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盧泰愚前 대통령 회고록에 쏠린 시선들 : 월간조선

《月刊朝鮮》과 《주간조선》을 발행하는 <조선뉴스프레스>가 지난 8월 8일 <노태우 회고록>(상·하권)을 펴내자 세간의 관심은 이 회고록이 언급한 정치자금 부분과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노태우(盧泰愚) 전(前) 대통령이 회고록을 직접 집필했느냐 여부였다.

노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3000억원을 건넸다고 말한 김영삼(金泳三) 전 대통령의 반응 또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오랜 지기(知己)인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과의 요즘 관계는 어떤지도 관심거리였다.

그는 자금조성 창구는 전례(前例)대로 청와대로 단일화하고 보직이 잘 바뀌지 않는 자리에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측근에게 관리를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돈을 아는 사람은 사고를 낼 염려가 있으므로 차라리 돈을 모르는 사람이 나을 듯싶어 고른 이가 이현우(李賢雨) 경호실장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1992년 14대 대선(大選)을 앞두고 김영삼 후보가 대선자금으로 4000억~5000억원을 요구했을 때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자신이 당선됐던 1987년 대선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지원받은 1400억원 규모와 당 재정위원, 후원회 등에서 모은 돈 500억원 등 2000억원 정도를 대선자금으로 썼다”고 밝혔다.

그는 김영삼 후보에게 경제상황과 기업사정에 밝은 금진호(琴震鎬) 전 상공부 장관과 이원조(李源祚) 전 의원을 소개해 주고 이들을 통해 2000억원을, 대선 막바지에 김영삼 후보 측의 요청을 받고 1000억원을 지원한 사실 등을 밝혔다.

99년 《月刊朝鮮》 인터뷰에서 비자금 언급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자신의 정치자금 문제를 공개한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초다. 그는 1995년 11월 수감 직전에 “나 혼자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한 후 비자금 액수에 관해 함구로 일관해 왔다. 《월간조선》 1999년 6월호와의 인터뷰에서 비자금과 관련한 언급이 있기는 하다. <趙甲濟 기자의 역사적 인터뷰/ 盧泰愚 육성회고록2-정치비사편>에서다.

<―지난번 비자금 사건 때 해명하지 않고 넘어간 것이 있는데요. 제가 사실 비자금 사건 관계 재판자료 수사자료를 우리 집에 갖다 놓고 봤습니다. 숫자도 몇 번 맞춰 보고 그랬는데, 비자금을 조성한 것과 쓴 것 사이에 약 1000억~2000억원 사이가 비는데, 저는 그것이 선거기간 중에 김영삼 대통령 캠프로 지원하신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합니다. 재판정에서도 노 대통령께선 부인하지 않았단 말입니다.

“김영삼씨가 답변했잖아. 한 푼도 안 받았다고. 그런데 내가 뭐라고 해야 되겠어. 거기(비자금 재판자료)에도 그런 내용이 아마 담겨 있으리라고 보는데 국정(國政)을 책임졌던 사람, 한 시대 책임을 졌던 사람, 다른 말로 통치권자다, 이런 입장에서 그 시대에 이루어졌던 모든 통치행위를 알고 싶다는 사람은 전부 알고 싶어하겠지만, 실제 책임졌던 사람은 ‘이것이 국민에게 알려져서 나라에 도움이 되느냐, 해가 되느냐’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않을 수가 없다고요.

비자금 문제로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실망을 안겼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 죄송스럽기 짝이 없고, 심지어 100번 죽어도 국민들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켜 드릴 수는 없었다고 봅니다. 두 사람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우리의 위상이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는데, 더 이상 내가 특정인을 지목해서 뭔가를 밝힐 경우 당장 쾌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또 한번 명예를 실추당하는 일을 되풀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심정으로 내가 어려움을 참았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내가 돈을 굉장히 애꼈어”

