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년간 이 장사를 했지만 요즘 같은 불황은 처음”(동대문 상인)
◎ “점심값이라도 벌려고 신발 한 켤레도 팔아요”(신발 도매상)
◎ “3000원짜리 밥집 외에는 다 문닫을 판”(북창동 식당주인)
◎ “지금 4시간째 손님 기다리고 있습니다”(서울역앞 모범택시 운전기사)
李点錫 자유기고가
◎ “점심값이라도 벌려고 신발 한 켤레도 팔아요”(신발 도매상)
◎ “3000원짜리 밥집 외에는 다 문닫을 판”(북창동 식당주인)
◎ “지금 4시간째 손님 기다리고 있습니다”(서울역앞 모범택시 운전기사)
李点錫 자유기고가
- 남대문 시장의 인기 의류 매장.
불황의 골이 깊다. 실물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서민들은 실업난, 물가고, 負債(부채) 등 3重苦(3중고)의 긴 터널에 들어섰다. 연초부터 국제유가가 폭등하면서 경기침체는 심화하는데 물가는 오르고 있다. 미국發(발) 금융위기가 서민들의 가계에 깊은 주름을 드리우면서 총체적인 경제위기 상황에 돌입했다.
경제상황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서민경제의 지표라 할 수 있는 재래시장이다. 동대문 일대에는 재래시장과 신흥시장 등 도매시장과 소매시장이 밀집해 있어 상인과 일반 소비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도 지난 9월 이후 買氣(매기)가 끊겨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동대문상가 중에서도 ‘동대문 신발상가’로 불리는 일대에는 단일 품목으로는 세계 최대라 할 정도로 1200여 개의 신발 도매상이 몰려 있다.
월세 못내 야반도주하기도
평일 오전 10시 舊(구) 동대문상가 이스턴 호텔 뒤의 신발가게 거리는 한산했다. 한 가게 앞에서 화물택배 트럭이 짐을 싣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유성(69)씨는 동대문시장이 설립될 때부터 신발가게를 운영해 시장 경기 부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를 따라 상가를 돌아다니자 가게 주인들이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곤 했다.
“요즘은 한마디로 초상집 분위기입니다. 10년 전 IMF 외환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새벽 3시만 되면 불야성을 이룰 정도로 상인들이 많이 몰렸죠. 오전 10시에도 가게 주인들은 정신없이 바빴어요. 그때는 오후 4시에 가게 문을 닫았지만 요즘은 오후 2시가 되면 파장 분위기입니다. 마지못해 가게 문을 일찍 열지만 전깃불만 횅댕그렁한 가게를 비출 뿐 주인들은 꾸벅꾸벅 졸고 있어요.”
경기가 좋을 때는 화물트럭들이 박스를 풀어놓기 무섭게 지방으로 나갈 짐을 실었다. 거리는 리어카와 사람들로 엉켜 발걸음 떼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상인들은 밤잠을 설치며 가게 문을 열어도 몰려오는 손님들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문전성시는 이제 꿈 같은 이야기가 됐다.
60여 개의 가게가 들어 있는 신발시장 A동 3층 건물은 전부 폐업을 해 가게 문을 닫았다. 2평 반 남짓한 이들 가게는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가 30만~40만원 수준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권리금이 수천만원을 호가했다고 한다. 路邊(노변) 가게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 수준이다. 이런 월세를 감당 못해 보증금을 다 까먹고 나면 물건을 팽개친 채 도주하는 상인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권리금이 없어도 새로 입주하는 상인이 없다.
심지어 보증금을 안 받는다고 해도 빈 가게는 다시 채워지지 않는다. 장사가 잘되는 1층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개시를 못해 교통비도 못 벌고 가는 상인들이 부지기수다. 김유성씨는 지난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서 눈에 띄게 경기가 나빠졌다고 한다.
“동네에서 구멍가게를 하나 하려고 해도 1억원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영세상인 입장에서 얼마 안 되는 보증금으로 먹고살기에는 이보다 좋은 조건이 없죠. 그러다 보니 잘나갈 때는 권리금이 1억원까지 올라갔어요. 그때는 8t 트럭으로 신상품을 받아도 2~3일이면 다 팔려 나갔죠. 겨울로 들어서는 지금이 가장 성수기인데 오히려 바닥 수준입니다. ”
노변에서 두 칸짜리 가게를 운영하는 이은철(49)씨는 동대문에서 신발가게를 한 지 20년이 됐다. 대학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 키우며 별 걱정 없이 장사에 매달렸지만 요즘 같아서는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 됐다고 한숨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같은 도매업자들이 수지를 맞추려면 하루에 신발 100~150켤레를 팔아야 하는데 요즘은 3분의 1 수준도 안 됩니다. 오늘 겨우 네 켤레 팔았어요. 예전에는 소매를 취급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점심값이라도 벌기 위해 한 켤레도 팔아요. 더구나 신발은 중국산이 많아 환율인상으로 인해 켤레당 원가가 1000~2000원 정도 올랐어요. 그렇다고 그만큼 값을 올려 받기는 어렵습니다.”
7000원 정도 하는 운동화 한 켤레로 1000원 정도의 이윤이 남는다면 5켤레를 팔아야 점심 값이 나온다. 여기에 교통비가 추가되고 월세와 세금을 내려면 적자는 눈에 보듯 뻔하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신상품이 나와도 구색을 맞추기 어렵다.
“요즘 같은 불황은 처음”
상인들이 “밑지고 판다”는 말을 믿을 사람을 없겠지만 요즘 동대문 상인들 중에는 하루 종일 開始(개시)를 못해 몇 푼이라도 손에 쥐려고 原價(원가) 이하로 파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가겟세가 밀리고 점심 먹기도 어려워 물건을 쌓아 두고 잠적하는 것이다.
가게 주인들도 사정을 뻔히 아는지라 월세 독촉을 못하는 실정이다. 덤핑 코너는 장사가 잘될 때 연일 인파가 몰렸으나, 이곳 역시 한산하기는 마찬가지. 신발상가를 구석구석 돌아 보니 1~2층 가게는 주인들끼리 모여 바둑을 두거나 박스에 엎드려 잠을 자는 사람도 있었다.
3~4층은 상품 진열 대신 박스만 쌓아 두거나 아예 텅 빈 가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신발은 중국산이 많아 수입상가들은 환율 인상으로 二重苦(이중고)를 겪고 있다. 자포자기한 가게 주인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월세라도 벌자’며 도박판을 벌이기도 한다.
신발산업은 그 구조적 영세성으로 인해 1990년대부터 사양화의 길을 걸어 왔다. 값싼 수입품이나 브랜드 제품이 들어오면서 국내 공장은 가동을 멈추었다. IMF 외환위기 시절 바퀴 신발, 컬러 운동화 등 히트상품을 만들어 떼돈을 벌었던 힐코리아의 전필동 사장 이야기는 지금은 동대문시장의 신화로 남아 있다.
