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만원 봉제공장을 연 매출 2000억원 기업으로
⊙ 직원 3명의 봉제공장이 4개 계열사에 400여 명의 종업원 거느린 중견 그룹으로 성장
⊙ 샘플 가득한 트렁크 들고 미국과 유럽 누비다 보따리 장수로 오해받기도
⊙ 2015년 매출 1조원 달성이 지금의 목표
李榮珪
⊙ 52세. 서울 영동고, 한양대 섬유공학과 졸업.
⊙ 동양나이론(現 효성) 원사개발부, 약진통상 대리, 스완무역 차장 역임.
⊙ 現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이사.
⊙ 직원 3명의 봉제공장이 4개 계열사에 400여 명의 종업원 거느린 중견 그룹으로 성장
⊙ 샘플 가득한 트렁크 들고 미국과 유럽 누비다 보따리 장수로 오해받기도
⊙ 2015년 매출 1조원 달성이 지금의 목표
李榮珪
⊙ 52세. 서울 영동고, 한양대 섬유공학과 졸업.
⊙ 동양나이론(現 효성) 원사개발부, 약진통상 대리, 스완무역 차장 역임.
⊙ 現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이사.
일본의 원전사고로 전 세계가 방사능 공포에 휩싸여 있던 지난 3~4월, 주식 시장에서 연일 상한가를 친 기업이 있다. 세계 극세사(極細絲)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섬유 전문 기업 (주)웰크론(舊 은성코퍼레이션)이 그 주인공이다.
극세사는 폴리에스테르를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보다 가늘고 얇게 수축 가공한 섬유다. 이 특수 섬유는 흡수력과 배수력이 뛰어나고 항균성이 강해 미세먼지를 걸러주는 필터나 마스크, 고기능성 클리너 제품에 활용된다.
또한 극세사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된 나노섬유는 반도체 클린룸용 와이퍼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에는 최첨단 방탄복·방검복, 의료용 인조피부 등에도 사용된다. 옷의 원료로만 알았던 섬유가 IT와 BT(생명공학) 분야의 최첨단 소재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주)웰크론은 특수 기능의 섬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극세사 클리너와 목욕용품, 청소용품 등은 지식경제부의 세계 일류 상품에 선정됐다. 이들 제품은 미국과 유럽 등 세계 5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으며, 클린룸용 와이퍼는 국내외 반도체 기업에 납품되고 있다.
국내 생활용품 시장에서는 아토피 피부염의 주범인 진드기의 침투를 막아주는 극세사 침구류가 단연 인기다. 전국 주요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세사’(SESA)와 대형 할인마트에 들어가 있는 ‘바솜’(Bathom)이 이 회사 브랜드다.
(주)웰크론의 연 매출은 805억원(2009년 기준), 이 중 해외 수출 비중이 60% 이상을 차지한다.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성장해 온 이 회사는 2007년 한방 생리대로 유명한 (주)예지미인을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 (주)한텍엔지니어링과 (주)강원비앤이를 인수했다. 작년에 인수한 두 회사는 각각 환경 플랜트 분야와 에너지 플랜트 분야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코스닥 상장 기업이다.
이들 관계사까지 합친 (주)웰크론의 총 매출 규모는 웬만한 중소기업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2009년 기준 이들 4개 회사의 총 매출액은 1700억원. 종사하는 직원도 400명이 넘는다. 이영규(李榮珪) 대표는 올해 초 “웰크론 4개 계열사의 올해 총 매출 목표는 2100억원”이라며 “2015년에는 이들 계열사 간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 웰크론을 1조원 기업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상당히 자신감에 찬 모습이었다.
이 대표는 (주)웰크론의 CEO이자 창업주이다. 그는 1992년 은행에서 대출받은 자본금 2000만원으로 ‘은성코퍼레이션’이라는 봉제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직원은 자신까지 총 3명. 그로부터 불과 20년 만에 회사를 수천 배 규모의 중견 기업으로 키운 이영규 대표를 만났다.
후배 둘 데리고 창업
(주)웰크론의 본사는 서울 구로구 디지털 1단지 내에 위치해 있다. 지난 5월 초, 이 회사를 방문했을 때 이영규 대표는 몹시 분주해 보였다. 그는 “지난해 말 인수한 두 개 회사의 안정화 작업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동안(童顔)에 군살 없는 몸매 때문이었을까. “바쁘다”는 말이 엄살처럼 느껴졌다. 그는 “평소 운동으로 다진 체력이 아니었다면 쓰러졌을 것”이라며 “어제 새로 인수한 계열사 직원들과 워크숍을 마치고 새벽 4시까지 함께 술 마시다 출근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어제’는 일요일이었다.
―그런 체력이 어디서 나옵니까.
“대학 때부터 축구, 야구, 산악자전거, 마라톤 등 운동을 즐겨 한 덕분입니다. 지금도 새벽 5시에 일어나 한 시간 반 동안 운동한 후 출근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요. 여러 가지 업무를 동시에 챙겨야 하는 중소기업 CEO로서는 체력이 돈이고 경쟁력입니다.”
―사장이 체력이 좋으면 직원들이 고생일 텐데요.
“맞습니다. 지난해 8월에는 전 직원과 함께 30km 야간 행군을 했고, 10월에는 10km 마라톤을 했지요. 지난 4월에는 6시간 코스의 등반 대회도 가졌죠. 제가 앞에서 ‘나를 따르라’며 걷고 달리니 피할 수도 없고 죽을 맛일 겁니다. 하지만 완주하고 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해냈다’는 성취감이 생기죠. 이 힘은 조직에서 목표에 대한 집념과 팀워크로 나타납니다.”
