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법의 이념은 기업이 잘될 수 있도록 하는 것”
⊙ “이사의 ‘주주에 대한 일반적 충실의무’ 규정한 입법례 없어”
⊙ “이사의 의무는 ‘회사’를 위하는 것인데, 합리적 경영판단 결과 개별 주주가 손해 입어도 소송 가능케 한 개정안은 문제”
⊙ “株價 오르지 않는 이유는 기업의 지배구조가 아니라 자체 경쟁력 약화 탓”
⊙ “소수 주주의 경영 참여 허용은 의사 결정 지연, 경영 비효율, 경영정보 유출 일으킬 수 있어”
⊙ “개정안은 소액주주가 아니라 헤지펀드를 위한 법… 자본시장법 개정이 正道”
韓晳薰
성균관대 법학과 졸업, 同 대학원 법학박사 / 서울동부지검 검사·부장검사,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실장, 성균관대 법과대학·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공인회계사회·금융감독원 외부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비상임) 역임, 現 국민연금 기금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장, 한국상사법학회·한국증권법학회 부회장,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비즈니스범죄와 기업법》
⊙ “이사의 ‘주주에 대한 일반적 충실의무’ 규정한 입법례 없어”
⊙ “이사의 의무는 ‘회사’를 위하는 것인데, 합리적 경영판단 결과 개별 주주가 손해 입어도 소송 가능케 한 개정안은 문제”
⊙ “株價 오르지 않는 이유는 기업의 지배구조가 아니라 자체 경쟁력 약화 탓”
⊙ “소수 주주의 경영 참여 허용은 의사 결정 지연, 경영 비효율, 경영정보 유출 일으킬 수 있어”
⊙ “개정안은 소액주주가 아니라 헤지펀드를 위한 법… 자본시장법 개정이 正道”
韓晳薰
성균관대 법학과 졸업, 同 대학원 법학박사 / 서울동부지검 검사·부장검사,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실장, 성균관대 법과대학·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공인회계사회·금융감독원 외부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비상임) 역임, 現 국민연금 기금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장, 한국상사법학회·한국증권법학회 부회장,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비즈니스범죄와 기업법》
-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과 주요 그룹 사장단이 2024년 11월 21일, 서울시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주요 기업 사장단 긴급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옛 전경련)과 삼성·현대차·SK·LG 등 16개 그룹 사장단은 2024년 11월 21일, ‘한국 경제 재도약을 위한 주요 기업 사장단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어려운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와 함께 현재 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이 기업 경쟁력을 훼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경협과 주요 기업이 공동성명을 낸 것은 2015년 이후 처음이다.
나흘 뒤인 11월 25일에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정교모)은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李在明) 대표, 대장동 설계에 이어 사업 설계까지 하겠다는 건가’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대한민국 기업들은 조만간 정치적 기생(寄生) 세력의 생계 터전이나 국제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느닷없이 상법 개정 문제가 정치권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야당은 왜 상법에 칼을 대려 하고, 기업들은 전면 반대하고 있으며, 정부는 상법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이라는 절충안을 내놓은 것일까.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상법을 강의하고 증권법 관련 논문을 썼으며 한국공인회계사회, 금융감독원 외부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상법과 기업범죄 분야의 전문가인 한석훈(韓晳薰) 국민연금 기금수탁자책임전문위원장에게 설명을 들었다. 지난 12월 3일에 만난 한 위원장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상법 개정안은 문제가 있으며, 정부 절충안인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논란이 된 6글자 ‘주주를 위하여’
이정문(李楨文)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8인의 국회의원이 2024년 11월 19일에 발의한 ‘상법 일부개정안’의 골자는 ▲이사의 의무와 관련한 상법 제382조의3 개정 ▲상장(上場)회사의 이사회 구성 관련 개정 ▲전자주주총회 근거 규정 신설 등 크게 세 가지다. 이 내용은 민주당이 채택한 당론을 반영한 것이다.
첫째, 민주당은 이사의 의무 관련 내용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개정안은 ‘회사를 위하여’를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로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민주당은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하고, 전체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여야 한다’를 추가할 것을 주장한다. 얼핏 봐서는 ‘주주를 위하여’ 6글자를 추가하는 것뿐인데 재계(財界)와 정부가 반발한다. 한석훈 위원장의 설명이다.
“민주당은 기업 지배구조 개편, 즉 기업 합병·분할 등을 하는 경우에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의 이익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소액주주를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주주를 위하여’라는 단어를 넣겠다고 한 것 같습니다. 상법 개정안 제안 이유를 보면 ‘각종 지배구조 개편 시 소액 다수 주주의 이익을 외면한다는 지적이 많다’ ‘외국인투자자, 기관투자자 등 다수의 투자자에게 우리나라 상법은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켜 외국 자본의 국내 자본시장 유입을 막고 주식 시장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 회사의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주주의 이익도 생각하라는 뜻으로 이사의 의무를 명문화하겠다는 거군요.
“그런데 이사의 충실의무(duty of loyalty)라는 개념은 회사의 이익과 이사의 이익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요구되는 의무입니다. 가령 이사가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을 회사에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자기의 이익보다 회사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사는 회사에서 선임되어 회사의 업무 처리를 위임받은 사람입니다. 회사와 위임관계에 따른 권리를 취득하고 의무를 부담할 뿐, 계약관계가 없는 주주에 대하여는 일반적인 의무를 부담할 이유가 없습니다.”
“찬성론자들의 주장은 오해에서 비롯”
―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인정하는 외국의 입법례는 있습니까?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계는 물론이고, 영미법계인 미국에서도 일반적으로 이사가 주주에 대하여 충실의무를 부담한다고 규정한 입법례는 없습니다.”
― 상법 개정 찬성론자들의 주장을 보면 미국 델라웨어주(州)에 그런 법이 있다는데.
“델라웨어주 일반회사법에서 ‘이사나 임원이 회사나 주주들에 대한 충실의무를 위반한 경우의 면책은 이를 정관에 규정하더라도 이사나 임원의 책임을 제한하거나 배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을 오해해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일반적 충실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위와 같은 면책 규정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양입니다.”
― 주주라는 단어가 쓰여 있는데 어떤 오해라는 건가요?
“영미법은 대륙법과 달리 이사의 신인(信認)의무(fiduciary duty·수탁자와 유사한 의무)라는 독특한 의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영미법에서는 구체적인 사실관계에서 자신의 이익보다 상대방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고 볼 만한 특별한 경우에는 계약관계가 없는 상대방에 대하여도 신인의무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에 따라 영미법계 판례에서는 이사가 주주와 거래를 하는 등의 ‘특별한 경우 예외적으로’ 상대방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인정하는 경우가 있을 뿐, 이사의 주주에 대한 ‘일반적인 충실의무’를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위 델라웨어주 일반회사법 조항은 이처럼 특별한 경우에 예외적으로 발생하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도 정관 규정으로 감면할 수 없다는 취지일 뿐이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일반적인 충실의무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회사는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주주 지상(至上)주의(shareholder primacy theory) 입장에서,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간접적으로 회사 주주들의 이익도 위하게 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미국의 판례나 캘리포니아주 회사법 제309조 같은 경우 이사는 ‘회사와 주주들’을 위하여 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적시하는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이때의 ‘주주들’이란 총주주를 말하는 것이고, 개별 주주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주=총주주=전체주주
― 개정안에는 ‘주주’ ‘총주주’ ‘전체주주’라는 표현이 함께 쓰이고 있는데, 서로 다른 의미가 있습니까?
