을 할 만한 상황에서도 자리 양보를 해야 했습니다. ‘나이’에 대한 일종의 권위주위적인 문화가 우리 사회를 지배했죠. 하지만 이런 것이 꼭 좋은 것이었을까요? 사회가 발전하고 합리성을 중시하는 풍조가 늘어가면서 이런 무조건적인 존중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의 풍조를 빠르게 흡수한 것이 흔히 말하는 젊은 세대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나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黃相旻) 교수는 20대들의 행동을 이렇게 바라봤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나이가 많은 사람에 대해 존경과 배려가 예전보다 덜한 것은 사실입니다. 오랫동안 ‘나이’에 대해 존중을 해왔던 기성세대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경’에 대한 부분이 약해졌다고 해서 20대가 도덕적이지 않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의 20대는 상황에 따라서 기성세대보다 훨씬 도덕적입니다. 도덕은 법전처럼 명문화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고 믿는 하나의 틀입니다. 그 틀의 패러다임이 기성세대들이 느꼈든, 느끼지 못했든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과거와는 다른 도덕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죠.”
“등산복 입고 자리 양보받으려는 사람들 보면 웃겨”
이들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오늘날 20대가 ‘어른 공경’ 부분을 예전처럼 당연시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8월 8일 광화문 모 식당에 20대 여섯 명이 모였다. 이동욱(22)씨와 이원준(27)씨는 대학을 휴학 중이고, 25세 동갑내기인 정지상씨와 노태준씨는 대학 재학 중이다. 《월간조선》 20대 인턴기자 두 명이 동석했다. 이들의 대화 내용 중에는 기성세대가 생각하기에 불쾌할 수 있을 만한 아슬아슬한(?)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전원은 기사에 실명(實名)을 게재하는 데 동의했다. ‘거리낄 것이 없다’는 20대의 자신감이었을까. 그들과의 대화는 ‘지하철, 버스에서의 자리 양보’로 시작했다.
노태준: 노인들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 임신부들한테는 자리를 양보합니다. 우리도 자리를 양보하는 데 기준이 있잖아요. 어떨 때는 그 사람들보다 내 몸이 더 안 좋을 수 있는 거잖아요.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 남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힘들면 비켜주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정지상: 노약자석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노약자석을 비워놔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 같아요. 내가 아프면 앉을 수도 있고, 앉아 있다가 어르신이 타면 양보해 줄 수도 있잖아요. 아예 처음부터 어르신들 앉으라고 비워놔야 한다는 것 자체가 권위적인 것 같아요.
이원준: 특히 등산복 입고 자리 양보받으려는 사람들 있잖아요. 좀 우습지 않나요? 등산을 할 정도면 그만큼 건강하다는 건데 굳이 자리 양보받으면서까지 앉아 가야 하나요?
자리 양보 안 한다고 꾸짖는 어른들과 말 섞기 싫어 일어난다
기자: 혹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꾸짖는 어른들은 없었습니까?
이원준: 있었죠. 그냥 내가 자리를 피해요. 그런 사람이랑 잘못 엮이면 귀찮아지니까요. 진중권이 그랬잖아요.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이길 자신이 없다고. 저도 그런 것 같아요. 귀찮으니까 내가 자리를 피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죠.
이동우: 가끔 지하철에서 통화할 때 어른들이 시끄럽다고 혼내는 분들 있잖아요. 그럴 때 저도 그냥 그 자리를 피하는 편이에요. 그 사람이랑 싸우기 싫어서요. 내가 통화하든 말든 그 사람이 나한테 뭐라고 할 권리는 없잖아요?
기자: 어른들의 얘기가 맞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하기 싫어서 피한다는 소린가요?
이동우: 그렇죠. 그냥 그런 상황 자체가 싫은 거죠. 내가 저 사람하고 말을 하는 시간조차 아깝다, 짜증난다 하는 정도?
이원준: 그런 사람들과 부딪쳐봐야 뭐 얻는 게 없는 거죠. 다투기 싫으니까 피하는 거죠.
정지상: 옛날에 권위주의가 지배하던 시기 때는 그게 통했지만 지금은 개인주의가 자리를 잡아 가고 있잖아요. 지금은 각자 개인의 판단에 따라 자리를 양보할 만한 상황에서는 양보하는데, 오히려 어른들이 그런 시대의 흐름을 못 따라온다고 생각해요.
이원준: 지하철 막말남 같은 경우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기도 하죠. 그 막말남이 도를 넘어선 것은 물론 사실이지만, 그 외에 비슷한 경우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저는 가끔 지하철에서 교회 다니라고 하시는 분 있잖아요.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하는 사람들. 그럴 때 혼자 구시렁대거든요. 나도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 거니까요.
민주화 여파로 평등의식 강해져
김홍중(金洪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20대의 성향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지금 젊은이들의 행동은 세대적인 의미에서 ‘윗세대들 다 썩었다, 우리가 바꿔보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져보니까 말이 안 되고, 또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이면 노인에게 투하되는 권위를 철회하고 잘잘못을 따져보자는 것입니다. 굉장히 합리적인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는 어떻게 형성된 겁니까?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면 처음에는 부정적으로 느껴질 겁니다. 하지만 한국사회가 계속 진화해 온 민주화의 효과가 잘 반영돼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나 성별이나 직업, 이런 것과는 상관없이 평등한 방식으로 토론이나 논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가치관은 대단히 민주주의적인 가치관이거든요. 젊은이들이 이런 분위기에 쉽게 동화되고, 사람을 평가할 때 나이, 성별, 직업 등에 상관없이 바라보는 겁니다.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기성세대들에게는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약하다’는 느낌을 주는 겁니다.”
―민주화가 주요 원인이라는 소리입니까.
