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당사자들은 “공공성 실현을 명분으로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공기업이 성공적인 사업추진보다는 땅장사 논란을 야기할 정도로 토지대금 회수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 서울시의 무관심과 地主인 코레일의 ‘땅장사’ 욕심이 주범
⊙ 부동산 전문가들, “난항 겪겠지만 결국은 사업 진행될 것”
⊙ 해외에서도 유사 사례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도심개발
⊙ 입지 좋지만 땅값 너무 높게 책정됐다
⊙ 서울시의 무관심과 地主인 코레일의 ‘땅장사’ 욕심이 주범
⊙ 부동산 전문가들, “난항 겪겠지만 결국은 사업 진행될 것”
⊙ 해외에서도 유사 사례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도심개발
⊙ 입지 좋지만 땅값 너무 높게 책정됐다
- 드림허브 사업단이 서울 용산역세권에 건설할 국제업무지구 조감도.
중소규모의 건설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한 지인은 최근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요즘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F·금융권이 특수부동산에 대한 사업성만 보고 별도의 보증 없이 하는 대출)이 되지 않아 정말 건설업 해먹기 어렵게 됐다. 아마 용산 역세권 사업도 PF 때문에 진행이 어려워 접어야 할 상황이 올 것이다.”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불리는 서울 용산역세권 사업이 흔들리고 있다. 2007년 말 사업자 선정 당시 28조원 규모로 추산됐던 이 사업의 총사업비는 추정규모가 현재 31조원으로 늘어나 있는 상태다. 참고로 새만금사업은 2030년까지 21조원의 사업비가 투입될 예정이고, 내년 말 본공사가 마무리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총사업비는 22조원이다.
용산역세권 사업이 흔들리면서 좌초 위기에까지 내몰린 이유는 자금조달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산 역세권 개발 시행사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드림허브)는 지난 3월 31일까지 사업부지 매각사인 코레일(구 철도청)에 토지매입 대금 8조원 중 2차 중도금 및 4차 계약금 7010억원을 납부하지 못했다.
드림허브에는 코레일(지분율 25%), 롯데관광개발(15.10%), 국민연금(12.5%), 푸르덴셜(7.7%), 삼성물산(6.4%), 서울시 SH공사(4.9%) 등 30개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코레일은 높은 토지가를 고려해 사업부지를 4개의 구역으로 나눠서 매각했다. 드림허브는 4차에 걸쳐 이뤄지는 토지구입 계약 중 4차 계약금을 지난 3월 31일까지 내고 올해 토지보상에 착수, 내년부터 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4차 계약금 미납으로 드림허브가 토지 소유권을 확보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토지보상 협의가 시작되는 사업인정고시 및 개발계획 변경 등 주요 인허가 절차가 지연되게 됐다. 사업 일정이 사실상 올스톱됨으로써 2011년에 착공해 2016년 말 완공하겠다는 당초 일정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상업시설 코엑스 5배 규모
용산 역세권 사업은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와 서부이촌동 일대 56만6800㎡(약 17만평)를 100층 높이의 초고층 랜드마크 빌딩 등 국제업무 시설과 유통·주거·문화시설 등이 결합된 국제 비즈니스 중심지로 조성하는 초대형 부동산개발 프로젝트다. 연면적은 336만2526㎡(약 100만평)로 일본 롯폰기힐스 및 도쿄 미드타운의 5배, 계획상업시설 규모(23만 평)는 코엑스의 5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 사업이 4차 계약금 미납으로 차질을 빚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 주요 자금줄인 PF 대출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1차 계약금 지불 등 초기 비용은 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의 투자금(1조원)으로 가능했지만, 나머지 비용은 PF 대출과 분양대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드림허브는 총사업비 중 10조원을 PF로 조달한다는 계획이었다. 상업·업무·주거단지의 분양대금은 공사가 시작돼야 확보가 가능한 자금이다. 출자사들의 증자가 없는 한 PF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금융권의 PF 대출은 중단된 상태다. 자금줄이 막혀버린 것이다.
드림허브는 이번에 미납한 7010억원 외에도 토지보상 비용 등으로 당장 1년 내에 4조원의 자금이 필요한 상태다. 토지주인 코레일 측은 미납금액 7010억원에 대해 연체 이자 17%를 물리고 있다. 하루 1억8000만원이다. 이렇게 예기치 않은 금융비용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해결 방안을 놓고 출자사들 간의 갈등은 깊어지고 있다. PF 대출 지급보증 문제를 놓고 출자사들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드림허브의 출자자는 크게 4개의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코레일과 SH공사 등의 공공 부문 투자자와 롯데관광개발 등의 전략적 투자자(SI:Strategic Investor·경영권 확보를 목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주는 투자자), 푸르덴셜 등의 재무적 투자자(FI:Financial Investor·배당금 등의 이익을 노리고 부족한 자금을 조달해 주는 투자자), 삼성물산 등의 건설투자자(CI:Construction Investor·시공을 통해 이익을 얻는 투자자)들로 30개 기관 및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지분 비율은 공공 부문이 29.9%, SI가 26.45%, FI가 23.65%, CI가 20.0%다.
이 가운데 SI·FI는 자금조달을 위해 CI 측에 PF 대출 보증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의 금융시장 상황에서 조 단위 PF 대출을 하기 위해서는 건설사들의 지급보증밖에 없고,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부동산개발사업 관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CI 측에서는 같은 출자사로서 지분율 20%에 불과한 시공사들에 지급보증을 미루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최선의 방법은 각 출자사들이 지분대로 증자를 하는 것이고 만약 각 사의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을 경우 차선책으로 지급보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출자사 중 최대주주이면서 땅 주인인 코레일은 미납금액에 대해 17%의 연체료를 부과하는 한편 토지대금 납부 조건의 변경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출자사들은 토지대금 미납 이후 10대 지분 출자자 회사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6월 10일 현재까지 아무런 해결 방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국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봐야
그렇다면 금융조달 문제 때문에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불리고 있는 용산 역세권사업이 좌초하고 말 것인가. 대부분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사업의 규모나 용산이라는 입지 조건 때문에 결국에는 사업이 시행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교언(沈敎彦) 교수의 말이다.
“미래는 국가와 국가 간의 경쟁보다는 도시와 도시 간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겁니다. 도시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 되는 것이죠. 도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유럽,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도심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수도 서울의 경우 여의도나 강남 등의 오피스타운은 세계에 내놓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용산은 서울의 한복판이면서 한강을 끼고 있고 철도가 공항을 비롯해 전국 각지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가 될 예정입니다. 글로벌 시티로 거듭나기 위한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가진 곳입니다. 이 사업은 사업의 규모면에서도 단순 개발 프로젝트가 아니라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그래서 현재는 사업 진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글로벌 시티 건설이라는 사업 목표대로 가기는 갈 겁니다.”
