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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초대형 복합경제위기가 온다

민간 경제연구원 소속 등 5명의 전문가에게 물었다 - 디플레이션 시대 오나

일본式 장기 불황 아니지만 정부 발표처럼 낙관할 수 없어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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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現 소비자물가지수가 소비자의 소비 패턴 변화 반영 못 하는 측면도
⊙ 디플레이션 확률 낮아… 物價 상승률은 계속 낮아질 듯
⊙ “일본처럼 부동산 가격이 4분의 1 토막 나지 않을 것”
⊙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은 가파른 초고령화 추세
⊙ ‘제로금리 시대’ 찾아올 수도
2019년 1월 30일 서울 종로에 있는 한 상가에 임차인을 구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경기 불황 탓에 최근 종로, 강남 등 서울 핵심 상권에서도 비어 있는 상가가 늘고 있다. 사진=조선DB
  베네수엘라의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13만%에 달했다. 2016년 물가상승률은 274%, 2017년에는 862%였다. 사상 초유의 인플레이션이다. 최근 베네수엘라의 한 상점에서는 2.4kg짜리 생닭 한 마리가 한화(韓貨)로 2500만원에 거래됐다고 한다. 베네수엘라의 지폐는 종잇조각으로 전락했고, 화폐를 접어서 만든 종이공예 용품이 시장에 나올 정도다.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은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에는 그래도 익숙한 편이다. 인플레이션은 상품과 서비스의 전반적인 가격 수준을 의미하는 물가(物價)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이와 반대로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도 있다. 최근 우리 경제에 짙게 드리워 공포를 자아내고 있는 ‘디플레이션’이 그것이다. 비단 몇 가지 품목의 가격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제품 가격이 꽤 오랫동안 내려가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에서는 “디플레이션이 절대 아니다”고 반박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디플레이션(deflation)의 영어 첫 글자를 따서 ‘D의 공포’라고 표현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물가가 내려가면 같은 돈으로 더 많은 물건을 살 수 있으니 좋은 현상이 아니냐고 할 수 있다. 실상은 다르다.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의 말이다.
 
  “디플레이션은 오늘 1만원을 주고 산 물건이 내일은 9900원으로 내려가는 현상입니다. 모레에 9800원, 다음 날은 9700원이 되는 현상입니다. 이렇게 될 경우 소비자들은 집이나 자동차 같은 고가(高價)품 구매를 늦춥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건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소비를 멈추면 기업의 제품은 팔리지 않고, 따라서 기업 매출이 줄어듭니다. 기업은 가격 하락이 멈출 때까지 추가 투자를 하지 않고 상황이 지속됩니다. 결과적으로 기업 수익(受益)이 줄고, 기업은 신규 고용을 하지 않거나, 결국 인원 감축으로 이어집니다.”
 
  ― 악순환이 이어지는 거군요.
 
  “소비와 투자 감소는 결국 전반적으로 가격 하락을 만들어내어 실업과 소득 감소로 이어집니다. 실업으로 인해 구매력을 잃게 되어 다시 물가가 떨어집니다. 이른바 ‘디플레이션 소용돌이’에 빠지는 겁니다. 디플레이션이 다시 디플레이션을 만드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겁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현상이 디플레이션 소용돌이의 단편적인 예입니다.”
 
  이런 이유로 일부에서는 디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보다 훨씬 위험한 현상이라고 하고, 디플레이션은 사회적인 공황 상태를 유발한다는 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불안감이 ‘우리가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이웃 나라인 일본이 겪었고, 비교적 인플레이션에 익숙한 우리가 사상 처음으로 겪게 될지 모르는 현상인 것이다.
 
 
  디플레이션 우려 촉발시킨 ‘소비자물가 상승률’
 
2017년 1월 13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8%에서 2.5%로 낮췄다. 이 총재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이보다 낮은 2.1%로 하향 조정했다.
  디플레이션 논란을 촉발시킨 것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다. 소비자물가지수는 도시 가계의 평균적인 생계비 내지 구매력의 변동을 측정하는 데 유용한 물가지수다. 소비자물가지수가 10% 상승하면 종전의 소득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 수량이 10% 줄어든다. 소비자가 종전의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생계비가 10% 더 필요하다는 소리다.
 