“신자유주의화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세계화, 정보화시대에서 노인들은 뒤처지고 있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능력대로 가자’는 게임의 룰이 노인을 대하는 태도에 반영되는 것인데, 정보화시대에 뒤처진 노인들이 이를 잘 못 받아들인다고도 볼 수 있죠. 경희대 패륜녀 사건의 후기를 보세요. 사건이 있은 후 이틀 만에 총학생회가 환경 미화원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해당 학생이 네티즌의 요구와 총학생회 설득으로 직접 사과를 하기도 했죠. 총학생회, 네티즌들의 태도를 보자면, ‘무조건 잘못됐다’, ‘다 뒤집자’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절제된 태도로 사건 자체를 풀어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화문에 모인 20대들은 ‘어른 공경’에 대한 추가 질문에 대해 시큰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들에게 ‘나이’가 전혀 대화의 주제가 되지 못한다는 확신이 들어,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들은 뜻밖에도 강제적 규범인 ‘법’ 이야기가 나오자 열성적으로 대화에 참여했다.
이원준: 침 뱉지 않기, 노상방뇨하지 않기, 길거리에 쓰레기 버리지 않기는 분명 경범죄에 해당되는 거잖아요. 법이라는 것이 제 의사와 상관없이 만들어졌다 해도 일단은 지켜야죠. 법은 개인의 권리보다 훨씬 우선시되는 거잖아요. 우리한테 공경 얘기를 하면서 이런 사소한 법을 지키지 않는 어른들은 싫어요.
정지상: 어른들이 많이 지키지 않는 게 음주운전이잖아요. 정말,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음주운전이에요.
이원준: 저도요. 저는 정말 싫어요. 음주운전 하는 어른들은 정말.
정지상: 특히 음주운전은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노태준: 저는 딱 한 번 해본 적은 있어요. MT에서 술 많이 먹고, 바다가 보고 싶어서 운전했어요. 그런데 그건 진짜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 이후로 다신 안 해요. 운전이라는 게 술을 안 먹어도 위험한 건데, 술을 먹고 한다는 건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일이죠.
이동우: 어른들이 우리보다 더 안 지키는 것 또 있어요. 진짜 이해가 안 되는 게, 버스나 지하철 탈 때 줄 안 서고 밀치고 뛰어가는 거…. 거기다가 지하철에서는 내리는 사람이 내린 다음에 승차해야 하는 거잖아요. 근데 무조건 빈자리가 보인다고 사람이 내리기도 전에 옆으로 막 비집고 타요. 진짜 그럴 때는 왜들 저러는지 싶어요. 기본적인 것도 안 지키는 거잖아요. 버스정류장에서 한 줄 서기 하라는데 그것도 안 하고…. 그래 놓고서는 나한테 반말로 찍찍 자리 비키라고 그러고.
“왜 어른들은 다짜고짜 반말을 하나요?”
정지상: 어른들은 왜 처음 보는 사람한테 다짜고짜 반말을 해요? 지하철 타면 ‘어이, 거기!’ 이래요. 기분 정말 나쁘죠.
노태준: 저는 경상도라 고향에 가면 사투리를 많이 쓰거든요. 어른들은 100% 반말이에요. ‘니 어디 사는데? 거기 어디?’라는 식으로요. 나이 들었다고 무조건 우리한테 반말하는 거 정말 민폐예요. 어른들은 그걸 모르나요?
이원준: 심하면요, 야! 와봐. 이것 좀 해봐. 이래요. 이건 뭐, 아예 하대(下待)를 하는 거잖아요.
이쯤에서 기자가 끼어들었다. 자리에 모인 20대 학생들이 ‘어른들의 반말’에 대해 격앙된 수준으로 한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기자: 정말 모르는 어른들한테 그렇게 많이 반말을 듣나요?
이원준: 거의 다. 정말 거의 다 그래요.
기자: 남성과 여성 중에서 어떤 사람이 더 많이 그러나요?
이원준: 제 경우는 할아버지들이 그랬어요. 할머니들이 반말하는 건 못 들어봤는데요.
이동우: 주로 할아버지, 회사 다니는 것 같은 아저씨들….
노태준: 걷다가 길 묻는 사람들 있잖아요. ‘어이, 여기 어떻게 가는지 알아?’ 대부분 이래요. 저는 대충 알려주고 말아요. 솔직히 나 언제 봤다고 반말로 묻느냐고 하고 싶은데, 아예 싸우는 게 싫으니까요. 빨리 말하고 보내버리는 거죠.
이동우: 저는 아예 무시해 버려요. 인정을 받고 싶으면 그만큼 대우해 줘야 하는 거잖아요. 어른들은 그러지 않으니까 대화가 안 통하는 거죠.
이원준: 저는 이 문제로 아빠랑 싸운 적이 있어요. 가족끼리 외식을 갔는데 아빠가 서빙 보는 직원한테 ‘이거 주고, 이거랑 이거 가져와’ 이러더라고요. 아빠한테 여쭤봤죠. 저 직원 본 적 있느냐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 왜 반말로 주문하느냐고요. 아빠가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남들에게 일을 많이 지시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몸에 밴 것 같은데 주의하겠다고요. 그 얘기 듣고서 마음이 풀렸어요.
정지상: 우리 아빠가 만약에 그러면…. 글쎄요, 며칠 동안 말 안 할 것 같은데요.
기자는 이들에게 ‘본인보다 어리거나, 10대의 학생들에게 반말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참석자들은 모두 “어리다고 무조건 반말을 하진 않는다”고 답했다.
20대는 어른들이 이렇게 행동할 때 싫다고 한다
실제로 기성세대가 보기에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20대들은 오히려 기성세대(혹은 나이 든 노인들)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월간조선》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항목 중에 ‘막말남, 패륜녀 사건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는 것이 있었다.
20대 응답자의 60%는 “어른의 잘못도 있지만, 젊은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답했다. 젊은 사람이 어른에게 욕을 한 것은 잘못이지만, 어른들이 젊은이로 하여금 욕을 하게끔 빌미를 제공한 것은 맞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자체 설문조사에서 ‘나는 어른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싫은가’를 주관식으로 물었다. 여기에 나온 답이 오늘날 20대의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싶다.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행동을 할 때’, ‘나이만 믿고 행동할 때’, ‘무조건적인 어른 공경을 요구할 때’, ‘아무에게나 반말할 때’, ‘어른이란 이유로 공공장소에서 에티켓을 지키지 않고 막 행동할 때’, ‘지위를 들먹이며 비양심적으로 행동할 때’, ‘관철시키려는 태도가 계속될 때’,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내리기 전에 타려고 할 때’, ‘지하철에서 술 취해서 이상하게 행동할 때’ 등이었다.