안계환 세빌스 코리아 부사장도 “용산 역세권 사업은 무산될 리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동산은 입지예요. 용산은 한강을 끼고 있으면서 미군부대와 철도청 부지라는 광대한 땅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입지 조건은 그동안 제공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전 세계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또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공항과 도심을 연결해야 하는데 용산이 바로 그런 곳이에요. PF 문제 등이 용산 개발 과정을 막지는 못할 겁니다. 게다가 이 개발은 지주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 개발이잖아요? 지주가 적절하게 리스크를 져 준다면 무리없이 추진될 겁니다.”
이렇게 전문가들이 장기적으로는 용산 역세권 사업의 전망을 밝게 보는데도 사업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뭘까. 2007년 말 사업자 선정 당시와 비교해 사업환경은 최악으로 변했는데도 사업조건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데 그 원인이 있다는 게 개발 당사자들의 주장이다.
사업 초기만 해도 줄을 서서 돈을 대겠다던 금융기관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실물경기가 침체하면서 현재는 모두 자취를 감추는 환경으로 상황이 변했는데도 토지대금 납입 방법, 사업성 증대를 위한 용적률의 변화 등 조건은 전혀 변한 게 없다는 것이다.
용산역세권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협약서 제45조 불가항력 사항에는 “불가항력의 사유로 인하여 계약 당사자 누구의 책임에도 속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계약 당사자 상호간의 협의하에 본 사업 협약 및 사업계획서 등을 변경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용산 역세권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시공사들은 PF 발생이 안되는 현재를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보고 있다. 사업자 선정 당시와 현재의 부동산 경기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다. 부동산 경기를 냉각시킨 한 요인인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예측 못한 자신들의 책임도 있지만, 그런 상황의 변화가 안겨준 리스크에 대한 책임을 자신들에게만 지운다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사업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당사자는 이 사업의 최대 출자자이자 토지주인 코레일과 사업의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서울시다.
개발당사자들은 “공공성 실현을 명분으로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공기업이 성공적인 사업추진보다는 땅장사 논란을 야기할 정도로 토지대금 회수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국 같으면 대통령이 개입할 사안”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최막중(崔莫重) 교수는 코레일이 땅장사에만 집착한다는 비판에 대해 “그런 측면이 있다”면서, “코레일이 땅 주인의 입장보다 개발자의 입장이 돼서 다른 출자사들과 함께 개발 수익을 나누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또 “이 사업은 진행이 되도록 해야 할 사업”이라면서, “이 사업은 외국 같으면 대통령이 개입해야 할 사업으로 단순히 사업적인 차원에서만 보지 말고 사회적 의미를 갖는 공공적 차원에서도 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교언 교수도 최 교수와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코레일이 땅장사를 하려고 했던 게 문제예요. 나중에 개발이익을 지분별로 배분하는 방법을 취했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 지주로서 개발에 참여하면서도 개발 초기에 토지비에 대한 부담을 너무 크게 만든 것은 잘못입니다.”
노무라종합연구소 사업개발컨설팅그룹 서울지점 최자령(崔慈玲) 팀장도 “코레일이 토지를 그대로 보유하면서 민간에 렌트해 개발하게 함으로써 임대료를 받는 것도 한 방법”이라면서, “그렇게 할 경우 코레일로서는 매각 시에 부담하는 세금이 감면되고 민간 개발자는 그만큼 자금 부담을 덜 수 있으니까 서로에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팀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용산 역세권 사업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렇게 전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을 만나 보면 용산이 갖고 있는 입지 조건은 좋다고들 해요. 그동안 이분들이 홍콩이나 싱가포르를 출장 갈 때 하루 6건의 미팅을 잡을 수 있었던 반면 서울은 하루 3, 4건의 미팅밖에 잡을 수 없다고 해요.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는 건데 교통체증 때문이죠. 그런데 용산은 분당선이나 공항철도 등 예정대로 교통시설이 개통된다면 공항도 가깝고 여의도도 가깝고 강남도 가깝기 때문에 비즈니스 업무 지역으로서의 효율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죠.”
제일 큰 문제는 대규모 개발비용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용산 역세권 개발 사업 초기부터 이 사업이 갖는 리스크 등에 대해 드림허브 측에 조언을 해 왔다고 한다. 최 팀장으로부터 그동안 어떤 조언을 해 왔는지,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들어봤다.
―용산 역세권 개발 사업 같은 사례가 외국에도 많습니까.
“이 사업의 제일 큰 특징은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이 정도 규모의, 이 정도 입지의 사업이라면 대부분 공공이나 정부 주도형이 많은데 민간기업이 주가 돼서 하는 대규모 복합개발사업이라는 것이죠. 부지면적 17만평에 연면적이 100만평이라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없는 대규모 복합개발사업입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얘기되는 일본의 미드타운이라든가 롯폰기힐TM의 5배 정도가 되고요. 상업시설 규모만 봐도 지금 코엑스의 5배 정도가 돼요. 또 하나는 단기간에 대규모 공급이 이루어진다는 게 큰 특징이죠.”
―2007년 삼성-국민연금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선정될 때 땅값으로 8조원을 제시하고 낙찰받았는데 너무 비쌌던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 사업의 제일 큰 문제점이 토지대에서 시작하거든요. 그런데 그 시점이, 보시면 잘 아시겠지만 부동산 시장이 좋았던 마지막 시점에 민간사업자들이 제안을 해서 낙찰이 된 케이스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부동산 개발에서 실패라는 게 없었잖아요. 그런데 그게 성사되고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그 부분이 부담이 되고 문제가 됐던 거죠. 민간사업이라는 게 수익이 전제가 돼야 하잖아요. 원가 자체에서 토지대가 8조원이고 거기다 금융비용에 서부이촌동의 민간사업부지까지 포함하면 13조원이 돼요. 13조원이라는 규모 자체가 워낙 크고, 이게 과연 국내에서 조달 가능한 금액인지를 생각해 봤어야죠.”
―일본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일본도 국철이 민영화되면서 소유 토지를 개발하려고 했어요. 1987년이니까 일본 부동산 시장이 좋았을 때였거든요. 버블 때였죠. 국철 청산사업단이라고 있었는데 토지를 그냥 매각해 버리면 높은 가격 때문에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국철 청산사업단이 토지를 그냥 갖고 있으면서 자기네들이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나서 민간한테 제공했죠. 사업기간도 20년 정도가 소요가 됐거든요. 시장이 오피스 등 거기에서 나오는 물량을 소화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본 거죠. 용산 같은 경우는 기간도 그것의 반이고 가격도 높은 상태에서 개발을 하려고 하니까 어려움이 많죠.”
―코레일로서는 부채 축소 등 공기업선진화 방안에 맞추려다 보니까 땅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사업에 참여한 민간업체들은 정말 그 시기가 부동산 버블이었다는 것을 몰랐던 걸까요?