신발산업이 빛을 잃어도 상인들은 국산이든 수입산이든 팔아서 먹고사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전국을 상대로 소매상들을 불러모았던 동대문시장은 이제 존폐위기에 놓였다. 한 칸짜리 실내화 전문매장을 운영하는 김광협(85)씨는 “28년간 이 장사를 했지만 요즘 같은 불황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이 상태로 3개월만 더 지속되면 90% 이상의 가게들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동대문 신발가게 C동 상가 입구에서 커피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한 아주머니는 매일 새벽 1시 반에 문을 연다. 경기가 좋을 때는 오전 3시부터 6시까지 차 끓이기에 정신이 없었지만 요즘은 기껏해야 하루 2만~3만원 수입이 고작이어서 “굶어 죽을 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경기침체를 반영하듯 상가 주변의 한 식당은 2000원짜리 콩나물밥, 3000원짜리 김치찌개가 잘 나간다고 한다. 3000원짜리 김치찌개 1인분을 시킬 때 공깃밥을 추가로 시켜 두 명이 식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식당은 지방 상인들이 새벽장을 본 후 우르르 몰려야 수지가 맞지만 요즘은 상가 구내식당 정도로 전락했다.
商人들의 人情도 예전 같지 않아
동대문은 패션타운 관광특구가 들어설 정도로 서민들의 패션1번지로 통한다. 舊(구) 동대문운동장 맞은 편은 두타를 비롯 밀리오레, 프레야타운 등 소매 쇼핑몰이 몰려 있다. 이곳 역시 한산하기는 예외가 아니다.
평일 오후의 어느 여성의류 매장은 손님보다 상인들이 더 많아 보였다. 여성 정장바지 한 벌 2만원짜리 가격표에 줄을 긋고 5000원이라 써 붙였지만, 만져 보기만 할 뿐 지갑을 여는 소비자는 없었다. 군데군데 ‘폭탄 세일’ ‘원가 이하’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지만 문의하는 손님도 없다.
주말인 11월 8일 다시 두타 쇼핑몰을 찾았을 때 여성의류 매장은 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곳에서 가게를 하는 한 상인은 “평소 주말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오늘은 손님이 많은 것 같지만 매출로 이어지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길 건너 평화시장 매장도 고객들이 줄을 이었지만 물건을 사는 사람은 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여성 매장이 북적거렸고 남성 매장은 손님이 없어 썰렁한 분위기였다. 남성복 코너의 한 주인은 “10년 전 IMF 때는 ‘공짜 마케팅’ ‘원가 세일’을 써 붙이면 꽤 반응이 있었지만 요즘은 파리만 날린다”고 울상을 지었다. 광장시장에서 비단가게를 하는 최모씨는 “하루 종일 비단 세 필 팔았는데, 그나마 내 가게라서 자리를 지키고 있지 월세 내는 가게라면 벌써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한다.
경기가 침체되고 월세 걱정을 하다 보니 상인들 간의 인정도 예전 같지가 않다. 경조사가 있으면 서로 챙겨 주고 봄 가을로 친목여행을 떠나기도 했지만, 올해 들어 야유회란 말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상인들 간에 돈 10만원 빌리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할 정도가 됐다. 동대문 일대는 한때 무박 2일의 산행을 떠나는 관광버스가 주말 밤마다 줄을 이었지만 그런 풍경도 보기 어렵게 됐다. 상인들이 장거리 여행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살얼음판 걷는 남대문 상인들
평일 오후 4시경 남대문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신세계백화점 뒷길로 해서 숭례문에 이르는 동안 오가는 사람들은 분주했지만 손님을 맞아 물건을 파는 가게 주인들은 많아 보이지 않았다.
‘무조건 만원’이라 써 붙인 노점 매장에 여성 고객들이 몰려 있었다. 겨울용 외투를 팔고 있었는데, 빈손으로 가는 경우는 없고 한 벌 이상씩 구입하느라 그나마 분주한 느낌이었다.
남대문시장은 7개의 통로 가운데 일본인 중국인 등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골목에 손님들이 몰렸다. 액세서리, 화장품, 가죽제품, 캐릭터 매장 등인데 환율 차로 인해 쇼핑을 하는 외국 관광객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중 시계골목에 위치한 액세서리 매장을 들렀다. 남대문 액세서리 매장은 10개 동에 약 3000여 점포가 영업 중이다. 동일 품목이라 해도 수출과 내수에 따라 디자인이 다르고 백화점 대상이냐, 노점 대상이냐에 따라 가격 차가 다양하다. 외국 바이어들을 주 대상으로 액세서리 매장을 운영하는 이태수(50)씨는 이곳에서 20년간 장사를 해 왔다.
“남대문시장 상인들 모두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우리 가게만 해도 IMF 때 외국 바이어들이 월 500만원 이상 물건을 해 갔어요. 요즘은 소매업자들이 고작 100만원어치 가져갑니다. 우리 가게는 그나마 바이어들이 찾아와 겨우 수지를 맞추지만, 내수 위주로 하는 대부분의 상가들은 가겟세를 못 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
이태수씨가 운영하는 가게는 한 칸에 보증금 1000만원, 월세 100만원이다. 그는 두 칸을 운영하고 있다. 3년 전부터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올 가을부터는 최악의 상태라고 한다. 수입 전자상가나 카메라상가 등은 환율 급등에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매일 3~4개 점포씩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남대문시장도 이제는 지방 상인들이 많이 찾지 않아 새벽시장도 빛을 잃어 가고 있어요. 액세서리 매장 두 칸 운영해서 한 달 매출 600만원 올려봤자 가겟세와 관리비 내고 나면 빠듯할 정도입니다. 이런 가게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온 가족의 사활이 걸려 있습니다.”
남대문시장 통로 한가운데 과일 노점상이 앉아 있다. 이 가게는 자릿세가 5000만원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장사가 잘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요즘은 3000만원에 내놓아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시장통에서 만난 한 상인은 李明博(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제2의 외환위기가 결코 없다고 했는데 우리가 느끼는 실물경제는 그렇지 않다. 관리들이 말하는 경제수치나 이론을 잘 모르지만 우리가 말하는 IMF는 달러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서민들이 먹고살기 어렵다는 뜻이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해서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찍었는데 솔직히 실망스럽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만 해대니 누굴 믿고 희망을 가지라는 말인가.”
썰렁한 금은방
액세서리 매장 지하 전층을 사용하고 있는 귀금속 매장으로 들어갔다. 한눈에 봐도 손님은 없고 상인들끼리 모여 잡담을 나누는 모습뿐이다. 최근의 경제위기를 반영하듯 금은방에는 기념으로 구입한 액세서리를 내다파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서울 아현동에서 금은방 ‘뉴골드’를 운영하는 박태성(59)씨는 지난 9월부터 그런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대부분이 중산층 이하 고객들이다.