9공수특전여단장 시절이던 1975년 4월 19일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여단내 부사관들을 위해 공중낙하 합동결혼식을 마련했다. 주례를 맡은 노태우 여단장도 함께 낙하를 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93년 2월 25일 청와대를 떠나기 전 청와대 금고 안에 100억원 이상의 돈을 넣어 두게 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는 대선 후 많은 비자금을 남긴 이유에 대해 “가장 큰 이유는 중립내각 구성과 탈당으로 인해 대통령이 과거와 같은 전폭적인 대선자금 지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은 비자금을 김영삼 당시 대통령 당선자와 의논해 처리하려고 했지만 당선자가 청와대를 찾아오지 않아 넘겨줄 수 없었다”며 “통일 대비 등 국가를 위해 유용한 일에 쓸 계획이었지만 실명제(實名制) 때 그 기회를 놓쳤다”고 술회했다. 다시 관련 부분을 《월간조선》 1999년 6월호에서 인용한다.

<“… 결과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실망을 하고 의심을 하고, 이런 점에 대해서는 내가 요만큼도 변명하고 싶지 않고. 다만 이제 나, 그리고 내 정권, 내가 탄생시킨 다음 정권, 또 책임지는 사람, 이 관계가 순조롭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되어버리지 안했느냐(않았느냐), 대통령에 당선되어 가지고 몇 번은 축하도 하고 당선됐으니까, 고맙습니다, 그런 인사도 하고, 이런 기회가 적어도 몇 번은 있다는 것은 상식인데, 불행하게도 그게 없어진 것 같애.

상대방이 ‘내가 쟁취를 했다’, 거기에 더해서 ‘나를 당선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이런 역경에서 내가 당선됐다’, 그렇게 큰소리치고 보니까, 자기는 또 내(나)한테 올 명분도 없어져 버린 것이지. 그러니 사후에 어떻게 해야 되겠다, 통치자금도 어떻게 하겠다, 이런 기회가 전혀 없었던 거예요. … (비자금이) 남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아까 지적한 중립내각에 원인이 있는 것인데, 또 한 가지 원인이 있다면 내가 돈을 애꼈어(아꼈어). 굉장히 애꼈어. 심지어는 인색할 정도로. 그러다 보니 퇴임할 무렵에 큰 돈이 남게 된 겁니다. …”

―(김영삼 후보가) 당선하고 나서 두 분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까.

“없지, 없어. 그러니 아까 얘기했지만 그렇게 자세를 가다듬었단 말이야. 심지어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잡아냈다’, 이런 식으로 입장이 되어 버렸으니까. 가사(가령) 그런 게 상의가 안됐다, 노출이 안됐다, 그러면 비자금을 내 개인이 영달을 위해서 내가 쓰겠느냐, 하늘에 맹세코 그건 아니다, 대통령을 한 사람이. 물론 대통령 마치게 되면 고유의 권한은 없어지지만 국가에 대한 책임감은 죽을 때까지 그대로 지속되는 것입니다. …”

비자금 공개 여부, 참모진과 가족간에도 이견

청와대에서의 단란한 한때. 아들 재헌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위 최태원(현 SK회장)과 바둑을 두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출간한 이후 비자금 관련 부분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적으로 받은 데서 알 수 있듯이 비자금 관련 부분 공개를 놓고 노 전 대통령 참모진조차 이견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과 지근거리에 있던 한 언론인의 증언이다.

“회고록 집필을 완료한 것은 2007년쯤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자금 부분을 넣느냐 마느냐, 넣는다면 어디까지 넣느냐는 문제로 노 대통령은 물론, 가족, 참모들 간에 의견이 엇갈려 회고록 출간이 미뤄졌습니다. 노 대통령 자신은 ‘나 하나 희생(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된 것으로 끝내야지 다른 사람(특히 YS)까지 끌어넣을 것 뭐 있느냐’며 비자금 부분을 넣는 것을 반대했죠. 정해창(丁海昌) 비서실장 등 많은 참모들도 이에 동의했으나, 일부 참모는 ‘비자금 부분을 뺀다면 회고록을 왜 내느냐?’고 강하게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랜 세월 이 같은 진통을 거치며, 가족들이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고 비자금 부분을 넣기로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회고록 집필에 참여했던 손주환(孫柱煥) 전 장관의 증언도 비슷하다. 그는 노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과 공보처 장관을 지냈다.