  통계청이 지난 9월 1일 발표한 ‘2019년 8월 소비자물가 동향’에서 소비자물가는 전년 같은 달보다 0.4% 하락했다. ‘소비자물가가 이달 들어 몇 % 상승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해온 우리로서는 생소하다. 더구나 ‘소비자물가’가 공식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1965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정부는 비교 대상인 2018년 8월의 물가가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에 지난 8월의 물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졌다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물가가 8월에 1.4%, 9월에 2.1%로 높게 올랐기 때문에 올해 물가가 유독 크게 떨어졌다.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국내 민간 경제연구원 2곳과 대형 증권사에서 거시경제 파트를 담당하는 3명의 애널리스트 등 5명의 전문가에게 물었다. 응답자 전원은 “우리나라가 당장 일본과 같은 디플레이션에 접어들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일시적이라는 정부의 설명에 일리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앞으로도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은 하향 국면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정부 발표처럼 낙관할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의 말이다.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분명 이례적이지만 당장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수준은 아닙니다. 다만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 이외에 근원물가지수(일시적인 공급 충격의 영향을 제외한 기초적인 물가상승률)가 낮아졌습니다. 이것이 지속되다가 결국 마이너스로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걱정하는 것입니다.”
 
  ―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1965년 이후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의미가 있습니다. 디플레이션은 일본을 제외하고 과거 사례가 없습니다. 대만에서 일부 나타난 적은 있지만 흔한 일은 아니고요. 특히 우리나라는 디플레이션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근대 통화제도가 확립된 후에 흔히 일어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문제는 단순히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앞으로도 계속 물가가 빠질 것이라고 기대해서 소비를 하지 않고 이에 기업이 투자를 늦춰서 악순환이 지속되는 겁니다.”
 
 
  “디플레이션을 인정하는 정부는 없다”
 
서울시 강남구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고객들이 장을 보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이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1965년 이후 처음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의 얘기다.
 
  “물가상승률이 올해 8월에 전년 동월(同月)보다 마이너스 0.04%, 9월에 마이너스 0.4%를 기록했습니다. 10월에도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의 발표처럼 지난해에 물가 상승이 높았기 때문에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에는 플러스로 돌아설 것으로 보입니다.”
 
  ― 디플레이션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비자물가지수 외에 ‘핵심물가’(주변 환경에 민감하지 않은 물품을 기준으로 산출하는 물가)라는 것이 있습니다. 계절적 요인을 받는 농수산물 등을 제외한 물가인데 상승률이 계속 둔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공급 과잉 이외에 소비 측의 수요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소비자 동향 지수’에서도 기대 인플레이션이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 어떤 의미입니까.
 
  “소비자들의 ‘기대 인플레이션’이 떨어진다는 것은 일반 소비자들이 향후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고 느끼는 겁니다. 물가가 계속 오를 것으로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죠. 반대로 말하면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부의 발표처럼 ‘앞으로 디플레이션은 없다’고 낙관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 정부는 ‘절대 없다’고 하는데요.
 
  “전(全) 세계 어느 정부든 디플레이션을 인정하는 정부는 없습니다. 물가는 사람들의 생각대로 움직입니다. 경제 이론에 있는 ‘자기 충족적 예언’입니다. 물가가 계속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결국 그 방향으로 간다는 뜻입니다. 물가가 떨어지면 소비를 하지 않고, 결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줍니다.”
 
  박희찬 미래에셋 글로벌 자산배분팀장은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한국은행의 말처럼 일시적으로 물가가 낮아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코어 인플레이션(근원물가 혹은 핵심물가)이 1%대를 유지하고 있다”며 “목표가 2%대 성장이었기 때문에 1% 상승률은 편하게 낙관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얘기다.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인데 전 세계적으로 흔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버블 붕괴,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당시에 물가가 3분의 1 토막 난 것이 거의 유일합니다. 수요 자체 감소로 인해 물가가 떨어지는 것은 대체로 금융위기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현재 금융위기가 터질 만한 상황은 아니기에 디플레이션을 심각히 우려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잠재된 상황”
 
인천공항에서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 소비자가 내구재 소비를 줄이고 서비스 소비의 비중을 늘리는 것이 ‘소비자물가 동향’에 반영되어 있지 않아 통계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디플레이션 위기’를 불러일으킨 ‘소비자물가 상승률’ 통계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시한 의견도 있었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얘기다.
 