이 대표는 “중소기업에서는 CEO 못지않게 직원들도 체력과 정신력이 강해야 한다”며 “전 직원 극기훈련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근육이 많이 붙으면 회사건 사람이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표현인 듯했다. 남들은 빠르다고 하지만 그에게 지난 20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대학 졸업 후 섬유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거친 그가 독립한 것은 1992년 5월. 후배 두 명과 함께 서울 포이동의 두 평 남짓한 공간에 봉제공장을 차리면서였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창업한 셈인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대학 다닐 때부터 사업을 꿈꿨습니다. 졸업 후 대기업에 근무하는 동안에는 사업을 구체화하기 위해 열심히 아이템을 찾았죠. 뭐든 사업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일도 열심히 했습니다. 동료들로부터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 한다’는 눈총을 받을 정도였죠. 하지만 전담 파트가 있는 대기업에서 저는 수많은 부속품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아버지에게 망하는 법부터 배워
1년여 만에 안정이 보장된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섬유무역 중소업체 대리로 입사했다. 이곳에서 4년여 동안 근무하며 사업 아이템도 찾았고, 무역에도 눈을 떴다. 그는 “섬유전시회 참관을 위해 일본에 갔다가 그곳에서 고급 의류 섬유인 극세사를 안경닦이로 활용하는 것을 보고 사업 아이템을 정했다”고 말했다. 극세사의 부가가치에 눈을 떴다는 것이다.
―가능성만 믿고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너무 무모한 도전 아닌가요.
“경영 수업을 위해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에 임원으로 들어가는 등 나름 차근차근 준비했으니 당시로서는 무모한 도전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방만한 경영으로 사세(社勢)가 급격히 기울어가던 친구 회사에서 배운 게 많았어요. 물려받은 재산으로 사업을 한 그 친구는 큰 고민 없이 일을 벌였고, 어음 결제가 다반사였습니다. 저한테 보증을 서달라고 하기도 했어요. 결국 제가 회사를 그만두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는 부도가 났죠. 친구 회사에서 ‘이렇게 하면 망한다’는 뼈아픈 공부를 한 셈입니다.”
그는 사업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버지를 통해서도 ‘사업에 성공하는 법’보다 ‘실패하는 법’을 익혔다고 한다. 비누 공장을 했던 그의 아버지는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하고 하루도 쉬지 않을 만큼 성실했지만 주위 사람을 너무 믿은 나머지 회사를 부도냈다고 한다. 보증을 잘못 서 평생 일군 재산을 하루아침에 날렸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공장에서 놀며 일을 거들던 이 대표는 ‘내가 만약 사업을 하게 되면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회사를 담보로 보증은 서지 않으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족이 겪은 경제적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족이 사업이라면 경기를 일으켰을 법한데,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죠.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몰락하고, 채권자들과 은행에 시달린 경험이 있으니 당연했습니다. ‘절대 안 된다’는 어머니를 1년 동안 설득한 끝에 겨우 허락을 받았지요. 그것도 ‘아버지처럼 보증을 서지 않고 어음을 주고받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서요.”
―그렇게 기를 쓰고 사업에 매달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사업 실패로 추락한 집안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믿으면서도 망하지 않는 사업을 하고 싶었고, ‘사업은 이렇게 하는 거다’라는 표본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처절한 실패의 경험을 내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오기도 있었습니다.”
―그런 자신감과 오기는 어디에서 나온 건가요.
“제가 깡다구가 좀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도와 비누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제조업에 대한 마인드가 자연스럽게 싹튼 것 같아요. 저는 물건 만드는 일이 재미있더라고요. 물건만 파는 장사꾼보다는 직접 개발하고 제조해서 판매까지 하는 사업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자본금 2000만원 6개월 만에 바닥나
식구의 반대를 물리치고 젊음과 패기로 시작한 사업은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창업만 하면 일거리를 주겠다던 사람들이 막상 일을 시작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외면했다. 그런데다 어렵게 거래를 튼 업체가 부도를 맞는 바람에 2000만원의 자본금이 6개월 만에 바닥났다.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타고 다니던 승용차까지 팔았지만 난국을 수습할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어머니가 다니던 절을 찾아갔다.
―절에서 길을 찾았습니까.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간 절이었지만 앞이 보이지 않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부처님께 천 배를 드리면 뭔가 길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어 초저녁부터 밤을 꼬박 새우며 천 배를 했지요. 그런데 길은커녕 도리어 머릿속이 하얘질 뿐이었습니다. 나중에야 그것이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대표는 “온갖 걱정과 근심으로 들끓던 머리가 하얀 백지처럼 깨끗해지니 비로소 새로운 아이템이 떠오르더라”고 했다.
―어떤 아이템이었습니까.
“극세사를 안경닦이용 와이퍼뿐만 아니라 행주 같은 클리너 제품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인조 스웨이드나 블라우스 등을 만드는 고급 섬유로 행주를 만든다고 하니 ‘미쳤다’고 하더군요. 그런 반응에 더 용기를 냈습니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제품을 시장이 알아준다는 판단에서였죠.”
사업이 되려고 한 것인지 운도 따랐다. 면으로 된 청소용품을 유럽에 수출하고 있던 기업이 그를 찾아와 “극세사로 된 청소용품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제의해 온 것이다. 행주도 만드는데 청소용품이라고 못 만들 리 없었다. 6개월 동안의 연구와 실험 끝에 유럽 시장이 원하는 클리너를 개발해 네덜란드에 샘플을 보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일반 면제품에 비해 훨씬 깨끗하게 닦이는 데다 미세먼지까지 해결해 주니 청결에 목숨을 거는 유럽인들이 환호했다. 샘플을 보내자마자 주문이 쇄도했다. 네덜란드를 발판으로 시장이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았는데도 유럽 시장에서 주문이 쇄도했다는 건가요.
