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경제 포커스

2021년의 ‘핫 아이템’ 2차 전지

국내 빅4 그룹 동시 참여는 90년대 후반 반도체 사업 이후 처음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일본 누르고 LG, 삼성, SK 나란히 글로벌 톱 5
⊙ 배터리가 2000억원 적자 냈지만 “포기하지 마라”던 구본무 회장의 뜻으로 업계 선도하는 LG
⊙ SK온, 미국 시장 선점 위해 5조 투자
‘대구 국제 미래자동차엑스포 2021(DIFA 2021)’에 전시된 기아차 ‘EV6’ 전기차.
  2021년 재계의 최대 화두는 2차 전지였다. 삼성·현대차·SK·LG 등 국내 빅4 그룹이 사활을 걸고 사업에 몰두했다. 빅4 그룹이 같은 사업군에 진출한 것은 1990년대 중반 반도체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미래 먹을거리 사업이란 소리다. 주식 시장은 2차 전지 관련주로 한 해 내내 들썩였다. 자동차 업계가 서둘러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면서 산업 생태계가 변하자 ‘2차 전지 관련주’라는 말만 돌아도 투자자들이 몰렸다. 2020년에 ‘바이오’가 주식 시장의 대장주였다면, 올 한 해는 ‘2차 전지’가 완전히 시장을 장악했다.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 아우디 브랜드 최초 순수 전기차 ‘아우디 e-트론 55 콰트로’.
 
벤츠의 프리미엄 콤팩트 순수 전기차 ‘더 뉴 EQA’.
 
  LG, SK, 삼성 모두 사활 걸어
 
  LG는 2020년 12월에 LG화학에서 에너지 부문을 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엔솔)을 설립했다. LG는 올해 인사에서 권영수 전(前) LG 부회장을 CEO로 선임했다. 배터리 사업 분사와 신설법인 출범이 채 1년도 되지 않아 내린 결정이다. 업계에서 이번 인사는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룹을 총괄하는 2인자가 특정 회사의 CEO로 다시 돌아와 회사 경영을 책임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2012년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을 맡았던 권 부회장은 LG 배터리 사업을 성장시킨 일등 공신이다. LG 배터리를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게 한 뒤 현업에서 물러났던 그에게 다시 LG엔솔을 맡긴 것은 그룹이 배터리 사업을 그만큼 중히 여기고 있다는 증거다. LG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은 누가 뭐래도 LG엔솔이다.
 

  SK는 기존의 배터리 사업, 석유개발 사업을 해온 SK이노베이션에서 배터리 사업을 분사시켜 올해 10월에 배터리 전문회사인 SK온을 설립했다. SK온은 ‘켜다’ ‘계속된다’는 중의적 표현이다. 배터리 사업으로 깨끗하고 편리한 세상을 만드는 전동화의 핵심 역할을 통해 글로벌 넘버원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다. SK는 SK텔레콤 미래경영실장·전략기획부문장을 지낸 전략통인 지동섭 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지 대표는 2019년에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 대표로 선임돼 SK 배터리를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상위권에 랭크되게 하는 데 일조한 인물이다. SK온은 문패를 바꿔 달자마자 미국 포드사와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 투자를 발표하는 등 공격 경영에 나섰다.
 
  LG와 SK보다 공격적이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삼성SDI는 지난 10월에 미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진출했다. 삼성SDI와 미국 스텔란티스가 전기차 배터리 합작사 설립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미국에 들어갈 공장 위치와 준공 시기는 아직 미정이다. 이로써 미국 배터리 시장은 LG와 SK, 삼성 3파전이 됐다. LG엔솔은 미국 내 생산 규모가 185Gwh이며, SK온은 150.5Gwh다. 여기에 삼성SDI까지 합세하게 됐다. 전기차 배터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현대차는 서울대와 함께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을 선언했다. 현대차와 서울대는 11월, 앞으로 10년간 300억원을 투자하는 ‘배터리 공동연구센터’를 만든다고 발표했다.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본격적으로 관심
 
