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분석] 산불처럼 번지는 口蹄疫 : 월간조선

한겨울에 발생한 구제역(口蹄疫)이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며 축산농가를 덮치고 있다. 1월 11일 현재 133만 마리의 가축이 살(殺)처분된 상황이다. 축산농가들의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지만 재앙은 쉽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 구제역으로 입은 국가적 손실이 이미 1조원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연간 재난 방제비가 1조20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상상 이상의 재난이다.

정부는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부 국민 중에는 ‘이렇게 손실이 클 바에는 차라리 축산업을 정리하고 외국에서 고기를 사다 먹는 것이 낫지 않으냐’라는 의견을 제시하는 이도 있는데, 경제논리만으로는 틀리지 않은 얘기다. 하지만 축산업은 그렇게 간단하게 포기하거나 정리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우선 국내 축산업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 현재 소 시장이 3조원, 돼지 시장이 4조원 규모다. 사료까지 합치면 국내 소·돼지 시장 규모는 13조원에 이른다. 축산업에 종사하는 농민의 수도 결코 적지 않다. 소를 키우는 농가가 20만 호(戶), 양돈가(養豚家)가 7500호이다.

축산업을 지원하고 장려해 온 정부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다. 정부는 한식(韓食) 세계화 바람을 타고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축산업을 지원해 왔다. FTA(자유무역협정) 이후 대규모로 유입될 미국과 유럽의 축산물에 대응하기 위해 유기 축산물, 무(無)항생제 축산물, 신토불이 축산물 생산을 장려했다. 전염병이 두려워 포기하기에는 희생이 클 수밖에 없다.

축산업 포기하면 국제 교역에서 불리

충남 금산군 복수면 한 돼지사육농장에서 농장주가 축사를 소독하는 등 방역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의 축산물 수출 규모는 연간 28억원이다. 구제역 방역을 위해 최근 몇 달 동안 쏟아부은 비용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규모다. 이 때문에 일부 국민들은 최근의 구제역 방역을 “혈세 낭비”라며 불만을 표시한다. 정부가 이런 말까지 들으며 구제역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얻기 위해서다. 역으로 말하면 구제역 오염국가라는 불명예 타이틀을 벗고 싶어서다. 구제역은 국가 간 교역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나라가 구제역에 오염돼 청정국 지위를 잃으면 한국에 축산물 수출을 노리고 있는 국가, 특히 구제역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동남아국가들이 FTA 규정에 따른 수입 개방 압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구제역을 이유로 걸어놓았던 수입 개방의 빗장을 제거할 수밖에 없다. WTO의 동등성의 원칙에 따라 수입 거부를 할 수 없게 된다.

소고기와 돼지고기(삼겹살)의 약 5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출 시장이다. 한국으로서는 축산 주요 수출국에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입장이다. 하지만 구제역 오염국가라는 타이틀이 씌워지면 주권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국내 축산업은 피폐해지고, 더불어 우리 국민들은 수준 이하의 저급한 고기를 먹으면서도 선진국에 갈 때마다 입국 수속이 까다로워지는 수모를 감수해야 한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도 줄어들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구제역은 축산물뿐만 아니라 일반 제품의 교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축산물을 수입하는 조건으로 전자제품을 수출하는 식의 무역 협상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족 대이동 있는 2월이 고비

살처분할 젖소를 매몰하기 위해 굴착기가 땅을 파고 있는 모습. 그 너머로 살처분할 젖소들이 보인다.