“비자금 공개 수위를 놓고 참모들 간에도 약간의 이견이 있었고, 참모와 노 대통령 가족 간에도 좀 이견이 있었어요. 정치자금 부분을 어느 선까지 밝혀야 하는가를 가족들에게 맡기기로 했죠.”

다음은 노 전 대통령과 가까운 한 언론인에게 한 질문과 대답이다.

―회고록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에게 3000억원을 지원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모금방식은 김영삼 진영이 직접 모금하되, 노 대통령의 측근인 이원조, 금진호 두 사람을 붙여준 것으로 돼 있습니다. 당시 김영삼 캠프가 직접 선거자금을 챙기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요.

“노 대통령이 민자당을 탈당하고 중립내각을 구성했기 때문에 청와대가 민자당 대통령 후보 정치자금을 지원할 경우 심각한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 이원조-금진호 두 사람을 김영삼 진영에 파견해 직접 자금을 조달하도록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이 끝나고 막대한 선거자금이 남게 된 이유를 선거 두 달 앞두고 구성한 중립내각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중립내각 구성 시 김영삼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등의 정치적인 의도는 없었는지요.

“중립내각 구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연기(燕岐)군수(郡守) 사건이었습니다. 이후로도 동일한 사건이 전국에서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탈당하고 중립내각을 구성하는 것이 오히려 YS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YS가 청와대에 왔을 때 나의 탈당과 중립내각 구성 이유를 직접 설명했고, 이에 YS도 수용했었다’며 ‘그런데도 YS는 자신이 탈당하고 나니 아무런 상의가 없었던 것처럼 말하며 나를 비난했다’며 서운해했습니다. 김영삼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 YS는 이원조 의원, 금진호 장관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선거가 막판에 이르자 노 대통령에게 긴급자금 SOS를 쳤고, 이에 노 대통령은 자금관리를 맡고 있던 이현우 안기부장을 통해 1000억원을 긴급 지원했던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이날 밤 YS가 직접 노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하다고 인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립내각 구성에 YS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등의 정치적인 의도는 전혀 들어있지 않았던 것으로 압니다.”

연기군수 사건이란 1992년 8월 31일 한준수 당시 연기군수가 14대 총선 당시 충남 연기군에서 안기부 주도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어 관권선거를 주도했다고 폭로한 사건을 말한다. 한씨는 1995년 8월 복권된 후 민주당에 입당해 청양·홍성 지역구 지구당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DJ와 싸워 이길 사람은 YS뿐이라고 판단

회고록 머리글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이런 회한을 적어 놓고 있다.

<이 회고록을 쓰면서 내가 여러 번 자문(自問)했던 것은 “3당 합당 이후 김영삼씨를 대통령 후보로 밀었던 것이 그 뒤 나라의 진로를 이렇게 만든 것인가, 나는 왜 그의 인간됨과 역사관을 오판했을까” 하는 것들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후 단 한 번도 청와대를 찾아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점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서운해한 적은 없는지요.

“퇴임 후 노 대통령은 이 점에 대해 저에게 여러 차례 서운함을 내비친 적이 있습니다. 결국 자신이 민자당을 탈당한 이후, YS의 대통령 취임식 날 만나기까지 단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었다면서요. 비자금 사건이 터진 후 노 대통령은 자신도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수천억 원의 자금을 인수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도 YS에게 잔여 정치자금을 주려고 했는데, 당선 후 군사정권과의 차별화를 이유로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아 잔여 정치자금을 줄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또 YS가 자리가 잡히면 자신을 청와대로 초청해 줄 것으로 생각했으나, YS는 취임 열흘 정도만에 ‘정치자금은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려 남은 비자금을 줄 방법이 막혀 버렸다고 거듭 얘기해 왔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면서 후임 대통령을 위해 금고 안에 100억원 이상의 돈을 넣어 두게 했다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금고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분해해서 철거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 100억원 이상 돈의 행방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는지요.

“왜 100억원이냐 하는 점이 궁금해 측근들에게 물어보니, ‘안방금고에 두면 YS 비서진들이 먼저 볼 텐데,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裏)에 너무 많은 액수의 돈을 남기고 올 수는 없었다. 따라서 취임 후 급한 일에 우선 쓰라는 뜻으로 100억원 정도 남겨 두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비서들이 YS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을 테고, YS는 적절한 용처에 이 자금을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YS가 대통령이 될 자질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요.

