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부터 보여주기 위한 쇼였다”
⊙ 2008년 3월 내놓은 ‘MB물가지수’ 상승률 일반소비자물가 2배… 정부 관심 가질수록 더 나빠졌다
⊙ “정부, 처음부터 물가관리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을 것… 쇼에 불과”(서울시립대 이근식 교수)
⊙ 기준금리 계속 동결, “정부가 물가 포기하고 성장 욕심” 비난여론 거세
⊙ 2008년 3월 내놓은 ‘MB물가지수’ 상승률 일반소비자물가 2배… 정부 관심 가질수록 더 나빠졌다
⊙ “정부, 처음부터 물가관리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을 것… 쇼에 불과”(서울시립대 이근식 교수)
⊙ 기준금리 계속 동결, “정부가 물가 포기하고 성장 욕심” 비난여론 거세
- 물가대책 관계장관 회의에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번 추석 고향에 모인 가족들의 화두는 역시 ‘물가’였다. 폭우에다 여느 해보다 이른 추석으로 과일ㆍ채소 등의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농수산식품류를 제외해도 최근 몇 년간 공산품, 공공요금, 주거비, 교육비 등의 살인적인 물가는 서민들이 견디기 힘든 상황이다.
계란 한 알 200원, 두부 한 모 3000원, 휘발유 리터당 2000원, 점심값 1만원, 전세가격 2년 새 평균 1800만원 상승, 등록금 1000만원 시대 등 ‘물가폭탄’, ‘물가대란’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국민들에게 낯설지 않다. 현재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은 “이 물가대란의 끝은 어디일까”라는 것이다. 당장 물가가 잡히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으니 더 오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올 들어 물가상승률 계속 4%대
우리 국민이 물가상승을 체감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지난해부터다. 물가는 얼마나 올랐을까. 현재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2005년 4월을 100으로 잡고 산정한 치수로, 생필품과 서비스요금, 공공요금 등 489개 품목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2008년 1월부터 2011년 8월까지 3년7개월 동안 소비자물가지수는 106.8에서 122.5로 15.7포인트 올랐다. 전 정권 시기인 2004년 1월부터 2007년 8월까지 9.0포인트 오른 것과 비교하면 물가상승 폭이 크게 가팔라진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소비자물가지수는 2010년 8월에 비해 4.7% 상승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올해 들어 매월 4%대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8월 들어 신선식품은 지난해 같은 시점보다 9.0%, 농축수산물은 11.2%나 상승했다.
품목별로는 쌀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2% 올랐고, 고등어는 36.4% 올랐다. 또 콩나물은 11.7%, 계란은 25.8%, 사과는 16.7%, 설탕은 31.3% 올라 서민 밥상에 오르는 대부분의 품목이 1년 새 두 자릿수 이상의 가격상승률을 보였다.
서민층의 가장 큰 지출요인인 전셋값 등 주거비용도 크게 오른 것은 마찬가지다. 매달 400만원 이상을 버는 가정에서 2년간 꼬박 저축해도 서울의 전세가격 상승세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번지는 최근 8개월간(2010.12.4~2011.8.6) 서울 아파트 전세가 변동액을 조사한 결과 달마다 233만7500원꼴로 올라 2인 이상 도시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흑자액(90만8406원)보다 2.6배 높았다고 12일 밝혔다. 매달 흑자액을 고스란히 저축해도 2년 뒤 전세 재계약 시점이 오면 가격상승분을 감당할 수 없어 빚을 내거나 전세가가 저렴한 외곽으로 밀려나야 하는 셈이다.
