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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실장이 쓴 《왜 분노해야 하는가》 심층비판

왜곡된 통계, 일방적 해석과 선동이 여과 없이 文 정부 경제정책의 經典이 되었다!

글 :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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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주장, 실상은 怪談 수준
⊙ “대기업이 움켜쥐고 있는 소득을 분배해야” 주장의 함정
⊙ ‘왜곡된 현상 진단’ ‘외곬 원인분석’이 결합된 장하성의 한국 불평등론
⊙ 경제는 생산과 분배가 적절한 화음을 내는 것인데, 분배에만 치중
⊙ 비정규직 문제는 DJ 정부 때 노조 지도자들이 ‘정치논리’로 찬성하면서 시작
⊙ 청년들이 분노해야 한다면 현실 왜곡하는 장하성의 진단과 처방에 분노해야

신장섭
1962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 박사 / 기획재정부 장관 자문관, 한국금융연구원 초빙 연구위원, KDI정책대학원 초빙 교수. 현 싱가포르국립대학 경제학 교수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고려대 교수 시절인 2015년에 출간한 《왜 분노해야 하는가》 표지.
  소득주도성장 정책 강행과 통계청장 경질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2015년 고려대 교수 시절 《왜 분노해야 하는가》를 출간했다. 이 책의 요지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이고, 그렇게 된 원인은 대기업이 이익을 너무 많이 갖고 가기 때문이고, 따라서 이에 대해 제대로 분노하고 혁명적 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상식과 너무 어긋나서 비판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2016년에 출간한 본인의 저서 《경제민주화… 일그러진 시대의 화두》의 결론부에서 국내에 만연한 ‘정서법’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서법에 영합한 대표적 사례로 장 교수의 책을 간단하게 언급했을 뿐이다. 그러나 장 교수는 그후 청와대 정책실장에 발탁됐고 문재인 대통령 정부의 핵심 경제이론가이자 최고위 집행자가 됐다.
 
  정부 출범 후 장 실장의 ‘철학’에 따라 1년 이상 경제정책이 집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고용과 분배가 나빠진 것에 대해 그는 “최근 고용·가계소득 지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속도감 있게 추진하라고 역설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9월 1일 열린 당·정·청(黨政靑) 전원회의 인사말을 통해 “양적 성장만 추구하는 가운데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가 극심해졌고 이제는 성장동력마저 잃게 됐다. … 배제와 독식의 경제가 아니라 공정과 상생의 경제, 소수가 부를 독점하지 않고 다함께 잘사는 경제를 이뤄야 한다”며 장 실장을 전폭 지원하는 발언을 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며 이번 가을 정기국회를 소득주도성장을 안착시키기 위한 “100일 전투”라고까지 명명했다.
 
  그러나 경제정책이 지나치게 정치화되고 진영논리에 갇히면 실질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크고 작은 경제 이슈들이 끊임없이 정쟁(政爭)거리로 비화하고 실제로 필요한 대책은 마련되지 못하면서 경제가 망가지고 국민의 삶이 피해를 입게 된다.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주요 이슈들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대부분 다루어져 있다. 장 실장이 경제정책의 결정과 집행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그의 생각이 당·정·청의 주요 인사들과 공유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주요 사안들을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해 보고 시급하게 건설적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잘못된 출발점: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怪談
 
장하성 실장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인 2015년 관훈토론회에 참석해 “우리나라 소득 불평등은 세계 최악”이란 취지의 주장을 했다. 사진=뉴시스
  장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해진 나라 1’과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해진 나라 2’의 두 개 장(章)을 할애하면서 한국의 ‘극심한’ 불평등을 강조한다. 한국이 세계에서 불평등도가 가장 심각하다고 결론 내린 연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세계 어디를 뒤져보아도 찾을 수 없다. 장 교수가 ‘독보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괴담(怪談) 수준이다. 초등학생이 봐도 틀리게 국제비교를 한 결과이다.
 