  “소비자물가는 소비자 구매 품목을 5년에 한 번씩 정해서 결정합니다. 가령 돼지고기를 기준으로 지난 5년 동안 매달 (두 번씩) 얼마나 올랐고 내려갔는지를 묻는 방식입니다. 소비자물가는 소비자의 소비 패턴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가령 소비자는 더 이상 돼지고기를 구매하지 않는데, 아직도 이를 기준으로 분석하는 식(式)입니다.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이 바뀌었는데 여전히 5년 전 데이터를 기준으로 분석하는 방식이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 좀 더 설명을 해주신다면요.
 
  “소비자들은 내구재를 줄였고, 쉽게 말해 세탁기를 더 이상 사지 않고 그 돈으로 맛집을 다니고 여행을 다닙니다. 그것이 단순 가격의 변화가 아닌데 소비 패턴 변화를 소비자물가지수가 전혀 반영시키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경제 패턴은 기업 투자와 소비가 같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2010년 이후에 나타난 현상을 보면, 전통적인 설비 투자가 부진하지만 소비는 위축되지 않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라면 기업 투자가 위축되면 소비의 위축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업의 설비 투자와 소비의 연결 고리가 끊어진 것은 소비 행태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 전 세계적인 추세입니까.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하는 등 내구재 소비 비중을 줄이고 서비스(맛집 탐방, 여행 등) 소비의 비중을 늘리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따라서 ‘설비 투자와 생산이 줄었기 때문에 곧 경기 침체가 올 것이다’라는 식의 전통적인 분석 방법을 적용하는 것은 틀릴 위험이 높습니다. 오히려 서비스 소비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합니다. 저는 디플레이션보다는 오히려 향후 인플레이션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합니다.”
 
정부의 지하철, 철도 등 공공재 가격 유지가 물가를 떨어뜨리는 데 일조했다는 의견이 많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 왜 그렇습니까.
 
  “철도공사, 지하철공사 등의 수익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습니다. 공기업이 적자를 본다는 것은 적정 가격을 소비자들로부터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공공재의 가격을 물가 안정 등의 이유로 누르고 있는데, 이것이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공기업의 적자 지속으로 인해 사내 유보금이 줄어드는 것을 공사 노동자들이 계속 지켜보고 있을 리 없습니다. 결국 언젠가는 공공재의 가격이 적정한 수준으로 올라야 하는데, 그럴 경우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디플레이션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압력이 잠재된 상황이라고 분석합니다.”
 
  대형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의 얘기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공기업의 가격 인상을 막아 물가 상승을 압박하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전기, 수도, 지하철 요금을 올리지 못하고, 재정을 통해서 학교 급식비를 충당하고, 의료비는 건강보험에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물가가 오르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정책에 따라 물가를 낮추는 것이 상승률 0.3~0.4%를 좌지우지한다고 분석합니다. 한국전력은 원가(原價) 회수를 못 하는 상황에 이르렀는데, 이 같은 비정상적인 행태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와 우리는 달라
 
  전문가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우리가 당장 디플레이션 시대를 맞이하거나,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서 최근 낸 보고서다.
 
  〈일본과 같은 디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성장률 수준이 높고 자산시장이 안정되어 있어 90년대 일본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고령화 속도 등 과거 일본과 유사한 구조적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어 속단하기는 이르며, 향후 지속적인 점검과 필요 시 선제적 대응도 준비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의 얘기다.
 
  “일본이 장기 침체에 빠진 것은 우선 부동산 버블이 붕괴됐고, 이로 인해 디플레이션이 촉발된 것이 원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동산 버블이 크지 않기 때문에 그럴 위험이 낮습니다.”
 
  ―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하는데요.
 
