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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윤석열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를 읽고

3·1 독립선언은 ‘배타적 감정’ 아닌 ‘자유의 정신’ 강조

글 : 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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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파는 尹 대통령의 기념사에 ‘反日’이 없다고 비난하지만 오히려 3·1 독립선언 정신에 부합
⊙ 대한민국, ‘원망’보다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자기 건설’을 강조한 3·1 독립선언의 정신 바탕으로 기적적 번영 일궈
⊙ 습관적 反日 선동은 3·1 독립선언의 정신에 어긋나
⊙ 북한 정권의 패악은 일제 ‘강권주의’ 능가… 존재 자체가 3·1 독립선언에 대한 반역
⊙ 尹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강조한 것처럼 자유민주통일은 3·1 독립정신의 구현이자 인류 보편 가치의 실현

이강호
1963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前 대통령비서실 공보행정관, 《미래한국》 편집위원 역임 / 現 한국자유회의 간사,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 저서 《박정희가 옳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의 2024년 3·1절 기념사에 대한 좌파들의 반응은 예상대로 부정적 반응 일색이었다. 대표적인 논점은 ‘반일(反日)’이 없다는 것이었다. 3·1 독립선언은 일제(日帝)에 맞선 저항의 선언인데 일제에 대한 규탄은 없이 일본에 대한 유화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평가를 어떻게 하는가는 그들의 자유겠지만 그들의 주장은 두 가지 점에서 잘못된 것이다.
 
  첫째, 현재의 일본은 3·1 독립선언 당시의 제국주의 일본이 아니다. 지금의 일본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대한민국과 공유(共有)하는 수교국이며 우방국이다.
 
  둘째, 제국 일본과의 과거사를 이유로 현재의 일본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배타적 태도를 되살리는 것은 3·1 독립선언의 정신에도 어긋난다.
 
 
  “舊怨으로 他를 배척함이 아니로다”
 
  3·1 독립선언은 105년 전 당시만이 아니라 오늘날과 미래에도 이어져야 하는 의의를 갖고 있다. 단순한 반일 선언이 아니라 세계 모두가 함께해야 하는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할 건강한 자세를 담고 있다. 3·1 독립선언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 일본의 무신(無信)을 죄(罪)하려 아니하노라. (…) 일본의 소의함을 책하려 아니하노라. 자기를 책려하기에 급한 오인(吾人)은 타(他)의 원우(怨尤)를 가(暇)치 못하노라. 현재를 주무하기에 급한 오인(吾人)은 숙석(宿昔)의 징변을 가(暇)치 못하노라. 금일 오인(吾人)의 소임은 다만 자기의 건설이 유(有)할 뿐이오 결코 타(他)의 파괴에 재(在)치 아니하도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가의 신운명을 개척함이오 결코 구원(舊怨)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타(他)를 질축배척(嫉逐排斥)함이 아니로다.”
 

  현대어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 일본의 신의 없음을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다. (…) 일본의 의리 없음을 탓하지도 않겠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다. 현재를 꼼꼼히 준비하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요, 상대의 파괴에 있지 않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 우리 자신의 운명을 새로이 개척하려는 것이지,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남을 미워하여 쫓아내고 물리치려는 것이 아니다.”
 
 
  보편적 가치 담은 3·1 독립선언
 
  일제 지배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성토나 규탄에 매몰되어 있지 않다. 우리 스스로를 세워나가는 것의 중요함을 천명하고 있다. 원망할 겨를이 없다고까지 하고 있다.
 
  3·1 독립선언의 이 같은 내용에 대해 당시에도 비판이 없지 않았다. ‘강경한 투쟁’ 입장에서의 비판이었다. 일제에 대한 강경 투쟁론은 나름대로의 정당성이 있다. 그러나 3·1 독립선언은 ‘투쟁방법론’의 선언이 아니다. 우리의 ‘독립이 갖는 보편적 의의’에 대한 선언이다. 일제의 강권주의에 의한 지배가 동양 평화는 물론 일본 자신을 위해서도 옳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 대해선 독립과 자주란 단순히 떨어져 나옴이 아니라 자기 건설이어야 한다는 본질적 의의를 확인하고 있다.
 
