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점 아가씨가 될 텐데 그럼 목욕도 못 시키고…”
(언어장애 딸 홀로 키우는 50대 아버지)
⊙ “초등학교라도 졸업하면 혼자 살 능력은 생길 것 같아서…”
(‘언제 죽을지 몰라’ 5살 손녀 입학시킨 70대 할머니)
⊙ 서울 쪽방 주민 3228명 중 602명은 장애인
⊙ “쪽방촌은 자녀와 부모의 암묵적인 합의하에 만들어진 현대판 고려장”
(김흥용 남대문지역상담센터장)
(언어장애 딸 홀로 키우는 50대 아버지)
⊙ “초등학교라도 졸업하면 혼자 살 능력은 생길 것 같아서…”
(‘언제 죽을지 몰라’ 5살 손녀 입학시킨 70대 할머니)
⊙ 서울 쪽방 주민 3228명 중 602명은 장애인
⊙ “쪽방촌은 자녀와 부모의 암묵적인 합의하에 만들어진 현대판 고려장”
(김흥용 남대문지역상담센터장)
-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앞길 쪽방촌.
해가 중천인데 방이 어둡다. 팔다리를 따로 놀려야 겨우 움직일 만큼 비좁은 방, 몸은 점점 더 굳어 간다. 합판 한 장을 사이에 둔 옆방에서 기침 소리가 들린다. 여름엔 가만히 있어도 등이 땀에 젖고, 겨울에는 발가락이 얼 정도로 춥다. 마치 상자 속에 누워 있는 듯 숨이 콱콱 막히는 이곳, 수많은 노인들이 마지막 거처(居處)로 삼고 있는 곳이다.
지난 6월 초부터 두 달 동안 서울 시내 여러 쪽방촌을 돌아봤다. 배가 산처럼 부른 젊은 미혼모가 7살짜리 딸과 11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사는 방도 있었고, 알코올 중독에 폭력이 심했던 전 남편에게서 도망쳐 노숙하다가 홀로 아이를 낳은 여자도 있었다.
서울시 자활지원과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내 쪽방은 종로구 돈의동·창신동, 중구 남대문로5가, 용산구 동자동·갈월동, 영등포구 영등포1동·2동·문래1동 총 9개 지역에 3512개가 있다. 3228명의 쪽방 주민은 대부분 40대 이상으로 혼자 산다. 기초생활수급자는 1302명, 장애인은 602명이다.
‘하루 33만원’ 호텔 옆 ‘하루 7000원’ 쪽방
가장 규모가 큰 곳이 남대문로다.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과 CJ, STX 등 호텔과 대기업 사옥이 빽빽한 남대문로5가에 2.31㎡(0.7평) 쪽방촌(村)이 형성돼 있다. 회현동 남대문 경찰서 뒤부터 연세빌딩 뒤쪽까지 닭장처럼 다닥다닥한 쪽방이 1000개가 넘는다.
기자가 하룻밤을 묵는 데 33만~455만원이라는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앞 거리에 간 7월, 하루 숙박비 7000원(월 임대료가 21만원 수준)인 ‘쪽방’ 주민들이 모여 부채질을 해대고 있었다. 목에 대기업 사원증을 걸고, 테이크아웃 아이스커피를 손에 든 행인들은 주민들 멀리 돌아 걸어갔다. 쪽방촌 주민과 행인들 사이에 범접할 수 없는 ‘빈부(貧富)의 경계’가 명백했다.
남대문 쪽방 거주자 739명 중 기초생활수급자는 279명,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151명이다. 자녀가 어느 정도의 수입이 있어 수급자가 되지 못한 노인들은 허드렛일을 해서 먹고산다. 영양 부족, 알코올 중독, 결핵 등을 앓는 사람이 많다. 지난 1월에는 이 동네 수급자 최모(51)씨가 근로 중 심근경색으로 죽었다.
이들을 돌보기 위해 서울 중구보건소는 2004년부터 ‘간호사 1인 1동제’를 실시했다. 14명의 간호사가 매일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가정을 방문해 무료로 건강을 관리해 주는 제도다. 20년 동안 간호사를 하다 2005년 퇴직한 박한우(62) 간호사가 지난해부터 남대문 쪽방 지역의 방문간호를 맡고 있다. 박 간호사는 “면접 때 열심히 일하겠다던 간호사도 쪽방에 한번 가 보고는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며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한 간호사들이 주로 쪽방을 맡는다”고 했다.
힐튼호텔 앞까지 나 있는 구불구불한 비탈길. 개구멍 크기의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고 어두운 복도 양쪽에 방 8개가 있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박 간호사의 부름에 이모(84·이름 밝히기를 한사코 거부해 익명 처리)씨가 빠끔히 문을 열었다. 2.31㎡(0.7평) 방에 살림살이가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얇은 합판 수납장 위 텔레비전, 버너, 간이 냉장고, 전화기, 요강이 눈에 들어왔다. 눅눅한 이불 위에 세 사람이 앉으니 서로 무릎이 닿았다.
박 간호사가 이씨의 혈당, 혈압을 체크할 동안 이씨는 그동안 쌓아 둔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이씨는 “박 간호사가 유일한 손님이자, 친구이자, 딸”이라며 “작년에 중풍이 재발하면서 이 방에서 죽다 살아났다”고 했다.
쪽방에서 만난 84세 6·25 참전용사
당시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듯 정신을 잃어 가던 이씨를 옆집 사람이 응급실에 데려가 살려냈다. 이후 12월부터 박 간호사가 그를 돌봐 왔다.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왕래하던 쪽방 친구들도 떠나갔다. 박 간호사가 오지 않는 날은 하루 온종일 말 나눌 사람 구경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통장 집에 배달되는 신문을 가져다 보고, TV 뉴스를 시청하는 게 일과다. 하루 한 번 배달되는 무료 도시락을 세 끼로 나눠 먹는다.
복막염, 신장염, 방광염, 전립선염, 중풍을 앓는 이씨는 하루 40여 알의 약을 삼켜야 한다. 한 달 약값이 보통 6만~7만원 드는데, 기초생활수급자 지원비 38만원에서 월세 21만원을 내고 약값까지 지출하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다. 남는 돈으로는 그의 ‘만능약’인 청심환과 음료수를 산다.
“죽을 때가 다 됐는지, 요즘 6·25때 생각이 자꾸 납니다. 그때 죽었다면 명예라도 남았을 텐데, 끈질기게 삶을 이어가는 제가 그저 한스럽지요.”
