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법정까지 간 SBS와 KBS·MBC 간 방송중계권 논쟁 : 월간조선

요즘 가장 주목받는 산업 중의 하나가 스포츠산업이다. 산업 측면에서 스포츠를 보기 시작한 건 1년에 버는 연봉, 상금의 액수가 대통령 연봉보다 많은 선수가 나오고 올림픽 금메달에 금값 이상의 다른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스포츠산업에는 중소기업 못지않은 1인 회사인 김연아나 박지성, IOC나 FIFA 같은 빅 이벤트 생산조직, KBO, KBL, K-리그 등의 다양한 비즈니스 플레이어들이 활약하고 있다. 그중에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활용하려고 거액을 투자한 삼성전자나 현대차도 있고 로고사용권을 구입한 상품화 사업자, 선수에이전트, 경기장 광고 대행사, 스포츠신문 등도 있다. 스포츠산업은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구획하기가 어렵지만 ‘스포츠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업종들의 집합’임에는 틀림없다.

핵심제품인 스포츠가 생산되는 스포츠산업의 그라운드 안과 밖에서 선수들이 저마다 이기기 위해 뛰다 보니 충돌이 없을 수 없다. 경기장 안에서는 규칙이 있고 심판이 있어 반칙 때마다 명쾌한 판단이 내려지지만 밖에서는 너무 다양한 비즈니스 주체들이 자기 분야의 룰(rule)대로 움직이다 부딪혀도 귀걸이 코걸이 식 목소리가 나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산업규모가 큰 선진국에서는 노동시장에 적용되는 법률을 선수시장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독점금지법을 프랜차이즈 사업인 프로리그에 적용해야 될지 말지를 일찍부터 고민해 왔다. 경기장 밖의 어디서? 무슨 이유로? 어떤 충돌이 생기는지를 알려면 일단은 스포츠이벤트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비즈니스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규모에 상관없이 스포츠이벤트가 만들어지면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권리부터 펜스 및 유니폼 광고권리, 방송중계권, 좌석 라이선스, 경기장명칭사용권 등의 각종 권리가 파생된다.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스포츠 팬, 기업, 방송사 같은 소비자가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 관련 기업들, 700억원 IOC에 지불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권을 놓고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인 국내 공중파 3사.

스포츠 이벤트에서 파생되는 권리나 마케팅 기회는 시장에서 현금이나 현물로 교환되는데 이벤트의 등급에 따라 가격 차이가 커진다. K-리그와 월드컵의 방송중계권 가격, 한국프로야구와 MLB의 입장권 가격에서 보듯이 가격차는 경기의 품질과 대회의 브랜드 가치에 의해 좌우된다. 또 프로리그에서는, 팀 간 전력이 비슷한 시즌과 상하위 팀 간의 전력 격차가 심한 시즌의 가치가 달라지기도 한다. 시즌 마지막까지 리그 참가 팀 간에 박빙의 승부가 진행되어 팬들의 시선을 끝까지 잡아두는 시즌과 일찌감치 승부가 결정된 시즌의 흥행성이 다르다는 뜻이다. 그리고 스포츠 이벤트에서 파생되는 권리나 마케팅 기회들을 현금이나 현물로 교환하는 과정에서 스포츠 마케팅 기법이 발전해 왔다.

<그림>에서 보듯이 스포츠 비즈니스는 팀, 연맹 등 이벤트 생산에 관계하는 집단과 경기장, TV, 신문 등 생산된 이벤트의 유통집단, 스포츠를 이용하려는 집단, 경기장 사업 집단 간의 거래로 형성된다. 중간에 위치한 스포츠 마케팅 전문회사는 권리나 선수 노동력을 사려는 집단(buyer)과 팔려는 집단(seller)의 중개 역할을 하는데 부동산중개업만큼 규모가 만만찮은 비즈니스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중개업자인 IMG는 1960년 창업자 마크 매코맥이 골프선수 아널드 파머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으면서 이 사업에 뛰어들었고 사업영역을 중계권 판매, 이벤트 기획, 탤런트 에이전트 사업까지 넓혀 세계적인 스포츠마케팅대행사로 성장했다.