“해외 시장이 그렇게 관대할 리가 없지요. 샘플에 대한 반응을 체크한 후 제품에 자신감을 갖고 마케팅을 하러 유럽과 미국을 밤낮없이 누볐습니다. 여행용 트렁크에 샘플을 가득 넣고 바이어들을 찾아다녔죠.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낮에는 바이어들을 만나 상담하고, 밤에는 자동차로 이동하는 강행군을 했습니다. 그렇게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다 교통사고가 나기도 했죠.”
샘플이 가득 든 트렁크 때문에 공항에서는 보따리장수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1998년 세계 최고의 클리너 전시회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렸을 때는 무명 업체라는 이유로 부스를 얻지 못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제품에 자신감이 있었던 그는 트렁크를 들고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갔다. 그러곤 전시회장 부근의 거리와 스낵바에 트렁크를 풀고 바이어들을 만났다. 그렇게 피나는 노력 끝에 유럽 시장을 개척했고, 미국의 월마트와 코스트코 등 대형 할인점과 백화점에 입성할 수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탄탄대로일 것 같던 클리너 사업은 1998년 외환위기와 함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외환위기 직전 원화 3억5000만원과 외화 20만 달러를 은행에서 대출받아 부천에 공장을 짓고 독일산 기계를 사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대출 당시 달러당 800원이었던 원화가치가 1800원으로 급락했다. 기계 구입비와 통관비가 두 배 이상 증가하면서 대출 이자가 엄청난 무게로 짓눌렀다. 1억6000만원이었던 통관비가 3억6000만원까지 올라 이에 대한 이자도 5%에서 24%로 급상승했다고 한다. 자본금 2000만원이 바닥났을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나요.
“원화가치 폭락은 매출 증대에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환율 덕분에 매출과 이익이 두 배 이상 증가했죠. 2000년에는 다국적 기업인 3M과 극세사 분야에서 독점 계약을 맺기도 했어요.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안정된 공급처가 확보되면서 매출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외환위기 직전 28억원이었던 매출이 2000년대 들어서면서 100억원대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경쟁사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다. 그는 “첨단 소재와 신제품을 내놓지 않으면 한 방에 훅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경쟁사들이 사라져갈 때마다 안도감보다 위기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치고 R&D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해온 것으로 압니다.
“회사 설립 때부터 전체 인력의 20%는 연구 인력에, 매출의 5% 이상은 연구개발비로 쓰자는 원칙을 고수해 왔습니다. 현재 R&D 분야에만 3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회사 자체적으로 투자한 것 못지않게 정부 지원금도 많이 받았죠.”
(주)웰크론은 2004년 지식경제부로부터 부품소재기술개발사업비로 42억원을 지원받았다. 이 지원금으로 4년여 연구 끝에 여과 효율 100%에 가까운 울파(ULPA)필터 원단의 원천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국내 최초였다. 울파필터는 0.1나노미터의 입자를 99.999% 이상 여과할 수 있는 최고 등급의 필터로 반도체나 LCD 제조 공정의 공기정화용 필터로 사용되고 있다. 기존에 사용되던 유리섬유 필터보다 여과 효율이 뛰어나고 사용 후 폐기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적게 유발할 뿐만 아니라 인체에도 무해하다는 것이 이 필터의 장점이다.
이 회사는 고효율 필터인 헤파(HEPA)필터까지 개발해 공기청정기나 에어컨, 청소기 등 가전제품에 공급하고 있다. 헤파필터는 0.3나노미터 크기의 미세먼지를 99.97% 이상 여과할 수 있다고 한다.
방탄복 개발, 동남아 시장 우선 판매 추진
(주)웰크론은 현재 유럽 등 필터업체에 헤파·울파필터를 납품해 월 평균 8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또한 국내 가전업체들도 기존 해외에서 들여오던 필터 대신 이 회사가 개발한 필터로 대체해 사용 중이다.
―최근에는 나노섬유 방탄복까지 개발했죠.
“네. 듀폰과 공동으로 1년여 연구 끝에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듀폰에서 케블라(Kevlar·미국 듀폰이 개발한 고강력 섬유) 원면을 들여와 저희가 직접 실을 만들고 직조(織造)했지요. 고강력 솜이라 해도 그걸 어떻게 실로 뽑고 짜느냐에 따라 방탄 성능이 달라집니다.”
이 회사가 개발한 방탄복은 현재 군경(軍警)에서 사용하는 기존 제품보다 성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그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실탄 테스트를 한 결과 성능이 검증됐다”며 “기존 제품의 경우 총알이 뚫고 지나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회사의 방탄복은 동남아 시장부터 공략하고 있다. 한국은 납품 경험이 없는 업체의 경우 적격심사에서 불리해 선정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한국 군경에 방탄복을 납품하는 업체는 어떤 곳인가요.
“3개의 방탄복 전문 제작 업체가 납품하고 있습니다. 모두 해외에서 원단을 들여다 봉제하고 있지요. 문제는 총탄의 성능이 계속 진화했는데, 방탄복 규격은 15년 전에 정해놓은 것 그대로라는 데 있습니다. 저희는 애초부터 세계 최고라고 말하는 미국 규격에 맞춰 제작했지요.”