구제역은 이제 충남 홍성과 보령까지 집어삼킬 태세다. 이 지역은 국내 최대 양돈 생산지 중 하나이자 돈사 밀집 지역이다. 이곳의 양돈 벨트가 무너진다면 앞으로도 최소 200만 마리 이상의 가축이 살처분되어야 하고 그에 따라 2조원의 국민 세금이 추가로 매몰돼야 한다. 국민 1인당 6만원의 세금이 구제역 방역에 쓰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한국은 구제역 발생국이 될 것이며 상재화 지역(常在化地域·구제역 바이러스가 상존하는 지역)으로 지명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홍성까지 구제역이 침범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다.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닌 비즈니스 권역별 방역을 위한 구제역 지도가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은 행정구역별로 방역이 이뤄지다 보니 도축장, 사료공장, 동물약품, 컨설팅, 인공수정 등 축산활동을 제한하는 권역별 집중 방역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로 인해 감염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야 뒤늦게 차단 방역이 이뤄지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대처가 반복됐다.

축산활동 위치가 정확하게 표시된 구제역 지도가 그려지면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효과적인 방역이 이뤄질 것이다. 구제역 지도는 경북, 한강 이북(포천, 연천, 파주, 양주, 김포, 강화), 한강 이남(여주, 이천, 안성, 평택), 강원, 충북, 충남 당진의 경우 거의 완성된 상태이고, 경남, 전남, 충남, 전북은 작업 중에 있다.

지난해 11월 29일에 시작됐으니 구제역이 발생한 지도 어느덧 두 달이 다 돼간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날까지 지속될 경우 바이러스 전파가 더욱 빠르게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더욱 깊은 시련이 될 것이다. 2월이 지나면 바이러스가 활개를 치는 3월이 닥치기 때문이다.

해빙기(解氷期)인 3월은 전문가들 사이에 ‘바이러스의 계절’로 일컬어진다. 겨우내 얼었던 바이러스도 해동(解凍)되고 유리되어 우제류(偶蹄類)에 감염될 수 있다. 2월 이내에 구제역이 잡히지 않으면 아마도 3월은 절정기가 될 것이다. 4월은 온도상 바이러스가 싫어하는 시기이므로 자연스럽게 수그러들게 돼 있다.

구제역은 이제 돈과의 싸움이다. 정부에 구제역 박멸을 위해 집행 가능한 예산이 남아 있다면 2년 내에 종식될 것이다. 그러나 예산이 없다면 매년 연중행사처럼 발생할 것이다. 이러기에 구제역이 국가재난형 전염병인 것이다.

미국은 1929년에 박멸정책 완료

구제역 때문에 호주와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늘고 있다. 인터넷에는 ‘정부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의 정당화를 위해 구제역 방역에 늑장을 부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정체 모를 음모론이 떠돌고 있다. 그와 함께 ‘미국은 구제역으로부터 안전한가’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은 80여 년 동안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그 이전에는 미국도 매년 발생하는 구제역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급기야 방역 작업에 지친 수의사와 정치인들이 1929년 입법을 추진해 엄청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박멸정책을 수립했다. 감염된 가축의 살처분이 바로 그것이다. 이때부터 살처분에 따른 매몰이 본격화됐다. 이후 매몰에 의한 구제역 박멸이 전 세계에 파급됐고, 구제역 청정화가 선진국 진입의 대표적 조건으로 굳어졌다. 미국은 구제역 청정화의 표상이 되었다.

오늘날 구제역 청정국 지위 여부는 국가 간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구제역 청정국이었던 우리나라는 상대국과 항상 유리한 통상 협상을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이미 기술했듯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육류 수입국이다. 축산 대국은 모두 우리나라에 육류를 수출하고 싶어한다. 이때 당연히 문제되는 것이 구제역에 대한 위생 조건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육류를 팔려면 자신들의 나라에 구제역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구제역 청정국은 신흥 구제역 청정 지역 국가(옛날에는 나라 전체가 구제역 청정일 때만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부여했으나 요즘은 국제수역사무국에서 지역적으로 구제역이 없으면 구제역 지역화를 인정해 주는 개념)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제역에 깨끗하다면 우리는 그들의 중간에서 선택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공업제품을 수출하거나 기간산업 건설 수주를 협상하는 데 장점이 되는 것이다.