“노 대통령이 자질이라는 관점에서 YS를 평가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노 대통령은 YS의 자질과 관련해 별별 소리를 다 들었으나, 기본적으로 그렇게 오랜 세월 정치를 하며 지도자에 오른 것은 대통령이 될 자질이 있다고 봐야 한다는 시각이었죠. 노 대통령의 일관된 관점은 당시 여권에서 자신을 이을 사람은 YS라는 생각을 한 번도 바꾼 적이 없었다는 점이죠. 다만, 당초 합의대로 내각제로 개헌해 YS가 총리가 돼 주기를 바랐던 것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각제 합의가 깨지고 어차피 대통령선거로 갈 수밖에 없어지자, 차기 대선에서 권력을 재창출하기 위해서는 YS가 후보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DJ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사람은 YS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던 거죠. 노 대통령은 차기 여권의 권력승계자는 YS라는 그림 아래 민정-민주-공화 3당 통합을 추진한 것입니다. 물론 당시는 대통령제가 아니라 내각제를 전제로 통합한 것이지만요. 일찍이 기자들에게 ‘군 출신이거나, 나의 친인척은 차기 후보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는 인물군(人物群)에는 김영삼, 김종필, 박태준, 이종찬, 박철언 등이 오르내렸는데, 이 중 군출신과 친인척이라는 조항에 안 걸리는 사람은 YS뿐이었습니다.”

“金씨가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청와대 관저 옮겼다”

독서와 사색, 노(盧) 전 대통령의 참을성은 여기에서 출발하는지 모르겠다.

이 언론인은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주었다.

“노 대통령은 임기 중 청와대 집무실과 관저를 신축한 이후, 저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과거 청와대 집무실 겸 관저(이승만 시절 경무대, 박정희 이후 청와대로 불린 건물)의 풍수학적 위치로는 김씨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거야. 관악산 화기(火氣)에 쇠(金)가 다 녹아 버린다는 거지. 그러나 이번에 청와대 집무실과 관저 위치를 옮겨서 신축함으로써, 이제부터는 김씨도 대통령이 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풍수전문가의 얘기야.’ 노 대통령의 이 말은 청와대 신축 때부터 김씨 대통령의 탄생을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죠. 노 전 대통령이 전한 풍수전문가의 이야기대로, 건국 이후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김씨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이후 김영삼, 김대중 두 사람이 연이어 나왔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이야기죠.”

―YS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후 노 전 대통령이 후회한 적은 없는지요.

“노 대통령은 YS가 대통령 후보가 된 이후엔 YS 당선을 위해 있는 힘을 다했어요. YS에 대해 다소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가족들도 YS가 후보로 선출되자, 너나 할 것 없이 보이지 않게 YS 당선을 위해 전력을 투구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비자금 사건이 터진 이후, 노 대통령 측은 줄곧 ‘남은 정치자금을 인계할 기회가 없었다’고 얘기해 왔습니다. 이 얘기는 노 대통령 임기 말에 청와대 참모들로부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참모들은 ‘YS가 당선 이후 노 대통령과 차별화하려고 청와대에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털어놓곤 했죠. 비자금을 다룬 사람이 육사출신의 노 대통령과 역시 육사출신인 이현우 안기부장, 두 사람이었다는 데도 원인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비자금은 청와대 참모들에게도 얘기할 수 없는 성격의 자금이기 때문에 정치자금 처리와 관리에 관한 전문적인 식견이 없는 두 사람이 누구의 조언도 받을 수 없는 형편에서, 이 문제를 떠안았다는 점이 화를 키웠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죠.”

―다른 원인은 없습니까.

“YS의 과도한 군사정권 비판의식, 노 대통령과 YS 간의 성격과 기질의 부조화에도 원인(遠因)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YS는 줄기차게 노 대통령의 입장을 어렵게 만들고 공격하다 보니, 두 사람 간에 모든 것을 까놓고 얘기하지 못하는 거리감이 잔존해 있었던 것도 원인의 하나였지 않았나 싶습니다.”