LG에너지솔루션 오창공장에서 직원들이 자사가 개발한 ‘롱셀 배터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2차 전지가 얼마나 ‘핫’한 아이템인지는 글로벌 주식 시장의 추이를 보면 알 수 있다. 2차 전지는 ‘파괴적 혁신의 아이템’으로 꼽힌다. 2차 전지가 올해 처음으로 대표주였던 것은 아니다. 2017년 이후 높은 주가 상승과 쉬어감을 반복했다.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1차 랠리는 2017~2018년 미국의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가 ‘Model 3’을 판매할 때였다. 그러나 2018년 ESS(에너지 저장시스템) 화재 사건 여파와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이 부진하면서 주가는 내렸다. 이후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충격, 유가 하락과 경기 침체는 전기차에 대한 기대치를 낮췄다. 하지만 유럽이 전기차 강화 정책을 펼치면서 2차 전지는 V자 반등에 성공하며 2차 랠리가 시작됐다. 바이든 정부 이후에 미국의 친환경 정책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중요 완성차들이 서둘러 전기차를 선보이면서 3차 랠리가 일어났다. 눈여겨볼 만한 점은 ‘3차 랠리’가 여전히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교보증권 리서치센터는 “2차 전지 기업은 산업의 도입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 중 여전히 도입기에 머물러 있다. 중장기적 성장 여력이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LG엔솔은 내년 초 주식 시장에 상장할 예정이고, SK온도 내년 상장을 준비 중이다. 주당 48만원대였던 삼성SDI는 1년 만에 배터리 성장에 힘입어 70만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모바일에 한정돼 있던 2차 전지, 전기차 도래로 활황
 
  2차 전지는 충전이 가능한 배터리다. 모바일·IT 기기에 한정돼 있었던 2차 전지는 최근 전기차라는 디바이스의 등장으로 급격한 수요가 이뤄지고 있다. 자동차의 동력은 지난 120년간 석유를 동력으로 삼는 엔진에서 신재생·친환경 에너지원을 동력으로 하는 2차 전지로 바뀌고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이 감내해야 했던 환경오염의 부작용을 제거할 수 있는 대안이다. 4차 산업이 만들어갈 스마트 시티에서 자율주행 자동차, 공유택시, 스마트 홈 산업 등을 실현하는 새로운 이동수단으로 자리 잡을 예정이다.
 
  자동차용 2차 전지가 대세라는 점은 익히 알 수 있다. 교보증권 리서치센터 보고서를 보면, 전기차는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내연기관 엔진보다 우수하다. 전기차 판매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분명한 추세다. 완성차 시장의 주축은 북미와 유럽, 중국이다. 유럽은 일찌감치 전기차로의 전환을 선언했고, 미국은 지난해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으로 인해 조만간 현실화될 예정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8월, 2030년 신차 기준 전기차 판매 비중을 50%로 확대하는 행정 명령을 발표한 바 있다. 더구나 기업의 비(非) 재무적 성과 및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ESG 경영(환경·사회·지배구조)이 무르익고 있다.
 
  2차 전지를 지배할 이슈는 여러 가지가 있다. 배터리 기술은 에너지 밀도 향상, 원가 경쟁력 향상, 안전성 향상, 수명 연장, 충전속도 향상 등 5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재 혁신과 공정 혁신이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소재 혁신은 제조원가의 약 54%를 차지하는 4대 소재(양극재, 음극재, 전해막질, 분리막)의 고도화가 핵심이다. 공정 혁신은 배터리 제조 공정 중 일부를 변화시켜 원가와 에너지 밀도를 개선하는 방향이다.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막, 분리막

 
LG에너지솔루션이 생산하는 배터리.
  2차 전지에 대해 알려면 복잡한 용어부터 이해해야 한다.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막, 분리막이다.
 
  양극재는 배터리 성능을 결정한다. 양극활 물질로는 니켈, 망간, 코발트, 알루미늄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에너지 밀도 향상과 원가 절감의 요소다. 음극재는 양극에서 나오는 리튬 이온을 음극에서 받아들이는 소재로, 흑연 등의 탄소 물질을 가장 많이 활용한다. 현재 전기차용 배터리는 천연흑연과 인조흑연을 혼합해 사용하는데, 이 둘을 섞어서 ‘용량’과 ‘수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전해액은 전기 분해를 할 때 전해조에 넣어서 이온 전도의 매체 역할을 하는 용액이다. 리튬염 15%, 용매 80%, 첨가제 5%로 구성된다. 용량 기준 비중은 첨가제가 가장 낮지만, 금액으로는 약 30~40%를 차지하는 고부가 소재다. 완성차, 배터리 업체가 원하는 특성을 구현할 수 있는 첨가제를 선택해 투입한다.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이 만나지 않도록 가로막는 역할을 하며, 박막화(두께를 최소화하는 것), 고강도(수많은 리튬이 통과하는 분리막이 무너지면 양극과 음극이 만나서 배터리가 폭발한다), 기공 균일성(기공이 균일하지 않으면 리튬 이온의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아 에너지 저하로 이어진다), 코팅(분리막의 양면을 세라믹으로 코팅)기술이 중요하다. 2차 전지 관련주에 여러 회사가 언급되는 이유는 망간, 흑연, 리튬 등 다양한 물질이 서로 융합돼 배터리를 이루기 때문이다.
 