  “강남 집값이 높아졌다 하는데 통계상 증가는 크지 않습니다. 특정 아파트가 9억원에서 18억원이 됐다고 하지만 그래 봐야 2배입니다. 오르는 폭이 높지 않습니다. 서울의 집값 자체가 높기 때문에 20~30%만 올라도 크게 느껴지지만 1990년대, 2000년대 초와 비교할 때 증가율은 높지 않습니다. 일본처럼 집값이 짧은 시간에 4분의 1 토막이 나고, 이로 인해 소비가 줄어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확률은 낮습니다.”
 
  ― 그럼에도 요즘 불안해하는 이유는 뭘까요.
 
  “우리가 디플레이션을 겪은 경험이 전혀 없고, 물가가 마이너스로 돌아선 적도 없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일본은 짧은 기간 집값이 8배 정도 올랐었는데, 우리는 2배 정도 올랐다. 일본과 같이 갑자기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거나 장기 불황에 들어설 확률은 낮아 보인다”며 “우리나라의 성장률 상승이 저조하다 보니 지금처럼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일은 종종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박희찬 미래에셋 글로벌 자산배분팀장의 얘기다.
 
  “일본은 집값이 상승하는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과정을 겪었습니다. 담보를 원본 가격 이상으로 잡아주고, 마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미국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집값을 대출받은 대출자들이 원리금을 갚지 못해 금융기관의 대출금 회수가 불능 사태에 빠져 손실이 발생해 기업이 부실화됐던 사태)와 유사한 형태가 나타났습니다. 한국의 경우 주택 시장이 버블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말하기 힘듭니다. 우리는 담보 대출 규제(LTV와 DTI 등)가 있었습니다. 일부 소비자가 제2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주택을 샀다고 하지만 비중이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국의 부동산 가격 버블은 일본처럼 심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일본처럼 서서히 죽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성장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물가상승률도 함께 떨어지는 시대가 온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고령화, 일본·유럽보다 빨라
 
  전문가들이 1990년대에 일본에서 있었던 부동산 버블 붕괴가 우리에게는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낙관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 경제에 근본적으로 드리운 ‘저성장・저물가 시대 도래’ 때문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가 일본보다 분명히 나쁜 것은 저출산・고령화의 속도다. 출산율은 2000년부터 계속 떨어져왔는데, 2000년대 중반 이후 1.3명이었다가 현재 1명 이하로 떨어졌다. 그 과정이 너무 빨랐기 때문에 성장의 힘이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형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의 말이다.
 
  “사회가 고령화되면 성장률이 떨어지고, 물가가 하락합니다. 인구의 고령화는 일본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이들 국가보다 훨씬 빠릅니다. 고령화로 인해 급격하게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상황이 곧 올 수 있습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의 최근 발표 내용이다.
 
  〈고령 인구가 증가하면서 생산성 저하로 경제 성장이 낮아지고 수요가 둔화되어 저물가를 유발했다. 고령 인구는 생산가능인구에 비해 소비 성향이 낮아,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민간 소비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행은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연평균 0.5%씩 하락할 경우 장기 인플레이션이 연간 0.01~0.03% 하락할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 기업 안일했다”
 
서울시 동대문구에 위치한 산부인과의 신생아실. 초저출산은 향후 우리 경제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물가도 올라간다. 경제가 성장하는데 물가가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그 때문에 물가 하락과 경제성장률(GDP)은 같이 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9월 29일, “경제성장률 2.2% 달성이 녹록지 않다”며 “내년에도 불확실성이 크다. 내년 얘기는 조금 더 판단을 해보고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마저도 지켜질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분위기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의 얘기다.
 
  “경기가 계속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순환적인 사이클보다는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능력 자체가 낮아지고 있습니다. 세계가 교역 중심에서 내수 중심으로 바뀌고, 무역 장벽이 높아진 것은 수출 주도 국가인 우리에게 타격이 됩니다. 사상 최저의 출산율도 우리 경제를 발목 잡을 것입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의 얘기다.
 