1949년, 유난히 키가 크고 총기(聰氣) 있었던 22살의 이씨는 10월 사관학교에 입학해 1950년 4월 25일 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두 달 만에 6·25가 터졌다. 신임 소위는 최전선에 투입됐다.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가면서 선후배와 전우가 연달아 죽어 나갔다. 60년이 흘렀지만, 그때의 충격과 슬픔이 생생하다고 한다. “나는 살았는데, 너는 왜 죽어” 하며 전우의 시신을 붙잡고 울던 그였다.
전쟁이 끝날 무렵, 이씨는 결혼해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낳았다. 동아대학 야간 법정대에서 못 다한 학업을 마쳤고, 육군 수송학교 교관으로 교편을 잡았다. 야당 당수였던 조병옥(趙炳玉) 박사를 피신시켜 준 인연으로 그의 경호를 맡았다. 당시 조 박사의 경호를 위해 49명의 군인이 예편신청을 하게 됐지만, 조 박사가 사망하면서 모든 계획은 백지화됐다. 이씨는 “(내가)예편하게 했던 사람들에게 죽는 날까지 미안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육군 수송학교 교수부장을 지내다가 1967년에 40세의 나이로 민간인이 됐다. 낡은 군복과 군화 차림으로 고향집 문턱에 섰는데, 세상은 이미 너무 많이 바뀌어 있었다. 한국은 전쟁의 상처를 굉장히 빨리 회복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낯설어했다.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냉동회사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사회적 기반이 없어 금방 원점으로 돌아갔다. 6·25 참전자회 조직국장을 맡아 약간의 생활비를 벌었지만 부족했다.
아버지는 쪽방살이, 나머지 가족은 미국 이민
이씨는 “조국을 위해 내 청춘, 가족, 친구들을 다 바쳤는데 남은 건 쪽방 한편과 명예수당 9만원뿐”이라고 했다. 6·25 참전용사라 국가보훈처에서 참전명예수당으로 매달 9만원을 지원해 주지만, 작년까지는 이 돈이 소득으로 인정돼 지원비에서 빠져 왔다. 이씨는 “몇년 동안 보훈처와 회현동 동사무소에 하소연해 봤지만 헛수고였는데, 참전자들이 다 죽어 나가고 나도 죽을 날이 다 되니까 돈을 준다”고 했다.
2009년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보훈연구원에 따르면, 근로소득이 있는 참전자는 9777명(6.3%)이며, 이들의 월평균 수입은 49만원으로 최저생계비(1인 가구 월 50만4344원)에 미치지 못했다.
1976년 아내와 이혼 하자 가족은 미국으로 떠났다. 둘째 딸은 증권회사 대리였고, 아들은 중견회사 과장이었다. 막내는 현재 미국의 한 명문대 강사다. 그래도 이씨는 자녀들에게 용돈을 절대 받지 않는다고 했다. 쪽방에서 근근이 살고 있다는 것도, 12년 전 걸렸던 중풍이 재발했다는 사실도 숨기고 있다. 그는 “자녀는 미국에 들어와 같이 살자 하지만, 여기가 편하다”고 했다.
이씨의 발등에 벌레가 기어올랐다.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가만히 내버려뒀다. 현재 그와 소통하는 사람은 박한우 간호사뿐이다. 이씨는 딸 같은 박 간호사를 보면서 “한국 사람들이 아직 따뜻하다는 걸 알게 해 준다”고 했다. 바라는 바가 있느냐고 그에게 묻자 “이제 내 삶에 대한 희망은 없다”며 그의 방 한 번 방문한 적 없는 아들딸들이 안정된 삶 속에 사는 게 마지막 바람이라고 ‘부정(父情)’을 보였다.
어두운 방에서 돌아 나오는데, 이씨가 배웅했다. 허리가 굽어 160cm가 조금 넘는 기자의 키와 비슷했다. 손녀뻘 기자의 어깨에 깡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런 데 이제 오지 마. 자네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일만 겪으며 살길 비네.”
서울 영등포 쪽방촌도 명품매장이 즐비한 타임스퀘어, 신세계백화점 근처라 묘한 분위기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노숙인과 명품화장품 코너가 계단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영등포역에서 신세계백화점 방면으로 걸어 나오면, 마치 다른 세계로의 입성인 양 ‘24시간 청소년 출입금지’ 경고문이 눈에 띈다. 윤락촌이다. 영등포동 쪽방은 452개, 508명의 주민이 역 주변 노숙인들과 섞여 살고 있다.
이곳 2평짜리 방에 사는 정모(71)씨는 2000년부터 직업 없이 혼자 지냈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을 받은 지는 이제 1년 반 됐다.
“X 팔리니까 아버지가 벌어서 살라”
2000년 10월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르면, 독거노인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부양의무자(자녀)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어야 한다. 자녀 가구의 최저생계비(1인가구 월 50만4344원, 2인가구 월 85만8747원, 4인가구 월 136만3091원)와 부모 가구의 최저생계비 합산액의 130% 이상을 자녀 가구가 벌 경우, 부모는 기초생활급여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이 기준은 부양의무자가 피부양자에게 일정 금액의 용돈을 준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것이다. 정씨의 경우, 자녀가 일정 수준의 돈을 벌고 있지만, 오랫동안 교류가 없었다는 점이 인정돼 수급자가 될 수 있었다. 그 전에 재산신고액 조회에 대한 자녀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 정씨의 설명이다.
“애들 수입 때문에 포기하고 살았는데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근데 애들이 동의를 안 해 준다더라고요.”
보건복지가족부 측은 정씨가 수급자가 되는 것에 대해 자녀가 세 차례 거절했다고 전했다. 참다 못한 정씨가 자녀들에게 연락했을 때 돌아온 말은 “아버지가 수급자라는 걸 친척들이 알면 X 팔리니까 아버지가 벌어 살라”는 한마디였다. 정씨는 “요즘 애들 말로 X 팔리다 카데”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정씨는 1980년경부터 부산에서 전자제품 도매업체를 운영해 가족을 부양해 왔다. IMF가 나면서 납품업체들이 줄줄이 부도가 났고, 정씨 역시 1억5000만원의 빚을 졌다. 2000년, 61세 나이로 도망친 납품업체 사람들을 찾으러 전국을 돌아다녔다. 정씨는 “그때 가족들이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다”며 “그런 가족들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 와중에 생활비를 벌려고 택시 운전, 찜질방 구두닦이, 주유소 직원 등 안 해 본 것이 없다. 정씨는 “그렇지만 가장 참기 어려운 건 외로움이었다”고 했다. 택시를 운전하다 중간에 내려 한강에 빠져 죽으려 했던 적도 많았단다.