禮는 철저히 수평적인 것
20대들은 상황에 따라 판단하고 공경 받지 못할 행동을 한 어른들에게는 ‘예의상’의 공경조차 베풀지 않았다. 오히려 법을 지키지 않는 어른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20대들의 이런 사고방식을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당장 회초리를 들 것 같은 청학동 난야서당 장규채 훈장은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
“공경 받지 못할 행동을 한 어른들을 어떻게 공경할 수 있겠습니까? 원래 ‘예(禮)’라는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 베푸는 것입니다. 아랫사람이 감동을 받아서 하는 행동이 ‘예’입니다. 예는 본래 수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철저히 수평적인 것이 ‘예’입니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 어른들은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까.
“막무가내인 노인들까지도 받들어야 한다면, 그것이 무슨 조폭사회도 아니고 뭡니까? 효경(孝經) 등 어떤 동양의 고전에도 ‘무조건 나이 많은 사람을 받들라’는 얘기는 없습니다.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권위적인 사회가 된 것입니까?
“아랫사람한테 수직적으로 ‘어른이니까 받들라’는 것은 군국주의나 조선시대, 특히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때 ‘충(忠)’의 개념이 잘못 오도되고 그것이 전파됐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조선시대로 올라가 보면 임진왜란을 거치며 민초(民草)들이 위정자들에게서 희망을 잃어버립니다. 나라를 빼앗겼고, 민초들을 남긴 채 궁궐을 비우고 도망가지 않았습니까? 그 후 왕실에서 추락한 명예를 되찾기 위해 희한한 방법을 모색하는데 그것이 잘못된 예의 시초입니다. 예를 가지고 ‘너희가 어떻게 예를 아느냐’, ‘너희 상놈들은 알지 못한다, 오직 몇 퍼센트 가진 우리만 알 수 있다’는 식으로 내세우면서 예가 수직적인 개념으로 바뀐 겁니다. 하지만 예는 절대 수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수평적인 개념입니다.”
씨발을 ‘매우(very)’ 정도의 추임새로 사용
20대의 행동 중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듯한 행동 외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상욕을 입에 달고 사는 양 보이는 잘못된 언어 습관이 그것이다. 물론 욕을 하는 행위를 비(非)도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로 인해 공공장소에서 많은 이가 불쾌감을 느낀다면 도덕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
이날 광화문 모임에 나선 20대들에게 이에 대해 질문했다. 그들의 생생한 얘기를 들어보자.
이원준: 저는 꼭 욕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건 남자들과 여자들의 차이일 수도 있는데 남자들은 보통 친근감을 표시할 때 쓰거든요.
이동우: 맞아요. 다들 하지 않나, 습관적으로? 기분 좋을 때도 하고요. 그냥 친함의 표시예요. 편하면 편할수록 막말이 나가는 경우가 많죠.
노태준: 저도 경상도라 욕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씨발로 시작해서 씨발로 끝나거든요.
이원준: 그런데 이게 설명이 안 되는 게, 지금 세대에서는 씨발이 욕의 의미가 아니거든요. 뭐라고 표현하나. 뭐 추임새? 영어로 ‘very(매우)’ 같은 강조의 개념이거든요. 만약에 왜 우리한테 너는 자꾸 씨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느냐고 물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예요. 욕이 아니고, 적당히 섞어 쓰는 언어 중의 하나예요. 어른들이 이걸 따지고 들어가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예요.
노태준: 운동을 하고 나서 탄산을 먹을 때의 짜릿함 있잖아요. 그건 물로써 해결이 안 되는 거거든요. 젊은 세대에서는 그게 욕으로 승화된 것 같아요. 욕이 탄산 같은 존재예요. 인터넷 댓글도 비슷한 경우인데 저는 진짜 기발한 글을 봤을 때, ‘부?’ 이런 식으로 짧게 달아요. 이것도 그 뜻을 찾아보면 좋은 의미는 아니거든요.
이동우: 그냥 그런 거예요. 너 정말 반갑다라고 말을 하면 밋밋하니까. 야, 개새끼 씨발 존나 반갑다 하면 확실히 뜻이 전달되니까.
이원준: 우리가 욕을 하는 게 아니라 감탄사 정도로 쓰는 거라니까요.
기자: 지금 20대들끼리는 통한다고 해도, 공공장소에서 그런 대화를 듣고 불쾌해 할 사람을 생각하면 지양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원준: 조심은 하죠. 지금도 안 하고 있잖아요. 엄청 조심하고 있는 건데요.
노태준: 친구하고 통화하는 거 듣고 이상하게 쳐다보는 어른들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조심하려고는 하는데 그게 뭐 나쁜 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블랙홀 20대의 속마음
《월간조선》의 자체 설문조사를 분석하고, 20대들과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20대의 도덕관을 정리하면 이렇다.
어른들의 ‘나이’는 그들에게 절대적인 공경의 대상, 또는 존중해야 할 것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음주운전 등 법규범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 어른들이 자신들에게 반말하는 것에 대해 참지 못할 정도로 분노를 느끼지만, 정작 어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비속어 사용에 대해서는 친근감의 표시일 뿐이라고 반색한다.
대화에 나선 이들은 각자 어른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노태준: 기성세대 분들께서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으로 우리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얼굴이 이렇게 생겼듯이 각자 다 다른 삶이 있잖아요. 그거는 어른들이 ‘마음에 안 들어, 바꿔’ 이렇게 자신들이 원하는 20대로 안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정지상: 저는 질문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당신들께서는 자신의 행동이 독선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묻고 싶어요. 분명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이동우: 기성세대는 변화를 두려워하다 보니까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지 않잖아요. 그렇게 변해 가듯이 요즘 20대들은 저렇게 자기 표현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서로의 거리도 줄어들면서 조금 더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원준: 시대가 변하는 만큼 세대 간의 차이도 있잖아요. 도덕도 그렇고, 그런 것들이 꼭 나쁜 건 아니거든요. 단지 다를 뿐인데 그걸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르다는 것을 좀 더 인정해 주면 좋겠어요.