현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물가를 잡겠다고 공언했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MB물가지수’다. 기획재정부는 2008년 3월 25일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생활필수품 점검 및 대응계획’을 발표하고, 52개 생활필수품을 선정해 10일 주기로 가격동향을 집중 모니터링 및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주요생필품 소비자물가 동향’에 포함되는 52개 품목은 쌀 등 농식품, 이·미용 등 서비스, 학원비, 공공요금 등 다양한 분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만 3년5개월이 지난 2011년 8월, 이 52개 품목의 가격은 평균 20.42%나 증가했다. 전체 소비자물가지수가 같은 기간 13.21% 증가한 데 비해 두 배 가까이 폭등한 것이다. 특히 배추, 무 등 농산물이 두 배 이상 가격이 올랐고, 돼지고기, 두부, 고추장, 식용유, 설탕, 등유 등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품목들은 30% 이상 올랐다.
왜 52개였나
애초 생필품 가격을 일일이 정부가 잡겠다고 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대다수다. 이 계획을 처음 내놓은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 물가정책과에 문의했다.
―2008년 3월 25일 52개 물가품목, 이른바 ‘MB물가지수’를 내놓게 된 계기는.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50개 물가지수에 특별히 관심을 갖겠다고 천명하면서 물가관리에 집중, 3월 3일 ‘서민생활 안정대책’을 마련했지만 물가상승세가 계속 이어져 추가로 마련한 대책이다.”
―시장경제에서 가격을 기획재정부가 어떻게 관리할 수 있나.
“관세적용과 시장경쟁 촉진, 유통구조 개선, 담합규제, 매점매석 금지, 소비자단체의 가격감시, 수급애로 해결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3·25대책’이 물가정책과가 그동안 해온 업무와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생필품 물가지수만 해도 1998년부터 통계청이 조사 중인 ‘생활물가지수(156개)’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물가지수 선정기준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전체 소득계층의 가계를 대상으로 지출비중이 높은 품목 위주로 선정하다 보니 서민층이 체험하는 물가와 다소 거리가 있었다. (MB물가지수는) 소득 2분위 이하(전체 가구의 40%, 월소득 247만원 이하) 계층이 자주 구입하고 지출비중이 높으며, 인상폭이나 인상가능성이 높은 품목으로 선정했다.”
―52개 품목을 어떻게 선정했나. 학원비와 학습지 비용이 각각 포함되고 비누가 아닌 샴푸가 포함되는 등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품목들이 있다.
“서민층에서 지출비중이 높은 품목을 기준으로 하고, 6개 소비자단체ㆍ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했으며 각 품목의 최근 1년간 가격변화를 고려해 균형 있게 구성했다.”
―다른 품목에 비해 이들 품목을 관리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
“예를 들면 닭고기 가격이 높을 때면 할당관세를 실시하면서 수입확대조치를 신속히 시행하고, 소금 가격이 급등하면 불공정유통체계를 살피는 한편, 농산물은 정부 구매와 출하시기를 조정하는 식이다. 또 정유사의 기름값 인하를 독려하고 감시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일반물가지수보다 오름폭이 훨씬 높아지는 등 ‘관리’가 되지 않았는데.
“소비자물가에 직접적이며 큰 영향을 주는 국제유가나 이상기후 등을 우리 정부가 임의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어설프게 급조한 MB물가지수
말미에 있는 말처럼 기재부 물가정책과 관계자는 물가가 ‘관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와서야 시인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이렇게 장담했을까?
시초는 2008년 3월 17일 지식경제부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대책과 관련해 한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물량의 수급을 통해 생활필수품에 해당하는 품목 50개를 우리가 집중 관리하게 되면, 전체적 물가는 상승해도 50개 품목은 그에 비례해 올라가지 않을 수 있다.”
정권 초기였던 당시 정부 부처들은 대통령 한마디에 황급히 움직였다. 바로 다음 날 기재부는 새로운 생필품 물가지수 리스트를 만들겠다고 발표했고, 일부 언론과 학자들은 ‘5공식 관치경제와 물가통제’라며 비판했다.
문제는 2월 말 출범한 정부가 당시까지 한 달 동안 내놓은 물가정책만 해도 6건에 달했다는 것. 웬만한 물가정책은 다 쏟아낸 상태였다. 졸지에 새로운 리스트에 물가관리대책까지 만들어내야 할 처지가 된 기재부가 골머리를 앓은 것이다.