슬하 4남매 중 둘을 대학에 보내고 나머지는 상업고에 진학시킨 뒤였지만, 자녀는 그에게 전화 한 통 걸어 오지 않았다. 자녀 중에는 중학교 교사, 간호사, 전문직 출신도 있다. 교사인 아들이 전근을 가야 했을 때, 좋은 곳으로 보내려고 교육위원회 과장으로 재직 중인 중학교 동창의 책걸상을 고쳐 주었던 그였다. 정씨는 “애들 키우면서 자존심 버린 일이 셀 수 없이 많다”며 “지금 생각해 보면 돈 버는 기계였던 것 같다”고 했다.
언어장애 딸 홀로 키우는 50대 아버지
정씨는 기초생활수급자 지원비 34만원과 노령연금 9만원, 중소기업 ‘세인상사’가 지원해 주는 6만원으로 한 달을 산다. 그러면서도 근처 광야교회에 기부된 헌 옷을 모아 빨아 영등포구 쪽방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방에 잔뜩 쌓여 있는 공구도 쪽방 주민들의 가전제품을 무료로 고쳐 주기 위한 것들이다.
그의 집에 자주 방문하는 광야교회 이진호 간사는 “무료 세탁, 무료 수리에다 헌 옷도 공짜로 나눠 주는 덕에 쪽방 사람들이 이 집에 자주 드나든다”며 “정씨는 이 마을에 없어서 안 될 사람”이라고 했다. 정씨는 장기기증 서약도 했다. 옆방에 사는 장애인들의 거동도 그가 돕는다.
정씨는 “외롭고 힘들어 봤기에 쪽방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그는 “내가 죽고 나서 자녀들에게 내 빚이 상속될까 두렵다”고 했다. 그는 10년 동안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들딸들을 걱정했다.
남대문로5가 ○○번지. 한 층에 8칸이 있는 낡은 빌라 옥상에 방 세 칸이 있었다. 늘어뜨린 빨랫줄에 빛바랜 원피스가 펄럭였다.
혜윤(가명·11·언어장애2급)양이 기자에게 배꼽 인사를 했다. 혜윤양의 아버지 정기영(52)씨도 숟가락을 든 채로 기자를 맞았다. 이들은 1.5평 방에서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반찬은 가스버너를 이용해 끓인 동태찌개와 구운 햄이었다. 정씨가 흰밥에 햄을 올려 혜윤양의 입에 넣어 줬다. 지능이 낮고, 언어장애를 가진 혜윤양은 누군가 밥을 떠 먹여줘야 한다. 기자가 정씨에게 “동태찌개도 끓일 줄 아느냐”고 했더니, 정씨는 “5년 동안 서대문경찰서 구내식당에서 요리를 했다”고 했다.
정씨의 어머니는 정씨가 10살 되던 해 가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해 아버지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7남매가 졸지에 고아가 됐다. 정씨도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궂은 일은 다 했다. 자기 몸 챙기기 바쁘다 보니 남매는 뿔뿔이 흩어졌다.
1989년, 정씨는 서대문경찰서 구내식당에서 요리보조를 하던 중 홀 서빙을 하던 여자와 동거를 시작했다. 혼인신고 없이 “둘이서 조그마한 분식집이라도 하면서 살아 보자”며 꿈을 키웠다. 초라하지만 봄이 오나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1300만원이 든 통장과 함께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전 재산이었다. 그렇게 첫 번째 꿈은 깨졌다.
기저귀 찬 딸 안고 서울역에서 노숙
그는 막노동을 시작했다. 서울역에서 노숙하다가 두 번째 여자를 만났다. 여자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헤어지려고 했지만, 혜윤양을 임신한 상태였다. “우리 둘 다 고아니까, 아이 낳고 잘살아 보자”고 다짐했다. 낮엔 막노동, 밤엔 밀린 살림을 하며 꿋꿋이 살았다. 중림동에 10평 남짓한 사글세집도 얻었다. 그런데 여자의 정신병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이 아저씨 잡아가라, 모르는 아저씨다” 하며 계속 신고를 하는 통에 경찰이 한 달에 네 번은 왔다 갔다. 한번은 막노동을 하고 집에 와 잠이 들었는데, 여자가 맥주병으로 얼굴을 쳐서 정신을 잃었다. 정씨 눈 밑으로 보기 흉한 상처가 남았다.
“이 상처 때문에 울면 눈물이 바깥으로 나가 버립니다.”
정씨가 고인 눈물을 훔쳤다. 그 일로 여자는 오산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경찰은 수감시키겠다고 했지만, 정씨가 막았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여자가 입원하면서 수급자 지원비가 없어졌다. 갓 두 살 된 아이를 돌봐야 하기에 일도 할 수 없었다. 방세를 못 내니까 셋집에서도 쫓겨났다. 정씨는 기저귀를 찬 혜윤양을 데리고 서울역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남들은 보육원에 맡기라고 했지만, 하나뿐인 아이를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하도의 행인들이 불쌍하다며 준 돈으로 분유와 30개들이 기저귀를 샀다. 서울역 화장실에서 혜윤양의 옷을 빨아 입히고 박스에서 잤다. 장애를 가진 혜윤양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거의 울지 않았다.
아이를 안고 거지 꼴로 서울역을 전전한 지 6개월이 다 됐다. “이상한 노인이 아이를 안고 서울역에 돌아다닌다”는 신고가 잦아지면서 혜윤양과 정씨는 한 달 57만원의 정부 지원을 받게 됐다. 그렇게 중구 쪽방촌에 왔다.
정씨의 일과는 혜윤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른 새벽 일어나 밥을 하고 오전 7시30분에 특수학교 버스에 혜윤양을 태운다. 오후 2시30분에 버스에서 내리는 혜윤양을 데리고 쪽방으로 돌아온다. 혜윤양에게 저녁을 먹이고 저녁 7시면 잠이 든다.
며느리 집 나간 후 홀로 손녀 키우는 70대 할머니
혜윤양을 맡겨 놓을 시설이 아무 데도 없어 취업도 할 수 없다. 혜윤양 집을 자주 방문하는 박한우 간호사는 “아이가 있는 쪽방 주민들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아이가 클 때까지 정부 지원금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씨도 막노동으로 돈을 모으려고 누이에게 ‘방학 동안만 혜윤이를 맡아 달라’고 애원했지만 “보육원에 보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정씨는 “하나뿐인 딸인데, 보육원에 맡기는 건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앞으로 점점 더 아가씨가 되어 갈 텐데 목욕도 못 시키고, 옷도 매번 주워다 입히는 아비 가슴이 미어집니다.”