“코레일 입장에서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건설사들 입장에 있어서도 이 정도의 대규모 개발사업을 그냥 놓칠 수는 없었다고 봅니다. 부동산 버블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는 지금까지도 명확하게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저희가 금융위기 이전부터 사업규모가 너무 크다, 사업비 자체가 너무 높다는 조언을 했어요. 그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한국시장은 일본시장과 많이 다르다는 말씀이었어요. 부동산 시장은 정책적인 영향이 큰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개발사업은 수요시장에서 공급량을 얼마만큼 받아줄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국내시장에서 수요 때문에 사업이 실패한 경우가 거의 없어서 누구도 부동산 버블이다, 공급과잉이다, 하는 부분을 결정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의견들을 주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국내 시장에서 부동산 실패에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 사업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입지적으로 잠재력이 많기 때문에 이 사업을 꼭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수요시장에 맞춰 공급기간은 재조정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출자사가 너무 많다
―어떤 점이 문제로 보였습니까.
“용산이 입지도 좋고 개발 가능성도 높은데, 단기간에 그만큼의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시장이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었죠. 그것을 개발하기 위한 자금이 28조, 30조원 가까이 되는데 그 정도의 자금이 국내에서 조달 가능한 규모인가 하는 의문이 있었죠.”
―다른 문제는요?
“출자사들이 만든 시행사의 자기자본 비율이 낮다는 점이었어요. 자기자본 비율이 낮다는 것은 금융비용을 더 많이 발생하게 한다는 거죠. 자기자본 비율이 높아야 시간적으로나 사업적인 측면에서 안정적으로 개발을 진행할 수 있어요. 외국 같은 경우는 대부분 30%에서 50% 정도 자기자본 비율을 가지고 개발을 하죠. 은행에서도 자기자본에 대한 부분은 담보가 되니까 그만큼 자본을 끌어오기가 쉬운데 용산 같은 경우는 자기자본이 1조원밖에 안돼요. 자기자본 비율이 총사업비의 3%에서 3.5% 정도밖에 안되는 거죠.”
―출자사들 전체가 출자액을 늘려야 한다는 말인가요?
“네. 게다가 FI, SI, CI의 입장이 엇갈리는 상태에서 출자사 30개는 너무 많아요. 저희가 한 50여 군데의 외국 투자사를 만나서 용산 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조사했어요.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출자사들이 너무 많다. 누가 메인 디벨로퍼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였어요.”
―이 사업에서 메인 디벨로퍼는 최대주주인 코레일 아닌가요?
“디벨로퍼라는 개념이 토지의 부가가치를 창출해서 시설에 대한 가치를 높여서 수익성을 내는 전문 부동산업자잖아요. 코레일은 부지의 소유자일 뿐이지 이 사업에서 메인 디벨로퍼는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개발을 할 수 있는 능력, 투자자들이 봤을 때 돈을 맡겨도 그만큼 개발을 잘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디벨로퍼가 없다는 거죠. ‘한국에는 디벨로퍼가 없기 때문에 더 맡기기가 힘들다, 투자하기가 어렵다’는 말씀들을 많이 해요.”
―현 상태에서는 코레일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죠. 그런 역할도 해야 하고, 토지대에 대한 부담이 너무 높으니까 그 부분을 조정을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사업이 진행되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조정이 필요할까요?
“이 시점에서 용산 개발을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은 단계별 개발이거든요. 지금 대지 17만평에 연면적 100만평짜리 개발이 잘 이루어져서 성공을 한다고 하더라도 시장에서 그 공급을 다 수용할 수 있는 규모는 아니라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한꺼번에 개발하기보다는 단계별로 나눠서 하는 게 좋다는 제안을 드리고 싶어요. 코레일도 지금 토지를 다 매각하는 걸로 돼 있는데 그걸 다 매각하지 말고 단계별로 매각하거나 개발하는 게 시장수요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자금조달 측면에서도 좋을 것 같아요.”
―일본의 경우 도심재개발을 할 때 정부 차원에서 어떤 인센티브를 줍니까.
“일본 같은 경우는 용적률 완화를 많이 해 주었어요. 도심재개발을 했을 때 과거의 600% 상한선을 800%, 1000%까지 높여준 사례도 있고요. 또 하나는 호텔, 콘퍼런스홀, 전시장 같은 수익성 없는 사업은 민간에서 꺼리잖아요? 만약에 이런 시설을 설치하면 그만큼 용적률을 높여주는 제도가 있어요. 그래서 최근에 일본의 도심개발 사례들을 보면 오피스 안에 오성급 호텔이 다 들어가 있어요. 그게 다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용적률을 더 높이기 위해서 한 거죠.”
사업 중단 아닌 보류 상태
돈줄을 쥐고 있는 금융권은 이 사업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신한은행 대기업금융센터 이해창 부지점장은 이 개발 사업에서 서울시가 한강르네상스 계획과 관련해 포함시킨 서부이촌동 지역을 빼고 “애초의 철도청 부지만을 사업 대상 지역으로 삼았다면 현 시점에서도 사업성은 좋았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용산 건은 최초 계획대로 했다면 금융권이나 시행하시는 분들이나 이해관계가 거의 비슷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규모가 커지면서 보상이라든지 사업시행 기간이라든지 이런 불확실한 부분들이 많이 발생하게 됐어요. 규모 면에서도 ‘그 큰 물량이 과연 시장에서 소화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고요. 용산 개발을 세부 구역으로 나눠서 본다면 사실은 나쁘지 않고 좋은 지역이고, 수요라든지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도 전반적인 측면에서 나쁘지는 않아요. 굉장히 좋은 지역이죠. 그런데 용산 건을 올해 이런 시점에서 굳이 진행을 하기에는 부담스럽지 않으냐 하는 생각이죠. ‘단군 이래 최대사업’이니 하는 말들이 있는 것처럼 지금은 그 큰 규모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엎어질 수 없는 사업이라고 보는 분들이 많던데요.
“저희가 보기에는 처음 계획대로 철도청 부지만 갖고 했으면 굉장히 사업성이 좋죠. 용산 개발에 참여하는 기관들이 초A급 건설사들로 구성돼 있다고 하지만 요즘같이 부동산 시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몇 조 되는 돈을 투자하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금융권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면 서울시가 용적률 확대 등의 인센티브를 주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지겠죠. 현재 이 사업에 대해 ‘아니다’는 결론이 나왔다기보다는 결과를 알 수 없는 물음표라는 거죠.”
―사업이 중단될 가능성이 높은가요.