“주주는 주식의 소유자일 뿐 회사에 대한 직접적 권리의무가 없고, 회사는 권리의무가 귀속되는 독립된 법인격체이므로, 일반적으로 이사는 회사에 대하여 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규정합니다. 다만, 위와 같이 판례법 국가인 영미법계에서 이사가 ‘회사와 주주들’에 대하여 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일부 있을 뿐인데, 이는 회사와 총주주를 동일시하는 입장에서의 표현일 뿐입니다. 개별 주주들의 이해관계는 제각각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사가 개별 주주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어떤 의무를 부담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개정안의 ‘주주’란 총주주의 의미이고, ‘전체주주’도 같은 말로 보아야 합니다.”
한 위원장은 “이사가 회사를 위하여 일한다는 것에는 총주주의 개념이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새삼스레 ‘주주를 위하여’라는 문언을 덧붙여 말할 필요가 없고, 이러한 표현은 오히려 분쟁의 소지를 일으킬 뿐”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이사가 ‘회사’를 위해 성실하게 책무를 다한다는 것에는 ‘회사’뿐 아니라 ‘주주’를 위한다는 개념도 이미 들어 있다는 것이다.
― 야당은 개정안에 ‘이사는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고 하는데, 총주주라는 것이 어떤 개념입니까?
“원래 총주주에는 지배주주나 소액주주나 모두 포함되는 겁니다. 개정안의 제안이유에 비추어 보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주주 전체의 단체적 이익을 보호하라는 것인지, 주주 개개인의 개별적 이익을 모두 보호하라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회사 주식을 보유한 모든 개별 주주의 이익은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총주주의 이익’은 주주 전체의 단체적 이익으로 보는 것이 맞고, 그러한 단체적 이익은 회사의 이익으로 간주할 수 있으므로 ‘회사의 이익’을 이사의 행위 기준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개정안은 분쟁 소지만 일으킬 뿐”
― 야당은 ‘총주주의 이익 보호’ 뒤에 ‘전체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것도 포함하자고 합니다.
“개정안이 분쟁의 소지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이런 규정 때문입니다. 이사의 의무는 ‘회사’를 위하여, 즉 ‘총주주’의 이익을 위하여 행위를 할 의무가 있는 것인데, 이 조항을 넣으면 마치 ‘개별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사가 합리적으로 경영판단을 해서 어떤 행위를 했는데, 그 행위로 개별 주주가 손해를 입게 됐다고 칩시다. 그 개별 주주가 자신의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됐다고 주장하면서 이사의 의무 위반을 이유로 법적(法的) 소송을 벌일 수 있게 됩니다.”
― 제가 A회사 주식을 일주일 보유했는데, 그 시기에 회사 경영상 중대한 일이 있어서 주가가 폭락했다면 제가 ‘회사의 이사 때문에 내 이익이 침해됐다’고 소송할 수 있다는 겁니까?
“현행 상법(제401조)은 이사가 ‘고의나 중과실’로 그 임무를 게을리한 경우에 이사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주는 이사의 행위로 회사의 손해는 없지만 자신이 입은 손해, 이른바 ‘직접손해’에 관해서 이사를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 그게 개정안 401조에서는 ‘이사가 임무를 게을리했을 경우’라고 돼 있군요.
“그렇죠. 이사는 회사에 대한 임무만 있을 뿐이므로, 개별 주주가 그러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회사에 대한 임무, 즉 총주주의 단체적 이익을 보호해야 할 임무를 위배한 것이 아니면 개별 주주의 청구는 기각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조항이 있으면 이사는 개별 주주들로부터 쓸데없이 소송을 당하는 경우가 늘어날 겁니다.”
“헤지펀드의 소송 길만 열어주는 꼴”
― 진정한 소액주주 보호 장치가 되기는 할까요?
“현실적으로 소액주주들이 많은 비용을 들여 변호사를 고용해서 지루하게 소송을 할까요? 아무리 자금력이 있더라도 쉽지 않을 겁니다. 결국 돈이 있는 헤지펀드, 행동주의 펀드들만 이 조항을 들먹이며 회사의 이사를 상대로 ‘당신이 우리의 이익을 침해했으니 배상하라’고 소송할 겁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사들은 쓸데없이 소송에 시달리기 싫으니 앞으로 소극적인 경영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필요 없는 법 개정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만 떨어뜨리는 겁니다.”
― 민주당은 애초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발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야당은 개별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 같은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기보다 애당초 주주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주주는 지배주주, 소액주주, 기업가 주주, 투자자 주주 등 이해관계가 다른 모든 사람을 포함합니다. 야당은 소액주주가 약자이고 그들을 위한 개정안인 양 말하고 있지만 ‘주주 평등의 대원칙’에 따라 대주주나 소액주주 모두 평등하게 다뤄야 합니다. 더구나 이사는 총주주뿐 아니라 채권자와 같은 다른 이해관계자를 위해 행위를 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 A사의 주주는 아니지만 A사의 30년 충실 고객이라고 하는 사람도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건가요?
“회사와 거래하는 고객은 계약에 따라 A/S 등을 회사에 대하여 청구할 수 있는데, 나아가 이사가 그러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까지 고려하여 경영을 해야 할 것인지는 회사의 본질에 관련된 문제로,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앞서 말한 ‘주주 지상주의’라고 해서 이사는 오로지 총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회사를 경영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이해관계자주의(stakeholder theory)’는 이사가 이해관계자 모두를 위해 회사를 경영해야 한다는 겁니다. A사의 제품을 구매해 A/S를 계속 받아야 하는 소비자, 회사에 돈 빌려준 은행 등 모든 사람이 이해관계자이며, 그들 모두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둘 중 어느 쪽이 회사의 본질인지는 정확히 합의되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전체주주, 채권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만족시킬 유일한 길은 회사가 이익을 많이 내는 것뿐입니다. 회사가 잘돼서 매출이 늘고 경쟁력이 생기면, 또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한 행위를 한다면 대주주, 소액주주, 임직원, 채권자, 은행 관계자 등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겁니다.”
“회사 이익 보호가 곧 총주주의 이익 보호”
― 회사의 본질, 즉 이사가 누구를 위해 경영을 해야 하는가는 복잡한 문제이지만, 결국 회사가 잘되면 모두에게 좋은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회사는 권리의무의 귀속 주체인 법인(法人)이고, 이사는 회사와 위임계약관계에 있으므로, 이사의 의무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행위를 해야 할 의무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영미법상 보통법 판례에서도 총주주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을 동일시하고,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파악합니다.”
― 현행법처럼 이사가 ‘회사를 위하여’ 직무를 수행하기만 하면 되겠네요.
“물론입니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곧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니까요. 오히려 총주주의 이익 보호 규정을 두면 다른 이해관계자의 이익은 무시해도 된다는 듯한 해석 여지를 남기니까 부적절합니다.”
한석훈 위원장의 설명으로는 현행 상법은 별로 손댈 필요가 없는데, 민주당이 쓸데없는 일로 소모전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상법 개정에 대한 얘기는 어떻게 나왔을까?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尹錫悅) 후보는, 모(母)회사가 신(新)사업을 물적 분할해 재상장할 때 모회사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신주를 우선적으로 배정받을 권리)을 부여하는 공약을 내놨다. 윤 대통령은 2024년 1월에 한국거래소를 찾아 “소액주주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이 운을 띄우자 이복현(李福炫) 금융감독원장은 ‘상법 개정 전도사’를 자임하는 양 2024년 5월부터 상법 개정을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재계의 반발이 심해지자 정부는 상법 대신에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는 쪽으로 선회할 뜻을 보였고, 그 결과 민주당과 첨예하게 대립하게 됐다. 정부든 여야(與野)든 시작점은 ‘회사 합병·분할 등 조직 재편’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부터다.