  장 교수의 주장은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 국가 중에서 한국이 4번째로 임금소득이 불평등하다는 통계에서 출발한다. 상용 근로자의 임금을 기준으로 최하위 10% 대비 최상위 10%의 임금비율을 비교한 수치이다. 그리고 정확한 비교 수치를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은 임시직 노동자의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높고, 상용 근로자와 임시직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크다”며 따라서 “모든 노동자의 임금 불평등은 (OECD 국가 중 상용 근로자 임금 불평등도가 가장 높은) 미국의 수준에 근접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짐작’에서 어떻게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라는 결론으로 비약했는지에 대해서는 책 본문에 아무런 설명이 없다. 단지 장(章) 제목에서 이 결론을 강조하고 책 중간중간에 이렇게 단정지을 뿐이다. 그 후에 이어지는 불평등 원인 분석과 대안은 이 비약적 결론 위에 세워져 있다.
 
  이렇게 핵심 통계를 처리하는 것은 학자로서 정직하지도 못하고 비겁한 일이기도 하다. 만약 초등학생에게 “제일 잘사는 나라 33개국 중에서 꼴찌를 했으면, 전세계 196개국 중에서도 꼴찌다”라는 문장을 주고 정오(正誤)를 O, ×로 답하라고 하더라도 대부분 ×를 줬을 것이다. 정직한 학자라면 이 정도의 현상 분석을 놓고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라고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장 교수는 이 말을 제목에서 강조하고 책 중간에 사용하되, 본문의 분석에서는 설명하지 않는 ‘이중 플레이’를 했다.
 
 
  통계청장 경질 불러온 통계 왜곡(?)
 
지난 8월 30일 자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 ‘장하성, 통계 갖고 장난 말라’는 과거 장 실장의 통계 분석 오류를 지적했다.
  숫자를 이렇게 멋대로 다루어서 원하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장 교수가 청와대 정책실장이 되어서도 계속된 것 같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가 지난 8월 30일 게재한 ‘장하성, 통계 갖고 장난 말라’는 제목의 글을 보자. 장 교수는 정책실장으로 임명되기 나흘 전인 2017년 5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1990년부터 2016년까지 26년간 국내총생산(GDP)이 260% 늘어날 동안 기업 총소득은 358%, 가계 총소득은 186% 늘어났다’는 한국은행 통계를 인용하면서 ‘가계 평균소득은 90%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통계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가계 총소득(186%)보다 가계 평균소득(90%)이 훨씬 적게 늘어난 것은 소득 불평등이 확대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통계청은 반박 자료를 내고 두 통계는 작성 범위와 개념이 달라 직접 비교하는 것이 부적절하며, 두 수치의 차이를 가계소득 계층 간 불평등 확대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밝혔다.
 
  이정재씨는 그 후 1년여가 지났지만 장 실장이 “‘통계 장난’을 그만두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지난 8월 26일 청와대 기자간담회에서 장 실장은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가계 총소득은 69.6% 늘었지만 가계 평균소득은 31.8%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강조했다. 이정재씨는 “기간을 26년에서 17년으로 줄였을 뿐 똑같은 ‘통계 왜곡’을 되풀이한 것이다. 1년 전보다 죄질(罪質)이 더 나쁘다. 당시엔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이번엔 뻔히 알면서 했다. 학자 신분도 아니다. 이 정부의 경제철학을 총괄하는 자리다”라고 비판했다. 또 황수경 전 통계청장의 경질은 장 실장의 페이스북 글을 반박한 통계청 보도자료를 삭제해 달라는 청와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던 것이 “또 다른 이유일 수 있다”고 밝혔다.
 