어른들의 관점에서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그들의 새로운 도덕을 지켜가고 있었다. 무조건 가정교육 못 받았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도덕에 대한 기준이 달라졌다는 것을 서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시대의 구성원들 서로가 동의할 수 있는 형태의 도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야! 나와. 미친 새끼가 씨발. 나이 처먹고 뭐 하는 거야. 미친 새끼네. 서울역에 내려서 경찰서 갈래? 서울역에서 안 내리면 너 내 손에 죽는다. 사람 잘못 건드렸어, 씨발.”
80대 남성이 옆자리에 앉은 그에게 ‘다리를 꼬고 앉아 옷에 구두가 닿으니 치워달라’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보다 못한 등산객 한 명이 ‘젊은 사람이 그러면 못 써’라며 막아섰다. 20대 남성은 등산객에게까지 욕을 내뱉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승객들은 불편한 듯 하나 둘 다른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침 이 장면을 촬영한 한 이가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노인에게 욕을 하네요’라고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리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졌다.
욕설을 퍼부은 남성에게는 ‘20대 막말남’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한국 사회가 여기까지 왔다니 정말 슬프다’, ‘애들 요즘 왜 저렇게 되는 거지?’라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지하철 막말남 처벌’을 위한 서명운동까지 이어졌다.
이런 일은 잊힐 만하면 한 번씩 나온다.
지난해에는 한 여학생이 나이가 지긋한 미화원 아줌마에게 ‘내가 마신 우유곽을 버려라’며 말을 시작해 화장실에서 욕설을 퍼부은 ‘경희대 패륜녀 사건’이 있었고, 연세대에서는 60대 남성 미화원과 몸이 부딪히자 욕설을 하고, 쓰레기봉투를 밟아 찢어버린 ‘연세대 쓰레기남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12월에 일어난 일명 ‘지하철 반말녀 사건’은 이랬다.
반말녀: 나 이제 내리니까, 그때 앉아.
할머니: 말 조심해. 그러는 거 아니야.
반말녀: 아, 모르면 말 걸지 마. 나 모르는 인간이 말 거는 거 존나 싫으니까.
할머니: 인간이 뭐야. 인간이. 아버지 같고 할아버지 같은 사람한테.
반말녀: 우리 아빠는 이러지 않아.
할머니: 아빠는 너 이러는지 몰라. 그러면 안 돼.
반말녀: 아니. 내가 왜 어디서 굴러 떨어진 인간들한테 이런 소릴 들어야 돼? 안 그래도 짜증나 죽겠는데. 나 지금 속 시끄러우니깐 말 걸지 마. 괜히 말 걸다가 욕 얻어 처먹어 모르는 애한테 씨부렁씨부렁. 인간 봐가면서 건드려. 어떻게 날 건드려. 안 그래도 속 시끄러워서 소리지르고 싶은데.
할머니: 말세야, 말세야.
이 외에도 젊은이들의 ‘막말(혹은 행동) 사건’은 끝이 없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이런 얘기를 접할 때마다 ‘말세(末世)’를 외친다.
나이 든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세태가 하루 이틀 만에 생겼을 리는 만무하다. 물론 이런 이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가 많다. 과거와 달리 왜 이들은 나이 많은 어른을 존중하지 않는 걸까. 혹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는 없을까. 이런 근원적인 물음에서 취재를 시작했다.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느냐’는 말에 60대와 다퉈
《월간조선》은 지난 8월 2~3일 이틀에 걸쳐 20대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만약에 나이가 많은 이는 무조건 공경을 하고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설문조사는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과 시비가 붙으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52%는 ‘나이와 상관없이 잘못을 가려야 한다’고 답했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참아야 한다’는 답은 37%뿐이었다.
‘당신은 어떤 사람에게 예의를 갖춥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절반이 채 되지 않는 46%만이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예의를 갖춘다’고 답했다. ‘어른들이 어른답게 행동해야 예의를 갖춘다’는 답변(전체의 28%)이 2위였다.
‘당신은 나이가 존중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근소한 차이이기는 했지만, 전체의 48%가 ‘나이보다 어떤 일이 벌어진 상황(혹은 사회적 지위)에 따라 존중해야 한다’고 했고, 47%는 ‘나이가 많으면 일단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위의 설문 항목을 해석하면 간단하다.
20대는 상대방을 나이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이가 많다고 공경을 하거나, 다소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참지 않는다. 이들은 시비가 붙을 경우 잘잘못을 정확하게 따지고, 어떤 일이 일어난 상황을 주시한다. 이들에게 ‘나이가 많은 사람은 공경해야 한다’는 이른바 ‘연장자 프리미엄’은 통하지 않는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20대 중 많은 이가 나이 많은 사람과 싸우거나, 그들로 인해 기분 나빴던 적이 있다고 했다.
지하철에서 60대 남성과 다툰 적이 있다는 안근우(29ㆍ직장인)씨의 얘기다.
“스무 살 때 친구들과 지하철을 탔을 때예요. 일반석에 앉아 있는데 60대쯤 돼 보이는 할아버지가 다가와서 자리를 비키지 않는다고 다짜고짜 욕을 했습니다. 술에 좀 취한 듯 보이기는 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젊은 사람들에게 욕하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요?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죠.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네 부모는 너를 그렇게 가르쳤느냐’는 겁니다. 부모 욕을 하는 데 참는 사람이 있나요? 더 이상 듣고 있지 못하겠어서 같이 싸웠습니다. 우리가 부모가 있는 것처럼, 당신들도 나 같은 자식이 있을 텐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지 싶었습니다. 솔직히 어른들이 어른처럼 행동을 해야 우리가 어른들을 모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기가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면서 젊은 사람들한테 ‘어린 것들이 어쩌고저쩌고’라고 하는 어른들은 어른도 아니죠. 고리타분한 생각으로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 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만 옳다는 어른들은 싫습니다.”