소 돼지 혼재하고 축사 밀집되면 전염 빨라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수입사료용곡물업체에서 직원들이 곡물을 운반하는 운반차량에 대한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세계는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살처분의 경우 비용이 많이 들고 축산농가의 희생이 커서 선진국에서만 행해지고 있다.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서는 살처분을 하지 않고도 구제역에서 해방된 사례가 적지 않다. 그 때문에 살처분의 효용성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소의 경우 돼지와 달리 구제역에 감염되어도 치명적이지 않아 생명윤리 차원에서 논란을 야기시켰다. 2001년 구제역이 발생한 영국과 우루과이의 대처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1년 영국은 남아공에서 수입한 소고기가 빌미가 되어 구제역이 창궐했다. 영국 정부는 구제역 확산을 막고 청정국 유지를 위해 700만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했다. 소의 경우 백신을 사용하면 생명에 지장이 없는데도 매몰했다. 이로 인해 발생한 비용이 무려 17조원이었다. 영국으로서는 청정국 지위 유지로 얻는 것이 더 많아 이 같은 비용을 감수했다.

반면 남미의 우루과이는 돈이 없어서 살처분 대신 백신 사용을 택했다. 그럼에도 운이 좋았던지 구제역은 더 이상 확산되지 않고 종식됐다. 우루과이가 백신 비용으로 쓴 돈은 고작 600억원에 불과했다.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이면서 지독한 경제난으로 자존심을 구기고 있는 미국에서 1929년도와 같은 전국적인 구제역이 발생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미국은 당시와 같은 강력한 박멸정책을 쓸 수 있을까. 필자 판단으로 미국은 백신 처방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앞에서 간략하게 언급했지만 소에게 구제역은 치명적인 병이 아니다. 유량(乳量)을 감소시키는 것에 불과한 다분히 경제적인 전염병이다. 소의 경우 백신을 사용하면 유량 회복이 되고 사육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돼지는 다르다. 특히 새끼돼지에게 구제역은 40~50%가 폐사하는 치명적인 전염병이다. 배출하는 바이러스의 양도 소에 비해서 1000배가 많다. 농장 내 순환하는 바이러스 때문에 백신을 사용해도 박멸되지 않고, 결국 매년 발생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렇다면 매몰밖에 다른 수단이 없다.

미국은 소 목장과 돼지 축사가 혼재되어 있지 않고 분리돼 있다. 국토가 넓어 축사가 밀집돼 있지 않고 산재돼 있다. 그 때문에 바이러스가 빨리 전파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박멸이 가능한 나라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은 사정이 다르다. 국토가 좁아 소와 돼지 축사가 혼재돼 있을 뿐만 아니라 밀집돼 있다. 그나마 일본은 좀 나은 편이나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결국 한국이나 일본이 사는 방법은 전자장비를 백신과 함께 이용해 방역하는 방법밖에 없다. 즉 CCTV, GPS 등 전자적으로 통제 가능한 수단을 이용해서 백신정책과 박멸정책을 혼용해서 통제하는 것이다.

[미국보다 한국에서 구제역 발생이 잦은 이유]

1. 축산인들의 동남아 여행이 잦아졌다

중국을 비롯한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는 구제역 발생 빈도가 높은 국가로, 우리와 1일 생활권에 있다. 과거에는 경제적 사정으로 외국에 갈 기회가 적거나 갔다 온다 해도 교통사정이 좋지 않아 그날로 바로 귀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외국에 나갈 일이 많고 교통이 발달한 지금은 신발과 의복에 붙은 바이러스와 함께 입국해 거의 동시에 바로 축사 옆에 붙어 있는 집에 도착한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가축을 보고 싶은 마음에 귀국하는 그날 밤에 가축을 보게 되고, 그것이 큰 재앙을 만들게 된다.