 
  외곬 원인분석: “이러한 구조의 장본인은 대기업”
 

  장하성 교수는 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라고 그렇게 강조했을까? 분배를 보는 지표는 여러가지이다. 최종 소득분배를 볼 수도 있고, 보조금 등 이전(移轉)소득을 제외한 소득분배를 볼 수도 있고, 재산분배를 볼 수도 있고, 장 교수처럼 임금소득분배를 볼 수도 있다. 다른 분배지표들을 보면 OECD국가들과 비교하더라도 한국은 중위권에 들어간다. 전세계 196개 국가들과 비교하면 한국은 주요 분배지표에서 계속 중상위권에 들어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경제개발 기간 중 ‘고속성장과 괜찮은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나라는 한국과 대만이 유이(唯二)하다. 동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 중 싱가포르와 홍콩은 고속성장은 달성했지만 남미(南美)에 근접하는 높은 불평등도를 유지했다. 지금 경제 기적을 이루고 있는 중국과 인도의 불평등도도 굉장히 높다. 이러한 국제비교 지표들은 구태여 전문 학술연구서들을 보지 않더라도 ‘세계은행’, ‘위키피디아’, ‘CIA 팩트북(Factbook)’ 등 인터넷 검색만 해도 누구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통계이다.
 
  장 교수가 다른 통계들을 제쳐 놓고 임금소득분배에 집중한 것은 그의 불평등 원인 분석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기업은 살고, 가계는 죽어 가고 있다!” “제조업의 순이익 비중은 노동자 분배의 두 배다!” “이러한 구조의 장본인은 대기업이다”는 등의 문구들은 그 원인을 대기업의 불평등한 임금소득분배에서 찾는 것이다.
 
  장 교수가 지적한 대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민총소득 중 가계소득 비중은 줄어들고 기업소득 비중이 늘어났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또 대기업 내에서의 임금격차, 대기업 간의 임금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격차가 커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도 한국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되어 있다.
 
  그러나 장 교수는 이렇게 된 원인을 대기업에서만 찾는 외곬 분석을 한다. 대기업이 자신의 이익만 높이기 위해 중소기업들을 착취했고 중소기업은 생존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낮추고, 근로자 임금도 낮추고, 비정규직을 많이 쓰게 되니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커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재벌 대기업이 잘되면 중산층과 서민 노동자의 삶도 나아지게 된다는 ‘낙수효과’가 허구”이고 이 현실을 잘 모르는 “한국사회는 재벌의 총체적 지배에 ‘분노하지 않는 노예 상태’”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분석은 자연스레 가장 성공한 재벌기업에 대한 비판과 ‘분노’로 연결된다. 그는 삼성전자 직원의 고속 임금상승은 “삼성전자만의 경쟁력이 아니라 수많은 하청업체의 희생으로 가능했다”면서 “삼성전자가 잘되면 삼성전자 직원만 잘되는 것이었으며, 삼성전자 직원만 잘되었기 때문에 그보다 몇 배나 많은 하청 중소기업 직원이 성장의 혜택에서 제외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제조업의 순이익 비중은 노동자 분배의 두 배다!”라는 말은 얼핏 보면 노동자에게 준 임금의 두 배를 기업이 순이익으로 갖고 갔다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한국은행의 2013년 〈기업경영분석〉에 나오는 전체 산업이 번 이익에서 제조업이 기여한 비중(‘기업 순이익의 산업별 비중’)이 86.9%이고, 전체 근로자에게 지급된 임금 중 제조업이 차지한 비중(‘기업의 노동자 분배 산업별 비중’)이 37.3%라는 수치를 비교해서 ‘두 배’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제조업은 장치산업이고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 반면 서비스업은 대부분의 비용이 임금으로 들어간다. 제조업이 전체 임금지급에 기여한 비중보다 전체 이익에 기여한 비중이 높은 것은 아무 문제될 것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장 교수는 이것이 마치 제조업체들이 노동자들에게 주는 것보다 ‘두 배’나 많은 이익을 가져간 듯이 처리했다. 속 내용을 파악하지 않은 사람들은 글 중간에 혹은 그림 제목에 느낌표까지 붙인 이 문장만 보고 기업에 ‘분노’하게 된다.
 