“14Kㆍ18K 가락지, 목걸이, 팔찌 및 알반지 등이 주류를 이루고 최근에는 10돈쭝 이상의 기념 메달이나 은수저까지 팔려고 찾아와요. 금붙이는 3.75g(1돈)당 10만7000원에 매입하고 은수저는 한 벌당 1만5000원부터 3만원까지 쳐주죠. 하루 평균 15명이 찾아오는데 금 50돈 정도 됩니다. 금이 팔리지는 않는데 무작정 매입만 할 수 없어 걱정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오히려 재미를 보는 업소도 있다. 강남 일대의 이른바 명품 전당포다. 압구정동의 한 전당포에 문의했던 이모씨는 “6개월 전 800만원에 구입한 롤렉스 시계를 알아보았더니 200만원 정도 준다고 하기에 맡길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못 내렸다”며 “한 달 이자가 대출금액의 4%여서 8만원이지만, 연간으로 따지면 48%, 100만원이나 돼 부담이 간다”고 말했다.
명품 전당포에는 고급 시계뿐 아니라 양주, 다이아 반지, 고급 악기 등이 많이 들어온다. 특히 여성들은 루이뷔통, 샤넬 등 명품 가방이나 10돈쭝 이상 되는 금거북, 황금열쇠 등에 대한 문의가 많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종로 일대의 금은방에는 서민층들이 低價(저가)의 금붙이나 시계 등을 들고 와 대조를 이룬다. 그나마 이용자가 줄어들어 문을 닫는 전당포도 많은 실정이다.
서민경제의 위기는 중소 자영업자들의 수심 찬 얼굴에서 잘 드러난다. 돈을 벌어 삶의 질을 높이려는 꿈은 포기한 지 오래고, 오로지 자식들 공부시키고 하루 세 끼 먹는데 어떻게 하면 빚 안 지고 가게를 꾸려 나가느냐 하는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수소문 끝에 식당을 포기하기로 작심한 최정민(45)씨를 만났다.
“을지로에서 보신탕과 복어 메뉴로 식당을 하면서 몇 년 동안 연 매출 6억원 이상을 올리는 등 잘나갔습니다. 이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시청 부근의 북창동으로 이사를 갔는데, 1년이 지나도록 적자에서 못 벗어나는 겁니다. 결국 식당을 내놓기로 했죠.”
“3000원짜리 밥집 외에는 다 문닫을 판”
최씨는 이 식당을 얻을 때 보증금 8000만원, 월세 400만원에 계약을 했다. 여기에 권리금 8000만원, 인테리어 비용 6000만원이 들어갔다. 50평 규모에 종업원 세 명을 두고 운영했지만 주 5일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한 달 20일 장사로 수지를 맞춰야 했다. 토요일도 문을 열었지만 전기세만 더 나갔다.
“하루 170만원 매상을 올려야 한 달에 3400만원입니다. 인건비, 월세, 식자재비 등을 제외하면 겨우 적자는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상이 턱도 없이 모자라 매달 400만~500만원 적자가 났어요. 특히 지난 9월 들어 경기가 격감해 수입이 거의 없다시피 했어요. 가게를 내놓았지만 안 나가면 권리금 포기하고 나가야죠. 계속 적자를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북창동은 한때 술집들이 불야성을 이루며 흥청거리던 곳이다. 경기가 악화되면서 술집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았고 식당도 그 영향을 받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최씨는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북창동도 한 끼 3000원 정도의 메뉴만 살아남을 것 같다”며 씁쓰레한 웃음을 지었다.
강남구 도곡동 매봉역 부근의 한 카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커피와 생맥주를 파는 이 카페는 실내 분위기가 좋아 저녁시간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손님이 줄을 이었다. 미국發(발) 금융위기가 주식 폭락을 몰고 온 그날부터 손님들이 뚝 끊어졌다. 점심식사 후 차 한 잔 하기 위해 드나들던 직장인들도 발길을 끊었다. 주인 신기숙(46)씨는 요즘 점심식사 메뉴를 개발해 수지를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가게는 보증금 5000만원, 월세 200만원에 권리금 5000만원, 인테리어 비용 3000만원을 들여 베이징 올림픽 전에 개업했습니다. 중산층 고객들이 많아 평소에 증권이나 부동산 등 재테크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주식투자로 돈이 빠져나가니 지출을 자제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밤 12시 무렵에 문을 닫아요.”
동작구 상도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규희(45)씨는 경제위기 이후 약국을 찾는 손님들의 구매 형태가 바뀌었다고 한다. “영양제는 거의 나가지 않고 두통이나 신경통 등의 약이 잘 나가는데 그것도 두 번 걸음 할 것을 한 번으로 끝낸다”고 한다.
朴昇(박승) 前(전) 한국은행 총재가 “현재 위기는 금융위기라기보다는 민생경제 위기”라며 “청년실업과 자영업자는 IMF 관리체제 때보다 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성장, 물가, 고용, 국제수지, 거시지표가 다 나빠지고 있다”며 “서민들의 금융부채가 무겁고 高(고)금리, 고물가의 부담은 서민들에게 집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위기의 강도는 커질 것이고 장기간 지속될 것이다.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국민경제는 실업과 부도라는 극단적인 고통에 빠진다.
택시기사들 “자포자기 상태”
중소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비닐 포장지 인쇄용 동판을 생산하는 미래산업의 황진모(45) 사장은 과자나 식품업체 등 대기업이 주 고객이다. 발주회사에서 새로운 제품을 많이 개발해야 이 기업도 일거리가 많아진다. IMF 때도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던 미래산업은 지난 5월부터 매출이 감소하더니 9월 들어 간신히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직원이 11명인데 디자인, 생산 등 필수직만 남기고 영업직원들을 감원시켜 저 혼자 영업을 맡고 있습니다. 특히 환율 인상으로 원자재 비용이 폭등했지만 납품 가격은 인상을 못해요. 거래처가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죠. 예년에 비해 매출이 40% 이상 감소했습니다. 매월 최소 1억원 이상 올려야 하는데 버티기가 어렵습니다. 일이 있어도 마진이 적어 적자 볼 때도 많아요. 그나마 요즘은 일이 없어 오후 3~4시에 문을 닫습니다. 업무 특성상 더 이상 감원을 할 수도 없어 밤에 잠이 안 와요. ”
서민들은 경제이론이나 수치만으로 나타나는 불황을 잘 실감하지 못한다. 신문을 통해 읽는 ‘소비자 기대심리지수 하락’ ‘8월 경상수지 사상 최대 적자’라는 말로는 경제위기의 현장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듣고서야 실감을 한다. 실업자 증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듣게 되는 이야기다. 失業(실업) 寒波(한파)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3년 전인 2005년 회사의 구조조정 바람에 명퇴를 한 권창호(41)씨는 보험 세일즈를 시작했다.