정씨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계속 살아가야 한다”며 혜윤양의 사진첩을 자꾸 보여줬다. 사진 속 혜윤양은 한복을 입고 긴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았다. 정씨의 솜씨다. 사진첩에 정씨의 사진은 없었다.
남대문로5가 쪽방촌 건너편인 용산구 동자동, 5평 전세방에 세영(7·가명)양과 장점덕(70·여)씨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남대문지역상담센터와 김흥용 센터장의 도움으로 6년 전 남대문로5가 쪽방촌에서 벗어나 이곳에 왔다.
세영양은 어린아이답지 않게 조용했다. 인형같이 예쁜 얼굴로 잘 웃지도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와 말없이 가방을 싸서 공부방에 갔다.
“얼마 전에 학교 애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너희 집 가난하지’ 하며 놀렸대요. 그게 애 가슴에 얼마나 맺혔겠어요. 그 뒤로 더 조용해졌어요.”
세영양은 쪽방에서 태어났다. 20대였던 어머니가 배가 부른 채로 쪽방에 들어와 세영양을 낳자마자 집을 나갔다. 아버지도 아내를 찾아 집을 나갔다. 아주 가끔 집에 들어온다. 장씨 홀로 세영양을 길렀다. 장씨는 “쪽방에서 네 식구는 살 수 없다”며 집 나간 며느리를 이해한다고 했다. 아들은 당뇨가 심해 일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집에 들어오면 세영양을 위해 모아 둔 통장의 돈을 가져다 쓸 뿐이다.
세영양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칠십 노인 장씨의 몸도 많이 망가졌다. 허리와 다리 수술을 미룬 지 오래다. 수술 후 회복기간 동안 세영양을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노안까지 와서 눈앞이 자주 새까매진다. 장씨는 “세영이가 학교에 있으면 ‘할머니가 또 어디 아픈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고 하더라”고 했다. 장씨의 말이다.
“제가 언제 죽을지 두려워, 5살 때 초등학교에 보냈어요. 초등학교라도 졸업하면 혼자 살 능력은 생길 것 같아서 안 된다는 걸 억지로 넣었지요….”
“화장실 있는 집에 사는 게 소원”
남보다 2~3살 어릴 때 학교에 들어간 데다, 학원 한 번 다녀본 적 없지만 세영양은 지금껏 8개의 상장을 받았다. 다독상(多讀賞), 사생대회 최우수상도 있다. 우등생이지만, 세영양은 친구가 없다. 장씨는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남들이 버린 헌 옷을 돌려 입어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친구들이 생일잔치에 부르는데, 거기 가면 자기도 생일 때 친구들을 불러야 하니까 못 가나 봐요. 화장실 없는 집에 친구를 부를 순 없다고 하더라고요.”
세영양의 소원은 ‘화장실 있는 집에 살아 보는 것’이다. 아래층의 주인집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화장실에 주인집 사람이 들어가 있으면 근처 공원 화장실로 뛰어가야 한다. 엄마도 찾지 않은 지 오래다. 어릴 적 세영양은 혼자 놀다가도 “엄마… 엄마…” 하는 말을 나지막이 뱉어 내곤 했다고 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세영양의 사연이 소개되면서, 한 가정이 세영양을 입양하려 했다. 세영양 아버지가 연락이 안돼 친부 동의 없이 아이를 입양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
장씨는 “사실은 나도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다”며 흐느꼈다.
“그걸 어떻게 길렀는데 보내고 싶겠어요. 하루 저녁에도 몇 번이나 아동병원에 업고 뛰며 길렀는데, 그걸 누굴 주고 싶겠습니까….”
장씨는 “나 죽고 나면 아들이 기를 능력이 없어 보육원에 가게 될 것”이라며 “보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장씨는 못 쓰게 될지 모를 다리, 허리 수술을 미뤄 둔 채, 이날도 세영양 이름으로 3만원을 저축했다.
나이에 관계없이 쪽방촌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취재 중 만난 15명 중 11명이 편부모 가정에서 자랐거나 고아였다. 1명 외엔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도 없다. 중학교 중퇴·졸업이 8명으로 가장 많았고, 초등학교 졸업 4명, 고등학교 중퇴 2명 순이었다.
기자가 만난 두 명의 아이들(장애아동 제외)은 교육적으로 방치 상태였다. 중구보건소와 지역상담센터가 쪽방 주민들의 건강에 도움을 주고 있었지만, 교육적인 혜택은 받지 못하고 있었다.
“잠자다 죽는 약이 개발됐으면…”
쪽방촌 사람들은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기준에도 불만을 갖고 있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르면, 독거노인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부양의무자(자녀)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어야 한다. 자녀가 일정 수준의 수입이 있지만, 부모에게 용돈을 주지 않는다면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을 받지 못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 4월 조사에 따르면, 소득이 수급자 기준에 해당하는데도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103만명이다.
1.5평 쪽방에서 혼자 사는 허효순(75)씨는 슬하에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두고 있지만, 용돈을 받지 않는다. 자녀가 먹고살 만큼 돈을 벌어 기초생활수급자 혜택도 받지 못한다. 작년부터 경로당에서 2시간씩 부엌일을 하고 한 달 25만원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그 전에는 다리가 덜 아파 포장마차에서 서빙을 했다. 허씨는 “보증금 다 까먹고 한 달 방세를 겨우 내고 있다”며 “혈압, 골다공증,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최근 대상포진까지 생겼는데도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고 했다. 명절 때도 혼자 지낸다. 허씨는 “자녀도 자기 삶이 있는데 용돈 달라고 못한다”며 “잠자다 죽는 약이 개발돼서 얼른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서울역 근처 쪽방에서 혼자 사는 황모(40)씨는 천식이 심하고 혈압이 높아 일을 할 수 없다. 폐결핵을 앓은 지 5년 됐다. 고아인 황씨와 남동생은 사업을 꾸리다가 동생은 수천만 원, 황씨는 800만원의 빚을 졌다. 폐결핵을 가진 줄 모르고 빚을 갚기 위해 낮에 막노동, 밤에 대리운전을 하다가 피를 바가지로 토한 적도 있었다. 황씨의 말이다.
“제 몸이 일할 수준이 아니니까, 병원에서 어떤 분이 동생과 따로 살라고 합니다. 그러면 저라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다고요. 동생 수입이 일정하지도 않은데 함께 살면 지원을 받을 수 없답니다.”
그런 이유로 황씨는 5년 전 동생과 이별했다. 수급자가 되고 쪽방에 들어왔다. 그는 “요즘은 방에 있으면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 거리를 서성인다”고 했다.
1997년부터 서울역 극빈자를 위해 무료 목욕실, 세탁실, 이발실을 운영해 온 김흥용 남대문지역상담센터장의 말이다.