“상법은 기업 깨부수는 법 아니다”
한석훈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사의 충실의무가 문제가 된 것은 합병이나 물적 분할 등 조직 재편 과정에서 지배주주는 이익을 보고 소액주주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느냐는 것에서 비롯됐습니다. 몇몇 회사의 합병 과정에서 소액주주가 피해를 보는 일이 실제로 생겼기 때문에, 어떤 형식으로든 이 문제가 다뤄지는 것은 맞다고 봅니다.”
―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면서 금융범죄가 지능적으로 변하고 AI를 이용한 범죄도 생길 수 있으니 그때마다 세상의 변화에 맞춰 법을 손보는 게 맞지 않습니까.
“소액주주 보호는 상법을 개정해서 다룰 문제가 아닙니다. 상법에 규정한 이사의 일반적 의무 문제로 논할 것이 아니라, 현행 법제가 개별 주주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는 수단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를 개별 제도별로 검토해서 ‘개별 주주의 이익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른바 ‘핀셋 규제’라고 하죠.”
― 기본적인 질문인데, 그럼 상법은 왜 존재하는 겁니까?
“교과서에 나오는 상법의 양대 이념은 ‘거래의 안전’ ‘기업의 유지 강화’입니다. 상법은 규제법이 아니라 일반법입니다. 상법에도 배임죄가 있는데 그것은 특별배임죄로, 사문화(死文化)된 법입니다.”
― 상법은 처벌법이 아니라는 말이군요.
“상법의 취지는 쉬운 말로 ‘기업이 잘될 수 있도록 하는 법’입니다. 기업을 깨부수고, 기업의 역할을 축소하고, 기업인을 단죄하려고 있는 법이 아닙니다. 상법 개정의 역사를 보면 기업의 효율성을 강화하는 것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두 가지를 반복합니다. 최근에는 기업의 투명성 강화를 중시하고 있는데, 어떤 경우든 기업을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상법의 존재 이념이니까요.”
“형사처벌 규정 지나치게 많아”
―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은 왜 존재하는 겁니까?
“자본시장법은 규제법입니다. 이 법은 자본시장에서 금융 혁신과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며, 금융투자업을 건전하게 육성함으로써 자본시장의 공정성, 신뢰성 및 효율성을 높여서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자본시장법의 목적에 ‘일반 주주 보호’가 분명히 있고 이를 위한 여러 규제 조항이 있습니다.”
― 개별 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해서는 어느 법을 어떻게 개정해야 할까요?
“상법에도 개별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신주발행유지청구권, 합병·분할합병 또는 주식교환·이전 시 반대 주주의 주식매수청수권과 합병 등 무효의 소(訴) 청구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규정만으로는 상장회사의 합병·분할 등 조직 재편 과정에서 일반 주주의 이익 보호가 충분치 않다는 것이 문제이므로, 이를 위해서는 상장회사를 다루는 자본시장법에 일반 주주 보호 조항을 추가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현재 국회에서는 물적 분할 시 반대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을 인정하고, 물적 분할로 설립된 회사를 증권시장에 상장할 때 종전 분할 전 주주들에게 신주우선인수권을 부여하는 등 다양한 자본시장법 개정 의안이 발의되어 심의 중입니다.”
― 야당에서는 이것으로 부족하다는 거군요.
“좀 더 검토할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적절하게 손을 보는 것은 맞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형사처벌 규정이 지나치게 많고 그것이 주주 이익 보호 수단으로 전용(轉用)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배임죄입니다. 우리나라는 형법상 업무상배임죄가 있고, 회사법에 특별배임죄가 있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에는 배임죄의 가중처벌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영미법계 국가에는 배임죄가 존재하지도 않고, 대륙법 중 독일·일본은 배임죄 처벌 규정이 있지만 그중 독일은 ‘경영판단 원칙’이라는 명문 규정을 두고 경영진의 경영판단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배임죄를 목적범(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이 있어야 범죄 성립)으로 규정하고 있어 이사에게 배임죄가 적용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뭅니다.”
“상법의 특별배임죄는 이미 사문화”
― 우리나라는 배임죄라고 하면 다들 벌벌 떨지 않습니까.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하던데요.
“우리나라는 회사의 경영 실패 시 수사기관이 수사해서 배임죄로 기업인들을 구속하고 기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임죄를 광범위하게 해석하다 보니 1심에서 유죄를 선고하더라도 2심이나 대법원에서 무죄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임무 위배의 고의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판례는 ‘인식 있는 과실’과의 구분이 분명치 않은 ‘미필적 고의’를 광범위하게 인정하다 보니 임무 위배가 과실에 불과한 경우에도 재판부의 미필적 고의 인정 여부에 따라 유죄, 무죄가 계속 번복되는 현상이 생기지 않나 싶습니다.”
― 이재명 대표가 ‘배임죄를 폐지하겠다’는 뜻을 비쳤는데요.
“이 대표가 폐지한다는 배임죄는 상법에 있는 특별배임죄 정도겠지요. 배임죄는 이사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므로 형법상의 배임죄까지 모두 폐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상법의 특별배임죄는 이미 사문화된 법인데 폐지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을까요? 재벌 총수 등 이사들의 배임행위가 문제 될 경우는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일 때이므로 형법상 배임죄의 가중처벌 규정인 특경법의 배임죄를 적용받게 됩니다.”
― 재벌 총수라는 표현이 우리는 자연스러운데, 재벌의 독특한 구조지요. 지배주주가 적은 지분으로 기업 전체를 운영하잖습니까.
“그걸 견제하기 위해서 사외이사를 두고 ‘3% 룰’(주주총회에서 감사나 감사위원 선임 시 의결권이 있는 발행 주식의 최대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한 규정)을 상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 3% 룰은 주주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규정이지만, 회사 경영의 투명성 확보를 이유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정말 독특한 룰입니다.”
“헌법에 보장된 ‘영업의 자유’ 침해”
야당은 상법 개정안을 통해 기업의 이사회 구성을 손보겠다고 주장한다. 국회에 상정된 개정안을 보면 상장회사의 사외이사 비율을 현재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에서 ‘3분의 1 이상’으로 확대하고,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하며, 주주총회에서 3% 룰이 적용되어 선출되는 감사위원 수를 1명에서 2명으로 확대하며,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다고 돼 있다. 한석훈 위원장의 얘기다.
“민주당은 이사회의 인적 구성에 일반 주주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기업의 투명성 확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시각이죠. 그런데 오늘날 규모가 거대한 대부분의 기업은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움직입니다. 기업 투명성 확보도 개별 기업에 맞는 효율적인 ‘내부 통제 시스템’을 구축해서 실현할 수 있습니다. 실효성 있는 내부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현재 법무부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을 비롯한 경제 선진국의 추세입니다.
상장회사의 사외이사 비율을 확대하는 것은 이사회 구성에 대한 사적 자치를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영업의 자유(제15조)를 침해하는 겁니다. 그런 사외이사 비율을 민주당은 난데없이 ‘4분의 1 이상’에서 ‘3분의 1 이상’으로 확대하자는 건데, 비율 확대의 근거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부당합니다.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바꾸는 것도, 독립이사라고 해서 비(非)상장회사의 사외이사와 기능이나 독립성 면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같은 법률 내에서 별개의 명칭을 사용해 오히려 비상장회사 사외이사의 기능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 법이 기업 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이네요.
“경영자가 어떤 방식으로 영업하고 경영조직을 구성하느냐는 영업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민주당 안(案)처럼 별다른 근거도 없이 지배주주를 배제한 일반 주주가 선출하는 이사 수를 증원한다면 이는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소액의 개미투자자들이 혜택을 보기보다 자금력 있는 외국계 헤지펀드나 국내 행동주의 펀드가 자기 사람들을 이사회에 진출시키는 것을 도와주는 결과밖에 안 됩니다.