“현재로서는 중단이라기보다는 보류가 되겠죠. 투자된 돈이 있으니까요. 일단 지금처럼 부동산 경기가 최악인 상황은 피하고 1, 2년 정도 사업을 천천히 관망하면서 가는 쪽으로 결론이 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코레일 쪽에서 토지대금 납입방식을 개발 후 이익을 환수하는 방식으로 바꾼다면 지금이라도 개발 착수가 가능할까요.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일단은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아요. 출자사들이 많다 보니까 저희가 봤을 때는 문제 하나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가 또 나오는 식으로 당분간 진행될 것 같아요. 상당 기간 그렇게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시공사 연대보증을 서서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사실 그것도 금융기관의 입장하고 시공사의 입장도 다르고 다 다르거든요. 그중에서 우량한 데가 있고 덜 우량한 데가 있다 보니까 자기들 사이에서도 의견조율이 안되는 부분이 있고요.”
―장기적으로는 이 사업이 계속되겠지만 당분간은 보류될 것으로 보고 있는 거죠?
“네. 시장 상황이 좋아진다면 제일 우선적으로 시행되겠죠. 워낙 큰 사업이니까요.”
―사업 초기 땅값이 너무 높게 책정됐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높게 책정됐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당시 부동산 경기를 봤을 때 코레일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 정도 요구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지금 부동산 경기가 죽어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땅값이 높게 보이는 거죠. 당시 상황에서는 그 정도 가격이면 시장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내년쯤 되면 또 불이 붙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한국투자증권 방창진 팀장의 전망도 이해창 부지점장의 시각과 비슷하다. 방 팀장은 “출자사들은 이미 1조원이라는 자금을 투자한 상태”라면서, “속도는 더디겠지만 사업은 계속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 특구 지정 주장도
난항을 겪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용산 역세권을 특구로 지정해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올 하반기부터 외국인 투자 유치와 관광산업 활성화 등을 위해 기존 경제자유구역, 관광특구 등에는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국제업무지구의 경우 완공될 경우 연간 1억5000만명의 유동인구를 끌어모으는 한편 67조원의 경제유발효과를 일으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용산도 특구 지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북아경제협력센터 정형곤 연구위원의 말이다.
“지금 인천, 대전, 부산 등 전국에 여러 형태의 산업 특구가 있습니다. 이들 산업특구의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용산입니다. KTX로 연결되고 공항철도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가 용산입니다. 국제업무지구로서의 위치도 좋은 곳이고요. 용산을 특구로 지정하자는 이야기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경제자유구역 얘기도 나왔었고요. 경제자유구역이 안 된다니까 서울시 조례 제정을 통해 일종의 외국인 투자 특구로 지정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특혜 시비가 있는데 용산 개발을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용산 한 지역만 하기 어렵다면 특구 형태의 금융중심지로 지정돼 있는 여의도와 연결해서 하는 방안도 현실적 대안이 될 겁니다. 제도적 인센티브를 줌으로써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들도 들어와서 활동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구 지정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국토해양부 국토정책국의 한 관계자는 “도심지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데 이런 점을 무시하고 특별법을 만들어서 일사천리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의 한 관계자는 “용산구 17만평 사업만을 위해서 특별법을 만들면 당장 타지역에서 형평성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라면서 “기존의 제도를 활용해서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무관심
용산 역세권 사업의 진척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가 서울시의 태도다. 용산 역세권 사업에 서부이촌동이 포함되지 않았을 때 코레일이 1차 공모에서 부지 매각 예가(預價)로 제시한 가격은 3조8000억원이었다. 서울시는 2차 공모 시 한강르네상스 계획과 연계해 통합 개발해야 한다며 서부이촌동의 성원아파트 등 2200가구를 사업부지에 포함시켰다. 2차 공모에서 코레일이 제시한 예가는 5조8000억원이었다. 사업비에서 토지대만 2조원이 증가한 것이다. 서울시는 또 자회사인 SH공사를 통해서 지분 4.9%를 확보해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사업에 참여할 당시 서울시는 인허가 지원 및 서부이촌동 보상에 대한 주도적 역할 수행을 약속하는 사업협약 준수확인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오히려 주차상한제 적용, 광역교통개선대책 부담금 추가 등으로 정책을 변경해 사업자의 투자비를 증가시켰다. 서부이촌동 사유지 취득 및 보상에 대해서도 애초 약속과 달리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게 용산 역세권 사업 출자자들의 불만이다.
이런 불만에 대해 서울시는 “용산 역세권 사업은 민간사업”이라며 여전히 선을 긋고 있다. 입찰 당시와 비교해 사업성이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여전히 사업성과 직결되는 용적률 608%, 기부채납비율 40%를 고집하고 있다.
같은 도심재생사업인 일본 도쿄 미드타운의 경우 최초 용적률 318%를 개발 시에는 670%로 상향시켜 줌으로써 개발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롯폰기힐스의 경우도 개발 전 327%에 불과했던 용적률을 개발 시에는 720%로 상향시켜 주었다. 기부채납 비율도 롯폰기힐스는 36%였다. 서울시 관계자의 말이다.
“용적률을 확대한다고 해서 해결될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 초창기에 사업자 측으로부터 용적률을 높여 달라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최근에는 그쪽 분들도 용적률 늘려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아요. 전문가라는 분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용산 역세권 사업을 이미 물건너 간 사업으로 보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안 보고 있습니다. 작년에도 한 8000억원 정도 자금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당사자들끼리 잘 해결했잖습니까. 올해도 당사자들이 슬기롭게 해결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습니까.
“자금에 대한 부분은 저희 역할이 아니라고 봅니다. 민간투자 방식 아닙니까.”
―규모가 큰 사업이기 때문에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해결책 마련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단일 건물 사업을 하나 하더라도 재개발, 재건축에는 우여곡절이 많습니다.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여러 복병이 나오겠지만 잘 해결될 겁니다.”
국토해양부, “그건 서울시의 일”
소극적이기는 주무 관청 격인 국토해양부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국토해양부 관계자와의 문답이다.
―용산 역세권 사업과 관련해 국토해양부 차원에서 마련하고 있는 대책은 있습니까.
“도시개발법에 보면 국가가 지정하는 사업이 있고 지자체에서 지정을 해서 운영하는 사업들이 있습니다. 보통 지자체에서 지정해 추진하는 사업들은 정부에서는 가급적 간여를 안 합니다. 서울시에서 한강르네상스 계획과 묶어서 추진하는 사업이기 때문이죠. 사업 규모가 크기 때문에 그 상황을 보고 있고 서울시와 이야기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건에 대해서 정부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간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전적으로 서울시 사업입니다. 서울시에서는 사업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더군요.”