  국내의 2차 전지 사업을 주도하는 곳은 LG다. LG엔솔은 전(全) 세계 배터리 업체 중 유일하게 화학 기반의 회사다. 차별화된 소재 기술을 바탕으로 한 배터리 구성 물질 개발 능력이 타사보다 우수하고, 성능, 안전성, 신뢰성 면에서 선도적이다.
 
 
  “포기하지 말고 길게 보고 투자해라”(구본무 LG 회장)
 
  LG의 2차 전지 사업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회장이었던 고(故) 구본무(具本茂) 회장은 영국 출장에서 한 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가 아니라 충전을 하면 여러 번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2차 전지를 보고, 2차 전지가 미래의 새로운 성장 사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구 회장은 귀국하면서 2차 전지 샘플을 가지고 와서 당시 계열사였던 럭키금속에 연구를 맡겼다. 1995년에 본격적인 독자 개발이 착수됐고, 1996년 들어 리튬전지가 음극재, 양극재, 전해질 등 화학 물질로 구성된 만큼 소재 분야 연구에 강점이 있는 LG화학(현재 분사한 LG엔솔)으로 럭키금속의 전지 연구조직을 이전하며 연구를 계속 진행토록 했다. LG는 1996년 4월, ‘오는 1999년까지 리튬 이온 2차 전지의 개발에서부터 양산까지 모든 것을 완료하겠다’는 마스터 플랜을 발표했다.
 
  LG에 따르면 통상 조사, 실험, 시험공장 건설, 양산공장 건설, 안정화에 최소 5년이 걸리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이를 3년 안에 완성하겠다고 했으니 폭탄선언을 한 셈이다. 당시 한국 언론에서는 한국에서의 리튬 이온 2차 전지 개발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이름값 한다는 ‘에너자이저’ ‘듀라셀’도 일찌감치 두 손을 든 상태였다.
 

  하지만 그룹과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LG엔솔 연구원들은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다. 우선 개발을 앞당기기 위해 개발 시작과 동시에 1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시험공장 건설을 추진했다. 독자 개발을 위해서는 우리보다 당시 한발 앞서 있던 일본에서의 정보 수집이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국가적으로 기술 유출을 금지하고 있었고, 우리로서는 정보 수집에 어려움이 컸다. 이에 연구진은 일본의 장비업체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어떤 장비가 제조회사에 납품됐는지를 확인하면서 개발에 주력했다.
 
  그렇게 해서 1997년, 연구진이 소형전지 파일럿 생산에 처음 성공했다. 하지만 대량 양산을 하기에는 품질이 따라주지 않았고, 일본 선발 업체들의 기술력을 따라잡는 것 또한 역부족이었다. 1990년대부터 수년 동안 투자했지만,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자 ‘우리 기술력으로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회의 섞인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구본무 회장은 “포기하지 말고 길게 보고 투자하고 연구개발에 더욱 집중해라. 꼭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라”고 독려했다.
 
  LG엔솔은 1997년 11월, 일본 제품보다 뛰어난 세계 최고 용량(1800mAh), 세계 최경량(150Wh/kg) 시제품 양산에 성공한다.
 
 
  美 GM, 전기차용 배터리 단독 공급업체로 LG 선정
 
  2001년 2200mAh(밀리암페어)급 노트북용 원통형 리튬 이온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양산한 데 이어, 2005년 2600mAh급을 일본 업체보다 한발 앞서 세계 최초로 양산해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리튬 이온 배터리의 한 종류인 폴리머 타입의 경우, LG엔솔은 ‘스택 앤 폴딩(Stack&Folding)’ 구조라는 자체 개발 특허 기술을 적용해 경쟁사가 대체하는 ‘와인딩(Winding)’ 구조나 단순 ‘스택킹(Stacking)’ 구조보다 전지 내부 공간 활용을 극대화해 최고의 에너지 밀도를 실현했다.
 