―방검복도 개발한 것으로 아는데, 방검복은 방탄복과 많이 다른가요.
“총과 칼의 성격이 다르듯 방탄복과 방검복 또한 쓰임새가 다르죠. 방탄복은 칼이나 창처럼 날카로운 것에 약하고, 방검복은 총탄에 약합니다. 방탄복은 주로 군대와 경찰에서 사용하고, 방검복은 경찰과 보안업체, 레저업체에서 사용하죠. 쓰임새가 다른 만큼 시장 또한 다르다는 뜻입니다.”
전 세계 곳곳이 분쟁 지역이라 시장이 제법 크다. (주)웰크론은 방탄복·방검복이 동남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영규 대표는 “방탄복뿐만 아니라 인조피부, 인조혈관, 혈액필터 등 최첨단 의료제품 분야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자랑했다. 그는 “세균 보호복도 준비 중”이라며 “산업용 섬유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플랜트 회사 인수 합병
(주)웰크론은 2007년 프리미엄급 여성 청결용품 업체인 (주)예지미인을 인수했다. 그해 말 사명(社名)을 (주)은성코퍼레이션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웰크론’(WELCRON)은 건강한 삶과 행복을 추구하는 ‘웰빙’(Well-Being)과 미세기술을 뜻하는 ‘마이크론’(Micron)의 합성어라고 한다. 사명에는 직원들의 복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이 대표의 의지도 담겨 있다.
그의 집무실 벽에는 전 직원의 이름과 사진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그는 “전에는 전 직원의 얼굴과 이름은 물론 근무 부처까지 숙지하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두 회사를 인수하고 난 후 직원이 많아져 그게 쉽지 않다”며 웃었다.
―새로 인수한 두 플랜트 회사는 섬유와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한텍엔지니어링은 에너지 절감 설비와 폐수처리 및 담수화 설비가 주력이고, 강원비앤이는 산업용 보일러 설비가 주력인 회사입니다. 비전문가들이 보기에 두 회사와 웰크론은 전혀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폐수나 담수화 설비의 핵심 부품 중 하나가 바로 필터이기 때문이죠. 또 해수(海水)를 증발시켜 담수로 만드는 과정에는 반드시 보일러 기술이 필요하고요. 웰크론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부분이 많습니다.”
1994년에 설립된 한텍엔지니어링은 2008년 코스닥에 상장되었으며, 연 매출이 300억원에 달하는 우량 중소업체이다. 강원비앤이(1976년 창립) 역시 2009년 코스닥에 상장되었으며, 연 매출이 400억원에 이른다. 이 회사의 경우 가스전에서 황을 먼저 제거하는 황회수설비(SRU) 기술을 독보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국내 업체로는 유일하게 이란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 6개 공구에 납품하는 등 해외 수주 경험까지 있다.
―코스닥 상장사인데다 나름 경쟁력이 있는 업체들이라 인수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두 업체는 모두 한양대 공대 동문들이 경영하던 회사입니다. 두 분 다 엔지니어 출신 CEO라 코스닥 상장 후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한계를 느끼고 제게 인수해 줄 것을 제의해 왔지요. 제가 대신해 회사를 키워주기를 바랐던 것이죠. 엔지니어 출신이면서 짧은 시간 안에 웰크론을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점에 믿음을 갖고 회사를 저에게 맡긴 겁니다.”
―플랜트 분야에도 경험이 있나요.
“회사는 엔지니어 감각으로 경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장 후 회사를 성장시키려면 새로운 경영기법이 가미돼야 하죠. 엔지니어 마인드로는 절대 회사를 키울 수 없습니다.”
올해 안에 직원 1000명 채용 예정
학교 동문들이 믿고 맡기는 데다 코스닥 상장기업이었기에 인수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웰크론과 기업문화가 달라 직원들이 하나로 융화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한다.
―회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소통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데요.
“두 회사 모두 공장을 제외한 사무소를 본사로 옮겼습니다. 홈그라운드로 들어와야 마인드가 변하고, 경영철학이 일관된다는 것이 제 생각이지요.”
―창립 초기부터 지금껏 대기업 못지않은 직원 복지제도를 고수해 온 것으로 아는데, 회사 규모가 커진 상황에서도 가능할까요.
“웰크론의 경영철학과 정책 중 최우선이 직원 복지입니다. 창립 초기부터 자녀 학비 지원, 배우자 건강검진 제공, 주택자금 대출, 연봉 이외의 인센티브 등 많은 복지 혜택을 제공해 왔지요. 돈 걱정이 없어야 직원들이 당당하고 투명하게 근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직원 복지 부문만큼은 아낌없이 투자해 왔습니다. 이 원칙은 새로 인수한 두 회사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지요.”
이 대표는 “감성 충전을 위해 직원들의 생일도 챙겨왔다”며 최근에는 자신이 타고 다니는 승용차(에쿠스 리무진)를 웨딩카로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복지 혜택이 인력 수급에 도움이 되나요.
“중소기업의 어려운 점 중의 하나가 바로 인력 수급입니다. 젊고 창의적인 인재들이 대기업을 선호하기 때문이죠. 입사 후 적응할 만하면 대기업으로 옮겨가는 직원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그 때문에 복지 혜택을 늘려간 부분도 없지 않아 있어요.”
―올해 신입사원을 뽑았습니까.
“저희는 수시 채용하고 있습니다. 지방 유수 대학과 MOU를 체결해 맞춤형 인재를 육성하는 방식으로 인력난을 해소해 왔지요. 경북 구미의 금오공대와 대구의 계명대에 발전기금과 장학금을 지원해 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플랜트 회사에 필요한 인재 육성을 위해 단국대와도 MOU를 체결할 계획입니다.”