全斗煥과 盧泰愚의 정치자금觀 차이

군에 몸담은 지 30년 만인 1981년 7월 15일 육군대장으로 예편했다. 전역식은 사단장으로 근무했던 제9사단에서 가졌다.

―정치자금을 보는 전두환과 노태우의 관점에 차이가 있었나요.

“전두환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은 통치자금이었던 것 같습니다. 화끈하게 거둬 정치권뿐 아니라, 행정부, 군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뿌렸던 것 같습니다. 노 대통령의 경우에도 통치 부분에 쓰기도 했지만, 주로 정치자금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아는 노 대통령은 돈에 관한 감각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오랜 군 시절 부관 등이 대신 계산을 하다 보니까 지갑을 아예 넣고 다니지 않는 것이 습관이 돼 돈의 가치나 효용에 감각이 결여된 것이라고 봐요. 민정당 대통령 후보 시절, 시장을 방문할 일이 생기면 이병기 보좌역이 자신의 서랍에서 노 대표용 지갑 하나를 늘 꺼내 1만원짜리 몇 장, 1000원짜리 몇 장을 넣어 노 대표에게 건네줄 정도였으니까요.”

―전두환 전 대통령은 통치자금으로 쓰던 자금 가운데 상당액을 후임자에게 넘겨주지 않고 퇴임시 가지고 나갔습니다. 혹시 노 전 대통령도 그런 유혹에 빠졌던 것은 아닌지요.

“이 문제는 제가 알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닌 것 같네요. 전직 대통령의 경우 씀씀이가 일반인들과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은 모두가 알 만한 사실입니다. 대통령을 지냈다는 이유로, 경조사비의 단위가 달라져야 하고, 경호 인력, 주변 관리, 명절 인사 등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갈 돈이 대단히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정도의 자금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있을 수도 있었겠지요. 남은 정치자금 전부를 YS에게 인계하려 했겠느냐 하는 부분에는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을 지낸 경력 때문에 앞으로 필요한 경비 일부는 남겨 두려 하지 않았겠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천억 원의 돈 모두를 개인적으로 챙길 생각까지 했겠느냐 하는 데는 고개가 쉽게 끄덕여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사위가 재벌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돈까지 챙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참는 데는 ‘달인’ 또는 ‘도인’ 소리를 듣는데, 그에 얽힌 얘기 좀 해 주세요.

“참는 데 도인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취임 초기 노조의 과격 행동으로 사회가 거의 마비되자 모든 언론들이 노 대통령 정부를 비판하며 ‘물태우’라는 소리가 높았을 때, 청와대에서 저녁을 하며 내가 ‘이젠 법으로 엄하게 다스려야 할 시점에 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노 대통령은 ‘어이, 한 달 굶은 사람한테 밥을 주면서, 한꺼번에 먹으면 배탈나니 조금씩 먹으라고 하면 조금씩 먹겠느냐’고 반문하며 ‘한꺼번에 마구 먹다가 탈이 나 봐야, 주위에서 만류하지 않아도 알아서 조금씩 먹게 되는 법’이라며 끝내 물리력을 투입하지 않았어요.”

노 전 대통령의 참을성과 관련해 손주환 전 장관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노 대통령은 평소 내게 ‘내가 참는 것은 어릴 때부터 달인이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어요. 예를 들어 사단장 시절 예하 부대를 순시할 때 눈에 거슬리는 게 당장 눈에 띄어도 그 자리에서 뭐라고 하시는 적이 없어요. 쭈욱 둘러보고 문제를 파악한 다음 며칠 지나서 해당 부대를 지적하는 게 아니라 부대 전체나 지휘관들이 고쳐야 한다는 것을 일반화시켜서 말씀하시죠. 단전(丹田)도 하시면서 스스로를 잘 다스리는 분이시죠.”

“DJ에 준 돈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잘 몰라”

1995년 가을 대선자금 파문이 거세질 때 김대중(金大中·DJ) 당시 국민회의 총재는 자신이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14대 대선 직전 20억원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훗날 DJ의 이 고백은 97년 대선에서 ‘20억+α’설로 번지기도 했다. 회고록에는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다.