 
  외곬 ‘재벌원죄론’은 경제민주화론자들의 공통점
 
지난 8월 말 황수경 통계청장(사진)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교체되자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과 어긋나는 통계 때문에 교체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사진=뉴시스
  이러한 ‘외곬 재벌원죄론’은 국내 ‘경제민주화론자’들의 공통점이다. 예를 들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012년 한성대 교수 시절 출간한 《종횡무진 한국경제》에서 “재벌계 대기업들이 고용과 생산을 직접 확대하기보다는, 중소기업들을 하도급거래 관계에 배치하고 이를 통해 소재·부품 조달 및 노무(勞務)관리의 ‘간접’ 지배 체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대신 대기업들은 핵심공정 및 연구개발 분야에 자원을 집중 투입함으로써 생산성 우위를 계속 확대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재벌은 독점자본으로 성장했다. 동시에 재벌은 여전히 천민자본의 성격을 완전히 탈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도급(下都給) 거래 관계의 불공정성 문제와 노무관리에서의 전근대성 문제가 덧씌워졌다. 이것이 1990년대 이래 기업규모의 영세화와 기업규모별 양극화 현상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한국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난 국내적 요인”이라고 주장한다(당시 김상조 교수 또한 장 교수와 마찬가지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더 심각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국제비교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대기업 원죄론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벌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착취’를 상정한다. 부자가 돈을 많이 벌면 그 부자의 실제 역량이나 돈 번 방법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누군가를 착취했기 때문일 거라고 지레 짐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상위 대기업들의 세계적 성공 과정을 보면 국내 중소기업 ‘착취’ 없이 성공 자체만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벌였을 개연성이 높다. 납품업체에 대해 설사 ‘착취’가 일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 대기업의 성공을 좌우하는 요인이 될 정도라고 얘기할 근거는 별로 없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반도체에서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데에 하청업체 착취라는 것이 무슨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삼성반도체의 하청업체 중에는 국내 기업이 일부 있더라도 상당수는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장비 회사, 소재 회사들이다. 삼성과 이들 간에는 단가를 깎거나 올려받기 위해 치열한 ‘네고(협상·negotiation)’가 벌어질 뿐이다. 삼성 스마트폰의 세계적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주요 부품의 상당 부분은 삼성 계열사들이 공급한다. 가장 비싼 부품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오래도록 퀄컴 칩을 사용해 왔고, 몇 년 전부터 자사 칩 장착을 늘리고 있다. 국내 중소 하청업체가 공급하는 부품들이 삼성폰의 성능이나 생산비용에서 핵심적이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설령 삼성전자가 이들에 대해 ‘착취’를 했다고 한들 장 교수가 단정하듯이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수많은 하청업체들의 희생으로 가능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분배악화의 진짜 원인은?
 
김대중 정부는 IMF 체제 당시 외환위기의 원인이 ‘국내 대기업의 과잉투자에 있다’며 기업투자 억제하는 대기업 구조조정에 착수했었다. 사진은 1999년 12월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미셸 캉드쉬 IMF 총재와 이야기를 나누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오른쪽). 사진=조선DB
  어느 문제든 해결책을 찾으려면 현상과 원인을 제대로 분석해야 한다. 한국 분배문제의 현상을 먼저 보자. 어느 지표를 보더라도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지표가 안정되거나 오히려 개선되는 추세를 보였지만 그 이후에 나빠지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장 교수가 애써 강변하듯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수준’으로 나빠진 것이 아니다. 전세계에서 중상위권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
 
  분배악화의 원인을 보자. 1997년이 분배문제의 변곡점이었다면 그때 어떤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가 분배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장 교수는 여기에서도 외곬 분석만을 한다. 이때부터 성장에 따르는 ‘낙수효과’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낙수효과 상실의 근본 원인은 대기업이 번 돈을 중소기업과 근로자들에게 제대로 ‘분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반복한다.
 