“부양의 의무를 지는 자가 일정 수준의 돈을 벌면 피부양자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부양의 의무를 이행하진 않습니다. 부양의 의무에서 벗어나고, 정부의 지원을 받고자 가족들, 자녀와 늙은 부모들은 서로 곁을 떠납니다. 그렇게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노인은 그의 마지막 거처(居處)가 될 쪽방에 버려지는 겁니다. 쪽방촌은 자녀와 부모의 암묵적인 합의하에 만들어진 현대판 ‘고려장(高麗葬)’인 셈입니다.”⊙
지난 6월 초부터 두 달 동안 서울 시내 여러 쪽방촌을 돌아봤다. 배가 산처럼 부른 젊은 미혼모가 7살짜리 딸과 11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사는 방도 있었고, 알코올 중독에 폭력이 심했던 전 남편에게서 도망쳐 노숙하다가 홀로 아이를 낳은 여자도 있었다.
서울시 자활지원과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내 쪽방은 종로구 돈의동·창신동, 중구 남대문로5가, 용산구 동자동·갈월동, 영등포구 영등포1동·2동·문래1동 총 9개 지역에 3512개가 있다. 3228명의 쪽방 주민은 대부분 40대 이상으로 혼자 산다. 기초생활수급자는 1302명, 장애인은 602명이다.
‘하루 33만원’ 호텔 옆 ‘하루 7000원’ 쪽방
가장 규모가 큰 곳이 남대문로다.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과 CJ, STX 등 호텔과 대기업 사옥이 빽빽한 남대문로5가에 2.31㎡(0.7평) 쪽방촌(村)이 형성돼 있다. 회현동 남대문 경찰서 뒤부터 연세빌딩 뒤쪽까지 닭장처럼 다닥다닥한 쪽방이 1000개가 넘는다.
기자가 하룻밤을 묵는 데 33만~455만원이라는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앞 거리에 간 7월, 하루 숙박비 7000원(월 임대료가 21만원 수준)인 ‘쪽방’ 주민들이 모여 부채질을 해대고 있었다. 목에 대기업 사원증을 걸고, 테이크아웃 아이스커피를 손에 든 행인들은 주민들 멀리 돌아 걸어갔다. 쪽방촌 주민과 행인들 사이에 범접할 수 없는 ‘빈부(貧富)의 경계’가 명백했다.
남대문 쪽방 거주자 739명 중 기초생활수급자는 279명,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151명이다. 자녀가 어느 정도의 수입이 있어 수급자가 되지 못한 노인들은 허드렛일을 해서 먹고산다. 영양 부족, 알코올 중독, 결핵 등을 앓는 사람이 많다. 지난 1월에는 이 동네 수급자 최모(51)씨가 근로 중 심근경색으로 죽었다.
이들을 돌보기 위해 서울 중구보건소는 2004년부터 ‘간호사 1인 1동제’를 실시했다. 14명의 간호사가 매일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가정을 방문해 무료로 건강을 관리해 주는 제도다. 20년 동안 간호사를 하다 2005년 퇴직한 박한우(62) 간호사가 지난해부터 남대문 쪽방 지역의 방문간호를 맡고 있다. 박 간호사는 “면접 때 열심히 일하겠다던 간호사도 쪽방에 한번 가 보고는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며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한 간호사들이 주로 쪽방을 맡는다”고 했다.
힐튼호텔 앞까지 나 있는 구불구불한 비탈길. 개구멍 크기의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고 어두운 복도 양쪽에 방 8개가 있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박 간호사의 부름에 이모(84·이름 밝히기를 한사코 거부해 익명 처리)씨가 빠끔히 문을 열었다. 2.31㎡(0.7평) 방에 살림살이가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얇은 합판 수납장 위 텔레비전, 버너, 간이 냉장고, 전화기, 요강이 눈에 들어왔다. 눅눅한 이불 위에 세 사람이 앉으니 서로 무릎이 닿았다.
박 간호사가 이씨의 혈당, 혈압을 체크할 동안 이씨는 그동안 쌓아 둔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이씨는 “박 간호사가 유일한 손님이자, 친구이자, 딸”이라며 “작년에 중풍이 재발하면서 이 방에서 죽다 살아났다”고 했다.
쪽방에서 만난 84세 6·25 참전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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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우(62) 간호사가 남대문로5가 쪽방촌에서 이모씨의 혈압을 재고 있다. 하루 40알의 약을 먹으며 연명하는 이씨는 “6·25 때 죽었으면 명예라도 남았을 것”이라며 한탄하고 있다. |
복막염, 신장염, 방광염, 전립선염, 중풍을 앓는 이씨는 하루 40여 알의 약을 삼켜야 한다. 한 달 약값이 보통 6만~7만원 드는데, 기초생활수급자 지원비 38만원에서 월세 21만원을 내고 약값까지 지출하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다. 남는 돈으로는 그의 ‘만능약’인 청심환과 음료수를 산다.
“죽을 때가 다 됐는지, 요즘 6·25때 생각이 자꾸 납니다. 그때 죽었다면 명예라도 남았을 텐데, 끈질기게 삶을 이어가는 제가 그저 한스럽지요.”
1949년, 유난히 키가 크고 총기(聰氣) 있었던 22살의 이씨는 10월 사관학교에 입학해 1950년 4월 25일 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두 달 만에 6·25가 터졌다. 신임 소위는 최전선에 투입됐다.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가면서 선후배와 전우가 연달아 죽어 나갔다. 60년이 흘렀지만, 그때의 충격과 슬픔이 생생하다고 한다. “나는 살았는데, 너는 왜 죽어” 하며 전우의 시신을 붙잡고 울던 그였다.
전쟁이 끝날 무렵, 이씨는 결혼해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낳았다. 동아대학 야간 법정대에서 못 다한 학업을 마쳤고, 육군 수송학교 교관으로 교편을 잡았다. 야당 당수였던 조병옥(趙炳玉) 박사를 피신시켜 준 인연으로 그의 경호를 맡았다. 당시 조 박사의 경호를 위해 49명의 군인이 예편신청을 하게 됐지만, 조 박사가 사망하면서 모든 계획은 백지화됐다. 이씨는 “(내가)예편하게 했던 사람들에게 죽는 날까지 미안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육군 수송학교 교수부장을 지내다가 1967년에 40세의 나이로 민간인이 됐다. 낡은 군복과 군화 차림으로 고향집 문턱에 섰는데, 세상은 이미 너무 많이 바뀌어 있었다. 한국은 전쟁의 상처를 굉장히 빨리 회복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낯설어했다.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냉동회사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사회적 기반이 없어 금방 원점으로 돌아갔다. 6·25 참전자회 조직국장을 맡아 약간의 생활비를 벌었지만 부족했다.
