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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예비타당성 조사’ 도입 15년의 성과와 과제

국책사업 576건 타당성 조사… 다양한 외부의견 반영 높여야

글 : 김강수  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관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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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F 이후 500억원 규모 이상의 모든 국책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실시
⊙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財政관리 제도로 해외 수출까지… 나라 곳간 지키는 파수꾼 역할
⊙ 조건과 환경의 불확실성에 대한 정확한 예측 뒷받침돼야

金康洙
⊙ 47세. 한양대 졸업. 서울대 석사, 리즈대 교통학 박사.
⊙ 한국교통연구원 국가교통DB센터장, 한국개발연구원 민간투자지원실장 역임.
⊙ 《SP 조사설계 및 분석 방법론(조혜진 공저)》.
⊙ 한국도로공사 주최 최우수논문·교육부 국비유학생 선정.
2014년 10월 서울 그랜드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기획재정부, 한국개발연구원, 세계은행, IMF가 공동으로 주최한 예비타당성 조사 15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1997년 후반 우리나라를 강타한 외환위기는 한국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최악의 경기침체를 촉발했다. 정부는 금융위기의 근본적인 원인 치유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 과감한 조치를 통해 전반적인 구조개혁에 착수했다.
 
  그중에서 재정(財政)과 공공(公共) 부문의 개혁은 효율성과 투명성 제고(提高)를 위해 시장지향적인 전략을 채택하는 데 맞춰져 있었다. 효율성 제고라는 원칙하에 공공지출도 제대로 관리하고자 했다. 상당한 재정이 소요되는 대규모 사업에 대해서는 재정건전성이라는 정책 목표에 따라 비(非)효율적인 사업은 예산 삭감이라는 조치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1998년 공공사업 효율화 추진단이 구성돼 ‘예비타당성 조사(흔히 예타라 부름)’를 포함한 공공사업 효율화 종합대책이 마련됐다.
 
 
  외국이 롤모델로 삼는 예비타당성 조사
 
  예비타당성 조사는 예산 삭감이라는 당시의 요청과 함께 기존에 실시돼 왔던 타당성 조사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식의 타당성 조사가 필요했다. 기존에는 특정 사업을 주관하는 해당부처가 사업의 필요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타당성을 조사해 왔다. 이러다 보니 해당부처가 시행하는 타당성 조사의 신뢰성에 문제가 발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부고속철도 사업이다. 이 사업은 당초 약 5조50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1998년 현재 3배 이상 투입되고 있었다. 1994년부터 1998년 동안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가 수행한 총 33건의 대규모 사업의 타당성 조사 결과가 울릉도공항 건설 사업 1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타당성이 있는 걸로 조사됐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었다. 해당부처가 실시한 타당성 조사는 투명성, 신뢰성 그리고 객관성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하에 1999년 첫발을 디딘 예비타당성 조사는 그해 20개 사업을 대상으로 했다. 수행 주체는 필자가 근무하는 한국개발연구원(공공투자관리센터)이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2013년까지 총 576건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수행해 왔다.
 
  예비타당성 조사 초기에는 해당부처의 반발도 많았다. 물론 예비타당성 조사와 실제 예산과의 합리적 연계성 등 일부 문제점도 발견됐다. 예비타당성 조사 실시 15년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의 예비타당성 조사는 이제 세계 여러 나라가 본받고 있는 우수한 제도로 정착했다. 세계은행(World Bank)을 비롯한 유수한 국제기관으로부터 공공투자관리제도의 우수 사례 가운데 하나로 소개되는 예비타당성 조사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재정관리 제도로 선진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에 수출까지 한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이제 단순한 예산 운용 제도를 벗어나 하나의 국민 제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부 예산운용의 가이드라인으로 출발한 것이 지금은 국민 모두가 손쉽게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예비타당성 조사 내용을 접할 수 있게 됐다.
 