  그러나 상황을 폭넓게 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하에서 진행된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과 개인, 정부의 행태가 대폭 변화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히 분배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성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00년대에 한국 경제성장률은 1990년대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경제 성숙화에 따른 자연스런 성장률 감소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큰 폭으로 갑자기 떨어졌다.
 
  당시 IMF와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의 원인이 국내 대기업들의 ‘과잉투자’에 있다고 진단하고 ‘기업구조조정’이라는 명목하에 기업투자를 억제하는 각종 대책을 쏟아 냈다. 부채비율 200% 규제, 대기업 다각화 억제, 기업회계 기준 강화, 소수주주권 강화 등이 다 이때 나온 ‘개혁’ 수단이었다. 정부에서 기업투자를 죄악시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금융 시스템도 그렇게 바꾸었는데,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2005년이 되어서야 겨우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수준을 회복했다. 반면 ‘영미식 시스템’을 도입한다면서 금융투자자들의 힘은 대폭 강화됐고 이들은 기업이 투자하기보다 배당이나 유상감자(有償減資) 등으로 번 돈을 주주에게 ‘환원’하기를 요구했다. 그 결과 한국의 주식시장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기보다 영미(英美)처럼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빨아 가는 유출 창구로 변모했다.(그림1)
 

  대기업이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중소기업들의 일감이 줄어든다. 이러한 구조조정의 여파는 대기업보다 자금이 충분하지 못한 중소기업들이 더 빨리, 더 심하게 받는다. 이 구조조정 기간에 대기업 간 격차도 크게 벌어졌다. 대우그룹을 포함해 30대 그룹 중 17개 그룹이 해체됐다. 과거에는 중하위권 그룹이나 중소기업들이 은행대출을 통해 상위 기업들을 쫓아가는 공격적 투자를 감행할 수 있었지만, 기업대출 억제책으로 많이 어려워졌다. 반면 상위권의 성공한 기업들은 사내유보를 바탕으로 더 투자를 해서 격차를 벌려 나갔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살아남고 성공한 기업들과 그렇지 못한 기업들 간에 임금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 격차를 성공한 기업의 잘못으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노조 지도자들의 ‘정치논리’
 
  장 교수가 강조한 ‘비정규직’ 문제도 분명 분배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IMF체제하에서 정리해고가 도입됐고 대규모 감원(減員)이 이뤄졌다.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었던 한국은 불과 수년 사이에 OECD 국가 중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임금 격차가 벌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성공한 대기업만의 잘못인가? 제일 큰 잘못은 정부와 IMF가 ‘노동유연화’를 내걸고 정리해고를 급진적으로 도입한 데에 있다. 실제로 이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정리해고에 적극 반대했다. 반면 노조 지도자들은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는데 DJ를 도와줘야 한다”는 정치논리로 정리해고를 받아들였다. 이때 노조 지도자들 중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진 사람도 없고, 현재 이 문제를 놓고 노조지도자들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상태이다.
 
  그 외에도 임금격차를 불러오는 여러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경제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적극 개방되면서 고액 연봉을 주는 외국계 금융기관, 컨설팅회사, 회계법인 등이 많이 진출했다. 학벌 좋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장이 국내 기업에서 외국계로 바뀐 것도 이때 벌어진 일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한다는 명분하에서 금융기관과 대기업 임원들의 보수가 껑충 뛴 것도 이때이다. 많은 대기업들이 스톡옵션도 도입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기업들이 ‘하후상박(下厚上薄)’ 임금체계를 갖고 있었지만 이 체계가 많이 달라졌다.
 