“친척이나 知人(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영업을 한 결과 월 150만원 정도 수입을 올렸습니다. 1년 반이 지나자 더 이상 수입이 없어 포기했어요. 퇴직금과 은행 대출을 받아 수퍼마켓을 차렸어요. 집세 내고 세 식구 밥 먹고 살기 빠듯했죠. 아이 학원 보낼 형편이 못돼 남몰래 울었습니다.
이 와중에 주변에 대형 마트가 생기면서 장사가 안돼 1년 만에 그만두는 바람에 1억원을 날렸어요. 요즘은 선배의 소개로 전철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하루 8시간 근무하면 3만5000원 받습니다. 일요일도 쉬지 않고 일하면 100만원 가량 수입이 되는데, 이 돈으로 자식 공부시키기 힘들잖아요. 요즘은 택시 운전을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택시 운전은 먹고살 만한 직업일까? 양재동에서 강남역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17년째 운전을 한다는 기사 안모(62)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매일 오전 4시부터 오후 4시까지 12시간을 일해야 겨우 입에 풀칠한다고 말했다.
“요즘 運輸業(운수업)은 그야말로 하루하루 運數(운수)에 달려 있습니다. 社納金(사납금)이 주간 9만3000원, 야간 9만8000원인데 나는 나이도 있고 해서 주간만 하는데 최근 들어 손님이 30% 가량 줄었어요. 기본급과 수당을 포함해서 봉급 100만원에 사납금을 제외한 환급금이 20만~30만원 되죠. 매월 120만~130만원 집에 가져갑니다. 야간영업 자주 하는 젊은 기사들은 170만~180만원 가량 벌어요. ”
그는 10년 전 IMF와 비교하며 “그때는 시쳇말로 차가 거꾸로 가도 입금하고 몇 만원 가져갔는데 요즘은 힘들다”고 말한다.
“10년 전 가스비가 L당 180원 했는데 지금은 1080원 합니다. 우리처럼 주간영업은 사납금만 내도 성공적이죠. 조금만 방심하면 내 돈 물어야 합니다. 개인택시를 할 수도 있지만 7000만~8000만원 빛내서 했다가는 이자 갚느라 힘들어요. 개인택시는 자기 돈으로 가스를 넣어야 하는데 하루 5만~6만원 들어가죠. 10만원 수입 올려야 가져가는 돈은 4만~5만원에 불과합니다. 한 달에 150만원 벌기 힘들어요.”
술 손님도 격감
회사택시 기사들은 요금 인상에 부정적이다. 사납금이 올라가는데 손님은 더 떨어져 수익이 줄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개인택시들은 인상을 바라고 있어 명암이 엇갈린다.
택시기사들은 대부분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반감이 많은 편이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택시가 늘어났고, 전철 1시간 연장, 버스전용차로 확대, 전철 버스 환승제 등으로 수입이 줄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안씨의 말투가 빨라졌다.
“서민 위주의 정책을 펴느라 대를 위해 小(소)를 희생하는 것은 좋습니다. 요즘 경제가 엉망이다 보니 택시기사들도 수입이 적어 전직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젊은 동료 한 사람은 수입을 올리느라 무리를 하다 過勞(과로)로 사망하기도 했어요. 서민경제가 살아야 국가경제가 사는 것 아닙니까. IMF 때는 해 보자는 의지라도 있었지만 요즘은 자포자기 상태입니다. 중산층은 서민층 되고 우리 같은 서민층은 극빈층으로 전락할지도 모르겠어요.”
모범택시 기사들은 더 죽을 맛이다. 서울역 광장 택시 승강장에서 만난 한 기사는 “4시간째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며 울상이다. 손님 찾아 다녀 봐야 허탕만 치고 가스비만 들어가기 때문에 손님 올 때까지 하루 종일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역 앞 택시행렬은 점점 길어진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술 손님 격감으로 일거리가 50% 가량 줄었다고 한다. 대리운전 기사는 회사로부터 받는 기본급이 없이 일한 만큼 가져가는 일당제 영업이다. 한 대리운전 업체 사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요즘 손님들은 술 자리도 줄었지만 술을 마셔도 택시 타고 다녀요. 경기 좋았을 때는 보통 2시까지 대기했지만 요즘은 12시면 거의 끝나죠. 그러다 보니 100명 정도 되는 기사들 대부분이 투 잡(two job)을 갖고 있어요. 운전만으로는 밥 먹고 살기 힘들죠. 직원들의 운전 외 수입이 얼마인지 저도 모릅니다.”
늘어나는 무료급식자
주택가격 하락과 주가 하락은 국민경제에 깊은 주름을 만들어 놓았다. 정부가 ‘11ㆍ3 경제위기 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대부분 건설경기 부양에 초점을 두고 있다. 서민들의 주택경기는 언제 풀릴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은 안절부절못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이수호(44)씨는 2007년 5월, 강남구 일원동에 105.8㎡(32평형) 아파트를 4억6000만원에 장만했다. 2억원을 대출받았는데 연동금리가 적용돼 월 92만원의 이자를 내다가 123만원으로 금리가 인상됐다.
12월에는 또 한 차례 인상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아파트는 금융위기가 오기 전만 해도 시세가 7억원까지 올랐다. 현재는 4억원에도 못 미친다. 설상가상으로 회사에서 급여가 50만원 삭감돼 가처분소득이 격감했다. 월급 받아 이자 갚고 나면 생활비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미분양 아파트가 16만 가구가 넘는 건설업계는 부도 공포에 떨고 있다. 특히 지방의 건설사들은 사면초가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거의 수도권에 비중을 두고 있어 연쇄 부도와 함께 실업자를 쏟아낼 것이다.
전남 광주의 한 건설사 임원은 “회사나 아파트 이름을 절대 밝히지 말아 달라”며 “분양이 안 돼 텅 빈 아파트를 바라보면 앞이 캄캄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재고물량이 쌓이다 보니 분양 수익금이 막히고 회사는 공사비를 별도로 조달해야 하는 자금난에 직면해 있다.
증권사도 분위기가 초상집이다. 명동의 한 증권회사 객장에 근무하는 정규석씨는 “주가 폭락 이후 회사 분위기가 공황 상태에 가깝다”고 했다. 손해를 입은 투자자들의 항의와 원망이 잇따라 하루하루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라고 한다. 이 와중에 증권사 직원들이 무리한 투자 권유와 함께 투자 위험에 대한 조언도 하지 않아 투자자들의 분위기가 험악하다.