대규모 상장회사의 경우에 3% 룰을 적용하여 분리 선출하는 감사위원 수를 현행 1인에서 2인으로 확대하자는 개정안은, 상법상 ‘자본 다수결’ 원칙과 ‘주주 평등’ 원칙을 침해함을 물론, 주주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함으로써 재산권 보장 원칙(헌법 제23조 1항)에도 어긋납니다. 또 현행 1인만으로는 감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아무런 근거자료나 조사도 없으므로 더욱 부당합니다.”
― 우리나라 상법은 몇 점이나 됩니까?
“우리 상법은 경영의 효율성과 투명성 확보 면에서 상당히 균형을 이루고 있고, 그런 점에서 우수한 입법이라고 봅니다. 그걸 야당 쪽에서 무슨 의도인지 자꾸 흔들려고 하는데, 기업의 일반법인 상법의 개정은 확실한 근거를 갖고 해야 합니다.”
다른 국가에서 폐지한 집중투표제
야당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는 대규모상장회사의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있다. 정교모는 이 대목에서 민주당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교모의 성명서 중 일부다.
〈집중투표제는 통상적 의결로는 경영진에 들어갈 수 없는 소수 주주들에게 이사의 자리를 확보해 주는 제도다. 민주당이 정말 소수 주주들을 생각해서,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이것을 의무화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답은, 예컨대 민주당 박균택(朴均澤)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 속의 이른바 ‘독립이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이 밀어붙이는 집중투표 강제화는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바꾸어 소수 주주들의 선택이란 명목으로 기업 경영진에 기생적 시민세력과 정파세력의 침투를 더 노골적으로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법안에는 독립이사들이 활동할 공간을 제도적으로 더 많이 열어놓는 규정들도 들어 있다. 지금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대로라면 대한민국 기업들이 장차 정치권과 주변 기생 인물들의 생계 터전이나 국제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석훈 위원장의 설명이다.
“집중투표제는 상법 제369조 1항의 ‘1주 1의결권’ 원칙에 어긋나는 이례적 제도입니다. 또 소수파 주주의 경영 참여를 허용해 이질적 이사회 구성으로 인한 이사회의 형식화나 의사 결정 지연, 경영의 비효율성, 경영정보 유출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 이런 의무적 집중투표제가 해외에도 있는 제도입니까?
“일본은 처음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했다가 경영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주주 간 파벌싸움만 일으킨다는 이유로 1974년에 자율적 시행으로 전환했습니다. 미국은 처음에 20여 개 주에서 시행했으나, 현재는 5개 주(네브래스카·노스다코타·사우스다코타·애리조나·웨스트버지니아) 정도만 제외하고 모두 자율 시행으로 전환했습니다. 현재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국가는 러시아, 멕시코, 칠레 정도입니다.”
― 의무화한 3개 국가가 경제적으로 잘사는 국가들은 아니네요.
“다른 국가는 시행했다가 없앤 제도를 굳이 우리가 법을 개정하면서까지 도입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상법 교수 62%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 반대’
한경협은 2024년 9월 25일에 ‘모노리서치’에 의뢰한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및 대학 법학과에 소속된 상법 전공 교수 131명을 대상으로 한 상법 개정에 대한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상법 전공 교수의 62.6%가 ‘이사 충실의무 확대’를 위한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대하는 이유로는 ‘회사법에 이미 소수 주주 보호 조항이 있다’는 응답이 40.3%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회사법 근간 훼손’(27.4%), ‘이사의 면책 조항, 경영권 방어 장치 등 필요 조항 미비’(24.2%), ‘회사법에 사익 추구 방지 조항 이미 존재’(8.1%) 등 순(順)이었다.
한석훈 위원장은 “상법에 정작 들어가야 할 것은 ‘경영자의 경영판단 원칙’이다. 이 규정을 집어넣어 우리 기업이 적극적 경영으로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치열한 글로벌 환경 속에서 살아남을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19세기 이래 ‘경영자의 경영판단 원칙’이 판례법으로 정립되어 왔기에 오늘날 경제 발전을 이루는 토대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에서는 2005년 주식법에 이러한 경영판단 원칙을 명문화하면서 이를 ‘경영판단의 안전항(港·safe harbor)’으로까지 평가합니다. 기업이 치열한 경제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사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경영을 해서 남들보다 앞선 기술을 개발하고 경영 혁신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특히 AI, 빅데이터 기술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첨단 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중요해진 요즈음 기업의 밸류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입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경영자의 경영판단 원칙이란 뭡니까?
“많은 분들이 경영판단 원칙(business judgement rule)을 이사의 책임을 면제하는 법리로 오해하고 있는데 미국 판례법 상 경영판단 원칙은 ‘이사의 임무 위배를 판단함에 있어서 일차적 심사 대상을 절차적, 주관적 사항으로 한정하고, 경영판단 내용의 심사는 자제해야 한다’는 법리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의 책임 인정에 관한 심사 기준일 뿐 발생한 책임을 면제해 주는 법리가 아닙니다. 독일 주식법 제93조 1항도 ‘기업가적 결정이 적절한 정보에 근거해 회사의 이익을 위해 한 것으로 합리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경우이면 이사의 의무 위반은 없는 것이다’라고 경영판단 원칙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입법이 존재하지 않음은 물론, 판례에서도 이사의 임무 위배를 판단함에 있어 경영판단 원칙이란 말은 하지만 경영판단의 내용까지 일차적 심사 대상으로 삼고 있으므로 미국·독일과 같은 본래 의미의 경영판단 원칙은 도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상법 개정론의 동기는 주가 밸류업”
― 상법의 개정은 이사의 경영판단 원칙을 명문화함으로써 기업의 적극적 경영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군요.
“애당초 상법 개정론이 나오게 된 동기는 우리나라 기업의 주가 밸류업(value up)을 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업의 가치는 100인데 주식 가치는 10 정도로 저평가돼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기업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기업 지배구조 때문이라는 것이 민주당의 생각입니다. 따라서 기업 지배구조를 손보면 기업 가치가 올라가고, 주가가 올라가고, 우리나라 주식 시장 자체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주가는 기업의 장래 전망에 따라 좌우되는데, 우리나라 기업의 주식 가치가 저평가된 것은 기업 지배구조 때문이라기보다는 각종 규제에 옥죄인 경영환경 탓에 기업의 영업 전망이 어두워 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동안 가파른 성장을 했던 우리 기업들의 상황이 답보상태에 이른 원인은 어디 있을까요?
“주된 원인은 우리 기업이 기술혁신 등으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여 매출 증대를 이루지 못해서라고 봅니다. 기술혁신을 못 하는 것은 적극적인 경영을 하지 못해서이고, 기업인이 적극적 경영을 꺼리는 이유는 경영 실패로 인한 민·형사상 책임 부담 우려, 사회에 만연한 반(反)기업 정서와 과중한 기업 규제 등일 것입니다. 특히 미국, 독일 등에서와 같은 경영판단에 대한 존중 대신 경영 실패에 대한 배임죄 처벌, 중대재해처벌법의 형사처벌, 주 52시간 근로상한제의 융통성 없는 적용,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 등이 적극적 경영활동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규제입니다.”
― 기업의 지배구조보다 펀더멘털이 더욱 문제라는 것이군요.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는 분명히 있지만, 국민연금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의 수탁자책임 활동, 상법·자본시장법 등의 각종 법적 장치들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회사가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영업을 잘해서 많이 팔고 이익도 늘어야 기업 가치가 오를 것 아닙니까?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기업 가치나 주식 가치의 밸류업은 기대하기 어려울 겁니다.”