아버지는 쪽방살이, 나머지 가족은 미국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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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에도 빛이 들지 않는 남대문로5가 쪽방 건물의 복도. |
2009년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보훈연구원에 따르면, 근로소득이 있는 참전자는 9777명(6.3%)이며, 이들의 월평균 수입은 49만원으로 최저생계비(1인 가구 월 50만4344원)에 미치지 못했다.
1976년 아내와 이혼 하자 가족은 미국으로 떠났다. 둘째 딸은 증권회사 대리였고, 아들은 중견회사 과장이었다. 막내는 현재 미국의 한 명문대 강사다. 그래도 이씨는 자녀들에게 용돈을 절대 받지 않는다고 했다. 쪽방에서 근근이 살고 있다는 것도, 12년 전 걸렸던 중풍이 재발했다는 사실도 숨기고 있다. 그는 “자녀는 미국에 들어와 같이 살자 하지만, 여기가 편하다”고 했다.
이씨의 발등에 벌레가 기어올랐다.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가만히 내버려뒀다. 현재 그와 소통하는 사람은 박한우 간호사뿐이다. 이씨는 딸 같은 박 간호사를 보면서 “한국 사람들이 아직 따뜻하다는 걸 알게 해 준다”고 했다. 바라는 바가 있느냐고 그에게 묻자 “이제 내 삶에 대한 희망은 없다”며 그의 방 한 번 방문한 적 없는 아들딸들이 안정된 삶 속에 사는 게 마지막 바람이라고 ‘부정(父情)’을 보였다.
어두운 방에서 돌아 나오는데, 이씨가 배웅했다. 허리가 굽어 160cm가 조금 넘는 기자의 키와 비슷했다. 손녀뻘 기자의 어깨에 깡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런 데 이제 오지 마. 자네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일만 겪으며 살길 비네.”
서울 영등포 쪽방촌도 명품매장이 즐비한 타임스퀘어, 신세계백화점 근처라 묘한 분위기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노숙인과 명품화장품 코너가 계단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영등포역에서 신세계백화점 방면으로 걸어 나오면, 마치 다른 세계로의 입성인 양 ‘24시간 청소년 출입금지’ 경고문이 눈에 띈다. 윤락촌이다. 영등포동 쪽방은 452개, 508명의 주민이 역 주변 노숙인들과 섞여 살고 있다.
이곳 2평짜리 방에 사는 정모(71)씨는 2000년부터 직업 없이 혼자 지냈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을 받은 지는 이제 1년 반 됐다.
“X 팔리니까 아버지가 벌어서 살라”
2000년 10월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르면, 독거노인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부양의무자(자녀)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어야 한다. 자녀 가구의 최저생계비(1인가구 월 50만4344원, 2인가구 월 85만8747원, 4인가구 월 136만3091원)와 부모 가구의 최저생계비 합산액의 130% 이상을 자녀 가구가 벌 경우, 부모는 기초생활급여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이 기준은 부양의무자가 피부양자에게 일정 금액의 용돈을 준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것이다. 정씨의 경우, 자녀가 일정 수준의 돈을 벌고 있지만, 오랫동안 교류가 없었다는 점이 인정돼 수급자가 될 수 있었다. 그 전에 재산신고액 조회에 대한 자녀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 정씨의 설명이다.
“애들 수입 때문에 포기하고 살았는데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근데 애들이 동의를 안 해 준다더라고요.”
보건복지가족부 측은 정씨가 수급자가 되는 것에 대해 자녀가 세 차례 거절했다고 전했다. 참다 못한 정씨가 자녀들에게 연락했을 때 돌아온 말은 “아버지가 수급자라는 걸 친척들이 알면 X 팔리니까 아버지가 벌어 살라”는 한마디였다. 정씨는 “요즘 애들 말로 X 팔리다 카데”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정씨는 1980년경부터 부산에서 전자제품 도매업체를 운영해 가족을 부양해 왔다. IMF가 나면서 납품업체들이 줄줄이 부도가 났고, 정씨 역시 1억5000만원의 빚을 졌다. 2000년, 61세 나이로 도망친 납품업체 사람들을 찾으러 전국을 돌아다녔다. 정씨는 “그때 가족들이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다”며 “그런 가족들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 와중에 생활비를 벌려고 택시 운전, 찜질방 구두닦이, 주유소 직원 등 안 해 본 것이 없다. 정씨는 “그렇지만 가장 참기 어려운 건 외로움이었다”고 했다. 택시를 운전하다 중간에 내려 한강에 빠져 죽으려 했던 적도 많았단다.
슬하 4남매 중 둘을 대학에 보내고 나머지는 상업고에 진학시킨 뒤였지만, 자녀는 그에게 전화 한 통 걸어 오지 않았다. 자녀 중에는 중학교 교사, 간호사, 전문직 출신도 있다. 교사인 아들이 전근을 가야 했을 때, 좋은 곳으로 보내려고 교육위원회 과장으로 재직 중인 중학교 동창의 책걸상을 고쳐 주었던 그였다. 정씨는 “애들 키우면서 자존심 버린 일이 셀 수 없이 많다”며 “지금 생각해 보면 돈 버는 기계였던 것 같다”고 했다.
언어장애 딸 홀로 키우는 50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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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영씨가 딸 혜윤양에게 밥을 먹이고 있다. |
그의 집에 자주 방문하는 광야교회 이진호 간사는 “무료 세탁, 무료 수리에다 헌 옷도 공짜로 나눠 주는 덕에 쪽방 사람들이 이 집에 자주 드나든다”며 “정씨는 이 마을에 없어서 안 될 사람”이라고 했다. 정씨는 장기기증 서약도 했다. 옆방에 사는 장애인들의 거동도 그가 돕는다.
정씨는 “외롭고 힘들어 봤기에 쪽방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그는 “내가 죽고 나서 자녀들에게 내 빚이 상속될까 두렵다”고 했다. 그는 10년 동안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들딸들을 걱정했다.
남대문로5가 ○○번지. 한 층에 8칸이 있는 낡은 빌라 옥상에 방 세 칸이 있었다. 늘어뜨린 빨랫줄에 빛바랜 원피스가 펄럭였다.