결국 기재부는 통계청이 발간하는 《소비자물가 가중치와 품목 개편작업을 위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리스트를 만들어야 했는데, 통계청 자료가 2006년 12월 자료인데다가 통계청이 가공자료만 제공하고 원(原)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기재부가 몹시 난감해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기재부 관계자의 이야기다. “서민을 중심으로 한 생필품 목록을 만들라는 것이 주제였는데, 소득수준에 따라 생필품 구입에 무슨 큰 차이가 있겠습니까. 기존 소비자물가지수와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는데 그게 가장 어려운 점이었죠. 통계청 가계수지동향은 표본수가 너무 적어 신뢰도가 낮다는 의견도 있었고요. 통계청 측에서도 그 자료를 인용하는 것은 난감하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품목 선정도 어려웠지만 이를 ‘관리’하는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일단 대통령의 물가언급 직후부터 언론의 관치경제 비난이 시작된 만큼 직접적인 가격관리책은 지양해야 했습니다. 직접관리방법을 제외하면 뻔한 대책밖에 내놓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결국 기재부는 일주일 만인 25일 허겁지겁 52개 물가지수 리스트를 내놓고 서민생활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유류세 인하, 할당관세 실시, 유통구조 개선, 시장개방, 불공정행위 단속 등이다. 기재부는 당시 “현재 정부가 할 수 있는 물가관리 수단은 과거와는 달리 법률범위 내로 제한되며, 시장에 대한 가격규제 등 직접적 규제는 할 수도 없으며 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3년6개월이 지난 현재 52개 품목의 지수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일반 소비자물가지수 변동폭을 크게 뛰어넘고 있는 현실이다. 관리는커녕 상승을 부추긴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박성현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는 ‘MB물가지수’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는 지수라고 설명했다. “기존 소비자물가지수가 500여 개 품목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 중 또 50개를 선정한다면 명쾌한 기준을 잡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물가를 정부가 직접 관리하겠다는 것은 인위적인 가격통제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는 결국 생필품의 품질문제와 가격 왜곡현상을 초래하게 됩니다. 새 물가지수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명쾌하지도, 정당하지도 않았다는 것이죠. 비난은 비난대로 받고 어차피 관리도 안 될 텐데 말입니다.”
이근식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MB물가지수란)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고 단언했다. “대통령이 물가라는 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모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또 주변의 경제관료들이 대통령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을 리도 없고요. 그런데도 강행한 것은 정권 초기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물가대란 시초는 국제 원자재 가격상승
현재 MB물가지수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통계청은 매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발표하며 52개 주요생필품 가격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껍데기는 남아 있는 셈이다. 하지만 ‘관리’ 흔적은 없다. 국민은 물가에 있어 정부의 ‘관리’를 포기한 지 오래다. 그러나 관리는 못 하더라도 ‘유지’는 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 아닐까. 지금의 물가대란은 도대체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지난해부터 계속되는 물가상승은 상당 부분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연세대 경제학과 김정식 교수의 설명이다. “물가가 오르는 가장 큰 원인은 원유와 원자재 가격 때문입니다. 원가가 오르면서 공산품 가격이 오르는 것은 물론, 식품가격도 오르고 공공요금도 인상압력을 받고 있는 겁니다. 특히 물가지수를 산정할 때 공공요금과 식품가격의 비중이 높은 편인데, 이 두 가지가 오르면 물가인상폭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서민가계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요인이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원자재 가격상승으로 인한 물가상승이 지속되면서 상승기대심리가 확산되고, 이 때문에 물가가 계속 상승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정식 교수의 얘기다. “물가상승에 대한 기대감 역시 지속적인 물가상승의 원인입니다. 특히 저금리도 원인이 되는데, 저금리로 시중 유동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커지고, 생산자들이 각자 가격을 높이는 겁니다.” 그는 “물가상승세가 이어질 때 정책적으로 특단의 대책을 내렸어야 했는데, 중간에 잡지 못한 물가를 이제 와서 잡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박영선 정책위의장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작년 말부터 올해 4월까지 이어진 물가상승세가 국제유가와 국제 원자재 가격상승, 이상기후에 따른 국제 곡물 가격상승 등 외부 공급 충격에 의한 것이었다면, 최근 5~6월의 가공식품 가격상승, 서비스 가격상승 등은 경기회복 과정에서 누적된 총 수요 확대 압력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등 수요 측의 요인이 확대돼 나타난 결과입니다. 문제는 이 상승세가 지속되리라는 것이죠.”