―출자자들 중에는 사업성 확보를 위해 용적률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국가에서 지정한 사업이 아니라서 다른 사업과 편차를 둘 수는 없는 거고요. 도시개발법 자체가 많은 인센티브를 주고 있어요. 용도지역 안에서 재배치도 가능하고, 용도지역을 변경시킴으로써 인센티브를 줄 수 있게 돼 있어요. 필요하다면 서울시에서 저희한테 용적률 관련 건의를 해올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건의가 없거든요. 서울시가 그런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현재 용산 역세권 사업 참여자들 대부분은 사업성 확보를 위해 용적률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용적률과 관련된 건의를 받은 적이 없다는 국토부 관계자의 말에서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을 바라보는 서울시의 시각이 느껴진다. 28조원 규모의 개발 사업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요즘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F·금융권이 특수부동산에 대한 사업성만 보고 별도의 보증 없이 하는 대출)이 되지 않아 정말 건설업 해먹기 어렵게 됐다. 아마 용산 역세권 사업도 PF 때문에 진행이 어려워 접어야 할 상황이 올 것이다.”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불리는 서울 용산역세권 사업이 흔들리고 있다. 2007년 말 사업자 선정 당시 28조원 규모로 추산됐던 이 사업의 총사업비는 추정규모가 현재 31조원으로 늘어나 있는 상태다. 참고로 새만금사업은 2030년까지 21조원의 사업비가 투입될 예정이고, 내년 말 본공사가 마무리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총사업비는 22조원이다.
용산역세권 사업이 흔들리면서 좌초 위기에까지 내몰린 이유는 자금조달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산 역세권 개발 시행사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드림허브)는 지난 3월 31일까지 사업부지 매각사인 코레일(구 철도청)에 토지매입 대금 8조원 중 2차 중도금 및 4차 계약금 7010억원을 납부하지 못했다.
드림허브에는 코레일(지분율 25%), 롯데관광개발(15.10%), 국민연금(12.5%), 푸르덴셜(7.7%), 삼성물산(6.4%), 서울시 SH공사(4.9%) 등 30개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코레일은 높은 토지가를 고려해 사업부지를 4개의 구역으로 나눠서 매각했다. 드림허브는 4차에 걸쳐 이뤄지는 토지구입 계약 중 4차 계약금을 지난 3월 31일까지 내고 올해 토지보상에 착수, 내년부터 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4차 계약금 미납으로 드림허브가 토지 소유권을 확보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토지보상 협의가 시작되는 사업인정고시 및 개발계획 변경 등 주요 인허가 절차가 지연되게 됐다. 사업 일정이 사실상 올스톱됨으로써 2011년에 착공해 2016년 말 완공하겠다는 당초 일정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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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구 전경. |
상업시설 코엑스 5배 규모
용산 역세권 사업은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와 서부이촌동 일대 56만6800㎡(약 17만평)를 100층 높이의 초고층 랜드마크 빌딩 등 국제업무 시설과 유통·주거·문화시설 등이 결합된 국제 비즈니스 중심지로 조성하는 초대형 부동산개발 프로젝트다. 연면적은 336만2526㎡(약 100만평)로 일본 롯폰기힐스 및 도쿄 미드타운의 5배, 계획상업시설 규모(23만 평)는 코엑스의 5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 사업이 4차 계약금 미납으로 차질을 빚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 주요 자금줄인 PF 대출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1차 계약금 지불 등 초기 비용은 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의 투자금(1조원)으로 가능했지만, 나머지 비용은 PF 대출과 분양대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드림허브는 총사업비 중 10조원을 PF로 조달한다는 계획이었다. 상업·업무·주거단지의 분양대금은 공사가 시작돼야 확보가 가능한 자금이다. 출자사들의 증자가 없는 한 PF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금융권의 PF 대출은 중단된 상태다. 자금줄이 막혀버린 것이다.
드림허브는 이번에 미납한 7010억원 외에도 토지보상 비용 등으로 당장 1년 내에 4조원의 자금이 필요한 상태다. 토지주인 코레일 측은 미납금액 7010억원에 대해 연체 이자 17%를 물리고 있다. 하루 1억8000만원이다. 이렇게 예기치 않은 금융비용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해결 방안을 놓고 출자사들 간의 갈등은 깊어지고 있다. PF 대출 지급보증 문제를 놓고 출자사들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드림허브의 출자자는 크게 4개의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코레일과 SH공사 등의 공공 부문 투자자와 롯데관광개발 등의 전략적 투자자(SI:Strategic Investor·경영권 확보를 목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주는 투자자), 푸르덴셜 등의 재무적 투자자(FI:Financial Investor·배당금 등의 이익을 노리고 부족한 자금을 조달해 주는 투자자), 삼성물산 등의 건설투자자(CI:Construction Investor·시공을 통해 이익을 얻는 투자자)들로 30개 기관 및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지분 비율은 공공 부문이 29.9%, SI가 26.45%, FI가 23.65%, CI가 20.0%다.
이 가운데 SI·FI는 자금조달을 위해 CI 측에 PF 대출 보증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의 금융시장 상황에서 조 단위 PF 대출을 하기 위해서는 건설사들의 지급보증밖에 없고,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부동산개발사업 관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CI 측에서는 같은 출자사로서 지분율 20%에 불과한 시공사들에 지급보증을 미루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최선의 방법은 각 출자사들이 지분대로 증자를 하는 것이고 만약 각 사의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을 경우 차선책으로 지급보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출자사 중 최대주주이면서 땅 주인인 코레일은 미납금액에 대해 17%의 연체료를 부과하는 한편 토지대금 납부 조건의 변경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출자사들은 토지대금 미납 이후 10대 지분 출자자 회사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6월 10일 현재까지 아무런 해결 방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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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역 철도정비창과 서부이촌동 일대를 묶어 개발되는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지역. |
국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봐야
그렇다면 금융조달 문제 때문에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불리고 있는 용산 역세권사업이 좌초하고 말 것인가. 대부분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사업의 규모나 용산이라는 입지 조건 때문에 결국에는 사업이 시행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교언(沈敎彦) 교수의 말이다.
“미래는 국가와 국가 간의 경쟁보다는 도시와 도시 간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겁니다. 도시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 되는 것이죠. 도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유럽,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도심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수도 서울의 경우 여의도나 강남 등의 오피스타운은 세계에 내놓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용산은 서울의 한복판이면서 한강을 끼고 있고 철도가 공항을 비롯해 전국 각지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가 될 예정입니다. 글로벌 시티로 거듭나기 위한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가진 곳입니다. 이 사업은 사업의 규모면에서도 단순 개발 프로젝트가 아니라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그래서 현재는 사업 진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글로벌 시티 건설이라는 사업 목표대로 가기는 갈 겁니다.”
안계환 세빌스 코리아 부사장도 “용산 역세권 사업은 무산될 리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동산은 입지예요. 용산은 한강을 끼고 있으면서 미군부대와 철도청 부지라는 광대한 땅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입지 조건은 그동안 제공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전 세계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또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공항과 도심을 연결해야 하는데 용산이 바로 그런 곳이에요. PF 문제 등이 용산 개발 과정을 막지는 못할 겁니다. 게다가 이 개발은 지주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 개발이잖아요? 지주가 적절하게 리스크를 져 준다면 무리없이 추진될 겁니다.”