  “GDP가 낮아지는 것은 전 세계적인 추세이나, 평균적으로 2.5%는 성장했어야 맞다고 봅니다. GDP는 중장기적 추세와 단기적 추세가 있는데 둘 다 좋지 않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산업 경쟁력이 취약해지면서 예상보다 성장률이 빠르게 저하됐습니다. 이는 기업들의 안이한 태도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새로운 산업에 대한 투자, 세계 변화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못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GDP가 2.5%(당초 예측률)에서 2.1%로 떨어진 것은 단기적으로 정부 측이 요인으로 보입니다. 우리 산업의 체력이 약해졌는데 이들을 키울 보완책을 쓰기보다 잘못된 처방을 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위기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군요.
 
  “주력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가장 심각합니다. 저출산으로 인해 나중에 일을 할 수 있는 절대 인구 자체가 줄어든다고 생각을 해보시죠. 기업이 무엇을 하려고 해도 사람이 없으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성장률 2% 못 미칠 듯
 
  박희찬 미래에셋 글로벌 자산배분팀장의 얘기다.
 
  “전 세계적으로 하락 국면에 있습니다. 요즘은 추세적 요인과 순환적 하락이 겹쳐져서 유독 낮은 구간입니다. 잠재성장률은 노동과 자본 투입, 생산성으로 측정되는데 전부 좋지 않습니다. 노동은 생산가능인구의 문제인데, 한국의 저출산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해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 노동의 질(質)을 높여서 그 부분을 메울 수는 없을까요.
 
  “생산성을 높이는 문제인데 별로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일본은 대량 생산(기계를 이용해 동일한 제품을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일) 분야를 한국에 넘겨줬지만, 산업 경쟁력에서 글로벌 톱을 만든 분야가 많습니다. 독일의 지멘스는 넘버 원 기술력으로 먹고산다고 볼 때 분명 개인의 노동 투입 문제는 아닙니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이 얼마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안주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 노동의 양적(量的)인 부분도 기대할 수 없고, 질적 부분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군요.
 
  “기업이 선진국에 진출해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을 통해 스스로의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보다는 신흥국에 진출해 현재의 경쟁력을 파는 쉬운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이 결정적인 문제였다고 봅니다. 산업 경쟁력을 키울 시간에 갖고 있는 성과로 안주하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 진출한 화장품의 경우, 처음에는 중국보다 퀄리티가 높아 소비가 가능하지만, 결국 중국 로컬 브랜드가 품질을 따라잡고, 또 아예 초고가는 유럽 제품을 씁니다. 이런 상황이 올 것에 대해 우리 기업들이 너무 안이했다고 봅니다.”
 
  ― 앞으로 경제성장률은 어떻게 될까요.
 
  “과거만큼 올라가지 않을 겁니다. 10년 뒤에 ‘그나마 2%대였을 때가 좋았다’고 말하는 상황이 벌어질 겁니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수석이코노미스트의 얘기다.
 
  “한국은 재정 지출을 늘려도 투자 부진으로 인해 GDP가 2%대에 못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2012~2014년 글로벌 경기 사이클에서 한국 수출은 완전히 소외됐고, 향후에 글로벌 경기 확장세가 나타나도 한국의 수출이 증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3년 중화학공업을 선언한 이후에 한국의 산업 구조는 철강, 조선, 비철금속, 전자, 석유화학, 기계 등 6개 중화학공업에 집중됐습니다. 이제 소비자들은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 등을 사지 않는데, 여전히 우리는 거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습니다. 스마트폰, 가전제품의 사이클이 끝났는데 여전히 거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저는 한국이 이미 ‘잃어버린 7년 차’라고 생각합니다.”
 
  ― 왜 하필 7년입니까.
 
  “제조업의 생산과 수출이 최고점을 찍었을 때는 2012년이었습니다. 2013년 가을 맥킨지는 한국 경제를 두고 ‘냄비 속 개구리’라 했습니다. 냄비가 서서히 끓어 죽고 있는 상황을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표현이었습니다. 5년 뒤에는 ‘상황은 같은데 물의 온도가 올라갔다’는 식으로 표현했습니다.”
 
  ― 우리가 터닝포인트를 놓쳤을까요.
 