 
  예비타당성 조사 분석항목들
 
  예비타당성 조사는 예산낭비를 방지하고 재정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게 목적이다. 대규모 재정 사업에 대한 타당성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사전에 조사, 평가함으로써 재정 사업의 신규투자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결정하도록 도와준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하는 대상은 법으로 규정돼 있다. 총 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국비)가 300억원 이상 투입되는 건설, 정보화, 국가연구개발 사업 등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한다. 중기(中期) 재정지출이 500억원 이상인 사회복지, 보건, 교육, 노동, 문화 및 관광, 환경보호, 농림해양수산, 산업·중소기업 분야의 사업도 대상이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4대강 사업에 대한 논란으로 최근에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요건을 더욱 강화했다. 국방 관련 사업, 문화재 복원 사업, 재난예방을 위해 시급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인 경우에도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은 주무부처가 신청하며 기획재정부가 선정한다. 주무부처는 중장기 재정운용계획, 국가 정책 방향 및 사업의 시급성 등을 고려해 사업 간 우선순위를 결정한 후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을 신청한다. 기획재정부는 국고 지원의 적합성, 사업 추진의 시급성, 지역 및 부서별 형평성, 주무부처의 사업 우선순위 및 재정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재정사업평가자문회의를 거쳐 대상 사업을 결정한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국가재정법에 의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산하 공공투자관리센터(PIMAC)가 직접 수행한다. 공공투자관리센터는 외부 전문가로 연구진을 구성한 후 통상 6개월 동안 예비타당성 조사를 수행해 왔는데 최근에는 사업계획 변경 등으로 예비타당성 조사 수행기간이 지연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예비타당성 조사에 대한 관리는 개별 사업별로 총 6회에 걸쳐 이뤄진다. 기획재정부와 KDI 공공투자관리센터가 여러 차례 검토 및 보고하는 과정을 거친다. 사업 타당성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고, 다양한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조사 결과에 대한 오류를 수정한다. 예비타당성 조사의 중점 조사 항목으로는 경제성 분석, 정책적 분석, 지역균형발전 등이다. 여러 차례의 현장 조사 등을 종합 분석해 최종적으로 타당성 여부를 결정한다.
 
  경제성 분석은 사업 추진을 통해 발생할 비용과 편익의 크기를 추정해 비교하는, 즉 사업의 비용대비 편익을 검토하는 비용-편익분석(B/C 분석)을 기본적 방법론으로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B/C 결과가 1 이상(B/C≥1.0)인 경우에는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순수 R&D 사업이나 사회복지·보건 분야 사업과 같은 비용-편익분석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사업의 경우에는 사업의 효과성을 검토하는 비용-효과분석(E/C 분석)을 실시한다.
 
  정책적 분석은 정책 차원의 여러 사항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우선 해당 사업과 관련해 상위 계획과의 일치성, 정책 방향과의 일관성 등을 살펴본다. 사업 계획의 구체성과 인력 및 재원의 투입 정도 등도 따져본다. 사업 추진 주체의 재원조달 능력도 검토한다. 사업 추진상의 위험요인, 사업별 특수한 성격과 배경 등 특수항목도 평가한다.
 
  지역균형발전 분석은 지역 간 불균형 상태의 심화를 방지하고 지역 간 형평성 제고를 위해 지역낙후도 지수, 지역경제 파급효과 등 해당 사업이 지역개발에 미치는 요인을 살펴본다. 지역의 낙후도가 심할수록 타당성 평가에 가산점을 부여한다.
 
 
  나라 곳간 지키는 파수꾼
 
  예비타당성 조사는 이러한 경제성, 정책적 분석 및 지역균형발전 분석 결과를 토대로 계층분석기법(AHP·Analytic Hierarchy Process)을 동원해 최종적으로 타당성 여부를 판단한다. 이때 경제성 분석, 정책적 분석, 지역균형발전 부문에 대한 타당성 종합평가 가중치는 예비타당성 조사 연구진과 외부 평가자에 의해 사전에 이뤄진다. 일반적으로 경제성 분석은 40~50%, 정책적 분석은 25~35%, 지역균형발전 분석은 20~30%의 비율로 정한다. AHP 분석 결과가 0.5 이상(AHP≥0.5)이면 사업 시행이 바람직함을 의미한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기존 타당성 조사와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존재한다.
 
  먼저, 예비타당성 조사에 있어서 분석가의 역할이다. 일반적으로 타당성 조사에 있어서 분석가는 정보 제공자의 역할 정도만을 수행한다. 즉 최종 결정권자의 합리적 결정에 도움을 주고자 분석가는 정보 제공자의 역할 정도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예비타당성 조사는 정보 제공자의 역할을 넘어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판단’을 수행한다. 물론 분석가에 의한 타당성 판단이 사업 추진 여부에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예산당국과 정치권은 예비타당성 조사의 판단을 존중해 예산 반영 여부를 결정한다. 따라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수행하는 분석가는 정보 제공자 차원을 넘어 예산배정 의사결정의 참여자로 활동하는 셈이다.
 