이렇게 전문가들이 장기적으로는 용산 역세권 사업의 전망을 밝게 보는데도 사업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뭘까. 2007년 말 사업자 선정 당시와 비교해 사업환경은 최악으로 변했는데도 사업조건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데 그 원인이 있다는 게 개발 당사자들의 주장이다.
사업 초기만 해도 줄을 서서 돈을 대겠다던 금융기관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실물경기가 침체하면서 현재는 모두 자취를 감추는 환경으로 상황이 변했는데도 토지대금 납입 방법, 사업성 증대를 위한 용적률의 변화 등 조건은 전혀 변한 게 없다는 것이다.
용산역세권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협약서 제45조 불가항력 사항에는 “불가항력의 사유로 인하여 계약 당사자 누구의 책임에도 속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계약 당사자 상호간의 협의하에 본 사업 협약 및 사업계획서 등을 변경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용산 역세권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시공사들은 PF 발생이 안되는 현재를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보고 있다. 사업자 선정 당시와 현재의 부동산 경기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다. 부동산 경기를 냉각시킨 한 요인인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예측 못한 자신들의 책임도 있지만, 그런 상황의 변화가 안겨준 리스크에 대한 책임을 자신들에게만 지운다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사업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당사자는 이 사업의 최대 출자자이자 토지주인 코레일과 사업의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서울시다.
개발당사자들은 “공공성 실현을 명분으로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공기업이 성공적인 사업추진보다는 땅장사 논란을 야기할 정도로 토지대금 회수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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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 국제업무지구가 들어설 용산역 철도정비창 부지. |
“외국 같으면 대통령이 개입할 사안”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최막중(崔莫重) 교수는 코레일이 땅장사에만 집착한다는 비판에 대해 “그런 측면이 있다”면서, “코레일이 땅 주인의 입장보다 개발자의 입장이 돼서 다른 출자사들과 함께 개발 수익을 나누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또 “이 사업은 진행이 되도록 해야 할 사업”이라면서, “이 사업은 외국 같으면 대통령이 개입해야 할 사업으로 단순히 사업적인 차원에서만 보지 말고 사회적 의미를 갖는 공공적 차원에서도 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교언 교수도 최 교수와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코레일이 땅장사를 하려고 했던 게 문제예요. 나중에 개발이익을 지분별로 배분하는 방법을 취했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 지주로서 개발에 참여하면서도 개발 초기에 토지비에 대한 부담을 너무 크게 만든 것은 잘못입니다.”
노무라종합연구소 사업개발컨설팅그룹 서울지점 최자령(崔慈玲) 팀장도 “코레일이 토지를 그대로 보유하면서 민간에 렌트해 개발하게 함으로써 임대료를 받는 것도 한 방법”이라면서, “그렇게 할 경우 코레일로서는 매각 시에 부담하는 세금이 감면되고 민간 개발자는 그만큼 자금 부담을 덜 수 있으니까 서로에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팀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용산 역세권 사업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렇게 전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을 만나 보면 용산이 갖고 있는 입지 조건은 좋다고들 해요. 그동안 이분들이 홍콩이나 싱가포르를 출장 갈 때 하루 6건의 미팅을 잡을 수 있었던 반면 서울은 하루 3, 4건의 미팅밖에 잡을 수 없다고 해요.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는 건데 교통체증 때문이죠. 그런데 용산은 분당선이나 공항철도 등 예정대로 교통시설이 개통된다면 공항도 가깝고 여의도도 가깝고 강남도 가깝기 때문에 비즈니스 업무 지역으로서의 효율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죠.”
제일 큰 문제는 대규모 개발비용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용산 역세권 개발 사업 초기부터 이 사업이 갖는 리스크 등에 대해 드림허브 측에 조언을 해 왔다고 한다. 최 팀장으로부터 그동안 어떤 조언을 해 왔는지,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들어봤다.
―용산 역세권 개발 사업 같은 사례가 외국에도 많습니까.
“이 사업의 제일 큰 특징은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이 정도 규모의, 이 정도 입지의 사업이라면 대부분 공공이나 정부 주도형이 많은데 민간기업이 주가 돼서 하는 대규모 복합개발사업이라는 것이죠. 부지면적 17만평에 연면적이 100만평이라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없는 대규모 복합개발사업입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얘기되는 일본의 미드타운이라든가 롯폰기힐TM의 5배 정도가 되고요. 상업시설 규모만 봐도 지금 코엑스의 5배 정도가 돼요. 또 하나는 단기간에 대규모 공급이 이루어진다는 게 큰 특징이죠.”
―2007년 삼성-국민연금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선정될 때 땅값으로 8조원을 제시하고 낙찰받았는데 너무 비쌌던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 사업의 제일 큰 문제점이 토지대에서 시작하거든요. 그런데 그 시점이, 보시면 잘 아시겠지만 부동산 시장이 좋았던 마지막 시점에 민간사업자들이 제안을 해서 낙찰이 된 케이스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부동산 개발에서 실패라는 게 없었잖아요. 그런데 그게 성사되고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그 부분이 부담이 되고 문제가 됐던 거죠. 민간사업이라는 게 수익이 전제가 돼야 하잖아요. 원가 자체에서 토지대가 8조원이고 거기다 금융비용에 서부이촌동의 민간사업부지까지 포함하면 13조원이 돼요. 13조원이라는 규모 자체가 워낙 크고, 이게 과연 국내에서 조달 가능한 금액인지를 생각해 봤어야죠.”
―일본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일본도 국철이 민영화되면서 소유 토지를 개발하려고 했어요. 1987년이니까 일본 부동산 시장이 좋았을 때였거든요. 버블 때였죠. 국철 청산사업단이라고 있었는데 토지를 그냥 매각해 버리면 높은 가격 때문에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국철 청산사업단이 토지를 그냥 갖고 있으면서 자기네들이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나서 민간한테 제공했죠. 사업기간도 20년 정도가 소요가 됐거든요. 시장이 오피스 등 거기에서 나오는 물량을 소화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본 거죠. 용산 같은 경우는 기간도 그것의 반이고 가격도 높은 상태에서 개발을 하려고 하니까 어려움이 많죠.”
―코레일로서는 부채 축소 등 공기업선진화 방안에 맞추려다 보니까 땅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사업에 참여한 민간업체들은 정말 그 시기가 부동산 버블이었다는 것을 몰랐던 걸까요?