덩치가 커진 이 회사는 2015년 매출 1조원 달성을 위한 첫걸음으로 올해 안에 1000명의 직원을 채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대표는 “한 달에 200명 정도씩 뽑아야 하는데, 앞으로 그 많은 직원 이름을 외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득하다”며 웃었다.⊙
극세사는 폴리에스테르를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보다 가늘고 얇게 수축 가공한 섬유다. 이 특수 섬유는 흡수력과 배수력이 뛰어나고 항균성이 강해 미세먼지를 걸러주는 필터나 마스크, 고기능성 클리너 제품에 활용된다.
또한 극세사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된 나노섬유는 반도체 클린룸용 와이퍼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에는 최첨단 방탄복·방검복, 의료용 인조피부 등에도 사용된다. 옷의 원료로만 알았던 섬유가 IT와 BT(생명공학) 분야의 최첨단 소재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주)웰크론은 특수 기능의 섬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극세사 클리너와 목욕용품, 청소용품 등은 지식경제부의 세계 일류 상품에 선정됐다. 이들 제품은 미국과 유럽 등 세계 5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으며, 클린룸용 와이퍼는 국내외 반도체 기업에 납품되고 있다.
국내 생활용품 시장에서는 아토피 피부염의 주범인 진드기의 침투를 막아주는 극세사 침구류가 단연 인기다. 전국 주요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세사’(SESA)와 대형 할인마트에 들어가 있는 ‘바솜’(Bathom)이 이 회사 브랜드다.
 |
| (주)웰크론이 생산 판매하는 극세사 침구류. |
이들 관계사까지 합친 (주)웰크론의 총 매출 규모는 웬만한 중소기업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2009년 기준 이들 4개 회사의 총 매출액은 1700억원. 종사하는 직원도 400명이 넘는다. 이영규(李榮珪) 대표는 올해 초 “웰크론 4개 계열사의 올해 총 매출 목표는 2100억원”이라며 “2015년에는 이들 계열사 간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 웰크론을 1조원 기업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상당히 자신감에 찬 모습이었다.
이 대표는 (주)웰크론의 CEO이자 창업주이다. 그는 1992년 은행에서 대출받은 자본금 2000만원으로 ‘은성코퍼레이션’이라는 봉제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직원은 자신까지 총 3명. 그로부터 불과 20년 만에 회사를 수천 배 규모의 중견 기업으로 키운 이영규 대표를 만났다.
후배 둘 데리고 창업
 |
| 서울 구로구 가산 디지털 단지 내에 있는 (주)웰크론 본사. |
―그런 체력이 어디서 나옵니까.
“대학 때부터 축구, 야구, 산악자전거, 마라톤 등 운동을 즐겨 한 덕분입니다. 지금도 새벽 5시에 일어나 한 시간 반 동안 운동한 후 출근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요. 여러 가지 업무를 동시에 챙겨야 하는 중소기업 CEO로서는 체력이 돈이고 경쟁력입니다.”
―사장이 체력이 좋으면 직원들이 고생일 텐데요.
“맞습니다. 지난해 8월에는 전 직원과 함께 30km 야간 행군을 했고, 10월에는 10km 마라톤을 했지요. 지난 4월에는 6시간 코스의 등반 대회도 가졌죠. 제가 앞에서 ‘나를 따르라’며 걷고 달리니 피할 수도 없고 죽을 맛일 겁니다. 하지만 완주하고 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해냈다’는 성취감이 생기죠. 이 힘은 조직에서 목표에 대한 집념과 팀워크로 나타납니다.”
이 대표는 “중소기업에서는 CEO 못지않게 직원들도 체력과 정신력이 강해야 한다”며 “전 직원 극기훈련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근육이 많이 붙으면 회사건 사람이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표현인 듯했다. 남들은 빠르다고 하지만 그에게 지난 20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대학 졸업 후 섬유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거친 그가 독립한 것은 1992년 5월. 후배 두 명과 함께 서울 포이동의 두 평 남짓한 공간에 봉제공장을 차리면서였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창업한 셈인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대학 다닐 때부터 사업을 꿈꿨습니다. 졸업 후 대기업에 근무하는 동안에는 사업을 구체화하기 위해 열심히 아이템을 찾았죠. 뭐든 사업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일도 열심히 했습니다. 동료들로부터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 한다’는 눈총을 받을 정도였죠. 하지만 전담 파트가 있는 대기업에서 저는 수많은 부속품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
| 전 직원 30km 야간 행군 당시 앞장서서 걷고 있는 이영규 대표(맨 앞줄 왼쪽). |
아버지에게 망하는 법부터 배워
1년여 만에 안정이 보장된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섬유무역 중소업체 대리로 입사했다. 이곳에서 4년여 동안 근무하며 사업 아이템도 찾았고, 무역에도 눈을 떴다. 그는 “섬유전시회 참관을 위해 일본에 갔다가 그곳에서 고급 의류 섬유인 극세사를 안경닦이로 활용하는 것을 보고 사업 아이템을 정했다”고 말했다. 극세사의 부가가치에 눈을 떴다는 것이다.
―가능성만 믿고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너무 무모한 도전 아닌가요.