  LG엔솔은 ‘스택 앤 폴딩’에 이어 배터리 내부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고, 높은 에너지 밀도를 구현해 제품 성능을 높인 ‘라미네이션 앤드 스태킹(Lamination & Stacking)’ 기술을 적용했다. 또한 전기차용 리튬 이온 폴리머 배터리의 경우 특허를 획득한 ‘SRS(안전성 강화 분리막)’를 통해 배터리 셀 자체의 근본적인 안전성을 확보했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LG엔솔은 2005년 무려 2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고 그룹의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하지만 구본무 회장은 “이 사업이 우리의 미래 성장 동력이다. 끈질기게 하면 반드시 성과가 나올 것”이라며 다시 임직원들을 다독였다.
 
  2차 전지 연구를 시작한 지 17년 만인 2009년, 회사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이는 비단 LG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의 일대 변혁을 일으키는 사건이었다. 미국 최대의 자동차 업체인 GM이 전기자동차용 리튬 이온 배터리 단독 공급업체로 LG를 선정한 것이다. LG엔솔 관계자는 “이 소식은 우리나라 기술이 바탕이 돼 전 세계 전기차 시대를 본격적으로 개막하게 됐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그동안 배터리 분야에 먼저 진입한 일본을 추격하던 우리가 전기차용 리튬 이온 배터리 분야에서는 일본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GM의 ‘쉐보레 볼트’는 소비자가 실질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전기차로, 배터리가 동력의 보조 수단으로만 작용하던 기존 하이브리드카와 달리 순수 배터리 힘으로만 구동하는 차세대 친환경 차량이다. 따라서 출력, 안전성 등 배터리 성능이 전기차의 상용화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큰 핵심 요소로 손꼽히며, 세계 첫 양산형 전기차에 어느 업체의 배터리가 적용될 것인가는 전 세계 완성차 제조업체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여기서 일본 등 쟁쟁한 경쟁사를 누르고 한국의 LG가 뽑힌 것이다.
 
  사실 LG엔솔은 이보다 2년 전인 2007년에 현대차가 국내 최초로 양산하는 하이브리드차 ‘아반떼’와 기아의 ‘포르테’에 단독으로 리튬 이온 배터리를 공급 중이었다. 여기에 GM으로부터 낙점을 받음에 따라,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입증받은 셈이다.
 
 
 
일본, 독일 업체 물리치고 시장의 선두 주자로

 
  일본은 1990년대 초부터 니켈수소 배터리로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전기자동차용 리튬 이온 배터리 시장에서도 우위를 선점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하지만 LG가 이를 보란 듯이 잡았다. LG엔솔의 리튬 이온 배터리는 일본의 니켈수소 배터리에 비해 50% 이상의 높은 출력과 에너지를 제공하면서도 가볍고 콤팩트한 구조로 배터리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배터리 분야를 비롯해 각종 하이테크 분야에서 일본 등 선진국을 뒤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의 입장이었으나,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분야에서는 일본 및 독일 경쟁업체를 물리치고 ‘퍼스트 무버’로 나서게 된 것이다.
 
  LG엔솔은 비록 일본보다 10년 늦게 소형 리튬 이온 배터리 생산에 성공했지만, 전기차에 사용되는 중대형 배터리 분야에서는 일찌감치 잠재성을 인지한 터였다. 지난 2000년부터 중대형 배터리 연구 및 북미시장 개척을 위해 미국에 연구법인인 ‘LGCPI’를 설립하는 등 본격적인 연구 개발 활동에 들어갔다.
 
  LG엔솔이 하이브리드가 아닌 전기차용 배터리에서 일본보다 우세를 선점하리라는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징조가 있었다. 2002년 7월,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세계적 자동차 경주대회인 ‘파익스피크 인터내셔널 힐 클라임’에서 LG엔솔의 배터리를 이용해 개발한 전기차가 우승을 차지했다. 2003년에도 LG엔솔 배터리를 얹은 차가 우승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LG는 2004년 8월에는 미 에너지부(DOE·Department of Energy)와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3대 자동차 업체의 컨소시엄인 ‘USABC’로부터 460만 달러 규모의 전기차용 배터리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해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탑재될 고성능 배터리 개발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2건의 추가 수주를 따냈다.
 