YS에게 준 자금은 고백하면서 DJ에게 준 돈에 대해선 언급이 왜 없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 손 전 장관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시는 내가 정무수석 그만두고 내각으로 와 있을 때였어요. 나 역시 그 부분은 잘 모르죠. 노 대통령께서 회고록에 그 부분을 밝히지 않은 것은 김대중 대통령 본인이 ‘받았다’고 고백을 했기 때문에 굳이 밝힐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자금과 관련해서 제 기억에 남는 것은, 정치자금을 놓고 간 기업의 재무구조를 조사해 본 뒤 돌려주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는 겁니다.”

노 전 대통령 회고록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YS 측은 ‘노 전 대통령의 건강이 회고록을 집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는 반응을 보였다. YS 측 김기수 비서실장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4~5년 전에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인 그가 회고록을 어떻게 썼는지, 이제 와서 그런 주장을 왜 했는지 저의가 의심스럽다. 김 전 대통령이 감옥에 넣은 데 대해 앙심을 품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노 전 대통령 회고록은 노 전 대통령이 건강할 때 집필을 시작해 완성했던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회고록 완성을 주도적으로 도운 손주환 전 장관의 증언이다.

“회고록 원고를 완성한 것은 4년 전입니다. 완성하기까지는 4년이 걸렸고요. 회고록의 원본은 노 대통령께서 1995년부터 감옥에 계실 때 작성해 놓으신 거고요. 그때 쓴 글은 메모 수준이 아니라 문장으로 돼 있어요. 그걸 토대로 경제는 김종인, 박승 등 당시 경제 참모들을 불러서 노 대통령 주재로 회람도 하고 보충을 하는 식으로 썼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고요. 회고록은 본인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 점이 이 회고록의 가치이기도 하고요. 올해 팔순이기 때문에 출간을 하게 된 것으로 압니다.”

회고록 작성 시기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載憲)씨의 증언도 대동소이하다.

“회고록은 감옥에 계실 때 쓴 글과 그 이전에 쓴 글을 가지고 시작했어요. 2007년에 작업이 끝났는데 작업 시작은 10년 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07년 완성 후 2008년에 출간하기로 했었죠. 원래 회고록 원고 서문에는 작성 날짜가 2008년 9월로 돼 있었어요. 그런데 몸이 불편해 연기했던 거죠.”

법무부 제공 노트에 회고록 초안 기록

감옥에 있을 때 노태우 전 대통령은 법무부가 재소자에게 제공하는 노트 23권과 사입(私入)노트 5권에 회고록의 초안이 되는 기록을 남겼다.

노 전 대통령은 감옥에서 법무부가 재소자들에게 제공하는 노트 23권과 사입(私入)노트 5권에 기록을 남겼다. 법무부가 제공하는 노트에는 주로 회고록의 초안이 되는 내용들을 적었고, 개인 노트에는 그날그날의 소회를 적은 일기 형식의 글이 많았다.

법무부 노트에는 10·26과 관련,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 27일 새벽에야 지시가 내려온 것으로 기억된다. 대통령의 유고, 범인은 김재규로 판단되었고 군은 비상근무에 돌입하였다. …>

회고록 상권 229페이지에는 같은 내용이 이렇게 적혀 있다.

<… 지시는 다음날인 27일 새벽이 되어서야 내려왔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逝去), 범인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으로 판명’이라는 내용과 함께 “비상경계 태세에 들어가라”는 지시였다. …>

감옥에서의 기록이 회고록의 기초가 됐음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법무부 노트 첫 페이지의 기록 날짜는 1995년 11월 17일이다. 노 전 대통령은 바로 그 전날 저녁 늦게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노 전 대통령은 보도진 앞에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며 나 때문에 곤욕을 치른 기업인들을 보살펴 달라”며 “모든 책임을 지고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감옥에서 첫날 밤을 보낸 노 전 대통령의 소회는 어떠했을까.