한편 숫자로 표시되는 물가상승률보다 서민들의 체감물가상승률이 훨씬 크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 얘기하면 쌀과 콩나물 등 장바구니 물가를 가장 먼저 얘기하는데, 사실 장바구니 물가가 전부가 아니다”라며 “서민들에겐 전세나 월세 등 주거비용은 조금만 올라도 그 압박이 절대적이고, 통신비와 사교육비 등 과거에는 없었던 지출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상승률은 발표되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말했다.
물가전망 모두 ‘잿빛’, 정부 예상치 훌쩍 넘을 듯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대부분 물가상승세가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통화위원회는 최근 금리동결과 함께 “농산물 가격의 상승과 경기상승기조에 따른 수요압력,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등으로 높은 수준의 물가상승률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금통위 관계자는 “세계경제의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유럽지역의 국가채무 문제, 국제금융시장 불안 등으로 글로벌 더블딥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해외 위험요인의 영향으로 국내 성장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전망이고, 그래도 상승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면서 물가 고공행진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진영 수석연구원은 “추석물가와 서비스 요금 인상을 고려하면 하락요인보다 상승요인이 더 많기 때문에 8, 9월은 4%대 중후반의 상승률을 나타낼 수 있어 한은의 연간 물가전망 4.0%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 이상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하반기 전기요금 인상과 농축수산물 공급 불안에 따른 외식비 인상 등 물가는 오를 일만 남았지 내릴 일은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정부가 미국발 증시 쇼크와 성장률 압박 등 발등에 떨어진 불 때문에 물가를 잡을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MB물가지수의 실패가 기정사실화되자 정부가 지난 7월 말 새롭게 내놓은 것이 10개 품목의 전국 가격동향을 조사하는 이른바 ‘신MB물가지수’다. 공공요금(시내버스ㆍ지하철), 외식비(삼겹살ㆍ돼지갈비ㆍ김치찌개ㆍ된장찌개ㆍ설렁탕ㆍ자장면), 채소류(배추ㆍ무)로 구성된 이 물가지수는 8월 초 처음으로 공개됐지만, 지역별로 상승률이 15~30배에 이르는 등 편차가 지나치게 커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 역시 한두 달 만에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고 있다. 고려대 오정근 교수는 “서민을 위한 물가대책을 세우려면 장바구니 물가보다 가계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치는 주거비와 통신비 등에 대한 대책을 먼저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장기조에 희생된 물가정책
이 같은 상황에서 8월 1일부터 전기요금이 4.9% 올라 공공요금 인상을 견인하고 있는데다 한국은행은 9월 초 기준금리를 현행(3.25%)대로 동결, 정부가 사실상 물가안정을 포기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물가상승은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초과수요현상 때문에 생기고 이 경우 금리를 올림으로써 투자ㆍ소비 등 수요를 줄여 물가를 낮추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매월 물가상승률이 사상 최대를 경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8월과 9월에 걸쳐 금리를 동결, 정부가 물가대책을 좌시했다는 것이다.