 
  삼성SDI, 올 1·2분기 연속 흑자 기록
 
  삼성전자에서 연구하던 배터리 사업을 넘겨받은 삼성SDI는 초기에 니켈수소 배터리를 연구하다가 이후 성능이 뛰어난 리튬 이온 배터리에 주목했다. 1998년 당시로써는 최고 용량인 1650mAh 원형 리튬 이온 배터리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회사는 2000년에 충남 천안에 배터리 생산공장을 준공하며 배터리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후 2001년에 세계에서 가장 얇은 두께인 2.8mm 각형 배터리 개발에 성공했고, 2002년에는 최고 용량인 2200mAh 원형 배터리를 양산했다. 삼성SDI는 2004년에 ‘일류화 추진 계획’을 수립하고 2008년까지 안전성 등 모든 분야에서 1등 품질을 달성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삼성SDI는 모바일 기기용 배터리 분야에서 축적해온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전기차를 위한 고효율, 고에너지 밀도 배터리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7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전기차용 배터리 5만 개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준공해 삼성SDI는 울산, 중국 시안과 함께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3각 생산 체제를 완성했다. 2018년에는 20분 급속 충전에 최대 600km까지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용 고에너지 밀도 배터리 셀 등을 선보였다. 삼성SDI는 지난 4월에 BMW와 손잡고 그동안 BMW가 써온 사각형 금속 캔 형태의 각형 배터리가 아닌 원통형 배터리를 개발키로 합의했다. 삼성SDI의 전기차 배터리는 올해 연속 2분기 흑자를 기록해, 올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최대치를 기록했다.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고성장 중인 초기 시장으로 치열한 수주 경쟁을 비롯해 다양한 이슈로 아직까지 수익을 내는 기업이 많지 않다. 그 와중에 삼성SDI가 빠르게 흑자 전환한 것은 그동안 강조한 초격차 기술을 바탕으로 한 질적 성장이 유효했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계열사 자금 총동원하는 SK
 
SK온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 SK온은 조지아, 테네시, 켄터키주에 3개 공장을 갖게 된다.
  SK는 LG, 삼성보다 늦게 배터리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가장 공격적이다. 애초 배터리 업무를 맡았던 SK이노베이션 외에도 전기차 소재를 생산하는 SK케미칼, 전기차 렌털사업을 하는 SK네트웍스, 전기차-스마트폰을 연동시키는 사업을 운영하는 SK플래닛 등 전 계열사를 모두 모았다. SK는 중국 시장을 선점하면서, 후발 주자로서의 약점을 보완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2014년에 중국 베이징 자동차 그룹과 함께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을 만들고, 사내에 배터리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SK는 기술력 개발을 위해 2017년부터 자금을 대대적으로 쏟아부었다. SK는 2017년에 유럽 헝가리에 8400억원을 들여 첫 생산기지를 건설하고, 충남 서산공장도 추가 증설했다.
 
  SK의 투자 중에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지난 9월에 있었다. SK는 미국 포드사와 글로벌 배터리 합작법인 ‘블루오벌SK’를 설립, 테네시와 켄터키주에 공장을 만들기로 했다. SK와 포드가 두 지역에서 배터리 공장과 전기차 조립 공장을 짓기 위해 투입하는 비용은 13조1000억원이다. 포드 118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투자 발표이며, 미국에서 이뤄진 배터리 공장 투자건 중에 최대 규모다. 이를 위해 SK는 블루오벌SK의 자사 지분 50%에 해당하는 5조1000억원을 쏟아붓는다. SK가 이미 조지아주에 단독으로 공장을 짓고 있는바, 3개 공장이 합쳐지면 SK는 미국에서 약 150Gwh의 생산 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앞서 SK는 양극재 제조사인 에코프로비엠으로부터 2024~2026년까지 10조원대의 양극재를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SK온은 올해 SK이노베이션에서 분사한 것을 계기로 2030년까지 글로벌 선두업체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연간 40GWh 수준의 배터리 생산 능력은 2034년까지 85GWh, 2025년에는 220GWh, 2030년에는 500GWh 이상으로 확대시켜나갈 계획이다. 또 ESS, 플라잉카(Flying car), 로봇 등 배터리가 적용되는 다양한 시장을 새롭게 확장하고, 배터리 제품뿐만 아니라 서비스까지 영역을 확대하는 플랫폼 사업을 가속할 예정이다.
 