  명확한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를 제시해 온 것도 다른 타당성 조사와 달리 정책적 수용을 넓힌 데 한몫했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종합적인 판단을 통해 명확하게 타당성의 유무 여부를 결정한다. 조사 결과에 대한 해석의 자의성을 방지해 종합적인 결론을 내린다. 이 때문에 예산당국이 유용한 수단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비타당성 조사 수행 내용과 절차, 분석방법론이 규정화된 지침에 의해 수행되고 있는 것도 큰 특징이다. 예비타당성 조사가 도입된 1999년 이후 조사 결과의 투명성, 객관성, 신뢰성 제고를 위해 지침을 마련해 운영한다. 이러한 지침을 개발한 것은 타당성 분석방법론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객관성과 중립성도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다. 예산당국과 주무부처가 아닌 독립적인 기관에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수행한다는 점, 더 나아가 수행 주체인 KDI 공공투자관리센터의 연구원뿐 아니라 각 분야의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한다는 점, 또한 외부 검토위원뿐만 아니라 이해 관계자인 주무부처도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검토에 참여한다는 점 등은 예비타당성 조사만이 갖는 독특한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는 경제적 타당성 측면뿐만 아니라 시대적으로 변화하는 다양한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평가방법론을 구축해 왔다. 예를 들어 타당성 평가에 있어서 지역균형발전이라는 평가 요소를 기존의 B/C 위주의 평가체계에 포함시켜 종합적으로 판단하게끔 했다.
 
  KDI는 1999년 예비타당성 조사 도입 이후 2013년까지 총 576건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수행했다. 사업 통과 비율은 62.5%이다. 전체 사업 중 37.5%가 타당성이 없는 걸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총 118조원의 예산절감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나라 곳간을 지키는 든든한 파수꾼인 것이다.
 
 
  평가 연구진은 미래사회 내다보는 통찰력 가져야
 
  1999년 당시 기획예산처에 의해 만들어진 예비타당성 조사는 비효율적인 사업 추진을 막음으로써 예산의 낭비를 방지하고자 했던 최초의 목적뿐만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그 성과를 발휘해 왔다. 대규모 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주무부처가 아닌 독립적인 KDI 공공투자관리센터가 수행함으로써 조사 결과의 객관성, 투명성, 일관성을 확보해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높였고, 정치 및 이해관계 집단보다는 사업에 대한 정보와 폭넓은 이해력을 가진 전문가들의 판단을 준용함으로써 현명한 예산 집행과 효율적인 사업 추진이 가능해졌다는 점은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이 최초 SOC 사업에서 R&D 및 정보화 사업(2007), 공공기관 사업(2011) 및 복지 사업(2014) 등으로 점차 확대됐다는 점은 예비타당성 조사가 명실상부하게 ‘예산지킴이(gate keeping)’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일반 국민에게까지 공개해 효율성을 따지는 ‘비용 대비 가치(value for money)’, 과학적인 ‘공적 조사 과정(public inquiry process)’을 생각하게 하는 문화를 확산시켰다는 점도 큰 성과다.
 
  예비타당성 조사의 성과와 15년간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는 지속적으로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먼저, 예비타당성 조사를 수행함에 있어서 다양한 외부 의견을 보다 체계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기존 조사와는 달리 이해 관계자와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고는 있지만, 소수의 연구진에 의해 이루어진 내부 의견에 매몰됨으로써 평가의 객관성이 저해되거나 평가 결과의 왜곡을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비타당성 조사 지침도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어떠한 사업에 대한 타당성 여부 검토는 분석시점에서의 일정한 조건과 가정 속에서 수행되나 실제 그러한 조건과 가정은 항상 불확실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만큼 한계가 있는 것이다. 사업 부문별 표준지침에 대한 지속적인 수정·보완,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에 따른 제도 개선, 조사 과정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쟁점 사항에 대한 연구 등을 통해 예비타당성 조사의 정확성, 전문성, 객관성, 일관성을 배가해야 할 것이다.
 
  예비타당성 조사 평가를 수행하는 연구진의 역량도 더욱 높여야 한다. 연구진의 현실지향적이며 비판적이고 보수적인 평가 결과로 생산성이 높고 미래의 유망 사업이 오히려 통과되지 못하고 사장된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불확실한 미래 사회를 대비해 연구진은 객관적이면서도 직관적으로 훌륭한 사업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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