― 상법 개정안이 이대로 추진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해외로 가는 기업이 많아지고 고용률은 더 떨어질 것 같습니다. 기존 기업도 경영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소극적이고 보신(保身)적인 경영으로 경쟁력을 잃어갈 것이고, 우리나라의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겠지요.”
“정부의 자본시장법 개정, 방향은 맞다”
― 그런 얘기가 나온 지는 오래됐지만, 정작 해외로 빠져나간 기업이 얼마나 되느냐는 얘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해외로 나간 기업도 국내로 돌아오게 하는 정책으로 경제를 살리고 고용을 확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해외 소재 기업 중 국내로 돌아오는 기업이 있었나요? 국내에 더 기업을 세우거나 공장을 확장하려는 기업이 과연 얼마나 있나요? 우리나라에 투자할 자본이 없어서 그러고 있는가요? 그리고 경제 문제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 원인이 축적돼서 나중에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겁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정작 일이 벌어지고 나서 후회하면 늦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됩니다.”
― 정부가 내놓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상장회사의 일반 주주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시장법의 개정을 통해 그간 문제가 되었던 상장회사 조직 재편 시 소액주주 이익보호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개정 방향은 타당하고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다만 세부적인 면에서는 치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입니다. 상법은 기업을 잘되게 함으로써 부강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이념을 갖고 있습니다. 정작 문제가 되는 소액주주 보호의 효과는 없고, 경영진과 투자자 간에 쓸데없는 분쟁만 일으켜 적극적 경영을 저해하는 법안을 만들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을 살리는 입법활동을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흘 뒤인 11월 25일에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정교모)은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李在明) 대표, 대장동 설계에 이어 사업 설계까지 하겠다는 건가’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대한민국 기업들은 조만간 정치적 기생(寄生) 세력의 생계 터전이나 국제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느닷없이 상법 개정 문제가 정치권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야당은 왜 상법에 칼을 대려 하고, 기업들은 전면 반대하고 있으며, 정부는 상법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이라는 절충안을 내놓은 것일까.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상법을 강의하고 증권법 관련 논문을 썼으며 한국공인회계사회, 금융감독원 외부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상법과 기업범죄 분야의 전문가인 한석훈(韓晳薰) 국민연금 기금수탁자책임전문위원장에게 설명을 들었다. 지난 12월 3일에 만난 한 위원장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상법 개정안은 문제가 있으며, 정부 절충안인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논란이 된 6글자 ‘주주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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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훈 위원장. |
첫째, 민주당은 이사의 의무 관련 내용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개정안은 ‘회사를 위하여’를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로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민주당은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하고, 전체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여야 한다’를 추가할 것을 주장한다. 얼핏 봐서는 ‘주주를 위하여’ 6글자를 추가하는 것뿐인데 재계(財界)와 정부가 반발한다. 한석훈 위원장의 설명이다.
“민주당은 기업 지배구조 개편, 즉 기업 합병·분할 등을 하는 경우에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의 이익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소액주주를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주주를 위하여’라는 단어를 넣겠다고 한 것 같습니다. 상법 개정안 제안 이유를 보면 ‘각종 지배구조 개편 시 소액 다수 주주의 이익을 외면한다는 지적이 많다’ ‘외국인투자자, 기관투자자 등 다수의 투자자에게 우리나라 상법은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켜 외국 자본의 국내 자본시장 유입을 막고 주식 시장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 회사의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주주의 이익도 생각하라는 뜻으로 이사의 의무를 명문화하겠다는 거군요.
“그런데 이사의 충실의무(duty of loyalty)라는 개념은 회사의 이익과 이사의 이익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요구되는 의무입니다. 가령 이사가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을 회사에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자기의 이익보다 회사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사는 회사에서 선임되어 회사의 업무 처리를 위임받은 사람입니다. 회사와 위임관계에 따른 권리를 취득하고 의무를 부담할 뿐, 계약관계가 없는 주주에 대하여는 일반적인 의무를 부담할 이유가 없습니다.”
“찬성론자들의 주장은 오해에서 비롯”
―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인정하는 외국의 입법례는 있습니까?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계는 물론이고, 영미법계인 미국에서도 일반적으로 이사가 주주에 대하여 충실의무를 부담한다고 규정한 입법례는 없습니다.”
― 상법 개정 찬성론자들의 주장을 보면 미국 델라웨어주(州)에 그런 법이 있다는데.
“델라웨어주 일반회사법에서 ‘이사나 임원이 회사나 주주들에 대한 충실의무를 위반한 경우의 면책은 이를 정관에 규정하더라도 이사나 임원의 책임을 제한하거나 배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을 오해해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일반적 충실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위와 같은 면책 규정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양입니다.”
― 주주라는 단어가 쓰여 있는데 어떤 오해라는 건가요?
“영미법은 대륙법과 달리 이사의 신인(信認)의무(fiduciary duty·수탁자와 유사한 의무)라는 독특한 의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영미법에서는 구체적인 사실관계에서 자신의 이익보다 상대방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고 볼 만한 특별한 경우에는 계약관계가 없는 상대방에 대하여도 신인의무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에 따라 영미법계 판례에서는 이사가 주주와 거래를 하는 등의 ‘특별한 경우 예외적으로’ 상대방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인정하는 경우가 있을 뿐, 이사의 주주에 대한 ‘일반적인 충실의무’를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위 델라웨어주 일반회사법 조항은 이처럼 특별한 경우에 예외적으로 발생하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도 정관 규정으로 감면할 수 없다는 취지일 뿐이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일반적인 충실의무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회사는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주주 지상(至上)주의(shareholder primacy theory) 입장에서,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간접적으로 회사 주주들의 이익도 위하게 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미국의 판례나 캘리포니아주 회사법 제309조 같은 경우 이사는 ‘회사와 주주들’을 위하여 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적시하는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이때의 ‘주주들’이란 총주주를 말하는 것이고, 개별 주주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주=총주주=전체주주
― 개정안에는 ‘주주’ ‘총주주’ ‘전체주주’라는 표현이 함께 쓰이고 있는데, 서로 다른 의미가 있습니까?
“주주는 주식의 소유자일 뿐 회사에 대한 직접적 권리의무가 없고, 회사는 권리의무가 귀속되는 독립된 법인격체이므로, 일반적으로 이사는 회사에 대하여 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규정합니다. 다만, 위와 같이 판례법 국가인 영미법계에서 이사가 ‘회사와 주주들’에 대하여 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일부 있을 뿐인데, 이는 회사와 총주주를 동일시하는 입장에서의 표현일 뿐입니다. 개별 주주들의 이해관계는 제각각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사가 개별 주주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어떤 의무를 부담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개정안의 ‘주주’란 총주주의 의미이고, ‘전체주주’도 같은 말로 보아야 합니다.”
한 위원장은 “이사가 회사를 위하여 일한다는 것에는 총주주의 개념이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새삼스레 ‘주주를 위하여’라는 문언을 덧붙여 말할 필요가 없고, 이러한 표현은 오히려 분쟁의 소지를 일으킬 뿐”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이사가 ‘회사’를 위해 성실하게 책무를 다한다는 것에는 ‘회사’뿐 아니라 ‘주주’를 위한다는 개념도 이미 들어 있다는 것이다.
― 야당은 개정안에 ‘이사는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고 하는데, 총주주라는 것이 어떤 개념입니까?