김윤기(26ㆍ대학생)씨는 도서관에서 50대 남성과 싸웠던 얘기를 했다.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는 아저씨가 맨발로 시립도서관에서 냄새 풍기면서, 자리를 몇 개씩 차지하고 민폐를 끼쳤습니다. 자기가 도서관을 전세 낸 듯하더니, 난데없이 저한테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말투가 권위적이었어요. ‘처음 보는 사람한테 왜 반말을 하느냐’고 했더니 ‘도서관 밖으로 따라나오라’더군요. 저도 할 말 다하고 싸웠습니다. 자기보다 나이가 적어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반말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까지 어른 대접을 해줘야 합니까? 나이만 많다고 권위를 세우면 전부 다 어른인가요?”
20대 인턴기자가 노약자석에 한번 앉아보니…
20대의 경험을 직접 해보기로 했다.
《월간조선》의 김윤미 인턴기자는 지난 8월 1일 오후 5시, 지하철 1호선에 올랐다. 나이 많은 어른들이 가장 많은 곳이 1호선이라고 판단했다. 일반석은 사람들이 전부 앉아 있었고, 노약자석은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김 기자가 이 자리에 앉자 옆에 있던 김진풍(76)씨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자꾸 쳐다봤다. 김 기자가 버르장머리 없는 척 가장하고 김씨와 나눈 대화다.
기자: 왜 자꾸 보세요. 저 노약자석에 앉으면 안 되는 거예요? 자리가 비어 있으니까 좀 앉아 있다가 나중에 양보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 쳐다보세요?
김씨: 여기는 노약자석이잖아. 노인들 앉으라고 정해 놓은 거니까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니야?
기자: 젊은 사람들이 왜 노약자석을 양보해야 돼요?
김씨: 자리 양보하고 서서 가면 뿌듯하잖아. 그런 게 미덕 아니야? 인간이면 지킬 줄 알아야 하는 것. 그게 도덕인 거야. 학교에서 윤리 교육을 하지만 이런 건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야. 배우지 않아도 좋은 일 하면 뿌듯한 게 사람이야. 어떤 사람은 낳아준 것만 해도 부모한테 고맙다는데, 누구는 부모가 자기한테 해준 게 뭐냐고 따지잖아. 그거랑 똑같은 거야.
기자: 그런 말 듣다가 욕하는 젊은 애들도 있던데요.
김씨: 그러면 안 되지. 어디 어른한테 욕을 하고 그래. 나이 든 사람이 좀 잘못했다손 쳐도 그렇게 대드는 건 아니지. 그래도 어른한테 그러면 안 돼.
기자가 김씨와 한창 대화를 하는 와중에 60대로 보이는 부부가 그 앞에 섰다고 한다. 자리를 금세 양보하지 못했더니, 김 기자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점점 사나워졌다고 한다.
김씨의 얘기를 들어보면, 나이 든 연장자들은 젊은이들의 ‘자리 양보’ 등에 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여타의 ‘막말 사건’을 두고 ‘나이 든 사람이 좀 잘못했다손 쳐도’ 어린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도덕이란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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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막말남. |
<도덕이란 사회의 구성원들이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춰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의 총체다. 외적 강제력을 갖는 법과 달리 각자의 내면적 원리로 작용하며, 종교와 달리 초월자의 관계가 아닌 인간 상호 관계를 규정한다.>
논어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鄕人飮酒杖者出斯出矣(향인음주장자출사출의)>
고을 사람들이 술이 나오는 연회에서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물러가는 것을 지켜보고 난 뒤에 자신이 물러나는 것을 정도(正道)로 여겼다는 얘기다.
《맹자》(孟子)에는 ‘친친(親親)은 인야(仁也)요, 경장(敬長)은 의야(義也)니, 무야(無也)는 달지천하야(達之天下也)’고 나와 있다. ‘어버이와 썩 친함은 인이요,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의이니,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온 천하에 두루 통하기 때문이다.’ 어른 공경을 강조한 대목이다.
‘공자왈, 맹자왈’을 논하기에 앞서, 어른 공경 사상이 우리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한 것은 사실이다. 또 20대 중에서 이 관습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이도 다수다.
나이에 대한 권위주위적 문화가 바뀌기 시작
정태민(25ㆍ대학생)씨는 주위에서 예의가 바르다는 소리를 듣는다. 지하철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잘 양보하고, 길 가다가 무거운 짐을 옮기는 어른이 있으면 대신 들어준다.
그의 얘기는 이렇다.
“그냥 제 만족이지요. 제 앞에 어르신이 서 있는데 자리 양보를 안 하고 앉아서 가면 제 마음이 더 불편하니까 차라리 양보를 하는 편이 좋습니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제 마음이 편하니까 하는 거죠.”
옆에 있던 임신영(23ㆍ대학생)씨는 “내가 양보를 하지 않고 계속 앉아서 간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 때문에 양보를 하는 편”이라고 했다.
박찬구(朴贊玖) 서울대 윤리교육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는 노인이면 무조건 양보를 해야 한다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심하게 말하자면 몸이 너무 아픈 상황에서, 심지어는 여성들이 하혈을 할 만한 상황에서도 자리 양보를 해야 했습니다. ‘나이’에 대한 일종의 권위주위적인 문화가 우리 사회를 지배했죠. 하지만 이런 것이 꼭 좋은 것이었을까요? 사회가 발전하고 합리성을 중시하는 풍조가 늘어가면서 이런 무조건적인 존중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의 풍조를 빠르게 흡수한 것이 흔히 말하는 젊은 세대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나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黃相旻) 교수는 20대들의 행동을 이렇게 바라봤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나이가 많은 사람에 대해 존경과 배려가 예전보다 덜한 것은 사실입니다. 오랫동안 ‘나이’에 대해 존중을 해왔던 기성세대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경’에 대한 부분이 약해졌다고 해서 20대가 도덕적이지 않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의 20대는 상황에 따라서 기성세대보다 훨씬 도덕적입니다. 도덕은 법전처럼 명문화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고 믿는 하나의 틀입니다. 그 틀의 패러다임이 기성세대들이 느꼈든, 느끼지 못했든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과거와는 다른 도덕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죠.”