주부 박영희씨는 지난해 말 펀드 수익률이 좋다는 말을 듣고 딸 혼수비용 3000만원을 주식형 펀드에 묻어 두었는데 최근 원금을 절반 가까이 손실을 보는 바람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경제파탄에 대한 조짐도 심상치 않다. 탑골공원 뒤편 원각사에서는 매일 점심 때 노인이나 장애자들에게 무료급식이 제공된다. 12시 무렵 입구에서 번호표를 나눠주는데 평균 180명 정도가 식사를 한다. 1993년부터 탁발로 무료급식을 해 온 사람은 원각사 주지인 보리 스님이다.
“요즘은 갈수록 급식 인원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IMF 때는 500명 가량 몰렸는데 앞으로는 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신도들이 성금을 내고 자원봉사를 하는데 재정 마련이 쉽지 않아요.”
서울역 앞에서 무료급식을 하는 노숙자 선교회는 매일 350명분의 식사를 준비한다. 최성원 목사는 “최근의 경제위기 이후 급식자가 100여 명이 더 늘었다”고 한다. 최 목사는 “정부에서 북한을 의식해 무료급식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당장 밥 먹을 곳 없는 노숙자들을 외면할 수 없다”고 한다.
무료급식자는 대부분 노인층이다. 우리 경제가 불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침체의 늪에 빠진다면 중ㆍ장년층에서도 무료급식자가 나오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식시장과 부동산 값이 폭락하고 금리는 치솟는 상황에서 실업자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서민들은 혹독한 경제한파 앞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해 신뢰할 수 없는 국민들의 걱정과 불만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만 간다.⊙
경제상황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서민경제의 지표라 할 수 있는 재래시장이다. 동대문 일대에는 재래시장과 신흥시장 등 도매시장과 소매시장이 밀집해 있어 상인과 일반 소비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도 지난 9월 이후 買氣(매기)가 끊겨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동대문상가 중에서도 ‘동대문 신발상가’로 불리는 일대에는 단일 품목으로는 세계 최대라 할 정도로 1200여 개의 신발 도매상이 몰려 있다.
월세 못내 야반도주하기도
평일 오전 10시 舊(구) 동대문상가 이스턴 호텔 뒤의 신발가게 거리는 한산했다. 한 가게 앞에서 화물택배 트럭이 짐을 싣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유성(69)씨는 동대문시장이 설립될 때부터 신발가게를 운영해 시장 경기 부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를 따라 상가를 돌아다니자 가게 주인들이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곤 했다.
“요즘은 한마디로 초상집 분위기입니다. 10년 전 IMF 외환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새벽 3시만 되면 불야성을 이룰 정도로 상인들이 많이 몰렸죠. 오전 10시에도 가게 주인들은 정신없이 바빴어요. 그때는 오후 4시에 가게 문을 닫았지만 요즘은 오후 2시가 되면 파장 분위기입니다. 마지못해 가게 문을 일찍 열지만 전깃불만 횅댕그렁한 가게를 비출 뿐 주인들은 꾸벅꾸벅 졸고 있어요.”
경기가 좋을 때는 화물트럭들이 박스를 풀어놓기 무섭게 지방으로 나갈 짐을 실었다. 거리는 리어카와 사람들로 엉켜 발걸음 떼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상인들은 밤잠을 설치며 가게 문을 열어도 몰려오는 손님들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문전성시는 이제 꿈 같은 이야기가 됐다.
60여 개의 가게가 들어 있는 신발시장 A동 3층 건물은 전부 폐업을 해 가게 문을 닫았다. 2평 반 남짓한 이들 가게는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가 30만~40만원 수준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권리금이 수천만원을 호가했다고 한다. 路邊(노변) 가게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 수준이다. 이런 월세를 감당 못해 보증금을 다 까먹고 나면 물건을 팽개친 채 도주하는 상인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권리금이 없어도 새로 입주하는 상인이 없다.
심지어 보증금을 안 받는다고 해도 빈 가게는 다시 채워지지 않는다. 장사가 잘되는 1층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개시를 못해 교통비도 못 벌고 가는 상인들이 부지기수다. 김유성씨는 지난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서 눈에 띄게 경기가 나빠졌다고 한다.
“동네에서 구멍가게를 하나 하려고 해도 1억원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영세상인 입장에서 얼마 안 되는 보증금으로 먹고살기에는 이보다 좋은 조건이 없죠. 그러다 보니 잘나갈 때는 권리금이 1억원까지 올라갔어요. 그때는 8t 트럭으로 신상품을 받아도 2~3일이면 다 팔려 나갔죠. 겨울로 들어서는 지금이 가장 성수기인데 오히려 바닥 수준입니다. ”
노변에서 두 칸짜리 가게를 운영하는 이은철(49)씨는 동대문에서 신발가게를 한 지 20년이 됐다. 대학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 키우며 별 걱정 없이 장사에 매달렸지만 요즘 같아서는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 됐다고 한숨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같은 도매업자들이 수지를 맞추려면 하루에 신발 100~150켤레를 팔아야 하는데 요즘은 3분의 1 수준도 안 됩니다. 오늘 겨우 네 켤레 팔았어요. 예전에는 소매를 취급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점심값이라도 벌기 위해 한 켤레도 팔아요. 더구나 신발은 중국산이 많아 환율인상으로 인해 켤레당 원가가 1000~2000원 정도 올랐어요. 그렇다고 그만큼 값을 올려 받기는 어렵습니다.”
7000원 정도 하는 운동화 한 켤레로 1000원 정도의 이윤이 남는다면 5켤레를 팔아야 점심 값이 나온다. 여기에 교통비가 추가되고 월세와 세금을 내려면 적자는 눈에 보듯 뻔하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신상품이 나와도 구색을 맞추기 어렵다.
“요즘 같은 불황은 처음”
상인들이 “밑지고 판다”는 말을 믿을 사람을 없겠지만 요즘 동대문 상인들 중에는 하루 종일 開始(개시)를 못해 몇 푼이라도 손에 쥐려고 原價(원가) 이하로 파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가겟세가 밀리고 점심 먹기도 어려워 물건을 쌓아 두고 잠적하는 것이다.
가게 주인들도 사정을 뻔히 아는지라 월세 독촉을 못하는 실정이다. 덤핑 코너는 장사가 잘될 때 연일 인파가 몰렸으나, 이곳 역시 한산하기는 마찬가지. 신발상가를 구석구석 돌아 보니 1~2층 가게는 주인들끼리 모여 바둑을 두거나 박스에 엎드려 잠을 자는 사람도 있었다.
3~4층은 상품 진열 대신 박스만 쌓아 두거나 아예 텅 빈 가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신발은 중국산이 많아 수입상가들은 환율 인상으로 二重苦(이중고)를 겪고 있다. 자포자기한 가게 주인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월세라도 벌자’며 도박판을 벌이기도 한다.