“원래 총주주에는 지배주주나 소액주주나 모두 포함되는 겁니다. 개정안의 제안이유에 비추어 보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주주 전체의 단체적 이익을 보호하라는 것인지, 주주 개개인의 개별적 이익을 모두 보호하라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회사 주식을 보유한 모든 개별 주주의 이익은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총주주의 이익’은 주주 전체의 단체적 이익으로 보는 것이 맞고, 그러한 단체적 이익은 회사의 이익으로 간주할 수 있으므로 ‘회사의 이익’을 이사의 행위 기준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개정안은 분쟁 소지만 일으킬 뿐”
― 야당은 ‘총주주의 이익 보호’ 뒤에 ‘전체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것도 포함하자고 합니다.
“개정안이 분쟁의 소지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이런 규정 때문입니다. 이사의 의무는 ‘회사’를 위하여, 즉 ‘총주주’의 이익을 위하여 행위를 할 의무가 있는 것인데, 이 조항을 넣으면 마치 ‘개별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사가 합리적으로 경영판단을 해서 어떤 행위를 했는데, 그 행위로 개별 주주가 손해를 입게 됐다고 칩시다. 그 개별 주주가 자신의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됐다고 주장하면서 이사의 의무 위반을 이유로 법적(法的) 소송을 벌일 수 있게 됩니다.”
― 제가 A회사 주식을 일주일 보유했는데, 그 시기에 회사 경영상 중대한 일이 있어서 주가가 폭락했다면 제가 ‘회사의 이사 때문에 내 이익이 침해됐다’고 소송할 수 있다는 겁니까?
“현행 상법(제401조)은 이사가 ‘고의나 중과실’로 그 임무를 게을리한 경우에 이사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주는 이사의 행위로 회사의 손해는 없지만 자신이 입은 손해, 이른바 ‘직접손해’에 관해서 이사를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 그게 개정안 401조에서는 ‘이사가 임무를 게을리했을 경우’라고 돼 있군요.
“그렇죠. 이사는 회사에 대한 임무만 있을 뿐이므로, 개별 주주가 그러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회사에 대한 임무, 즉 총주주의 단체적 이익을 보호해야 할 임무를 위배한 것이 아니면 개별 주주의 청구는 기각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조항이 있으면 이사는 개별 주주들로부터 쓸데없이 소송을 당하는 경우가 늘어날 겁니다.”
“헤지펀드의 소송 길만 열어주는 꼴”
― 진정한 소액주주 보호 장치가 되기는 할까요?
“현실적으로 소액주주들이 많은 비용을 들여 변호사를 고용해서 지루하게 소송을 할까요? 아무리 자금력이 있더라도 쉽지 않을 겁니다. 결국 돈이 있는 헤지펀드, 행동주의 펀드들만 이 조항을 들먹이며 회사의 이사를 상대로 ‘당신이 우리의 이익을 침해했으니 배상하라’고 소송할 겁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사들은 쓸데없이 소송에 시달리기 싫으니 앞으로 소극적인 경영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필요 없는 법 개정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만 떨어뜨리는 겁니다.”
― 민주당은 애초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발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야당은 개별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 같은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기보다 애당초 주주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주주는 지배주주, 소액주주, 기업가 주주, 투자자 주주 등 이해관계가 다른 모든 사람을 포함합니다. 야당은 소액주주가 약자이고 그들을 위한 개정안인 양 말하고 있지만 ‘주주 평등의 대원칙’에 따라 대주주나 소액주주 모두 평등하게 다뤄야 합니다. 더구나 이사는 총주주뿐 아니라 채권자와 같은 다른 이해관계자를 위해 행위를 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 A사의 주주는 아니지만 A사의 30년 충실 고객이라고 하는 사람도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건가요?
“회사와 거래하는 고객은 계약에 따라 A/S 등을 회사에 대하여 청구할 수 있는데, 나아가 이사가 그러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까지 고려하여 경영을 해야 할 것인지는 회사의 본질에 관련된 문제로,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앞서 말한 ‘주주 지상주의’라고 해서 이사는 오로지 총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회사를 경영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이해관계자주의(stakeholder theory)’는 이사가 이해관계자 모두를 위해 회사를 경영해야 한다는 겁니다. A사의 제품을 구매해 A/S를 계속 받아야 하는 소비자, 회사에 돈 빌려준 은행 등 모든 사람이 이해관계자이며, 그들 모두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둘 중 어느 쪽이 회사의 본질인지는 정확히 합의되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전체주주, 채권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만족시킬 유일한 길은 회사가 이익을 많이 내는 것뿐입니다. 회사가 잘돼서 매출이 늘고 경쟁력이 생기면, 또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한 행위를 한다면 대주주, 소액주주, 임직원, 채권자, 은행 관계자 등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겁니다.”
“회사 이익 보호가 곧 총주주의 이익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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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감원장이 2024년 6월 26일, 서울시 마포구 상장회사회관에서 열린 기업 밸류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
“그렇습니다. 회사는 권리의무의 귀속 주체인 법인(法人)이고, 이사는 회사와 위임계약관계에 있으므로, 이사의 의무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행위를 해야 할 의무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영미법상 보통법 판례에서도 총주주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을 동일시하고,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파악합니다.”
― 현행법처럼 이사가 ‘회사를 위하여’ 직무를 수행하기만 하면 되겠네요.
“물론입니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곧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니까요. 오히려 총주주의 이익 보호 규정을 두면 다른 이해관계자의 이익은 무시해도 된다는 듯한 해석 여지를 남기니까 부적절합니다.”
한석훈 위원장의 설명으로는 현행 상법은 별로 손댈 필요가 없는데, 민주당이 쓸데없는 일로 소모전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상법 개정에 대한 얘기는 어떻게 나왔을까?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尹錫悅) 후보는, 모(母)회사가 신(新)사업을 물적 분할해 재상장할 때 모회사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신주를 우선적으로 배정받을 권리)을 부여하는 공약을 내놨다. 윤 대통령은 2024년 1월에 한국거래소를 찾아 “소액주주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이 운을 띄우자 이복현(李福炫) 금융감독원장은 ‘상법 개정 전도사’를 자임하는 양 2024년 5월부터 상법 개정을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재계의 반발이 심해지자 정부는 상법 대신에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는 쪽으로 선회할 뜻을 보였고, 그 결과 민주당과 첨예하게 대립하게 됐다. 정부든 여야(與野)든 시작점은 ‘회사 합병·분할 등 조직 재편’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부터다.
“상법은 기업 깨부수는 법 아니다”
한석훈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사의 충실의무가 문제가 된 것은 합병이나 물적 분할 등 조직 재편 과정에서 지배주주는 이익을 보고 소액주주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느냐는 것에서 비롯됐습니다. 몇몇 회사의 합병 과정에서 소액주주가 피해를 보는 일이 실제로 생겼기 때문에, 어떤 형식으로든 이 문제가 다뤄지는 것은 맞다고 봅니다.”
―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면서 금융범죄가 지능적으로 변하고 AI를 이용한 범죄도 생길 수 있으니 그때마다 세상의 변화에 맞춰 법을 손보는 게 맞지 않습니까.
“소액주주 보호는 상법을 개정해서 다룰 문제가 아닙니다. 상법에 규정한 이사의 일반적 의무 문제로 논할 것이 아니라, 현행 법제가 개별 주주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는 수단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를 개별 제도별로 검토해서 ‘개별 주주의 이익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른바 ‘핀셋 규제’라고 하죠.”
― 기본적인 질문인데, 그럼 상법은 왜 존재하는 겁니까?
“교과서에 나오는 상법의 양대 이념은 ‘거래의 안전’ ‘기업의 유지 강화’입니다. 상법은 규제법이 아니라 일반법입니다. 상법에도 배임죄가 있는데 그것은 특별배임죄로, 사문화(死文化)된 법입니다.”
― 상법은 처벌법이 아니라는 말이군요.