“등산복 입고 자리 양보받으려는 사람들 보면 웃겨”
이들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오늘날 20대가 ‘어른 공경’ 부분을 예전처럼 당연시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8월 8일 광화문 모 식당에 20대 여섯 명이 모였다. 이동욱(22)씨와 이원준(27)씨는 대학을 휴학 중이고, 25세 동갑내기인 정지상씨와 노태준씨는 대학 재학 중이다. 《월간조선》 20대 인턴기자 두 명이 동석했다. 이들의 대화 내용 중에는 기성세대가 생각하기에 불쾌할 수 있을 만한 아슬아슬한(?)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전원은 기사에 실명(實名)을 게재하는 데 동의했다. ‘거리낄 것이 없다’는 20대의 자신감이었을까. 그들과의 대화는 ‘지하철, 버스에서의 자리 양보’로 시작했다.
노태준: 노인들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 임신부들한테는 자리를 양보합니다. 우리도 자리를 양보하는 데 기준이 있잖아요. 어떨 때는 그 사람들보다 내 몸이 더 안 좋을 수 있는 거잖아요.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 남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힘들면 비켜주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정지상: 노약자석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노약자석을 비워놔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 같아요. 내가 아프면 앉을 수도 있고, 앉아 있다가 어르신이 타면 양보해 줄 수도 있잖아요. 아예 처음부터 어르신들 앉으라고 비워놔야 한다는 것 자체가 권위적인 것 같아요.
이원준: 특히 등산복 입고 자리 양보받으려는 사람들 있잖아요. 좀 우습지 않나요? 등산을 할 정도면 그만큼 건강하다는 건데 굳이 자리 양보받으면서까지 앉아 가야 하나요?
자리 양보 안 한다고 꾸짖는 어른들과 말 섞기 싫어 일어난다
기자: 혹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꾸짖는 어른들은 없었습니까?
이원준: 있었죠. 그냥 내가 자리를 피해요. 그런 사람이랑 잘못 엮이면 귀찮아지니까요. 진중권이 그랬잖아요.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이길 자신이 없다고. 저도 그런 것 같아요. 귀찮으니까 내가 자리를 피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죠.
이동우: 가끔 지하철에서 통화할 때 어른들이 시끄럽다고 혼내는 분들 있잖아요. 그럴 때 저도 그냥 그 자리를 피하는 편이에요. 그 사람이랑 싸우기 싫어서요. 내가 통화하든 말든 그 사람이 나한테 뭐라고 할 권리는 없잖아요?
기자: 어른들의 얘기가 맞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하기 싫어서 피한다는 소린가요?
이동우: 그렇죠. 그냥 그런 상황 자체가 싫은 거죠. 내가 저 사람하고 말을 하는 시간조차 아깝다, 짜증난다 하는 정도?
이원준: 그런 사람들과 부딪쳐봐야 뭐 얻는 게 없는 거죠. 다투기 싫으니까 피하는 거죠.
정지상: 옛날에 권위주의가 지배하던 시기 때는 그게 통했지만 지금은 개인주의가 자리를 잡아 가고 있잖아요. 지금은 각자 개인의 판단에 따라 자리를 양보할 만한 상황에서는 양보하는데, 오히려 어른들이 그런 시대의 흐름을 못 따라온다고 생각해요.
이원준: 지하철 막말남 같은 경우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기도 하죠. 그 막말남이 도를 넘어선 것은 물론 사실이지만, 그 외에 비슷한 경우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저는 가끔 지하철에서 교회 다니라고 하시는 분 있잖아요.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하는 사람들. 그럴 때 혼자 구시렁대거든요. 나도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 거니까요.
민주화 여파로 평등의식 강해져
김홍중(金洪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20대의 성향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지금 젊은이들의 행동은 세대적인 의미에서 ‘윗세대들 다 썩었다, 우리가 바꿔보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져보니까 말이 안 되고, 또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이면 노인에게 투하되는 권위를 철회하고 잘잘못을 따져보자는 것입니다. 굉장히 합리적인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는 어떻게 형성된 겁니까?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면 처음에는 부정적으로 느껴질 겁니다. 하지만 한국사회가 계속 진화해 온 민주화의 효과가 잘 반영돼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나 성별이나 직업, 이런 것과는 상관없이 평등한 방식으로 토론이나 논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가치관은 대단히 민주주의적인 가치관이거든요. 젊은이들이 이런 분위기에 쉽게 동화되고, 사람을 평가할 때 나이, 성별, 직업 등에 상관없이 바라보는 겁니다.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기성세대들에게는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약하다’는 느낌을 주는 겁니다.”
―민주화가 주요 원인이라는 소리입니까.
“신자유주의화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세계화, 정보화시대에서 노인들은 뒤처지고 있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능력대로 가자’는 게임의 룰이 노인을 대하는 태도에 반영되는 것인데, 정보화시대에 뒤처진 노인들이 이를 잘 못 받아들인다고도 볼 수 있죠. 경희대 패륜녀 사건의 후기를 보세요. 사건이 있은 후 이틀 만에 총학생회가 환경 미화원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해당 학생이 네티즌의 요구와 총학생회 설득으로 직접 사과를 하기도 했죠. 총학생회, 네티즌들의 태도를 보자면, ‘무조건 잘못됐다’, ‘다 뒤집자’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절제된 태도로 사건 자체를 풀어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화문에 모인 20대들은 ‘어른 공경’에 대한 추가 질문에 대해 시큰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들에게 ‘나이’가 전혀 대화의 주제가 되지 못한다는 확신이 들어,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들은 뜻밖에도 강제적 규범인 ‘법’ 이야기가 나오자 열성적으로 대화에 참여했다.