이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거로 한국과 미국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미국 축산인이 구제역 상재국인 동남아시아를 여행하고 돌아간다고 상상해 보자. 이들은 적어도 이틀은 걸려야만 미국의 집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중간에 샤워를 하게 되고, 도착 하루 만에 축사를 둘러보기 힘들 정도로 축사가 멀리 떨어져 있다. 미국의 경우 축사는 보통 동물 냄새를 꺼려 하는 주민들과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차를 타고 최소한 20~30분은 가야 한다.

이러한 물리적 차단으로 인해 구제역 바이러스가 동물에게 감염될 수 있는 기회가 감소된다. 하지만 미국도 캐나다에서 구제역이 창궐한다면 안전지대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과 캐나다는 국경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비행기뿐만 아니라 자동차로도 얼마든지 월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방역 시설 없이 축산이 계열화(공동화·共同化)됐다

과거에 비해서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데는 축산의 기업화도 일부 기여했을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국가 시책 중의 하나로 많은 축산농가가 계열화에 동참했다. 계열화는 공동 사료이용, 공동 사양관리, 공동출하, 공동 도축장 이용 등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이번에 구제역이 발생한 많은 곳이 계열화에 참여했던 농장임을 볼 때 간과할 수 없는 요인으로 짐작된다.

축산의 계열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효율적인 시책이다. 하지만 방역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을 경우 전염병에 안전하지 못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3. 일선 방역 현장에 수의사가 부족하다

‘자식 같은 소’를 지키려는 축산 농민들의 마음이 매서운 한파보다 더 꽁꽁 얼어붙었다. 이번 구제역으로 2월 10일 현재 133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살처분됐다.

이번 구제역의 초기 발생 지역은 경북 안동과 한강 이북의 경기도다. 이 지역의 자체적(상재화된 바이러스에 의한)인 구제역 발생은 인정하지만 강원도, 한강 이남의 경기도, 충북 지역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곳은 베트남에 다녀온 축산인들에 의해 발생했다는 상당한 개연성 있는 근거가 확보되었다.

그런데 일본 미야자키 현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와 상관관계가 99%라고 발표돼 혼란이 예상되지만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첫 발생 지역인 안동에서 구제역 진단이 늦어져 안동 전체와 예천으로 옮아간 것은 이해가 된다. 그리고 분뇨차에 의해 경기도 파주로 옮아가고 그것이 한강 이북의 경기도에 전파돼 지금의 상황이 됐다. 눈물은 나지만 역학적으로 있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강 이남의 경기도와 강원도, 충청북도로 전파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보통은 구제역이 대대적으로 발생하면 축주(畜主)는 자신의 집과 농장 밖으로 나오지 않아야 한다. 또한 사료도 축사 안에 들일 때 소독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감염될 일이 없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는 질병 전파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차단방역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필자 생각에 주위에서 구제역이 발발하니까 소규모로 소를 키우는 이들이 병증의 진행 상황을 보기 위해 삼삼오오 모였다가 그냥 귀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정부가 축산업을 허가제로 시행하겠다고 하는 점도 이 때문이다. 허가제가 시행되면 질병 전파와 차단에 대해 기본적인 소양을 가진 사람들만 축산을 업으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각 시도 시험소에 수의사가 부족한 점도 구제역 전파를 막지 못한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축산인을 지도할 전문 인력 배치가 시급한 상황이지만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부 시책에 발맞추다 보니 지방정부에서 축산에 관련된 수의사의 필요성을 약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2001년 영국에서 발생한 구제역도 비슷한 연유에서 전국에 확산됐다는 점이 좋은 교훈을 주고 있다.

필자는 지난해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살처분 보상금 지급 협의차 급히 모 군청을 방문했다. 군청에는 수의사 1명이 행정과 방역을 병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또 다른 군청에 방문했을 때는 몇 년 전에 사라진 농장이 파악되지 않을 정도로 수의 행정이 엉망이었다.