“상법의 취지는 쉬운 말로 ‘기업이 잘될 수 있도록 하는 법’입니다. 기업을 깨부수고, 기업의 역할을 축소하고, 기업인을 단죄하려고 있는 법이 아닙니다. 상법 개정의 역사를 보면 기업의 효율성을 강화하는 것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두 가지를 반복합니다. 최근에는 기업의 투명성 강화를 중시하고 있는데, 어떤 경우든 기업을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상법의 존재 이념이니까요.”
“형사처벌 규정 지나치게 많아”
―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은 왜 존재하는 겁니까?
“자본시장법은 규제법입니다. 이 법은 자본시장에서 금융 혁신과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며, 금융투자업을 건전하게 육성함으로써 자본시장의 공정성, 신뢰성 및 효율성을 높여서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자본시장법의 목적에 ‘일반 주주 보호’가 분명히 있고 이를 위한 여러 규제 조항이 있습니다.”
― 개별 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해서는 어느 법을 어떻게 개정해야 할까요?
“상법에도 개별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신주발행유지청구권, 합병·분할합병 또는 주식교환·이전 시 반대 주주의 주식매수청수권과 합병 등 무효의 소(訴) 청구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규정만으로는 상장회사의 합병·분할 등 조직 재편 과정에서 일반 주주의 이익 보호가 충분치 않다는 것이 문제이므로, 이를 위해서는 상장회사를 다루는 자본시장법에 일반 주주 보호 조항을 추가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현재 국회에서는 물적 분할 시 반대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을 인정하고, 물적 분할로 설립된 회사를 증권시장에 상장할 때 종전 분할 전 주주들에게 신주우선인수권을 부여하는 등 다양한 자본시장법 개정 의안이 발의되어 심의 중입니다.”
― 야당에서는 이것으로 부족하다는 거군요.
“좀 더 검토할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적절하게 손을 보는 것은 맞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형사처벌 규정이 지나치게 많고 그것이 주주 이익 보호 수단으로 전용(轉用)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배임죄입니다. 우리나라는 형법상 업무상배임죄가 있고, 회사법에 특별배임죄가 있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에는 배임죄의 가중처벌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영미법계 국가에는 배임죄가 존재하지도 않고, 대륙법 중 독일·일본은 배임죄 처벌 규정이 있지만 그중 독일은 ‘경영판단 원칙’이라는 명문 규정을 두고 경영진의 경영판단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배임죄를 목적범(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이 있어야 범죄 성립)으로 규정하고 있어 이사에게 배임죄가 적용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뭅니다.”
“상법의 특별배임죄는 이미 사문화”
― 우리나라는 배임죄라고 하면 다들 벌벌 떨지 않습니까.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하던데요.
“우리나라는 회사의 경영 실패 시 수사기관이 수사해서 배임죄로 기업인들을 구속하고 기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임죄를 광범위하게 해석하다 보니 1심에서 유죄를 선고하더라도 2심이나 대법원에서 무죄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임무 위배의 고의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판례는 ‘인식 있는 과실’과의 구분이 분명치 않은 ‘미필적 고의’를 광범위하게 인정하다 보니 임무 위배가 과실에 불과한 경우에도 재판부의 미필적 고의 인정 여부에 따라 유죄, 무죄가 계속 번복되는 현상이 생기지 않나 싶습니다.”
― 이재명 대표가 ‘배임죄를 폐지하겠다’는 뜻을 비쳤는데요.
“이 대표가 폐지한다는 배임죄는 상법에 있는 특별배임죄 정도겠지요. 배임죄는 이사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므로 형법상의 배임죄까지 모두 폐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상법의 특별배임죄는 이미 사문화된 법인데 폐지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을까요? 재벌 총수 등 이사들의 배임행위가 문제 될 경우는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일 때이므로 형법상 배임죄의 가중처벌 규정인 특경법의 배임죄를 적용받게 됩니다.”
― 재벌 총수라는 표현이 우리는 자연스러운데, 재벌의 독특한 구조지요. 지배주주가 적은 지분으로 기업 전체를 운영하잖습니까.
“그걸 견제하기 위해서 사외이사를 두고 ‘3% 룰’(주주총회에서 감사나 감사위원 선임 시 의결권이 있는 발행 주식의 최대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한 규정)을 상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 3% 룰은 주주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규정이지만, 회사 경영의 투명성 확보를 이유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정말 독특한 룰입니다.”
“헌법에 보장된 ‘영업의 자유’ 침해”
야당은 상법 개정안을 통해 기업의 이사회 구성을 손보겠다고 주장한다. 국회에 상정된 개정안을 보면 상장회사의 사외이사 비율을 현재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에서 ‘3분의 1 이상’으로 확대하고,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하며, 주주총회에서 3% 룰이 적용되어 선출되는 감사위원 수를 1명에서 2명으로 확대하며,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다고 돼 있다. 한석훈 위원장의 얘기다.
“민주당은 이사회의 인적 구성에 일반 주주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기업의 투명성 확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시각이죠. 그런데 오늘날 규모가 거대한 대부분의 기업은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움직입니다. 기업 투명성 확보도 개별 기업에 맞는 효율적인 ‘내부 통제 시스템’을 구축해서 실현할 수 있습니다. 실효성 있는 내부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현재 법무부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을 비롯한 경제 선진국의 추세입니다.
상장회사의 사외이사 비율을 확대하는 것은 이사회 구성에 대한 사적 자치를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영업의 자유(제15조)를 침해하는 겁니다. 그런 사외이사 비율을 민주당은 난데없이 ‘4분의 1 이상’에서 ‘3분의 1 이상’으로 확대하자는 건데, 비율 확대의 근거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부당합니다.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바꾸는 것도, 독립이사라고 해서 비(非)상장회사의 사외이사와 기능이나 독립성 면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같은 법률 내에서 별개의 명칭을 사용해 오히려 비상장회사 사외이사의 기능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 법이 기업 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이네요.
“경영자가 어떤 방식으로 영업하고 경영조직을 구성하느냐는 영업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민주당 안(案)처럼 별다른 근거도 없이 지배주주를 배제한 일반 주주가 선출하는 이사 수를 증원한다면 이는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소액의 개미투자자들이 혜택을 보기보다 자금력 있는 외국계 헤지펀드나 국내 행동주의 펀드가 자기 사람들을 이사회에 진출시키는 것을 도와주는 결과밖에 안 됩니다.
대규모 상장회사의 경우에 3% 룰을 적용하여 분리 선출하는 감사위원 수를 현행 1인에서 2인으로 확대하자는 개정안은, 상법상 ‘자본 다수결’ 원칙과 ‘주주 평등’ 원칙을 침해함을 물론, 주주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함으로써 재산권 보장 원칙(헌법 제23조 1항)에도 어긋납니다. 또 현행 1인만으로는 감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아무런 근거자료나 조사도 없으므로 더욱 부당합니다.”
― 우리나라 상법은 몇 점이나 됩니까?
“우리 상법은 경영의 효율성과 투명성 확보 면에서 상당히 균형을 이루고 있고, 그런 점에서 우수한 입법이라고 봅니다. 그걸 야당 쪽에서 무슨 의도인지 자꾸 흔들려고 하는데, 기업의 일반법인 상법의 개정은 확실한 근거를 갖고 해야 합니다.”
다른 국가에서 폐지한 집중투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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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구 신선대부두에서 컨테이너 선적 및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사진= 뉴시스 |
〈집중투표제는 통상적 의결로는 경영진에 들어갈 수 없는 소수 주주들에게 이사의 자리를 확보해 주는 제도다. 민주당이 정말 소수 주주들을 생각해서,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이것을 의무화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답은, 예컨대 민주당 박균택(朴均澤)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 속의 이른바 ‘독립이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이 밀어붙이는 집중투표 강제화는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바꾸어 소수 주주들의 선택이란 명목으로 기업 경영진에 기생적 시민세력과 정파세력의 침투를 더 노골적으로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법안에는 독립이사들이 활동할 공간을 제도적으로 더 많이 열어놓는 규정들도 들어 있다. 지금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대로라면 대한민국 기업들이 장차 정치권과 주변 기생 인물들의 생계 터전이나 국제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석훈 위원장의 설명이다.