신발산업은 그 구조적 영세성으로 인해 1990년대부터 사양화의 길을 걸어 왔다. 값싼 수입품이나 브랜드 제품이 들어오면서 국내 공장은 가동을 멈추었다. IMF 외환위기 시절 바퀴 신발, 컬러 운동화 등 히트상품을 만들어 떼돈을 벌었던 힐코리아의 전필동 사장 이야기는 지금은 동대문시장의 신화로 남아 있다.
신발산업이 빛을 잃어도 상인들은 국산이든 수입산이든 팔아서 먹고사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전국을 상대로 소매상들을 불러모았던 동대문시장은 이제 존폐위기에 놓였다. 한 칸짜리 실내화 전문매장을 운영하는 김광협(85)씨는 “28년간 이 장사를 했지만 요즘 같은 불황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이 상태로 3개월만 더 지속되면 90% 이상의 가게들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동대문 신발가게 C동 상가 입구에서 커피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한 아주머니는 매일 새벽 1시 반에 문을 연다. 경기가 좋을 때는 오전 3시부터 6시까지 차 끓이기에 정신이 없었지만 요즘은 기껏해야 하루 2만~3만원 수입이 고작이어서 “굶어 죽을 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경기침체를 반영하듯 상가 주변의 한 식당은 2000원짜리 콩나물밥, 3000원짜리 김치찌개가 잘 나간다고 한다. 3000원짜리 김치찌개 1인분을 시킬 때 공깃밥을 추가로 시켜 두 명이 식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식당은 지방 상인들이 새벽장을 본 후 우르르 몰려야 수지가 맞지만 요즘은 상가 구내식당 정도로 전락했다.
商人들의 人情도 예전 같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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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의 바쁜 시간에도 손님이 없어 주인들이 모여 때 아닌 여유로움을 맛보고 있다. |
평일 오후의 어느 여성의류 매장은 손님보다 상인들이 더 많아 보였다. 여성 정장바지 한 벌 2만원짜리 가격표에 줄을 긋고 5000원이라 써 붙였지만, 만져 보기만 할 뿐 지갑을 여는 소비자는 없었다. 군데군데 ‘폭탄 세일’ ‘원가 이하’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지만 문의하는 손님도 없다.
주말인 11월 8일 다시 두타 쇼핑몰을 찾았을 때 여성의류 매장은 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곳에서 가게를 하는 한 상인은 “평소 주말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오늘은 손님이 많은 것 같지만 매출로 이어지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길 건너 평화시장 매장도 고객들이 줄을 이었지만 물건을 사는 사람은 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여성 매장이 북적거렸고 남성 매장은 손님이 없어 썰렁한 분위기였다. 남성복 코너의 한 주인은 “10년 전 IMF 때는 ‘공짜 마케팅’ ‘원가 세일’을 써 붙이면 꽤 반응이 있었지만 요즘은 파리만 날린다”고 울상을 지었다. 광장시장에서 비단가게를 하는 최모씨는 “하루 종일 비단 세 필 팔았는데, 그나마 내 가게라서 자리를 지키고 있지 월세 내는 가게라면 벌써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한다.
경기가 침체되고 월세 걱정을 하다 보니 상인들 간의 인정도 예전 같지가 않다. 경조사가 있으면 서로 챙겨 주고 봄 가을로 친목여행을 떠나기도 했지만, 올해 들어 야유회란 말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상인들 간에 돈 10만원 빌리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할 정도가 됐다. 동대문 일대는 한때 무박 2일의 산행을 떠나는 관광버스가 주말 밤마다 줄을 이었지만 그런 풍경도 보기 어렵게 됐다. 상인들이 장거리 여행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살얼음판 걷는 남대문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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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스를 풀지도 않고 그대로 둔 채 부족한 수면을 채우는 동대문 상인. |
‘무조건 만원’이라 써 붙인 노점 매장에 여성 고객들이 몰려 있었다. 겨울용 외투를 팔고 있었는데, 빈손으로 가는 경우는 없고 한 벌 이상씩 구입하느라 그나마 분주한 느낌이었다.
남대문시장은 7개의 통로 가운데 일본인 중국인 등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골목에 손님들이 몰렸다. 액세서리, 화장품, 가죽제품, 캐릭터 매장 등인데 환율 차로 인해 쇼핑을 하는 외국 관광객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중 시계골목에 위치한 액세서리 매장을 들렀다. 남대문 액세서리 매장은 10개 동에 약 3000여 점포가 영업 중이다. 동일 품목이라 해도 수출과 내수에 따라 디자인이 다르고 백화점 대상이냐, 노점 대상이냐에 따라 가격 차가 다양하다. 외국 바이어들을 주 대상으로 액세서리 매장을 운영하는 이태수(50)씨는 이곳에서 20년간 장사를 해 왔다.
“남대문시장 상인들 모두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우리 가게만 해도 IMF 때 외국 바이어들이 월 500만원 이상 물건을 해 갔어요. 요즘은 소매업자들이 고작 100만원어치 가져갑니다. 우리 가게는 그나마 바이어들이 찾아와 겨우 수지를 맞추지만, 내수 위주로 하는 대부분의 상가들은 가겟세를 못 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
이태수씨가 운영하는 가게는 한 칸에 보증금 1000만원, 월세 100만원이다. 그는 두 칸을 운영하고 있다. 3년 전부터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올 가을부터는 최악의 상태라고 한다. 수입 전자상가나 카메라상가 등은 환율 급등에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매일 3~4개 점포씩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남대문시장도 이제는 지방 상인들이 많이 찾지 않아 새벽시장도 빛을 잃어 가고 있어요. 액세서리 매장 두 칸 운영해서 한 달 매출 600만원 올려봤자 가겟세와 관리비 내고 나면 빠듯할 정도입니다. 이런 가게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온 가족의 사활이 걸려 있습니다.”
남대문시장 통로 한가운데 과일 노점상이 앉아 있다. 이 가게는 자릿세가 5000만원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장사가 잘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요즘은 3000만원에 내놓아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시장통에서 만난 한 상인은 李明博(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제2의 외환위기가 결코 없다고 했는데 우리가 느끼는 실물경제는 그렇지 않다. 관리들이 말하는 경제수치나 이론을 잘 모르지만 우리가 말하는 IMF는 달러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서민들이 먹고살기 어렵다는 뜻이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해서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찍었는데 솔직히 실망스럽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만 해대니 누굴 믿고 희망을 가지라는 말인가.”
썰렁한 금은방
액세서리 매장 지하 전층을 사용하고 있는 귀금속 매장으로 들어갔다. 한눈에 봐도 손님은 없고 상인들끼리 모여 잡담을 나누는 모습뿐이다. 최근의 경제위기를 반영하듯 금은방에는 기념으로 구입한 액세서리를 내다파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서울 아현동에서 금은방 ‘뉴골드’를 운영하는 박태성(59)씨는 지난 9월부터 그런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대부분이 중산층 이하 고객들이다.