<10:30 김유후(金有厚·노태우 정부 대통령 사정수석 비서관) 변호사 첫 방문. 반갑고 고마웠다. 워낙 큰 문제니 그의 부담이 너무 크겠구나. 정해창, 한영석 등 빨리 와서 그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작일(昨日) 대검에서 나오면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 내 진심 그대로 전달되지 않고 오히려 국민의 비위를 거슬리는 결과가 된 것이었다는 것은 그의 표정만으로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거슬린다 하더라도 이것이 나의 진심이요, 역사적 사실이기에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자기에게 맡기고 편안히 건강 잘 돌보라는 말에 믿음과 감사의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오후 2시쯤 재헌 최(석립) 박(영훈) 실장 온다고 하니 벌써 가슴 설레인다. 나도 역시 약한 인간이구나, 생각된다.>

노 전 대통령이 글을 단순한 메모 수준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음은 9사단가와 관련된 기록에서 느낄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9사단장 재직 시절 사단가인 <백마혼>을 직접 작사·작곡했다고 한다. 그는 사단가 가사가 떠오르지 않았는지 노트에 가사가 들어갈 분량만큼 박스를 쳐놓고 ‘이하 여백’이라고 써 놓았다. 나중에 채워 넣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자네 구치소에선 계란 후라이 주나?”

개인 노트에서는 힘든 감옥생활에 대한 단상들이 간혹 눈에 띈다. 감옥생활 1년10개월여가 넘어가던 1997년 8월 19일과 20일의 기록이다.

<말복이 지난 지도 3일이나 되었는데 왜 이렇게 더운지. 어제와 오늘 찜통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몸이 천근이나 되는 것 같이 무겁다.(19일)

어제밤은 수면제를 먹고 잤는데도 별 효과가 없었다. 여러 번 깼고 소변도 두 번이나 보았다. 날씨가 무덥고 또 불쾌지수가 높으니 몸의 컨디션이 극히 좋지 않다. 아침 일어나니 온 몸이 무리하게 아프다.(20일)>

20일 자 글 말미에는 별도 표시로 ‘YS-조순 극비 회담 관심, 北 경수로 신포에서 착공식’이라는 메모가 돼 있다. ‘참을성의 달인’도 세상을 향한 관심을 끊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우리는 우정과 동지애가 유난히 강했다. 그러나 우정을 국가보다 상위에 놓을 수 없게 됐다. 인식의 차이로 해서 전임자는 나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면서 서운해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미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두 사람은 예전의 우정을 회복했을까. 분명한 것은 퇴임 후 ‘개인 전두환’과 ‘개인 노태우’는 여전히 친구로서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슷한 시기에 감옥생활을 했던 전직 대기업 회장이 교회에서 간증 때 들려준 이야기다.

노태우, 전두환 두 대통령은 수감 중 12·12 사건, 5·18 사건 등과 관련해 같은 법정에 출석해야 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서울구치소에, 전 전 대통령은 안양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다. 똑같은 사건으로 사건과 관련한 중요한 이야기가 두 사람 간에 오갈 수 있기 때문에 법정에 함께 선 두 사람의 대화를 교도관이 가까이서 들어야 했다. 필요에 따라서는 두 사람의 대화를 제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법정에서 만나자 전 전 대통령이 먼저 노 전 대통령에게 말을 건넸다. “자네 구치소에서는 계란 후라이 주나?”라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이 “안 준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전 전 대통령은 “우리도 안 줘”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전직 대기업 회장에게 전한 교도관에 따르면 오래된 친구에게서나 오갈 수 있는 어투였다는 것이다.

재헌씨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사견임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두 분은 국가, 우정, 운명 사이에서 어쩔 수 없는 인간적인 한계로 엄청난 고민을 했을 겁니다. 저는 두 분이 서로 그런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한다고 봐요. 양쪽 집안끼리도 가깝게 지냈고 인간적인 정도 많이 들었는데 어떻게 안타깝지 않겠어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두 분 영부인께서는 전화통화는 했던 것 같아요. 공식적인 가족모임은 없었지만 자녀들끼리는 모임 같은 데서 개별적으로 만나 왔습니다.”