  3·1 독립선언의 이 같은 내용은 당시는 물론 이후의 역사적 전개에 비추어 볼 때 예언적이다. 3·1 독립선언의 지적대로 무력과 강권에 입각한 패권(覇權) 추구에 몰두한 일제는 동아시아 전역을 전쟁판으로 만들었음은 물론 자신도 패망(敗亡)의 운명을 맞게 되었다.
 
  ‘원망’보다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자기 건설’을 강조한 3·1 독립선언의 정신은 우리 스스로를 위한 예견적 지침이었다. 대한민국이 이룩한 기적적 번영은 이 같은 자세를 견지했기에 가능했다.
 
  공산전체주의는 국내적으로든 국제적으로든 항상 적대적 대결을 부추기는 것을 기본으로 했다. ‘원망’에 기반한 선동으로 동질화·일색화를 추구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각각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함께하는 협력을 추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존중’에 기반한 공존의 체제다. 자유민주주의는 사회적·경제적·정치적 모든 차원에서,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이 같은 원칙을 견지한다.
 
  원망의 해소와 동질화는 잠깐은 감정적 만족과 안심을 준다. 그러나 거기에는 번영이 없다. 차이는 불편하다. 그러나 차이의 존중이 없으면 번영은 없다. 차이의 존중이 자발성과 역동성을 낳는다. 함께하는 번영은 차이를 존중하면서 공존의 자세를 지킬 때 이루어진다. 자유민주체제의 원리다. 대한민국은 이 같은 자유민주체제로 건국되었다.
 
  그런데 105년 전의 3·1 독립선언은 이에 대해 이미 언명하고 있다. 독립선언의 공약 3장의 제1장은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오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逸走)하지 말라.”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내달리지 마라.”(현대어)
 
  ‘배타적 감정’이 아닌 ‘자유의 정신’을 말하고 있다. 1948년 8월 15일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이끈 자유민주 대한민국의 건국은 1919년 3·1 독립정신의 실현이었으며 번영을 가능케 한 이념적 예약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 전쟁이라는 공산전체주의의 침공을 물리쳐 이 이념적 예약을 지켜냈다. 그리고 이후 대한민국은 3·1 독립선언이 천명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자기 건설’의 치열한 노력을 해나갔다. 이 역사적 과업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이끌었다.
 
 
  묵은 원한에 얽매이지 않는 선택
 
박정희 대통령은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를 이뤄냈다. 사진=조선DB
  박정희 대통령은 한일(韓日) 국교 정상화를 이뤄냈다.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올바른 선택이었다. 일제의 지배라는 과거사는 잊히지 않고 기억되어야 한다. 그러나 3·1 독립선언은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내달리지 마라”고 했다. 제국주의 일본이 아닌 자유민주체제의 나라가 된 새로운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는 거부되어선 안 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건설이라는 과업의 차원에서도 그러했다. 3·1 독립선언은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다”고 했으며 “묵은 원한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오직 자기 건설에 매진”하는 것이 독립을 위해 필요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에는 더욱이 필요한 자세였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5년 6월 23일 ‘한일회담 타결에 즈음한 특별담화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수십 년간 아니 수백 년간 우리는 일본과 깊은 원한 속에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독립을 말살하였고, 그들은 우리의 부모형제를 살상했고, 그들은 우리의 재산을 착취했습니다. 과거만을 따진다면 그들에 대한 우리의 사무친 감정은 어느 모로 보나 불구대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그렇다고 우리는 이 각박한 국제사회의 경쟁 속에서 지난날의 감정에만 집착해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제의 원수라 하더라도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들과도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도모하는 현명한 대처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반일선동은 여전하다. 이 같은 습관적 반일은 3·1 독립선언의 정신에 어긋난다. 차라리 3·1 독립선언의 의의를 부정하고 비난하는 입장에서라면 “왜 반일이 없냐”고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3·1 독립정신을 계승·선양하는 입장에서라면 이래선 안 된다.
 