이원준: 침 뱉지 않기, 노상방뇨하지 않기, 길거리에 쓰레기 버리지 않기는 분명 경범죄에 해당되는 거잖아요. 법이라는 것이 제 의사와 상관없이 만들어졌다 해도 일단은 지켜야죠. 법은 개인의 권리보다 훨씬 우선시되는 거잖아요. 우리한테 공경 얘기를 하면서 이런 사소한 법을 지키지 않는 어른들은 싫어요.
정지상: 어른들이 많이 지키지 않는 게 음주운전이잖아요. 정말,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음주운전이에요.
이원준: 저도요. 저는 정말 싫어요. 음주운전 하는 어른들은 정말.
정지상: 특히 음주운전은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노태준: 저는 딱 한 번 해본 적은 있어요. MT에서 술 많이 먹고, 바다가 보고 싶어서 운전했어요. 그런데 그건 진짜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 이후로 다신 안 해요. 운전이라는 게 술을 안 먹어도 위험한 건데, 술을 먹고 한다는 건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일이죠.
이동우: 어른들이 우리보다 더 안 지키는 것 또 있어요. 진짜 이해가 안 되는 게, 버스나 지하철 탈 때 줄 안 서고 밀치고 뛰어가는 거…. 거기다가 지하철에서는 내리는 사람이 내린 다음에 승차해야 하는 거잖아요. 근데 무조건 빈자리가 보인다고 사람이 내리기도 전에 옆으로 막 비집고 타요. 진짜 그럴 때는 왜들 저러는지 싶어요. 기본적인 것도 안 지키는 거잖아요. 버스정류장에서 한 줄 서기 하라는데 그것도 안 하고…. 그래 놓고서는 나한테 반말로 찍찍 자리 비키라고 그러고.
“왜 어른들은 다짜고짜 반말을 하나요?”
정지상: 어른들은 왜 처음 보는 사람한테 다짜고짜 반말을 해요? 지하철 타면 ‘어이, 거기!’ 이래요. 기분 정말 나쁘죠.
노태준: 저는 경상도라 고향에 가면 사투리를 많이 쓰거든요. 어른들은 100% 반말이에요. ‘니 어디 사는데? 거기 어디?’라는 식으로요. 나이 들었다고 무조건 우리한테 반말하는 거 정말 민폐예요. 어른들은 그걸 모르나요?
이원준: 심하면요, 야! 와봐. 이것 좀 해봐. 이래요. 이건 뭐, 아예 하대(下待)를 하는 거잖아요.
이쯤에서 기자가 끼어들었다. 자리에 모인 20대 학생들이 ‘어른들의 반말’에 대해 격앙된 수준으로 한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기자: 정말 모르는 어른들한테 그렇게 많이 반말을 듣나요?
이원준: 거의 다. 정말 거의 다 그래요.
기자: 남성과 여성 중에서 어떤 사람이 더 많이 그러나요?
이원준: 제 경우는 할아버지들이 그랬어요. 할머니들이 반말하는 건 못 들어봤는데요.
이동우: 주로 할아버지, 회사 다니는 것 같은 아저씨들….
노태준: 걷다가 길 묻는 사람들 있잖아요. ‘어이, 여기 어떻게 가는지 알아?’ 대부분 이래요. 저는 대충 알려주고 말아요. 솔직히 나 언제 봤다고 반말로 묻느냐고 하고 싶은데, 아예 싸우는 게 싫으니까요. 빨리 말하고 보내버리는 거죠.
이동우: 저는 아예 무시해 버려요. 인정을 받고 싶으면 그만큼 대우해 줘야 하는 거잖아요. 어른들은 그러지 않으니까 대화가 안 통하는 거죠.
이원준: 저는 이 문제로 아빠랑 싸운 적이 있어요. 가족끼리 외식을 갔는데 아빠가 서빙 보는 직원한테 ‘이거 주고, 이거랑 이거 가져와’ 이러더라고요. 아빠한테 여쭤봤죠. 저 직원 본 적 있느냐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 왜 반말로 주문하느냐고요. 아빠가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남들에게 일을 많이 지시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몸에 밴 것 같은데 주의하겠다고요. 그 얘기 듣고서 마음이 풀렸어요.
정지상: 우리 아빠가 만약에 그러면…. 글쎄요, 며칠 동안 말 안 할 것 같은데요.
기자는 이들에게 ‘본인보다 어리거나, 10대의 학생들에게 반말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참석자들은 모두 “어리다고 무조건 반말을 하진 않는다”고 답했다.
20대는 어른들이 이렇게 행동할 때 싫다고 한다
실제로 기성세대가 보기에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20대들은 오히려 기성세대(혹은 나이 든 노인들)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월간조선》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항목 중에 ‘막말남, 패륜녀 사건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는 것이 있었다.
20대 응답자의 60%는 “어른의 잘못도 있지만, 젊은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답했다. 젊은 사람이 어른에게 욕을 한 것은 잘못이지만, 어른들이 젊은이로 하여금 욕을 하게끔 빌미를 제공한 것은 맞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자체 설문조사에서 ‘나는 어른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싫은가’를 주관식으로 물었다. 여기에 나온 답이 오늘날 20대의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싶다.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행동을 할 때’, ‘나이만 믿고 행동할 때’, ‘무조건적인 어른 공경을 요구할 때’, ‘아무에게나 반말할 때’, ‘어른이란 이유로 공공장소에서 에티켓을 지키지 않고 막 행동할 때’, ‘지위를 들먹이며 비양심적으로 행동할 때’, ‘관철시키려는 태도가 계속될 때’,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내리기 전에 타려고 할 때’, ‘지하철에서 술 취해서 이상하게 행동할 때’ 등이었다.