경실련은 “한은이 인플레이션 압력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주장하는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비난했다. 경실련 권오인 경제정책실장의 설명이다. “현재 경기활성화와 성장 정책에 따라 시중에 유동성이 과도하게 풀려 있고 인플레이션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데, 정부의 금리동결은 타는 불에 기름을 붓고 있는 셈입니다. 시장 전반에 만연돼 있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차단하기는커녕, 물가상승을 용인하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고 있어요. 한국은행이 물가안정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치솟는 물가를 잡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경제성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금리와 환율조정 등 거시적인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고려대 오정근 교수는 “현재 체감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농축수산물과 기름 등 물가인상을 주도하는 품목들에 대해 관세인하ㆍ긴급수입 등으로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단기적인 방법과, 관세ㆍ유류세 인하, 부동산정책 등 다각적인 장기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7월 말부터 대통령의 지시로 매주 기획재정부 장관 등 경제 관계 장관들이 모여 물가관련장관회의를 실시하고 있지만, 아직 획기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어찌 보면 무슨 물가지수 운운하는 ‘쇼’보다는 차라리 없는 게 낫다.⊙
계란 한 알 200원, 두부 한 모 3000원, 휘발유 리터당 2000원, 점심값 1만원, 전세가격 2년 새 평균 1800만원 상승, 등록금 1000만원 시대 등 ‘물가폭탄’, ‘물가대란’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국민들에게 낯설지 않다. 현재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은 “이 물가대란의 끝은 어디일까”라는 것이다. 당장 물가가 잡히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으니 더 오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올 들어 물가상승률 계속 4%대
우리 국민이 물가상승을 체감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지난해부터다. 물가는 얼마나 올랐을까. 현재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2005년 4월을 100으로 잡고 산정한 치수로, 생필품과 서비스요금, 공공요금 등 489개 품목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2008년 1월부터 2011년 8월까지 3년7개월 동안 소비자물가지수는 106.8에서 122.5로 15.7포인트 올랐다. 전 정권 시기인 2004년 1월부터 2007년 8월까지 9.0포인트 오른 것과 비교하면 물가상승 폭이 크게 가팔라진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소비자물가지수는 2010년 8월에 비해 4.7% 상승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올해 들어 매월 4%대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8월 들어 신선식품은 지난해 같은 시점보다 9.0%, 농축수산물은 11.2%나 상승했다. 품목별로는 쌀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2% 올랐고, 고등어는 36.4% 올랐다. 또 콩나물은 11.7%, 계란은 25.8%, 사과는 16.7%, 설탕은 31.3% 올라 서민 밥상에 오르는 대부분의 품목이 1년 새 두 자릿수 이상의 가격상승률을 보였다.
서민층의 가장 큰 지출요인인 전셋값 등 주거비용도 크게 오른 것은 마찬가지다. 매달 400만원 이상을 버는 가정에서 2년간 꼬박 저축해도 서울의 전세가격 상승세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번지는 최근 8개월간(2010.12.4~2011.8.6) 서울 아파트 전세가 변동액을 조사한 결과 달마다 233만7500원꼴로 올라 2인 이상 도시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흑자액(90만8406원)보다 2.6배 높았다고 12일 밝혔다. 매달 흑자액을 고스란히 저축해도 2년 뒤 전세 재계약 시점이 오면 가격상승분을 감당할 수 없어 빚을 내거나 전세가가 저렴한 외곽으로 밀려나야 하는 셈이다.
현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물가를 잡겠다고 공언했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MB물가지수’다. 기획재정부는 2008년 3월 25일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생활필수품 점검 및 대응계획’을 발표하고, 52개 생활필수품을 선정해 10일 주기로 가격동향을 집중 모니터링 및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주요생필품 소비자물가 동향’에 포함되는 52개 품목은 쌀 등 농식품, 이·미용 등 서비스, 학원비, 공공요금 등 다양한 분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만 3년5개월이 지난 2011년 8월, 이 52개 품목의 가격은 평균 20.42%나 증가했다. 전체 소비자물가지수가 같은 기간 13.21% 증가한 데 비해 두 배 가까이 폭등한 것이다. 특히 배추, 무 등 농산물이 두 배 이상 가격이 올랐고, 돼지고기, 두부, 고추장, 식용유, 설탕, 등유 등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품목들은 30% 이상 올랐다.
왜 52개였나
애초 생필품 가격을 일일이 정부가 잡겠다고 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대다수다. 이 계획을 처음 내놓은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 물가정책과에 문의했다.