“14Kㆍ18K 가락지, 목걸이, 팔찌 및 알반지 등이 주류를 이루고 최근에는 10돈쭝 이상의 기념 메달이나 은수저까지 팔려고 찾아와요. 금붙이는 3.75g(1돈)당 10만7000원에 매입하고 은수저는 한 벌당 1만5000원부터 3만원까지 쳐주죠. 하루 평균 15명이 찾아오는데 금 50돈 정도 됩니다. 금이 팔리지는 않는데 무작정 매입만 할 수 없어 걱정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오히려 재미를 보는 업소도 있다. 강남 일대의 이른바 명품 전당포다. 압구정동의 한 전당포에 문의했던 이모씨는 “6개월 전 800만원에 구입한 롤렉스 시계를 알아보았더니 200만원 정도 준다고 하기에 맡길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못 내렸다”며 “한 달 이자가 대출금액의 4%여서 8만원이지만, 연간으로 따지면 48%, 100만원이나 돼 부담이 간다”고 말했다.
명품 전당포에는 고급 시계뿐 아니라 양주, 다이아 반지, 고급 악기 등이 많이 들어온다. 특히 여성들은 루이뷔통, 샤넬 등 명품 가방이나 10돈쭝 이상 되는 금거북, 황금열쇠 등에 대한 문의가 많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종로 일대의 금은방에는 서민층들이 低價(저가)의 금붙이나 시계 등을 들고 와 대조를 이룬다. 그나마 이용자가 줄어들어 문을 닫는 전당포도 많은 실정이다.
서민경제의 위기는 중소 자영업자들의 수심 찬 얼굴에서 잘 드러난다. 돈을 벌어 삶의 질을 높이려는 꿈은 포기한 지 오래고, 오로지 자식들 공부시키고 하루 세 끼 먹는데 어떻게 하면 빚 안 지고 가게를 꾸려 나가느냐 하는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수소문 끝에 식당을 포기하기로 작심한 최정민(45)씨를 만났다.
“을지로에서 보신탕과 복어 메뉴로 식당을 하면서 몇 년 동안 연 매출 6억원 이상을 올리는 등 잘나갔습니다. 이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시청 부근의 북창동으로 이사를 갔는데, 1년이 지나도록 적자에서 못 벗어나는 겁니다. 결국 식당을 내놓기로 했죠.”
“3000원짜리 밥집 외에는 다 문닫을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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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 뒷골목에서 만난 저렴한 식대의 메뉴판. |
“하루 170만원 매상을 올려야 한 달에 3400만원입니다. 인건비, 월세, 식자재비 등을 제외하면 겨우 적자는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상이 턱도 없이 모자라 매달 400만~500만원 적자가 났어요. 특히 지난 9월 들어 경기가 격감해 수입이 거의 없다시피 했어요. 가게를 내놓았지만 안 나가면 권리금 포기하고 나가야죠. 계속 적자를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북창동은 한때 술집들이 불야성을 이루며 흥청거리던 곳이다. 경기가 악화되면서 술집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았고 식당도 그 영향을 받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최씨는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북창동도 한 끼 3000원 정도의 메뉴만 살아남을 것 같다”며 씁쓰레한 웃음을 지었다.
강남구 도곡동 매봉역 부근의 한 카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커피와 생맥주를 파는 이 카페는 실내 분위기가 좋아 저녁시간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손님이 줄을 이었다. 미국發(발) 금융위기가 주식 폭락을 몰고 온 그날부터 손님들이 뚝 끊어졌다. 점심식사 후 차 한 잔 하기 위해 드나들던 직장인들도 발길을 끊었다. 주인 신기숙(46)씨는 요즘 점심식사 메뉴를 개발해 수지를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가게는 보증금 5000만원, 월세 200만원에 권리금 5000만원, 인테리어 비용 3000만원을 들여 베이징 올림픽 전에 개업했습니다. 중산층 고객들이 많아 평소에 증권이나 부동산 등 재테크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주식투자로 돈이 빠져나가니 지출을 자제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밤 12시 무렵에 문을 닫아요.”
동작구 상도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규희(45)씨는 경제위기 이후 약국을 찾는 손님들의 구매 형태가 바뀌었다고 한다. “영양제는 거의 나가지 않고 두통이나 신경통 등의 약이 잘 나가는데 그것도 두 번 걸음 할 것을 한 번으로 끝낸다”고 한다.
朴昇(박승) 前(전) 한국은행 총재가 “현재 위기는 금융위기라기보다는 민생경제 위기”라며 “청년실업과 자영업자는 IMF 관리체제 때보다 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성장, 물가, 고용, 국제수지, 거시지표가 다 나빠지고 있다”며 “서민들의 금융부채가 무겁고 高(고)금리, 고물가의 부담은 서민들에게 집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위기의 강도는 커질 것이고 장기간 지속될 것이다.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국민경제는 실업과 부도라는 극단적인 고통에 빠진다.
택시기사들 “자포자기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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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앞에는 빈 택시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
“직원이 11명인데 디자인, 생산 등 필수직만 남기고 영업직원들을 감원시켜 저 혼자 영업을 맡고 있습니다. 특히 환율 인상으로 원자재 비용이 폭등했지만 납품 가격은 인상을 못해요. 거래처가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죠. 예년에 비해 매출이 40% 이상 감소했습니다. 매월 최소 1억원 이상 올려야 하는데 버티기가 어렵습니다. 일이 있어도 마진이 적어 적자 볼 때도 많아요. 그나마 요즘은 일이 없어 오후 3~4시에 문을 닫습니다. 업무 특성상 더 이상 감원을 할 수도 없어 밤에 잠이 안 와요. ”
서민들은 경제이론이나 수치만으로 나타나는 불황을 잘 실감하지 못한다. 신문을 통해 읽는 ‘소비자 기대심리지수 하락’ ‘8월 경상수지 사상 최대 적자’라는 말로는 경제위기의 현장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듣고서야 실감을 한다. 실업자 증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듣게 되는 이야기다. 失業(실업) 寒波(한파)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3년 전인 2005년 회사의 구조조정 바람에 명퇴를 한 권창호(41)씨는 보험 세일즈를 시작했다.
“친척이나 知人(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영업을 한 결과 월 150만원 정도 수입을 올렸습니다. 1년 반이 지나자 더 이상 수입이 없어 포기했어요. 퇴직금과 은행 대출을 받아 수퍼마켓을 차렸어요. 집세 내고 세 식구 밥 먹고 살기 빠듯했죠. 아이 학원 보낼 형편이 못돼 남몰래 울었습니다.