“경영 수업을 위해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에 임원으로 들어가는 등 나름 차근차근 준비했으니 당시로서는 무모한 도전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방만한 경영으로 사세(社勢)가 급격히 기울어가던 친구 회사에서 배운 게 많았어요. 물려받은 재산으로 사업을 한 그 친구는 큰 고민 없이 일을 벌였고, 어음 결제가 다반사였습니다. 저한테 보증을 서달라고 하기도 했어요. 결국 제가 회사를 그만두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는 부도가 났죠. 친구 회사에서 ‘이렇게 하면 망한다’는 뼈아픈 공부를 한 셈입니다.”
그는 사업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버지를 통해서도 ‘사업에 성공하는 법’보다 ‘실패하는 법’을 익혔다고 한다. 비누 공장을 했던 그의 아버지는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하고 하루도 쉬지 않을 만큼 성실했지만 주위 사람을 너무 믿은 나머지 회사를 부도냈다고 한다. 보증을 잘못 서 평생 일군 재산을 하루아침에 날렸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공장에서 놀며 일을 거들던 이 대표는 ‘내가 만약 사업을 하게 되면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회사를 담보로 보증은 서지 않으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족이 겪은 경제적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족이 사업이라면 경기를 일으켰을 법한데,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죠.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몰락하고, 채권자들과 은행에 시달린 경험이 있으니 당연했습니다. ‘절대 안 된다’는 어머니를 1년 동안 설득한 끝에 겨우 허락을 받았지요. 그것도 ‘아버지처럼 보증을 서지 않고 어음을 주고받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서요.”
―그렇게 기를 쓰고 사업에 매달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사업 실패로 추락한 집안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믿으면서도 망하지 않는 사업을 하고 싶었고, ‘사업은 이렇게 하는 거다’라는 표본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처절한 실패의 경험을 내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오기도 있었습니다.”
―그런 자신감과 오기는 어디에서 나온 건가요.
“제가 깡다구가 좀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도와 비누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제조업에 대한 마인드가 자연스럽게 싹튼 것 같아요. 저는 물건 만드는 일이 재미있더라고요. 물건만 파는 장사꾼보다는 직접 개발하고 제조해서 판매까지 하는 사업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자본금 2000만원 6개월 만에 바닥나
식구의 반대를 물리치고 젊음과 패기로 시작한 사업은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창업만 하면 일거리를 주겠다던 사람들이 막상 일을 시작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외면했다. 그런데다 어렵게 거래를 튼 업체가 부도를 맞는 바람에 2000만원의 자본금이 6개월 만에 바닥났다.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타고 다니던 승용차까지 팔았지만 난국을 수습할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어머니가 다니던 절을 찾아갔다.
―절에서 길을 찾았습니까.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간 절이었지만 앞이 보이지 않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부처님께 천 배를 드리면 뭔가 길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어 초저녁부터 밤을 꼬박 새우며 천 배를 했지요. 그런데 길은커녕 도리어 머릿속이 하얘질 뿐이었습니다. 나중에야 그것이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대표는 “온갖 걱정과 근심으로 들끓던 머리가 하얀 백지처럼 깨끗해지니 비로소 새로운 아이템이 떠오르더라”고 했다.
―어떤 아이템이었습니까.
“극세사를 안경닦이용 와이퍼뿐만 아니라 행주 같은 클리너 제품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주위 분들은 인조 스웨이드나 블라우스 등을 만드는 고급 섬유로 행주를 만든다고 하니 ‘미쳤다’고 하더군요. 그런 반응에 더 용기를 냈습니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제품을 시장이 알아준다는 판단에서였죠.”
사업이 되려고 한 것인지 운도 따랐다. 면으로 된 청소용품을 유럽에 수출하고 있던 기업이 그를 찾아와 “극세사로 된 청소용품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제의해 온 것이다. 행주도 만드는데 청소용품이라고 못 만들 리 없었다. 6개월 동안의 연구와 실험 끝에 유럽 시장이 원하는 클리너를 개발해 네덜란드에 샘플을 보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일반 면제품에 비해 훨씬 깨끗하게 닦이는 데다 미세먼지까지 해결해 주니 청결에 목숨을 거는 유럽인들이 환호했다. 샘플을 보내자마자 주문이 쇄도했다. 네덜란드를 발판으로 시장이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았는데도 유럽 시장에서 주문이 쇄도했다는 건가요.
“해외 시장이 그렇게 관대할 리가 없지요. 샘플에 대한 반응을 체크한 후 제품에 자신감을 갖고 마케팅을 하러 유럽과 미국을 밤낮없이 누볐습니다. 여행용 트렁크에 샘플을 가득 넣고 바이어들을 찾아다녔죠.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낮에는 바이어들을 만나 상담하고, 밤에는 자동차로 이동하는 강행군을 했습니다. 그렇게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다 교통사고가 나기도 했죠.”
샘플이 가득 든 트렁크 때문에 공항에서는 보따리장수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1998년 세계 최고의 클리너 전시회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렸을 때는 무명 업체라는 이유로 부스를 얻지 못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제품에 자신감이 있었던 그는 트렁크를 들고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갔다. 그러곤 전시회장 부근의 거리와 스낵바에 트렁크를 풀고 바이어들을 만났다. 그렇게 피나는 노력 끝에 유럽 시장을 개척했고, 미국의 월마트와 코스트코 등 대형 할인점과 백화점에 입성할 수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
|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클린룸용 와이퍼. |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나요.