―2008년 3월 25일 52개 물가품목, 이른바 ‘MB물가지수’를 내놓게 된 계기는.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50개 물가지수에 특별히 관심을 갖겠다고 천명하면서 물가관리에 집중, 3월 3일 ‘서민생활 안정대책’을 마련했지만 물가상승세가 계속 이어져 추가로 마련한 대책이다.”
―시장경제에서 가격을 기획재정부가 어떻게 관리할 수 있나.
“관세적용과 시장경쟁 촉진, 유통구조 개선, 담합규제, 매점매석 금지, 소비자단체의 가격감시, 수급애로 해결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3·25대책’이 물가정책과가 그동안 해온 업무와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생필품 물가지수만 해도 1998년부터 통계청이 조사 중인 ‘생활물가지수(156개)’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물가지수 선정기준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전체 소득계층의 가계를 대상으로 지출비중이 높은 품목 위주로 선정하다 보니 서민층이 체험하는 물가와 다소 거리가 있었다. (MB물가지수는) 소득 2분위 이하(전체 가구의 40%, 월소득 247만원 이하) 계층이 자주 구입하고 지출비중이 높으며, 인상폭이나 인상가능성이 높은 품목으로 선정했다.”
―52개 품목을 어떻게 선정했나. 학원비와 학습지 비용이 각각 포함되고 비누가 아닌 샴푸가 포함되는 등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품목들이 있다.
“서민층에서 지출비중이 높은 품목을 기준으로 하고, 6개 소비자단체ㆍ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했으며 각 품목의 최근 1년간 가격변화를 고려해 균형 있게 구성했다.”
―다른 품목에 비해 이들 품목을 관리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
“예를 들면 닭고기 가격이 높을 때면 할당관세를 실시하면서 수입확대조치를 신속히 시행하고, 소금 가격이 급등하면 불공정유통체계를 살피는 한편, 농산물은 정부 구매와 출하시기를 조정하는 식이다. 또 정유사의 기름값 인하를 독려하고 감시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일반물가지수보다 오름폭이 훨씬 높아지는 등 ‘관리’가 되지 않았는데.
“소비자물가에 직접적이며 큰 영향을 주는 국제유가나 이상기후 등을 우리 정부가 임의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어설프게 급조한 MB물가지수
말미에 있는 말처럼 기재부 물가정책과 관계자는 물가가 ‘관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와서야 시인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이렇게 장담했을까?
시초는 2008년 3월 17일 지식경제부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대책과 관련해 한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물량의 수급을 통해 생활필수품에 해당하는 품목 50개를 우리가 집중 관리하게 되면, 전체적 물가는 상승해도 50개 품목은 그에 비례해 올라가지 않을 수 있다.”
정권 초기였던 당시 정부 부처들은 대통령 한마디에 황급히 움직였다. 바로 다음 날 기재부는 새로운 생필품 물가지수 리스트를 만들겠다고 발표했고, 일부 언론과 학자들은 ‘5공식 관치경제와 물가통제’라며 비판했다.
문제는 2월 말 출범한 정부가 당시까지 한 달 동안 내놓은 물가정책만 해도 6건에 달했다는 것. 웬만한 물가정책은 다 쏟아낸 상태였다. 졸지에 새로운 리스트에 물가관리대책까지 만들어내야 할 처지가 된 기재부가 골머리를 앓은 것이다.