禮는 철저히 수평적인 것
20대들은 상황에 따라 판단하고 공경 받지 못할 행동을 한 어른들에게는 ‘예의상’의 공경조차 베풀지 않았다. 오히려 법을 지키지 않는 어른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20대들의 이런 사고방식을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당장 회초리를 들 것 같은 청학동 난야서당 장규채 훈장은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
“공경 받지 못할 행동을 한 어른들을 어떻게 공경할 수 있겠습니까? 원래 ‘예(禮)’라는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 베푸는 것입니다. 아랫사람이 감동을 받아서 하는 행동이 ‘예’입니다. 예는 본래 수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철저히 수평적인 것이 ‘예’입니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 어른들은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까.
“막무가내인 노인들까지도 받들어야 한다면, 그것이 무슨 조폭사회도 아니고 뭡니까? 효경(孝經) 등 어떤 동양의 고전에도 ‘무조건 나이 많은 사람을 받들라’는 얘기는 없습니다.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권위적인 사회가 된 것입니까?
“아랫사람한테 수직적으로 ‘어른이니까 받들라’는 것은 군국주의나 조선시대, 특히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때 ‘충(忠)’의 개념이 잘못 오도되고 그것이 전파됐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조선시대로 올라가 보면 임진왜란을 거치며 민초(民草)들이 위정자들에게서 희망을 잃어버립니다. 나라를 빼앗겼고, 민초들을 남긴 채 궁궐을 비우고 도망가지 않았습니까? 그 후 왕실에서 추락한 명예를 되찾기 위해 희한한 방법을 모색하는데 그것이 잘못된 예의 시초입니다. 예를 가지고 ‘너희가 어떻게 예를 아느냐’, ‘너희 상놈들은 알지 못한다, 오직 몇 퍼센트 가진 우리만 알 수 있다’는 식으로 내세우면서 예가 수직적인 개념으로 바뀐 겁니다. 하지만 예는 절대 수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수평적인 개념입니다.”
씨발을 ‘매우(very)’ 정도의 추임새로 사용
20대의 행동 중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듯한 행동 외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상욕을 입에 달고 사는 양 보이는 잘못된 언어 습관이 그것이다. 물론 욕을 하는 행위를 비(非)도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로 인해 공공장소에서 많은 이가 불쾌감을 느낀다면 도덕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
이날 광화문 모임에 나선 20대들에게 이에 대해 질문했다. 그들의 생생한 얘기를 들어보자.
이원준: 저는 꼭 욕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건 남자들과 여자들의 차이일 수도 있는데 남자들은 보통 친근감을 표시할 때 쓰거든요.
이동우: 맞아요. 다들 하지 않나, 습관적으로? 기분 좋을 때도 하고요. 그냥 친함의 표시예요. 편하면 편할수록 막말이 나가는 경우가 많죠.
노태준: 저도 경상도라 욕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씨발로 시작해서 씨발로 끝나거든요.
이원준: 그런데 이게 설명이 안 되는 게, 지금 세대에서는 씨발이 욕의 의미가 아니거든요. 뭐라고 표현하나. 뭐 추임새? 영어로 ‘very(매우)’ 같은 강조의 개념이거든요. 만약에 왜 우리한테 너는 자꾸 씨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느냐고 물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예요. 욕이 아니고, 적당히 섞어 쓰는 언어 중의 하나예요. 어른들이 이걸 따지고 들어가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예요.
노태준: 운동을 하고 나서 탄산을 먹을 때의 짜릿함 있잖아요. 그건 물로써 해결이 안 되는 거거든요. 젊은 세대에서는 그게 욕으로 승화된 것 같아요. 욕이 탄산 같은 존재예요. 인터넷 댓글도 비슷한 경우인데 저는 진짜 기발한 글을 봤을 때, ‘부?’ 이런 식으로 짧게 달아요. 이것도 그 뜻을 찾아보면 좋은 의미는 아니거든요.
이동우: 그냥 그런 거예요. 너 정말 반갑다라고 말을 하면 밋밋하니까. 야, 개새끼 씨발 존나 반갑다 하면 확실히 뜻이 전달되니까.
이원준: 우리가 욕을 하는 게 아니라 감탄사 정도로 쓰는 거라니까요.
기자: 지금 20대들끼리는 통한다고 해도, 공공장소에서 그런 대화를 듣고 불쾌해 할 사람을 생각하면 지양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원준: 조심은 하죠. 지금도 안 하고 있잖아요. 엄청 조심하고 있는 건데요.
노태준: 친구하고 통화하는 거 듣고 이상하게 쳐다보는 어른들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조심하려고는 하는데 그게 뭐 나쁜 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블랙홀 20대의 속마음
《월간조선》의 자체 설문조사를 분석하고, 20대들과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20대의 도덕관을 정리하면 이렇다.
어른들의 ‘나이’는 그들에게 절대적인 공경의 대상, 또는 존중해야 할 것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음주운전 등 법규범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 어른들이 자신들에게 반말하는 것에 대해 참지 못할 정도로 분노를 느끼지만, 정작 어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비속어 사용에 대해서는 친근감의 표시일 뿐이라고 반색한다.
대화에 나선 이들은 각자 어른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노태준: 기성세대 분들께서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으로 우리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얼굴이 이렇게 생겼듯이 각자 다 다른 삶이 있잖아요. 그거는 어른들이 ‘마음에 안 들어, 바꿔’ 이렇게 자신들이 원하는 20대로 안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정지상: 저는 질문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당신들께서는 자신의 행동이 독선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묻고 싶어요. 분명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이동우: 기성세대는 변화를 두려워하다 보니까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지 않잖아요. 그렇게 변해 가듯이 요즘 20대들은 저렇게 자기 표현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서로의 거리도 줄어들면서 조금 더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원준: 시대가 변하는 만큼 세대 간의 차이도 있잖아요. 도덕도 그렇고, 그런 것들이 꼭 나쁜 건 아니거든요. 단지 다를 뿐인데 그걸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르다는 것을 좀 더 인정해 주면 좋겠어요.
어른들의 관점에서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그들의 새로운 도덕을 지켜가고 있었다. 무조건 가정교육 못 받았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도덕에 대한 기준이 달라졌다는 것을 서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시대의 구성원들 서로가 동의할 수 있는 형태의 도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