대표적인 생산자 집단인 프로리그는 경기나 마케팅 기회를 팔아 약 20여 종의 수입원을 확보하고 있고, 올림픽에서 파생되는 권리를 마케팅 기회로 활용하려는 기업들은 약 700억원가량을 IOC에 대가로 지불한다. 또 프로구단 중 몇 개는 시장가치가 1조원 이상 나가기도 한다. 이러한 비즈니스가 경기장 밖에서 진행되고, 또 비즈니스 규모가 커지면서 이해관계자 간의 충돌도 자주 발생하고 때로는 법정까지 가기도 한다. 충돌은 스포츠 이벤트 및 각종 권리나 기회의 생산과정, 유통과정, 소비자 권리보호 등 곳곳에서 일어난다. 스포츠 비즈니스 100년사를 보면 경기장 폭력이나 승부 조작으로 인해 새로운 기구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스포츠 이벤트 특유의 ‘재미’를 유지하기 위해 채택한 제도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독점금지법 저촉으로 어느 한쪽이 KO패를 당하는 등 다양한 충돌사례가 있다.

미디어는 스포츠의 유통채널

1922년 페더럴리그(Federal League)의 볼티모어 구단이 내셔널리그(National League)를 상대로 낸 독점금지법 소송에서 미국연방대법원은 ‘프로야구는 독점금지법에서 제외된다’고 결론지었다. 만장일치의 대법원(대법원장: Oliver Wendell Holmes) 결정은 ‘야구를 일종의 비즈니스로 보아야 한다는 점은 거의 틀림없지만, 야구가 셔먼 법(Sherman Act)이 요구하는 주간 상거래(interstate commerce)는 아니다’고 했다. 이 결정은 논리적으로 공정치 못하다는 반론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번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프로야구는 타 종목보다 큰 특혜를 누려왔고, 선수보다는 구단이 유리한 입지에 서게 만들었다. 미국 프로야구에 대한 이러한 혜택은 1998년 프로야구의 독점적 권리를 거의 제거하는 커트 플러드 법에 클린턴 대통령이 사인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1975년 LA다저스의 앤디 메서스미스(Andy Messersmith),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데이브 맥낼리(Dave McNally) 선수가 신청한 이의제기로 미국프로야구에서는 선수 계약의 족쇄였던 보류 조항의 구속력이 사라지면서 프로스포츠 노동관계가 새로 시작되었고 선수 연봉의 급등을 불러왔다. 그로부터 20년 뒤 유럽 법정에서도 축구클럽에서 계약이 만료된 선수의 이적료를 부과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다. 벨기에 축구선수 보스만이 계약 만료 시점에서 프랑스 팀으로의 이적을 방해했던 전 소속팀과 벨기에 축구연맹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소한 사건 때문이다. 보스만(Bosman) 판정으로 불리는 이 판결은 계약 기간이 만료된 선수는 자유계약 신분이 되고, 그러한 선수들은 자신의 육체적 지적 자산을 어떤 클럽에나 판매할 수 있다는 의미로 축구선수 연봉폭등의 계기가 되었다.

‘스포츠와 미디어는 부부 사이’라고 불릴 정도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미디어와 관련된 불협화음도 관람스포츠 산업에서 흔했다. 미디어와 스포츠 조직 또는 미디어 간의 충돌이 일어나는 원인을 꼽자면 스포츠 산업에서 미디어의 역할, 미디어가 보는 스포츠 이벤트의 가치, 스포츠 방송의 경제적 의미 등이 있다. 우선 스포츠 비즈니스에서 미디어는 현장에서 소멸되는 이벤트를 라이브가 아닌 다른 버전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유통채널 역할을 한다. 미국 스포츠에서 ‘소리’ 버전의 유통은 1920년 11월 25일 WTAW-AM에서 텍사스 롱혼대학 대 텍사스 A&M 애기스 대학의 풋볼경기가 최초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동영상’ 버전의 유통은 1939년 5월 미국 NBC방송이 대학야구를 TV중계한 것을 시발로 그해 8월 26일 신시내티 레즈와 브루클린 다저스의 경기, 8월 30일 대학풋볼 경기를 중계하면서 본격화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스포츠 이벤트가 미디어의 가장 중요한 콘텐츠 중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된 것도 원인 중의 하나다. 1825년 <아메리칸 파머>지(紙)가 ‘경마’를 콘텐츠로 채택한 4년 후 스포츠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56페이지짜리 전문지가 등장했고, 1886년 4월 창간된 8페이지짜리 <스포팅 뉴스>의 가격은 5센트였다.