결국 기재부는 통계청이 발간하는 《소비자물가 가중치와 품목 개편작업을 위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리스트를 만들어야 했는데, 통계청 자료가 2006년 12월 자료인데다가 통계청이 가공자료만 제공하고 원(原)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기재부가 몹시 난감해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기재부 관계자의 이야기다. “서민을 중심으로 한 생필품 목록을 만들라는 것이 주제였는데, 소득수준에 따라 생필품 구입에 무슨 큰 차이가 있겠습니까. 기존 소비자물가지수와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는데 그게 가장 어려운 점이었죠. 통계청 가계수지동향은 표본수가 너무 적어 신뢰도가 낮다는 의견도 있었고요. 통계청 측에서도 그 자료를 인용하는 것은 난감하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품목 선정도 어려웠지만 이를 ‘관리’하는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일단 대통령의 물가언급 직후부터 언론의 관치경제 비난이 시작된 만큼 직접적인 가격관리책은 지양해야 했습니다. 직접관리방법을 제외하면 뻔한 대책밖에 내놓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결국 기재부는 일주일 만인 25일 허겁지겁 52개 물가지수 리스트를 내놓고 서민생활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유류세 인하, 할당관세 실시, 유통구조 개선, 시장개방, 불공정행위 단속 등이다. 기재부는 당시 “현재 정부가 할 수 있는 물가관리 수단은 과거와는 달리 법률범위 내로 제한되며, 시장에 대한 가격규제 등 직접적 규제는 할 수도 없으며 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3년6개월이 지난 현재 52개 품목의 지수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일반 소비자물가지수 변동폭을 크게 뛰어넘고 있는 현실이다. 관리는커녕 상승을 부추긴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박성현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는 ‘MB물가지수’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는 지수라고 설명했다. “기존 소비자물가지수가 500여 개 품목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 중 또 50개를 선정한다면 명쾌한 기준을 잡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물가를 정부가 직접 관리하겠다는 것은 인위적인 가격통제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는 결국 생필품의 품질문제와 가격 왜곡현상을 초래하게 됩니다. 새 물가지수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명쾌하지도, 정당하지도 않았다는 것이죠. 비난은 비난대로 받고 어차피 관리도 안 될 텐데 말입니다.”
이근식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MB물가지수란)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고 단언했다. “대통령이 물가라는 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모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또 주변의 경제관료들이 대통령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을 리도 없고요. 그런데도 강행한 것은 정권 초기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물가대란 시초는 국제 원자재 가격상승
현재 MB물가지수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통계청은 매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발표하며 52개 주요생필품 가격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껍데기는 남아 있는 셈이다. 하지만 ‘관리’ 흔적은 없다. 국민은 물가에 있어 정부의 ‘관리’를 포기한 지 오래다. 그러나 관리는 못 하더라도 ‘유지’는 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 아닐까. 지금의 물가대란은 도대체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지난해부터 계속되는 물가상승은 상당 부분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연세대 경제학과 김정식 교수의 설명이다. “물가가 오르는 가장 큰 원인은 원유와 원자재 가격 때문입니다. 원가가 오르면서 공산품 가격이 오르는 것은 물론, 식품가격도 오르고 공공요금도 인상압력을 받고 있는 겁니다. 특히 물가지수를 산정할 때 공공요금과 식품가격의 비중이 높은 편인데, 이 두 가지가 오르면 물가인상폭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서민가계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요인이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원자재 가격상승으로 인한 물가상승이 지속되면서 상승기대심리가 확산되고, 이 때문에 물가가 계속 상승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정식 교수의 얘기다. “물가상승에 대한 기대감 역시 지속적인 물가상승의 원인입니다. 특히 저금리도 원인이 되는데, 저금리로 시중 유동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커지고, 생산자들이 각자 가격을 높이는 겁니다.” 그는 “물가상승세가 이어질 때 정책적으로 특단의 대책을 내렸어야 했는데, 중간에 잡지 못한 물가를 이제 와서 잡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박영선 정책위의장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작년 말부터 올해 4월까지 이어진 물가상승세가 국제유가와 국제 원자재 가격상승, 이상기후에 따른 국제 곡물 가격상승 등 외부 공급 충격에 의한 것이었다면, 최근 5~6월의 가공식품 가격상승, 서비스 가격상승 등은 경기회복 과정에서 누적된 총 수요 확대 압력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등 수요 측의 요인이 확대돼 나타난 결과입니다. 문제는 이 상승세가 지속되리라는 것이죠.”