4. 축사가 지나치게 밀집돼 있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축산업이 호황이다. 그에 따라 사육두수도 증가하고 있지만 방역을 위한 투자에는 인색하다. 미국의 경우 축사와 축사 간 거리가 멀어 옷만 갈아 입고 가도 구제역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없는 물리적 시공간이 확보돼 있다. 한국은 축사가 밀집돼 있어 방역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구제역 바이러스가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다. 그로 인해 구제역이 집단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취약점이 있다.

5. 구제역 地圖가 없다

한국은 행정단위에 대한 지도는 있는데 전염병 방역에 대한 지도는 없다. 건물에는 소방지도가 있어야 화재가 나도 우왕좌왕하지 않고 대피할 수 있다. 구제역도 마찬가지다. 가축이 어느 길로 이동해 도축되고, 사료공장은 어디에 위치하며 차량 운행은 어떻게 하는지 등을 알아야 방역을 빠르고 빈틈 없이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그동안 구제역을 위한 방역 지도가 없었다.

6. 축산업이 수도권에 종속돼 있다

한국은 축산업을 어디서 하든지 경매가격 때문에 도축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국토가 좁고 축산업의 부가가치가 높아 상대적으로 물류비 부담이 크게 느껴지지 않은 탓이다.

수도권의 경매가가 높은 이유는 등급 판정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서다. 소나 돼지의 등급에 따라 지육 가격의 차이가 있다. 어느 농민이든지 간에 지육 값을 더 받는 도축장으로 몰리게 마련이다. 현재도 등급의 기준은 잘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조속한 시일 내에 등급 표준화를 기계화해야 할 것이다.

7. 국가정보수집기관에 수의사가 없다

2011년 1월 10일 충남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인근 축산농가에서 아산시농협방제연합사업단 관계자가 무인헬기를 이용한 구제역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축산 선진국인 미국은 100년 전에 만들어놓은 방역 시스템에 따라 구제역을 막고 있다. 미국은 물리적인 시공간적 방역에 의하여 아직까지는 구제역을 효과적으로 방역하고 있으나 지역 간의 이동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도 더 이상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일본과 우리는 지금 당장 이런 위험에 봉착하고 있다 보니 1년에 3번씩 구제역 몸살을 앓고 있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구제역 발생을 막을 수 없다.

미국은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에 3명의 수의사가 근무하고 있다. 이들 중 한 명은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수의사다. 그가 하는 일은 전 세계에 있는 동물전염병 자료를 입수하고 분석하며 미국 내 어떠한 곳에서 전염병에 관련된 신고가 들어오면 신속히 파견나가 가장 가까운 정밀 분석 기관에 자료를 송부하여 진단하는 일이다. 이것이 가장 선진국적인 구제역 방역 시스템이다. 이제는 한국과 일본이 현대화된 방역 시스템을 개발해야 할 때이다.

8. 청소년 대상 교육이 없다

축산 선진국의 청소년들에게는 국경을 통과할 때 축산물을 몸에 지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각인되어 있다. 그들은 유소년 시절에 학교에서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것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 구속 내지 벌금형을 받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학생들에게 그런 교육을 시켜본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남자들은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가 되어서도 여전히 그런 것들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반면 여자들은 어머니가 되면 달라진다. 광우병 걱정, 구제역에 대한 걱정, 식중독 걱정 등으로 항상 가족의 먹을거리에 대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제는 어머니들에 의해서 대한민국 축산이 지켜질 차례인 것이다. 이러한 어머니들의 염려를 반영하여 초등학교, 중학교 과정에서 안전한 먹을거리, 나아가 그것을 오염시키고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국가 재난형 전염병에 대한 교육이 시작될 때다.

이번에 축산을 바로 세우기 위해 1조원을 투자했으니 이제는 이런 교육이 이루어져야 축산의 백년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

[구제역 극복 후 해야 할 일들]

구제역은 소와 돼지뿐만 아니라 노루, 사슴, 염소 등 발굽이 두 개로 갈라지는 동물(우제류)에서 발생되는 바이러스성 가축전염병이다.