  “단순히 경기 사이클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경쟁력 자체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텐데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그때마다 중국 탓을 했고, 버텨보자는 전략을 써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로금리 시대가 온다면?
 
2017년 11월 3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삼성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금통위원들의 결정에 따라 향후 우리나라의 금리 향방이 정해질 것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의 얘기다.
 
  “성장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것이 금리이기 때문에, 사실 물가가 마이너스이면 금리도 마이너스인 시대가 올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한때 물가가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마이너스 금리 얘기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 마이너스 금리라면, 은행에 돈을 맡기면 오히려 돈의 가치가 줄어든다는 건가요.
 
  “돈을 맡길 때 수수료를 떼는 것을 뜻합니다. 자산의 안전 보관에 대한 비용이죠. 일반인은 현금을 집에 보관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마이너스를 감수하고라도 은행에 맡기는 겁니다. 그런 상황이 온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 진입할 수 있다는 얘기들도 나온다는 소리입니다.”
 
  익명을 요청한 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얘기다.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벌어진 2008 ~2011년 종종 그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수요가 서서히 떨어져서 경기 침체가 생긴 것이 아니라 금융상의 위기로 급격한 위기를 맞았을 때였습니다. 우리 경제가 당장 5년 내에 ‘제로금리 시대’로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물가하락률은 1% 초중반에서 계속 움직일 것이고, 결국 정부 입장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나올 만한 얘기입니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수석이코노미스트의 얘기다.
 
  “요즘 해외에서 화두인 현대화폐이론(MMT·Modern Monerary Theory)이 있습니다. 주류 경제학은 ‘정부의 지출이 세수(稅收)를 넘어서면 안 된다’고 하는데, 이 이론은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가 화폐를 계속 발행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미국의 민주당 의원 사이에서 동조하고 있는 편입니다. 주류 경제학이 화폐를 시장에서의 가치 교환 수단으로 보는 반면, MMT는 정부가 조세를 거두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겁니다. 정부가 얼마든지 화폐를 발행해도 된다는 주장입니다. 일본이 이리로 갔고, 유럽도 가고 있습니다.”
 
  ― 이 이론이 우리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겁니까.
 
  “정부가 계속 화폐(국채)를 발행하려면 금리가 제로여야 합니다. 금리가 1%대만 돼도 정부 입장에서 지출해야 할 이자 부담이 크니까요. 결국 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 중앙은행은 계속 윤전기를 돌려서 화폐를 찍고, 정부는 국채를 발행하고, 돈은 풍성해집니다. 세금을 더 걷지 않아도 원활하게 경제가 굴러가는 겁니다. 정부 부채율이 높아지지만 ‘나중에 갚지’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미국 버니 샌더스의 중앙은행이 국채를 찍어 국민기본소득으로 뿌린다는 둥, 대학 무상교육 등이 이런 차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과도한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지만, 미국은 기축 통화국이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 우리는 기축 통화국이 아니라서 전혀 설득력이 없는 이론 같은데요.
 
  “우리는 화폐를 찍는 대로 인플레이션이 될 상황이 높지만, 일부 정부 측 인사의 반응을 보면 이런 식의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의 말이다.
 
  “저성장・저물가 시대가 계속되면 경기가 지속적으로 악화됩니다. 일반 가계는 자기가 버는 것보다 많이 쓰면 빚이 생기고 갚아야 하지만, 정부는 갚아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그리스 국가 부도 사태가 있었습니다. 과도한 복지 예산 정책, 무절제한 연금 지급, 만성적인 실업 등으로 인해 결국 국가 부도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사태를 보면서 많이 놀라기도 하고, 일종의 도그마에 빠졌습니다.”
 
  ― 국가의 적정 부채비율에 대한 결론은 없지 않습니까.
 
  “답이 없습니다. 우리의 국가 부채가 39% 정도, 일본이 240% 정도입니다. 정확한 답이 없기 때문에 경기가 계속 악화되는 상황에서 국가가 어떤 형태로 재정정책을 가져갈지 주목됩니다.”
 
  저성장・저물가, 그리고 일부에서 새어나오는 제로금리에 대한 우려가 우리가 여태 겪지 못한 새로운 시대로 끌고 가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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