김연아와 박지성 선수는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으로 불릴 정도로 성공한 스포츠 스타다.

방송사 간 스포츠 중계 충돌은 콘텐츠 확보 경쟁

미디어와 연관된 충돌의 주요 원인은 스포츠 방송 프로그램이 공공재(公共材)의 특성을 갖고 있고, 지적재산권으로 보호받는다는 점에 있다. 스포츠방송 프로그램은 한번 만들어지면 시청자를 늘리는데 드는 비용이 0(제로)에 가깝고 유료채널을 제외하면 누구나 볼 수 있기 때문에 공공재로 구분된다. 그리고 스포츠 중계방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지금 시청 중인 시청자를 위해 만들어졌으며 협회의 승인 없이는 누구도 재방영이나 다른 형태의 편집 방송도 할 수 없습니다’라는 자막에서 보듯이 방송 프로그램은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다. 미디어와 연관된 불협화음은 근본적으로 여기에서 출발하지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유통채널이 다양해지면서 미디어 간에 치열해진 콘텐츠 확보경쟁이 더 부추긴 면도 있다.

관람 스포츠 규모가 큰 유럽과 미국에서 불거졌던 방송사끼리 혹은 방송사와 협회 간의 충돌사례는 지적재산권 침해나 독점방송권 허용 여부 때문이다. 스포츠 비즈니스에서 독점금지법과 독점방송에 관한 이슈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특정 프로리그가 개별구단이 아닌 리그차원에서 한 방송사가 독점방송 계약을 체결한다면 그 계약이 팀 간 전력균형 유지에 기여할 것인가에 있다. 여기서 팀 간 전력균형은 특정도시가 아닌 여러 도시의 팬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고, 이는 공익에 부합한다고 보는 시각을 근거로 한다. 다시 말하자면 챔피언이 될 기회가 리그참가 구단에 공평하게 주어져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도시의 팬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시각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1/n씩 나누는 공평한 중계권 수입의 분배방식이면 그나마 그럴듯하지만 50%만 1/n로 분배하고 중계횟수와 성적순으로 배분하는 EPL(영국 프리미어리그)은 오히려 팀 간 전력차이를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둘째는 한 방송사가 리그의 독점중계권을 가졌을 때 독점금지법에서 말하는 독점권을 얻는다고 볼 수 있는가에 있다. 즉 한 방송사의 독점계약이 타 방송사의 영업 또는 상거래를 제한하거나 가격 또는 기타 수단으로 시청자를 차별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이다. 이 물음에는 스포츠방송 시장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올 수 있다.

SBS가 중계권을 획득, 단독 방송했던 밴쿠버 동계올림픽 프레스센터 모습.

영국, 월드컵 결승전은 독점 방송 못하게 해

스포츠 방송에서 발생한 분쟁을 당사자끼리 해결 못하고 정부가 개입할 때 미국과 유럽은 해결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1991년 영국에서는 막대한 중계권료와 제작비를 투자해 제작한 BBC의 이탈리아 월드컵 중계방송을 한 방송사(British Satellite Broadcasting)가 편집해 뉴스로 보도하자 저작권 침해로 소송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영국 고등법원은 ‘방송사의 스포츠 중계필름을 일부 발췌하여 뉴스 방송에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각 발췌분은 약 14초 내지 17초 분량으로 뉴스로 내보낸 방송사가 BBC 방송에서 발췌하였음을 밝혔고, 이는 ‘현재의 사건을 보도하기 위한 목적의 공정한 사용’에 해당한다는 취지였다. 1993년 프랑스에서는 자동차경주(Formula One) 독점중계를 놓고 F1방영에 관한 독점권을 갖고 있던 협회(Formula One Constructors Association)를 상대로 방송중계에서 배제된 방송사 간의 분쟁이 있었다. 발단은 프랑스 제3TV가 중계 허락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뉴스 편집용으로 주요 장면을 발췌할 수 있도록 영상 기술팀을 경기장에 접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도 거부된 것 때문이었다. 이때 프랑스 고등법원은 방송사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과 달리 ‘스포츠 경기의 포괄적인 중계권을 한 방송사에 배타적으로 독점시키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와 관련해 공적 사건의 보도에 장애가 되며, 독점적 중계권을 가진 방송사가 따로 있더라도 경기의 일부만 발췌하여 방영하는 것은 독점적 중계권자의 배타적인 권리를 침해한다고도 할 수 없다’는 요지의 판결을 내렸다.