“코레일 입장에서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건설사들 입장에 있어서도 이 정도의 대규모 개발사업을 그냥 놓칠 수는 없었다고 봅니다. 부동산 버블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는 지금까지도 명확하게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저희가 금융위기 이전부터 사업규모가 너무 크다, 사업비 자체가 너무 높다는 조언을 했어요. 그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한국시장은 일본시장과 많이 다르다는 말씀이었어요. 부동산 시장은 정책적인 영향이 큰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개발사업은 수요시장에서 공급량을 얼마만큼 받아줄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국내시장에서 수요 때문에 사업이 실패한 경우가 거의 없어서 누구도 부동산 버블이다, 공급과잉이다, 하는 부분을 결정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의견들을 주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국내 시장에서 부동산 실패에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 사업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입지적으로 잠재력이 많기 때문에 이 사업을 꼭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수요시장에 맞춰 공급기간은 재조정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출자사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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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이촌동 대림아파트에 걸린 재개발 반대를 주장하는 시민들의 플래카드. 용산역세권 사업이 무산될 경우 이보다 더한 주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
“용산이 입지도 좋고 개발 가능성도 높은데, 단기간에 그만큼의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시장이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었죠. 그것을 개발하기 위한 자금이 28조, 30조원 가까이 되는데 그 정도의 자금이 국내에서 조달 가능한 규모인가 하는 의문이 있었죠.”
―다른 문제는요?
“출자사들이 만든 시행사의 자기자본 비율이 낮다는 점이었어요. 자기자본 비율이 낮다는 것은 금융비용을 더 많이 발생하게 한다는 거죠. 자기자본 비율이 높아야 시간적으로나 사업적인 측면에서 안정적으로 개발을 진행할 수 있어요. 외국 같은 경우는 대부분 30%에서 50% 정도 자기자본 비율을 가지고 개발을 하죠. 은행에서도 자기자본에 대한 부분은 담보가 되니까 그만큼 자본을 끌어오기가 쉬운데 용산 같은 경우는 자기자본이 1조원밖에 안돼요. 자기자본 비율이 총사업비의 3%에서 3.5% 정도밖에 안되는 거죠.”
―출자사들 전체가 출자액을 늘려야 한다는 말인가요?
“네. 게다가 FI, SI, CI의 입장이 엇갈리는 상태에서 출자사 30개는 너무 많아요. 저희가 한 50여 군데의 외국 투자사를 만나서 용산 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조사했어요.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출자사들이 너무 많다. 누가 메인 디벨로퍼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였어요.”
―이 사업에서 메인 디벨로퍼는 최대주주인 코레일 아닌가요?
“디벨로퍼라는 개념이 토지의 부가가치를 창출해서 시설에 대한 가치를 높여서 수익성을 내는 전문 부동산업자잖아요. 코레일은 부지의 소유자일 뿐이지 이 사업에서 메인 디벨로퍼는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개발을 할 수 있는 능력, 투자자들이 봤을 때 돈을 맡겨도 그만큼 개발을 잘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디벨로퍼가 없다는 거죠. ‘한국에는 디벨로퍼가 없기 때문에 더 맡기기가 힘들다, 투자하기가 어렵다’는 말씀들을 많이 해요.”
―현 상태에서는 코레일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죠. 그런 역할도 해야 하고, 토지대에 대한 부담이 너무 높으니까 그 부분을 조정을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사업이 진행되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조정이 필요할까요?
“이 시점에서 용산 개발을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은 단계별 개발이거든요. 지금 대지 17만평에 연면적 100만평짜리 개발이 잘 이루어져서 성공을 한다고 하더라도 시장에서 그 공급을 다 수용할 수 있는 규모는 아니라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한꺼번에 개발하기보다는 단계별로 나눠서 하는 게 좋다는 제안을 드리고 싶어요. 코레일도 지금 토지를 다 매각하는 걸로 돼 있는데 그걸 다 매각하지 말고 단계별로 매각하거나 개발하는 게 시장수요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자금조달 측면에서도 좋을 것 같아요.”
―일본의 경우 도심재개발을 할 때 정부 차원에서 어떤 인센티브를 줍니까.
“일본 같은 경우는 용적률 완화를 많이 해 주었어요. 도심재개발을 했을 때 과거의 600% 상한선을 800%, 1000%까지 높여준 사례도 있고요. 또 하나는 호텔, 콘퍼런스홀, 전시장 같은 수익성 없는 사업은 민간에서 꺼리잖아요? 만약에 이런 시설을 설치하면 그만큼 용적률을 높여주는 제도가 있어요. 그래서 최근에 일본의 도심개발 사례들을 보면 오피스 안에 오성급 호텔이 다 들어가 있어요. 그게 다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용적률을 더 높이기 위해서 한 거죠.”
사업 중단 아닌 보류 상태
돈줄을 쥐고 있는 금융권은 이 사업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신한은행 대기업금융센터 이해창 부지점장은 이 개발 사업에서 서울시가 한강르네상스 계획과 관련해 포함시킨 서부이촌동 지역을 빼고 “애초의 철도청 부지만을 사업 대상 지역으로 삼았다면 현 시점에서도 사업성은 좋았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용산 건은 최초 계획대로 했다면 금융권이나 시행하시는 분들이나 이해관계가 거의 비슷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규모가 커지면서 보상이라든지 사업시행 기간이라든지 이런 불확실한 부분들이 많이 발생하게 됐어요. 규모 면에서도 ‘그 큰 물량이 과연 시장에서 소화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고요. 용산 개발을 세부 구역으로 나눠서 본다면 사실은 나쁘지 않고 좋은 지역이고, 수요라든지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도 전반적인 측면에서 나쁘지는 않아요. 굉장히 좋은 지역이죠. 그런데 용산 건을 올해 이런 시점에서 굳이 진행을 하기에는 부담스럽지 않으냐 하는 생각이죠. ‘단군 이래 최대사업’이니 하는 말들이 있는 것처럼 지금은 그 큰 규모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엎어질 수 없는 사업이라고 보는 분들이 많던데요.
“저희가 보기에는 처음 계획대로 철도청 부지만 갖고 했으면 굉장히 사업성이 좋죠. 용산 개발에 참여하는 기관들이 초A급 건설사들로 구성돼 있다고 하지만 요즘같이 부동산 시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몇 조 되는 돈을 투자하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금융권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면 서울시가 용적률 확대 등의 인센티브를 주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지겠죠. 현재 이 사업에 대해 ‘아니다’는 결론이 나왔다기보다는 결과를 알 수 없는 물음표라는 거죠.”
―사업이 중단될 가능성이 높은가요.
“현재로서는 중단이라기보다는 보류가 되겠죠. 투자된 돈이 있으니까요. 일단 지금처럼 부동산 경기가 최악인 상황은 피하고 1, 2년 정도 사업을 천천히 관망하면서 가는 쪽으로 결론이 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코레일 쪽에서 토지대금 납입방식을 개발 후 이익을 환수하는 방식으로 바꾼다면 지금이라도 개발 착수가 가능할까요.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일단은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아요. 출자사들이 많다 보니까 저희가 봤을 때는 문제 하나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가 또 나오는 식으로 당분간 진행될 것 같아요. 상당 기간 그렇게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시공사 연대보증을 서서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사실 그것도 금융기관의 입장하고 시공사의 입장도 다르고 다 다르거든요. 그중에서 우량한 데가 있고 덜 우량한 데가 있다 보니까 자기들 사이에서도 의견조율이 안되는 부분이 있고요.”