혜윤(가명·11·언어장애2급)양이 기자에게 배꼽 인사를 했다. 혜윤양의 아버지 정기영(52)씨도 숟가락을 든 채로 기자를 맞았다. 이들은 1.5평 방에서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반찬은 가스버너를 이용해 끓인 동태찌개와 구운 햄이었다. 정씨가 흰밥에 햄을 올려 혜윤양의 입에 넣어 줬다. 지능이 낮고, 언어장애를 가진 혜윤양은 누군가 밥을 떠 먹여줘야 한다. 기자가 정씨에게 “동태찌개도 끓일 줄 아느냐”고 했더니, 정씨는 “5년 동안 서대문경찰서 구내식당에서 요리를 했다”고 했다.
정씨의 어머니는 정씨가 10살 되던 해 가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해 아버지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7남매가 졸지에 고아가 됐다. 정씨도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궂은 일은 다 했다. 자기 몸 챙기기 바쁘다 보니 남매는 뿔뿔이 흩어졌다.
1989년, 정씨는 서대문경찰서 구내식당에서 요리보조를 하던 중 홀 서빙을 하던 여자와 동거를 시작했다. 혼인신고 없이 “둘이서 조그마한 분식집이라도 하면서 살아 보자”며 꿈을 키웠다. 초라하지만 봄이 오나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1300만원이 든 통장과 함께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전 재산이었다. 그렇게 첫 번째 꿈은 깨졌다.
기저귀 찬 딸 안고 서울역에서 노숙
그는 막노동을 시작했다. 서울역에서 노숙하다가 두 번째 여자를 만났다. 여자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헤어지려고 했지만, 혜윤양을 임신한 상태였다. “우리 둘 다 고아니까, 아이 낳고 잘살아 보자”고 다짐했다. 낮엔 막노동, 밤엔 밀린 살림을 하며 꿋꿋이 살았다. 중림동에 10평 남짓한 사글세집도 얻었다. 그런데 여자의 정신병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이 아저씨 잡아가라, 모르는 아저씨다” 하며 계속 신고를 하는 통에 경찰이 한 달에 네 번은 왔다 갔다. 한번은 막노동을 하고 집에 와 잠이 들었는데, 여자가 맥주병으로 얼굴을 쳐서 정신을 잃었다. 정씨 눈 밑으로 보기 흉한 상처가 남았다.
“이 상처 때문에 울면 눈물이 바깥으로 나가 버립니다.”
정씨가 고인 눈물을 훔쳤다. 그 일로 여자는 오산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경찰은 수감시키겠다고 했지만, 정씨가 막았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여자가 입원하면서 수급자 지원비가 없어졌다. 갓 두 살 된 아이를 돌봐야 하기에 일도 할 수 없었다. 방세를 못 내니까 셋집에서도 쫓겨났다. 정씨는 기저귀를 찬 혜윤양을 데리고 서울역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남들은 보육원에 맡기라고 했지만, 하나뿐인 아이를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하도의 행인들이 불쌍하다며 준 돈으로 분유와 30개들이 기저귀를 샀다. 서울역 화장실에서 혜윤양의 옷을 빨아 입히고 박스에서 잤다. 장애를 가진 혜윤양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거의 울지 않았다.
아이를 안고 거지 꼴로 서울역을 전전한 지 6개월이 다 됐다. “이상한 노인이 아이를 안고 서울역에 돌아다닌다”는 신고가 잦아지면서 혜윤양과 정씨는 한 달 57만원의 정부 지원을 받게 됐다. 그렇게 중구 쪽방촌에 왔다.
정씨의 일과는 혜윤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른 새벽 일어나 밥을 하고 오전 7시30분에 특수학교 버스에 혜윤양을 태운다. 오후 2시30분에 버스에서 내리는 혜윤양을 데리고 쪽방으로 돌아온다. 혜윤양에게 저녁을 먹이고 저녁 7시면 잠이 든다.
며느리 집 나간 후 홀로 손녀 키우는 70대 할머니
혜윤양을 맡겨 놓을 시설이 아무 데도 없어 취업도 할 수 없다. 혜윤양 집을 자주 방문하는 박한우 간호사는 “아이가 있는 쪽방 주민들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아이가 클 때까지 정부 지원금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씨도 막노동으로 돈을 모으려고 누이에게 ‘방학 동안만 혜윤이를 맡아 달라’고 애원했지만 “보육원에 보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정씨는 “하나뿐인 딸인데, 보육원에 맡기는 건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앞으로 점점 더 아가씨가 되어 갈 텐데 목욕도 못 시키고, 옷도 매번 주워다 입히는 아비 가슴이 미어집니다.”
정씨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계속 살아가야 한다”며 혜윤양의 사진첩을 자꾸 보여줬다. 사진 속 혜윤양은 한복을 입고 긴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았다. 정씨의 솜씨다. 사진첩에 정씨의 사진은 없었다.
남대문로5가 쪽방촌 건너편인 용산구 동자동, 5평 전세방에 세영(7·가명)양과 장점덕(70·여)씨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남대문지역상담센터와 김흥용 센터장의 도움으로 6년 전 남대문로5가 쪽방촌에서 벗어나 이곳에 왔다.
세영양은 어린아이답지 않게 조용했다. 인형같이 예쁜 얼굴로 잘 웃지도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와 말없이 가방을 싸서 공부방에 갔다.
“얼마 전에 학교 애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너희 집 가난하지’ 하며 놀렸대요. 그게 애 가슴에 얼마나 맺혔겠어요. 그 뒤로 더 조용해졌어요.”
세영양은 쪽방에서 태어났다. 20대였던 어머니가 배가 부른 채로 쪽방에 들어와 세영양을 낳자마자 집을 나갔다. 아버지도 아내를 찾아 집을 나갔다. 아주 가끔 집에 들어온다. 장씨 홀로 세영양을 길렀다. 장씨는 “쪽방에서 네 식구는 살 수 없다”며 집 나간 며느리를 이해한다고 했다. 아들은 당뇨가 심해 일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집에 들어오면 세영양을 위해 모아 둔 통장의 돈을 가져다 쓸 뿐이다.
세영양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칠십 노인 장씨의 몸도 많이 망가졌다. 허리와 다리 수술을 미룬 지 오래다. 수술 후 회복기간 동안 세영양을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노안까지 와서 눈앞이 자주 새까매진다. 장씨는 “세영이가 학교에 있으면 ‘할머니가 또 어디 아픈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고 하더라”고 했다. 장씨의 말이다.
“제가 언제 죽을지 두려워, 5살 때 초등학교에 보냈어요. 초등학교라도 졸업하면 혼자 살 능력은 생길 것 같아서 안 된다는 걸 억지로 넣었지요….”