한편 숫자로 표시되는 물가상승률보다 서민들의 체감물가상승률이 훨씬 크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 얘기하면 쌀과 콩나물 등 장바구니 물가를 가장 먼저 얘기하는데, 사실 장바구니 물가가 전부가 아니다”라며 “서민들에겐 전세나 월세 등 주거비용은 조금만 올라도 그 압박이 절대적이고, 통신비와 사교육비 등 과거에는 없었던 지출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상승률은 발표되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말했다.
물가전망 모두 ‘잿빛’, 정부 예상치 훌쩍 넘을 듯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대부분 물가상승세가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통화위원회는 최근 금리동결과 함께 “농산물 가격의 상승과 경기상승기조에 따른 수요압력,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등으로 높은 수준의 물가상승률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금통위 관계자는 “세계경제의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유럽지역의 국가채무 문제, 국제금융시장 불안 등으로 글로벌 더블딥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해외 위험요인의 영향으로 국내 성장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전망이고, 그래도 상승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면서 물가 고공행진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진영 수석연구원은 “추석물가와 서비스 요금 인상을 고려하면 하락요인보다 상승요인이 더 많기 때문에 8, 9월은 4%대 중후반의 상승률을 나타낼 수 있어 한은의 연간 물가전망 4.0%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 이상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하반기 전기요금 인상과 농축수산물 공급 불안에 따른 외식비 인상 등 물가는 오를 일만 남았지 내릴 일은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정부가 미국발 증시 쇼크와 성장률 압박 등 발등에 떨어진 불 때문에 물가를 잡을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MB물가지수의 실패가 기정사실화되자 정부가 지난 7월 말 새롭게 내놓은 것이 10개 품목의 전국 가격동향을 조사하는 이른바 ‘신MB물가지수’다. 공공요금(시내버스ㆍ지하철), 외식비(삼겹살ㆍ돼지갈비ㆍ김치찌개ㆍ된장찌개ㆍ설렁탕ㆍ자장면), 채소류(배추ㆍ무)로 구성된 이 물가지수는 8월 초 처음으로 공개됐지만, 지역별로 상승률이 15~30배에 이르는 등 편차가 지나치게 커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 역시 한두 달 만에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고 있다. 고려대 오정근 교수는 “서민을 위한 물가대책을 세우려면 장바구니 물가보다 가계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치는 주거비와 통신비 등에 대한 대책을 먼저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장기조에 희생된 물가정책
이 같은 상황에서 8월 1일부터 전기요금이 4.9% 올라 공공요금 인상을 견인하고 있는데다 한국은행은 9월 초 기준금리를 현행(3.25%)대로 동결, 정부가 사실상 물가안정을 포기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물가상승은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초과수요현상 때문에 생기고 이 경우 금리를 올림으로써 투자ㆍ소비 등 수요를 줄여 물가를 낮추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매월 물가상승률이 사상 최대를 경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8월과 9월에 걸쳐 금리를 동결, 정부가 물가대책을 좌시했다는 것이다.
경실련은 “한은이 인플레이션 압력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주장하는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비난했다. 경실련 권오인 경제정책실장의 설명이다. “현재 경기활성화와 성장 정책에 따라 시중에 유동성이 과도하게 풀려 있고 인플레이션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데, 정부의 금리동결은 타는 불에 기름을 붓고 있는 셈입니다. 시장 전반에 만연돼 있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차단하기는커녕, 물가상승을 용인하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고 있어요. 한국은행이 물가안정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치솟는 물가를 잡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경제성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금리와 환율조정 등 거시적인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고려대 오정근 교수는 “현재 체감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농축수산물과 기름 등 물가인상을 주도하는 품목들에 대해 관세인하ㆍ긴급수입 등으로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단기적인 방법과, 관세ㆍ유류세 인하, 부동산정책 등 다각적인 장기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7월 말부터 대통령의 지시로 매주 기획재정부 장관 등 경제 관계 장관들이 모여 물가관련장관회의를 실시하고 있지만, 아직 획기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어찌 보면 무슨 물가지수 운운하는 ‘쇼’보다는 차라리 없는 게 낫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