“집중투표제는 상법 제369조 1항의 ‘1주 1의결권’ 원칙에 어긋나는 이례적 제도입니다. 또 소수파 주주의 경영 참여를 허용해 이질적 이사회 구성으로 인한 이사회의 형식화나 의사 결정 지연, 경영의 비효율성, 경영정보 유출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 이런 의무적 집중투표제가 해외에도 있는 제도입니까?
“일본은 처음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했다가 경영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주주 간 파벌싸움만 일으킨다는 이유로 1974년에 자율적 시행으로 전환했습니다. 미국은 처음에 20여 개 주에서 시행했으나, 현재는 5개 주(네브래스카·노스다코타·사우스다코타·애리조나·웨스트버지니아) 정도만 제외하고 모두 자율 시행으로 전환했습니다. 현재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국가는 러시아, 멕시코, 칠레 정도입니다.”
― 의무화한 3개 국가가 경제적으로 잘사는 국가들은 아니네요.
“다른 국가는 시행했다가 없앤 제도를 굳이 우리가 법을 개정하면서까지 도입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상법 교수 62%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 반대’
한경협은 2024년 9월 25일에 ‘모노리서치’에 의뢰한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및 대학 법학과에 소속된 상법 전공 교수 131명을 대상으로 한 상법 개정에 대한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상법 전공 교수의 62.6%가 ‘이사 충실의무 확대’를 위한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대하는 이유로는 ‘회사법에 이미 소수 주주 보호 조항이 있다’는 응답이 40.3%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회사법 근간 훼손’(27.4%), ‘이사의 면책 조항, 경영권 방어 장치 등 필요 조항 미비’(24.2%), ‘회사법에 사익 추구 방지 조항 이미 존재’(8.1%) 등 순(順)이었다.
한석훈 위원장은 “상법에 정작 들어가야 할 것은 ‘경영자의 경영판단 원칙’이다. 이 규정을 집어넣어 우리 기업이 적극적 경영으로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치열한 글로벌 환경 속에서 살아남을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19세기 이래 ‘경영자의 경영판단 원칙’이 판례법으로 정립되어 왔기에 오늘날 경제 발전을 이루는 토대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에서는 2005년 주식법에 이러한 경영판단 원칙을 명문화하면서 이를 ‘경영판단의 안전항(港·safe harbor)’으로까지 평가합니다. 기업이 치열한 경제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사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경영을 해서 남들보다 앞선 기술을 개발하고 경영 혁신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특히 AI, 빅데이터 기술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첨단 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중요해진 요즈음 기업의 밸류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입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경영자의 경영판단 원칙이란 뭡니까?
“많은 분들이 경영판단 원칙(business judgement rule)을 이사의 책임을 면제하는 법리로 오해하고 있는데 미국 판례법 상 경영판단 원칙은 ‘이사의 임무 위배를 판단함에 있어서 일차적 심사 대상을 절차적, 주관적 사항으로 한정하고, 경영판단 내용의 심사는 자제해야 한다’는 법리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의 책임 인정에 관한 심사 기준일 뿐 발생한 책임을 면제해 주는 법리가 아닙니다. 독일 주식법 제93조 1항도 ‘기업가적 결정이 적절한 정보에 근거해 회사의 이익을 위해 한 것으로 합리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경우이면 이사의 의무 위반은 없는 것이다’라고 경영판단 원칙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입법이 존재하지 않음은 물론, 판례에서도 이사의 임무 위배를 판단함에 있어 경영판단 원칙이란 말은 하지만 경영판단의 내용까지 일차적 심사 대상으로 삼고 있으므로 미국·독일과 같은 본래 의미의 경영판단 원칙은 도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상법 개정론의 동기는 주가 밸류업”
― 상법의 개정은 이사의 경영판단 원칙을 명문화함으로써 기업의 적극적 경영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군요.
“애당초 상법 개정론이 나오게 된 동기는 우리나라 기업의 주가 밸류업(value up)을 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업의 가치는 100인데 주식 가치는 10 정도로 저평가돼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기업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기업 지배구조 때문이라는 것이 민주당의 생각입니다. 따라서 기업 지배구조를 손보면 기업 가치가 올라가고, 주가가 올라가고, 우리나라 주식 시장 자체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주가는 기업의 장래 전망에 따라 좌우되는데, 우리나라 기업의 주식 가치가 저평가된 것은 기업 지배구조 때문이라기보다는 각종 규제에 옥죄인 경영환경 탓에 기업의 영업 전망이 어두워 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동안 가파른 성장을 했던 우리 기업들의 상황이 답보상태에 이른 원인은 어디 있을까요?
“주된 원인은 우리 기업이 기술혁신 등으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여 매출 증대를 이루지 못해서라고 봅니다. 기술혁신을 못 하는 것은 적극적인 경영을 하지 못해서이고, 기업인이 적극적 경영을 꺼리는 이유는 경영 실패로 인한 민·형사상 책임 부담 우려, 사회에 만연한 반(反)기업 정서와 과중한 기업 규제 등일 것입니다. 특히 미국, 독일 등에서와 같은 경영판단에 대한 존중 대신 경영 실패에 대한 배임죄 처벌, 중대재해처벌법의 형사처벌, 주 52시간 근로상한제의 융통성 없는 적용,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 등이 적극적 경영활동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규제입니다.”
― 기업의 지배구조보다 펀더멘털이 더욱 문제라는 것이군요.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는 분명히 있지만, 국민연금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의 수탁자책임 활동, 상법·자본시장법 등의 각종 법적 장치들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회사가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영업을 잘해서 많이 팔고 이익도 늘어야 기업 가치가 오를 것 아닙니까?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기업 가치나 주식 가치의 밸류업은 기대하기 어려울 겁니다.”
― 상법 개정안이 이대로 추진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해외로 가는 기업이 많아지고 고용률은 더 떨어질 것 같습니다. 기존 기업도 경영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소극적이고 보신(保身)적인 경영으로 경쟁력을 잃어갈 것이고, 우리나라의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겠지요.”
“정부의 자본시장법 개정, 방향은 맞다”
― 그런 얘기가 나온 지는 오래됐지만, 정작 해외로 빠져나간 기업이 얼마나 되느냐는 얘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해외로 나간 기업도 국내로 돌아오게 하는 정책으로 경제를 살리고 고용을 확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해외 소재 기업 중 국내로 돌아오는 기업이 있었나요? 국내에 더 기업을 세우거나 공장을 확장하려는 기업이 과연 얼마나 있나요? 우리나라에 투자할 자본이 없어서 그러고 있는가요? 그리고 경제 문제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 원인이 축적돼서 나중에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겁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정작 일이 벌어지고 나서 후회하면 늦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됩니다.”
― 정부가 내놓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상장회사의 일반 주주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시장법의 개정을 통해 그간 문제가 되었던 상장회사 조직 재편 시 소액주주 이익보호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개정 방향은 타당하고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다만 세부적인 면에서는 치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입니다. 상법은 기업을 잘되게 함으로써 부강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이념을 갖고 있습니다. 정작 문제가 되는 소액주주 보호의 효과는 없고, 경영진과 투자자 간에 쓸데없는 분쟁만 일으켜 적극적 경영을 저해하는 법안을 만들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을 살리는 입법활동을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