“원화가치 폭락은 매출 증대에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환율 덕분에 매출과 이익이 두 배 이상 증가했죠. 2000년에는 다국적 기업인 3M과 극세사 분야에서 독점 계약을 맺기도 했어요.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안정된 공급처가 확보되면서 매출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외환위기 직전 28억원이었던 매출이 2000년대 들어서면서 100억원대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경쟁사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다. 그는 “첨단 소재와 신제품을 내놓지 않으면 한 방에 훅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경쟁사들이 사라져갈 때마다 안도감보다 위기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
| 공기청정기나 에어컨, 청소기 등에 사용되는 헤파필터. |
“회사 설립 때부터 전체 인력의 20%는 연구 인력에, 매출의 5% 이상은 연구개발비로 쓰자는 원칙을 고수해 왔습니다. 현재 R&D 분야에만 3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회사 자체적으로 투자한 것 못지않게 정부 지원금도 많이 받았죠.”
(주)웰크론은 2004년 지식경제부로부터 부품소재기술개발사업비로 42억원을 지원받았다. 이 지원금으로 4년여 연구 끝에 여과 효율 100%에 가까운 울파(ULPA)필터 원단의 원천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국내 최초였다. 울파필터는 0.1나노미터의 입자를 99.999% 이상 여과할 수 있는 최고 등급의 필터로 반도체나 LCD 제조 공정의 공기정화용 필터로 사용되고 있다. 기존에 사용되던 유리섬유 필터보다 여과 효율이 뛰어나고 사용 후 폐기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적게 유발할 뿐만 아니라 인체에도 무해하다는 것이 이 필터의 장점이다.
이 회사는 고효율 필터인 헤파(HEPA)필터까지 개발해 공기청정기나 에어컨, 청소기 등 가전제품에 공급하고 있다. 헤파필터는 0.3나노미터 크기의 미세먼지를 99.97% 이상 여과할 수 있다고 한다.
방탄복 개발, 동남아 시장 우선 판매 추진
 |
| 미국과 유럽에 수출되고 있는 극세사 클리너. |
―최근에는 나노섬유 방탄복까지 개발했죠.
“네. 듀폰과 공동으로 1년여 연구 끝에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듀폰에서 케블라(Kevlar·미국 듀폰이 개발한 고강력 섬유) 원면을 들여와 저희가 직접 실을 만들고 직조(織造)했지요. 고강력 솜이라 해도 그걸 어떻게 실로 뽑고 짜느냐에 따라 방탄 성능이 달라집니다.”
이 회사가 개발한 방탄복은 현재 군경(軍警)에서 사용하는 기존 제품보다 성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그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실탄 테스트를 한 결과 성능이 검증됐다”며 “기존 제품의 경우 총알이 뚫고 지나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회사의 방탄복은 동남아 시장부터 공략하고 있다. 한국은 납품 경험이 없는 업체의 경우 적격심사에서 불리해 선정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
| 웰크론이 듀폰과 함께 연구 개발한 방탄복과 방검복. |
“3개의 방탄복 전문 제작 업체가 납품하고 있습니다. 모두 해외에서 원단을 들여다 봉제하고 있지요. 문제는 총탄의 성능이 계속 진화했는데, 방탄복 규격은 15년 전에 정해놓은 것 그대로라는 데 있습니다. 저희는 애초부터 세계 최고라고 말하는 미국 규격에 맞춰 제작했지요.”
―방검복도 개발한 것으로 아는데, 방검복은 방탄복과 많이 다른가요.
“총과 칼의 성격이 다르듯 방탄복과 방검복 또한 쓰임새가 다르죠. 방탄복은 칼이나 창처럼 날카로운 것에 약하고, 방검복은 총탄에 약합니다. 방탄복은 주로 군대와 경찰에서 사용하고, 방검복은 경찰과 보안업체, 레저업체에서 사용하죠. 쓰임새가 다른 만큼 시장 또한 다르다는 뜻입니다.”
전 세계 곳곳이 분쟁 지역이라 시장이 제법 크다. (주)웰크론은 방탄복·방검복이 동남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영규 대표는 “방탄복뿐만 아니라 인조피부, 인조혈관, 혈액필터 등 최첨단 의료제품 분야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자랑했다. 그는 “세균 보호복도 준비 중”이라며 “산업용 섬유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플랜트 회사 인수 합병
 |
| 지난해 웰크론이 인수한 담수화 플랜트 전문 기업 한텍. |
그의 집무실 벽에는 전 직원의 이름과 사진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그는 “전에는 전 직원의 얼굴과 이름은 물론 근무 부처까지 숙지하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두 회사를 인수하고 난 후 직원이 많아져 그게 쉽지 않다”며 웃었다.
―새로 인수한 두 플랜트 회사는 섬유와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한텍엔지니어링은 에너지 절감 설비와 폐수처리 및 담수화 설비가 주력이고, 강원비앤이는 산업용 보일러 설비가 주력인 회사입니다. 비전문가들이 보기에 두 회사와 웰크론은 전혀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폐수나 담수화 설비의 핵심 부품 중 하나가 바로 필터이기 때문이죠. 또 해수(海水)를 증발시켜 담수로 만드는 과정에는 반드시 보일러 기술이 필요하고요. 웰크론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부분이 많습니다.”
1994년에 설립된 한텍엔지니어링은 2008년 코스닥에 상장되었으며, 연 매출이 300억원에 달하는 우량 중소업체이다. 강원비앤이(1976년 창립) 역시 2009년 코스닥에 상장되었으며, 연 매출이 400억원에 이른다. 이 회사의 경우 가스전에서 황을 먼저 제거하는 황회수설비(SRU) 기술을 독보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국내 업체로는 유일하게 이란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 6개 공구에 납품하는 등 해외 수주 경험까지 있다.