위의 사례는 일부에 불과하지만 유럽에서는 주요 이벤트에 대한 방송사의 독점방송과 관련한 분쟁이 주종을 이루고 해결방안은 대체로 시청자의 ‘알 권리’를 중시하는 쪽으로 기우는 편이다. 실제로 유럽 각국은 한 방송사의 독점방송을 금지하는 이벤트의 리스트를 만들어 두고 있다. 참고로 영국에서 정한 독점방송이 불가능한 이벤트 리스트에는 올림픽, 월드컵 결승전, FA컵 결승전, 윔블던 결승전 등이 올라 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보다 더 큰 규모의 4대 프로리그가 있고 그 못지않은 대학스포츠가 존재하는 미국에서는 스포츠방송과 관련한 분쟁과 해결방식이 유럽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미국은 한 방송사가 특정 리그를 독점하더라도 다른 인기 스포츠가 많기 때문에 독점을 놓고 벌어지는 방송사 간의 분쟁은 거의 없는 편이다. 방송사 입장에서 보자면 유사한 소비집단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많아 광고주 유치 등에서 독점방송이 끼치는 폐해가 적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미국에선 독점중계방송 인정

미국 스포츠방송 시장에서 발생한 첫 분쟁은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던 뉴턴(A.E Newton)이라는 사람이 저지른 사고 때문이었다. 1921년부터 MLB는 월드시리즈의 라디오 중계권 계약을 체결하고 있었다. 그런데 뉴턴이, 중계방송 권리를 취득한 방송사가 중계하는 내용 중 이닝 별 스코어만 자기방송에 내보내면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에 불려가 ‘허락 없는 재방송을 금지’하는 규정을 위반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로 인해 스포츠 팀은 경기의 저작권에 대한 치밀한 세부규정을 준비하게 되었고 이어지는 소송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예를 들면 1938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경기를 허가 없이 중계했던 KQV에 대한 소송에서 구단이 이긴 것 등이다. 당시 피츠버그 팀의 홈 및 원정경기 방송중계권은 KDKA방송이 독점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KQV가 경기장 밖의 전망 좋은 곳에 인력을 배치한 후 그들이 전달해 주는 정보로 해설방송을 했다. 그 소송을 다루었던 지방법원은 구단의 의견을 수용해 KQV의 방송을 불법 행위로 간주했고, 선의의 뉴스 보도였으므로 금지 명령을 철회해 달라고 했던 KQV의 요구를 기각했다. 이 판례는 나중에 NBA 전 경기장에 인력을 배치하여 수집한 스코어 정보를 홈페이지에 중계하면서 제기된 분쟁에도 적용되었다.

미국 방송시장은 스포츠 방송법(1961)이 독점중계방송은 독점금지법의 저촉을 받지 않는다고 해석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독점방송은 그 프로그램에서 광고 수입이 발생할 때만 가능하다는 단서 조항 때문에 생긴 분쟁이 있긴 했지만 대체로 관람스포츠의 독점중계방송은 정부나 시장이 용인하고 있는 편이다.

미국 스포츠방송에서 가부(可否) 논란이 가장 컸던 사안은 NFL(미국 프로미식축구연맹)에서 채택하고 있는 ‘경기시작 72시간 전에 입장권이 매진되지 않으면 TV중계방송을 금지’하는 규정(Black out)이다. NFL은 TV중계방송은 주차 수입, 입장 수입 등의 관중으로 인한 경기장 수입뿐만 아니라 지역 라디오 방송사의 수입의 감소를 초래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2010년 월드컵 개최지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 타운.