“화장실 있는 집에 사는 게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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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점덕씨와 김흥용 남대문지역상담센터장이 세영양이 받은 상장을 보고 있다. |
“친구들이 생일잔치에 부르는데, 거기 가면 자기도 생일 때 친구들을 불러야 하니까 못 가나 봐요. 화장실 없는 집에 친구를 부를 순 없다고 하더라고요.”
세영양의 소원은 ‘화장실 있는 집에 살아 보는 것’이다. 아래층의 주인집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화장실에 주인집 사람이 들어가 있으면 근처 공원 화장실로 뛰어가야 한다. 엄마도 찾지 않은 지 오래다. 어릴 적 세영양은 혼자 놀다가도 “엄마… 엄마…” 하는 말을 나지막이 뱉어 내곤 했다고 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세영양의 사연이 소개되면서, 한 가정이 세영양을 입양하려 했다. 세영양 아버지가 연락이 안돼 친부 동의 없이 아이를 입양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
장씨는 “사실은 나도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다”며 흐느꼈다.
“그걸 어떻게 길렀는데 보내고 싶겠어요. 하루 저녁에도 몇 번이나 아동병원에 업고 뛰며 길렀는데, 그걸 누굴 주고 싶겠습니까….”
장씨는 “나 죽고 나면 아들이 기를 능력이 없어 보육원에 가게 될 것”이라며 “보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장씨는 못 쓰게 될지 모를 다리, 허리 수술을 미뤄 둔 채, 이날도 세영양 이름으로 3만원을 저축했다.
나이에 관계없이 쪽방촌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취재 중 만난 15명 중 11명이 편부모 가정에서 자랐거나 고아였다. 1명 외엔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도 없다. 중학교 중퇴·졸업이 8명으로 가장 많았고, 초등학교 졸업 4명, 고등학교 중퇴 2명 순이었다.
기자가 만난 두 명의 아이들(장애아동 제외)은 교육적으로 방치 상태였다. 중구보건소와 지역상담센터가 쪽방 주민들의 건강에 도움을 주고 있었지만, 교육적인 혜택은 받지 못하고 있었다.
“잠자다 죽는 약이 개발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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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등포의 정모(71)씨가 법정스님의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를 보고 있다. 그는 쪽방에서 근근이 살면서도 동네 주민들의 가전제품을 무료로 수리해 주고 헌 옷을 모아 나눠 준다. |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 4월 조사에 따르면, 소득이 수급자 기준에 해당하는데도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103만명이다.
1.5평 쪽방에서 혼자 사는 허효순(75)씨는 슬하에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두고 있지만, 용돈을 받지 않는다. 자녀가 먹고살 만큼 돈을 벌어 기초생활수급자 혜택도 받지 못한다. 작년부터 경로당에서 2시간씩 부엌일을 하고 한 달 25만원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그 전에는 다리가 덜 아파 포장마차에서 서빙을 했다. 허씨는 “보증금 다 까먹고 한 달 방세를 겨우 내고 있다”며 “혈압, 골다공증,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최근 대상포진까지 생겼는데도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고 했다. 명절 때도 혼자 지낸다. 허씨는 “자녀도 자기 삶이 있는데 용돈 달라고 못한다”며 “잠자다 죽는 약이 개발돼서 얼른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서울역 근처 쪽방에서 혼자 사는 황모(40)씨는 천식이 심하고 혈압이 높아 일을 할 수 없다. 폐결핵을 앓은 지 5년 됐다. 고아인 황씨와 남동생은 사업을 꾸리다가 동생은 수천만 원, 황씨는 800만원의 빚을 졌다. 폐결핵을 가진 줄 모르고 빚을 갚기 위해 낮에 막노동, 밤에 대리운전을 하다가 피를 바가지로 토한 적도 있었다. 황씨의 말이다.
“제 몸이 일할 수준이 아니니까, 병원에서 어떤 분이 동생과 따로 살라고 합니다. 그러면 저라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다고요. 동생 수입이 일정하지도 않은데 함께 살면 지원을 받을 수 없답니다.”
그런 이유로 황씨는 5년 전 동생과 이별했다. 수급자가 되고 쪽방에 들어왔다. 그는 “요즘은 방에 있으면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 거리를 서성인다”고 했다.
1997년부터 서울역 극빈자를 위해 무료 목욕실, 세탁실, 이발실을 운영해 온 김흥용 남대문지역상담센터장의 말이다.
“부양의 의무를 지는 자가 일정 수준의 돈을 벌면 피부양자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부양의 의무를 이행하진 않습니다. 부양의 의무에서 벗어나고, 정부의 지원을 받고자 가족들, 자녀와 늙은 부모들은 서로 곁을 떠납니다. 그렇게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노인은 그의 마지막 거처(居處)가 될 쪽방에 버려지는 겁니다. 쪽방촌은 자녀와 부모의 암묵적인 합의하에 만들어진 현대판 ‘고려장(高麗葬)’인 셈입니다.”⊙
| ▣ 쪽방이란 쪽방의 사전적 의미는 ‘한 방을 한두 사람 들어갈 정도 크기로 나눠 놓은 방’이다. 서울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이소정 박사의 2006년 논문 ‘판자촌에서 쪽방까지’에 따르면, 쪽방은 1990년대 서울의 주택 재개발이 어느 정도 완료된 후, 빈곤층 주거지가 공공임대주택, 지하셋방 등으로 파편화하면서 탄생했다. 쪽방의 어원은 명확지 않다. 서울특별시와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쪽방 지역 실태조사 및 효율적인 정책개발’(2000)에 따르면 ‘모양으로 봤을 때 방의 크기가 매우 작고, 방을 여러 개로 나눠 사용한 것에서 유래’됐다. 1980년대 한 잡지에서 ‘반쪽 방’이라고 불러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쪽방은 서울에만 종로구 돈의동·창신동, 중구 남대문로5가, 용산구 동자동·갈월동, 영등포구 영등포1동·2동·문래1동 총 9개 지역에 3512개가 있다. 보통 1.5~3㎡(1평) 남짓이다. 보증금 없이 월세 21만~28만원이면 한 달을 살 수 있다. 5000~7000원 정도를 내고 하루 자고 가는 사람도 많다. 쪽방 거주자는 3512명이며 이 중 기초생활수급자는 1302명,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은 540명이다(2010년 6월 기준). 남대문로5가 쪽방촌은 재개발이 예정돼 있다. 서울시는 2009년 쪽방 밀집지역마다 상담소 설치를 완료했다. 상담소에서는 주민등록 복원, 목욕, 세탁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2009년 정부에서 쪽방지원사업에 할당해 준 예산은 10억2137만7000원이었다. 서울시청 자활지원과에 따르면 앞으로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늘리고 현장이동 진료실도 확충할 계획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