 
  ‘건설의 저력’을 만든 ‘모든 삶’은 소중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3·1절 기념사에서 일제 시대 독립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3·1운동을 기점으로 국내외에서 여러 형태의 수많은 독립운동이 펼쳐졌습니다.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무장독립운동을 벌인 투사들이 계셨습니다. (…) 세계 각국에서 외교독립운동에 나선 선각자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역량을 갖추도록 교육과 문화독립운동에 나선 실천가들도 계셨습니다. 제국주의 패망 이후, 우리의 독립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모든 선구적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 이 모든 독립운동의 가치가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 한다고 믿습니다.”
 
  독립이, 그리고 독립운동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헤아린다면 당연한 얘기다. 독립은 그냥 떨어져 나옴이 아니다. 스스로를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서기 위해선 자신을 갖추는 자기 건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어떤 투쟁 방법론이 옳은가에만 몰두하다 보면 종종 독립운동의 본질적 핵심을 놓치게 만든다. 우리를 세우는 데 기여한 수많은 노력은 모두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관점은 직접적으로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 시대에 열심히 살아간 평범한 사람들 모두에 대해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일제 시대 나름의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갖고 살아간 모든 이, 그리고 성실히 살아간 사람들 모두가 이후 나라의 건설을 위한 저력을 형성했다. 이를 정당히 헤아려야 한다. 이른바 ‘민중적 관점’에 입각한다면 더욱이 이래야 한다.
 
 
  ‘정의, 인도, 생존, 존영’ 짓밟은 북한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기념사에서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통일에 대해 말했다. 윤 대통령은 “3·1운동은 모두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통일로 비로소 완결되는 것”이라며 “이제 우리는 모든 국민이 주인인 자유로운 통일 한반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통일을 위한 역사적·헌법적 책무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좌파들은 이에 대해 격렬한 성토를 해댔다. 반일은 없고 반북(反北)이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 김정은 정권은 얼마 전 그간 상투적으로 내세워오던 ‘우리 민족끼리’도 폐기하고 대한민국을 ‘교전(交戰) 대상인 적국(敵國)’으로 규정했다. 이럼에도 좌파들은 이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3·1절 기념사에서 반북을 말한다며 난리였다. 기만적이며 사특(邪慝)하다.
 

  북한의 공산전체주의체제는 3·1 독립선언이 천명하고 있는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나라의 모습에 정면으로 반한다. 3·1 독립선언은 일제에 대해 ‘강권주의’로 ‘민을 위압과 위력으로 구속’하고 ‘고통’을 주었다고 규탄했다. 그런데 북한의 공산전체주의 정권의 패악(悖惡)은 일제를 능가한다. 3·1 독립선언 공약 3장 제1장은 3·1 의거는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한 민족적 요구라 했다. 그런데 북한의 전체주의 정권은 북한 주민의 그 모든 것을 짓밟았다.
 
 
  자유통일은 인류 보편 가치의 구현
 
  윤석열 대통령은 3·1 독립선언은 3·1운동의 정신을 다음과 같이 웅변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자유롭게 발전하려는 것이며,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가는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맞추려는 것이다.”
 
  그리고 3·1 독립선언은 독립한 나라가 되었을 때의 우리의 미래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원래부터 지닌 자유권을 지켜서 풍요로운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다. 원래부터 풍부한 독창성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세계에 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꽃피울 것이다.”
 
  대한민국은 선열들의 그 소망을 이루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말한 대로 “대한민국은 자유와 번영을 구가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로 우뚝 섰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은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문화를 선물하는 나라가 됐다”. 대한민국은 이제 경제적 성취만이 아니라 ‘K-문화’라는 이름으로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 전체 차원에선 절반만의 성취다. 3·1 독립선언이 천명한 선열들의 소망은 북녘 땅에선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녘 땅은 공산전체주의 아래서 참혹한 삶을 이어가야 하는 암흑지대가 되고 말았다. 북한의 공산전체주의 정권은 존재 자체가 3·1 독립운동 정신에 대한 배신이요 반역이다.
 
  3·1 독립선언은 우리의 민족적 차원의 소망을 인류 보편의 가치에 입각해 천명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통일은 민족적 소망의 완결임과 동시에 인류 보편 가치의 구현이다. 대한민국은 민족사적 운명과 세계사적 운명이 함께하는 지점에 서 있다. 피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담대히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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