우리도 스포츠 방송 정책 만들 때

지금 KBS와 MBC의 고소로 법정까지 간 3사(社)간 월드컵중계방송과 관련된 충돌은 콘텐츠 확보경쟁에서 비롯되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과거보다 인상된 방송중계권 가격은 사실 누구를 탓하기 어렵다. KBS가 90년대 중반까지 연간 30만 달러에 구매했던 MLB방송권을 i-TV가 560만 달러(3년)로 올렸고, 2000년 11월 MBC가 단독으로 3200만 달러(4년)까지 올렸던 사례도 있지만 물먹은 방송사가 다른 국내 스포츠를 잡아 약간의 보복을 가했던 정도로 끝난 바 있다.

물론 한국만 그런 건 아니다. <포브스>지(誌)는 EPL의 2010-2013시즌 중계권이 지난 시즌보다 거의 2배(약 2조3879억원)로 뛰는데 불을 댕긴 방송사가 싱가포르의 ‘SingTel’과 홍콩의 ‘i-Cable’이라고 전한다. 싱가포르 방송사는 경쟁사인 기존계약자 ‘StarHub’를 내쫓기 위해 이전의 3배(약 3411억원)를 썼고, 홍콩 방송사는 ‘Now TV’를 이기기 위해 이전(약 1961억원)보다 약 512억원을 더 썼다. 이런 현상은 핑크빛 그림으로 밴쿠버 올림픽에 베팅했다가 낭패를 본 NBC처럼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방송 간에는 피할 수 없는 대결이지만 방송중계권 가격 인상에 대한 책임을 묻자면 경쟁사보다는 오히려 스포츠유통망과 융합하고 있는 IT가 원인일 수 있다.

IT의 발전이 스포츠이벤트의 유통채널 증가로 이어지면서 가격주도권이 콘텐츠 소유권자에게 이미 넘어간 상태이기 때문에 빅 이벤트의 방송중계권 가격인상은 당분간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게 스포츠비즈니스계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남은 문제는 SBS의 월드컵 독점계약이 KBS나 MBC의 영업 또는 상거래를 제한하거나 시청자에게 불이익이나 불편을 줄 수 있는지 여부일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한국의 미디어시장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먼저 국내 미디어시장을 보면 한국의 1400여만 TV시청 가구는 아직까지 KBS, MBC, SBS가 지배하고 있지만 2014년쯤이면 케이블 시장의 점유율이 54%까지 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망은 65%의 인구가 밀집한 아파트마다 이미 들어가 있고 휴대폰이 개인 필수품인 지금은 스포츠 콘텐츠가 지상파를 통하지 않고도 스포츠 팬에게 전달될 길이 무수히 있음을 의미한다. 설사 IPTV나 스마트폰이 특정 스포츠 콘텐츠를 확보하더라도 너무나 보편적으로 스포츠방송 시청이 가능한 시대가 지금이다.

2003년부터 한국의 새로운 유통망을 찾고 있던 MLB(메이저리그 야구)가 대행사를 통해 2006년 인터넷 및 휴대폰 등의 유통라인을 뚫었듯이 월드컵 중계방송은 어떤 경로를 통하든 국내 스포츠 팬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그런 유통라인 간의 경쟁에서 시장 내 누군가가 콘텐츠를 선점하는 행위를 비난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사실 월드컵 중계방송을 ‘대장금’이나 프로야구 중계, 미국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시청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본다면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시청자가 큰 불편을 겪는다고 볼 수도 없다. 또 미국의 경우 공영방송은 교육, 유아용, 클래식 음악 등 민간방송이 외면하는 프로그램을 편성하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유럽인들에게는 축구 관람이 일상생활이기 때문에 방송사 간의 분쟁이 생길 경우 정부가 유권자의 ‘볼 권리’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보편적 시청권에 관한 논쟁이 지속되면 정부의 개입을 불러오게 되고 정부도 ‘스포츠 방송법’이 명쾌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어느 한쪽 편을 들기가 어렵다.

스포츠비즈니스 측면에서 보자면 철 지난 논쟁을 지속하기보다는 이번 일을 계기로 글로벌 스포츠방송시장의 흐름을 읽고 국내 스포츠 팬이 선호하는 콘텐츠를 적정가격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아울러 이제는 우리도 스포츠 방송에 대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