  국내 업체들이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세계 시장에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독보적인 기술력 덕분이다. LG엔솔은 전세계 배터리 업체 중 가장 많은 2만5000여 건 이상의 원천 특허를 확보하고 있다. LG엔솔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LG엔솔은 배터리의 핵심 경쟁력인 양극재, 분리막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LG엔솔은 2005년 세계 최초로 NCM 양극재를 적용한 원통형 전지를 양산했고, 2009년에는 세계 최초 NCM 양극재를 적용한 자동차 전지를 양산, 2016년에는 세계 최초로 NCM622 양극재를 적용한 자동차 전지를 양산하는 등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LG엔솔은 기존 NCM 양극재에 값싼 알루미늄을 추가하는 기술, 이른바 ‘NCMA 배터리’를 확보했다.
 
  NCMA 배터리는 양극재 내 니켈 함량을 85% 이상까지 높이고 가격이 비싼 코발트는 5% 이하로 줄인다. 거기에 값싼 알루미늄 소재를 추가해 가격 경쟁력을 높인다. 또 알루미늄 특성상 출력 성능까지 개선돼 앞으로 대세가 될 차세대 전기차에 더 적합한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출력, 수명, 용량, 저항 등에서 하이니켈 배터리 경쟁사 대비 모든 면에서 우수하다.
 
  LG엔솔은 2004년 ‘SRS(안전성강화분리막)’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SRS는 분리막의 표면을 세라믹 소재로 얇게 코팅해 안전성과 성능을 대폭 향상시킨 LG엔솔만의 고유 기술로 한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유럽, 일본에서도 800여 개의 특허를 보유 중이다. LG엔솔은 소재 회사들과 라이선스 계약 등을 맺어 1000억원이 넘는 수익을 얻었다. LG엔솔은 전고체 전지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9월에 미국 샌디에이고대학교와 공동 연구로 기존 60도 이상에서만 충전이 가능했던 한계를 넘어 상온에서도 빠른 속도로 충전이 가능한 장수명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는 최고 권위의 과학 저널인 《사이언스》에 실려 성과를 인정받았다.
 
 
  SK, 단 한 건의 화재도 없었다
 
지난 6월에 열린 ‘인터배터리’에서 SK온에 전시된 포드 f-150.
  SK는 지난 6월에 국내 최대 배터리 산업 전시회인 ‘인터배터리’에서 자사의 기술을 한껏 뽐냈다. SK는 자사 배터리의 장점인 안전성, 빠른 충전속도, 장거리 주행 기능을 주제로 차별화된 기술력을 선보였다. SK는 이 자리에서 지금까지 2억7000만 개 배터리 셀을 납품하는 동안 단 한 건의 화재도 발생하지 않은 안전성을 자랑했다.
 
  SK에 따르면 그 비결은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가 제조한 분리막이다. SK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독자 기술로 머리카락의 25분의 1 수준인 5마이크로미터 두께로 얇으면서도 튼튼한 분리막을 제조할 수 있다. 분리막이 얇으면 이온이 활발하게 이동할 수 있어 배터리 출력이 높아지고 충전속도가 빨라진다”고 소개했다. SK는 배터리 제조공정에서 사용하는 ‘Z폴딩’ 기법도 소개했다. Z폴딩은 양극과 음극 사이로 분리막을 지그재그로 지나도록 해, 두 소재가 접촉할 수 있는 가능성을 현저히 줄인다. 또 열확산 억제력을 갖춘 배터리팩 기술을 소개했다.
 
  열확산 억제력은 배터리 셀 수십 개가 줄지어 있는 배터리 팩 안에서 일부 셀에 화재가 발생해도 주변 셀로 열이 번지지 않는 안전 성능이다. SK온이 자체 제작한 ‘E-팩’은 열이 퍼지지 않도록 차단한다.
 
 
  완성차 아닌 배터리 업체가 전기차 시장 주도할 것
 
   증권사 리서치 센터들은 여전히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도입부라고 보고 있다. 또 이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완성차 업체보다는 배터리 업체일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SK증권 리서치센터는 “자동차 업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전기차의 대중화를 유도한 것은 테슬라지만, 테슬라가 보유한 기술력이 공개되지 않았고 계속 전망치만 내놓아 소비자들이 실망하고 있다”고 봤다.
 
  지난 3월에 세계 최대 완성차 회사인 폴크스바겐이 배터리 시장 참전을 선언했지만, 여파는 미미했다. IBK투자증권은 “폴크스바겐의 배터리 시장 진출로 기존의 배터리 업체들이 처음에는 타격을 입는 듯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았다. 폴크스바겐이 진출한다고 해도 여전히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 완성차 진영의 배터리 시장 진입은 오히려 시장 파이를 키우는 선순환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