―코스닥 상장사인데다 나름 경쟁력이 있는 업체들이라 인수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두 업체는 모두 한양대 공대 동문들이 경영하던 회사입니다. 두 분 다 엔지니어 출신 CEO라 코스닥 상장 후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한계를 느끼고 제게 인수해 줄 것을 제의해 왔지요. 제가 대신해 회사를 키워주기를 바랐던 것이죠. 엔지니어 출신이면서 짧은 시간 안에 웰크론을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점에 믿음을 갖고 회사를 저에게 맡긴 겁니다.”
―플랜트 분야에도 경험이 있나요.
“회사는 엔지니어 감각으로 경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장 후 회사를 성장시키려면 새로운 경영기법이 가미돼야 하죠. 엔지니어 마인드로는 절대 회사를 키울 수 없습니다.”
| ▣ 성공 노트 진심은 통한다 중소기업 CEO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역시 자금 조달 부분이다. 나의 경우 은행과 벤처캐피털에서 투자를 받았다. 투자 유치 당시 IR은 직원이 아니라 CEO인 내가 직접 했다. 벤처캐피털은 투자처에 대한 신뢰감을 서류가 아니라 회사를 운영하는 당사자와의 교감으로 얻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예상은 적중했다. 생각해 보면 투자자는 CEO의 화술보다는 진정성을 많이 보는 것 같다. 2001년 코스닥에 상장할 때도 섬유산업이 사양(斜陽)산업이라는 이유로 심사에서 차별받았다. 잘못 상장했다가 폐지되면 주주들의 원성만 살 것이라 우려한 것이다.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섬유산업이 첨단산업임을 여러 사례를 들어 끈질기게 설득했다. 또한 CEO로서 자신감도 적극 내비쳤다. 그 결과 그해 상장 신청 10개 기업 중 최종 통과된 5개 기업에 간신히 포함됐다. 섬유업체로서는 유일했다. 직관력이 필요하다 강한 기업은 규모가 큰 기업이 아니라 시장에서 살아남는 기업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기에 강해야 한다. 나는 2009년부터 올해까지 회사 구호를 ‘위기가 기회다’로 정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전 직원이 하나로 뭉쳐 한 방향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전 직원 극기훈련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방향을 정하는 것은 리더의 몫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 참모들의 의견을 정보로 수집한 후 최종 결정은 리더 혼자 해야 한다. 수많은 정보 중 하나를 선택할 때는 타인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CEO의 직관으로 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나는 중소기업 CEO가 갖춰야 할 조건으로 체력과 직관력을 꼽는다. CEO 전기를 읽는다 장기 출장을 갈 때면 책을 한 권씩 들고 가 읽는다. CEO가 되고 싶다면 적어도 성공한 기업인들의 전기나 자서전은 읽어둘 필요가 있다. 읽다 보면 자신이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이 보인다. 나는 정주영 회장의 직관력, 이병철 회장의 인재 쓰는 법, 김우중 회장의 해외시장 개척법을 벤치마킹했다. 성공 키워드는 이것 꿈(비전과 희망), 끼(적성과 자질), 깡(배짱과 추진력, 패기와 투지), 끈(인적 네트워크), 꾀(아이디어와 기획력), 꼴(매너와 태도). |
올해 안에 직원 1000명 채용 예정
학교 동문들이 믿고 맡기는 데다 코스닥 상장기업이었기에 인수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웰크론과 기업문화가 달라 직원들이 하나로 융화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한다.
―회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소통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데요.
“두 회사 모두 공장을 제외한 사무소를 본사로 옮겼습니다. 홈그라운드로 들어와야 마인드가 변하고, 경영철학이 일관된다는 것이 제 생각이지요.”
―창립 초기부터 지금껏 대기업 못지않은 직원 복지제도를 고수해 온 것으로 아는데, 회사 규모가 커진 상황에서도 가능할까요.
“웰크론의 경영철학과 정책 중 최우선이 직원 복지입니다. 창립 초기부터 자녀 학비 지원, 배우자 건강검진 제공, 주택자금 대출, 연봉 이외의 인센티브 등 많은 복지 혜택을 제공해 왔지요. 돈 걱정이 없어야 직원들이 당당하고 투명하게 근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직원 복지 부문만큼은 아낌없이 투자해 왔습니다. 이 원칙은 새로 인수한 두 회사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지요.”
이 대표는 “감성 충전을 위해 직원들의 생일도 챙겨왔다”며 최근에는 자신이 타고 다니는 승용차(에쿠스 리무진)를 웨딩카로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복지 혜택이 인력 수급에 도움이 되나요.
“중소기업의 어려운 점 중의 하나가 바로 인력 수급입니다. 젊고 창의적인 인재들이 대기업을 선호하기 때문이죠. 입사 후 적응할 만하면 대기업으로 옮겨가는 직원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그 때문에 복지 혜택을 늘려간 부분도 없지 않아 있어요.”
―올해 신입사원을 뽑았습니까.
“저희는 수시 채용하고 있습니다. 지방 유수 대학과 MOU를 체결해 맞춤형 인재를 육성하는 방식으로 인력난을 해소해 왔지요. 경북 구미의 금오공대와 대구의 계명대에 발전기금과 장학금을 지원해 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플랜트 회사에 필요한 인재 육성을 위해 단국대와도 MOU를 체결할 계획입니다.”
덩치가 커진 이 회사는 2015년 매출 1조원 달성을 위한 첫걸음으로 올해 안에 1000명의 직원을 채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대표는 “한 달에 200명 정도씩 뽑아야 하는데, 앞으로 그 많은 직원 이름을 외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득하다”며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