1. 청정국 지위를 복구해야 한다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백신을 사용한 후 백신 맞은 동물을 모두 살처분하고 나서 3개월이 되면 국제수역(獸疫)사무국(OIE)에서 청정국 지위를 다시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은 일본이 채택한 방법인데 돈이 많이 들어가는 선진국형 구제역 청정화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 방법을 채택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무차별적인 살처분 정책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보다는 실험실 검사에 의해서 감염 여부를 판단하여 감염된 가축만 매몰하는 방식으로 청정국 지위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백신 접종 완료 후 6개월이 되면 청정국 지위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의 경우 구제역 발생 규모로 볼 때 복구하기까지 1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5월에 OIE총회에서 청정국 지위를 복구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2. 축산인들의 출입국 관리가 까다로워져야 한다

축산인 중 부득이하게 제3국을 다녀올 일이 있다면 적어도 3일 동안은 농장에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최소한 3일 동안 3번 샤워하고 3일째 오후 3시쯤 들어가는 ‘333 원칙’을 지켜야 한다. 수의사들도 농장에서 농장으로 이동할 때 333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바이러스가 비강 속에서 최대 72시간까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소규모는 500m, 대규모는 3km 떨어져 축산을 해야 한다

구제역 피해 농가에서 앞으로 다시 가축을 입식하려 한다면 반드시 방역 시설이 갖추어졌을 때만 허용해야 한다. 농장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하나여야 하고 출입 시에는 신발과 의복을 바꿔 착용해야 하며 농장 안에서 사용하던 어떤 도구도 일단 밖으로 나오면 다시 안으로 들여서는 안 된다.

지대사료는 농장 인부가 직접 농장 안으로 가지고 가야 한다. 사료차를 몰고 온 기사에게 사료 운반을 부탁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되도록 발생 지역 내 구제역 지도에 근거를 두어서 축산업이 재개되도록 해야 한다.

구제역이 발생하면 500m 내의 동물들을 모두 살처분한다는 얘기는 500m 내에는 다른 축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또한 큰 규모로 양돈업을 할 때는 반드시 3km는 떨어져 있어야 한다.

구제역이 발생하면 발생 농장으로부터 3km 내의 가축에 이동제한이 걸리기 때문에 이에 준해서 축산업 재개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 구제역(口蹄疫)이란?

구제역은 소·돼지·양·사슴 등 발굽이 두 개로 갈라진 동물(우제류·偶蹄類)에게서 발생하는 제1종 바이러스성 가축전염병이다. 이 바이러스에 전염된 동물은 고열과 함께 입과 발굽·유방 등에 물집(수포)이 생기고 다량의 침을 흘리는 증상을 보인다. 폐사율이 소는 5%, 새끼돼지는 최대 50%에 이른다.

전염은 감염 동물 자체와 배설물, 관련 축산물은 물론 사료·차량·사람 에 의해서 이뤄진다. 현재까지 치료법이 없어 전염된 가축은 가축전염 예방법에 따라 모두 살처분·매몰·소각하도록 돼 있다．

특히 한번 발생하면 전염 범위가 넓고 바이러스 종류가 다양해 동·축산물 국제교역 시 최대의 규제대상이다.

국제 수역(獸疫)사무국(OIE)에서 지정한 가축전염병 가운데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지정되어 있다. 국제수역사무국의 법규상 구제역의 잠복기간은 14일이지만 심급성의 경우에는 바이러스 감염 후 48시간 내에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구제역은 우제류에는 치명적이지만 사람에게 감염되지 않고, 감염된 고기를 사람이 먹는다 하더라도 인체에 전혀 영향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구제역은 원래 유럽, 남미에서 발생했으나 수년 전부터 필리핀과 대만을 중심으로 동아시아로 급속히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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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간 구제역 없는 미국, 우리와 뭐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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