이 와중에 주변에 대형 마트가 생기면서 장사가 안돼 1년 만에 그만두는 바람에 1억원을 날렸어요. 요즘은 선배의 소개로 전철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하루 8시간 근무하면 3만5000원 받습니다. 일요일도 쉬지 않고 일하면 100만원 가량 수입이 되는데, 이 돈으로 자식 공부시키기 힘들잖아요. 요즘은 택시 운전을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택시 운전은 먹고살 만한 직업일까? 양재동에서 강남역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17년째 운전을 한다는 기사 안모(62)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매일 오전 4시부터 오후 4시까지 12시간을 일해야 겨우 입에 풀칠한다고 말했다.
“요즘 運輸業(운수업)은 그야말로 하루하루 運數(운수)에 달려 있습니다. 社納金(사납금)이 주간 9만3000원, 야간 9만8000원인데 나는 나이도 있고 해서 주간만 하는데 최근 들어 손님이 30% 가량 줄었어요. 기본급과 수당을 포함해서 봉급 100만원에 사납금을 제외한 환급금이 20만~30만원 되죠. 매월 120만~130만원 집에 가져갑니다. 야간영업 자주 하는 젊은 기사들은 170만~180만원 가량 벌어요. ”
그는 10년 전 IMF와 비교하며 “그때는 시쳇말로 차가 거꾸로 가도 입금하고 몇 만원 가져갔는데 요즘은 힘들다”고 말한다.
“10년 전 가스비가 L당 180원 했는데 지금은 1080원 합니다. 우리처럼 주간영업은 사납금만 내도 성공적이죠. 조금만 방심하면 내 돈 물어야 합니다. 개인택시를 할 수도 있지만 7000만~8000만원 빛내서 했다가는 이자 갚느라 힘들어요. 개인택시는 자기 돈으로 가스를 넣어야 하는데 하루 5만~6만원 들어가죠. 10만원 수입 올려야 가져가는 돈은 4만~5만원에 불과합니다. 한 달에 150만원 벌기 힘들어요.”
술 손님도 격감
회사택시 기사들은 요금 인상에 부정적이다. 사납금이 올라가는데 손님은 더 떨어져 수익이 줄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개인택시들은 인상을 바라고 있어 명암이 엇갈린다.
택시기사들은 대부분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반감이 많은 편이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택시가 늘어났고, 전철 1시간 연장, 버스전용차로 확대, 전철 버스 환승제 등으로 수입이 줄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안씨의 말투가 빨라졌다.
“서민 위주의 정책을 펴느라 대를 위해 小(소)를 희생하는 것은 좋습니다. 요즘 경제가 엉망이다 보니 택시기사들도 수입이 적어 전직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젊은 동료 한 사람은 수입을 올리느라 무리를 하다 過勞(과로)로 사망하기도 했어요. 서민경제가 살아야 국가경제가 사는 것 아닙니까. IMF 때는 해 보자는 의지라도 있었지만 요즘은 자포자기 상태입니다. 중산층은 서민층 되고 우리 같은 서민층은 극빈층으로 전락할지도 모르겠어요.”
모범택시 기사들은 더 죽을 맛이다. 서울역 광장 택시 승강장에서 만난 한 기사는 “4시간째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며 울상이다. 손님 찾아 다녀 봐야 허탕만 치고 가스비만 들어가기 때문에 손님 올 때까지 하루 종일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역 앞 택시행렬은 점점 길어진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술 손님 격감으로 일거리가 50% 가량 줄었다고 한다. 대리운전 기사는 회사로부터 받는 기본급이 없이 일한 만큼 가져가는 일당제 영업이다. 한 대리운전 업체 사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요즘 손님들은 술 자리도 줄었지만 술을 마셔도 택시 타고 다녀요. 경기 좋았을 때는 보통 2시까지 대기했지만 요즘은 12시면 거의 끝나죠. 그러다 보니 100명 정도 되는 기사들 대부분이 투 잡(two job)을 갖고 있어요. 운전만으로는 밥 먹고 살기 힘들죠. 직원들의 운전 외 수입이 얼마인지 저도 모릅니다.”
늘어나는 무료급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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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각사 무료급식 행렬. |
12월에는 또 한 차례 인상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아파트는 금융위기가 오기 전만 해도 시세가 7억원까지 올랐다. 현재는 4억원에도 못 미친다. 설상가상으로 회사에서 급여가 50만원 삭감돼 가처분소득이 격감했다. 월급 받아 이자 갚고 나면 생활비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미분양 아파트가 16만 가구가 넘는 건설업계는 부도 공포에 떨고 있다. 특히 지방의 건설사들은 사면초가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거의 수도권에 비중을 두고 있어 연쇄 부도와 함께 실업자를 쏟아낼 것이다.
전남 광주의 한 건설사 임원은 “회사나 아파트 이름을 절대 밝히지 말아 달라”며 “분양이 안 돼 텅 빈 아파트를 바라보면 앞이 캄캄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재고물량이 쌓이다 보니 분양 수익금이 막히고 회사는 공사비를 별도로 조달해야 하는 자금난에 직면해 있다.
증권사도 분위기가 초상집이다. 명동의 한 증권회사 객장에 근무하는 정규석씨는 “주가 폭락 이후 회사 분위기가 공황 상태에 가깝다”고 했다. 손해를 입은 투자자들의 항의와 원망이 잇따라 하루하루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라고 한다. 이 와중에 증권사 직원들이 무리한 투자 권유와 함께 투자 위험에 대한 조언도 하지 않아 투자자들의 분위기가 험악하다.
주부 박영희씨는 지난해 말 펀드 수익률이 좋다는 말을 듣고 딸 혼수비용 3000만원을 주식형 펀드에 묻어 두었는데 최근 원금을 절반 가까이 손실을 보는 바람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경제파탄에 대한 조짐도 심상치 않다. 탑골공원 뒤편 원각사에서는 매일 점심 때 노인이나 장애자들에게 무료급식이 제공된다. 12시 무렵 입구에서 번호표를 나눠주는데 평균 180명 정도가 식사를 한다. 1993년부터 탁발로 무료급식을 해 온 사람은 원각사 주지인 보리 스님이다.
“요즘은 갈수록 급식 인원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IMF 때는 500명 가량 몰렸는데 앞으로는 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신도들이 성금을 내고 자원봉사를 하는데 재정 마련이 쉽지 않아요.”
서울역 앞에서 무료급식을 하는 노숙자 선교회는 매일 350명분의 식사를 준비한다. 최성원 목사는 “최근의 경제위기 이후 급식자가 100여 명이 더 늘었다”고 한다. 최 목사는 “정부에서 북한을 의식해 무료급식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당장 밥 먹을 곳 없는 노숙자들을 외면할 수 없다”고 한다.
무료급식자는 대부분 노인층이다. 우리 경제가 불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침체의 늪에 빠진다면 중ㆍ장년층에서도 무료급식자가 나오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식시장과 부동산 값이 폭락하고 금리는 치솟는 상황에서 실업자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서민들은 혹독한 경제한파 앞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해 신뢰할 수 없는 국민들의 걱정과 불만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만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