  한편 정부는 과거의 대기업 위주 발전모델을 바꾼다면서 벤처육성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했다. 그렇지만 벤처는 본래부터 ‘대박’을 노리는 것이고 수많은 ‘쪽박’과 공존할 수밖에 없다. 벤처 육성은 전반적으로 분배를 악화시킬 수밖에 없는 정책이다. 벤처의 대명사인 실리콘밸리 모델이야말로 ‘승자독식(勝者獨食)’ 체제이고 불균등 발전의 세계적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불균등으로 가는 정책을 오래도록 써 온 뒤 성공한 기업이 임금 많이 준다고, 그래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대기업이 움켜쥐고 있는 소득을 분배해야”
 
한국은행 정규일(왼쪽 세번째) 부총재보가 지난 7월 ‘2018년 하반기 경제전망 기자설명회’를 하고 있다. 이날 韓銀은 올해 경제 성장률을 2.9%, 2019년은 2.8%로 전망했다. 이는 OECD가 세계 경제성장률을 2018년 3.8%, 2019년 3.9% 상승할 것이라고 발표한 것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저조한 수치다. 사진=뉴시스
  왜곡된 현상진단과 외곬 원인분석이 결합되어 있는 장 교수의 한국 불평등론은 외곬 해결책으로 가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장 교수는 “소득 불평등의 가장 주된 원인이 임금 불평등이고, 임금 불평등의 가장 주된 근원이 제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이기 때문에 한국 기업 중 ‘갑’으로서 수익성이 가장 높은 제조업 대기업의 분배구조를 바꾸는 것이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결해야 할 과제”라고 결론짓는다. “기업의 역할은 분배다. … (기업의) 임금분배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말들이다. 장 교수는 2017년 5월 정책실장 임명 나흘 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도 “문재인 정부는 대기업이 움켜쥐고 있는 소득을 어떻게 시장에 분배할 것인지를 우선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 교수가 임금분배 방안이라고 내놓은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대기업이 자신의 이익 일부를 하청 중소기업의 “임금 인상분만으로 지정하여… 공급자 대금을 인상해 주는 것”이다. 둘째는, “대기업 임금 인상의 일정 부분을 하청기업 임금 인상을 위한 추가 공급 대금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분배악화의 ‘주범’인 대기업이 자신의 이익이든, 근로자의 임금상승분이든 돈을 내놓아 중소기업 임금을 올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 교수는 “재벌 그룹들이 거의 모든 업종에서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시장구조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갑과 을의 종속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에”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는 루소가 말하는 ‘부자와 가난한 자가 분리’되는 첫 번째 시기를 이미 지났고, ‘강자와 약자의 상태가 용인’되는 두 번째 시기를 넘어, ‘주인과 노예의 상태가 용인’되는 세 번째 시기에까지 이르렀다”며 “한국의 불평등은 이제는 혁명적 개혁을 하지 않고는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에 이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장 교수와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하면서 마치 한국의 대기업들이 굉장히 많은 현찰을 ‘움켜쥐고’ 있는 듯이 포장한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면 국내 대기업들의 현금성자산 비율은 오히려 낮은 편이다. 한국 대기업들이 돈을 제대로 번 역사가 다른 나라 기업들에 비해 굉장히 짧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돈을 벌더라도 은행차입까지 끌어들여서 ‘과잉투자’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더 많이 투자했다. 기업에 현찰이 별로 남아 있을 여유가 없었다. 외환위기 이후 일부 기업들이 돈을 많이 벌었고 그것을 현금자산으로 쌓아 놓고 있을 뿐이다. 2012년 7개국의 시가총액 250대 상장사(上場社)를 비교하면, 한국 대기업들의 총자산 대비 현금성 자산(9.2%)은 미국(12.5%), 일본(16.3%), 독일 (13.9%) 등 선진국보다 낮고, 같은 중진국인 대만(20.6%)보다 낮고, 후진국인 중국(19.0%)보다도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표 2). 한국 대기업이 다른 나라 대기업보다 현찰 보유에 욕심을 더 많이 부렸고 따라서 분배를 더 크게 악화시켰다고 얘기할 객관적 근거가 없다.
 