‘정주영 정계진출 저지 방안’ 있었다

1992년 대선 당시 후보군에 대한 이야기도 관심을 끌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에 나서려는 김우중(金宇中) 전 대우그룹 회장을 포기시킨 일 등을 회고록에서 밝혔다. 당시 현대그룹 정주영(鄭周永) 회장의 대선 출마 움직임과 관련, 회고록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통일국민당은 1992년 1월 10일 발기인대회를 갖고 공식 출범했다. 아무리 내가 대통령이라고 해도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을 물리적으로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참모들이 건의한 정주영씨 정계진출 저지 방안을 승인하지 않았다.>

회고록에서 참모들이 건의한 ‘정주영씨 정계진출 저지 방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더 이상 없다. 그와 관련된 손주환 전 장관의 증언이다.

“그때 내가 정무수석이었어요. 정주영 회장의 동생인 정세영 회장을 불러서 현대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했죠. 그런데 ‘우리 형님은 누구 말도 듣지 않을 겁니다’ 하는 거예요. 대통령 말도 듣지 않을 거라는 거였죠. 그때 우리는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현대그룹 임원 수백 명의 구체적인 혐의사실까지 다 파악해 놓고 있었어요. 만약 대통령께서 ‘법대로 하라’고 하셨다면 현대는 그때 큰일 났을 겁니다. 대통령께서는 그렇게 물리력을 동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셨던 것이죠.”

노 전 대통령의 최근 건강 상태도 주요 관심거리가 됐다. 주요 측근들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지인들을 만나면 다 알아보고 좋아할 정도로 인지능력이나 청각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지인들이 자주 노 전 대통령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지인들을 만나고 나면 노 전 대통이 수면장애를 겪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헌씨는 “2002년에 전립선 수술을 받았는데 그 후유증도 어느 정도 있다”면서 “지금 앓고 있는 병환으로 소뇌기능이 약해지면서 운동기능이 저하돼 언어표현과 거동에 불편함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화 외친 정치인이 실천에선 가장 비민주적이었다

지난 4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몸속에서는 침술용 침이 발견됐다. 수술로 침을 제거했지만 이 사건은 양방(洋方)과 한방(韓方)의 갈등, 한방업계 내부의 갈등으로 이어졌지만 아직 사실 규명이 되지 않았다.

재헌씨는 노 전 대통령이 침을 맞게 된 이유를 “운동기능이 저하되니까 근육을 자극하는 데 좋은 침을 가끔 맞았던 것”이라면서 “의사가 권했던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서너 달 전에 노 전 대통령을 만났다는 손 전 장관은 “자주 갈 수도 없고 자주 가서도 안 되지만 몇 달 만에 가서 뵈면 ‘손 장관이 왔구나, 반갑다’ 하는 것을 눈빛과 표정에서 읽을 수가 있다”면서 “말을 하면 반응을 보이시기 때문에 함께 있는 영부인과는 대화가 된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지금도 일부 사람들은 6·29 선언에 대해 ‘상황에 밀려 마지못해 받아들인 결과’ 또는 ‘전두환 대통령의 작품을 노태우가 낭독한 데 불과하다’고 말하곤 한다”며 “하지만 당시 나의 심정은 ‘선거에 지더라도 민주화에 이바지한다면 기꺼이 내 몸을 바치겠다’는 확고한 것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가족들이 생각하는 ‘인간 노태우’의 인생 전환점은 어디일까. 아들 재헌씨는 6·29 선언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6·29를 정치적 이벤트가 아닌 아버지 인생의 철학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사명의식을 갖고 하셨습니다. 그 이전에는 군인으로서 국가에 충성하고 나라 지키는 일을 사명으로 받아들였지만 6·29를 겪으면서 당신의 사명을 민주화를 이루어야겠다는 것으로 바꾸셨어요. 생각과 행동, 이 모든 것을 바꾸시다 보니 집에 오셔서도 하는 생각이나 언행까지 바뀌었죠. 매사를 민주적으로 하려고 하는 모습이 명확하게 와 닿았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 머리글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내가 가장 민주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어야 했고, 내가 가장 민주적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했다. 나는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요구하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도자에게 있어서 민주주의에 대한 언행일치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다. 민주화를 외친 정치인이 실천에선 가장 비민주적인 경우를 나는 여러 번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