―장기적으로는 이 사업이 계속되겠지만 당분간은 보류될 것으로 보고 있는 거죠?
“네. 시장 상황이 좋아진다면 제일 우선적으로 시행되겠죠. 워낙 큰 사업이니까요.”
―사업 초기 땅값이 너무 높게 책정됐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높게 책정됐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당시 부동산 경기를 봤을 때 코레일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 정도 요구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지금 부동산 경기가 죽어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땅값이 높게 보이는 거죠. 당시 상황에서는 그 정도 가격이면 시장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내년쯤 되면 또 불이 붙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한국투자증권 방창진 팀장의 전망도 이해창 부지점장의 시각과 비슷하다. 방 팀장은 “출자사들은 이미 1조원이라는 자금을 투자한 상태”라면서, “속도는 더디겠지만 사업은 계속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 특구 지정 주장도
난항을 겪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용산 역세권을 특구로 지정해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올 하반기부터 외국인 투자 유치와 관광산업 활성화 등을 위해 기존 경제자유구역, 관광특구 등에는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국제업무지구의 경우 완공될 경우 연간 1억5000만명의 유동인구를 끌어모으는 한편 67조원의 경제유발효과를 일으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용산도 특구 지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북아경제협력센터 정형곤 연구위원의 말이다.
“지금 인천, 대전, 부산 등 전국에 여러 형태의 산업 특구가 있습니다. 이들 산업특구의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용산입니다. KTX로 연결되고 공항철도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가 용산입니다. 국제업무지구로서의 위치도 좋은 곳이고요. 용산을 특구로 지정하자는 이야기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경제자유구역 얘기도 나왔었고요. 경제자유구역이 안 된다니까 서울시 조례 제정을 통해 일종의 외국인 투자 특구로 지정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특혜 시비가 있는데 용산 개발을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용산 한 지역만 하기 어렵다면 특구 형태의 금융중심지로 지정돼 있는 여의도와 연결해서 하는 방안도 현실적 대안이 될 겁니다. 제도적 인센티브를 줌으로써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들도 들어와서 활동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구 지정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국토해양부 국토정책국의 한 관계자는 “도심지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데 이런 점을 무시하고 특별법을 만들어서 일사천리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의 한 관계자는 “용산구 17만평 사업만을 위해서 특별법을 만들면 당장 타지역에서 형평성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라면서 “기존의 제도를 활용해서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무관심
용산 역세권 사업의 진척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가 서울시의 태도다. 용산 역세권 사업에 서부이촌동이 포함되지 않았을 때 코레일이 1차 공모에서 부지 매각 예가(預價)로 제시한 가격은 3조8000억원이었다. 서울시는 2차 공모 시 한강르네상스 계획과 연계해 통합 개발해야 한다며 서부이촌동의 성원아파트 등 2200가구를 사업부지에 포함시켰다. 2차 공모에서 코레일이 제시한 예가는 5조8000억원이었다. 사업비에서 토지대만 2조원이 증가한 것이다. 서울시는 또 자회사인 SH공사를 통해서 지분 4.9%를 확보해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사업에 참여할 당시 서울시는 인허가 지원 및 서부이촌동 보상에 대한 주도적 역할 수행을 약속하는 사업협약 준수확인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오히려 주차상한제 적용, 광역교통개선대책 부담금 추가 등으로 정책을 변경해 사업자의 투자비를 증가시켰다. 서부이촌동 사유지 취득 및 보상에 대해서도 애초 약속과 달리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게 용산 역세권 사업 출자자들의 불만이다.
이런 불만에 대해 서울시는 “용산 역세권 사업은 민간사업”이라며 여전히 선을 긋고 있다. 입찰 당시와 비교해 사업성이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여전히 사업성과 직결되는 용적률 608%, 기부채납비율 40%를 고집하고 있다.
같은 도심재생사업인 일본 도쿄 미드타운의 경우 최초 용적률 318%를 개발 시에는 670%로 상향시켜 줌으로써 개발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롯폰기힐스의 경우도 개발 전 327%에 불과했던 용적률을 개발 시에는 720%로 상향시켜 주었다. 기부채납 비율도 롯폰기힐스는 36%였다. 서울시 관계자의 말이다.
“용적률을 확대한다고 해서 해결될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 초창기에 사업자 측으로부터 용적률을 높여 달라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최근에는 그쪽 분들도 용적률 늘려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아요. 전문가라는 분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용산 역세권 사업을 이미 물건너 간 사업으로 보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안 보고 있습니다. 작년에도 한 8000억원 정도 자금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당사자들끼리 잘 해결했잖습니까. 올해도 당사자들이 슬기롭게 해결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습니까.
“자금에 대한 부분은 저희 역할이 아니라고 봅니다. 민간투자 방식 아닙니까.”
―규모가 큰 사업이기 때문에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해결책 마련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단일 건물 사업을 하나 하더라도 재개발, 재건축에는 우여곡절이 많습니다.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여러 복병이 나오겠지만 잘 해결될 겁니다.”
국토해양부, “그건 서울시의 일”
소극적이기는 주무 관청 격인 국토해양부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국토해양부 관계자와의 문답이다.
―용산 역세권 사업과 관련해 국토해양부 차원에서 마련하고 있는 대책은 있습니까.
“도시개발법에 보면 국가가 지정하는 사업이 있고 지자체에서 지정을 해서 운영하는 사업들이 있습니다. 보통 지자체에서 지정해 추진하는 사업들은 정부에서는 가급적 간여를 안 합니다. 서울시에서 한강르네상스 계획과 묶어서 추진하는 사업이기 때문이죠. 사업 규모가 크기 때문에 그 상황을 보고 있고 서울시와 이야기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건에 대해서 정부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간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전적으로 서울시 사업입니다. 서울시에서는 사업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더군요.”
―출자자들 중에는 사업성 확보를 위해 용적률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국가에서 지정한 사업이 아니라서 다른 사업과 편차를 둘 수는 없는 거고요. 도시개발법 자체가 많은 인센티브를 주고 있어요. 용도지역 안에서 재배치도 가능하고, 용도지역을 변경시킴으로써 인센티브를 줄 수 있게 돼 있어요. 필요하다면 서울시에서 저희한테 용적률 관련 건의를 해올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건의가 없거든요. 서울시가 그런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현재 용산 역세권 사업 참여자들 대부분은 사업성 확보를 위해 용적률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용적률과 관련된 건의를 받은 적이 없다는 국토부 관계자의 말에서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을 바라보는 서울시의 시각이 느껴진다. 28조원 규모의 개발 사업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