 
  ‘생산과 분배’의 방정식을 분배만으로 풀다가 벌어진 慘事
 
  경제정책은 생산과 분배를 함께 다루는 것이다. 생산이 활발해지도록 도와주고 그 과실이 적절하게 분배되도록 하는 것이다. 민간을 규제하든 인센티브를 주든 그 궁극적 목표는 국가경제 차원에서 생산과 분배가 좋아지도록 하는 것이다. 생산과 분배의 관계는 고차방정식이다. 생산 증대가 분배를 좋아지게 할 수도 있고 나빠지게 할 수도 있다. 분배를 좋게 만든다는 것이 생산활동을 촉진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경제정책은 생산과 분배 간에 다양한 연결고리를 조율해 가면서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화음을 내도록 하는 예술이다. 정치경제학의 영원한 주제도 생산과 분배이다.
 
  그러나 장 교수는 이 책이나 다른 어디에서도 생산에 관한 이론을 제시하거나 생산과 분배를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를 제시한 바 없다. 단지 투자의 ‘낙수효과’가 떨어졌으니까 투자에 매달리지 말고 분배를 개선해야 한다는 단선적 주장만을 했다. 현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이라고 내놓은 것도 실제로는 분배정책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등의 분배대책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됐을 뿐이다.
 
  경제학계에서 가장 잘 확립된 성장동력은 투자이다. 기업이 미래를 바라보고 투자를 하게 되면 그 회사의 생산이 늘어나고, 물자와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연관 산업이 커지고, 근로자들을 고용하면서 일자리도 늘어나는 것이다. 소비는 대부분 기업에 고용되어 있는 근로자들이 임금을 받아 지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장에 선도적 기능을 못한다. 그렇지만 장 교수나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은 투자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고용창출 효과가 떨어졌다면서 투자를 아예 포기하고 ‘소득’이라는 손쉬워 보이는 열차로 갈아탔다. 이 과정에서 투자를 어떻게 하면 잘할 것인지, 투자의 고용창출 효과를 어떻게 높여야 할지 등 경제정책의 실질적 고민을 내팽개쳤다. 분배정책만 했으면서 성장정책을 했다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그 결과는 생산과 분배의 동시 악화이다. ‘투자 20년래 최악’, ‘2분기 성장률 0.6%’, ‘내수절벽’, ‘최하위층 소득 감소, 최상위층 소득 증가’, ‘고용증가율 대폭 감소’ 등 생산과 분배에서 나쁜 지표들만 줄줄이 발표되고 있다. 국내 고용의 25%를 담당하는 자영업자들은 거리에 나와 ‘최저임금 불복종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1년간 54조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으며 분배에 ‘올인’했는데도 분배마저 악화된 것은 역설(逆說)이 아니라 생산과 분배 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무시한 인과응보(因果應報)일 뿐이다.
 
 
  “청년이여 분노하라”
 
  장 교수는 청년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청년세대에게 강요된 틀에 무조건 순응하지 말고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한국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지금의 현실을 제대로 본다면, 그 모순된 현실이 노력 부족과 같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면, 그리고 거기에서 빠져나올 방법도 없다면 분노하게 될 것이다. … 청년세대의 분노는 정의롭지 않은 한국의 현실을 바꾸는 시작점이자 가장 중요한 점이다. … 불평등한 불의를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음까지 노예가 되는 것이다.”
 
  장 교수와 같은 왜곡된 현상 진단과 일방적 원인 분석, 선동적 결론이 청년들에게 쉽게 전달되고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데 효과적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한국경제의 성적표가 웅변하듯이 국가를 경영하는 데에 큰 부작용을 일으킨다. 청년들은 분노에 앞서 냉철한 현실 판단을 해야 한다. 만약 분노를 해야 한다면 “현실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면서 현실을 왜곡하는 장 교수의 진단과 처방에 분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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